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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보선 ‘원자폭탄’과 마주하기
[4.30 재보선 관전평]‘0’패가 무섭진 않다. 익숙함이 두려울뿐…
 
김영국
국민들의 선택은 늘 위대했다

지역 언론에 글을 기고해 보긴 처음이다. 이번 재보선에 대한 평가와 성남지역의 정치적 미래와 관련한 글을 부탁 받고 지역 시민사회의 이야기를 꺼내야 할 것 같아 조심스러웠다. 그러나 시민사회도 정치적 이슈와 서민대중의 삶의 문제에서 비껴나 있을 수 없다는 점에서 함께 고민하고 소통하는 기회가 되길 기대한다.

‘0:23’ 선거사상 전무후무한 집권당 0패.
예고된 패배였지만 예상치 못한 ‘퍼펙트’였기에 정치권 전체가 당혹스러워하는 건 당연하다.

국민들은 이번에 화염병으론 부족했던지 열린우리당 전체에게 ‘0’패라는 씨를 말리는 ‘원자폭탄’을 투하해버렸다.

예고된 패배에 원인을 말하는 것은 처음부터 뒷북일 수 밖에 없다. 패인은 예고란 단어 속에 이미 들어있기 때문이다. 설사 패인을 말하려 해도 열린우리당의 경우엔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견적도 안 나온다.

개혁(?)을 입에 달고 다니던 ‘열린지값당’이 하나뿐인 건교위원장을 여기저기서 포크레인으로 퍼다주겠다고 허풍 떨며 전국을 개그콘서트장으로 만들더니 급기야 돈봉투까지 살포하다 적발돼 원폭의 뇌관을 터뜨린 곳이 다름아닌 성남 중원이었다.

원래 선거가 끝나면 승자에겐 축하를 패자에겐 위로를 보내는 게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이번 선거는 그마저도 위선으로 치부될까 생략하고 싶다.

우선 특별히 잘한 것도 없는데다 한국 사회의 개혁과 진보적 사회발전에 번번히 훼방만 놓다 자중지란 상태였던 한나라당의 압승이 썩 합당해 보이지 않는다.

그럼 자칭 개혁정당 열린우리당의 참패는 안쓰럽고 진보정당 민주노동당의 낙담은 애처로운가. 그런 생각도 별로 들지 않는다. 가슴이 없다는 비판을 무릎쓰고 오히려 다행으로 생각한고 고백할 수밖에 없다.

개혁.진보진영 전체에게 0패라는 충격을 안겨준 유권자들이 “차라리 위대했다”고 말하고 싶다.

먼저 포크레인으로 건교위원장을 퍼다 주고, 10조원의 기업도시를 물어다 주겠다는 등 열린지값당의 허풍과 유혹마저 뿌리치고 엄청난 세금 낭비를 막아준 유권자들의 애국심에 경의를 표한다.

또다시 충절의 고장에서 일어난 ‘반철새 의병 봉기’도 환영한다.

변절을 일삼으며 남의 화려한 둥지만 찾아다니는 얌체 철새들의 모가지를 무참하게 비틀어 버린 충청인의 절개를 칭송해 마지 않는다.

선명한 개혁파란 이미지를 독점하며 정치적 사술을 부리던 유시민계와 권력 386이 자신의 정치적 지분 확보를 위해선 전두환.노태우 꼬붕에게도 영혼을 팔고 몸빵도 할 수 있다는 실체를 발가벗기고 꿀밤까지 먹인 대목에선 후련하기까지 하다.

상대방의 닭짓과 ‘오버’의 반사이득으로 연명하는 ‘지값돌리기’판에서 이번엔 한나라당이 오만에 빠져 딴지나 걸고 국민들을 짜증스럽게 한다면 개혁.진보세력이 다음 선거에서 손쉽게 승리의 발판을 마련할 수도 있겠다. 그래서일까. 한쪽이 자만에 빠질수 있을 만큼 압승을 안겨준 유권자들의 심모원려에도 경의를 표한다.

어쨌든 승리지상주의로 대체된 타락한 실용주의가 빚어낸 참담한 패배는 오히려 열린우리당이나 한국 정치발전에 쓰디쓴 보약이 아닐 수 없다.

비록 선전했다지만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여건에서도 예상외의 큰 표차이로 낙담한 민주노동당의 과오도 만만치 많아 보인다.

성남 중원은 지난 10여년 동안 지역에 공을 들여온 인간 정형주의 패배가 아닌 민주노동당의 패배다.

선거때마다 타당의 앵벌이식 표 훑어가기에 분노하던 진보정당에서 이제는 자신들이 정치공학적 승리 유혹에 빠져 ‘한 푼도 못받고 말로 갚아야할’ 앵벌이로 돌변한 모습, 입만 열면 서민대중의 고통받는 삶을 돌아봐야 한다던 그들의 외침은 장사가 안돼 죽을 맛인 서민들이 지나다니는 시장통 앞에서 보수정당과 똑같이 신나게 ‘묻지마 관광 댄스’를 보여줌으로써 피날레를 장식했다.

진보가 단순히 이념만으로 성장하지 않는다는 것. 그에 따른 문화적 선도를 동반하지 않는 진보는 시대를 주도할 수 없다는 평범한 공식을 망각한 채 진보를 살찌우겠다는 포부는 휴지통에 내다 버리는 게 낫다.

더군다나 참여정부 들어서도 갈수록 경제적 양극화의 고통속에 수천만의 서민들이 신음하고 있는 현실에서 뭐가 그리 즐거워 ‘막춤’식 선거문화가 2년이 넘게 정치판에서 유행으로 떠돌아 다녀야 하는가. 이건 시대정신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정치문화의 몰지각성과 아직도 대선의 추억속에 갇혀 있다는 반증인 셈이다.

레드카드(?) 받은 개혁.진보진영

선거란 지지자들의 외연을 확대하고 얼마나 투표장에 나오게 하느냐의 싸움이다. 한국 정치판에서 보수는 습관적으로 투표하지만 진보는 마음이 진동해야 투표장에 간다.

개혁.진보세력이 보수세력과 싸움에서 이기는 길은 개혁.진보적 지지자들이 가슴 한켠에 늘 담아두고 있는 대의명분과 시대적 소명 그리고 새로운 문화를 접하고 긴장감이 발동할 때뿐이다.

과연 개혁.진보진영이 외연 확대는 고사하고 기존 지지자들이나 투표장에 나가고 싶도록 만들었는가.

답은 “과반수를 만들어 주었는데도 아무것도 한 일이 없고, 할 의사도 없는 것 같은데 열심히 찍어 줄 이유가 없었다”고 자평한 여당 초선의원의 고백으로 대신한다.

어차피 재보선은 야당에 유리할 수 밖에 없다며 야당의 승리를 ‘재보선당’이라고 깍아내리고, 전투에서 졌을 뿐이라고 자위하기에는 재보선 지역이 대부분 여당의 텃밭이었다는 점에서 구차한 변명에 가깝다.

이번 재보선의 퍼펙트 패배는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내 실용주의자들의 타락, 자칭 개혁파들과 추종자들의 자기모순적 몸빵, 노빠식 조선일보나 다름없는 친노성향 언론의 비겁함과 혹세무민이 어우러진 열린우리당과 그 주변세력 모두의 책임이며 총체적 자기분열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2002년 대선당시 개혁과 진보적 사회발전에 대한 기대로 초롱초롱하던 개혁파들은 지난 2년여 동안 무수히 노 정권과 열린우리당을 떠나갔다. 이는 여론조사와 현실에서 이미 증명된 일이다.

그 빈자리를 ‘개혁 신분증’도 없고 정체를 알 수 없는 황건적들이 권력의 처마끝에 주렁주렁 매달려 반한나라당, 안티조선이란 그럴듯한 ‘알리바이성 구호’를 외치는 것으로 그들의 사이비성과 기회주의를 면책받고 신주류 행세를 하고 있는 것이다.

서민대중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비실신분’(비정규직, 실직자, 신빈곤층, 신용불량자를 통칭)의 삶에 천착하지 않고, 4대 개혁입법이니 뭐니 해서 엄청난 선물꾸러미라도 되는양 포장해 그것만이 시대적 사명의 전부인 것처럼 호들갑 떨다가 그마저도 야합으로 걸레를 만드는 수준의 개혁.진보가 서민대중에게 얼마나 무능하고 무책임한 집단인지 날이 갈수록 확인 도장 받는 느낌이다.

대일 자존심 발언 등 대통령이 ‘입으로 만든’ 50% 지지도가 여당의 전패로 귀결되는 해괴한 사태의 비밀은 국민의 66%가 노 정권은 ‘노동자보다 기업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바닥 민심에 있다.

이번에 개혁.진보진영 전체에게 국민들은 옐로카드가 아닌 사실상 ‘레드카드’를 꺼내들었다. 재보궐선거인 것이 천만다행일 뿐이다.

버려야 산다

참담한 패배보다 안타운건 개혁.진보세력이 현재의 위기에 대해 어렴풋이 인식만 하고 전혀 갈피를 잡지 못한채 허우적대는 모습이다.

어디에선가 새로운 활로를 개척하고 다시 들판으로 내몰려간 생활 개미들이 돌아와 함께 정치를 이야기 하고 미래를 공유할 기회를 만들수 없을까.
그러기 위해선 누군가 자기를 버리고 새로운 전형을 창출하는데 앞장서 줘야 한다.

보다 실증적인 연구와 대안들을 담아내고, 생활 개미들이 활력있게 참여할 수 있는 정당문화를 이식하여 개혁.진보세력의 새로운 아지트가 될 수 있는 정치주체가 탄생하거나 그런 모습의 정당으로 환골탈퇴하지 않는 한 ‘Again 2002’는 없다.

국민은 자기희생적 결단을 통해 거듭나는 정치세력에게 인색한 적이 없으며 자만과 방자함에 빠져든 정치세력에게 몰락을 경험하지 않도록 배려해준 일도 없다.

지역 시민사회단체, ‘서민대중의 삶’에 눈을 돌리자

지역 시민사회단체의 활동 방향과 정치적 지역이슈 제기의 영역도 단순한 개혁, 민주수호, 자주통일 같은 관습적 테제에 머물러선 시대적 소명을 다하고 있다고 말하기 어렵게 됐다.

‘참여’를 줄기차게 외쳤으나 정작 우리의 삶은 황폐화되었고, 신권력층으로 진입한 개혁장사꾼들에게 개뼉따귀만 갖다 바친 참여는 아니었는지, ‘진보’를 강변했으나 관념적 희열을 위해 스스로의 삶은 내팽개친 채 주린 배를 움켜쥐고 단식을 해온 것은 아니었는지 돌아보게 된다.

이런 참여, 그런 진보가 과연 행복했는가. 국민의 93%가 빈부격차가 심각하고 생활수준은 더 나빠졌다며 절규하고 있다는 여론조사가 말해주듯이 이제 우리는 참여속의 진보라는 슬로건 자체보다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참여이며 진보인가를 분명히 해야 될 때가 됐다.

시민사회단체가 국보법 폐지 같은 이념적 장벽을 걷어내고 정쟁과정에서 생산되는 민주화 등 ‘정치적’ 이슈에는 천명이 넘는 사람이 단식을 하며 치열하게 싸우는 것을 지켜보았지만, 비정규직 악법 철폐와 권리보장 입법 같은 정작 서민대중과 미래 자녀들의 먹고사는 문제와 직결된 ‘경제사회적’ 진보에는 그만큼 치열하게 싸워왔다고 말하기 어렵다.

작금의 최대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경제적 양극화(economic polarization)’와 그로 인한 서민대중의 ‘삶의 황폐화’란 아젠다와 관련하여 대안적인 논쟁과 실천에 보다 많은 관심과 정열를 쏟아붓지 않고선 개혁.진보세력이 서민들의 편이란 전통적 믿음을 더이상 지켜가기 어려워 보인다.

어쩌면 참여정부 들어 가까이는 이번 재보선의 전패에서 보듯이 이미 그 믿음조차 소멸해가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우리나라는 단순한 경제지표상으론 세계가 주목할 만한 성장을 해 왔음이 언론보도 등을 통해서 심심치않게 확인되고 있다. 문제는 이런 수치들에 만족해도 좋은 것인가. 경제규모의 급성장에 걸맞게 국민 대다수의 삶의 질이 높아진 것인가이다. 현실은 결코 그렇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우리를 비참하게 만드는 것은 노동시장의 먹이사슬 맨 밑바닥에 약탈적 저임금에 시달리며 ‘제3 신분’으로 굳어진 ‘비정규직’이 전체 임금노동자의 절반이 넘는(56%) 800만명이나 깔려 있으며, 넘쳐나는 실업자(80만)와 신용불량자들(380만), 국민기초생활보장 비수급 대상인 차상위 빈곤층(300만)이 노동시장 밖으로 밀려나면서 하루하루 생존의 위협속에 신음하고 있다는 현실이다.

'728만원 對 53만원'로 표현되는 상위계층과 하위계층의 월평균 소득격차, 민망할 정도로 추락해버린 노동소득 분배율(59%), 전국 10가구중 3가구꼴로 적자, 가구당 빛 3,000만원꼴 사상최대, “열심히 일해도 잘살 수 없는 세상이다”며 푸념하는 근로자들, 위기를 넘어 절망을 체감하고 있다는 국민이 압도적이라는 여론조사 수치들은 오늘날 대한민국 서민대중의 적나라한 ‘고통지수’이다.

‘21세기’라는 첨단 자본주의로 문명화된 사회속에서, 기이하게도 ‘빈곤’의 문제는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심각한 세계사적 문제가 되고 있다.

개혁정권의 탄생이라며 환호했던 열린우리당류 개혁파들이 경제적 양극화를 양산하는 실질 주범인 ‘신자유주의 경제질서’와 ‘세계화, 개방화 만능주의’에 빠져 어떤 고민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고 있는 현실에 대해 시민사회가 얼마나 비판하고 대안이 되고자 했는가.

차제에 시민사회단체가 지역문제를 다루는데 있어서 이런 고민들을 담아내고 그에 걸맞는 운동과 정치문화를 창출하는데 더 많은 노력을 경주했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시민사회단체의 지방자치 진출, 자생력과 일관성으로 신망이 우선

마지막으로 이번 재보선에서 대부분의 언론이 국회의원에 정신 팔려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은 지방자치선거 부문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특히 지방자치의 풀뿌리라 할 수 있는 구.시.군의원에는 새마을운동 간부 출신, 상가번영회, 로타리클럽부회장, 건설회사 사장 등 60년대식 이권을 노린 인사들이나 국회의원 선거때 품앗이 해주고 명함 하나 꿰찬 떨거지 등 구태의연하고 얼굴에 기름기 좌르르한 동네 유지들이 주로 출마해 지역 살림을 감시.감독하는 자치일꾼으로 나서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러니 지방자치가 주민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것으로부터 괴리되는 현상은 피할 수 없고 갈수록 지방차지 본연의 목적을 상실해 가는건 불문가지다.

이렇게 된데는 각 정당들은 물론 시민사회단체가 자신들의 이상을 실현하기 용이한 공간임에도 국회의원 같은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곳에만 집중하고 풀뿌리 지방자치에는 소홀히 하거나 방치한데서 비롯된 것이다.

다가오는 2006년 지방선거에서 새롭고 신념있는 젊은 인재들이 대거 진출하도록 개혁.진보진영이 각별한 관심과 준비를 기울이지 않는한 지역 주민들을 위한 지방자치는 요원하고 여전히 지역 유지들의 잔치에서 벗어나기 어려워 보인다.

한편으론 시민사회단체도 기성정당에 의지하거나 정치공학적으로 접근하는 자세보단 스스로 인재를 발굴하고 자생력을 키워가는 전략이 필요해 보인다. 서민대중의 삶에 천착하고 일관성 있는 목표와 실천으로 지역 시민사회의 신망을 얻어 지방자치 진출의 새로운 전형을 만들어 갔으면 한다.

어쨌든 이번 선거에서 개혁.진보진영 전체에 0패의 충격을 안겨준 것이 아프기 보단 차라리 다행스럽고 쓰디쓴 ‘보약’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필자는 성남 수정구에 거주하며 인터넷뉴스 대자보 편집위원이자 참정연(www.cjycjy.org)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기사입력: 2005/05/03 [16:01]  최종편집: ⓒ 성남투데이


☞ 해당기사 전문 보기


☞ 참정연 게시판 해당 글 보기(2005.5.3)
:
Posted by 엥란트

영천시민과 충절의 고향은 위대했다
예고된 패배에 뒷북성 분석이나 자위보다 자기희생적 결단과 준비 우선
 
김영국
예고된 패배에 원인을 말하는 것은 뒷북일 수 밖에 없다. 패인은 예고란 단어 속에 이미 들어있기 때문이다. 설사 패인을 말하려 해도 열린우리당의 경우엔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견적이 안 나온다.

선거란 지지자들의 외연을 확대하고 얼마나 투표장에 나오게 하느냐의 싸움이다. 한국 정치판에서 보수는 습관적으로 투표하지만 진보는 마음이 진동해야 투표장에 간다.

개혁.진보세력이 보수세력과 싸움에서 이기는 길은 개혁.진보적 지지자들이 가슴 한켠에 늘 담아두고 있는 대의명분과 시대적 소명 그리고 새로운 문화를 접하고 긴장감이 발동할 때뿐이다.

문제는 탄핵 후폭풍이란 어부지리로 정치적 횡재를 했던 집권 ‘열린지값당’의 몰골이 1년도 채 안돼 가산을 탕진하고 빠르게 망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번 재보선은 겉으로 드러난 전패보다 내용적으로 들어갈수록 열린우리당의 미래에 더욱 절망스럽다.

어차피 재보선은 야당에 유리할 수 밖에 없다며 야당의 승리를 ‘재보선당’이라고 깍아내리고, 전투에서 졌을 뿐이라고 자위하기에는 재보선 지역이 대부분 열린우리당의 텃밭이었다는 점에서 구차한 변명에 가깝다.

영천시민과 충절의 고장은 위대했다

기존 언론들처럼 틀에 박힌 패인을 재탕하기 보단 이번 재보선에서 여야가 큰 의미를 부여하고 올인했던 지역의 대중들이 보여준 정치적 선택에 대해 평가해보는 것이 더 영양가 있을 것 같다.

우선 포크레인으로 건교위원장을 퍼다 주고, 10조원의 기업도시를 물어다 주겠다는 열린지값당의 허풍과 유혹마저 뿌리치고 엄청난 세금 낭비를 막아준 영천시민의 애국심에 경의를 표한다.

민정당 후보에다 지역개발 공약 남발, 여당 프리미엄으로 승부하려는 민정당식 선거방식까지 ‘과거로의 회귀’를 거부한 용단에 감탄한다.

선명한 개혁파란 이미지를 독점하며 정치적 사술을 부리던 유시민과 권력 386이 자신의 정치적 지분 확보를 위해선 전두환.노태우 꼬붕에게도 영혼을 팔고 몸빵도 할 수 있다는 실체를 발가벗기고 꿀밤까지 먹인 대목에선 후련하기까지 하다.

막대기만 꽂아도 당선되는 구시대적 전통에 도전하는 노력을 폄하 말라던 사람들에게 그들이 꽂으려는 막대기가 바로 영남을 지역패권주의 토양으로 변질시킨 고목나무라고 일러준 친절함에도 고개를 끄덕인다.

망국적인 3당합당의 핵심 인물을 당선시켜 놓고 ‘지역 구도 극복’이란 선정적인 기사질로 신문 팔아먹고 클릭수 늘리고자 잔뜩 벼르던 보수언론과 ‘노빠식 조선일보’ 매체의 혹세무민을 중지시킨 언론개혁 의지에 감사를 표한다.

차제에 영남지역의 개혁과 진보세력이 구태와 구인물에 대한 유혹을 거두고 그들 스스로 숨쉴 터전을 마련하는데 보다 성실한 자세로 임한다면 영천시민은 개혁.진보세력에게 보약까지 먹여준 셈이다.

마지막으로 경북지역민들이 이번에 민정당을 버린 용기를 특정 당과 정치인의 야망에 들러리 서는 걸로 소진할 게 아니라 서민대중의 삶의 문제에 진지한 세력들에게도 합당한 평가와 지지로 이어주기를 당부한다.

또다시 충절의 고장에서 일어난 ‘반철새 의병 봉기’를 환영한다.

변절을 일삼으며 남의 화려한 둥지만 찾아다니는 얌체 철새들의 모가지를 무참하게 비틀어 버린 충청인의 절개를 칭송해 마지 않는다.

수조원의 이득을 안겨준 보은에 연연하지 않고 정체성마저 내팽개친 채 승리지상주의에 매몰된 타락한 실용주의자들에게 철퇴를 가한 의기를 높이 평가한다.

충절의 고향에서만큼은 단 한마리의 ‘정치철새’도 용납할 수 없다는 아름다운 전통을 부디 계속 이어가길 당부한다.

상대방의 닭짓과 ‘오버’의 반사이득으로 연명하는 ‘지값돌리기’판에서 이번엔 한나라당이 오만에 빠져 개혁과 진보적 사회발전에 번번히 딴지 걸고 국민들을 짜증스럽게 한다면 개혁.진보세력이 다음 선거에서 손쉽게 승리의 발판을 마련할 수도 있겠다. 그래서일까. 한쪽이 자만에 빠질수 있을 만큼 압승을 안겨준 유권자들의 심모원려에도 경의를 표한다.

원자폭탄 얻어맞은 ‘타락한 실용주의’와 ‘지값 정치’

‘0:23’ 선거사상 전무후무한 집권당 0패.
예고된 패배였지만 예상치 못한 ‘퍼펙트’였기에 정치권 전체가 당혹스러워하는 건 당연하다.

어쨌든 승리지상주의로 대체된 타락한 실용주의가 빚어낸 참담한 패배는 오히려 열린우리당이나 한국 정치발전에 쓰디쓴 보약이 아닐 수 없다.

기존 실용파는 물론 당내 선명한 개혁파를 자처해온 사람까지 배려가고 있는 상황에서 열린우리당의 실체를 보다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것도 성과라면 성과다.

나는 얼마전 유시민 의원이 영남권내 정치적 지분확보에 집착 5공 민정당 출신에 망국적인 3당합당의 핵심 인물과 손잡고 몸빵하는 것도 모자라 기립박수까지 받을 즐거운 상상에 빠져있는 오버스러움에 그가 말한 개혁의 실체를 또다시 목도하며 그 추태에 화염병을 던지고 싶다고 한 바 있다.

그런데 국민들은 화염병으론 부족했던지 열린우리당 전체에게 ‘0’패라는 씨를 말리는 ‘원자폭탄’을 투하해버렸다. 유 의원이 온 몸을 불사르면서 당선을 확신했던 영천마저도 단 일주일만에 원폭의 버섯구름에 뒤덮이고 말았다.

비록 선전했다지만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여건에서도 예상외의 큰 표차이로 낙담한 민주노동당의 과오도 만만치 많아 보인다.
성남 중원은 지난 10여년 동안 지역에 공을 들여온 인간 정형주의 패배가 아닌 민주노동당의 패배다.

선거때마다 타당의 앵벌이식 표 훑어가기에 분노하던 진보정당에서 이제는 자신들이 정치공학적 승리 유혹에 빠져 ‘한 푼도 못받고 말로 갚아야할’ 앵벌이로 돌변한 모습, 입만 열면 서민대중의 고통받는 삶을 돌아봐야 한다던 그들의 외침은 장사가 안돼 죽을 맛인 서민들이 지나다니는 시장통 앞에서 보수정당과 똑같이 신나게 ‘묻지마 관광 댄스’를 보여줌으로써 피날레를 장식했다.

진보가 단순히 이념만으로 성장하지 않는다는 것. 그에 따른 문화적 선도를 동반하지 않는 진보는 시대를 주도할 수 없다는 평범한 공식을 망각한 채 진보를 살찌우겠다는 포부는 시궁창에 내다 버리는 게 낫다

수개월만 지나도 유행이 변한다는 세상에 어떻게 2002년 대선당시 유행했던 ‘춤판 선거문화’를 진보정당마저도 그대로 답습하는 지 그들의 케케묵은 패션감각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군다나 참여정부 들어서도 갈수록 경제적 양극화의 고통속에 수천만의 서민들이 신음하고 있는 현실에서 뭐가 그리 즐거워 ‘막춤’식 선거문화가 2년이 넘게 정치판에서 유행으로 떠돌아 다녀야 하는가. 이건 시대정신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정치문화의 몰지각성과 아직도 대선의 추억속에 갇혀 있다는 반증인 셈이다.

이번에 개혁.진보진영 전체에게 국민들은 옐로카드가 아닌 사실상 ‘레드카드’를 꺼내들었다. 재보궐선거인 것이 천만다행일 뿐이다.

참담한 패배보다 안타운건 개혁.진보세력이 현재의 위기에 대해 어렴풋이 인식만 하고 전혀 갈피를 잡지 못한채 허우적대는 모습이다.

무늬만 개혁도 타락한 실용도 아닌 ‘서민대중의 삶’이다

열린우리당에서 또다시 ‘개혁 대 실용’이라는 국민기만극을 펼치며 일부 세력을 반개혁으로 몰아 거세하는 것이 정답일까. 아마 언론들도 그런 싸움이 일어나길 은근히 바라며 장사를 하고 싶을 것이다. 그런 방식은 본질과 거리가 멀뿐더러 오히려 정치 불신과 냉소만 증폭시킨다는게 입증되고 있다.

이번 재보선의 퍼펙트 패배는 열린우리당내 실용주의자들의 타락, 자칭 개혁파들과 추종자들의 자기모순적 몸빵, 노빠식 조선일보나 다름없는 친노성향 언론의 비겁함과 혹세무민이 어우러진 열린우리당과 그 주변세력 모두의 책임이며 총체적 자기분열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지금 열린우리당내 제 세력을 실용 대 개혁으로 나눌수 있을 정도로 개혁다운 ‘세력’이란 게 과연 존재하는가.


노 대통령과 참여정부를 피라미드 꼭지점으로 열린우리당내 실용주의파 지도부에 실속주의파인 친노세력(국참연, 유시민계)이 거대한 ‘실용 군단’을 이루고 있는 마당에 선명한 개혁노선을 일관되게 주장해왔던 세력이란 게 과연 얼마나 되는가.

기껏해야 초선의원 그룹중 손에 꼽을 정도만이 선명한 개혁파란 이름을 붙여줄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들은 지난 당의장 선거에서 보듯이 임종인 의원처럼 마치 돈키호테 취급당하며 예선통과도 못하고 거세되기 일쑤다. 어쩌면 열린우리당 창당정신에 가장 부합한 발언과 활동을 그나마 일관되게 유지해온 정치인이라면 임종인 의원 정도가 아니었을까.

임종인이 거세되니 영천 재보선에서 보듯이 자신을 ‘승리지상주의자’라고 불러도 좋다며 떵떵거리는 ‘실속파’ 유시민계가 선명한 개혁 장사꾼으로 둔갑해 당내에서 개혁 독과점에 까드깡 폭리를 취하고 있다.

이것이 지금 열린우리당의 현주소다. 2002년 대선당시 개혁과 진보적 사회발전에 대한 기대로 초롱초롱하던 개혁파들은 지난 2년여 동안 무수히 노 정권과 열린우리당을 떠나갔다. 이는 여론조사와 현실에서 이미 증명된 일이다.

그 빈자리를 ‘개혁 신분증’도 없고 정체를 알 수 없는 황건적들이 권력의 처마끝에 주렁주렁 매달려 반한나라당, 안티조선이란 그럴듯한 ‘알리바이성 구호’를 외치는 것으로 그들의 사이비성과 기회주의를 면책받고 신주류 행세를 하고 있는 것이다.

정당개혁이 생활인들이 정당에 쳐들어가기만 하면 다되는 양 떠들지만 기실 정치자영업자나 다름없는 자신들의 지지그룹이나 후원자 모집에 불과하다.

참여시간, 자금력, 정보력에서 현저한 열세를 안고 있는 생활 개미들과의 차이를 극복하는 대안없이 참여만 강요하는 것은 “정치 폐인이나 모니터 폐인의 수렁에 한번 빠져봅시다!”는 유혹에 불과하다.

서민대중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비실신분’(비정규직, 실직자, 신빈곤층, 신용불량자를 통칭)의 삶에 천착하지 않고, 4대 개혁입법이니 뭐니 해서 엄청난 선물꾸러미라도 되는양 포장해 그것만이 시대적 사명의 전부인 것처럼 호들갑 떨다가 그마저도 야합으로 걸레를 만드는 수준의 개혁.진보가 서민대중에게 얼마나 무능하고 무책임한 집단인지 날이 갈수록 확인 도장 받는 느낌이다.

대일 자존심 발언 등 대통령이 ‘입으로 만든’ 50% 지지도가 여당의 전패로 귀결되는 해괴한 사태의 비밀은 국민의 66%가 노 정권은 ‘노동자보다 기업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바닥 민심에 있다.

남북분단의 현실 때문에 특이하게도 감상적 민족주의가 진보를 자처하고 개혁주도세력을 형성함으로서 한국의 진보가 서민대중의 삶으로부터 심각하게 괴리되고 무능을 드러내는 현상이 고착화되고 있다.

지금 열린우리당내 리버럴주의자들과 민주노동당내 감상적 자주파들의 성향으로 볼 때 그들이 권력지향성만 조절한다면 굳이 당을 달리할 이유가 별로 없어 보인다.

도로민주당 단계를 지나 열린자민련, 열린민정당까지 진도가 나가버린 열린우리당에게 한국사회의 개혁과 진보적 사회발전을 지속적으로 맡겨둔다는 것. 절고 고개가 돌아간다. 그렇다면 민주노동당이어야 하는가. 이 또한 막막하고 피곤하다.

한쪽은 타락해서 가기 싫고 한쪽은 퀘퀘하고 숨막혀서 갈 수가 없다.
그렇다고 호남애향당이 돼가는 민주당에 역사적 전통과 애증만을 가지고 기웃거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버려야 산다

노빠는 노무현을 버리고, 유빠는 유시민을 버려야 하며, 민주당은 DJ를 놔줘야 하고, 진보는 골방에서 나와야 산다.

어디에선가 새로운 활로를 개척하고 다시 들판으로 내몰려간 생활 개미들이 돌아와 함께 정치를 이야기 하고 미래를 공유할 기회를 만들수 없을까. 그러기 위해선 누군가 자기를 버리고 새로운 전형을 창출하는데 앞장서 줘야 한다.

일례로 민주노동당에게 눈을 돌려보자.

지금의 민주노동당을 과감히 해체하고 기존 민주노총과 자주파 운동권 중심의 당에서 환골탈퇴하면서 새로운 개혁.진보진영의 중심으로 거듭났으면 하는 바램도 있다.

지금처럼 민주노동당내 기득권으로 자리하고 있는 운동권 정당의 모습으론 한국 진보세력의 희망이 될 수 없을 뿐더러 당내 문제 하나 제대로 해쳐가기도 버거워 보인다.

또한 당이 모든 것의 우선이라는 공산당식 집착으론 한국사회의 다양한 진보세력이 모일 수있는 터전이 될 수 없다. 새로운 통합이란 것도 기존질서와 관행을 깨는 자기결단 없이는 성공하지 못한다.

보다 실증적인 연구와 대안들을 담아내고, 생활 개미들이 활력있게 참여할 수 있는 정당문화를 이식하여 개혁.진보세력의 새로운 아지트가 될 수 있도록 민주노동당의 현 주도세력들이 기득권을 과감히 버리는 결단이 필요해 보인다.

국민은 자기희생적 결단을 통해 거듭나는 정치세력에게 인색한 적이 없으며 자만과 방자함에 빠져든 정치세력에게 몰락을 경험하지 않도록 배려해준 일도 없다.

민주노동당의 침체는 단순히 하나의 당내 문제로 끝나는 게 아니라 신자유주의 광풍속에 신음하는 서민대중의 삶을 방치하고 궁극적으로 개혁.진보진영이 붕괴되는 단계까지 급행열차를 타고 말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외부에 있는 사람이 민주노동당의 존폐가 걸린 주장을 강요할 수도 없고 강하게 주장하는 것도 도리는 아니니 이쯤 해두자.
그러나 민주노동당 구성원들이 고민해볼 주장이란 생각에는 변함없다. 그 시기가 그리 멀리 있지 않다는 것도…

마지막으로 이번 재보선에서 대부분의 언론이 국회의원에 정신 팔려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은 지방자치선거 부문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지방자치의 풀뿌리라 할 수 있는 구.시.군의원에는 새마을운동 간부 출신, 상가번영회, 로타리클럽부회장, 건설회사 사장 등 60년대식 이권을 노린 인사들이나 국회의원 선거때 품앗이 해주고 명함 하나 꿰찬 떨거지 등 구태의연하고 얼굴에 기름기 좌르르한 동네 유지들이 주로 출마해 지역 살림을 감시.감독하는 자치일꾼으로 나서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러니 지방자치가 주민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것으로부터 괴리되는 현상은 피할 수 없고 갈수록 지방차지 본연의 목적을 상실해 가는건 불문가지다.

이렇게 된데는 각 정당들 특히 진보정당조차 자신들의 이상을 실현하기 용이한 공간임에도 국회의원같은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곳에만 집중하고 풀뿌리 지방자치에는 소홀히 하거나 방치한데서 비롯된 것이다.

다가오는 2006년 지방선거에서 새롭고 신념있는 젊은 인재들이 대거 진출하도록 개혁.진보진영이 각별한 관심과 준비를 기울이지 않는한 지역 주민들을 위한 지방자치는 요원하고 여전히 지역 유지들의 잔치에서 벗어나기 어려워 보인다.

어쨌든 이번 선거에서 개혁.진보진영 전체에 0패의 충격을 안겨준 것이 아프기 보단 차라리 다행스럽고 신선하게 다가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부디 쓴 보약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 편집위원
 
* 필자는 '참정연' 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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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의원에게 ‘화염병’을 던지고싶다
5공 민정당, 자민련에 점령당한 열린당

2005/05/02 [14:51]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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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엥란트


유시민의원에게 ‘화염병’을 던지고싶다
유시민과 전두환.노태우의 ‘실용적’ 상생, 그 유치찬란한 ‘사설(蛇舌) 쇼’
 
김영국
개혁.진보 매체와 시민단체의 ‘유시민 봐주기’

한나라당 출신인 염홍철 대전시장의 열린우리당 입당을 두고 안그래도 바람잘 날 없는 여당이 또 시끄럽다. 철새 도래지에 사쿠라 꽃이 만발한 모양이다.

얼마전 재보선 후보등록을 앞두고 자민련 사람을 보쌈해오다 선관위 문지방에 삐져나온 이중당적 ‘대못’에 보자기가 찢어져 들통나는 희대의 코미디를 연출한지 일주일도 채 안돼서다.

이렇듯 재보선을 전후해서 열린우리당이 보여준 구태는 더 거론하기 민망할 정도로 역하다.

물론 논란의 핵심은 야당과 무슨 정쟁을 벌이거나 선거때만 되면 ‘개혁’을 팔아 장사해온 터이기에 벌어지는 자기검열적 ‘정체성 훼손’ 논쟁이다.

그런데 열린우리당 정체성 논란과 관련하여 염홍철, 이명수씨보다 더 선정적이고 시대착란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곳이 있다.

바로 경북 영천지역 재보선 현장에서다.
그것도 지난 당의장 선거에서 열린우리당내 진정한 개혁파는 자기 혼자뿐인양 정동계와 개혁이냐 실용이냐를 놓고 활극을 벌였던 유시민 의원이 주인공이다.

유시민 의원이 민정당 출신이자 호남 배제 지역감정의 원흉인 90년 ‘3당 합당’의 실무책임자 ‘정동윤’씨의 당선을 위해 온 몸을 불사르고 있는 것이다.

자칭 선명한 개혁파와 5공 민정당 실세와 ‘찰떡 결합’이라. 이 정도면 꽤 섹시한 뉴스 아닌가.

그런데 평소 섹시한 걸 즐겨찾는 보수신문은 물론 개혁, 진보를 표방한 매체 어디에서도 이 부분에 대한 코멘트조차 없다. 오로지 “영천지역 예상외 접전”, “유시민 TK와 ‘스킨십’ 시작했다”는 경마식 보도뿐이다.

보수언론이야 원래 유시민을 싫어하는데다, 민정당의 후예까지 들먹였다간 자기 얼굴에 침뱉는 꼴이니 그렇다 치자.
그런데 유시민이라면 유별나게 관심이 많은 개혁, 진보 매체에서마저도 이 부분을 언급조차 하지 않는 이유가 궁금하다.

더군다나 수구세력이라면 자가다도 경기를 일으킬 만큼 분노하는 매체와 시민단체에서 평소 개혁이미지를 독점해오던 사람이 최악의 수구적 인물의 당선을 위해 ‘몸빵’을 하고, 밤늦은 시간에 동네 피시방까지 찾아가 전황을 알리며 즐거운 상상의 나래를 펴고 있는데도 혀를 차는 모습조차 볼 수 없다.

하긴 지난 당의장 선거때 유시민 의원을 개혁파의 상징인양 되지도 않는 ‘뻥’을 쳐놨으니 한달도 안돼 악명 높던 전두환.노태우 정권의 후예를 위해 ‘몸빵’을 자처하고 있는 모습을 다루기가 영 뻘쭘했을 터다.

여기엔 노빠, 유빠 매체라는 비판을 받곤 하는 곳은 물론 개혁과 진보를 표방하고 있는 언론과 단체들의 ‘유시민 봐주기’도 한몫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마 유시민은 외면하고, 정동영계가 지금의 유시민처럼 정동윤씨 당선을 위해 밤낮을 설치고 다녔다면 어땠을까. 안봐도 비디오다.

그래서다. 이 글을 쓰는 것도. <대자보> 아니면 아무곳도 유시민의 ‘타락한 실용주의적’ 모습을 기록으로 남겨놓지 않을 것 같아서다.

유시민의 평소 모습은 편집해버린 채 선거때만 개혁의 화신으로 돌변하는 화려한 ‘사설(蛇舌) 쇼’에 홀려 개혁적 매체는 물론 지식인조차 넋이 나간 광팬처럼 열광하고 모니터 폐인이 되는 것을 조금이라도 방지하기 위해서다.

열광하고 실망하고 또 광분하고 돌아서서 분노하고 이 지겨운 악순환은 내용이 아닌 인물 중심의 사고가 빚어내는 필연적인 윤회다.

정치인에 대한 평가는 누구에게나 공정해야

나는 여기서 언론 매체는 물론 네티즌들에게도 정치인에 대한 평가는 공정해줄 것을 말하고 싶다.

누구는 자민련, 한나라당 출신들 데려왔다며 기득권적 구태세력이라고 하고, 앞에선 이를 못마땅한 척하면서 뒤로는 5공 세력의 당선을 위해 헌신하고 그 대가로 해당지역의 맹주가 돼보려는 야심으로 ‘수구와 상생하는’ 사람은 아무 문제가 없는 양 넘어간다면 이건 공평한 일이 아니다.

유시민 의원은 20일 밤늦게 영천에서 정동윤 후보의 선거운동을 마치고 어느 모텔 피시방까지 찾아가 아주 즐거운 보고서를 썼던 모양이다.
그는 당 게시판에 올린 보고서에서 영천 재보선의 분위기가 좋은 데 감격한듯 상상의 나래를 펼쳐댔다.

그는 정동윤 후보가 당선되어 열린우리당 의원총회장에 입장하는 순간 모든 의원들과 당직자들이 기립박수를 치는 즐거운 장면을 상상한다며 한껏 부풀어 있었다. 그러면서 그는 당원 동지 여러분에게 이 꿈같은 상상을 나누어 드린다며 자랑스러워 했다.

그리고 이어 “당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진로를 새롭게 설정하는 일은 5월 1일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저를 승리지상주의자라고 비판하셔도 좋습니다. 저는 우리당이 경상북도에서 승리하는 것을 정말 정말 보고 싶습니다.”며 최상의 ‘실용주의적’ 맨트로 마무리 했다.

당의 정체성 따위는 ‘딴나라스런’ 인물이라도 당선시켜 놓고 난 다음에 따질 일이라는 것이다.
‘~~한 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 ‘잘못되면 그때가서 비판하면 된다’ 이 문구는 노무현 정권 탄생과 함께 생겨나서 지난 2년여 동안 소위 노빠들의 변명 코멘트 주 메뉴였다.

아마도 정 후보가 당선된다면 유시민의 소망처럼 열린우리당 의원총회에서는 5공 민정당의 후예이자 ‘3당 합당’의 핵심 인물이 열린우리당 금배지를 달고 입장할 때 모든 의원과 당직자들이 기립박수를 치는 감격적인 장면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 자리에 전두환, 노태우씨가 초빙되어 감격의 눈물을 손수건으로 훔쳐내는 장면도 보게 될지 모르겠다.


광주학살과 민주인사 탄압 세력의 후예가 경북지역에서 금배지 하나를 선사해준 이유로 열린우리당에서 화려하게 명예회복되는 역사적인 현장을 부디 개혁과 진보 매체들은 놓치지 말기 바란다.

유시민의 뱀 같은 화술로 펼쳐댈 변명도 굳이 인터뷰하려 들 필요는 없겠다. “5공의 후예라도 이미 당에서 결정된 사항을 지도부에 있는 사람이 번복하는 것은 옳지 않다.”, “조직원의 한 사람으로서 주어진 일을 최선을 다해 완수했을 뿐이다.” 실제 어제 보고서에서도 유시민은 이런 속내를 내비쳤다.

이런 논리는 과거 군사쿠테타 주역들이나 이에 가담하고 부역한 자들이 자신을 항변할 때 너무도 익숙하게 들어온 변명이다.

열혈 유시민 지지자들은 소위 ‘유빠’라는 소리가 못마땅할 때 자신들은 유시민 ‘개인’이 아닌 유시민의 ‘지향점과 가는 방향’을 지지하는 사람들이라고 강변하기도 한다.

지금 유시민이 5공 핵심과 손잡고 영남패권주의적 지역정서에 기대어 ‘영남 맹주 자리’를 노리는 것이 그들이 정녕 가고자 하는 길일까.

막대기만 꽂아도 당선된다는 동토의 땅 영남에 열린우리당 후보가 된다면 이는 의미있는 일이다. 망국적인 지역감정 극복 차원에서도 그렇고 정치발전을 위해서도 값진 것이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열린우리당다운 후보가 승리했을 때의 일이다. 물론 최근 열린우리당의 행보를 보면 정동윤씨야말로 열린우리당다운 후보라고 강변해도 솔직히 할말은 없다.

다만 지역감정을 극복한다면서 호남 배제-영남패권적 지역감정의 원흉인 ‘3당 합당’의 핵심인물을 부활시킨다면 이런 낭패가 없다.
수구의 동토에 개혁의 깃발을 꽂는다면서 수구의 원조들을 도로 심어 놓으면 대체 어쩌자는 것인가.


국보법 대체입법도 안된다며 오로지 폐지만을 외치던 ‘240시간 연속의총’은 모두 생쇼였단 말일까. 어떻게 앞에선 국보법 폐지를 말하고 선거땐 국보법을 휘둘러 민주인사 탄압에 앞장섰던 5공 민정당 출신의 똥개가 돼 앞뒤 분간을 못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열린우리당내 개혁파를 자처하는 사람들은 1년은 과반수가 안돼서, 그리고 또 1년은 당내 반개혁세력 또는 실용주의자들의 딴지 걸기 때문에 개혁이 번번히 좌초된다고 항변해왔다.

그런데 지금 그들이 몸바쳐 당선시키고자 하는 열린우리당 후보들을 보라. 철새에다 자민련도 모자라 5공 민정당의 핵심 인물이라니 이러고도 자신들이 입으로만 개혁을 팔아 의원직을 연명하려는 ‘기회주의적 개혁장사꾼’들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

왜 정쟁이 벌어져 TV 화면에 얼굴 나가고 지면에 이름 실릴때만 개혁 아니면 죽고 못살 것처럼 ‘생쇼’를 하는가.

언제까지 개혁, 진보세력 그리고 네티즌들을 가지고 놀 셈인가. 그들은 답해야 한다. / 편집위원
 
* 필자는 '참정연' 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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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공 민정당, 자민련에 점령당한 열린당

2005/04/21 [09:41]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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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엥란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