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길을 묻는다
임종인 변호사 (법무법인 해마루, 전 국회의원)
격월간 민주사회를 위한 변론, 2009년 1~2월호
미네르바
결국 권력은 ‘공익을 크게 해쳤다’는 죄목으로 미네르바를 인신 구속했다. 그가 해쳤다는 공익은 과연 무엇일까? 인터넷게시판에 쓴 그의 글 하나가 ‘국가신인도’를 떨어뜨렸다는 것이다. 국가신인도가 과연 법이 보호해야 할 공익에 속하는 것인지도 의문스럽지만, 설령 그렇다 해도 과연 얼마만큼 떨어졌으며 그로 인해 우리 사회가 입은 공익의 손상은 어느 정도인지 온전히 죄질을 측량하고 입증할 수 있을 것인가가 더 큰 의문이다.
온(on)세상의 사람들이 미네르바에게 보낸 열광의 이면에는 마치 국가의 존재 이유가 기득권의 탐욕 실현이라도 되는 양 시대의 변화와는 상관없이 상황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중구난방의 대책을 쏟아내는 벌거벗은 권력을 향한 야유가 또렷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제 그의 구속과 더불어 그 야유의 대상과 범위는 더욱 확장됐다. 무엇보다도 법 그 자체가 권위의 실추를 피할 수 없게 됐다. 분명 세상은 ‘막걸리 반공법’ 시대로 회귀하고 있다.
일찍이 루소는 “자유로운 시민은 오직 법에만 복종하며 타인에 의한 지배를 강제당하지 않는다. 그것을 보장하는 것이 바로 법의 힘이다”라고 말했다. ‘법의 지배’가 정당한 것으로 승인되는 이유는 법이 사람 위에 존재하는 그 무슨 영물이라서가 아니라, 루소의 말처럼 부당한 권력의 행사나 강제적인 지배로부터 ‘시민들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존재하는 정의로운 것’이라고 개념 지워지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두드러진 현상은 이 같은 ‘법의 지배’의 의미가 법의 ‘자의적 동원에 의한’ 지배로 둔갑하고 있다는 것이다. 법 집행의 정당성 여부는 그것이 ‘누군가를 규율함으로써 선량한 시민들을 보호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 선량한 시민들을 억압하려는 것’인지에 달려 있다.
또한 공익이란 다짜고짜 무조건 전체의 이익이나 국가의 이익이 아니라, 가정 폭력에 시달리는 매 맞는 아내나 상습적으로 돈을 떼이는 하청업체처럼 누군가의 부당한 권력 행사나 강제적인 지배로 인해 침해당하는 선량한 시민들의 이익을 보호함으로써 사회 전체가 얻게 되는 이익을 말하는 것이다.
지금 미네르바를 옥에 가둔 법은 과연 시민의 소중한 자유를 보장하는 정의의 보루로써 작동된 것인가, 아니면 권력의 심기보존을 위해 시민의 자유를 억압하는 도구로 전락한 것인가? 과연 미네르바로 인해 부당하게 침해당한 선량한 시민들의 이익이란 무엇인가? 혹여 누군가의 부당한 권력 행사로 인해 미네르바가 대한민국 시민으로서 누려야 할 자신의 이익을 억압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구치소에 갇힌 미네르바가 진짜 미네르바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것은 중요한 일이 아니다. 머리는 비었으나 힘은 철철 넘치는 이 권력이 ‘지배자의 결정에 무조건 복종하고 침묵하라’는 명령과 함께 지금 옥에 가둔 것은 법의 이름으로 마땅히 보호받아야 할 선량한 시민의 자유와 인권이기 때문이다.
민변 창립 21주년을 맞는 해에 이처럼 말할 가치조차 없는 일에 관해 다시 말해야 한다는 사실이 참으로 서글프지만, 그래서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민주사회인가 아닌가?

광우병 쇠고기 수입에 항의하여 삼보일배를 하는 임종인 변호사와 강기갑 의원(왼쪽) ⓒ 뉴시스
입법 전쟁
언술 그 자체에서 권력의 왜곡된 상황 인식이 그대로 베어 나온다. 그들에게 입법이란 민주주의의 중요한 작동 과정이 아니라 타격해야 할 군사적 전략목표이며 반대당은 곧 적이다. 전쟁의 와중에 여권 인사들의 입에서 가장 자주 나온 얘기가 ‘민주주의의 원리는 다수결’이라는 말인데 그 의미구조는 ‘다수당인 자신들에게 복종하라’는 것이며 ‘복종을 거부하면 응징하겠다’는 것이다.
이야기 전개에 앞서 우선 잘못된 개념부터 바로잡자. 첫째, 민주주의의 원리는 다수결이 아니라 ‘다수의 지배’다. 다수결은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의사결정방법의 하나일 뿐이다. 둘째, 다수의 지배는 ‘원내 다수당의 지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다수는 ‘국민들 가운데 다수’를 의미하는 것이다. 셋째, ‘원내 다수당’은 다음 선거까지 불변일지 몰라도 ‘국민들 가운데 다수’는 개별사안별로 계속 그 구성이 변한다. 따라서 선거가 끝난 뒤에도 민주주의의 과정은 중단되지 않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다수결이 아니라 참여다. 민주공화국 자체가 신분제의 구질서를 철폐하고 스스로 자기 자신을 지배할 뿐 그 누구에게도 지배당하지 않는 ‘시민’으로 거듭 태어난 사람들이 사회의 주인으로서 동등한 자격으로 참여(participation)해서 함께 세운 나라다.
이때 참여란 무엇인가? 대표자 선출과 입법을 포함한 모든 공적 사안들에 관한 합리적 토의와 결정의 과정에 참여하는 것이다. 즉 참여 그 자체가 민주주의의 과정이며 따라서 참여가 배제되는 순간 나라의 이름을 뭐라 붙이든 간에 그 나라는 귀족국가나 왕조국가, 혹은 전체주의 국가로 되돌아가게 된다.
그리고 당연히 중요한 것은 누구나 동등한 자격으로 참여하는 것이므로 상대적 소수나 약자라 할지라도 배제되거나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만약 다수파의 의견이 전체의 의견인 양 일방적으로 관철되고 소수파의 입장이 일상적으로 억압된다면 그것은 다수의 횡포이며 그 자체로 구조적 폭력이다.
원내 다수당은 총선을 통해서 국정운영을 주도하라는 총론적인 위임을 받은 것이지 모든 개별정책의 각론에 대한 백지위임장을 들고 민주주의의 과정마저 생략할 수 있는 권한을 위임을 받은 것이 아니다. 따라서 충분한 사회적 토론이나 원내 합의 과정은 과감하게 생략하고 ‘다수결이니 무조건 복종하라’며 그 무슨 전쟁을 선포하고 나서는 것은 바로 독재의 논리이며 반대당의 극한투쟁은 그 당연한 반작용이 된다.
지난 1월 12일 이명박 대통령은 새해 첫 라디오 연설에서 ‘해머가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때렸다’며 연말 임시국회에서 벌어진 폭력사태를 개탄했다. 또한 ‘분열을 조장하고 통합을 가로막는 정치적 양극화야말로 극복해야 할 과제’라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그러나 말은 바로 해야 한다. 민주주의를 때린 것은 해머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과정을 무시하고 입법전쟁을 선포한 다수당의 오만이며, 지금 ‘분열을 조장하고 통합을 가로막는’ 것은 국회의 권위와 야당의 존재를 무시한 채 무조건 밀어붙이라고 ‘속도전’을 주문하는 대통령 자신이다.
민변 창립 21주년을 맞는 해에 이처럼 말할 가치조차 없는 일에 관해 다시 말해야 한다는 사실이 참으로 서글프지만, 그래서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민주사회인가 아닌가?

북유럽 탐방 도중 만난 유학생들과 함께 ⓒ 임종인
촛불과 촛불
대통령 탄핵사태를 맞아 새로운 세상을 향한 열망을 모아 밝혀들었던 2004년 봄의 촛불은 불과 4년 뒤인 2008년 봄 배반의 시대를 향한 절망의 촛불로 바뀌었다. 그리고 촛불로 시작해서 촛불로 끝난 17대 국회. 그 안에 내가 있었다.
지난 해 촛불시위의 현장에서 삼보일배를 했던 것은 속죄의 의미였다. 무릎에 심각한 무리가 올 수 있다며 의사가 중단할 것을 권고했지만 그래서 도중에 멈출 수 없었다. 노무현 정부 5년의 좌절과 실패는 결국 민주개혁세력의 몰락과 수구보수세력의 재집권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그리고 시간을 거슬러 끊임없이 거꾸로, 거꾸로 가는 것이 그들이 보인 행태의 전부였다.
강기갑 의원과 함께 청와대까지 가는 동안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물었던 것은 ‘나는 진짜 최선을 다했는가? 이 비극적인 사태에 나의 책임은 없는가?’였다.
물론 나는 열심히 노무현 대통령에게 반대했다. 국가보안법, 이라크파병, 대연정, 대추리 사태, 한미FTA, 비정규직 법안 등등. ‘그러려면 차라리 당을 나가라’는 모욕을 받아가며 그때마다 반대하고 또 반대했다. 그 일들은 모두 2002년 대선과 17대 총선 민의에 정반대되는 정책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대는 열심히 했지만 결국 막아내지는 못하였다. 막지 못했으니 반대했다고 책임이 면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져야 했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사망선고를 받은 열린우리당은 잘못을 고치는 대신 통합논의에 매달렸다. 한나라당 집권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했지만 그 길은 한나라당 집권을 돕는 길이었다. 성난 민심 앞에서 잘못을 고칠 생각은 안하고 정권을 못 넘겨준다고 손에 쥐고 버틴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결국 그해 연말 당은 공개적으로 정계개편을 선언했다. 그것으로 백년 가는 정당을 만들겠다는 약속마저 물거품이 되었다. 나는 고심 끝에 통합신당에 동참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2007년 1월 22일 당을 ‘가장 먼저’ 탈당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은 책임지는 자세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결국 나를 뺀 열린우리당 의원 전원과 한나라당의 손학규씨가 합류해서 만든 대통합신당은 대선에서 대참패를 했다. 총선을 앞두고 대통합신당은 민주당과 통합하며 당명을 다시 통합민주당으로 바꾸었다. 입당해야 한다는 주위의 권유가 많았지만 나는 역시 그 당에 갈 수 없었다. 이름을 바꾼다고 책임이 면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져야 했다. 결국 나는 무소속으로 출마했고 낙선했다. 그러나 다시 나에게 묻는다. ‘나는 진짜 최선을 다했는가? 이 비극적인 사태에 나의 책임은 없는가?’ 반대하고 낙선했다고 책임이 면해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식으로든 이 사태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촛불로 시작해서 촛불로 끝난 17대 국회. 그 안에 내가 있었기 때문이다.
길 위에서 길을 묻는다
어느 여름날을 지나며 촛불시위는 잦아들었고 그 사이 17대 국회 임기도 끝났다. 의원 생활 동안 나는 국방위원회와 법사위원회 소속이었는데, 그러나 나의 또 다른 관심은 경제와 복지였고 틈틈이 관련 공부를 하면서 북유럽 사민주의 국가들을 꼭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해마루에서 변호사 업무를 재개하는 것으로 진로를 정하고 나니 중간에 남는 기간을 어떻게 보내는 것이 좋은지 정하는 일이 나머지 과제였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런 자유시간이 다시 쉽게 올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긴 여정은 아니지만 핀란드는 교육, 스웨덴은 노사관계식으로 국가별로 이슈를 정해서 현장을 직접 방문하고 그동안 궁금했던 사안들에 대해 인터뷰를 진행하면 나름대로 알찬 수확을 거둘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렇게 해서 떠난 여행은 8월20일부터 9월19일까지 한 달 동안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아일랜드 등 북유럽 5개국을 차례로 방문하여 정치, 사회, 문화, 교육, 복지에 관련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복지국가모델을 탐방하는 일정으로 진행됐다.
이 짧은 지면에 그 내용을 다 소개할 수는 없지만 인상 깊었던 몇 가지만 소개하면 스웨덴(900만)을 제외하고 모두 인구 500만에 불과한 작은 그 나라들은 추운 기후와 척박한 땅을 가졌지만 매년 국가경쟁력 1,2,3위를 다투는 강국들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원동력은 그들 특유의 사회모델이었다.
예를 들어 스웨덴의 경우 같은 일을 한다면 어느 직장에 다니건 같은 임금을 받게 한다. 그리고 비정규직은 고용이 불안정하기 때문에 오히려 정규직보다 임금을 더 준다. 비정규직 비율은 10%밖에 되지 않으며 반면 노동조합의 조직률은 80%에 이른다.
만약 한국적 상식에 따른다면 이런 조건에 놓인 스웨덴 경제는 노사분규로 인한 고비용저효율로 인해 진작 망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불과 100년 전만해도 후발국가였던 스웨덴은 볼보(자동차), 에릭슨(통신), 일렉트로스(가전), 이케아(가구)같은 세계 일류기업을 보유한 경제 강국이 되어있다.
이런 현상이 가능한 이유는 ‘기업에게 가장 중요한 재산은 근로자이고, 근로자 대우를 잘해줘야 기업도 산다’는 사회적 합의와 더불어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복지제도의 정착과 소득의 편중 없이 보통사람들도 고루 잘살 수 있어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다.
정부가 교육비와 의료비를 거의 무료로 해주고, 연금과 주거를 보장하며 정리해고 된 실업자들을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으로 보살피기 때문에 기업이 부담해야 될 총비용은 줄어든다. 그 대신 기업은 불필요한 일에 노동력이 낭비되지 않게 하고, 연구개발과 경역혁신으로 효율을 높이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효율성을 높인다는 명목으로 비정규직의 비율을 높여 인건비를 줄이고, 대기업은 중소기업을 쥐어짜 원가절감을 한다. 이렇게 떠넘겨진 사회적 비용을 짊어진 중소기업과 근로자들은 매우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되고 사회 전체적으로는 생산성과 효율이 급강하하며 사회적 갈등이 구조화되는 악순환 구조를 이룬다.
여행을 하는 내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던 생각은 '똑 같은 사람이 만들어낸 사회인데 어떻게 해서 저들과 우리는 이토록 다른가?'하는 의문이었다. 빛나는 문화유산과 높은 교육 수준 그리고 세계 11~13위 수준의 경제 규모를 가진 우리나라는 저들과 비교할 때 결코 약소국이 아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가진 역량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것일까?
결론은 결국 정치가 문제라는 것이었다. 대학을 나와 평생 열심히 일 해도 집 한 채 가질까 말까인 나라의 국민에게 세계수준의 경쟁력과 근로의욕을 기대할 수는 없다.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가진 것을 서로 나누며 열심히 일하는 보통사람이 잘사는 나라를 만들자는 사회적 합의 없이 복지사회는 요원하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그나마 이루어놓았던 민주화시대의 성과마저 갉아먹으며 시간을 거슬러 거꾸로, 거꾸로 후진화를 하고 있다. 어떻게 해야 이런 정치를 다시 바꿀 수 있는가? 길 위에서 길을 묻는다.
ㅁ 출처 : 임종인 블로그 ==>
http://blog.daum.net/demokrat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