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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에 해당되는 글 1

  1. 2009.03.02 [이대근 칼럼] 투표 안한 54%가 말하는 것

[이대근칼럼] 54%가 말하는 것 


[경향신문] 입력: 2008년 04월 16일 18:09:09  


민주주의 선거는 선택 가능한 대안들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그러나 18대 총선은 그러지 않았다. 한국의 정치계급들은 대안을 내놓는 대신 선택의 기회를 차단함으로써 자기의 기득권을 재생산하고자 했다. 그들은 선거일정을 늦춰 후보가 누군지 알 수 없게 했다. 낙하산·밀실·나눠먹기 공천을 통해 시민들이 아니라, 자기들이 선택한 것을 시민들이 선택하게 했다. 쟁점은 피하고, 시민사회의 토론은 막았다. 정당들의 이념·노선·정책은 불분명했을 뿐 아니라, 서로 구별되지도 않았다.


- 선택의 기회 차단당한 유권자 -


이렇게 시민참여 배제의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선거에서 어느 하나를 고르는 것만큼 흥미 없는 일도, 괴로운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시민의 46%가 투표장을 찾았다. 그러나 그 나머지, 아니 54%의 절대다수는 다른 선택을 했다. 선택하지 않기로 선택한 것이다. 그들로서는 합리적 선택이다. 루소는 “시민들은 의원을 뽑는 동안에만 자유롭고 선거가 끝나면 다시 노예로 돌아간다”고 했다. 선거 때 투표행위 한 번으로 주권을 넘겨받은 의회가 시민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대의제의 한계를 지적하기 위해 한 말이다. 그러나 대의제의 본질적 한계에 대한 루소의 이 18세기적 걱정조차 21세기 한국인에게는 사치다. 왜냐하면, 우리는 선거 동안에도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이다. 54%에게 자유가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투표장에 갔던 46%에게도 자유는 없었다. 17개의 정당과 수많은 후보들은 우리에게 다양한 대안이 있다고 기만하는 숫자에 불과하다. 어떤 기준으로 누구를 고르든 결과는 십중팔구 같았다. 보수당, 보수성향의 당선자는 어림잡아도 200석이 넘고, 통합민주당의 우경화를 고려하면, 18대 국회 그 자체가 하나의 보수당이다.


사정이 이렇다면, 46%의 시민은 자기의 대표자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대표자가 시민을 선택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시민들이 주권을 행사했다는 것은 착각이다. 장 보들리아르식으로 말하면, 이번 선거는 민주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것처럼 속이기 위한 장치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총선 결과가 보수적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다. 결과는 보수적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문제는 보수의 과잉 대표체제에 있다. 견제와 균형을 잃은 이런 체제에서는 보수세력간 권력투쟁이 정치를 대체한다.


- 다시 거리서 권력과 마주하나 -


물론 보수정파간 찬반이 엇갈리는 한반도 대운하처럼 보수에 의한 보수의 견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많지 않을 것이며, 있다 해도 보수정파간 권력 투쟁을 위한 도구로 이용될 것이다. 간혹 그들간 차이가 커 보이는 때가 있을 텐데, 그것은 권력 배분을 둘러싼 갈등의 치열함 때문이지 차이의 크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이명박·박근혜 갈등이 반복되고 간혹 이회창과 민주당이 끼어들어 실랑이하는 소리도 자주 들릴 것이고, 이런 정치판의 소란이 마치 견제와 균형이 작용해서 정치가 잘 가동되고 있는 듯한 착각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러나 복당이니 당권이니 하는 것들은 서민들의 삶의 개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들이다.


이런 것 말고도 보수 과잉 대표체제가 안고 있는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그것은 이 체제가 시민사회의 다양한 욕구와 가치·이해를 반영하지 못하는 ‘닫힌 구조’라는 점이다. 10년 만에 민주화 정권은 몰락했지만, 시민사회는 민주화 20년간 성장해왔다. 이는 정치사회가 이 시민사회의 성숙함과 다양성을 억압하고, 시민사회와 분리되어 서로 어긋나고 충돌하는 정치구도를 유지하는 일이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54%가 고개를 치켜드는 순간 지반이 허약한 이 정치판은 순식간에 붕괴될 것이다. 한마디로 보수 과잉 대표체제는 불안을 제도화한 체제이다. 이 불안을 누가 잠재울 수 있을까. 민주당? 그러나 민주당의 81석은 보수세력을 견제하기에 너무 적은 의석이며, 위기감을 느끼고 노선과 조직을 전면 쇄신할 정도로 자극받기에는 너무 많은 의석이다. 더구나 민주당은 새로운 보수당으로 탈색되고 있다. 81은 의미없는 숫자이다.


정치 현실이 이렇다면, 자기의 욕구와 이익을 대변할 정당을 잃은 이들은 권력과 직접 마주하는 수밖에 없다. 물론 그들은 의사당에서 만나지 않을 것이다. 아스팔트. 다시 거리의 정치인가.


〈 정치·국제에디터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04161809095&code=990339


ㅁ [시론]새 진보를 향한 대전환==>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04161816475&code=99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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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엥란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