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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시장 선거, '제2의 김상곤' 나올까?

진보정당·시민단체 연합 '최준열' 후보, '시흥을 출산한 남자' 꿈꾸다

김영국
진보 가문, '십년 가뭄에 단비'

제2의 김상곤이 나올 수 있을까. 이번엔 시흥시장이다.

지난 8일 경기도 교육감 선거에서 야권 단일 후보를 내세워 승리를 일궈낸 지 일주일만에 진보 진영이 또 하나의 의미 있는 실험을 시작했다.

오는 4월 29일 치러지는 경기도 시흥시장 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을 제외한 민주노동당·진보신당·창조한국당 등 진보개혁 성향의 야 3당과 시민단체가 연합해 '무소속 최준열' 후보를 공동 지지·지원하기로 한 것이다.  
 
▲ 노동+진보+창조가 뭉쳤다! 14일 민노당.진보신당.창조한국당 3당 대표들이 시흥시장 보궐선거에 나선 '시민후보 최준열 지지'를 공식 선언했다.    © CBS노컷뉴스

민노당 강기갑 대표,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 창조한국당 유원일 의원은 지난 14일 국회 정론관에서 만나 손을 맞잡고 '시민후보 최준열 지지'를 공식 선언했다. 앞서 3월 18일엔 시흥시의 진보개혁 시민·노동단체 인사들이 '범시민후보'로 최준열 씨를 추대한다고 선언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최 후보는 진보정당·시민사회단체 연합 후보로 자리매김했다. 더불어 한나라당, 민주당 후보와 3자 구도를 형성하며 지지율 제고에도 탄력을 받게 됐다.

김상곤 경기교육감 당선자가 민주당을 포함한 반MB 진영 전체의 단일 후보였다면, 최준열 후보는 '민주당만 뺀 반MB 단일 후보'인 셈이다. 그래서 더욱 눈길을 끌고 있다. 제1야당인 민주당의 오락가락한 노선에 큰 불신을 갖고 있는 진보정당과 시민사회단체가 이번에는 민주당을 제외한 채 '진보 단결 구도'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이런 시도가 근래에 보기 드문 사례일 뿐만 아니라, 향후 정치권 변화와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일종의 실험적 성격도 있어 진보 진영에선 시흥시장 선거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볼 맛 안 나는 선거판에 그나마 '볼만한 곳'이 생긴 셈이다.  

집권여당-보수야당-진보·시민연합 '진검승부'

이번 선거에 한나라당은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비서실장을 지낸 노용수(43) 전 경기도의원을 공천했고, 민주당은 고 제정구 의원의 비서였던 김윤식(43) 전 경기도의원을 내세웠다. 무소속 진보연합 대표로 나서게 된 최준열(50) 후보는 현재 중앙산부인과 원장으로 시흥YMCA 초대 이사장과 시흥시장 주민소환운동본부 상임대표를 역임한 시민운동가이기도 하다.
 
▲ 왼쪽부터 한나라당 노용수, 민주당 김윤식, 무소속 최준열 후보     © 대자보


이로써 시흥시장 선거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보수 양당에 무소속 진보연합 후보가 도전장을 낸 3파전으로 치러지게 됐다. 출마한 후보도 딱 이들 3명뿐이다. 군더더기 없이 집권여당, 보수야당, 진보·시민연합이 진검승부를 펼치게 됐다. 시흥시장 선거는 인천 부평을 국회의원 선거와 함께 이명박 정권에 대한 수도권의 민심을 살펴볼 수 있는 대표적인 곳이기도 하다.

이번에 재보궐선거가 실시되는 지역은 총 16곳으로 국회의원 5곳(인천 부평을, 울산 북구, 전주 완산갑, 전주 덕진, 경북 경주시), 기초단체장 1곳(경기도 시흥시), 광역의원 3곳(서울 광진구, 강원도 양양군, 전남 장흥군), 기초의원 5곳(광주광역시 서구, 충북 증평군, 전남 영암군, 경북 경주시 마.아선거구), 교육감 2곳(충청남도, 경상북도)이다.

그러나 친이-친박, 정세균-정동영, 조승수-김창현 등 여야 모두 '집안싸움'에 골몰하면서 정상적인 의미의 여야 대결 구도가 실종되고 있다. 그만큼 재보선 이후 각 정파가 극심한 후유증과 변화를 겪게 될 가능성이 높다. 선거 결과에 따라 여야 지도부의 정치적 운명, 각 당의 계파 간 경쟁구도, 진보 진영의 주도권 등이 결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최준열, "진정성 없는 민주당, 단일화 제안해도 거부할 것"

이런 가운데 시흥에서 진보 진영이 시민단체와 연합해 단일 후보를 내세운 것은 쾌거이기도 하다. 그러나 당선 전망까지 쾌청한 것은 아니다. 민주당과 진보연합 후보가 동시에 출마하면서 야권 표 분산이 당장의 과제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보수 진영에서 단독 출마한 한나라당 후보만 어부지리를 얻게 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따라서 야권 후보 단일화에 대한 관심과 논란은 선거기간 내내 계속될 전망이다.

시흥시는 지역 국회의원 두 명이 모두 민주당 의원(조정식, 백원우)으로 비교적 야성이 강한 곳이다. 따라서 민주당도 단일화 필요성만큼은 인정하고 있다. 최준열 후보도 지난 2월 24일 출마 선언 때 민주당을 포함한 범야권 단일 후보 선출을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이후 민주당 측에서 과거 시흥시장 재임 시절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사법처리 당한 사람을 또 다시 공천했다가 갑작스럽게 교체하는 등 야권 단일화의 취지를 무색게 하는 행보를 보이면서 사실상 물 건너간 상태다. 특히 후보 등록 이후 선거운동이 본격화된 상태에서 단일화란 어느 일방의 사퇴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점에서 더욱 쉽지 않아 보인다. 그 효과도 반감될 수밖에 없다.

최준열 후보도 이런 점을 의식, 기존 정당들의 정치 논리에 구애받지 않고 '끝까지 가겠다.'고 밝혔다.

최 후보는 어제(15일) <대자보>와 전화 인터뷰에서 "민주당은 야권 단일화에 전혀 진정성도 열의도 없다."고 일침을 가한 뒤, "아무리 어려운 악조건에서도 자기가 열심히 해서 스스로 우월성을 가지고 시장에 당선되어야 한다."며 단일화 논란에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나의 출마는 일단은 당선되는 데에 있지만, 또 하나는 기존의 정치판을 바꾸고 그것을 전국적으로 확산시켜나가는 데 기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내년 지방선거까지 이어지도록 하나의 촉매제가 되고 싶다."며 "이런 뜻이기 때문에 내가 중간에 후보 단일화로 주저앉고 이런 것은 나의 뜻, 의지, 목표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강조했다.

최 후보는 한발 더 나아가 "선거 중간에 민주당이 후보 단일화를 제안한다 해도 거기에 큰 비중을 두지 않겠다."며 "지금에 와서 후보 단일화는 효과도 별로 없다. 시기적으로도 완전히 지나갔다. 단일화 제안이 와도 거부하고 나의 입장을 가지고 시민들의 선택을 받기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다."고 쐐기를 박았다.

왕성한 풀뿌리 운동의 산물, 진보 색깔 뚜렷

시흥시는 민선 초대 시장부터 4번째 시장이었던 이연수 씨까지 모두 뇌물수수, 정치자금법 위반 등으로 물러난 악몽을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시흥시민들은 시장의 부정·비리에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다. 한 시민은 후보자가 명함을 건내자 "시장 필요 없어." 하며 눈 앞에서 명함을 집어던지는 일까지 있었다고 한다.

이번 시흥시장 보궐선거는 한나라당 소속의 이연수 전 시장이 2007년 12월 뇌물수수죄로 구속된 이후 올해 1월 대법원에서 징역 3년6개월에 추징금 5000만 원의 형이 확정돼 시장직을 상실하면서 치러지게 된 것이다.

이 전 시장이 구속됐을 당시 시흥YMCA, 시흥환경운동연합 등 시민단체들은 시정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시장직 사퇴를 촉구했으나 이 전 시장이 사퇴하지 않자 2008년 여름 주민소환운동을 전개했고, 당시 주민소환운동을 이끌었던 인물이 바로 최준열 후보다. 최 후보는 이연수 시흥시장 주민소환운동본부 상임대표로 활동하면서 4만6천여 명에 달하는 시민들의 지지 서명을 이끌어냈다. 이처럼 최 후보는 지역운동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로 이번 선거에서 시흥지역 시민·노동단체의 추대를 받아 출마하게 된 것이다.

여기에 민주노동당 시흥시위원회와 진보신당 시흥시 당원협의회 등 진보정당들도 적극 동참했다. 이들은 지난 3월 26일 주민소환운동의 완성과 진보적 가치 실현, 반MB 연대라는 틀 속에서 별도의 후보를 내지 않고 최 후보를 지지하기로 했고, 창조한국당도 최 후보 지지 대열에 가세하면서 지난 14일 국회에서 진보개혁 3당 대표가 공동 지지 선언을 하게 된 것이다.

이런 배경 속에 출마한 최준열 후보는 '경제는 살리고 부패는 끊고'라는 모토로 부패 척결을 위한 시장 직속 클린행정시민위원회 신설, 예산계획·심의·확정 과정에 시민참여 보장, 교육예산을 70억에서 200억원으로 증액해 초등학교 단계별 무상급식·친환경 무상급식 전면 실현, 공익적 일자리 확충, 어르신 틀니, 대학생 학자금 지원 등 저소득층 복지 확대, 녹색 친환경 도시 건설 등을 공약했다. 서민 생활 안정과 복지 확대를 최우선에 두면서 이명박식  재벌·부자 중심의 개발 정책과는 확실히 차별화된 비전으로 승부를 걸겠다는 의지인 셈이다.

최 후보는 <대자보>와 전화 인터뷰에서 "많은 사람들이 도와주니까 용기가 나고, 분위기가 올라오고 있다."며 "최선을 다해서 '시흥을 출산한 남자'가 되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공약 '판박이'

한편 한나라당 노용수 후보는 15일 박희태 대표 등 당 지도부가 참석한 가운데 선거사무소 개소식을 열고 본격적인 선거운동에 들어갔다.

노 후보는 그린벨트 해제 및 개발로 100만 도시 건설, 서울대 국제캠퍼스 유치, 명문고 육성, 광역전철 유치, 군자지구 경제자유구역 지정 등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러면서 힘 있는 여당 후보임을 강조한다.

민주당은 당초 지난 4월 1일 백청수 전 시흥시장을 후보로 공천하고 9일엔 당 지도부가 대거 참석한 가운데 선거사무소 개소식까지 열었으나, 불과 하루만인 10일 백 전 시장이 "지병을 앓고 있는 아내의 건강이 악화됐다."며 돌연 후보를 사퇴해버렸다. 여론조사에서 우위를 보이던 백 전 시장이 갑작스럽게 공천을 반납함에 따라 민주당은 같은 날 김윤식 전 경기도의원으로 부랴부랴 후보를 교체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이런 사정 때문에 민주당 경기도당은 지난 14일 "한나라당은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의 비리로 재보궐선거가 실시될 경우 공천을 하지 않겠다는 대국민 약속을 지키고, 노 후보의 공천을 철회하라."고 주장하는 등 선거 구도를 양당 대결로 몰고 가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김 후보는 그린벨트 대폭 해제 및 개발로 명품도시 건설, 서울대 국제캠퍼스 유치, 체험식 영어마을 설치, 광역전철 유치, 시흥 경제자유구역 지정 추진, 친환경 급식 제공, 수변생태관광벨트 조성 등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주요 공약이 한나라당 노용수 후보와 흡사한 게 눈에 띈다.

아름다운 홀로서기

한나라당과 민주당이라는 거대 정당 중심의 선거구도에서 시민사회와 진보정당들이 연합한 무소속 후보가 얼마나 선전하고, 성공을 거둘 수 있을 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보궐선거라는 낮은 투표율까지 감안한다면 쉽지 않은 도전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의 급추락에도 불구하고 야당이 너무도 오랜 기간 국민들로부터 대안적 견제 세력으로 인정받지 못 하고 존재감마저 상실한 채 지리멸렬한 상태이다.

따라서 시민사회와 진보·좌파 진영에게 이번 시도는 자유주의 정당으로서 뚜렷한 한계를 갖고 있는 제1야당 민주당과의 연대 프레임에서 벗어나 홀로서기를 실험해 본다는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다. 또한 이는 올 10월에 있을 국회의원 재보선은 물론 내년 지방선거까지 이어질 정치적 변수가 될 수도 있다. 구각(舊殼)을 깨고 새로운 돌파구가 절실한 야권에 신선한 시도들이 다양하게 전개될 필요가 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세상을 임신한 남자'에서 '시흥을 출산한 남자'로 거듭나기 위한 몸부림이 아름다운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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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엥란트


수구진보 자주파, 무자비한 '심상정 탄핵'
[정치시평] 민노당대회 '김정일 신도들의 쿠데타', 심상정 '탈당' 외길뿐
 
김영국
'김정일 신도' 자주파(NL)의 추악한 쿠데타

어제(3일) 열린 민주노동당 임시 당대회는 흡사 '김정일 유일신' 교도들의 부흥회였다. 그들은 반성하는 진보, 합리적 진보로 거듭나기 위해 몸부림쳤던 심상정 비대위를 거침없이 짓밟았다.

민노당을 숙주 삼아 기생해온 김정일 신도들이 가면을 벗고, 자신들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허연 하이에나 이빨을 드러내며 한 여인을 사정없이 물어뜯었다. 그렇게 심상정 비대위는 무참하게 탄핵당했다.

어제 민노당 혁신안을 결정할 당대회는 일개 정당의 단순한 행사가 아니었다. 사실상 민노당과 진보운동 전체의 운명을 가르는 중대 분수령이었다. 그래서 진보를 생각하는 많은 이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결론은 '경악' 그 자체였다. 심상정 비대위가 대선 참패로 사망선고를 받은 민노당을 재건하기 위해 내놓은 당 혁신안들이 당내 다수파인 민족주의 자주파(NL)의 봉기로 무참히 짓밟혔다.

민노당 자주파는 똘똘 뭉쳐 심상정 비대위가 내놓은 안을 단 한 건도 허락하지 않고, 모두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수정하거나 삭제해 보란듯이 압도적 다수로 통과시켜버렸다. 심상정 비대위 안은 안건마다 이들의 칼질로 누더기가 돼 찢겨나갔다. 자주파의 머리 위에 얹혀진 '고깔'에 불과한 심 대표의 처지가 애처로울 뿐이었다.

자주파는 그동안 민노당 운영을 주도해 왔을 뿐만 아니라, 이번 대선 참패의 가장 큰 책임 주체임에도 이날 당대회에서 그들이 보여준 행동은 '우리가 뭘 잘못했느냐.'는 분풀이로 가득했다. '무식한 국민 따위가 감히 우리를 심판하느냐.'는 김정일식 사고에 쩔어 있는 신도들의 모습이었다.

'민노당 해체·자주파와 단절'이 진보 부활 지름길

애초 평등파(PD)인 심상정 의원을 비대위 대표로 삼고초려하며 불러들인 것도 자주파 수장들이었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대선 참패의 책임론 때문에 차마 자신들이 나서서 당을 추스릴 면목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제 당대회로 심 의원은 어디까지나 그들이 위기를 잠시 모면하기 위해 불러들인 '얼굴마담'이었을 뿐이라는 속셈이 여실히 드러났다.

평등파의 핵심들이 탈당 등으로 빠져나간 이후 자주파만 덩그러니 남은 민노당이 향후 어떤 모습일지 극명하게 확인된 순간이었다.

▲심상정 대표는 표결 직후 부결로 결론나자, 침통한 표정으로 성급히 행사장을 빠져나갔다. 심 대표는 4일 기자회견을 통해 비대위 사퇴를 공식적으로 밝힐 예정이다    ©민주노동당(진보정치 정택용 기자)

말로만 듣던 민노당 내 자주파의 패권적 전횡이 전국에 인터넷으로 생중계되면서 그동안 민주노동당에 애정을 갖고 '분당만은 피해야 한다.'며 가슴 졸이고 지켜보던 진보인사들마저 경악시키기에 충분했다.

종북주의(從北主義)라고 비판받아 온 자주파(NL)의 실체가 만천하에 드러나며, 그들이 자신들의 신앙이 위협받을 때 얼마나 '광기 어린 주사파'가 될 수 있는 지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이제 민주노동당은 역사의 이름으로 즉각 해체되는 것만이 이 땅의 진보가 건강하게 다시 태어날 수 있는 유일한 지름길임이 확인되었다.

더이상 진보 진영은 김정일 신도들만 남은 자주파黨, 주사파黨을 진보의 목록에 올려놓아선 안된다. 뿐만 아니라 종북적 통일지상주의 자주파(NL)와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단절해야 한다. 범여권 정치인들만 금기 사항이 아니라 김정일 신도들도 진보엔 금기다. 더이상 시대착오적인 대동단결론 따위로 자주파와 함께 '진보의 춤'을 추어선 안된다.


'종(種)'이 다름을 확인한 이상 서로 으르렁거리며 아까운 세월만 죽일 필요도 없다. 각자 옳다고 믿는 바대로 대중을 설득하고 지지를 조직하면서 경쟁하면 그 뿐이다. 어차피 시대착오적인 정치집단은 대중들로부터 도태되기 마련이다.

진보의 궤멸을 냉혹한 현실로 인정하고, 진보의 새로운 한 시대를 다시 준비하는 마음으로 새출발해야 한다. 한 줌도 안 남은 기득권에 집착해 단결·단합이라는 허울 속에 '혐오적 동거'를 강요하는 것 자체가 미몽(迷夢)이었다.

순진한 심상정, 금쪽같은 한달을 날려버리다

사실 어제 자주파(NL)의 당대회 쿠데타는 이미 심상정 의원이 지난 1월 12일 비대위 대표를 수락할 때부터 예고된 것이었다. 안 그래도 숫적으로 절대 열세인데다 심 대표를 지지하는 평등파의 핵심인사와 당원들 상당수가 탈당해 그의 지지기반은 더욱 위축되었다.

애초부터 심상정 비대위의 혁신 성패는 온전히 절대 다수파인 자주파의 손에 달려 있었다. 그들의 살신성인에 가까운 양보 없인 기대난망이었다.

이에 따라 자주파의 종북주의에 근거한 패권주의에 이골이 난 평등파 일부는 처음부터 새로운 진보정당을 건설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들 신당파의 새 진보정당 운동이 지금 당장은 성공하기 어려울 순 있어도, 그들의 선택과 주장은 옳았다.

오히려 자주파의 종북주의와 패권적 전횡에 그렇게 당하고도 한방에 뜯어고쳐 보겠다고 나선 것 자체가 '무모한 도전'이었다. 그동안 한이불을 덮어온 정 때문에 그들에게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끝까지 안고 가려는 것부터가 대착각이었다.

심상정 의원이 지도력을 발휘해 민노당의 정파 갈등을 적당히 봉합하면 이번 기회에 대중정치인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계산을 했다면, 심상정 캠프의 정치적 판단력은 초딩 수준임이 틀림없다. 이제 심상정은 안쓰러운 '동정표'나 모아 재기(再起)를 모색해야 한다. 이 얼마나 구차스러운가.

실패할 줄 알면서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다.'는 명분을 쥐려 했다면, 진보의 몰살(沒殺)이 예고된 총선을 눈앞에 두고 하루 하루가 운명의 시간이 되고 있는 금쪽같은 한 달을 통째로 날려버린 '무책임'의 무게가 참을 수 없을 만큼 거대하다. 무엇으로 이를 보상할 수 있겠는가.

심상정 '울고 있을 여유 없다'

심상정 대표는 이번에 지도력을 발휘하지도, 알량한 명분조차도 얻지 못했다. 그저 진보 양아치들에게 덤비다 집단 린치당한 여인네에 불과했다. 그녀는 지도력을 발휘할 수 없는 거대한 절벽에다 안 그래도 허약해진 진보의 몸뚱아리를 내동댕이쳤다.

그가 얻은 유일한 소득이 있다면, 민족주의 자주파(NL)의 '패악(悖惡)상'을 대중들에게 소름끼치도록 실감나게 확인시켜 주었다는 것뿐이다. 고작 이 것을 얻기 위해 그가 허비한 한 달과, 유혈이 낭자한 진보의 몸뚱아리가 너무도 처연(悽然)하다.

진보 진영의 재구성을 민노당의 틀로 실현시켜 보겠다는 '민노당 중심주의'가 빚어낸 참극(慘劇)이었다. 국민들은 이미 지난 대선을 통해 국회의원 하나 배출하기도 힘든 3% 지지를 보냄으로써 민노당의 틀로는 안 된다고 그렇게 경고를 했건만, 민노당을 부여잡고 놓지 못한 게 결국 심상정 자신의 옷자락만 갈기갈기 찢긴 채 쫓겨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 아쉽다. 그토록 엄중한 시간들을 허공에 날려버린 게 아쉽고, 개혁·진보 진영을 부활시킬 소중한 자원이 무참히 더렵혀진 게 못내 아쉽다. 리더십을 발휘할 지도자 '기근(饑饉)'에 시달리고 있는 진보 진영을 더욱 쪼그라들게 만들었다.

그러나 심상정은 울고 있을 시간도, 그럴 자격도 없다. 그러기엔 작금의 진보 진영에게 주어진 시절이 너무도 잔인하다. 그는 일개 정치인을 떠나 많은 진보 성향 유권자들의 기대와 사랑을 받아온 만큼 그에 합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

주저없이 '김정일 신도黨'을 박차고 나와 광야로 가야 한다. 비록 그 길이 시베리아 벌판보다 추울지언정 오늘의 시대정신과 만나야 한다. 민노당을 머리 속에 깨끗히 비우고, 더이상 어느 정파에도 연연하지 말고, 심상정의 비전과 정책을 서민대중의 언어로 재무장해 새롭게 진보개혁적 정치세력을 창출하는 데 백의종군의 자세로 뛰어야 한다.

오늘의 아픔이 머리와 가슴 한 편에 자리할 여유조차 없을 만큼, 죽을 힘을 다해 뛰고 또 뛰어야 한다. '심다르크'의 힘찬 부활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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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과 민노당 '해체'가 최고의 진보다

<대자보> 편집위원. 항상 이 나라 개혁과 진보적 사회발전에 기여하는 쪽에 서 있고자 하는 평범한 생활인입니다.
 
2008/02/04 [13:55] ⓒ 대자보
☞ 해당기사 전문 보기


☞ 참정연 게시판 해당 글 보기(2008.2.4)


:
Posted by 엥란트

아무리 꼴통 신문이라 해도 이런 지적은 수긍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꼴통 신문이 할 말이 없게 만드는 게 지금 진보가 할 일이다. 범여권과 민노당은 너무 많은 책을 잡혔다.

그런데 중앙일보가 용어 사용을 잘못한 부분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대선에서 범여권 단일화를 호소한 백낙청, 박형규, 고은, 함세웅, 황석영 등 원로들은 민주 인사는 맞지만 결코 "좌파"는 아니다.

특히 노무현과 민주당 세력을 진보좌파 그룹으로 묶어서 싸잡아 비난하는 건 명백한 '좌파 마타도어'다. 이들른 결코 진보도 좌파도 아닌 신자유주의자들이었기 때문이다. 남북문제만 빼면 조중동에 더 가까우면 가까웠지 좌파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사람들이다.

아무리 편가르기로 먹고사는 조중동이라지만 제발 용어 사용만이라도 제대로 해주길 바란다. 그러면서 지면을 통해 고등학생을 상대로 논술을 가르치려 드는 모습 정말 눈 뜨고 봐주기 힘들다. 개념을 상실한 사람이 개념을 가르친다는 게 좀 웃기지 않는가.



[김종혁시시각각] 좌파는 왜 망가졌는가  

중앙일보  2007.11.20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박형규 목사, 함세웅 신부, 고은 시인, 소설가 황석영씨. 이 분들의 이름을 들으면 금방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을 것이다. 맞다. 진보진영 쪽의 어른들이다. 16명의 ‘진보 어른들’이 19일 서울 여의도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요점은 간단하다. “진보진영 총 단결하라”는 것이다.

그 심정 이해가 간다. 대선은 이제 한 달도 채 안 남았다. 한데 돌아가는 상황은 진보 쪽에서 보면 기가 막힐 것이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은 좀체 내려가지 않고 있다. 그의 처신에 대한 논란이 많은데도 그렇다. 진보로선 더 억장 무너지는 게 있다. 이회창 후보가 나오면 보수의 분열로 진보가 득을 볼 거라고 했다. 웬걸, 대신 통합신당 정동영 후보가 3등으로 내려 앉았다. 이게 무슨 뜻인지는 너무나 분명하다. “당신들 재집권이 싫다”고 유권자들이 외치고 있는 것이다.

세상 인심 참 무섭다. 불과 5년 전이었다. 노무현 후보가 당선되고 진보가 기세 등등했던 게. “앞으로 수십 년간 보수는 집권 못 한다”는 거침없는 발언도 있었다. 한데 몇 년 사이에 정치 지형이 확 뒤바뀐 것이다.

‘진보 어른들’은 기자회견에서 “역사를 퇴행시키려는 세력이 기세 등등하다”고 말했다. 대단히 죄송한 말씀이지만 그 기사를 읽으며 이런 생각 했다. ‘진보, 아직 정신 못 차렸구나.’

그 논리에 따르면 ‘이명박·이회창 지지=역사 퇴행’이다. 그러니까 우리 편을 지지할 땐 국민의 위대한 선택이고, 반대편을 지지하면 역사를 퇴행시키는 한심한 유권자란 말인가. 천만의 말씀이다. 지금은 군사정권 때가 아니다. 국민은 자기 맘에 드는 후보를 자유롭게 선택할 무제한의 권리가 있다. 자기들이 잘못해 민심이 떠났는데 그게 국민 잘못인 것처럼 호도하면 안 된다. 외람되지만 한 말씀 드린다. 내 반대편이 집권할 권리를 인정하는 게 바로 민주주의다.

‘진보 어른들’의 분석과는 달리 나는 5년 사이에 이런 변화가 생긴 이유를 다른 데서 찾는다. 진보 좌파의 교만과 무능, 그리고 부도덕성이다.

우선 교만. 요즘은 좀 덜하지만 그동안 진보 좌파는 ‘우리는 정의의 화신, 남들은 수구 꼴통’을 입에 달고 살았다. 청와대에서 노 대통령부터 앞장서서 그랬다. 제멋대로 역사와 전통을, 혹은 제도와 시스템을 때려 부수면서 “개혁한다. 거기 반대하나?”라면서 몰아붙였다.

둘째로 무능. 5년의 집권 기간 동안 진보 좌파는 남을 욕하고 비난하는 데는 선수지만 스스로 뭔가를 세우고 발전시키는 데는 한계가 크다는 걸 확실하게 보여 줬다. 경제적으론 부에 대한 잘못된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열심히 일해 부자가 되기보다 부자에게 손가락질하고, 내가 못사는 건 잘사는 놈들 때문이라는 증오의 분위기를 퍼뜨린 혐의가 짙다. 전 국토가 투기장이 됐고, 신의 직장 공기업과 공무원들은 갈수록 비대해졌다. 외교도 마찬가지다. 친구를 만드는 게 외교인데 지금은 미국도 일본도, 중국까지 누구도 우리편이 아니다. 북한이 핵을 갖지 않을 것이라고 큰소리치더니 지금 꼴은 뭔가.

셋째는 부도덕함이다. 정치를 엉망진창으로 하더니 탈당쇼를 벌이고, 어떻게 해서든 깜짝 이벤트로 표를 긁어모으려는 행태를 계속하고 있다. 대선이 코앞인데 아직도 합당이네 마네 하는 걸 보면 화가 치민다. 대체 유권자를 뭘로 보는 건가.

이런 비판이 신랄하다는 걸 안다. 하지만 진보는 반성해야 한다. 입으로만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래야 부활한다. 보수도 다 죽은 줄 알았다가 다시 살아나지 않았나. 어차피 민주주의는 한쪽만으론 안 된다. 진보가 건강성을 되찾아야 보수도 긴장하고 그래야 나라가 발전한다. 이번 대선 과정을 통해 확인된 게 있다. 대한민국 유권자는 변덕스럽다. 까다로운 소비자다. 그러니 보수도 옛날처럼 부패하고, 수구꼴통 짓 하면 다시 외면당한다. 진보든 보수든 엉터리 상품을 속여 팔지 말라. 한 번은 몰라도 두 번은 절대 안 산다.

김종혁 사회부문 부에디터
[kimchy@joongang.co.kr]    
2007.11.20 19:39 입력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total_id=2954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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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엥란트

"범여권, '올바른 패배'의 기회도 놓쳤다"

[정치와 사람들② 이대근] 2007 대선, 신보수주의의 '입구'

[프레시안] 2007-11-14 오후 1:57:25

이대근 <경향신문> 정치·국제에디터가 노무현 대통령이나 범여권을 비판한 글을 보고 있자면 그 거침없음에 적이 당황하게 된다. 그는 에두르는 법 없이 비판의 과녁을 향해 직진한다.

가령 "대통합이 기여할 게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다행히 버려야 할 모든 것들이 이 한 바구니에 담기게 되었기 때문이다. 대통합민주신당은 무덤이다"(2007년 9월 12일자 칼럼 <신당, 그 무덤에 아무도 초대말라>)는 구절, 또는 "정동영은 바람보다 먼저 눕고 바람보다 빨리 일어난다. 그게 정동영이다…노무현을 기준으로 하면 정동영의 앞날에 어떤 무궁무진한 변화가 펼쳐질지 충분히 상상해 볼 수 있지만, 우리는 이미 우회전·좌회전, 신정치·구정치, 친노무현·반노무현, 시장주의·반시장주의를 넘나드는 그의 현란한 곡예를 목격하고 있다"(2007년 10월 24일자 칼럼 <정동영, 노무현보다 나은가>)는 대목 같은 게 그렇다.

물론 그의 비판은 지난 5년간 조·중·동을 위시한 보수언론이 쏟아낸 험한 말들과는 입각점이 전혀 다르다. 이는 지난해 <경향신문> 창간 60주년 특별기획으로 마련돼 진보개혁 진영 안팎에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진보개혁의 위기>를 그가 총괄했던 데서도 짐작된다. 혹은 지난 5월 작고한 아동문학가 권정생 선생을 추모하며 쓴 칼럼의 다음 한 토막은 어떤가.

▲ 이대근 <경향신문> 정치·국제에디터. ⓒ프레시안

"가난하고 늙고 병든 아동문학가는 이 사회에서 전혀 위험하지 않다고 생각했다면 잘못이다. 버림받고, 병들고 가난한 자가 세상과 잘 어울린다는 것 자체가 기만이다. 그는 매우 위험하고 불온한 사상가였고, 반역자였으며 혁명이 사라진 시대의 혁명가였다. '위대한 부정의 정신'의 소유자였다."(2007년 5월 23일 칼럼 <권정생, 그의 반역은 끝났는가>)

이 에디터의 글은 '진보개혁' 진영이 현 정권에 대해 갖는 배반감의 실체와 절망의 깊이를 겉치레 없이 드러낸다. 그는 "한 때 한국사회의 희망이었던 민주화운동세력이 왜 이렇게 처참하게 몰락하게 됐나"를 묻는다. 무능, 원칙의 실종, 정체성의 상실 따위가 열쇠말로 떠오른다. 이 가운데 '무능'은 어쩔 수 없는 능력의 한계로 보아 넘길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원칙'과 '정체성'은 다르다. 지킬 수 있고 지켜야하는 것이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지지층의 이반과 함께 시작된 '범여권 잔혹사'도 여기서 비롯된다. 이 에디터가 '원칙'과 '정체성'을 유독 강조하는 건 이런 맥락에서일 것이다.

지난해 5.31 지방선거에서 사망선고를 받은 이후 범여권은 '산수'에 몰두했다. 1년 넘게 덧셈과 뺄셈을 지루하게 반복했다. 그렇게 해서 최근 거둔 성적이 61.9%대 23%다. 이 에디터의 표현을 빌면 '바보 산수'다. 범여권은 '바보 산수'의 가속 페달을 밟을 태세다. 통합신당과 민주당은 24일 합당하기로 했다. 범여권의 정치기술자들은 거기서 기적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열심히 주판알을 튕기고 있다.

그들의 기대는 실현될까. 가능성은 흐릿하다. 범여권 사람들도 성공에 대한 확신이 없어 보인다. 확신도 없는 일은 하는 건 그렇게 하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의 공학적 정치관에 입각해보면 그렇게 판단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난 17개월 동안 범여권의 영악한 공학적 사고는 정치적 실리를 줄기차게 배반했다. 그들의 '산수'는, 적어도 지금까지의 성적만 놓고 보면 엉터리임이 드러났다. 차라리 "범여권은 이미 패배했다. 선거 결과와 상관없이 패배했다. 그걸 인정하고 이번 선거를 바라봐야 한다"고 말하는 우직한 원칙주의자의 처방이 보다 실리적인 충고로 들린다. 그것이 이대근 에디터를 만난 이유이기도 하다.

"누가 집권해도 신보수주의의 개막"
▲ ⓒ프레시안

프레시안 : 지난 7월 칼럼에서 "이명박이 되든 통합신당의 빅3가 되든 우리는 민주화 20년 만에 한 시대의 종언을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썼다. 이번 대선의 정치사적 의미는 무엇인가.

이대근 : 민주세력 집권 기간을 통해 민주화운동을 한 사람에 대한 보상이 끝났다. 민주화운동을 했다는 정통성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시한은 지났다. 이제 새로운 시대적 과제를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느냐, 새로운 개혁의 동력을 갖고 있느냐, 개혁을 실천할 정교한 프로그램을 갖고 있느냐 하는 것이 판단기준이 되는 시대로 넘어갔다.

구여권 세력은 민주화 20년의 시대 열망을 체현해서 개혁을 실천하는 세력이 더 이상 아니다. 기득권 구조 안에 들어가 있는 기득권의 일부다. 만약 재집권에 성공한다고 해도 보수정당간 경쟁에 의해 권력을 잡는 것일 뿐 다른 운동적 의미는 없다.

그 결과 신보수주의 시대가 개막되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을 제외한 다른 정당들의 차이가 없어졌다. 이명박 캠프의 다수가 운동권 출신이다. 민주화에 일정한 공을 가진 세력이 뉴라이트를 결성했고 그들이 한나라당과 결합했다. 한나라당은 6월항쟁의 토대 위에 선 새로운 보수 세력으로 변해왔다. 신당과 한나라당의 차이가 없어진 것이다. 정당 간 차이라는 게 매우 작아졌고, 그 차이를 작게 한 전반적 흐름은 신보수주의다.

프레시안 : 민주화세력 집권 10년을 사회가 운동세력에게 가졌던 부채의식을 털어버린 시간으로 평가한 게 흥미롭다. 부연해 달라.

이대근 : 과거 정치개혁의 주요 관심사는 '새 피 수혈론'이었다. '새 피'는 대부분 운동권이었다. 운동하면서 사회를 변화시킨 데 대한 기대와 보상의 의미였다. 그렇게 해서 결국 집권까지 하게 됐다. 총리, 장관, 위원회 등 운동권에서 웬만큼 역할 했던 사람들은 한 자리씩 차지했다. 그 사람들이 갖고 있는 열정과 변화의 열망이 국가 운영에 투영될 것이란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 국가라는 거대한 관료체계 속에 들어가서 똑같이 포로가 됐고, 거기서 돈과 명예와 권력을 누렸다. 과거에 헌신했다는 것만으로는 국가를 잘 운영할 거라는 기대를 갖기 힘들어졌다.

프레시안 : 민주화세력 집권 10년 동안 그들이 추구해온 민주적 가치가 국정에 반영되는 정도는 매우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뭐가 문제였을까.

이대근 : 국가를 장악한다는 것, 국가를 책임지고 맡아서 한다는 것에 대한 준비가 전혀 안 되어 있었다. 국가 속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 우리가 국가를 장악하는 게 곧 민주화고 개혁이라고 착각했던 것이다. 들어가서 무엇을 할 것인지, 오랫동안 축적된 관료체제를 바꾸기 위해 어떤 프로그램을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은 전혀 없었다. 단지 국가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개혁의 종착점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게 준비 없이 들어가다 보니 국가에 의해 포섭됐고, 기존에 있던 거대한 관료주의 메커니즘 속에서 톱니바퀴의 일부가 됐다. 스스로 도구가 된 것이다.

프레시안 : 국가를 운영한다는 게 주관적인 신념의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로 들린다. 요컨대, 나중에 진보정당이 집권에 성공한다고 해도 국정운영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동일한 시행착오를 겪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대근 : 그럴 가능성이 많다. 가령 예산처에 내년 예산안이 만들어져 있다. 진보세력이나 개혁세력이 지금 당장 들어가서 예산 10%라도 바꿔놓을 능력이 있는가. 정부 나름의 우선순위가 100가지 있다고 하면 그 중 50가지라도 우선순위를 바꿀 수 있는가. 그거 쉽게 바꿀 수 없을 거다. 정부가 수 십 년 해왔던 연속적 사업이 있고 배분의 순서가 있다. 30번 순위인 걸 1순위로 올리고, 1순위에 있는 걸 30번 순서로 맞춰서 예산안을 짤 수 있는가. 우선 그것이 준비되어 있는가를 본다면 얼마나 개혁할 능력이 있는지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반부패, 잘 먹히지 않을 것"

프레시안 : 경제, 부패, 평화, 이념 가운데 이번 대선의 주된 이슈는 무엇이 될 것이라고 보나. 또 선거 구도는 어떻게 펼쳐질 것이라고 예상하나.

이대근 : 이슈는 경제, 부패, 평화, 이념의 순서가 될 것이다. 삶의 문제를 누가 개선할거냐, 이게 경제 이슈다. 성장주의에 바탕을 둔 신자유주의 경제와 분배와 복지를 강조하는 경제의 구도다.

그 다음이 부패와 반부패다. 범여권에선 부패세력과 반부패세력의 대결로 이슈를 만들어 보려고 하지만, 이 이슈는 경제 이슈만큼 크지 않다. 이명박 후보의 약점이 부패라고 할 때, 보수 세력이 그 대안으로 이회창을 생각한다는 건 이회창을 부패와 동일시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이명박 후보와 이회창 후보를 부패로 묶는 게 잘 먹혀들지 않을 것이다.

한나라당을 전쟁 세력, 범여권을 평화세력으로 대립시키는 것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한나라당의 정강정책도 정도 차이는 있지만 포용정책을 기본 전제로 하고 있다. 그리고 포용정책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되어 있다. 임기 말 정상회담이라는 문제에도 불구하고 정상회담과 그 결과에 대한 지지가 낮으면 60%, 많게는 80%까지 나왔다. 이를 반대하는 엄청난 세력이 있다고 고발하는 게 사람들한테 진실로 와 닿지 않는다.

프레시안 : 이회창 전 총재의 출마가 대선에 어떤 영향을 줄까.

이대근 : 이회창 후보의 등장으로 범여권에 유리하게 됐는가는 불분명하다. 이명박과 정동영의 대결이 아니라, 이명박과 이회창의 대결, 어떤 보수냐의 대결로 갈 수 있다. 두 후보의 지지율이 60%를 넘었다. 노무현과 노무현을 계승하는 세력은 사람들 관심 밖이라는 얘기다. 범여권은 부패 대 반부패, 미래세력 대 과거 세력과 같은 몇 가지 대선 구도를 만들려고 하지만 정권교체 대 정권계승, 과거세력 대 미래세력, 노무현 세력 대 반대세력, 말 잘하는 세력 대 일 잘하는 세력, 국정파탄세력 대 국정안정세력, 무능한 세력 대 유능한 세력, 이렇게 이명박 후보가 내세우는 이슈와 대립구도가 훨씬 더 잘 먹힌다.

"범여권 단일화, 시너지 효과 어렵다"

프레시안 : 범여권 후보들의 단일화 논의가 급류를 타고 있다. 단일화는 어떤 조건에서 가능하다고 보는지, 단일화가 이뤄지는 경우 그 파괴력은 어느 정도로 예상하는지 궁금하다.

이대근 : 범여권 문제를 단일화 중심으로 보는 것 자체가 문제다. 지금 범여권 지지율이 낮은 게 단일화가 안 되어 있어서라면 단일화의 필요성이 높아지겠지만 그게 아니다. 지금 단일화는 지난 2002년 후보 단일화와 다르다. 군소후보 연합이다. 외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 '저건 뭐 조무래기들 모아놓은 거네' 하는 느낌을 줄 수 있다.

정상적으로 단일화를 하려면 노선과 정책을 따져야 한다. 그러나 그럴 때는 지났다. 이제 시간도 없고 관심 가질 사람도 없다.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단일화를 할 수는 있지만, 그게 전환의 계기가 될지는 불확실하다. 자리와 지분을 나누는 밀실야합을 한다든지, 사기도박 하듯이 여론조사 식으로 하면 지푸라기를 잡는 게 아니라 지푸라기에 걸려 넘어지는 상황이 올 수 있다.

프레시안 : 세 후보의 지지율을 단순 합산하는 것 외에 단일화에 따른 기대효과가 불분명해 보인다.

이대근 : 장점을 갖고 있는 걸 모아서 시너지를 내자는 게 후보단일화의 의도인데 지금은 단점이 큰 후보 셋을 모으는 거다. 정동영 후보는 정체성이 불분명하다. 상황에 따라 입장이 수시로 바뀐다. 도대체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이인제 후보는 경선불복으로 한국정치를 후퇴시킨 장본인이다. 문국현 후보는 정당배경이 없고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검증되지 않은 개인이다. 이 불확실하고 단점 있는 셋을 결합시켜 시너지 효과를 낸다는 건 기대하기 어렵다.

프레시안 : 이번에도 비판적 지지론이 나왔다. 일부 지식인들은 '민주노동당 표는 사표'라는 주장을 하며 결국 범여권 후보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말한다.

이대근 : 민주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황당한 주장이다. 자신이 선택한 가치에 대한 평가는 남이 하는 게 아니다. 유권자 개개인의 권리다. 만약 투표권의 행사라는 게 반드시 당선돼야 한다는 걸 전제로 하는 것이라면 (비판적 지지론은) 맞는 얘기다. 그러나 표도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당선만을 위한 게 아니다. 당선자를 견제하라는 의미도 있는 거다. 견제도 왼쪽에서 하느냐, 오른쪽에서 하느냐가 다르다. 이런 것들이 국가를 운영하는 구성 요인이 되는 거다. 당선되는 것 하나만 가치가 있고 나머지는 가치가 없다는 것은 민주사회에서 통용될 수 없는 주장이다. 그건 선거행위 자체를 부정하는 거다.

"盧, 관료체계의 포로 됐다"
▲ ⓒ프레시안

프레시안 : 이 에디터는 칼럼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통합신당'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먼저 현 정권의 공과가 뭔지 짚어 달라.

이대근 : 공이 많지는 않다. 비주류가 집권했다는 것이 제일 크다. 또 권력집중을 완화시켰다. 그리고 돈 없는 선거 등 정치개혁을 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정부 업무처리 혁신은 공이었다고 생각한다.

잘못은 크게 네 가지다. 먼저 개혁진영의 지지기반을 붕괴시키고 해체시켰다. 노 대통령의 구체적인 정책은 진보나 개혁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그런데도 진보나 개혁이라는 수사를 계속 사용함으로써 현 정권의 실정이 마치 진보개혁이라는 가치를 추구한 데 따른 것으로 오인됐다. 진보나 개혁이 낡은 가치인 것으로 비춰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신자유주의를 전면 도입했다. 한국사회에 완고하게 있는 게 시장주의인데 이걸 확산시켰다. 또 분열과 대립, 갈등을 조장했다. 개혁세력이라도 결집시켜서 새로운 변화의 동력으로 만들어야 했는데, 그 내부조차 분열시켰다.

끝으로 전혀 준비 없이 대통령이 됨으로써 거대한 관료체계의 포로가 됐다. 정책 관료주권의 시대로 역전시켰다. 관료가 결정하면, 정부가 정부정책으로 만들고, 대통령이 자기노선으로 확정해서 국회로 넘기고, 국회에서 뚝딱 처리해서 시민에게 던져주는 식이었다. 관료들은 기술자이지 정책결정자가 아닌데, 현 정권에서는 관료가 정책결정자가 돼버렸다. 시민이나 국회는 정책의 집행 대상으로 전락했다.

프레시안 : 현 정권의 대표적인 실정을 들라면.

이대근 : 한미 FTA다. 사회적 합의가 되어 있지 않았다. 대통령이 처음부터 준비해온 것도 아니었다. 그것이 가져올 사회적 분열과 파장, 우리사회에 미칠 영향, 이런 수많은 문제들에 대한 검토와 준비 없이 단기간에 대통령의 권력 하나로 밀어붙였다.

프레시안 : 노무현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편의적으로 '원칙'과 '소신'을 뒤집는 정치인으로 묘사한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이대근 : 노 대통령이 원칙과 소신의 사나이라고 했던 건 대통령 되기 이전이다. 국가의 운영을 맡기 전까지는 원칙과 소신을 일관되게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국가의 운영을 맡는 위치로 들어오면 달라진다. 원칙을 어떻게 실행해야 될지에 대한 면밀한 준비와 꾸준한 노력이 없으면 실행할 수 없다.

노 대통령 역시 그것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게 드러난 것이다. 원칙은 말로만 있었을 뿐, 그것을 국가운영에 어떻게 적용할지에 대한 준비는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관료들에게 휩쓸리고 그 때 그 때 보이는 문제에 대처하는 데 급급하다 보니까 이리 가고 저리 가고 한 것이다. 원칙과 원칙에 따른 노선, 그리고 프로그램이 있었다면 모든 행보 하나하나가 착착 준비되고 그것들 간에 보조가 맞춰져 있었을 텐데, 그게 없다 보니까 어젠다가 불쑥불쑥 튀어 나오는 거다. 하나의 어젠다에 매달렸다가 그게 사라지면 새로운 걸 찾아서 매달리고 하는 게 반복돼 왔다.

대통령은 "그게 뭐가 중요하냐, 좌파건 신자유주의건 모두에게 좋으면 좋은 것 아니냐"는 건데, 그 어젠더들 간에 서로 충돌하는 요인이 있다는 건 보지 못한다. 여기에 노 대통령 특유의 독선이나 오만, 여전한 비주류의식이 더해졌다. 대통령에게 설득과 대화의 수단이 얼마나 많나. 그런데도 불구하고 비주류라는 생각만 갖고 있었다. 설득할 수 있는 수단과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프레시안 : 노 대통령이 관료들에게 휘둘렸다고 했는데, 노 대통령이 국민들과 커뮤니케이션하는 방식은 굉장히 공격적이었다.

이대근 : 노 대통령을 토론의 달인이라고 한다. 그러나 토론이라는 건 설득의 기술이다. 노 대통령에겐 그게 전혀 없었다. 말을 위한 말이었다. 자아가 굉장히 강한 사람이라서 자기의 고집과 아집을 표현하는 데는 능하지만 자기의 정책을 설득해서 필요성을 인정하게 하고 집행하는 능력은 없었던 거다.

"정동영, 盧 대통령과 뭐가 같고 뭐가 다른가"
▲ ⓒ프레시안

프레시안 : 열린우리당 해체부터 통합신당을 만들기까지의 과정에 대해 일관되게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다. 정체성에 대한 고민 없이 숫자놀음만 하고 있다는 게 비판의 요지 같은데, 이른바 범여권의 정체성이 뭐가 돼야 한다고 보나.

이대근 : 그건 내가 답할 바가 아니다. 범여권 스스로 얘기해야 하는 것이다. 그들이 얘기를 안 하니까 '너는 누구냐'고 묻게 되는 것이다. 자기 스스로 정의를 해야 하는데 안 했다. 얼마 전부터 선거가 본격화되니까 이런 저런 주장을 하고 있는데, 선거를 앞두고 주장하는 건 사람들이 안 믿는다. 정체성은 진짜 가지고 있어야 사람들이 믿는 거다. 일시적인 선거전술은 진정성도 없고 사람들에게 인식시키기도 어렵다.

무엇보다 노 대통령과의 관계가 불분명하다. 공과를 계승하겠다고 한다. 그럼 뭐가 공이고 과인지, 노 대통령하고 뭐가 같고 다른지 분명하게 제시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 어제(11월 7일) 관훈토론에서 정동영 후보가 노 대통령과의 관계를 설명한 게 있다. '철학과 뿌리는 같다, 그러나 실행방법과 정치방식은 다르게 하겠다'는 것이다. 철학과 뿌리가 같으면 같은 것 아닌가, 사람들은 그렇게 본다. 노 대통령이 하던 것처럼 하겠구나, 이렇게 생각한다. 정 후보는 실행과 정치방식은 달리 하겠다고 했지만 뭐가 달라질 것인지 막연하다.

프레시안 : 이 에디터가 범여권을 보는 시각은 대단히 신랄하고, 때론 글에서 '분노' 같은 게 느껴진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또 직설적인 화법이 부담스럽지는 않은지, 비판을 받는 당사자들의 반응은 어떤지 궁금하다.

이대근 : 자신들에 대해 분노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범여권으로선 행복한 거다. 지금 범여권은 사람들에게 분노할 대상도 못된다. 잊혀져가고 있고 관심도 없다. 내가 범여권을 강도 높게 비판한다고 하지만, 일반 시민들 마음속에 있는 것을 바로 끄집어낸다면, 내 비판은 그것의 천만분의 일도 반영하지 못하는 거라고 본다. 그렇게 비판을 받아야 마땅하다. 그렇게 비판을 받아도 정신이 들까 말까한 지경에 있지 않나 생각한다. 반응? 간접적으로 듣는다. '한숨 쉬더라'는 얘기도 들리고.

프레시안 : 우리 정치에서는 왜 '정체성', '일관성', '원칙' 같은 가치들이 지켜지지 않을까. 어떤 구조적인 요인이 있는 건 아닌가.

이대근 : 정당의 구조가 문제다. 민주당에 있건, 신당에 있건, 문국현 당에 있건, 다 비슷비슷하다. 예를 들어 김한길 같은 사람은 당을 만들고 없애고 해서 여러 군데 다녔는데, 그 당들이 아무런 차이가 없다. 사회의 균열이 정당에 반영되지 않는 것이다. 정당들이 사회의 다양한 이익을 대표하는 게 아니라 보수정당이 전부를 다 대표하다 보니까 그 안에서 이리 옮기고 저리 옮긴들 별 차이가 없다. 이 쪽 저 쪽의 경계선 자체가 없으니까 정체성을 굳이 따질 필요도 없고, 일관성을 따질 것도 없게 되는 것이다.

레토릭이 된 '진보'
▲ ⓒ프레시안

프레시안 : <경향신문>이 지난해 '진보개혁의 위기'를 기획해서 커다란 반향을 얻었다. 이 에디터께서 그 기획을 총괄했는데, 기획의 배경이 뭐였나.

이대근 : 직접적 배경은 지난해 5.31 지방선거다. '반(反) 노무현 광풍'이랄까, "노무현이 아니면 누구라도 찍어준다"는 '묻지마 투표'가 나타났다. 당시 한나라당 사정이 어땠나. 공천비리 등 한국 정치의 온갖 나쁜 행태가 다 드러났다. 한나라당에 지방자치를 맡기면 나라가 절단날 것 같은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한나라당에 표를 다 몰아줬다. "노무현 정부를 심판하는 게 우선이다, 심판의 결과로 부작용과 문제점이 노출되더라도 우선 노 정부를 심판해야 된다"는 '눈 먼 심판론'이었다. 노무현 정부가 어쩌다 이렇게 몰락했나, 단순히 노무현 정부의 몰락뿐만 아니라 진보세력 전체가 동반 몰락하는 일이 왜 일어났나, 한 때 한국사회의 희망이었던 민주화운동세력이 왜 이렇게 처참하게 몰락했나를 알아보자는 게 취지였다.

프레시안 : '진보'는 인기 없는 정치상품이 됐다. 사람들은 더 이상 '진보'를 신뢰하지 않는다. 외려 낡은 것으로 보기도 한다. 뭐가 잘못된 건가.

이대근 : 노 대통령이 솔직하게 "나는 보수주의자다", "신자유주의 개혁을 하고 있다", "내가 추구했던 진보적 가치는 국가 운영에서 실현될 수 없다"는 등 이런 것을 분명히 하고 시작했으면 됐는데, 거듭되는 실정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진보와 개혁의 슬로건을 끌어들였다. 왜? 그 때만 해도 진보는 아직 참신하고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기의 실정을 "좋은 것을 하려고 한다"는 의도로 덮으려고 '진보' 수사를 동원했다. 그게 사람들 사이에서 혼란을 불러일으켰다. 현 정부가 진보와 개혁을 추진한 것으로 오인됐고, 그 결과 '진보=실정'이라는 등식이 성립됐다.

"범여권, 기둥뿌리가 썩었다"

프레시안 : 범여권에 '미래가 있는 패배', '올바른 패배'를 주문했다. 어떤 의미인가.

이대근 : 이번 대선에서 이기려고 단기의 수를 쓰는 건 맞지 않다고 본다. 외려 부정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이회창 후보의 등장 이후 범한나라당의 지지율이 60% 넘게 나타나고 있다. 이건 한 마디로 "노무현은 절대 안 된다"는 의미다. 5.31 지방선거의 재판이다. 노무현 정부와 함께 했거나, 노무현 정부와 관계가 있거나, 암튼 '노'자 들어가는 건 절대 안 찍겠다는 국민적 합의가 되어 있다.

이런 엄중한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범여권은) 이미 패배했다. 선거 결과와 상관없이 이미 패배했다. 그걸 인정하고 이번 선거를 바라봐야 한다. 단기간에 기교를 부리고, 슬로건을 바꾸고, 이미지 개선해서 이겨보려고 한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설혹 이긴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범여권이 이길 수 있는 환경은 이미 끝났다고 생각한다. 올바로 져야 한다. 그러나 올바로 지기 위한 시간도 없고 기회도 놓쳤다. 신당 만드는 과정에 많은 문제가 있었다. 경선 과정도 정상적이지 않았다. 정동영 후보 선출되고 나서도 문제를 다 정리하지 못했다. 제대로 하려면 먼저 노무현 정부를 냉정하게 평가하고, 실패의 원인이 뭔지 반성하고, 무엇을 고쳐야 되고 무엇을 새로 준비해야 되는지를 제시하고, 그를 실행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논의하고 정당을 만들고, 그 노선과 원칙에 맞는 후보를 선출하고, 그 후보가 노선을 일관되게 주장하고 했어야 한다. 그랬다면 올바른 패배의 길로 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전혀 그 방향으로 가지 못했다. '무조건 뭉치자'고 몸집불리기를 했다. 그 결과 실질적으로 바뀐 게 없는, 기득권 세력의 이름만 바뀐 정당이 됐다.

이런 상태에서 선거에서 패배한다면 기둥부터 무너지게 된다. 패배해도 붙잡고 일어날 기둥이 있어야 하는데, 기둥뿌리가 썩어있기 때문에 붙잡고 일어날 여력도 없게 되는 것이다. 대선 끝나고 나면 인책론이 나올 텐데, 총선 앞두고 "위기다, 똘똘 뭉치자"고 하면서 대충 선거 치르려고 하면 또 다른 패배로 이어질 수 있다. (범여권은) '다음을 준비하는 패배'도 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프레시안 : '진보개혁' 세력에겐 암울한 정세가 예고되고 있다. 총선 이후 정치구도를 어떻게 전망하나.

이대근 : 대선이 끝나고 바로 총선이 이어진다. 총선은 대선 결과의 영향이 남아있을 때 치러진다. 새로 된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분위기가 남아 있을 가능성이 많고, 신당은 대패할 가능성이 많다. 대통령과 의회를 한 당이 장악하게 되면 국정운영의 장악력을 확고하게 가질 수 있는 장점도 있는 반면 견제할 세력이 없는 데 따른 다른 문제가 나올 수 있다. 신당이 패배하는 방식은, 그것이 한국 정치에 미칠 파장을 생각하면, 신당만의 문제가 아니다.

프레시안 : 좋은 면에서건 나쁜 면에서건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의 덕목'에 대해 전례 없이 풍부한 성찰의 경험을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다음 정권의 대통령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무엇이라고 보나.

이대근 : 이미 합의가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국정을 운영하는 기본적인 태도의 문제다. 분열과 대립, 갈등형에서 설득과 대화형으로 전환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우리 사회는 세대와 이념, 지역으로 분열되어 있다. 대립과 갈등을 치유해야 하는데, 노 대통령은 외려 대립 상황을 이용했다. 대립과 분열을 조장했다. 그럼으로써 자신의 실정은 능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자신이 비주류이고 힘이 없는 탓이라고, 사회적인 구조 탓이라고 변명했다. 미국 대통령을 제왕적 대통령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더 하다. 대통령이 올바로만 한다면 동원할 수 있는 자원과 수단은 많다. 대통령에겐 특히 '말'이라는 중요한 수단이 있다. 대통령의 '말'은 시민적 동의와 합의를 이끌어내는 굉장히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오히려 분열과 갈등을 촉발시키고 분쟁을 확산시킨 진원지로 잘못 활용됐다.

민노당은 왜 엘리트들만의 정당이 됐나
▲ ⓒ프레시안

프레시안 : 이 에디터께서는 영화 '괴물'을 다룬 한 칼럼에서 "삶을 왜곡하고 파괴하는 사회적 모순에 맞선 일상적인 투쟁만이 자기의 삶을 개선시킬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사회적 모순이 깊어질수록 사람들은 '패자'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이고, 그 결과는 '일상적인 투쟁'보다는 계층상승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기 위한 절망적인 노력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이런 '처지'와 '의식'의 분리가 왜곡된 정치적 선택을 불러온다는 지적도 있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필요한 건 뭔가.

이대근 : 일상적인 투쟁이라는 용어를 썼는데, 쉽게 말하면 작은 실천이다. 우리는 항상 거창한 것을 말한다. 거대담론에 쉽게 빠진다. 그게 편하다. "정치판 다 갈아엎어야 돼", "대통령 갈아야 돼", "전부 다 고쳐야 돼" 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잘못하고 있는 것, 자신의 눈앞에 있는 잘못은 안 본다. 작은 실천을 할 필요가 있다. 풀뿌리 운동, 지방자치 공동체 운동 같은 것을 통해 작은 변화를 만들고, 그 변화에 대한 성공과 만족이 또 다른 변화의 동력이 되는 선순환이 필요하다. '처지'와 '의식'의 분리를 말한다. 강남 사람은 계급적으로 생각하는데, 강북 사람은 자기 계급을 배반한다고 한다. 거창한 얘기에 빠지면 결국 다 똑같은 얘기를 하게 된다. 강남 사람이나 강북 사람이나 똑같이 하는 얘기가 된다. 그런데 강남 사람이 해야 할 일과 강북 사람이 할 일은 다르지 않나. 이런 차이는 자기 주변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깨닫게 되지 않을까.

프레시안 : 가장 서민적이라고 자부하는 민주노동당이 고전하고 있다.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이대근 : 민주노동당은 새로운 세대에 맞는 진보적 가치를 전혀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 진보가 뭔지 알고는 있나, 이런 생각도 든다. 특히 민족자주파니 하는 세력이 다수파를 차지하면서 시대착오적인 이념과 노선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자기가 대표해야 할 노동자, 서민이 무엇을 갖고 고민하며 고통 받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하면서 선언적으로 과거 세대의 낡은 가치를 강요하고 주입하려고 한다.

민주노동당이 왜 엘리트의 지지정당이 됐나. 왜 노동자의 지지정당이 안 됐는가. 단순하다. 노동자의 관심사와 이익을 전혀 대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권영길 후보가 경선에서 지명되고 맨 처음 내세운 구호가 "코리아 연방공화국을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지금 노동자 입장에서 보면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로 들리지 않겠나. 당장 내가 잘릴지 모르고, 저임금에 우유 값, 사교육비로 고통 받고 있는데, '코리아 연방공화국'을 만들어주겠다니 이게 무슨 서민들을 위한 건가. 기층과 괴리된 운동권 일부의 '쑥덕공론'의 결과가 아닌가. 이번 선거에서 민노당이 고전하는 건, 물론 진보정당이 처한 열악한 조건 탓도 있겠지만, 서민들이 가장 아파하고 관심 갖는 것을 내세우지 못하기 때문이다.

프레시안 : 오랜 시간 말씀 감사하다. //정제혁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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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엥란트


조봉암 진보당 학살은 헌정사상 대사건
<조봉암의 진보당>은 오늘의 양극화 사회를 막기 위한 '선각자의 예언'
 
김영국
조선일보·경향·민노당 한목소리, '조봉암 명예회복 서둘러라'

"조봉암은 한국에서 처음 '사회민주주의' 이념을 추구했던 정치인이다. 그는 전향 후 공산독재에 철저하고 분명하게 반대했다. 이런 인물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만든 것은 한국 현대사의 그늘이다. 정부는 재심 청구와 독립유공자 선정 등 후속 조치를 서둘러야 한다."(조선일보 2007.9.29일자 사설 '조봉암(曺奉岩)'의 결론)

"우리는 항일독립투사 출신의 진보적 정치인에게 씌어진 불명예가 비록 반세기가 지난 지금에서나마 벗겨진 데 대해 진심으로 환영한다. 아울러 기나긴 세월 동안 ‘빨갱이 가족’의 멍에 속에서도 죽산의 명예회복과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해 싸워온 유족들과 관련 단체들의 눈물겨운 노력에도 거듭 경의를 표한다. 진실화해위의 권고대로 국가는 손해배상 등을 통해 죽산의 유족들이 감내해야 했던 고통을 어루만져야 할 것이다."(경향신문 2007.9.29일자 사설)

"1959년 조봉암 선생의 사형이 집행된 지 48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긴 세월 우리는 평화통일을 주장하면 국가에 의해 처형된다는 웃기지도 않는 판결을 안고 살아왔던 것이다. 그토록 오랜 세월을 '사회민주적 정책'을 말한다는 이유로 빨갱이로 처단되는 어처구니 없는 국가 폭력을 인정하며 살아왔던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진실화해위원회의 결정을 진심으로 환영하며, 정부가 그 권고사항을 즉각적이고 성실한 자세로 따르기를 촉구한다. 그리고 많은 괴로움이 있었겠지만 아버님의 길을 항상 자랑스러워했던 유가족께도 민주노동당의 기쁨을 함께 전해 드린다."(민주노동당 2007.9.28일자 대변인 논평)

한 '진보 정치인'의 명예회복을 놓고 반공·보수의 아성인 조선일보와 진보·개혁신문의 대표 주자인 경향신문, 그리고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이 이렇게 '좌우합작'하여 한목소리로 고무·찬양하는 경사스런(?) 일이 오늘(29일) 벌어졌다.

"조선일보가 왠 일로...", "도대체 우리 역사 속에서 '조봉암의 진보당'이 무엇이길래..." 모처럼 벌어진 스스러운 광경에 뜨악한 사람들의 반응이다.

<조봉암의 진보당>이 '얼마나 대단하길래'

죽산(竹山) 조봉암과 진보당은 우리 사회의 경제체제로서 '사회민주주의'를, 통일 방안으로는 북진통일이 아닌 '평화통일'을 기치로 내걸고, 1956년 5월 15일 제3대 대통령선거에 도전하여 무려 216만여 표를 획득하는 돌풍을 일으키며 반공보수·독재자 이승만의 간담을 서늘케한 명실상부한 '진보적 정치세력'이었다.

특히 조봉암의 216만여 표는 당시 같은 야당이었던 민주당이 조봉암의 좌파 성향을 문제 삼아 야권 연합 운동을 접고 지지자들을 향해 무효표가 될 '신익희 추모표'를 유도하는 등 비열한 정치행보를 보임으로써 무려 185만여 표에 이르는 무효표가 발생한 가운데 거둔 성과였기에 더욱 의미가 컷다.

그러나 바로 이 때문에 조봉암과 진보당 인사들은 대선 결과에 위기 의식을 느낀 독재자 이승만으로부터 무자비한 정치 탄압을 받았고, 결국 조봉암은 1959년 7월 31일 무고하게 간첩 혐의를 뒤집어쓴 채 처형되고 진보당은 해체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비극을 맞게 됐다.

이에 대해 지난 9월 27일 국가기관인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약칭 진실화해위원회)는 <진보당의 조봉암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 작업의 결과와 결정문을 발표했다.

이날 발표에서 진실화해위원회는 진보당 조봉암의 처형 사건에 대해 "‘평화통일’을 주장하는 조봉암이 1956년 5.15 대통령선거에서 200여만 표 이상을 얻어 이승만 정권에 위협적인 정치인으로 부상하자, 조봉암이 이끄는 진보당의 1958년 5월 민의원 총선 진출을 막고 조봉암을 제거하려는 이승만 정권의 의도가 작용하여 서울시경이 조봉암 등 간부들을 국가변란 혐의로 체포하여 조사하였고, 민간인에 대한 수사권이 없는 육군 특무대가 조봉암을 간첩 혐의로 수사에 나서 재판을 통해 처형에 이르게 한 것으로 인정되는 비인도적, 반인권적 인권유린이자 정치탄압 사건이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에 따라 진실화해위원회는 국가에게 피해자와 유가족에 대한 총체적인 사과와 피해 구제, 명예회복을 위한 재심 등 상응한 조치, 조봉암의 독립유공자 인정 등을 권고했다.

<조봉암 진보당>의 타살 그 후 '비정한 대한민국'

독립운동가이자 역사학자인 단재 신채호는 고려 후기 묘청의 서경 천도 좌절을 "조선역사상 일천년 이래 제일대사건"이라고 규정했다.

신채호는 묘청의 자주파와 김부식의 사대파와의 싸움에서 김부식 파의 승리와 묘청의 좌절을 두고 '한국 정신사상 최대의 비극'이라고 했다. 즉, 단재는 사대파의 승리 이후 중국 문화에 대한 무조건적인 숭배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고 본 것이다.

단재의 이 비판은 조봉암 진보당의 좌절과 관련하여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공판정에 앉아 있는 '진보당 사건' 관련 피고인들. 맨 앞이 이승만에 의해 사형선고를 받은 죽산 조봉암 선생     © 민주화운동기념자료
조봉암의 진보당에 대한 사법살인 이후 한국 사회는 친미사대주의 세력이 우리 사회에 주류를 차지했고, 야당 또한 개량적 보수정치인들에 의해 주도돼왔다. 그 결과 오늘날 약육강식의 시장만능주의가 판을 치는 극단적 신자유주의 체제 하에서 민중들은 날로 심각해지는 양극화의 고통을 고스란히 떠안고 살아가는 참담한 현실로 이어지고 있다.

진보당 타살 이후 한국의 진보정치 운동사 또한 일제-친일파, 미제국주의-친미파로 이어지는 지배세력의 탄압에 맞서 민중의 권리를 찾고 새 세상을 만들기 위해 투쟁했던 고난의 행군이었다. 2007년 오늘도 이 땅의 진보 세력은 신자유주의 보수 독점 체제라는 또 다른 거센 도전을 만나 진보좌파의 가치는 대중들로부터 외면받고, 진보 운동은 침체 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가히 조봉암 진보당의 학살은 '대한민국 헌정사상 일대 사건이요, 현대 정신사상 최대의 비극'이라 할 만하다.

이 사건은 우리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수 있었던, 헌정사상 최초이자 가장 유력했던 '진보정당'이 그 싹을 틔워보기도 전에 반공 주류 세력에 의해 무참히 짓밟힌 채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진 대사건이었다.

<조봉암 진보당>의 가치와 대안들, '2007년에 살아 숨쉬다'

조봉암의 진보당은 사라졌지만, 그들이 꿈꾸었던 세상마저 '은사죽음'한 건 아니다.

무엇보다 조봉암의 진보당이 1956년에 내세웠던 '진보좌파'적 기치(旗幟)와 대안들이 마치 약육강식의 신자유주의 경제체제 하에서 심각한 양극화로 고통받고 있는 오늘의 서민대중들을 구하기 위한 '선각자의 예언'과도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래서 조봉암 진보당의 좌절이 더욱 안타깝게 다가온다.

지난 27일 진실화해위원회가 밝힌, 조봉암의 진보당이 1955년 12월 22일 발표한 창당 발기취지문과 강령초안을 살펴보면 그 안타까움은 더욱 확연해진다.

진보당은 <발기취지문>에서 "민주책임정치, 대중 본위의 균형 있는 경제체제, 국민대중의 토대 위에 선 신당"을 표방하고, <강령>으로 1. 공산독재는 물론 자본가와 부패분자의 독재도 이를 배격하고 민주주의 체제를 확립하여 '책임있는 혁신정치'의 실현, 2. '생산분배의 합리적 통제'로 민족자본의 육성, 3. 민주우방과 제휴하여 민주세력이 결정적 승리를 얻을 수 있는 조국통일의 실현, 4. 교육체제를 혁신하여 '국가보장제'를 수립 등을 내세웠다.

진실화해위원회는 또 진보당 창당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진보당이 “우리는 노동자 농민을 중심으로 하는 광범한 근로대중을 대표하는 주체적 선도적 정치적 집결체이며 변혁적 세력의 적극적 실천에 의하여 자본주의를 지양하고 '착취 없는 복지사회'를 건설하여야 한다”, “우리는 자유민주주의를 폐기·지양하고 주요 산업과 대기업의 국유 내지 국영을 위시로 급속한 경제건설, 사회적 생산력의 제고 및 사회적 생산물의 '공정 분배'를 완수하기 위하여 계획과 통제의 제원칙을 실천하여야 한다”, “우리는 남북한에서 평화통일을 저해하는 요소를 견제하고 진보당 세력의 주권 장악 하에 '피흘리지 않는 평화적 한국통일'을 실현한다”는 등의 강령·정책을 채택하고 있는바, 이는 헌법이 허용하는 합법적 범위에 속한다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고, 평화통일에 관한 주장·논의 또한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표현의 자유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인정된다.>

물론 조봉암의 진보당 노선이 중증 상태인 2007년의 대한민국을 치유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일 수는 없다. 그러나 곱씹어보면 볼수록 오늘의 시대상황을 정확히 예측하고 그 대안을 미리 마련코자 한 '선각자의 예지(銳智)'마저 느껴진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조봉암의 진보당이 1956년 당시처럼 야당의 주도세력으로 굳건하게 자리잡고 오늘날까지 면면히 이어져왔다면 우리 사회는 지금쯤 어떻게 달라졌을까.

최소한 지금과 같은 '정글 법칙'만이 최고의 이데올로기가 되어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비정한 사회'는 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진한 아쉬움과 함께 기나긴 세월 동안 '빨갱이 가족'의 멍에 속에서도 죽산 조봉암의 명예회복과 진상규명을 위해 싸워온 유족들과 관련 단체들의 눈물겨운 노력에 '진보와 정론'의 인터넷신문인 <대자보>도 거듭 경의를 표한다.

아울러 제대로 된 진보·개혁 정당이 이 땅에 견실(堅實)하게 자라나 서민대중들이 극심한 양극화의 고통 속에서 하루속히 벗어나고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 오기를 기원한다.

아래는 지난 27일 진실화해위원회가 발표한 <진보당 조봉암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 작업의 '결정문 전문'이다. / 편집위원

◆ ‘진보당 조봉암 사건’ 진실규명 결정 ◆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송기인, 공식약칭 진실화해위원회)는 지난 18일 제54차 전원위원회 회의에서 국가변란 목적의 진보당 창당 및 간첩혐의로 사형이 집행된 ‘진보당 조봉암 사건’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진보당 조봉암 사건 결정요지

Ⅰ. 사건의 개요

조봉암(曺奉岩)은 1952. 8. 5. 제2대 대통령선거에서 80여만 표, 1956. 5. 15. 제3대 대통령선거에서 216여만 표라는 광범위한 지지를 얻었다. 그 후 진보당이 1956. 11. 10. 창당되어 조봉암이 위원장으로 취임하였다.

서울시경은 남파공작원들을 대상으로 진보당의 정강정책, 특히 평화통일론 노선의 이적성에 대한 내사를 벌인 다음 1958년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1. 13. 조봉암 등 진보당 간부들을 국가변란 혐의로 전격적으로 체포하고, 공보부장관은 2. 25. 진보당의 정당등록을 취소하였다.

다른 한편으로 육군 특무대는 그해 2. 8. HID 공작요원으로 남북교역을 하던 양이섭을 연행하여 여관 등에 불법감금한 상태에서 북한의 지령 및 자금을 조봉암에게 전달하였다는 혐의에 대해 조사를 벌였다. 조봉암은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였음에도 특무대는 양이섭으로부터 자백을 받아 양이섭과 조봉암을 간첩죄로 검찰에 송치하였다.

검찰은 조봉암 등 진보당 간부들에 대하여 국가변란 혐의로 2. 8. 및 2. 17. 2차례에 걸쳐 기소1)하였고, 양이섭과 조봉암에 대해 간첩 혐의로 4. 3. 및 4. 8. 2차례에 걸쳐 기소2)를 하였다.

※ 1) 국가보안법 제1조 정부를 참칭하거나 변란을 야기할 목적으로 결사 또는 집단을 조직한 자 또는 그 결사 또는 집단에 있어서 그 목적수행을 위한 행위를 한 자는 좌에 의하여 처단한다.
1. 수괴간부는 사형 또는 무기징역에 처한다.
2. 지도적 임무에 종사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3. 결사 또는 집단에 가입하여 그 목적수행을 위한 행위를 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4. 정을 알고 결사 또는 집단에 가입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전항의 결사 또는 집단의 지령이나 전항의 목적을 지원할 목적으로서 살인, 방화 또는 건조물, 운수, 통신기관과 기타 중요시설의 파괴를 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2) 형법 제98조 (간첩) ①적국을 위하여 간첩하거나 적국의 간첩을 방조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1심인 서울형사지방법원(이하 서울지법이라 한다)은 양 사건을 병합, 심리한 다음 1958. 7. 2. 조봉암 등 진보당 간부들의 국가변란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였고, 조봉암과 양이섭의 간첩 혐의에 대해 간첩죄가 아니라 국가보안법 제3조를 적용, 각각 징역 5년을 선고3)하였다.

※ 3) 국가보안법 제3조 전2조의 결사 또는 집단의 지령이나 전2조의 목적을 지원할 목적으로서 그 목적사항의 실행을 협의, 선동 또는 선전하거나 그 목적수행을 위한 행위를 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2심인 서울고등법원(이하 서울고법이라 한다)은 1958. 10. 25. 양 사건에 대하여 모두 유죄를 인정, 조봉암, 양이섭에게 각 사형을 선고하고, 진보당 간부들에게는 징역 2년 내지 3년을 선고하였다.

3심인 대법원은 1959. 2. 27. 조봉암의 간첩 및 국가변란 혐의, 양이섭의 간첩 혐의에 대해 모두 유죄로 인정하여 각 사형을 확정하였다. 다만, 진보당 간부들에게는 국가변란의 인식이 없었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하였다.

조봉암은 재심을 청구하였으나, 대법원은 1959. 7. 30. 기각하였다. 이승만 정부는 재심결정을 하기 전날 양이섭에 대한 사형을, 재심청구를 기각한 다음날 조봉암에 대한 사형을 각 집행하였다.

신청인 조호정(조봉암의 장녀)은 2006. 7. 4.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원회라 한다)에 진실규명을 신청하였다.

Ⅱ. 조사결과

1. 사건의 배경


1950년대 분단 및 전쟁으로 인한 수많은 인명살상과 재산파괴, 반공체제 강화로 인해 한국 정치의 폭은 크게 축소되었으나, 전쟁 직전에 실시된 5·30선거에서 대중적 영향력이 큰 중도파 인사들이 대거 당선됨으로써 정당정치를 통한 의회민주주의를 구현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1951년 아직 전쟁 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각 정치세력은 자신의 세력 강화를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였다. 그 움직임의 구체적 양태는 대체로 세 갈래의 정당조직 활동으로 나타난바4), 그 한 갈래에 초대 농림부장관이었던 조봉암이 있었다.

※ 4) 하나는 국회 내에서 다수파인 공화민정회 소속 의원 중심으로 신당조직 작업이 추진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승만의 신당조직 성명 발표로 원외자유당이 탄생한 것이다.

조봉암은 국회부의장 당시 비서였던 이영근을 ‘신당준비사무국’의 책임자로 하여 여러 세력을 포섭해 갔다. 조봉암의 신당 구상은 상당히 규모가 있었고 조직이나 표방논리에서 짜임새가 갖추어졌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창당 작업은 불발되었다. 이승만 정권의 탄압으로 신당 조직의 기반이었던 농민회의가 무력화되고, 1951. 12. 초 신당준비사무국 책임자 이영근이 체포된 데 이어 관계자 50여 명이 육군특무대에 연행되고 9명이 기소되는 ‘대남간첩단 사건’ 5)때문이었다.

※ 5) 당시 이영근 등 3명은 사형, 3명은 무기, 나머지 피고들에게는 5~10년의 중형이 구형되었으나, 부산지방법원에서 전원 무죄판결을 받았다.

조봉암은 이듬해 8·5정부통령선거에 대통령후보로 출마하였다. 1952. 8. 4.자 일간신문 광고에 실린 조봉암 후보의 제1 정강은 “계급독재사상을 배격한다. 공산당 독재도 자본가와 부패분자의 독재도 강고히 반대하고 민주주의체제를 확립하려 한다.”는 것이었다. 개표 결과 유효득표 7,020,684표 가운데 797,504표를 얻어 이승만(5,238,769표)에 이어 2위가 되었다.

조봉암은 이 선거를 통해 확인, 규합된 지지세력을 기반으로 다시 진보적 대중정당을 만들고자 하였다. 그러나 두번째 신당 구상도 실패로 끝났다. 그의 대통령선거 사무차장이었던 김성주가 1953. 6. 25. 헌병총사령부에 연행되어 9월 군법회의에 회부되었고, 재판이 진행되던 중인 1954. 4. 16. 처형되었다.

조봉암은 1954. 5. 20. 민의원 총선을 앞둔 시점에 자신의 정치활동 기본노선을 밝히는 「우리의 당면과업」을 집필함으로써 정치설계를 구상하였다. 그러나, 5·20선거에서 출마 자체를 원천봉쇄 당하였다. 인천에서는 입후보 등록을 하러 가던 도중에 서류를 탈취당하고, 부산에서도 등록 실패하고, 등록 마감일에 겨우 서울 서대문구에 제출하였으나 추천인 서류 미비를 이유로 반려되었던 것이다.

한동안 조봉암은 은둔생활에 들어가는 듯하였으나, 10월 이후 다시 제3세력을 대표하는 인물로 부각되었다. 11. 27. 국회에서 부결된 개헌안이 이승만이 주도한 ‘사사오입’ 주장으로 번복 통과되자, 야당 의원 61명이 나서 호헌동지회를 구성, 야당 연합전선적 성격을 가진 거대 신당 결집에 나선 것이다.

범야신당 추진은 1955. 1. 중순부터 난항에 부딪쳤다. 조봉암 영입문제를 둘러싸고 혁신파와 보수파로 갈린 탓이었다.6) 그러다가 2. 22. 조봉암이 “공산당의 독재는 물론 관권을 바탕으로 한 독점자본주의적 부패분자의 독재도 어디까지나 반대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자, 이때부터 조봉암은 물론 그의 신당가입을 찬동하는 자는 모두 “사회주의자” “제3세력” “’공산당”이라는 선전공세가 강화되면서 조봉암의 참여를 공개적으로 반대하기에 이르렀다.

※ 6) 시일이 지나면서 전자는 민주대동파 또는 대동단결파로, 후자는 자유민주파 또는 자유민주주의론파로 불린다.

1955. 3. 11. 범야신당을 추진하던 야당18인위원회도 자유민주파와 민주대동파가 분열되었고, 4월 이후 신당은 ‘순수한’ 반공세력의 집결을 강조하는 자유민주파 중심으로 추진되어 민주당이 탄생하였다.

이 과정에서 ‘진보적 신당’이 조직될 수 있는 조건도 만들어졌다. 1956년의 정부통령선거는 진보적 신당결성 추진의 강력한 지렛대로 작용하였다. 1955. 12. 22. 진보당 발기취지문 및 강령초안7) 발표가 있었고, 한 달 후 무렵인 1956. 1. 17.부터 진보당추진준비위원회 간판을 내걸고 본격적인 사무태세를 갖추어 갔다. 8)

※ 7) <발기취지문>에서 “민주책임정치, 대중 본위의 균형 있는 경제체제, 국민대중의 토대 위에 선 신당”을 표방, <강령>으로 1.공산독재는 물론 자본가와 부패분자의 독재도 이를 배격하고 민주주의체제를 확립하여 책임있는 혁신정치의 실현, 2.생산분배의 합리적 통제로 민족자본의 육성, 3.민주우방과 제휴하여 민주세력이 결정적 승리를 얻을 수 있는 조국통일의 실현, 4.교육체제를 혁신하여 국가보장제를 수립이 내세웠다.

8) 그러나 진보당의 발당은 정치자금 부족, 테러에 대한 두려움, 지방당부 조직 미비 등의 문제로 지지부진하였다.

1956. 3.부터는 정부통령선거 문제가 본격적으로 부각되었다. 3. 5. 자유당은 대통령후보에 이승만, 부통령후보에 이기붕을 지명하였고, 3. 28. 민주당은 대통령후보에 신익희, 부통령후보에 장면을 지명하였으며, 이날 선거일자는 5. 15.로, 후보등록 마감은 4. 7.로 확정되었다.

진보당추진준비위원회는 시기상 명실상부한 정당을 정식으로 출범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3. 31. 전국추진위원회 대표 113명과 추진위원 200명이 모여 진보당전국추진위원대표자회의를 열어 당 정강을 비롯한 여러 안건을 채택하고 정부통령선거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대통령후보에 조봉암, 부통령후보에 서상일을 천거(서상일의 고사로 박기출로 바뀜)하였다.

5․15 정부통령선거는 민의대의 시위로 시작되었다. 3. 5. 이승만이 자유당 대통령후보 지명 후 불출마를 선언하자 국민회, 대한노총, 부인회, 어민회, 在京 비구승과 불도 등 각종 단체 구성원들은 물론, 심지어 우마(牛馬) 차부들과 남녀 중고등학생에 이르기까지 각계각층의 군중이 동원되어 매일같이 이승만의 불출마 의사 철회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던 것이다. 시위는 이승만의 요청에 따라 재출마 수락을 요구하는 연판운동이 바뀌었고, 결국 이승만은 3. 23. 재출마 결정 성명을 발표하였다. 그리고, 3. 29.에는 서울운동장에서 이승만의 81회 탄생 경축식이 거행되었다.

한편, 일부 야당 의원들은 야권 연합전선 형성방안을 논의하였던바, 조봉암은 “충분히 고려할 점이 있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으나, 정작 민주당은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4. 6∼7.경부터 야권 연합전선운동이 구체화되었고, 4. 20.부터는 헌정동우회를 중심으로 신익희, 조봉암 등의 ‘정상회담’ 논의가 있는 등 5월 초까지 야권 연합전선 형성에 의견 일치를 보이는 듯하였다. 그런데 이때 전혀 예상치 않은 사건이 발생하였다. 5. 5. 새벽 민주당 신익희 후보가 유세차 타고 가던 호남선 열차에서 돌연 사망한 것이다. 이에 민주당은 야권 연합운동을 접고 지지자들을 향해 무효표가 될 ‘신익희 추모표’를 유도하였다.

자유, 민주, 진보 3당의 경쟁이 팽팽하였던 이 선거에서는 각 당의 선거구호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던바, 민주당의 “못살겠다 갈아보자”에 맞서 자유당은 “갈아봤자 더 못산다”를 내놓았고, 진보당은 “이것저것 다 보았다. 혁신밖에 살길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선거 기간 동안에도 어김없이 테러, 유인물 강탈, 연행 및 경고, 고문 등 노골적인 선거방해가 잇달았다. 이에 위기를 감지한 조봉암은 5. 11.경부터 잠적하였다가, 선거 결과가 확정될 무렵인 5. 17에야 진보당 사무실에 나타났다고 한다.

역대 대통령 선거 중 정책대결의 성격이 비교적 뚜렷하였던 것으로 평가되는 이 선거에서 조봉암은 유효득표수의 29%인 2,163,808표를 얻었다. 위와 같은 당시의 선거 분위기를 감안하면 이는 결코 적은 득표가 아니었다.9) 당시 무효표가 1,856,818표에 이르는바, 이는 대체로 신익희에 대한 추모표로 보고 있다.

※ 9) 당시 이승만은 5,046,437표를 얻어 유효득표수의 69%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후일 최인규 전 내무부장관은 자신의 자서전에서, 가지각색의 선거방해와 엄청난 개표조작에도 불구하고 조봉암이 216만여 표를 얻은 것은 반공국가로서 체면을 여지없이 추락시킨 것이기 때문에 그런 ‘전철’을 밟지 않으려고 1960년 3・15선거에서 부정선거를 저질렀다고 썼다.

5·15 정·부통령선거에서 진보세력의 두드러진 약진에 힘입어 조봉암은 다시금 신당 창당에 전력하였고, 1956. 11. 10. 어렵사리 진보당을 창당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진보당의 서울·경기도당 결성대회, 전남도당 결성대회, 전북도당 결성대회 등에서의 심한 테러와 탄압이 보여주듯이 진보당에 대한 이승만 정권의 탄압은 갈수록 격심해졌고, 급기야 1958. 5. 2. 민의원 총선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1. 13. 진보당의 평화통일론을 문제 삼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조봉암을 비롯한 진보당 간부들을 전격적으로 체포하고, 2. 25. 진보당의 등록을 취소하여 결국 진보당은 5. 2. 총선에 후보를 내지 못하게 된다.10)

※ 10) 민의원 선거결과는 총 233석 중 자유당 126석, 민주당 79석, 무소속 27석, 통일당 1석 등이었다.


2. 사건의 수사 및 기소 과정

가. 서울시경찰국의 수사

북한 공작원 등을 대상으로 진보당이 북한과 연계되어 있다는 진술을 근거로 서울시경은 1958. 1. 10. 민주정부를 변란할 목적 하에 진보당을 창당 조직하고 평화통일을 선전하는 등 북한의 무력재침의 선전, 평화통일 공작에 호응, 친소용공정책으로 적과 합세하여 정부전복을 기도하였다는 혐의로 조봉암 등 진보당 간부들에 대한 체포에 나서게 된다.

서울시경은 1958. 1. 11. 서울지방법원으로부터 조봉암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받아, 1. 12. 박기출, 윤길중, 조규희, 조규택, 이동화를, 1. 13. 조봉암, 김달호를 각각 구속하였다. 11)

조봉암 체포 직후 1958. 1. 14. 열린 제4회 국무회의에서 “진보당 간부 체포에 관한 건”이라는 안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논의하였다. 12)
※ 11) 1958. 1. 14. 서울지구파견특무대의 진보당원 검거조사 상황보고
12) 제4회 국무회의(1958. 1. 14.) 비망록

“7. 진보당 간부 체포에 관한 건”
- 내무: 조봉암 이외 6명의 진보당 간부를 검거하여 조사 중인 바, 그들은 대한민국의 주권을 무시하는 남북협상의 평화통일을 지향할 금춘(今春)선거에 전기 노선을 지지하는 자를 다수당선 시키기 위하여 5열과 접선 잠동하고 있는 것이며 전기 정당이 불법단체냐 여부에 대하여는 조사결과에 의하여 판정될 것이라고 보고
- 대통령: “조봉암은 벌써 조치되었어야 할 인물이며 이런 사건은 조사가 완료할 때까지 외부에 발표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2. 4. 열린 제11회 국무회의에서 진보당 사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대책을 논의하였다. 13)
※ 13) 제11회 국무회의(1958. 2. 4.) 비망록

- 재무: 금반 진보당 사건을 보니 국내 기업가 중에 그들에게 자금 융통 하여준 자들이 있는데, 그런 자들에게는 융자는 물론 기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사업을 못하게 만들어 주라고 하니 세도가 당당한 자들인지라 그에 대한 부작용이 많을 듯하나 단호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각오를 보고
- 대통령: 비율빈의 막사이사이는 미국 돈으로 당선되었다고 하나 그런 것이 선거에 영향을 주어서는 안 되며 공산당을 돕는 것은 물론 문제도 안 된다.

미국 국무부의 1958. 1. 13. 자 및 2. 3.자 문서에 의하면 당시 상황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보고하고 있다.

“체포가 예상되어 왔던 진보당 지도자 조봉암은 표면상으로는 아직 체포되지 않았지만 1월 11일 이후로 실종되었다. ..... 이 체포는 행정부가 진보당과 민주혁신당을 매도하고 5월 선거에서의 그들의 노력을 방해하려는 시도를 반영한다. 통상적으로 신뢰할 만한 정보원의 ‘진실’(probably true)로 분류된 보고서에는 ‘1월 초에 이승만 대통령이 조봉암과 4, 5명의 동료들을 체포하고 진보당을 금지하고 해산하는 내용의 계획을 승인했다’고 언급되어 있다. ..... 이 지도자들의 체포는 진보당과 민주혁신당의 평판을 나쁘게 하고 그 당들이 올해 5월로 예정된 국회의원 선거운동에서 좌절하게 만들려는 정부활동의 첫 단계이다”(1958. 1. 13. 서울(Weil)발 국무부 수신전문, no.520)

“기밀정보에 의하면 한국정부는 진보당을 불법화하기 위한 방법을 찾고 있다고 한다. 본 검거는 1949년, 1952년 정부가 야당에 대해 행했던 방법으로 역행하는 것으로 보인다. 용의자들에 대한 혐의로는 간첩과 연락한 것으로 보이는 증거들, 공산주의자들의 진보당 연락 시도, ‘평화통일’ 지지 등이다. 주한미대사관은 ‘추정되는 증거들은 기껏 해봐야 빈약한 것들’이었다며 그 혐의에 대해 믿을 수 없다고 하는 한국민들의 여론을 직접 수집 보고하였다. .... 만일 한국정부가 재판중 평화통일 지지가 반역적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이 범법행위에 대해 유엔과 미국이 지원하는 것이 되고, 더 나아가 유엔총회에서 한국문제에 관한 미국의 위치에 대한 국제적 지지를 위태롭게 할 것이다”〔(211. Parson(Director of the Office of Northeast Asian Affairs)가 Johnes(Deputy Assistant Secretary of State for Far Eastern Affairs)에게 보낸 문서, 1958. 2. 3. 워싱턴〕.

나. 육군 특무부대의 수사

이 사건 수사기록에 의하면, 서울시경이 진보당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는 상황에서, 특무부대는 1957. 12. “양이섭이 대남간첩 김00과 함께 입북하여 대남공작 지령을 받고 계속 13차에 걸쳐서 적지에 왕래하고 군사정치, 경제 등 광범위한 정보를 제공하고 공작금조로 물품과 마약 등을 수령하여 다수인과 접촉하고 있으며 조봉암과 접선을 꾀하고 있다”는 내용의 육군 HID공작원의 미행내사정보 문건을 이첩받아 수사에 착수한 것으로 기재되어 있다.

특무부대는 1958. 1. 초순경부터 양이섭의 집 주변에 잠복하여 장성팔14)이 양이섭의 집에 찾아오자 연행하여 조사한 후, 장성팔로 하여금 양이섭을 출두하도록 하여 2. 8. 양이섭을 연행, 양이섭과 조봉암에 대한 조사를 벌이게 된다.

특무대는 1958. 2. 8. 양이섭을 연행하여 여관 등에서 조사를 진행한 후 2. 25. 국방경비법15) 제33조 위반으로 서울지검을 통해 서울지법으로부터 구속영장을 발부받아 3. 8. 제10헌병중대에 구속하였다.16)

※ 14) 1심 공판에서 장성팔은 양이섭과 같은 평북 강계 출신으로, 해방 전 고향 강계에서 철물기계 사업을 하는 양이섭을 알고 있었다고 진술
15) 1948, 7. 5. 군정법률 0호, 국방경비법 내지 해안경비법은 폐지되면서 실체법으로는 1962. 1. 20. 법률 제1003호로 군형법이, 절차법으로는 동일자 법률 제1004호로 군법회의법이 제정, 공포되어 대체되었음
16) 특무대 1957년 제6호 사건표지

다. 서울지방검찰청의 기소

1) 진보당 관련

1958. 1. 24. 서울지검은 서울시경으로부터 진보당 관련 사건을 송치 받았다. 서울지검은 송치전인 1. 21. 서울시경에서 조봉암, 이동화, 윤길중 등 진보당 간부 10명에 대한 피의자신문조서, 1. 25. 정태영에 대한 피의자신문조서를 작성하고, 1. 28 김병휘, 2. 3. 김기철 등에 대한 피의자신문조서를 작성한 후, 2. 8. 조봉암 등 10명을 기소하고, 2. 17. 검찰은 다시 구체적으로 범죄사실을 기재한 공소장을 제출하였다.

조봉암 사건에 대하여 3. 11. 열린 제23회 국무회의에서 “검찰의 선거대책에 관한 건”이라는 안건에 대해여 다음과 같이 논의하였다. 17)
※ 17) 제23회 국무회의(1958. 3. 11.) 비망록

“2. 검찰의 선거대책에 관한 건”
- 법무: 선거를 앞두고 신선거법 운용에 관한 것을 연구협의 하기 위하여 근일 검찰관회의를 열을 예정이며 각 청에는 선거관계를 전담할 검사를 정하여 놓도록 하라고 한다는 보고
- 대통령: 현재 조봉암 사건은 어찌되었나?
- 법무: 현재 공판 중에 있으므로 앞으로 결정될 것입니다. 그 후 특무대에서 발견한 유력한 확증이 있으므로 유죄에 틀림없다...고 보고
- 대통령: 이제 확증이 생겼으니 유죄이라면 전에는 증거없는 것을 기소한 한 것 같이 들린다. 외부에 말할 때는 주의하도록 하라. ( 각부장관이 발표하는 것을 보며) 다 말하지 않는 것이 좋을 일을 발표하는 예가 있다. 발표한 것이 외부에 주는 영향을 생각하여 할 말을 다하지 않도록 하라.
- 공보: 진보당 등록을 취소하였더니 행정소송이 제기되었으며 민혁당 등록 신청이 제출되었으나 지금 등록을 하여주면 진보당원 일부가 합류할 것이 예상됨으로 선거 전에는 등록을 받지 않을 방침이라...고 근황을 보고

3. 18. 열린 제25회 국무회의에서는 다음과 같이 “조봉암 사건”이라는 안건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18)
※18) 제25회 국무회의(1958. 3. 18.) 비망록

“7. 조봉암 사건”
- 법무: 목하재판을 하고 있는 중이라고... 보고
- 대통령: 이 사건의 일반 여론은 어떠한가?
- 법무: 국민도 이 사건 처리엔 성원을 보내주고 있다...고 보고

2) 간첩행위 관련

그 후 3. 17. 서울지검은 육군 특무부대로부터 양이섭, 조봉암의 간첩 사건을 송치받아 양이섭에 대하여 제1회 피의자신문조서를 작성한 후, 3. 19. 제2회, 3. 21. 제3회, 3. 25. 제4회, 3. 28. 제5회 피의자신문조서를 각각 작성하고, 조봉암에 대하여 간첩 혐의로 4. 2. 피의자신문조서를 작성한 후, 4. 3. 서울지법에 양이섭을 간첩죄로 기소하고, 4. 8. 조봉암을 같은 내용의 간첩죄로 추가 기소하였다.

서울지법은 위 진보당 사건에 대해 재판을 진행하다가 5. 15. 제9회 공판에서 위 간첩죄 사건을 병합하여 심리하게 된다. 그 후 6. 13. 서울지검은 4. 8. 기소된 바 있는 불법무기소지와 관련하여 추가공소장을 제출하였으며, 서울고등법원은 제1회 공판에서 이를 심리하였다.

3. 재판 과정

가. 1심 재판

1심 재판은 서울지법에서 재판장인 유병진 부장판사(배석판사 이병용, 배기호)의 주재로 진행되었다. 1심 판결 결과는 다음과 같다.

- 조봉암, 양이섭 각 징역 5년
- 김정학, 이동현 각 징역 1년, 전세룡 징역 10월, 이정자 징역 6월(단 재판 확정일로부터 김정학에 대하여는 3년간, 전세룡에 대하여는 2년간, 이정자에 대하여는 1년간 집행유예)

- 본 건 공소사실 중 조봉암에 대한 제1의 (1)의 ① 및 ② 기재의 각 간첩의 점, 동 제1의 (3) 기재의 간첩방조의 점, 동 제1의 (1)의 ③ 내지 ⑤, 동 제1의 (2) 및 (4) 기재의 각 국가보안법 위반의 점은 무죄

- 박기출 김달호 윤길중 조규택 조규희 신창균 김기철 김병휘 이동화 이명하 최희규 안경득 박준길 권대복 정태영 이상두 임신환 각 무죄
- 전세룡에 대한 국가보안법 위반의 점 및 제17의 (18) 기재의 증거인멸의 점, 김정학에 대한 국가보안법 위반의 점 무죄
- 이동현에 대한 증거인멸 및 국가보안법 위반의 점은 각 무죄

1심 판결 선고 직후인 7. 4. 열린 제59회 국무회의에서 “조봉암 사건에 관하여”라는 안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대책을 논의하였다. 19)
※ 19) 제59회 국무회의(1958. 7. 4.) 비망록

“2. 조봉암 사건에 관하여”
- 법무: “법원은 조봉암을 위시한 진보당원의 판결에 있어서 평화통일론은 문제로 하지 않고 따라서 진보당이 불법단체라는 것도 규정하지 않았으므로 만일 진보당이 행정소송을 하면은 가처분이 있을지 모르니 진보당을 불법으로 처분한 공보실의 입장이 곤란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본건 판결에 대하여 검사는 즉시 공소하였으나 제1심에 비하여 고법·대법원의 판결이 검찰에 유리하도록 될 것이 예상되는 차제에 공연히 판사들을 자극하는 것은 득책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보고와 견해
- 공보: “진보당이 불법단체가 아니라면 평화통일도 합법적이라 하야 할 것이니 앞으로 우리는 무엇을 가지고 국민은 지도하여 행정을 하여 갈수있나 좀 신중히 생각하여야 하겠다”고 그간 내무, 법무가 말하는 것만 믿고 지금껏 해온 것이 이러니 걱정이라는 탄식

1심 판결 직후 법원판결에 불만을 품은 200여 명의 반공청년이 법원 건물에서 시위를 하였다.20) 진실화해위원회 면담에서 조봉암의 변호인 김춘봉은 “1심 판결 선고 후 재판정에 반공청년단이 침입하여 난동을 부렸으며, 이들은 경찰기동대 사람들이었다”, 여명회 조직부장 김용기(金用基)는 “1심 판결 선고 후 재판정에 침입한 반공청년단은 자유당의 직속 조직이었다”고 각 진술하였다.
※ 20) 한국일보 1958. 7. 6일자

나. 2심 재판

2심 재판은 서울고법에서 재판장 김용진 부장판사(배석판사 최보현, 조규대)의 주재로 진행되었다. 2심 판결결과는 다음과 같다.

- 조봉암의 국가변란 목적 진보당 결성 및 간첩 혐의에 대하여 사형선고
- 양이섭의 간첩죄 혐의에 대하여 사형선고
- 진보당 간부들에 대한 진보당 결성 기소에 대하여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또는 징역 3년 선고
- 조봉암이 박정호와 회합 등 국가변란이라는 실행사항을 협의하였다는 공소사실 3개항에 대하여는 무죄

2심 판결은 피고인 조봉암 등의 각 판시 국가보안법 위반의 점에 대하여 증거를 열거하고, ‘이것에 부합하는 기재 등을 완결하여 이것을 인정할 수 있다’고 유죄판결을 하면서 그 이유는 제시하고 있지 않다.

2심 판결 선고 직후인 10. 28. 열린 국무회의에서, 법무부장관이 진보당 사건 공판에 관하여 보고하자, 이승만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지시하였다. 21)
※ 21) 제98회 국무회의(1958. 10. 28.) 비망록

「1. 진보당 사건 공판에 관하여」
- 법무: (진보당 사건 공판에 관하여 보고)
- 대통령: “법관들만이 무제한한 자유가 허용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말이라”...고 하며 “이러한 판사들을 처리하는 방법은 없는가”...하는 하문에
- 법무: “탄핵소추가 있으나 참의원이 없어서 안 되고 법관징계위원회가 있어도 법관들끼리 하는 것이니 소용이 없고 임기 만료자를 그 때에 정리하는 도리 밖에 없는바, 금일 임기 만료된 법관 중에 대법원이 제청하지 않은 자가 있는 외에 몇 명은 부적당한 자가 있어서 연임을 명하기 전에 조사를 하고 있으며 진보당 사건 1심 판결의 책임판사도 이번 임기 만료자 중에 들어있다”...고 보고
- 대통령: “조봉암 사건 1심 판결은 말도 안 된다. 그 때에 판사를 처단하려 하였으나 여러 가지 점을 생각하여서 중지하였다. 같은 법을 갖고도 한 나라 사람이 판이한 판결을 내리게 되면 국민이 이해가 안 것이고 나부터도 물어보고 싶은 생각이 있다. 헌법을 고쳐서라도 이런 일이 없도록 엄정하여야 한다”

2심 판결에 대한 11. 12.자 미국 국무부 문서에 의하면, "서울 항소법원은 진보당의 강령과 정책이 대한민국 정부를 전복하기 위한 계획을 표현하지 않았다는 지방법원의 판결을 뒤집었고, 이전에 무죄판결을 받은 진보당 인사들의 석방을 뒤집었다. 비록 양이섭이 원심에서 조봉암을 북한정권과 연결했던 자신의 증언을 철회했지만, 항소법원은 자신이 청취한 증언보다는 양이섭의 지방법원에서의 증언을 수용하는 자신의 특권을 행사했다. 그런데 두 법원이 기소한 사실은 동일했다“, ”지방법원은 전달된 정보(진보당 당원 명부)가 하여간 공공연한 지식이고 중요성이 없다면서 조봉암에 대한 간첩죄를 무죄로 판결했지만, 상고 법원은 그 판결을 기각했다“, ”재심에서 가장 이상한 것은 지방법원에서 청취된 증언보다 피고에게 훨씬 더 유리한 증언이 제출되었어도 재심판결이 처음에 내려진 판결보다 훨씬 가혹하다는 사실이다“, ”법무부장관이 10. 28. 정규적인 화요일 국무회의에서 진보당사건 재심결과를 이승만 대통령에게 보고했을 때, 대한민국 대통령은 대통령선거에서 자신에 대항해 두 번 출마했던 사람에게 사형이 내려진 것에 만족했지만, 지방법원과 항소법원 판사 간의 (판결의) 큰 불일치에 관해 우려를 표명했다“는 등으로 2심 판결에 대해 심각하게 문제제기를 하였다.22)
※ 22) 1958. 11. 12. 서울(Weil)발 국무부 수신전문

다. 대법원

1959. 2. 27. 3심인 대법원(재판장 대법관 김세완, 대법관 김갑수 허진 백한성 변옥주)은 다음과 같이 판결하였다.

- 양이섭의 간첩 혐의에 대해 상고를 기각하여 사형을 확정
- 조봉암의 국가변란 목적 진보당 결성 및 간첩 혐의에 대하여 이례적으로 파기자판으로 사형선고
- 진보당 간부들의 국가변란 목적 진보당 결성 혐의에 대하여 무죄

조봉암은 위 대법원 판결에 대하여 재심을 청구하였으나, 대법원(재판장 대법관 백한성, 대법관 김갑수 배정현 고재호 변옥주)은 7. 30. 재심청구를 기각하였다.

이승만 정권은 재심결정 전날인 7. 29. 양이섭에 대해 사형을 집행하고, 재심기각 결정이 있은 다음날인 7. 31. 조봉암에 대해 사형을 집행하였다.

며칠 후인 8. 5. 열린 제76회 국무회의에서 법무부장관의 보고와 대통령의 발언이 있었다. 23)
※ 23) 제76회 국무회의(1959. 8. 5.) 비망록

“2. 조봉암 사형 집행에 관하여”
- 법무 : “법절차를 다 밝고 집행할 것이므로 사회에 하등 물의가 없다”... 고 보고
- 대통령: “공산당으로 하여 가는 것은 곤란한 것이며 법보다도 중대한 문제인데 법대로 처리 되었다니 더 말할 것 없다”

『1958년-1969년 미국 대외관계』(제18권 일본, 한국. United States Government Printing Office, Washington, 1994. 461~462 쪽)는 ‘226. Editorial Note’ 항에서 조봉암 사건에 대한 미국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조봉암과 진보당 관련 지도자들의 재판이 1958년 봄에 시작되었다. 6. 13. 검찰은 조봉암에 대해 사형을, 다른 22명의 피고인에게는 징역형을 구형하였다(6. 19. 서울발신 항공우편공문 G-97, 국무부 Central Files, 795B.00/6-1958).

6. 20. 서울로 발송한 전문799에서 국무부는 조봉암에 대한 사형선고는 공산주의자들에게 훌륭한 선전거리를 제공하고 “중립적 국가의 관점에서뿐만 아니라 나머지 전 세계의 다른 자유국가들의 관점에서 볼 때 우리가 한국의 정치적 안정과 성숙을 이루는데 기여했던 여하한 성공도 완전히 무효화시키는 것이 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주한미대사관은 “즉각 미국무부가 이 문제에 대해 가지고 있는 우려와 그 원인에 대해 비공식적으로 부각시키고, 영향력이 있다고 생각되어지는 관료들로 하여금 조봉암이 사형당하거나 추방당할 가능성을 없앨 수 있게 하라”는 지시를 받았다(6. 19. 서울발신 항공우편공문 G-97, 국무부 Central Files, 795B.00/6-22058)

6. 23. 당시 미대사는 이 문제를 가지고 국회 대변인 이기붕을 찾아갔고, 이기붕은 사형을 막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6. 23. 서울발신 전문915).

7. 2. 조봉암과 다른 4명의 피고인은 국가보안법 위반죄가 확정되어 징역형이 선고되었다(7. 2. 서울발신 전문 7; ibid., 795B.00/7-258). 조봉암은 5년형이 선고되었으나, 제2심에서 10. 25. 판결을 바꾸어 간첩죄를 적용하여 사형을 선고하였고, 다른 19명의 진보당원들에 대해 징역형을 선고하였다(10. 27. 서울발신 전문189; ibid, 795B.00/10-2758).

다시 국무부는 미대사에게 서울의 적절한 정부요인에게 접근하여 조봉암 처형과 관련하여 경고를 하도록 지시했다(10. 29. 서울수신 신문 170; ibid). 미대사는 이기붕 대변인과 이 문제에 대해 논의하기로 동의했으며 대법원이 제2심의 판결을 바꿀 것이라는 확신을 표시했다(11. 4. 서울발신 전문206; ibid., 795B.00/11-458).

그러나 대법원은 1959. 2. 27. 사형을 선고했고, 7. 31. 조봉암의 사형이 집행되었다. 국무부의 지시를 받아 미대사는 8. 3. 외무부장관을 만났고, 미 국무부에서 표현한대로 조봉암을 처형한 것이 “갑작스럽고 대단히 의문스러운 결정”이라는 미국의 유감을 전달했다(7. 31. 서울수신 전문82 및 8. 4. 서울발신 전문88; ibid., 각 795B.00/7-3159 및 795b.00/8-459)

4. 수사과정의 위법성

가. 불법감금 여부

특무대는 1958. 2. 8. 양이섭을 연행하여 구속영장을 발부받지 않은 채, 외부와의 연락이 일체 두절된 상태에서 여관에서 불법감금한 채 조사를 진행하다가 2. 25.에야 서울지법으로부터 구속영장을 발부받았다. 그런데 구속영장을 집행하지 않고 조사를 계속하다가 3. 8.에야 피의사건으로 제10헌병중대에 구속하는 절차를 밟았다. 이 구속영장을 집행하지 않은 기간도 불법감금에 해당하므로 1958. 2. 8.부터 구속영장이 집행된 3. 8.까지 여관에서 조사를 한 기간은 불법감금에 해당하며 형법 제124조가 정한 불법체포감금죄를 구성한다.24)
※ 24) 형법 제124조 (불법체포, 불법감금) ①재판, 검찰, 경찰 기타 인신구속에 관한 직무를 행하는 자 또는 이를 보조하는 자가 그 직권을 남용하여 사람을 체포 또는 감금한 때에는 7년 이하의 징역과 10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

이 불법감금은 이미 공소시효가 지나 확정판결을 받을 수 없으나, 조사결과 위법성이 확인된 만큼, 형사소송법 제420조제7호, 제422조가 정한 재심사유에 해당한다.

나. 기망, 가혹행위 여부

특무대 수사관이 조사 중에 수사관이 조봉암이 역적이어서 사형시켜야 하므로 악역을 해야 한다는 말을 여러 차례에 걸쳐 하였으며, 수사검사가 조봉암이 나쁘다며 특무대에서의 자백을 유지하면 곧 석방시켜 줄 듯 암시를 하여 검찰 및 1심 공판에서 자백을 하였는지 여부에 관하여,

양이섭이 특무대 수사과정에서 고문 때문이라며 자살을 기도한 사실, 육군 특무대가 양이섭을 여관 등에 1개월여 불법감금한 상태에서 조사를 한 사실, 양이섭이 1심 공판에서 강박에 의한 것처럼 고개조차 들지 못하는 소극적 태도로 대답을 한 사실, 징역 5년을 선고받고 불복하여 2심 공판에 이르러서 그 자백을 번복하며 구체적으로 진술한 사실 등에 비추어 볼 때 위와 같은 기망과 회유가 있었을 개연성은 인정된다.

다. 특무부대의 수사권 여부

헌병과국군정보기관의수사한계에관한법률25) 제1조는 “헌병은 군인, 군속의 범죄에 대한 수사를 진행한다, 군사 또는 군속의 범죄에 관련 있는 일반인의 범죄에 대하여는 형사소송법의 규정에 의하여 이를 수사할 수 있으되 긴급구속은 할 수 없다”고 규정하여 헌병에게 군사 또는 군속의 범죄에 대하여 민간인에 대한 수사를 할 수는 있었다. 또한 동법 제2조는 “국군정보기관의 소속원과 방첩원은 군인, 군속의 범죄만을 수사할 수 있다. 전항의 경우에 있어 국군정보기관의 소속원과 방첩대원은 헌병과 동일한 권한이 있다”, 육군특무부대령26) 제1조는 “육군의 방첩에 관한 사항과 법령의 규정에 의하여 그 소관에 속하는 범죄수사를 관장하게 하기 위하여 육군 특무부대를 둔다”라고 규정하고 있었다.
※ 25) 1949. 12. 19. 자 법률 제80호
26) 1957. 11. 21. 대통령령 제1316호로 제정

육군 특무대는 조봉암과 양이섭에 대하여 국방경비법 제33조 위반으로 형사입건하였는바, 위 조항은 형법 제98조의 간첩죄와 달리 조선경비대 내의 요새지 주둔지 숙사 진영 등지에서 간첩으로서 잠복 행동한 군인, 군속에게 적용되는 것이었다. 동법 제1조 피적용자 범위를 보면, 조선경비대 소속 장교 내지 병사, 사관후보생도, 조선경비대에 복무 또는 훈련의 목적으로 파견되는 해안경비대원, 군법의 적용을 받게 되는 조선경비대 군속, 군법회의판결에 의하여 복무중인 자 등이었고, 재판관할도 군법회의에 있었다. 국방경비법은 해안경비법과 함께 군인, 군속에 관한 범죄를 규정하여 처벌하는 재판절차에 관한 법률이었다.

이 사건 특무대 수사 당시 조봉암은 진보당 위원장이었고, 양이섭은 HID 공작활동을 하였으나 군인이나 군속의 신분은 아니었다. 특무부대 및 검찰의 피의자신문조서, 1심 및 2심 공판조서는 양이섭의 직업을 “무직”으로 기재하고 있다.

조봉암과 양이섭에 대한 간첩 혐의는 군사에 관한 범죄가 아니며, 군 주둔지 등에서 간첩으로서 행동한 것이 아니었으므로 국방경비법 적용대상이 아니었다. 그런데 특무대는 조봉암과 양이섭을 국방경비법 위반 혐의로 조사를 하였다. 국방경비법 위반은 군법회의가 재판권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군검찰에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군검찰에 사건을 송치하여야 하며, 군법회의에 기소하여 재판을 하여야 한다. 그런데 특무대는 조봉암과 양이섭을 국방경비법 제33조 위반으로 형사입건하였으나 구속영장은 서울지검 검사에게 청구하였고 서울지검 검사장에게 송치하였다.

따라서 육군 특무대 소속 수사관이 수사권도 없이 조봉암, 양이섭에 대한 국방경비법 위반 혐의에 대해 수사를 행한 것은 당시 형법 제123조 타인의 권리행사방해죄(현행 직권남용죄)27)를 구성한다. 그런데 이미 공소시효가 만료되어 확정판결을 받을 수 없으나, 그 불법행위가 확인된 만큼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7호, 제422조에 의한 재심사유에 해당한다.
※ 27) 형법 제123조 (타인의 권리행사방해)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없는 일을 행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과 10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

5. 공소사실 검토 결과

가. 진보당 창당 관련

진보당이 “우리는 노동자 농민을 중심으로 하는 광범한 근로대중을 대표하는 주체적 선도적 정치적 집결체이며 변혁적 세력의 적극적 실천에 의하여 자본주의를 지양하고 착취 없는 복지사회를 건설하여야 한다”, “우리는 자유민주주의를 폐기·지양하고 주요 산업과 대기업의 국유 내지 국영을 위시로 급속한 경제건설, 사회적 생산력의 제고 및 사회적 생산물의 공정 분배를 완수하기 위하여 계획과 통제의 제원칙을 실천하여야 한다”, “우리는 남북한에서 평화통일을 저해하는 요소를 견제하고 진보당 세력의 주권 장악하에 피흘리지 않는 평화적 한국통일을 실현한다”는 등의 강령·정책을 채택하고 있는바, 이는 헌법이 허용하는 합법적 범위에 속한다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고, 평화통일에 관한 주장·논의 또한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표현의 자유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인정된다.

결국 조봉암 등 진보당 간부들이 국가를 변란할 목적으로 진보당을 창당하여 운영한 것이라고 인정할 증거가 없는 이상 조봉암이 국가변란을 목적으로 진보당을 창당하여 운영한 것이라고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심 및 대법원이 조봉암이 국가변란을 목적으로 진보당을 구성하였다고 유죄판결을 한 것은 증거재판주의에 위배하여 증거 없이 사실을 인정한 위법이 있는 것이다.


나. 간첩행위 관련

이 사건 간첩죄 관련 양이섭이 북한의 지령을 받아 조봉암에게 전달하였다는 점에 대하여는 양이섭의 자백에 의존하고 있다. 조봉암은 일관되게 부인하였다. 양이섭은 특무대 및 검찰에 이어 1심 공판에서 공소사실에 대해 자백을 하였으나, 2심 공판에서 자백을 번복하였다.

먼저, 양이섭의 특무대에서의 자백은 불법감금 상태에서 행해진 것이므로 임의성이 인정되지 않는다. 검찰 및 1심 공판에서의 자백도 장기간의 불법감금 상태에서의 기망과 회유에 의한 강박상태가 이어졌을 개연성이 있다. 더구나 양이섭은 2심 공판에서 수사기관 및 1심에서의 자백을 번복하였다. 따라서 번복된 자백만으로 공소사실을 그대로 인정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합리적 의심을 벗어날 정도의 확신을 요구하는 형사소송의 원칙상 양이섭의 1심 자백만으로 이 사건 조봉암의 간첩행위를 인정하기는 어렵고, 양이섭의 번복된 자백에 의존하여 극형인 사형을 선고한 2심 및 대법원 판결은 증거재판주의에 위배한 위법이 있다.

6. 조봉암에 대한 정치적 탄압 여부

서울시경이 북한 공작원들로부터 진술을 받아 근거 없이 조봉암 등을 체포하여 진보당에 대해 수사에 나선 사실, 그 체포가 진보당과 민주혁신당을 매도하고 선거에서의 그들의 노력을 방해하려는 시도를 반영하며, 이승만 대통령이 조봉암과 4, 5명의 동료들을 체포하고 진보당을 금지하고 해산하는 내용의 계획을 승인했다는 미국 국무부의 정보보고, 경무대에서 조봉암을 잡아넣지 않으면 이승만 대통령의 재당선이 불가능하니 어떤 수를 쓰더라도 잡아넣으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수사관의 증언, 수사권이 없는 사안에 대해 육군 특무부대까지 수사에 나선 사실, 검찰이 공소사실을 특정하지도 못한 채 서둘러 기소한 후 재차 기소한 사실, 확정판결 전 진보당의 등록을 취소하여 진보당은 해산되었고 그 해 국회의원 선거에 진보당은 후보를 전혀 내지 못하게 된 사실, 국무회의에서 이승만 대통령이 조봉암 체포에 대해 “벌써 조치되었어야 할 인물”이라고 지시한 사실, 2심 사형선고 직후에는 1심 판결에 대해 ”말도 안 되며 그 때에 판사를 처단하려 하였으며, 헌법을 고쳐서라도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지시한 사실, 양이섭이 자백을 한 상태에서 1심이 징역 5년을 선고하였으나 그 자백을 번복한 2심이 극형인 사형을 선고한 사실, 대법원이 파기하면서 2심으로 환송하지 않고 이례적으로 스스로 재판하여 신속하게 사형을 확정시킨 사실, 재심기각결정 다음날 전격적으로 사형을 집행한 사실, 미국무부의 지시를 받은 미 대사가 외무부장관을 만나 조봉암에 대한 처형이 갑작스럽고 대단히 의문스러운 결정이라고 유감을 전달한 사실 등에 의하면,

이승만 정권과 반대되는 입장에서 ‘평화통일’을 주장하는 조봉암이 1956년 5․15 대통령 선거에서 200여만 표 이상을 얻어 이승만 정권에 위협적인 정치인으로 부상하자 조봉암을 제거하고 진보당의 1958년 5월 민의원 총선 진출을 막으려는 이승만 정권의 의도가 작용하여 서울시경이 조봉암 등 간부들을 국가변란 혐의로 체포하여 조사하였고, 수사권이 없는 육군 특무대까지 수사에 나서 조봉암을 간첩 혐의로 기소하여 재판을 통해 처형에 이르게 한 것으로 인정할 수 있다.

Ⅲ. 결론

○ 이 사건은 조봉암이 1956. 5. 15. 제3대 대통령선거에서 200여만 표를 득표하여 광범위한 지지를 얻고, 1956. 11. 10. 진보당을 창당하여 위원장으로 취임, 1958. 5. 민의원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서울시경과 육군 특무대가 수사에 나서 대법원에서 조봉암을 국가변란 목적 진보당 창당 및 간첩 혐의로 사형을 선고, 처형에 이르게 한 사건이다.

육군 특무대는 양이섭을 1958. 2. 8.부터 구속영장이 집행된 3. 8.까지 1개월여 외부와의 연락이 일체 두절된 채 여관에서 불법감금한 상태에서 조사를 하였다. 조봉암과 양이섭은 그 혐의 내용이 국방경비법이 아니라 형법 제98조 및 국가보안법 위반이었으므로 특무대는 이들에 대한 수사권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특무대 수사관이 조봉암, 양이섭에 대해 수사를 행하였다. 위 각 불법행위는 당시 형법 제124조 타인의 권리행사방해죄(현행 직권남용죄)를 구성하며, 형사소송법 제420조제7호, 제422조가 정한 재심사유에 해당한다.

특무대 수사과정에서 양이섭에게 조봉암을 제거해야 한다는 강압과 회유가 있었으며, 협조할 경우 집행유예로 석방될 것이라는 기망과 회유가 있었을 개연성이 인정된다.

검찰은 아무런 증거도 없이 공소사실도 특정하지 못한 채 조봉암 등 진보당 간부들에 대해 국가변란 혐의로 기소를 하였고, 양이섭의 임의성 없는 자백만을 근거로 조봉암을 간첩죄로 기소한 것은 공익의 대표기관으로서 인권보장의 책무를 저버린 것이다.

서울고법 및 대법원이 조봉암이 국가변란을 목적으로 진보당을 창당하였다는 점을 인정할 아무런 증거가 없고, 서울고법 공판에서 번복한 양이섭의 자백만으로 증거재판주의에 위배하여 국가변란 및 간첩죄로 조봉암에게 극형인 사형을 선고하여 결국 처형에 이르게 한 것은 인권보장의 최후의 보루로서의 책무를 저버린 것이다.

이 사건은 ‘평화통일’을 주장하는 조봉암이 1956년 5·15 대통령 선거에서 200여만 표 이상을 얻어 이승만 정권에 위협적인 정치인으로 부상하자 조봉암이 이끄는 진보당의 1958년 5월 민의원 총선 진출을 막고 조봉암을 제거하려는 이승만 정권의 의도가 작용하여 서울시경이 조봉암 등 간부들을 국가변란 혐의로 체포하여 조사하였고, 민간인에 대한 수사권이 없는 육군 특무대가 조봉암을 간첩 혐의로 수사에 나서 재판을 통해 처형에 이르게 한 것으로 인정되는 비인도적, 반인권적 인권유린이자 정치탄압 사건이다.

○ 이 사건에 대해 진실이 규명되었으므로 기본법 제4장에 따라 국가가 행할 조치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권고한다.

- 국가는 육군 특무대 수사과정에서의 불법감금 등 인권침해에 대하여, 임의성 없는 자백에 의한 기소 및 유죄판결로 국민의 생명권을 박탈한 인권유린에 대하여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총체적으로 사과하고 화해를 이루는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

- 국가는 위법한 확정판결에 대하여 피해자와 유가족의 피해를 구제하고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해 형사소송법이 정한 바에 따라 재심 등 상응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

- 조봉암이 일제의 국권침탈시기에 국내외에서 일제에 항거하고 독립운동을 하다가 복역한 사실이 인정됨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 사형판결로 인하여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한 것인 만큼, 국가는 조봉암을 독립유공자로 인정하는 것이 타당하다.(끝)



☞ <진보당 조봉암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 '결정문 전문'(진실화해위원회, 2007.9.27) 바로가기

☞ [조봉암 생전의 모습과 장녀 조호정 씨 인터뷰 동영상] "국가가 사과하라"…죽산 조봉암 선생은 누구(SBS, 2007.9.27)

☞ [조선일보 사설] 조봉암(曺奉岩)(조선일보, 2007.9.29일자)

☞ [경향신문 사설] ‘조봉암 신원(伸寃)’과 사법부(경향신문, 2007.9.29일자)

☞ [민주노동당 논평] 죽산 조봉암 선생에 대한 진실화해위원회의 결정을 환영하며(민주노동당.뉴스와이어.파란, 2007.9.28)

☞ 유족들, 반세기전 기각된 ‘조봉암 사건’ 재심 청구키로 - 당시 판·검사중 2명 생존, "판결 잘못됐다", "노코멘트"(한겨레신문, 2007.9.28)

* 글쓴이는 '참정연' 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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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29 [22:48]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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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엥란트

정태인 "고 박현채 선생이 한미FTA 찬성? 유시민의 무지" 

정태인 "유시민의 진단은 지극한 무지의 소치"

민노당 입당..."노무현-유시민과 인연 끊겠다"

[프레시안] 2007-08-10 오후 6:06:58

그동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저격수' 역할을 해 왔던 정태인 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이 민주노동당에 공식 입당했다.

최근 민노당 심상정 후보 캠프에 정책자문역으로 참여하고 있기도 한 정 전 비서관의 '입당의 변'은 스스로를 '민주화 운동 세력'으로 자임하면서도 한미 FTA를 추진·묵인하고 있는 범여권 진영에 대한 비판으로 채워졌다.

"민주화운동 동지들과 인연 끊겠다"

정 전 비서관은 10일 국회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왕년의 민주화 투사들이 함께 모여 한미 FTA 비준동의를 꾀한다면 그들은 이미 민중의 편이 아니다. 재벌-재경부-조중동이라는 지배 삼각동맹의 꼭두각시이자 민중의 시대를 가로막는 시대의 퇴물들일 뿐"이라고 맹비난했다.

정 전 비서관은 "이제 이른바 '민주화운동'의 선배, 동지, 후배들과의 인연을 끊는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특히 그는 최근 발간된 저서를 통해 "박현채 선생이 살아계셨다면 한미 FTA에 찬성했을 것"이라는 취지의 주장을 편 유시민 의원에 대해 "박현채 선생은 1992년 나를 불러 'DJ하고 손을 끊었다'고 말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신자유주의적 경향이 위험해 보였기 때문이다. 유시민의 진단은 지극한 무지의 소치"라고 반박했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도 초기의 정책기조와는 달리 '유연한 진보'를 운운하며 이미 시장 만능론자가 됐고, 유시민도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대선-총선에서 한미 FTA 진실 밝히겠다"

대선-총선으로 이어지는 '정치의 계절'에 한미 FTA 문제를 집중적으로 부각시키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정태인 전 비서관은 "한나라당은 다 된 밥에 코를 빠트리는 격이기 때문에 한미 FTA가 이슈화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면서 "'기찻길 정당(대통합 민주신당)'의 경우에도 목숨을 걸고 반대단식을 한 김근태 의원이 가장 적극적인 FTA 찬성론자인 손학규를 끌어들인 만큼 이 문제가 이슈화 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객관적으로 한미 FTA는 어떤 정책보다도 장기적으로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면서 "전체 정치세력은 한미 FTA 찬반을 두고 갈라질 수밖에 없다. 이번 대선과 내년의 총선은 한미 FTA의 진실이 밝혀지는 정치 마당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심상정 캠프에 정책자문역으로 참여하고 있는 정 전 비서관은 이와 함께 중앙당 산하 '한미 FTA 사업단' 본부장직을 맡을 활동할 예정이다. /송호관 기자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20070810175959&S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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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변해 나도 변할 수밖에"

'노 대통령 경제교사' 정태인씨 민주노동당 입당

[오마이뉴스] 2007-08-10 14:40
최현정 기자

"먼저 정정하고 시작하겠습니다. 전 박사는 아닙니다. 10년 동안 박사 공부해서 수료만 했지 학위는 없습니다."

10일 오전 10시 국회정론관에서 가진 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 정태인씨의 기자회견은 간단한 정정으로 시작됐다.

민주노동당 입당 선포를 공식 선언하는 기자회견을 앞둔 정씨는 회색 양복에 굵은 곱슬머리를 바짝 빗어 올려 평소와는 달리 조금 긴장된 모습이었다. 한미FTA와 관련해 다큐멘터리를 찍고 있던 한 방송국 PD는 "인터뷰이의 복장이 조금 난감하다"고 했다. 현 정권의 경제비서관 출신이 현 정권이 말하는 최대 치적인 '한미FTA 반대'의 공식적인 중심에 선 것을 선포하는 자리니 어쩔 수 없이 예의를 갖춘 복장일 것이다.

조금 늦게 도착한 문성현 대표와 심상정 의원, 김형탁 대변인과 함께 기자회견이 시작됐다. 당직자들에 둘러서서 꽃다발을 걸어주고 축제 분위기속의 기존 정당 입당식과는 다른 조금은 조촐한 입당 회견장이었다.

오동나무 이파리를 보면 가을이 온 것을 안다는 한시를 거론하며 정태인씨의 입당에 큰 의미를 부여한 문성현 대표는 이 땅의 더 많은 지성들이 비판과 함께 대안을 만들어 나가는 시금석이 되길 희망했다.

정씨를 "동지"라고 부른 심상정 의원도 인재가 모이는데 희망이 있다며 정태인씨의 입당이 대선 승리의 견인차 역할을 할 것이라 장담했다. 이날 입당한 정씨는 앞으로 '한미FTA저지 사업본부장'을 맡을 예정이다.

직접 쓴 입당의 변으로 기자회견을 마친 정씨는 자리를 옮겨 기자들과 간담회 자리를 마련했다. 약 10여명의 기자들은 노무현 정권 5년 동안 정책의 최고점에서 대척의 최고점으로 가장 큰 변신을 한 정씨에게 개인적인 질문부터 한미FTA 비준 전망까지 다양한 질문을 했다. 방송 진행을 오래한 경력답게 정태인씨의 간담회는 자연스럽게 진행됐다.

▲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이 10일 국회 정론관에서 정태인 전비서관의 민주노동당 입당을 환영하는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 그동안 민노당원이 아니었나.
"심상정 의원이 '꼬셔서' 내 생애 최초로 당적을 갖게 됐다. 한미FTA라는 워낙 중차대한 위기 앞에서 결단을 해야 했다."

- 대선이 4개월 남았지만 한미FTA는 후보들의 논쟁에서 비껴난 느낌이다.
"현재 천정배 의원 정도만 반대 의사가 분명하고 나머지는 다 찬성하고 있다. 여권의 강력한 후보라고 하는 손학규씨는 이명박씨보다 더 적극적 찬성론자다. 아이러니한 것은 협상 타결에 반대해 단식까지 했던 김근태 의원이 손학규 후보 영입에 가장 적극적인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이런 내부적인 사정 때문에 한미FTA가 이슈가 되지 못하고 있다. 어느 후보도 30%의 한미 FTA를 반대하는 표를 잃고 싶지 않은 것이다."

- 한미FTA와 관련해 참여정부를 비판하면서 대통령에게 미안하다고 하지 않았나.
"대통령의 변화에 따라 나도 변화할 수밖에 없었다. 진보세력을 공격하면서부터는 대통령 스스로 시장 만능론자가 되어버렸다. 최근 유시민 의원까지 시장 만능론을 얘기하고 그래서 갈라서야 했다."

- 민노당도 경선이 치러지고 있는데, 총괄 본부장으로 있는 것이 어떤 연관이 있나.
"내가 역할을 맡는 것에 대해 심상정, 노회찬, 권영길 후보도 동의했고 문성현 대표도 요청했다. 한 캠프에만 있는 것보다는 당 전체에서 필요한 일을 하는 게 낫지 않겠나."

- 민노당 외의 당에서 입당 제의를 받은 적은 없었나.
"작년 봄, 유시민 의원이 낚시하러 가서 묻더라. 한미FTA 계속 반대할거냐고. 그렇다고 했다. (심)상정이 얼마나 도와주고 있냐고도 물었다. 그래서 5년 전 노 후보 도와줄 때만큼 도와준다고 했다. 그게 입질이 아니었나 싶다."

- 유시민 의원이랑 친한가.
"유시민, 심상정, 정태인 우린 동기(서울대 78학번)다."

다음은 정 전 비서관 입당의 변.

1. "그래도 민주노동당에 들어오세요"

저에게는 이 말이 고 허세욱씨의 유언입니다. 숭실대, 동작지역위원회 주최의 강연이 끝나고 피곤에 찌들어 발걸음조차 제대로 떼지 못하던 제 앞에 택시 한 대가 스르르 섰습니다. 그는 택시노련 소속의 기사라고, 방금 강연을 들었노라며 운전을 하면서도 한미FTA에 대한 질문을 계속했습니다. 일주일 쯤 뒤 관악위원회 주최 강연 말미에 그는 저에게 왜 민주노동당에 들어오지 않느냐는 질문을 했습니다.

저는 그 분의 분신 소식을 청와대 앞, 문성현 대표의 단식농성장에서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의 유언을 실천합니다. 한미FTA는 너무나 어마어마한 정책이라 경제학을 전공한 저도 그 엄청난 영향을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민중들은 어떤 피해가 돌아올지 몸으로 먼저 느낍니다. 고 허세욱씨 는 민중이 겪을 고통을 미리 보여주었습니다.

2. 1992년 여름 박현채 선생이 저를 서교호텔로 불렀습니다. "DJ하고 손 끊었다". 72년 대선 때 '대중경제론'을 쓴 이래 줄곧 숨어서 정책을 보좌했던 인연을 끊은 겁니다. 이유는 92년 대선 때부터 이미 김대중 후보가 '뉴DJ플랜' 같은 신자유주의적 성향을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박현채 선생은 민중의 삶의 관점에 선 '민중의 경제학'을 세운 분입니다. 그 기준에 비춰 김대중 당시 후보의 경향은 이미 위험해 보였던 겁니다. 박 선생이 살아계셨다면 한미FTA에 찬성했을 거라는 유시민 의원의 진단은 지극한 무지의 소치일 뿐입니다. 저 역시 이제 이른바 민주화운동의 선배, 동지, 후배들과의 인연을 끊습니다.

이제 민주화시대, 또 산업화의 시대는 지났습니다. 그 왕년의 투사들이 함께 모여 한미 FTA 비준 동의를 꾀한다면 그들은 이미 민중의 편이 아닙니다. 그들은 재벌-재경부-조중동이라는 지배 삼각동맹의 꼭두각시일 뿐이며 민중의 시대를 가로막는 '시대의 퇴물들'일 뿐입니다.

3. 한미FTA는 이 나라의 사회경제체제를 송두리째 미국형으로, 더 정확히는 멕시코형으로 바꾸는 쿠데타입니다. 더 많은 시장으로, 더 많은 개방으로, 결국 양극화 일변도로 나아가도록 만드는 역진불가의 체제입니다.

이 나라의 일반 국민들이 그 내용을 알기만 한다면 도저히 찬성할 수 없는, 국민 전체를 건 일대 도박입니다. 이번 대선, 그리고 내년의 총선은 한미 FTA의 진실이 밝혀지는 정치 마당이 될 겁니다. 그리하여 민주노동당 후보가 한나라당 후보와 양립하는 순간, 그들은 대안이 뭐냐고 물을 겁니다. 이번 대선은 민주노동당이 그 대안을 제시해서 국민의 지지를 확인하는 장이 될 겁니다.

저는 고 허세욱 동지, 그리고 박현채 선생님의 뜻을 이어서 민중의 경제학을 실천하러 민주노동당에 들어왔습니다. 한미FTA를 저지하고 다가올 대선과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승리하도록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우리는 승리합니다. 감사합니다.


▲ 정태인 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이 10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미 FTA를 저지하고 대선과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승리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민주노동당에 입당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4275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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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인 "고 박현채 선생이 한미FTA 찬성? 유시민의 무지"  

유시민과 난 항상 신분격차 있었다"
30년 친구와 결별하고 '새 동지' 선택


[오연호리포트: 선택 2007대선⑤] 정태인, 왜 유시민과 헤어졌나

[오마이뉴스] 2007-08-10 15:13

오연호 기자

[연재]: 2007 대선, '아름다운 선택'으로의 초대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대선은 나라의 운명뿐 아니라 개인의 운명도 바꿔놓는다. 2007 대선 공간에서도 선택의 기로에 선 사람들이 있다. 대권주자에서 평범한 유권자에 이르기까지. 그들과 마주앉아 대화를 나누련다. 때론 세상이 '실패한 선택'으로 규정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곳 어느 한 켠에 있을 아름다운 도전, 아름다운 고뇌를 찾아내보련다. 그 과정에서 2007 대선의 시대정신을 추려담을 수 있다면 더욱 좋겠다. 이 글은 그 다섯번째다. <편집자주>
▲ 정태인 전 청와대 비서관이 9일 오전 민주노동당에 입당했다. 정씨는 참여정부 정책이 기본적으로 신자유주의적이라며 좌파는 커녕 '블레어 우파의 우파'로 불릴 수밖에 없다고 깎아내렸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유시민 의원 책을 읽었다. <대한민국 개조론>. 제목이 거창하다. 이미 베스트셀러란다.

내가 이 책을 읽고 싶었던 것은, 매력있는 정치인 유시민 의원이 어떤 생각으로 대선에 나서려 하는가를 알고파서였다. 하지만 가장 직접적으로는 한 기사 때문이다. 얼마전 <오마이뉴스>에 유시민의 출판기념 강연회 풍경을 담은 기사가 실렸는데 제목이 "유시민이 나오면 대선판 커진다, 열광하는 현장, 비호감 벽 넘을까"였다. 아마도 특정 대선주자에 대한 열렬한 지지 현장을 이다지도 생생하게 전한 기사도 드물 것이다. 다른 후보들이 질투할 정도였다.

정원 500석이 차고 보조의자까지 나왔단다. 강연 후에는 사 든 책에 사인을 받기 원하는 지지자들이 줄을 이었고, 뒤풀이 호프집에까지 100여명이 함께 했다고 한다. 대단하다.

그래서 나도 읽어봤다. 역시. 유시민 의원은 글을 잘 쓴다. 서비스정신이 있다. 술술 잘 읽힌다. 시원하다.

정태인 "유시민의 책은 서평 쓸 가치조차 없다"

그의 책의 핵심은 대한민국 개조를 위해 밖으로는 선진통상국가를, 안으로는 사회투자국가를 만들자는 것이다. 그 전제에 한미FTA가 있다. 현재의 고통일지라도 미래의 축복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유 의원은 책에서 이런 주장을 했다.

“박현채 선생은 한국 현대사의 고전 가운데 하나로 일컬어지는 <민족경제론>을 집필한 진보적 경제학자입니다. 한미FTA 반대파의 아이콘이 된 정태인 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도 물론 박현채 선생을 최고로 존경합니다....FTA를 반대하는 진보세력이 좋든 싫든 대한민국 앞에 놓인 길이 하나뿐임을 인정하고, 비판할 것은 비판하되 큰 틀에서는 이와같은 국가발전전략을 수용하고 협력하는 결단을 내려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작고하신지 벌써 12년이 되는 박현채 선생도, 만약 살아계시다면 그러하실 것으로 저는 믿습니다.(32-42쪽)”

그렇다면 한미FTA 반대의 아이콘 정태인(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은 이 대목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궁금했다.

그래서 그의 오랜 친구 정태인씨를 만났다. 둘은 모두 서울대 경제학과 78학번이다. 한미FTA가 추진되기 전까지 두 사람은 30년 동지였다. 정태인씨는 말했다. "유시민의 책은 서평 쓸 가치조차 없다. 나는 그와 결별했다".

그 정태인씨가 오늘(10일) 오전 민노당에 입당했다. 생에 처음으로 정당의 당원이 된 것이다. 이유는? '새 친구' 심상정 의원에 반했기 때문이란다. 그와는 한미FTA 반대 동지다. 민노당에서 대선을 맞아 심상정 의원과 함께 한미FTA 반대를 제대로 해보려 하기 때문이다. 공식직책은 한미FT저지 사업본부장.

그런데 공교롭게 심상정도 서울대 78학번이다.

정태인. 그에게 한미FTA는 무엇이길래 30년 친구 유시민을 버리고, 새 동지 심상정이 있는 민노당에 입당했을까? 처음 그를 만나고 싶었을 때는 유시민의 책을 어떻게 비판적으로 읽어야 하나를 묻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막상 만나고 보니, 정태인의 선택이 더 흥미로웠다. 아니 유시민, 심상정, 정태인 3인의 서울대 78학번이 대선공간에서 벌이는 새로운 관계가 '세상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정태인과의 만남은 8일(수) 저녁 광화문의 한 음식점에서 이뤄졌다. 우리는 저녁식사를 하며 2시간 반가량 대화를 나눴다. 맥주잔을 기울이면서. 20년 지기 선후배여서 '야자타임' 어투가 되기도 했다. 때론 두서가 없었다.

나는 자연스런 인터뷰를 위해 무엇을 위한 만남인지를 사전에 밝히지 않았다. "선배, 오랜만에 저녁이나 합시다"였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이 기사는 뭐가 포커스인데?"라고 질문을 몇차례 했다. 인물연구 정태인일 수도 있고, 인물연구 정태인, 노무현, 유시민, 심상정 일 수도 있다고 했다. 우리의 대화는 그의 마지못한 허락으로 처음부터 녹음되었고, 오마이뉴스 인턴 기자(김한내)는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채 현장에서 노트북으로 기록했다.

어떻게 인터뷰를 정리할까? 횟감에 '정리'의 칼을 들이대는 순간 신선도가 확 떨어질 게 분명했다. 그래서 '날 것' 그대로 전달한다. 재정리 하지 않았다. 이야기가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할 것이다. 말투도 고치지 않았고, 어떤 해설도 보태지 않았다. 자, 지금부터 독자여러분을 저녁밥상을 앞에 둔 선후배의 저녁 술자리로 초대한다.

"(유)시민이와 나는 항상 신분격차가 있었다"

- (유시민의 책 <대한민국 개조론>을 보이며) 이거 읽어봤어요?
"<한겨레21>에서 서평 쓰라 그랬어. (근데 안 썼어, 청탁한 기자에게) 서평 쓸 가치가 없다 그랬어. (유시민) 자기주장이거든. 대부분은 자기 보건복지부 장관할 때 하소연 뭐 이런 거."

- 이번에 민노당 입당 의미는?
"한미FTA."

- 민노당 밖에서 사회단체를 다 아울러 한미FTA 반대 해왔잖아.
"난 개인적으로 움직였어. (FTA반대하는 연대단체인) 범국본 정책자문단장 정도 내가 맡았는데…. 한미FTA (반대운동의) 발은 민노당 밖에 없어요. 실제로 전국적으로 움직이려면 전국조직 있어야 하잖아. 민노당이 (이번) 대선에서 다섯개 위원회로 재편 했어요, 전체를. 비정규직, 한미FTA 등 주제별로. 그중 하나 (한미FTA반대 사업)본부장 하는 거지."

- 그전에 심상정 의원 지지한 거는 타이틀이 뭐?
"자문위원이지. 한미FTA 때문에 만난거지 뭐."

- 무슨 뭐 대학친구라며.
"대학교 때 같은 학번이지, 근데 뭐 알았나."

- 심상정 의원은 그러면 과가 다른가?
"(서울대) 사대 역사교육과. 시민이는 (나랑 함께 서울대) 경제학과."

- 유시민 의원과는 친했나.
"같은 과니까. 근데 친하진…. 상정이나 시민이는 리더고, 나는 돌 던지는 사람인데. 신분의 격차가 커서, 하하하. (걔들은) 당시 학생운동 지하에 있으니 지들끼리 돌아다니고 나는 매일 열두시쯤 오더(order) 받아. 걔네는 전술 짜고, 나는 돌 던지는 애고.

시민이랑은 항상 그 정도 신분의 격차가 있었지. 가령 시민이는 MBC하면 난 CBS(라디오), 시민이 <동아> (칼럼니스트) 난 한겨레, 시민이 우리당 난 민노당.

- (유시민이) MBC <백분토론> 진행할 때 CBS <시사자키> 진행했잖아요.
"그랬지. 그 정도의 신분격차가 계속 유지된 거지. 그동안 좀 가까워졌다가 다시 신분의 격차가 벌어진 거지."

"유시민과 함께 노무현 후보 TV토론 답변 작성"

- 근데 노(무현) 캠프엔 어떻게 해서 연결된 거예요, 어떤 인연으로?
"2001년 11월에, 지금 (청와대)비서관하는 한 친구가 대통령 누구 됐으면 좋겠냐 해서, 노무현 그랬더니, 자기 노무현 캠프서 일하는데 경제학자가 없다고 해서 그때부터…. 가서 한 한 달쯤 지나서 유시민(이 노 캠프에) 왔고."

- 타이틀이 뭐였어?
"아무 타이틀 없었지. 그러니깐 첨에 가서 한 일이 경제학자들 불러다 대통령(후보 노무현) 놓고 토론시키고, 그 담에 시민이랑 내가 경선준비 했지. 그땐 지금처럼 정책 정교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TV토론에 나올 질문에 후보 답변 만들어주는 거지. 2분짜리 답변으로. 5년 전과 비교하면 지금 엄청 발전한거지. 지금은 정책을 보다 정교하게 만들거든. 그때는 답만 있었지. 이명박은 딱 5년 전 수준이야, 답만 만드는."

- 그럼 그렇게 하다가 청와대로 들어간 거야? 인수위(원회) 단계부터?
"응. 나랑 유시민(을 포함해), 대통령이 당선된 다음날 젊은 학자 6명 불렀어요. 당신들이 인수위 구성해야 한다. 당선 다음날이니 얼마나 기분 좋아. 여섯명 불러 처음 한 말이 '혹 뗐다'였어. 정몽준 지분 줄 필요 없으니."

- 음… 근데 이제 결국 (정태인 선배는) 한미FTA 반대에 유시민 의원(이 그의 책에서) 표현한 것처럼 하나의 아이콘이 돼버렸는데…. 제가 오늘 여쭤보고 싶은 게 도대체 왜 우리가 이렇게 하나의 사안에 대해서 옛날에 함께했던 사람들이 함께하지 못하는 지경이 됐을까, 그게 핵심이에요. 소통의 부재 뭐 그런 게 있는 거 같아, 아니면 기본적으로 이 사안을 바라보는 가치관, 이데올로기 차이 같아요?
"대통령이 바뀐 거지."

- 근데 왜 대통령이 바뀐 거야?
"그러니깐 개혁론에서 보자면, 첨에 개혁론은 사회대통합, 사회협약 이쪽이었는데 이런 거 1~2년 지나며 포기한 거야. 첨에 물류연대 등 노조랑 몇 번 부딪치고 나서 이건 안된다. 그담이 대연정, 옆으로의 연합. 그것도 안 되니 외부쇼크에 의해 내부개입 하겠다. 한미FTA는 통상문제 뿐 아니라 내부 민영화와 연결된 것이지."

- 선배는 언제 (한미FTA 추진 사실을) 첨 들었어요?
"(2005년) 11월 첨 들었어. 난 이미 행담도(사건) 땜에 짤린 상탠데. 문성근한테 연락이 왔어. 한미FTA 추진된다, 청와대 내 반대할 사람 하나도 없다, (반대할) 경제학자 없으니 대통령 한번 만나줬음 좋겠다."

- (노무현 대통령은) 근데 (한미FTA에 대해 줄곧) 굉장히 확신에 차 있어요.
"점점점. 일단 저질러진 물이니 스스로를 세뇌하고, 계속 (장점이 강조된) 그런 보고를 받고. (내가 문성근 요청 받고 그후 몇몇 한미FTA 반대자들과 대통령 만났을 때) 마지막으로 요청한 게 대통령이 드라이브 걸면 온통 그쪽으로 장밋빛 보고서 올라온다, 근데 대통령이 신중하면 반대쪽도 올라올 것이다(라고 했어요)."

- 이 책 읽어보면 유시민 의원도 (한미FTA 추진에 대해) 대통령 못지 않은 확신을 갖고 있는데.
"이미 했으니깐, 저질렀으니."

"시민이도 처음에는 한미FTA반대 했는데..."

- 대통령 자문하던 시절, 2001년 11월, 정태인과 유시민의 경제노선이랄까, 그런 게 비슷했을 것 같은데, 그땐.
"시민이는 독일형. 독일에서 공부했으니깐. 나는 스웨덴형. 둘 다 유럽형인데 대륙형, 북부형 차이 있지만 큰 차이 없었지. 근데 유시민은 멕시코형으로 바꾸자는 거지. 미국과 FTA 맺으면 멕시코처럼 되는 거지."

- 스웨덴형의 핵심은?
"사회적 대타협, 연대정책이지. 스웨덴형이 복지가 훨씬 더 보편성이 강하고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이 강조되고, 독일형은 복지노선이 스웨덴보다 훨씬 덜하지. 노조가 스웨덴보다 덜 협조적이고."

- 지금 두 사람 차이는 한미FTA만이 아니잖아.
"시민이는 자유주의 성향이 원래 강해. 근데 이제는 신자유주의적이지. 대통령이 (2002년) 후보일 때 한번 그러더라고. 유시민은 자유주의자고 정태인은 좌파 맞죠, 이러더라고. 이 정도 차이가 있었는데, 유시민은 이제 신자유주의라 봐야지. (유시민이 책에서 주창한) 사회투자국가가 결국 제3의 길인 거고 영국노동당 캐치프레이즈인데 대처가 완전히 신자유주의 국가로 만든 다음에 과거 복지 정책을 타협적으로 만들어 놓은 거다. 지금은 두 개 다 하자는 거지. 대처와 블레어 동시에 하겠다는 거지."

- 그 책보니깐, 전략과 그 방향은 좌파식으로, 그러나 실행은 우파식으로 하겠다고 하던데.
"다 아니지, 다 우파야."

- 한미FTA에 대해 유시민 의원과 상의한적 있나?
"시민이도 첨에는 반대했지. (내가 반대문건 만들어 노대통령에게 전할 때) 유시민과 같이 문건 만들어 검토하고 함께 들어간 거니깐. 대통령하는 일에 시민이는 정치적으로 반대하는 경우는 없으니까. 이라크 파병도 그렇고."

▲ 2002년 12월 19일 밤 개혁당사 정문 앞에서 손을 맞잡은 노무현 당선자와 유시민 당시 개혁국민정당 대표.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두 사람의 차이는 어느정도? "완전히 물 건너간 거지"

- 근데 지금 보면 두 사람 차이가 어느 정도 차이야?
"물 건너간 거지. 한미FTA (추진을) 얘기하면서 좌파라는 사람이 세상에 어딨어. 신자유주의야 정확히 얘기하면. 블레어 우파의 우파라 할 수 있지. 유럽적 기준으로 보면 (제3의길을 주창한) 기든스가 블레어 우판데, 그 중에서도 우파 정책만 뽑아냈으니 블레어 우파의 우파지."

- 그러니 이거는 어떤 소통의 부재가 아니라 사회와 세상을 어떻게 바꿔나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기본생각이 나눠지고 다원화 된 건가?
"완전히 건너간 거지. 한미FTA 하겠다는 건 완전히 다른 거지. 한나라당 정책이야 정확하게. 재벌정책이고. 재벌, 재경부, 조중동의 정책이라고. 우리나라 지배계급의 정책이라고. 일거에 그들의 정책을 환원 불가능한 구조로 만드는 거지. (이렇게 되면) 민주화세력이란 건 이제 없어요."

- 왜 그렇게 됐나.
"끌려간거지 뭐. 지배계급이랑 싸워봤자 남는 거 없으니 쓸데없는 언론이나 이런 거나 붙잡고(싸우니)."

- 우리사회에 크게 정치권력, 경제권력, 언론권력이 있는데 (한미FTA 추진은) 경제권력에 졌다는 것?
"투항한 거지. 그러면서도 사회정책은 조금 더 진보적인 것을 한다는데 실효성이 없어요, 증세와 결합 안되면. 기본적으로 신자유주의와 한미FTA 기조는 감세론이잖아. 일관성이 없는 거지. 표현하자면 강둑 무너뜨리고 양수기 보급하겠다는 거거든. (유시민이 책에서 찬양한) 2030(정책)이 그거지."

- 노대통령도 유 의원도 그렇게 말하는데, (한미FTA) 반대자들이 일어날 상황에 대해서 너무 비관적으로,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서 그런 거 아니냐 하면서 우리 국민은 그것을 이겨낼 저력이 있다고 한다.
"그래 그게 유일한 대책이라니깐."

- 너무 비관적으로만 예단하는 거 아니냐 하는데.
"최악의 상황을 예측해서 정책을 발표해야 하는데 그냥 국민 믿는다? 근데 이게 불가역적 성격이 있어서."

- 근데 내 궁금증은 왜 그렇게 확신에 차 있냔 말이예요, (만약 정태인 선배의 주장처럼)그토록 무대책이라면. 우리 그 옛날 운동했던 사람들 최소한 양심은 있잖아요?
"양심? 양심 없잖아. 여권에서 한미FTA 강하게 지지하는 사람이 손학규야. 근데 우리 박형규 목사, 김지하 모두 (손학규를) 지지하잖아. 그 사람들 자꾸 하는 얘기가 이거예요. (80년대 운동권이 주장하던) 외채 망국론, 그거 틀리지 않았느냐. 그러니 한미FTA 반대자들이 주장하는 비관론도 그럴 것이다."

- 실행자들도 (한미FTA의 결과를 현재로서는) 누구도 제대로 예측 못한다는 거 잘 알텐데, 추진을 하면서도 같은 얘기 하더라도, 거대한 파도가 몰려오고 있다, 잘 대비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고 함께 잘 해보자, 이렇게 차분히 설득하는 게 아니라 (한미FTA 반대자들을) 때려잡는 화법이잖아요?
"진취적인 거 같거든, (추진을 하는) 도전이. 반대하는 사람들은 뭔가 꾀죄죄한 거 같고. 하하하. 기본적으로는 규제완화와 공기업 민영화예요, 하고 싶은 거는. 신자유주의 기본원리고."

"앞으로 FTA토론하면 시민이와 붙겠지"

- 유시민 의원은 언제 마지막으로 만났죠.
"올봄 낚시 갔지. 둘이 갔지, 장관때. 그게 유시민 만난 거 마지막. 근데 별 얘기 안했어. 계속 한미FTA 반대할거냐? 응. 심상정 얼만큼 도와 주냐, 노캠프 만큼? 응. 자기 도와 달라 하려 했던 것 같은데."

- 정말 대선 나온대요?
"나온대잖아. 18일 선언한다메. 그때는 대선 안한다 했었는데 국회의원도 하고 싶지 않다 뭐 이랬는데."

- 대통령이 출마 말라 했다는 소문도 있던데.
"(고개를 저으며) 대통령 후계자로 가능하기만 하다면 유시민이 젤 맘에 들지. (노대통령이) 시민이한테 지도자로서의 언행을 삼가라고 한 적도 있었는데."

- 김영춘 의원이 그랬다고 하잖아요, 유시민 의원에 대해. 어떻게 저렇게 옳은 얘기를 저렇게 뭐가 없게 하느냐.
"그말이 제일 적합해."

- 대학 때부터 친구였으니까 그때부터 그런 면이 있었어요?
"있지. 말 잘 하는데 남한테 상처주지. 토론 방식이 상대방 바보 만드는 것 아니야."

- 노무현(대통령)과도 닮은 면이….
"그런 점이 닮은 점이 있지. 나도 독설이라 하지만 나보다 훨씬 독설이지. 냉정한 거야."

- 대학교 다닐 때도 둘이서 논쟁했어요?
"대학교 때 논쟁할 게 뭐 있어. 걘 이론가고 난 돌 던지는 사람이었다니깐. 하하. 한미FTA 토론에서 정부가 계속 밀리니까 청와대에서 유시민을 내보내자고 했었대. 지금은 한미FTA가 끝났다고 생각하니 잠잠한데 토론하면 시민이가 나오겠지. 우리 둘이 붙겠지 뭐. 과거엔 내가 개인이었으니 (나를 출연시키는 게) 방송사가 맘대로였지만, 시청률 높이는데 도움되면 부르고 아니면 마는데, 이제는 민노당 한미FTA대책 본부장이라는 직책이 있으니 나를 불러야지."

- 근데 정태인, 유시민처럼 한미FTA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들 간의 논쟁을 통해 국민들이 차이를 확인하고 더 공부하게 되면 좋을텐데, 이 이슈가 대중들 볼 때는 너무 복잡해서….
"(사안이) 너무 커. 국민들의 두 가지 편견이 있는데 하나는 이미 끝났다고, 하나는 나랑 관계없다. 너무 크면 실감 안난다고."

"FTA반대하는 김근태가 찬성하는 손학규를 끌어들인 건 코미디"

- 근데 선배가 민노당 당적을 갖는다는 거, 그건 개인적으론 어떤 의미가 있나요?
"(한미FTA 반대하며 분신한 택시노동자) 허세욱씨 때문인데…. 내 강의를 두 번이나 듣고 강의 마친 나를 공짜택시 태워준 사람이 그분이지. 한번은 관악구에서 강연했는데 어디서 본듯한 사람이 질문을 하는데 왜 민노당에 입당 안하냐. 내 답이 이미 내가 심상정 의원 돕고 있고 내가 들어가나 안들어가나 마찬가지다 했더니 그래도 입당하셔야할 것 같다. 그런데 나중에 택시노동자가 분신했다는 소식이 들리는데 직감적으로 딱 허세욱이라 생각했어. 나한테는 그의 유언이 민노당에 입당하라는 거지. 한미FTA반대 하다보니 개인적으로 하는건 문제가 있고 결국엔 민노당이 움직여야 해. 이럴 바에야 들어가 직접하는 게 낫다."

- 결국 오랜 친구 유시민과는 결별하고, 심상정이랑 함께하게 됐네. 하고 많은 정치인 중 왜 심상정?
"한미FTA에 관해선 심상정이 발군이야. 경제를 모르는 친구가 재경위 활동 잘 하는 것도…. 굉장히 똑똑한 거야. 대학 때 이름이야 알았지. 나야 알았지, 심상정은 나 몰랐지. 심상정이 총여학생회 만든 사람이야. 회장은 자기가 안하고 남 시켰지만."

- 대선 국면에서 한미FTA가 어떨 거 같아, 주요핵심 의제로 등장할 것 같아?
"한나라랑과 범여권 그쪽은 뭉개려하지. 자기들한테 불리한 이슈니깐."

- (범여권 신당에 합류한 시민사회진영인) 미래창조연대가 원래 애초에는 한미FTA 반대를 천명했는데, 반대가 아닌 유보로 후퇴하고….
"내년 4월 이후 처리, 총선이후. 사실상 찬성이지 뭐, 그정도 갔으면. 지금도 통합신당 하려다 보니깐 한미FTA를 못 내세우지. 왜냐면 제일 유력한 손학규가 적극 찬성이니. 천정배만 반대지. 코미디야. 김근태 같이 반대에 단식 투쟁까지 한 사람이 손학규 끌어들이고."

- 선배가 희망하는 바는 대선공간에서 한미FTA가 어떻게, 어떤 방향에서 어느 정도 이슈가 되어야한다고 생각해요?
"최대 이슈가 되면 민노당에서 대통령도 나올 수 있지. 40%가 찍을 거 아냐. 누가 민노당 후보로 초기에 얼마나 뜨느냐가 중요하지. 초기에 민노당 후보가 상당히 '아 가능성 있다'라는 거 보여주면 확 늘어날 거거든. 노무현이 그랬듯이. 그걸 못하면 지금 민노당 당 지지율에 멈출 거고."

- 문제는 국민들이 한미FTA가 자기랑 상관없다고 생각한다면 이게 잘 연결이 안될 수 있잖아.
"언론의 문제지. 그래도 40퍼센트는 반대해. 핵심반대는 30퍼센트이고 언론보도에 따라 60까지늘기도 하고."

▲ 정 전 비서관은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과 함께 '반 한미FTA 동지'로 손을 잡았다. 30년 지기 유시민 의원과는 "이제 완전히 갈라섰다"는게 정 비서관의 입장이다.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내 생에 이렇게 마음 편한 대선은 없었다"

- 근데 여권도 결국엔 한사람 되지 않을까? 현재는 지리멸렬하지만. 만약 유시민이 나오면 가능성 어떻게 봐요. 여권 내에서.
"이해찬, 한명숙한테도 안되는데?"

- 최근 여론조사에선 두 사람과 비슷하게 나오는데.
"인지도는 물론 높지. 근데 모르지 뭐. 이렇게 마음편한 대선이 내 생애엔 없었다."

- 어떤 점에서 마음편해요?
"딴 때야 노심초사했었지. 97년엔 내가 영국에 있어 디제이가 정말 될 수 있을까 뭐 이랬고, 노무현 때는 하루하루 지지도 떨어지고 이러면 막 그랬지만, 지금은 아주 고요한 감정이지. 난 한미FTA반대 투쟁만 하면 되니깐."

- 현재 지형을 보면 이번 대선에서 한미FTA는 어느 정도 이슈 될 것 같아?
"하기 나름이지. 언론이."

- 언론은 어떻게 해야할 것 같아, 대선국면에서 한미FTA에 관해?
"오마이뉴스, 아무것도 안하고 있잖아, 요즘."

- 언론이 어떻게 해야 하냐고.
"한미FTA가 내가 보기엔 우리나라 생긴 이후 가장 큰 정책인데 그게 삶에 어떤 영향 미칠까 하나하나 찾아내야지."

- 민노당에서 한미FTA를 대선이슈로 만들려면 국민들이, 아 이거 내 문제다라고 생각할 수 있게 해야할텐데, 뭐 슬로건을 만들든가.
"우리 아이들 살리자가 내가 슬로건으로 만든 거잖아. 광우병, 물민영화, 건강보험 이거가 주부들한테 먹히는 이슈예요. 우리나라가 광우병에 경각심 없어서 그렇지 내가 영국에 살땐…. 물민영화는, 수돗물 못 먹는 거지, 아주 돈 많은 사람 말고는 물 못 먹지. 우리 지금 물 쾅쾅 쓰지만. 그리고 건강보험 없어질 수 있다. 미국에선 5000만명이 아무런 보험이 없다고. 그래서 언제나 미국대선에선 제1 이슈가 건강보험이에요."

"유시민의 국가개조론은 모순이지, 말도 안돼, 언발의 오줌누기야"

- 민노당에서 본부장 맡으면 매일 출근?
"그러게 미치겠어."

- 월급은?
"안준데. 정무직이라. 높은 사람이라고."

- 그런게 어딨어? 민노당이 한미FTA저지 이전에 노동력 착취부터 바꿔야하지 않나(웃음).
"돈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오마이뉴스처럼) 소프트뱅크에서 투자도 안 해주고. 당 재정을 어떻게 운영하는지 정말 모르겠어."

- 한미FTA 말고 올 대선에서는 뭘 해야하는 거예요? 뭐가 좀 국민의 이슈가 돼야 한다고 봐요?
"한미FTA가 워낙 커서…."

- 국민들이 아 이건가 아닌가 뭔가 좀 고민하게 만드는, 꼭 필요한 이슈가…. 한미FTA말고.
"나는 대선에 대해 고민 하나도 안하기 때문에. 한미FTA 저지가 대선승리의 길이다, 이게 내 목표이기 때문에."

- (유시민의 책을 들어 보이며) 여기서 유시민 의원은 두 가지를 얘기하고 있더라고요, 대한민국 개조를 위해 밖으로는 선진통상국가를, 안으로는 사회투자국자를 만들자고.
"둘이 대단히 모순적인 관계지. 한미FTA 해서 선진통상국가 만들면 이론적으로 맞는 정책은 감세론이지. 근데 사회투자국가는 이론적으로 증세론이거든. 한미FTA라고 하는 그 엄청난 것에서 움직이는 양극화 경향을 우파의 우파 정책 갖고 막는다는 건 언발에 오줌누기지, 말도 안되지."

- 유 의원은 이 책에서 의료문제에 대한 한미FTA는 다 잘했다고 써놨던데?
"무식한거야, 정말 모르고 했구나. 또 한 번 전에 시민이랑 낚시를 갔는데, 모르더라고 내용을, 한창 한미FTA 진행되고 있는데…."

- 이 책은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은 것이 현실에서는 통합될 수 있다, 흰고양이든 검은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 진보이고 보수인 게 뭔 상관이냐, 현실에서 왕인 국민을 편하게 모시기만 하면 된다, 뭐 그런 주장들이 나오죠. 서로 모순돼서 안된다 하는 사람들을 향해 너희는 잘 몰라, 이렇게 조화로운 조합이 있을 수 있는데 왜 그걸 옛날 패러다임에서 고민하고 있냐, 이런 거로 보이거든요, 유시민 책의 핵심이.
"맞아. 내가 아까 그랬잖아. 걔네는 굉장히 진취적인거 같고, 우리는 찌질이 같다고. 새로운 시스템이 도입되면 일반 국민들이 적응하기 시작하잖아요. (감세를 기본으로 한) 한미FTA가 추진되고 있는데, 사상과 관념이 바뀌는데 그 상황에서 증세하자 그러면 누가 받아들이겠어. 시스템 자체가 양극화가 안 되도록 막는 시스템이 장착이 되어 있어야 증세가 가능한 거지. 경제를 모르니까 그런 거지. 공무원들에게 빠진거지."

- 노대통령이나 유 의원이나 모두 공무원 예찬론자던데.
"수족처럼 움직이는 공무원들이 열심히 일하는데, 얘들이 거짓말 한다는 생각을 못해요. 엄청 열심히 일해요. 지시하면 그 다음날 바로 탁탁 나오고. 원래 지식이 있거나 외부에서 그것에 대해 반대하는 정보라든가 지식이 제공 안 되면 그 프레임 안에 빠지게 되는 거라고. 그게 대통령이…."

"박현채 선생이 살아있다면 한미FTA 찬성? 천만에"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 근데 이제 이 정태인, 유시민 두 사람이 한미FTA 반대와 찬성을 너무나 확신을 가지고 하잖아요? 두 선배와 인연이 있는 나로선….
"시민이랑 니가 무슨 인연이 있어? 우리야 <말>지에서 10년 동안 동고동락했지만(웃음. 나는 <말>지 기자, 정태인은 편집위원이었다)."

- 한 명의 국민, 독자가 보면, 한미FTA 내용 전체를 잘 모르니까, 유시민의 책도, 선배의 주장 글도 이거 시원스럽게 잘 썼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30년 친구이자 한 대통령을 함께 만든) 두 선배의 서로 다른 얘기 들으면 우리로선 갑갑한 거야. 둘 중에 한 사람은 국민을 상대로 (사기를)….
"우리 9월 달에 한미FTA에 관해 붙을 거야. 진검 승부. 이거 시청률도 높을거야(웃음)."

- 지금 둘 중에 한 사람은 잘못된 얘기를 하고….
"시민이가 자극한 거 아니야. (정태인의 스승이자 민족경제론을 만든, 작고한) 박현채 선생도 한미FTA를 찬성했을 것이라고 책에 썼는데, 이건 나를 의식한, 자극하려는 건데. 분명 내가 뭘 써주길 바란 거라고."

- 선배는 박현채 선생이 살아있으면 어떻게 했을 거라고 봐?
"박현채 선생이 살아있으면 당연히 반대하지. 박현채의 민족경제론의 핵심이 뭐냐면, 기본적으로 민중의 삶은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입장에서 생각하라는 건데, 나빠질 게 100% 확실한데 그걸 어떻게 찬성해, 말도 안 되지. 은근슬쩍 노무현, 유시민이 박정희에 섰다니깐. '박정희 대 박현채' 해놓고."

- 유시민 의원이 이 책에서 전반부에 박현채 선생 이야기를 썼죠. 정태인도 언급하면서.
"그건 나를 의식한 거지. 유시민이 전남에 내려가서 강연할 때 그 얘기를 처음 했잖아. 박현채가 살아있으면 찬성했을 거라고. 내가 박현채 얘기 나오면 발끈하거든."

- 우리 사회가 민주화도 되고 성숙되면서 사회의 여러 분야가 발전했는데, 그 가운데 지식사회도 있을텐데, 그럼 그렇게 중요한 이슈인 한미FTA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아주 뜨겁게, 제대로 논쟁이 되어야할텐데, 상당히 쿨해요, 쿨.
"이슈가 너무 커서 사람들이 몰라."

- 자기 분야만 공부들 해서 그런가.
"지식사회의 수준이라면, 학진(학술진흥재단)에 있었던 사람으로서 나도 반성해야지. 학진에 내가 있었잖아 시민이랑 같이. 이해찬이 교육부장관이었는데 공무원으로 우리 둘 쓸 수 없으니깐 학진에 다 보내놓은 거지."

- 그러고 보니까 학진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선배랑 유시민은 엄청나게 오래 함께 있었네. 비슷한 영역에서 계속 왔다 갔다. 거기서도 아까 말한 신분격차 있었어요?
"학진에서 걔는 기획실장, 난 전문위원."

- 결국 노무현(대통령의 한미FTA 추진)이 두 사람 갈라 놓았네.
"그렇게 됐지. 이해찬, 유시민 다 신자유주의적 속성이 강했던 사람들이지. 경쟁 이런 거."

- 본인들이 똑똑해서 그런가?
"그런 면도 있지. 냉정하고 그런 면이 있다. 학교 다닐 때 난 평범한 학생이었어. 시민이는 워낙 독특한 애야. 말을 정말 잘했지 정말 잘했어."

▲ 지난 2002년 세종로 종합청사 별관에서 열린 인수위 첫 전체회의에 참석한 정태인 경제1분과위원(맨왼쪽)등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위원들이 노무현대통령 당선자의 인사말을 경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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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린 너무 달라... 만날 이유도 없어"

- 지금 현재 시점에서 유시민 의원과 선배는 사회 경제에 대한 정책에서 어떤 공감대가 있나? 같은 게 뭐가 있어.
"한미FTA가 없다면 (유시민이 주장하는) 사회투자국가 만들기의 몇 가지 아이디어는 쓸 수 있어."

- 같이 생각하는 게 별로 없잖아, 어쨌든 지금.
"거의 거꾸로지. 의료에 관해서도 시민이는 의료민영화거든."

- <타는 목마름으로> 함께 불렀던 사람들이…. 지금은 공감대가 거의 없네?
"아, 민주화시대는 끝났다니깐. 많은 정책에서 차이가 나겠지만, (설혹) 아무리 똑같아도 한미FTA 상황에선 쓸 수 있는 정책이 거의 없어."

- 유시민 의원은 그에 대해서 너무 한미FTA만 생각한다, 그렇게 얘기할텐데.
"한미FTA가 모든 정책 만드는 것보다 더 큰 정책인데 뭐. 무역협정이 아니라니까 미국식FTA는, 제도를 다 바꾸는 건데."

- 이런 두 선배의 분화가 또 다른 발전을 위한 성장통인가?
"민주화, 산업화 이런 시대는 끝난거지. (심)상정이 구호 중에 시대교체라는 말이 있거든. 그 말 내가 만들었는데, 시대가 달라진 거야, 이제 분화되고."

- (미련이 있어서 다시 물어보는데) 유시민, 정태인 두 사람이 현재 굉장히 다른데 이게 나중에 합쳐지기 위한 성장통으로 볼 수 있는건가?
"한미FTA가 있는 한 합쳐질 가능성은 힘들어. 내 평생이 걸려있는 문제인데. FTA와 민영화와 싸우는 게 내 평생 할 일이니깐. 둘 다 전화 안한지도 오래됐지. 그날 이후로는. 그게 봄일 걸?"

- 정책에 대한 반대는 반대고, 만날 건 만나야지.
"둘이 만날 이유가 뭐 있어."

- 그렇다고 함께 낚시갈 이유도 없는 건 아니잖아.
"… …."

낙관의 유시민, 비관의 정태인... 그들의 10년 후는?

- 근데, 역사적 낙관 있잖아요, 이런 와중에서도 사회가 점점 좋아지고 있다는 건 느끼나요?
"(한미FTA의 부정적 측면이 현실화되면) 그 막연한 우리사회의 진보에 대한 신념이 무너질 수 있어."

- 어떤 시스템, 어떤 선택, 정책들이 정권에 의해 주어진다 하더라도 결국 시민사회의 힘이라든가 자각된 지식인, 국민들의 자각에 의해 끊임없이 그것의 모순을 발견해내고 발전된 역사였다고 우린 믿고 있잖아. 근데 거기에 대한 회의를 갖게 된다는 거야?
"(한미FTA가 현실화되면) 낭떠러진데. (비록 떨어져) 죽지 않아도 다시 올라가려면 너무 오래 걸리지. 한 30년?"

유시민의 책은 낙관으로 가득하다. 정태인의 분석은 비관으로 가득하다. 10년 후에 두 사람을 다시 인터뷰 한다면?

<오마이뉴스>는 대선출마를 준비중인 유시민 의원에게 오래 전부터 인터뷰를 신청해놓았다. 그리고 조만간 가능할 것이라는 긍정적 답도 있었다. 그 인터뷰가 이뤄진다면, 오늘 이 글에 담긴, 유시민에게는 매우 까칠했을 대목들에 대해 충분한 반론 기회를 줄 예정이다.

그 과정에서 독자들이 30년 친구 정태인에 대한 유시민의 생각은 물론, 대선 공간에서 실종된 한미FTA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보는 기회를 갖는다면 좋겠다. 이것으로 그날의 저녁밥상을 치운다.

덧붙이는 글 | <오연호리포트: 선택2007대선> 다음 편은 또 다른 78학번의 선택 이야기다. 박형준. 그는 왜 이명박의 입이 되었나? 이 선택 시리즈에, 이 사람을 인터뷰했음 좋겠다 생각하는 독자가 있다면 댓글이나 쪽지로 전해주면 답 드리겠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427562

ㅁ 유시민, 복지부 장관 재직시 행한, 업무로 곤욕 치뤄- ‘치과의사회’는, 유 전 장관에게 “거꾸로 가는 구강보건상”을 수여하는 행사 갖기도 ==>
http://www.dailypost.co.kr/sub_read.html?uid=1657§ion=sc3§ion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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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엥란트


유시민 "민노당보다 한나라당과 합의가 낫다"
민주당 합당논의에 부정적, 노회찬의원 “유의원, 빠르게 기득권화‘ 비판
 
취재부
유시민 열린우리당 상임중앙위원이 문희상 열린우리당 의장이 2일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민주당과의 합당을 논의할 시기가 됐다고 한데 대해 "지도부가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특히 유 의원은 여소야대 정국에서의 정치적 공조에 대해서는 "민주노동당과 연합하기 위해서는 너무나 많은 비용이 들어서 차라리 한나라당과 합의하는 게 낫다는 지적이 많다"고 발언해 민주노동당과의 악연(?)을 재현했다.
 
유 위원은 3일 MBC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민주당이 합당을 하지 않겠다고 공식 의결까지 하는 마당에 통합할 방법도 없고 통합을 할 수 있다고 해도 통합이 바람직한지는 매우 의문스럽다"며 민주당과의 통합에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유시민의원은  "이게 무슨 조선시대에 여자를 보쌈하는 것도 아니고 싫다고 공개적으로 공식의결까지 하는 마당에 싫다고 하는 상대를 가지고 계속 결혼하자고 우기는 것은 저는 지극히 부적절하다"며 "통합할 방법도 없고, 통합을 할 수 있다고 해도 그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해서 매우 의문스럽다"고 반대입장을 정확히 했다.
  
유 의원은 "지금 우리당은 기간당원제도를 채택하고 있고 당원이 주인 된 정당을 채택하고 있는데 민주당은 그 당시로부터 아무것도 변한 게 없다"고 주장하고 "지분양보 등의 표현도 나오는데 다시 합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정치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여소야대 국면 도래에 따라 민노당과의 연대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는 부정적 답변으로 일관했다.
  
유 의원은 "우리당이 중도노선의 당이라서 왼쪽으로 가려면 민주노동당과 타협해야 되는데, 한나라당과의 타협을 위해 오른 쪽으로 이동해야 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폭으로 왼쪽으로 이동해야만 (민노당과) 협의가 가능하다"며 "이렇게 되니까 타협의 정치적 비용이 훨씬 더 민주노동당 쪽과 할 때 많이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그는 "예컨대 10가지 쟁점이 있을 때 민주노동당은 지금 10% 내외의 지지를 받는 정당이니까 합당한 대우를 받아야하나, 몇가지 쟁점에 대해서는 우리가 양보를 하고 나머지에 대해서는 자기당의 당론에 어긋난다 하더라도 받아줘야 되는데 민주노동당의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민주노동당 쪽으로 다 기울어진 안을 해줘야지만 협조를 받을 수 있다"며 민노당을 비난했다. 
 
이런 유 의원 주장에 대해 민노당 노회찬 의원은 "유 의원은 정치적 비용을 잘못 계산했다"며 "한나라당과의 타협의 비용을 개혁 후퇴에 따른 손실로 계산하지 않는 사고방식이 놀라울 따름"이라며 비판했다.
  
노회찬 의원은 "열린우리당이 민주노동당에게 자기들 주장을 100% 관철시키려는 것이 아니라면 개혁을 위한 양보가 뭐가 그리 어려운 것이냐"고 반문하고 우리당과 한나라당간 타협으로 결국 누더기가 된 과거사법의 예를 들고 "과거사법 협상 당시 민노당은 차라리 열린우리당 원안을 받겠다는 제안까지 했는데 결국 이렇게 된 것 아니냐"고 한 인터넷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반박했다.
  
노 의원은 "유 의원 발언은 개혁이 고통스럽다는 것에 대한 고백에 다름아니다"며 "지도부의 '실용주의'행태를 비판해서 상임중앙위원까지 오른 사람이 이를 옹호하는 발언을 한다는 것은 그 자신이 빠르게 기득권화된 것으로밖에 볼 수없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유 의원은 당의 정체성 논란을 빚었던 '철새 공천'과 관련해 "선거를 하다 보면 지면 비참하니까 어쨌든 이겨야 되지 않느냐 이런 생각 때문에 명분도 실리도 다 잃는 그런 결과가 됐다"며 "우리 정당사에서 보면 이런 것들이 항상 있던 일인데, 이런 오류를 이젠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비싼 수업료를 치르고 다시 한번 교훈을 확인하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해명했다. 
 
유 의원은 당내 일각에서 거론되는 정동영, 김근태 장관의 조기 복귀론에 대해선 "백설공주 없어도 일곱 난쟁이는 힘을 합쳐서 잘 살아야 한다"며 "일을 잘 하지 못해 선거에서 졌는데 일을 잘 할 생각은 하지 않고 합당이나 다른 사람을 데려올 생각을 하는 것은 낡은 정치문화의 유산에 젖어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정동영 통일,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의 조기 복귀론에 대해서도 "오죽 답답하면 그러겠느냐"며 "그러나 백설공주 없어도 일곱 난쟁이는 힘을 합쳐서 잘 살아야 한다"고 일축했다.
 
그는 "일을 제대로 못해서 지금 국민들의 외면을 받았는데 일을 잘할 생각은 안 하고 지금 누구 데리고 온다, 어디하고 합친다, 이런 발상 하는 것 자체가 일종에 낡은 정치문화의 유산에 젖어 있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고 비판했다.
 
유 의원은 "두 장관은 당의 중요한 자산이지만 내각에 들어간 이상 장관의 일에 충실해야한다"고 말했다.
 
유 의원은 이어 노선갈등 재연 우려에 대해 "중도개혁정당으로서 온건진보세력과 온건보수세력이 함께 손잡고 당을 하고 있기 때문에 때론 많은 절충과 타협이 필요하지만 넘어선 안될 기본선 같은 것도 있다"며 "그런 점들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해, 당내 논쟁을 피할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유 의원은 재보선 참패에 따른 지도부 사퇴론에 대해선 "이제 취임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고 당헌상 임기가 2년으로 돼 있기 때문에 지금 한달 밖에 되지 않은 의장보고 사퇴하라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주장했다.
 
유시민 의원은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을 표방하며 개혁국민정당 창당을 주도했으나 열린우리당과 통합과정에서 당원들과 의견충돌로 인해 당적을 옮겨 활동중이다.
 
그는 지난 재보선에는 '승리지상주의자'를 자처하며 민정당 출신 후보를 위해 유세지원을 했다.     

2005/05/03 [12:09]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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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엥란트

비정규직법안 놓고 열린-민노 설전
강행처리 방침 정부여당에 민주노동당, 노동계 국회 소회의장 점거 재연
 
김영국
“더 늦출수 없다” & “개악은 안돼”

경제적 양극화의 주요인이자 최대 노동 쟁점인 '비정규법안' 처리를 놓고 국회가 회의장 점거 소동으로 또다시 예고된(?) 파행을 재현하고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이하 환노위)는 오늘(22일) 예정된 비정규법안 심의가 민주노동당 의원들의 소회의실 점거로 불발되자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23일 오전 10시에 법안심사소위를 다시 열기로 합의했다.

법안소위 회의장에는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철야농성을 각오하고 여전히 점거를 계속하고 있다.
 
▲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환노위 소회의실을 점거하여 법안심사소위가 열리지 못하고 있다.     © 민주노총 제공

당초 환노위는 오늘 오후 2시부터 법안소위를 열고 정부가 제출한 비정규법안을 중심으로 ‘축조심의’(상세한 법안 검토를 위해 조문을 하나씩 낭독하면서 의결하는 심의방법)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환노위는 오는 23일까지 법안심사를 마쳐 6월 임시국회 중에 법안을 처리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민주노동당 의원들과 당 지도부 등 당직자들이 22일 오후 1시 50분께부터 환노위 소회의실을 점거, 법안 심사를 저지하고 나섰다.

비정규법안의 골자라고 할 수 있는 기간제 근로자 사용사유 및 파견업종 제한 등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으니 법안을 강행 통과하기 보다는 노사정이 대화를 더 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소위원회 위원장석에 앉은 단병호 민주노동당 의원은 "정부안 중심으로 강행 처리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노사정간 협상을 진행해왔으나 실질적으로 4월 한 달간만 유효하게 진행됐다. 이처럼 중요한 문제에 비하면 짧은 시간이다.”라고 주장했다.

단 의원은 “더구나 민주노총은 노사정대화체제 복원을 둘러싸고 어려움이 많았음에도 대화에 임해왔다. 그럼에도 정부와 경영계가 (지금에 와서) 대화를 거부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노사정간 대화 진행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단 의원은 "이번 임시국회에서는 쟁점만 정리하고 7∼8월 동안 다시 대화를 해서 그 이후에 법안을 처리해도 된다"고 말하고 "이를 수용하면 법안 심의에 임할 수 있다"고 밝혔다.


“비정규직 잘도 살겠다” 이목희 의원과 민주노동당 간부 설전

한편 그동안 노•사•정 협상을 주도해온 이목희 열린우리당 의원은 소회의실 앞에서 김창현 민주노동당 사무총장과 잠시 뼈있는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김 사무총장은 "대화를 하다 말고 힘으로 밀어붙이면 되느냐. 노동운동하던 사람이 그러면 안된다"고 항의했다. 이에 대해 이 의원은 "뭐가 아니냐. 그럼 비정규법안 계속 늦춰서 2008년까지 넘겨 놓으면 비정규직 노동자 잘도 살겠네”라며 응수했다.

이에 김 사무총장도 “지금 정부 법안대로 하면 비정규직 잘도 살겠다. 그거 솔직히 노동자들 다 비정규직 만들자는 법 아니냐”고 맞받았다.

그러자 이 의원은 "단병호(민주노동당) 안대로 할려면 룰라(노동자당 출신 현 브라질 대통령)가 집권해도 안된다. 민노당이 집권해서 한번 해보라”며 으름장을 놓았다.

이어 소회의실에 들어가서도 이목희 의원과 민주노동당 당직자간에 뼈있는 조크를 주고 받으며 폭소가 터졌다. 민주노동당의 한 최고의원이 대화 도중 이 의원의 소속당을 한나라당으로 잘못(?) 말하자 이 의원은 “난 열린우리당이라니까. 지역주의 선동의 원조이자 광주학살의 원흉(한나라당)하고 자유주의 정당(열린우리당)이 어떻게 같냐”고 주장했다.

이에 민주노동당 사무총장이 “요새 (열린우리당) 하는 일이 하도 비슷해서 그렇게 말한 것 같다”고 말하자 민주노동당 최고의원이 곧바로 “이목희 의원의 말에 동의한다. 섭섭하지 않게…”라고 자신의 발언을 수정하면서 또한번 폭소를 자아냈다.

비록 이날 소동에 큰 충돌은 없었지만 비정규법안의 중대성에 비해 노동계, 경영계, 정부의 입장 차이와 비정규직을 바라보는 관점도 각자 크게 달라 원만한 타협이 매우 어려운 형국이다.

특히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외치고 있는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 등 노동계는 비정규법안에 사활을 걸고 있기 때문에 이번 법안 처리를 그대로 두고 보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따라서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비정규법안 강행처리시 즉각 총파업에 돌입키로 하고 비상대기 하는 등 강력 반발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22일 국회 앞에서 ‘전국 동시다발 대국민 선전전’ 발대식을 열고 비정규 노동자의 권리 보장을 위한 입법과 이들에 대한 차별 해소를 촉구했다.

현재 민주노총은 산별대표자회의를 국회 민주노동당 의정지원단 사무실에서 진행중이다. 또한 내일(23일) 오전 10시 국회에서 양대노총의 입장을 담은 공동 기자회견을 가질 예정이다.

따라서 지난 2월 국회 때처럼 비정규법안은 파행 속에 진통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커지는 열린우리당–민주노동당 갈등, 여론조사로 끝장내자(?)

민주노동당의 저지로 비정규법안 심의가 이루어지지 못하자 이날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은 ‘강행처리’ 대 ‘개악저지’를 주장하며 기자회견을 갖는 등 여론의 명분을 얻기 위한 치열한 장외 성명전을 벌였다.

열린우리당 환노위 소속 의원들은 오후 4시30분 국회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국회법이 정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비정규직 보호법안을 조기 입법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또 “이미 논의는 충분히 했으며 이제 선택만 남았다”면서 “국회법에서 정한 모든 수단을 사용해 (6월 중에) 처리하겠다”며 강행 방침을 밝혔다.

또한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노사정 대화가 15차례 105시간 이상 계속됐다”면서 “더 이상 논의를 위해 비정규직을 보호하기 위한 법 제정을 늦출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마지막으로 "차별을 금지시키고 차별을 시정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지금 만들 것인지, 아니면 민주노동당이 점거 농성을 통해 주장하듯 자신들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비정규직의 처절한 고통을 계속하게 할 것인지, 차별과 고용불안에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의견을 묻고자 한다"라며 당 홈페이지 등을 통해 비정규직 노동자의 의견을 직접 청취하겠다고 밝혔다. 


▲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비정규직 보호 법안은 더 이상 늦출 수 없습니다`라는 제목의 기자회견을 열자(상) 곧바로 민주노동당의 반박 기자회견이 이어졌다. © 민주노총 제공

이에 민주노동당은 열린우리당 환노위 위원들의 기자회견 직후에 이를 비판하는 기자 브리핑을 열어 즉각 반박하고 나섰다.

심상정 의원단 수석부대표는 "이목희 의원이 브리핑을 하는 과정에서 민주노동당이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을 대변하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 보호를 외면하고 있다고 얘기했는데, 노동운동 경력을 자랑으로 삼는 이 의원께서 사실을 왜곡하고 반노동악법을 강행 통과시키기 위해 노.노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는데 대단히 서글픔을 금할 수 없다"라고 밝혔다.

심상정 의원은 "축구에서도 헐리우드 액션 자주하면 퇴장 당하는데 비정규직 양산법을 보호법이라고 계속 주장하는 것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두번 죽이는 것이다"며 “정부.여당의 비정규법안은 정규직 축소가 그들의 속내”라고 말했다.

심 의원은 정부 여당이 추진중인 법안 내용에 대해서도 “비정규직 보호의 전제는 망국적인 노동시장 유연화에 대한 대책을 세우고 비정규직을 줄여나가는 것”이라면서 “이를 위한 기간제 사유 및 파견업종을 제한하는 문제에 대해 정부.여당은 자본측이 반대한다는 이유를 들어 조금도 성의있는 노력을 진행하지 않았다.”며 정부여당과 사용자 측을 한묶음으로 비판했다.

한편 같은 당의 단병호 의원도 "정부에서는 차별을 해소하겠다고 하지만, 차별에 대한 기준이 없다"라며 "같은 사업장에서 같은 일을 하고 근속연수 등이 같다면 동등한 처우를 하도록 하는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라고 반박했다.

단 의원은 또 열린우리당이 홈페이지 등을 통해 비정규법안에 대한 여론조사를 하겠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 "인권위의 여론조사 결과 등을 통해 국민 여론은 이미 확인됐다"라고 반박하면서도 "열린우리당이 자의적으로 할 것이 아니라 민주노동당과 함께 공동으로 문안도 만들어서 공동여론조사를 할 의향이 있다"라고 역제안 했다.

한편 지난 4월 한길리서치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70%는 기간제 사용 사유를 제한해야 한다고 답했고, 83%는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을 채택해야 한다고 답한 바 있다. 현재 정부가 제출한 법안에는 이 두 내용은 담겨 있지 않다.

또한 단병호 의원이 작년 10월 노동법 전공 교수 41명을 대상으로 자체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교수들은 정부법안대로라면 기간제와 파견제가 급격히 늘 것이란 전망을 한 바 있다.


노동.시민사회단체, 비정규직 권리보장 입법과 김대환 장관 해임 요구

한편 한국노총 김태환 지부장 사망사건 진상규명과 김대환 노동부장관 퇴진을 요구하는 노동.시민사회의 목소리가 날로 확산되고 있다

양대 노총, 전국연합, 참여연대, 민언련, 녹색연합 등 46개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은 22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세실 레스토랑에서 ‘김태환 열사 살인사건 대책과 비정규직 문제해결을 위한 노동시민사회단체 비상대표자회의’를 열어 비정규직 권리보장 입법과 노동부장관 해임 등을 요구했다.

이날 비상회의에 참여한 단체들은 “정부와 사용자들의 일상적이고 누적된 반노동자정책이 결국 노조 간부의 어처구니 없는 죽음까지 불러왔다”며 “성장제일주의와 이윤극대화 논리가 낳은 사회 양극화와 빈부격차의 해소 등 사회경제개혁을 위한 범사회적 연대운동을 지속적으로 벌여나갈 것”을 결의했다.

또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와 맹형규 정책위의장은 22일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지도부의 방문을 받은 자리에서 한나라당이 김대환 노동부 장관 해임권고 결의안 제출을 검토키로 했다고 밝혀 노동계 안팎에서 사퇴 압력이 높아가고 있는 김대환 노동부 장관의 거취와 관련 주목되고 있다.

 

 

* 필자는 '참정연' 회원입니다.

2005/06/22 [23:56]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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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엥란트



재보선 ‘원자폭탄’과 마주하기
[4.30 재보선 관전평]‘0’패가 무섭진 않다. 익숙함이 두려울뿐…
 
김영국
국민들의 선택은 늘 위대했다

지역 언론에 글을 기고해 보긴 처음이다. 이번 재보선에 대한 평가와 성남지역의 정치적 미래와 관련한 글을 부탁 받고 지역 시민사회의 이야기를 꺼내야 할 것 같아 조심스러웠다. 그러나 시민사회도 정치적 이슈와 서민대중의 삶의 문제에서 비껴나 있을 수 없다는 점에서 함께 고민하고 소통하는 기회가 되길 기대한다.

‘0:23’ 선거사상 전무후무한 집권당 0패.
예고된 패배였지만 예상치 못한 ‘퍼펙트’였기에 정치권 전체가 당혹스러워하는 건 당연하다.

국민들은 이번에 화염병으론 부족했던지 열린우리당 전체에게 ‘0’패라는 씨를 말리는 ‘원자폭탄’을 투하해버렸다.

예고된 패배에 원인을 말하는 것은 처음부터 뒷북일 수 밖에 없다. 패인은 예고란 단어 속에 이미 들어있기 때문이다. 설사 패인을 말하려 해도 열린우리당의 경우엔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견적도 안 나온다.

개혁(?)을 입에 달고 다니던 ‘열린지값당’이 하나뿐인 건교위원장을 여기저기서 포크레인으로 퍼다주겠다고 허풍 떨며 전국을 개그콘서트장으로 만들더니 급기야 돈봉투까지 살포하다 적발돼 원폭의 뇌관을 터뜨린 곳이 다름아닌 성남 중원이었다.

원래 선거가 끝나면 승자에겐 축하를 패자에겐 위로를 보내는 게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이번 선거는 그마저도 위선으로 치부될까 생략하고 싶다.

우선 특별히 잘한 것도 없는데다 한국 사회의 개혁과 진보적 사회발전에 번번히 훼방만 놓다 자중지란 상태였던 한나라당의 압승이 썩 합당해 보이지 않는다.

그럼 자칭 개혁정당 열린우리당의 참패는 안쓰럽고 진보정당 민주노동당의 낙담은 애처로운가. 그런 생각도 별로 들지 않는다. 가슴이 없다는 비판을 무릎쓰고 오히려 다행으로 생각한고 고백할 수밖에 없다.

개혁.진보진영 전체에게 0패라는 충격을 안겨준 유권자들이 “차라리 위대했다”고 말하고 싶다.

먼저 포크레인으로 건교위원장을 퍼다 주고, 10조원의 기업도시를 물어다 주겠다는 등 열린지값당의 허풍과 유혹마저 뿌리치고 엄청난 세금 낭비를 막아준 유권자들의 애국심에 경의를 표한다.

또다시 충절의 고장에서 일어난 ‘반철새 의병 봉기’도 환영한다.

변절을 일삼으며 남의 화려한 둥지만 찾아다니는 얌체 철새들의 모가지를 무참하게 비틀어 버린 충청인의 절개를 칭송해 마지 않는다.

선명한 개혁파란 이미지를 독점하며 정치적 사술을 부리던 유시민계와 권력 386이 자신의 정치적 지분 확보를 위해선 전두환.노태우 꼬붕에게도 영혼을 팔고 몸빵도 할 수 있다는 실체를 발가벗기고 꿀밤까지 먹인 대목에선 후련하기까지 하다.

상대방의 닭짓과 ‘오버’의 반사이득으로 연명하는 ‘지값돌리기’판에서 이번엔 한나라당이 오만에 빠져 딴지나 걸고 국민들을 짜증스럽게 한다면 개혁.진보세력이 다음 선거에서 손쉽게 승리의 발판을 마련할 수도 있겠다. 그래서일까. 한쪽이 자만에 빠질수 있을 만큼 압승을 안겨준 유권자들의 심모원려에도 경의를 표한다.

어쨌든 승리지상주의로 대체된 타락한 실용주의가 빚어낸 참담한 패배는 오히려 열린우리당이나 한국 정치발전에 쓰디쓴 보약이 아닐 수 없다.

비록 선전했다지만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여건에서도 예상외의 큰 표차이로 낙담한 민주노동당의 과오도 만만치 많아 보인다.

성남 중원은 지난 10여년 동안 지역에 공을 들여온 인간 정형주의 패배가 아닌 민주노동당의 패배다.

선거때마다 타당의 앵벌이식 표 훑어가기에 분노하던 진보정당에서 이제는 자신들이 정치공학적 승리 유혹에 빠져 ‘한 푼도 못받고 말로 갚아야할’ 앵벌이로 돌변한 모습, 입만 열면 서민대중의 고통받는 삶을 돌아봐야 한다던 그들의 외침은 장사가 안돼 죽을 맛인 서민들이 지나다니는 시장통 앞에서 보수정당과 똑같이 신나게 ‘묻지마 관광 댄스’를 보여줌으로써 피날레를 장식했다.

진보가 단순히 이념만으로 성장하지 않는다는 것. 그에 따른 문화적 선도를 동반하지 않는 진보는 시대를 주도할 수 없다는 평범한 공식을 망각한 채 진보를 살찌우겠다는 포부는 휴지통에 내다 버리는 게 낫다.

더군다나 참여정부 들어서도 갈수록 경제적 양극화의 고통속에 수천만의 서민들이 신음하고 있는 현실에서 뭐가 그리 즐거워 ‘막춤’식 선거문화가 2년이 넘게 정치판에서 유행으로 떠돌아 다녀야 하는가. 이건 시대정신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정치문화의 몰지각성과 아직도 대선의 추억속에 갇혀 있다는 반증인 셈이다.

레드카드(?) 받은 개혁.진보진영

선거란 지지자들의 외연을 확대하고 얼마나 투표장에 나오게 하느냐의 싸움이다. 한국 정치판에서 보수는 습관적으로 투표하지만 진보는 마음이 진동해야 투표장에 간다.

개혁.진보세력이 보수세력과 싸움에서 이기는 길은 개혁.진보적 지지자들이 가슴 한켠에 늘 담아두고 있는 대의명분과 시대적 소명 그리고 새로운 문화를 접하고 긴장감이 발동할 때뿐이다.

과연 개혁.진보진영이 외연 확대는 고사하고 기존 지지자들이나 투표장에 나가고 싶도록 만들었는가.

답은 “과반수를 만들어 주었는데도 아무것도 한 일이 없고, 할 의사도 없는 것 같은데 열심히 찍어 줄 이유가 없었다”고 자평한 여당 초선의원의 고백으로 대신한다.

어차피 재보선은 야당에 유리할 수 밖에 없다며 야당의 승리를 ‘재보선당’이라고 깍아내리고, 전투에서 졌을 뿐이라고 자위하기에는 재보선 지역이 대부분 여당의 텃밭이었다는 점에서 구차한 변명에 가깝다.

이번 재보선의 퍼펙트 패배는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내 실용주의자들의 타락, 자칭 개혁파들과 추종자들의 자기모순적 몸빵, 노빠식 조선일보나 다름없는 친노성향 언론의 비겁함과 혹세무민이 어우러진 열린우리당과 그 주변세력 모두의 책임이며 총체적 자기분열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2002년 대선당시 개혁과 진보적 사회발전에 대한 기대로 초롱초롱하던 개혁파들은 지난 2년여 동안 무수히 노 정권과 열린우리당을 떠나갔다. 이는 여론조사와 현실에서 이미 증명된 일이다.

그 빈자리를 ‘개혁 신분증’도 없고 정체를 알 수 없는 황건적들이 권력의 처마끝에 주렁주렁 매달려 반한나라당, 안티조선이란 그럴듯한 ‘알리바이성 구호’를 외치는 것으로 그들의 사이비성과 기회주의를 면책받고 신주류 행세를 하고 있는 것이다.

서민대중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비실신분’(비정규직, 실직자, 신빈곤층, 신용불량자를 통칭)의 삶에 천착하지 않고, 4대 개혁입법이니 뭐니 해서 엄청난 선물꾸러미라도 되는양 포장해 그것만이 시대적 사명의 전부인 것처럼 호들갑 떨다가 그마저도 야합으로 걸레를 만드는 수준의 개혁.진보가 서민대중에게 얼마나 무능하고 무책임한 집단인지 날이 갈수록 확인 도장 받는 느낌이다.

대일 자존심 발언 등 대통령이 ‘입으로 만든’ 50% 지지도가 여당의 전패로 귀결되는 해괴한 사태의 비밀은 국민의 66%가 노 정권은 ‘노동자보다 기업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바닥 민심에 있다.

이번에 개혁.진보진영 전체에게 국민들은 옐로카드가 아닌 사실상 ‘레드카드’를 꺼내들었다. 재보궐선거인 것이 천만다행일 뿐이다.

버려야 산다

참담한 패배보다 안타운건 개혁.진보세력이 현재의 위기에 대해 어렴풋이 인식만 하고 전혀 갈피를 잡지 못한채 허우적대는 모습이다.

어디에선가 새로운 활로를 개척하고 다시 들판으로 내몰려간 생활 개미들이 돌아와 함께 정치를 이야기 하고 미래를 공유할 기회를 만들수 없을까.
그러기 위해선 누군가 자기를 버리고 새로운 전형을 창출하는데 앞장서 줘야 한다.

보다 실증적인 연구와 대안들을 담아내고, 생활 개미들이 활력있게 참여할 수 있는 정당문화를 이식하여 개혁.진보세력의 새로운 아지트가 될 수 있는 정치주체가 탄생하거나 그런 모습의 정당으로 환골탈퇴하지 않는 한 ‘Again 2002’는 없다.

국민은 자기희생적 결단을 통해 거듭나는 정치세력에게 인색한 적이 없으며 자만과 방자함에 빠져든 정치세력에게 몰락을 경험하지 않도록 배려해준 일도 없다.

지역 시민사회단체, ‘서민대중의 삶’에 눈을 돌리자

지역 시민사회단체의 활동 방향과 정치적 지역이슈 제기의 영역도 단순한 개혁, 민주수호, 자주통일 같은 관습적 테제에 머물러선 시대적 소명을 다하고 있다고 말하기 어렵게 됐다.

‘참여’를 줄기차게 외쳤으나 정작 우리의 삶은 황폐화되었고, 신권력층으로 진입한 개혁장사꾼들에게 개뼉따귀만 갖다 바친 참여는 아니었는지, ‘진보’를 강변했으나 관념적 희열을 위해 스스로의 삶은 내팽개친 채 주린 배를 움켜쥐고 단식을 해온 것은 아니었는지 돌아보게 된다.

이런 참여, 그런 진보가 과연 행복했는가. 국민의 93%가 빈부격차가 심각하고 생활수준은 더 나빠졌다며 절규하고 있다는 여론조사가 말해주듯이 이제 우리는 참여속의 진보라는 슬로건 자체보다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참여이며 진보인가를 분명히 해야 될 때가 됐다.

시민사회단체가 국보법 폐지 같은 이념적 장벽을 걷어내고 정쟁과정에서 생산되는 민주화 등 ‘정치적’ 이슈에는 천명이 넘는 사람이 단식을 하며 치열하게 싸우는 것을 지켜보았지만, 비정규직 악법 철폐와 권리보장 입법 같은 정작 서민대중과 미래 자녀들의 먹고사는 문제와 직결된 ‘경제사회적’ 진보에는 그만큼 치열하게 싸워왔다고 말하기 어렵다.

작금의 최대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경제적 양극화(economic polarization)’와 그로 인한 서민대중의 ‘삶의 황폐화’란 아젠다와 관련하여 대안적인 논쟁과 실천에 보다 많은 관심과 정열를 쏟아붓지 않고선 개혁.진보세력이 서민들의 편이란 전통적 믿음을 더이상 지켜가기 어려워 보인다.

어쩌면 참여정부 들어 가까이는 이번 재보선의 전패에서 보듯이 이미 그 믿음조차 소멸해가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우리나라는 단순한 경제지표상으론 세계가 주목할 만한 성장을 해 왔음이 언론보도 등을 통해서 심심치않게 확인되고 있다. 문제는 이런 수치들에 만족해도 좋은 것인가. 경제규모의 급성장에 걸맞게 국민 대다수의 삶의 질이 높아진 것인가이다. 현실은 결코 그렇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우리를 비참하게 만드는 것은 노동시장의 먹이사슬 맨 밑바닥에 약탈적 저임금에 시달리며 ‘제3 신분’으로 굳어진 ‘비정규직’이 전체 임금노동자의 절반이 넘는(56%) 800만명이나 깔려 있으며, 넘쳐나는 실업자(80만)와 신용불량자들(380만), 국민기초생활보장 비수급 대상인 차상위 빈곤층(300만)이 노동시장 밖으로 밀려나면서 하루하루 생존의 위협속에 신음하고 있다는 현실이다.

'728만원 對 53만원'로 표현되는 상위계층과 하위계층의 월평균 소득격차, 민망할 정도로 추락해버린 노동소득 분배율(59%), 전국 10가구중 3가구꼴로 적자, 가구당 빛 3,000만원꼴 사상최대, “열심히 일해도 잘살 수 없는 세상이다”며 푸념하는 근로자들, 위기를 넘어 절망을 체감하고 있다는 국민이 압도적이라는 여론조사 수치들은 오늘날 대한민국 서민대중의 적나라한 ‘고통지수’이다.

‘21세기’라는 첨단 자본주의로 문명화된 사회속에서, 기이하게도 ‘빈곤’의 문제는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심각한 세계사적 문제가 되고 있다.

개혁정권의 탄생이라며 환호했던 열린우리당류 개혁파들이 경제적 양극화를 양산하는 실질 주범인 ‘신자유주의 경제질서’와 ‘세계화, 개방화 만능주의’에 빠져 어떤 고민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고 있는 현실에 대해 시민사회가 얼마나 비판하고 대안이 되고자 했는가.

차제에 시민사회단체가 지역문제를 다루는데 있어서 이런 고민들을 담아내고 그에 걸맞는 운동과 정치문화를 창출하는데 더 많은 노력을 경주했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시민사회단체의 지방자치 진출, 자생력과 일관성으로 신망이 우선

마지막으로 이번 재보선에서 대부분의 언론이 국회의원에 정신 팔려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은 지방자치선거 부문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특히 지방자치의 풀뿌리라 할 수 있는 구.시.군의원에는 새마을운동 간부 출신, 상가번영회, 로타리클럽부회장, 건설회사 사장 등 60년대식 이권을 노린 인사들이나 국회의원 선거때 품앗이 해주고 명함 하나 꿰찬 떨거지 등 구태의연하고 얼굴에 기름기 좌르르한 동네 유지들이 주로 출마해 지역 살림을 감시.감독하는 자치일꾼으로 나서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러니 지방자치가 주민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것으로부터 괴리되는 현상은 피할 수 없고 갈수록 지방차지 본연의 목적을 상실해 가는건 불문가지다.

이렇게 된데는 각 정당들은 물론 시민사회단체가 자신들의 이상을 실현하기 용이한 공간임에도 국회의원 같은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곳에만 집중하고 풀뿌리 지방자치에는 소홀히 하거나 방치한데서 비롯된 것이다.

다가오는 2006년 지방선거에서 새롭고 신념있는 젊은 인재들이 대거 진출하도록 개혁.진보진영이 각별한 관심과 준비를 기울이지 않는한 지역 주민들을 위한 지방자치는 요원하고 여전히 지역 유지들의 잔치에서 벗어나기 어려워 보인다.

한편으론 시민사회단체도 기성정당에 의지하거나 정치공학적으로 접근하는 자세보단 스스로 인재를 발굴하고 자생력을 키워가는 전략이 필요해 보인다. 서민대중의 삶에 천착하고 일관성 있는 목표와 실천으로 지역 시민사회의 신망을 얻어 지방자치 진출의 새로운 전형을 만들어 갔으면 한다.

어쨌든 이번 선거에서 개혁.진보진영 전체에 0패의 충격을 안겨준 것이 아프기 보단 차라리 다행스럽고 쓰디쓴 ‘보약’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필자는 성남 수정구에 거주하며 인터넷뉴스 대자보 편집위원이자 참정연(www.cjycjy.org)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기사입력: 2005/05/03 [16:01]  최종편집: ⓒ 성남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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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엥란트



'일등소신' 임종인, 곳곳서 '러브콜' 금값
민노당에서 민주당 쇄신파까지 '연대 손길', '소신과 지조' 뒤늦게 빛나
 
취재부
'거대한 변절'과 맞서온 '외로운 전사'

대선 이후 개혁·진보 진영 곳곳에서 참패 후유증과 '총선 불출마 및 2선 후퇴(정계은퇴·백의종군)' 요구로 뒤숭숭한 가운데, 무소속 '임종인' 의원의 일관된 진보개혁적 소신과 지조 있는 행보가 뒤늦게 빛을 발하고 있다.

사상 최악의 대선 참패 이후 개혁·진보 진영 곳곳에서는 지금 책임론 공방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대표적으로 범여권과 민주노동당 등에서 거세게 일고 있는, 대선 참패에 책임 있는 인사들의 총선 불출마 및 2선 후퇴 요구가 그것이다.

정작 문제는 대선에 참패한 정당이나 정치집단의 구성원이라면 모두가 큰 책임이 있음에도, 어느 누구 하나 솔선수범해서 살신성인의 감동을 보여주기는커녕 총선 공천 및 주도권 싸움과 맞물려 '너 죽고 나 살기'식 '네탓 공방'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런 살벌한 상황에서도 유일하게 '대접받는' 사람이 있다. 바로 무소속 임종인 의원.

임 의원은 작년(2007년) 1월 22일 "지지자들을 배신한 열린우리당에는 더이상 몸담을 수 없다."며 탈당한 이후 범여권의 숱한 이합집산에도 전혀 기웃거리지 않고, 무소속으로 초지일관(初志一貫)했다.

숱한 이합집산과 러브콜에도 꿋꿋하게 '진보개혁의 길' 걸어

▲대선 참패 후 개혁·진보 진영의 거의 모든 세력으로부터 진보개혁적 '소신과 지조' 있는 행보로 호감을 받으며, '연대 0순위'로 떠오른 새정치개혁연합의 임종인 의원     ©새정치개혁연합
임 의원은 지금도 탈당 당시 국민들에게 약속한 대로 "서민과 중산층을 제대로 대변하는 새로운 민주개혁 정당을 만들어 지지할 정당이 없는 수많은 국민들에게 선택지를 드리겠다."며 김성호 전 의원 등과 함께 진보개혁적인 새 정치 주체를 창출하는 데 골몰하고 있다.

임 의원은 지난 대선 기간에도 민주노동당은 물론 대통합민주신당과 문국현 진영의 잇따른 러브콜에도 불구하고 "범여권과 민주노동당 등에 실망한 지지층을 제대로 대변할 정당 건설이 우선이다."며 모두 뿌리치고 독자 노선을 걸어왔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독불장군으로 있어 봐야 누가 알아주나.", "무소속으로 총선에서 살아남을 수 있겠느냐."라는 비아냥도 있었다.

그러나 경악스런 대선 참패 이후 상황은 급변했다. 사상 최악의 참패로 범여권은 물론 개혁·진보 진영 전체가 거대한 '국민적 불신'의 늪에 빠져 있다는 걸 두 눈으로 확인한 이후, 임종인 의원 같은 일관된 '소신파'가 오히려 돋보이는 상황이 된 것.

일관된 진보개혁 소신과 정치행보, 곳곳서 '연대 0순위'

실제 대선 참패 이후 개혁·진보 진영에서 총선을 앞두고 전열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임종인 의원에 대한 호감과 진가가 밑바닥에서부터 확산되고 있다는 게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대선 참패 후 자주파(NL)와 평등파(PD)의 극한 대립·갈등으로 사실상 분당 위기로 치닫고 있는 민주노동당의 경우, 외연 확대 차원에서 '연대 0순위'는 단연 임종인 의원이 거론된다.

사실 민주노동당 당원들에게 임종인 의원은 이미 오래 전부터 '열린노동당원'이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진보개혁적 정체성을 인정받고 있다. 이는 민노당이 의석수가 9명으로 줄어든 상태에서 진보개혁적 법안을 발의할 때마다 임 의원이 자기 이름을 올려주면서 부족한 숫자를 채워주곤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임 의원의 지난 4년의 정치적 신념과 행보 자체가 '일관되게' 진보개혁적인 모습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임 의원의 진보개혁적 정치 행보는 일일이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다.

당장 대표적인 것만 들어도, 이라크 파병 반대, 약육강식의 신자유주의 노선 반대, 한미FTA 반대 단식, 이랜드 비정규직 농성장 격려 방문 및 후원,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찬성, 기업형 대형 슈퍼마켓 규제법 발의, 양심적 병역 거부자 대체복무 허용 운동, 론스타의 외환은행 불법·헐값 인수·매각 사태 해결 국회 결의안 촉구, 재벌 개혁 및 삼성 사태 관련 이건희 회장 수사 촉구 등이 있다.

특히 범여권 정치인 중에 누구보다 앞장서, 노 대통령의 한나라당과 대연정 제안, 분양원가 공개 거부, 반노동자적 노동정책, 한미FTA 강행 등 잇따른 반개혁-신자유주의 정책 추진에 대해 줄기차게 비판하면서 친노 세력과 당내 실용파들로부터 '돈키호테', '극좌'라는 비아냥과 함께 '집단 따돌림'을 당하기도 했다.

임종인 왕따시킨 범여권 '전국민적 왕따'돼, 임종인은 '진보 신데렐라' 부상

그러나 임종인을 왕따시켰던 친노 세력과 실용파들은 이번 대선 참패 과정에서 보듯이 전국민으로부터 처절하게 왕따를 당했고, 이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반면 임종인 의원은 범여권 출신 현역 의원 중 '유일하게' 민주노동당, 문국현 진영, 한국사회당, 대통합민주신당 개혁파, 민주당 쇄신파 등 소위 개혁·진보 진영 전체에 걸쳐 '함께 했으면 하는 정치인 1호'으로 각광받고 있다. 대선 참패 책임론에 전전긍긍하고 있는 범여권 현역 정치인들과는 큰 대조를 보이고 있다.

특히 임 의원의 일관된 진보개혁적 소신과 정치적 행보가 타 정치인과 비교해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 극명하게 나타난 경우가 바로 문국현 지지자들의 유시민과 임종인의 '극과 극' 대접이다.

일례로 친노 세력의 대표 격이자 '변신의 귀재'라는 별칭까지 붙은 '유시민 의원'의 경우, 그 지지자로 보이는 한 네티즌이 대선 직후인 지난 12월 21일 문국현 홈페이지에 "(지지기반 확대를 위해) 유시민을 창조한국당으로 영입하자."는 제안을 했다가 시쳇말로 '다구리'당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문국현 지지자들은 "여우 같은 유시민은 절대 안된다."는 것. 특히 유시민 의원의 과거 개혁당 파괴 경력 등을 거론하며 "그는 같이 하면 독(毒)이 되는 사람이다."며 독설도 서슴지 않았다.

이에 반해 '임종인 의원'의 경우는, 대선 과정에서 '문국현 후보를 판단하고 신뢰할 만한 정치적 근거가 없다.'며 분명한 선을 그었음에도, 문국현 지지자들은 "임종인 의원의 한결같은 신념과 개혁성을 존경한다.", "문국현과 함께 해달라.", "신당의 150명을 버리더라도 임종인, 김성호는 잡아야 한다."며 호감을 표시한 경우가 많아 대조적이었다.

이에 따라 유시민을 영입하자는 글에는 '반대 클릭'이 압도적인 반면, 임종인 관련 글에는 '찬성 클릭'이 압도적으로 많아 정반대의 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민주당 쇄신파 '연대 손짓'에 한국사회당도 '우호적'

한편, 한국사회당의 경우도 금민 대표가 작년(2007년) 8월 22일 임종인 의원과 만나 한국사회당이 파병규제법안과 대통령 결선투표제,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도입 등 정치관계법 개정안을 마련하면, 임 의원이 금 대표의 요청을 받아 이를 발의하기로 하는 등 정책적으로 우호적 관계를 유지해왔다.

금민 대표는 또 작년 4월 4일 임종인 의원이 한미FTA 반대를 주장하며 국회에서 10일간의 단식농성 도중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을 때 직접 병원까지 찾아가 위로하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한국사회당 당원들도 임 의원에게는 대체적으로 호의적이다.

대통합민주신당에서도 개혁파들은 개혁성 강화를 위해 임종인 의원의 '복귀'를 종용하기도 했으나, 임 의원은 "나는 열린우리당을 탈당했지 대통합민주신당에는 입당한 적도 없기 때문에 나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당이다. 복귀란 말은 나에게 맞지 않다."며 일축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최근에는 "박상천 대표 퇴진하라."며 민주당의 전면 쇄신과 개혁세력 연대를 요구하며 '신민주포럼'을 결성한 민주당 쇄신파(손봉숙 의원, 김경재 전 의원 등)들이 지난 12월 31일 "새진보를 표방한 임종인 의원, 김성호 전 의원과도 연대하고 싶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이로써 임 의원은 민주노동당, 문국현 진영, 대통합민주신당 개혁파, 민주당 쇄신파까지 함께 하자며 연대의 손길을 내미는 형국이 됐다. 어느새 임 의원은 개혁·진보 진영의 거의 모든 세력으로부터 호감을 받으며, 외연 확대를 위한 영입 0순위로 '진보 신데렐라'가 된 것.

그만큼 임 의원의 소신과 지조가 뒤늦게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대선 참패 책임론에 휩싸여 총선 불출마와 정계은퇴 요구를 거세게 받고 있는 대통합민주신당 등 범여권의 현역 의원들과는 그 처지가 확연이 다르다.

임종인, "옳은 길이라면 외롭고 험한 가시밭길도 마다 않겠다"

그러나 개혁·진보 진영의 잇따른 러브콜에도 불구하고, 임 의원은 최근 자신의 홈페이지 <여러분께>라는 코너의 외부 기사 '소개글' 등을 통해 "지난 3년 반 이상 의정활동을 하면서 불이익을 당할지라도, 국민들을 위해 옳지 않은 길이라면 가지 않았습니다. 그 길이 외롭고 힘들었지만, 국민과 안산 시민들이 함께 해 주셔서 큰 힘이 되었습니다. 이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국가와 국민을 위한 길이라면 어렵고 험한 가시밭길이라도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그것이 바로 여러분들의 지지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고 밝혀 한결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임종인 의원를 보면서 정치인은 당장의 불이익이나 왕따를 당하더라도 지지층을 향한 '일관된' 노선과 정치적 실천을 통해 '신뢰'를 쌓아가는 게 결국 '최후에 웃는 자'가 될 수 있다는 교훈을 새삼 떠올리게 된다.

어쩌면 대통합민주신당 등 범여권이 사상 최악의 대참패를 당한 것도, 이 상식에 가까운 '정치의 기본'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대선 압승 여세를 몰아 휘몰아치고 있는 '이명박 쓰나미'에 '대한민국 일등 소신' 임종인이 유권자들에게 얼마나 빛을 발할 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전체가 집단적으로 망가진' 범여권 현역 의원들 중에 유일하게 건진, '단 하나의 진주'임은 틀림없어 보인다.

임 의원은 최소한 자신을 찍어준 지지층의 염원을 배반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며 '거대한 변절'과 싸워온 '외로운 전사'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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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02 [21:15]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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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엥란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