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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 케인스, 하이에크, 그리고 폴라니 30년
[비나리의 초록공명] 세기적 패러다임 전환의 순간, 누가 미래 알 것인가
 
우석훈
우리가 걸어온 날들
 
지금은 바야흐로 격변기이다. 지금 우리가 어디로 가는 건지, 혹은 어디에서 온 건지, 이 모든 것들이 흔들리는 격동의 시간이기는 한데, 사실 이 변화는 ‘열정’과는 상관없어 보인다. 시간을 100년쯤 뒤로 돌려서 세계사를 본다면, 그 시기에는 사회주의를 만들고자 하던 사람들 아니면 그와는 또 다른 페이비언 사회주의자들이 있다. 불과 100년 전, 사람들은 미래의 모습에 대해서 대단한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혁명을 믿었든, 아니면 인류의 영원한 영광을 믿었든, 이데올로기가 되었든 아니면 예술이 되었든, 기꺼이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사람들이 아주 많았다. 그리고 배운 사람일수록 더 열정적이었다. 지금은 어떤가? 열정적인 사람들은 세계적으로도 아주 드물어 보인다. 노벨 경제학상, 주거나 말거나, 시큰둥하게 있던 크루그먼은 그나마 조금 열정적으로 글이라도 쓴 편이다. 하지만 지금 이 시기에 열정적으로 무엇인가 해보거나, 아니면 새로운 세상을 열어보려고 하는 사람은 한국에는 거의 없어 보이고, 세계적으로도 아주 드물어 보인다. 아, 우리 모두는 지금 자그마한 보트에 매달려, 내가 탄 보트가 가라앉을 것인가, 아니면 버틸 것인가, 그런 거나 재고 있는 가여운 ‘보트 피플’ 같아 보인다.

한국의 가장 보수적인 경제단체라고 할 수 있는 자유기업원에서 최근 경제학자 51명에게 한국 경제의 미래에 대해서 물어보았다고 한다.
 
한국 경제가 회복되는 데에 2~3년은 걸린다고 답한 경제학자들은 72.5% 정도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지금 정부가 말하고 있듯이, 6개월 이내에 회복된다고 말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연합뉴스》, 2008년 12월 11일).
 
어지간히 보수적인 경제학자들이 모집단임에는 분명할 듯한데, 이들 중 다수가 지금의 문제는 최소한 2~3년 있어야 풀린다고 답한 건 좀 생각해볼 만한 일이다. 농담 삼아 말하기를, 한국에서의 1년은 조선왕조 500년과 같다고 한다. 그만큼 역동적이면서도 예측 불가능한 사회라는 말이다. 늘 그렇게 살아온 한국 학자들에게는 과학적 분석이나 데이터와는 아무 상관없이 신념과도 같은 낙관론이 있다. “지금은 힘들어도 앞으로는 잘될 거야.” 내가 기억하는 한에서, IMF 경제위기 때에도 경제학자들이 지금처럼 비관적으로 미래를 전망하지는 않았다.

자, 개체발생이 집체발생을 반복한다는 생물학의 가설 하나를 생각해보자. 포유류가 태어날 때, 자궁에서 단세포 동물로 시작해, 양수에서의 바다 생명체 시절을 거쳐 결국 포유류가 된다는 그런 가설에 착안한 것이다. 모든 개체들은 결국 자신의 종의 역사가 거쳐온 진화의 과정을 거쳐온다는 그런 가설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당장 내가 어떤 학문적 길을 걸어왔는지 생각해보자. 나는 케인시언이었던 선생님들이 개별적으로 하이에크주의자로 전향하였거나 막 전향하려고 하던 시절, 숨어서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읽으면서 경제학자로서의 첫 발을 떼었다. 어떻게 보면 대학 1학년 때, 케인스 식으로 사유하기를 배웠던 나는 처음 경제학도가 되었고, 대학 2학년 말 처음 『자본론』 첫 페이지를 넘기면서 비로소 경제학자가 된 셈이다. 1990년, 파리에서 처음으로 마르셀 모스의 『증여론』을 읽고 폴라니의 책들을 읽으면서, 나는 완벽하게 비주류가 되었다. 마르크스의 세계에서도, 케인스의 세계에서도 안착할 수 없었다. 이후 한국에 돌아온 이후, 이미 하이에크의 제자들에게 점령당한 한국에서 10년 동안, “목숨만 붙여다오”라고 말하면서 만신창이가 된 육신을 이끌고, 겨우겨우 마흔의 고개를 넘은 셈이다.

우리 모두는 대개 이런 식이었을 것이다. 『자본론』에 안착하면서 숨만 겨우겨우 쉬는 금붕어처럼 지난 10년간을 버텼거나, 조금 더 적극적으로 케인스의 『일반이론』을 찬양하며 ‘공공성’을 강조하거나 국가주의를 찬미했을 것이다. 슬프게도, 국가주의를 찬양할수록, 바로 옆에는 아주 강렬한 민족주의의 쇼비니즘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선을 넘을까, 말까, 황우석 사태를 건너면서 정말 어항 바깥으로 뛰쳐나온 금붕어 같았다. 아닌가? 그냥 하이에크의 세계 혹은 그의 제자인 밀턴 프리드먼의 세계나 이걸 기계적으로 한국에 접목하려고 했던 공병호의 세계에서 행복했었나? 그랬다면, 어떤 경로로든, 지금 『인물과사상』에 실린 이 글을 읽고 있을 까닭이 없을 것이다.
 
세계가 걸어온 날들
 
자, 한국이라는 공간을 넘어서, 세계사에서 잠깐 우리가 지나온 시간을 살펴보자. 분명 1929년 대공황을 기점으로, ‘봐, 자본주의는 안 된다고 했잖아’라고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의 법칙을 ‘철의 법칙’으로 삼던 마르크스의 시대가 있었다. 한국에서도 백남운의 『조선경제경제사』가 화려하게 꽃피던 1933년, 그 마르크스의 시대가 있었다. 그리고 1945년, 전후 복구와 함께 1974년 1차 석유파동까지, ‘영광의 30년’이라고 불리는 케인스의 시대가 있었다. 크루그먼은 미국 경제사에서 이 시기를 ‘대압착의 시대’라고 부른다(『크루그먼, 미래를 말하다』 참조). 한국 역시 유신경제, ‘개발독재의 시대’를 맞아 케인시언들이 아주 힘을 쓰던 시기가 있었다.
 
그리고 확실히 ‘시장 과정(market process)’을 강조하던 하이에크의 시대가 열리기는 했다. 시카고학파가 밀턴 프리드먼을 내세우고 전면에 나섰고, 세계화·금융화와 함께 경제학이 ‘정치경제학’으로서 가지고 있던 통찰력과 낭만을 잃어버리는 대신, 잔혹함과 단순함으로 무장하던 시기가 왔다. 특히 마지막 몇 년, 정확히 따지면 1998년 클린턴 탄핵을 주도했던 깅그리치 상원의장이 이끌던 미국 네오콘이 이 마지막 바통을 넘겨받으면서, 미국은 물론 전 세계가 아주 잔인하면서도 우울한 10년을 보냈다. 이 시기에는 ‘국지전’이 일반화되면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전같이 모두가 쳐다보던 전쟁 말고도, 아프리카에서는 완전히 전쟁이 일상화되다시피 하였다. 장 지글러의 『세계의 절반은 왜 굶주리는가?』, 제목 그대로 굶주림은 세계적으로 일상화되었고, 슬럼이 지구를 뒤덮게 되었고, 조금만 가난하다 싶으면 모든 것을 빼앗아가는 그런 시기가 도래하였다.

하이에크가 원래 이렇게 잔인했던 사람일까?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만은 않는다. 하이에크도 인도적인 사람이었고, 도의가 땅에 떨어지면 안 된다고 믿었던 사람이라는 것이, 내가 이해하는 하이에크이다. 최근에 출간된 나오미 클라인의 『쇼크 독트린』이라는 저서는, 하이에크의 수제자인 밀턴 프리드먼이 독재자 피노체트의 경제 자문관 출신이었으며, 그가 이 모든 폭력적 경제학의 출발점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점을 제시한다. 이 책을 충실하게 읽으면, 어쩌면 밀턴 프리드먼을 비롯해 공병호 등 모든 하이에크의 제자들은 하이에크의 배신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하긴, 이런 대가의 제자들은 모두 그런 오명을 늘상 받고는 했다. “모든 마르크스의 제자들은 모두 마르크스의 배신자들이다”를 비롯해서, “모든 케인스의 제자들은 케인스의 배신자들이다”와 같은, “모든 예수의 제자들은 예수의 배신자들이다”라는 니체식 정식에 우리가 얼마나 익숙한가. 어쨌든 좋든 싫든, 지난 시기의 역사는 몇 명의 대가들이 장식한 세계사이고, 그들의 제자들이 선생들의 위명을 받들어--실제로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열심히 “이래야 한다”라고 외쳤던 시기이기도 하다.
 
이제 남은 건, 하이에크의 실패 이후, 1) 케인스로 돌아가자, 2) 마르크스로 돌아가자, 3) 순수 하이에크로 돌아가자, 이 세 개의 명제만이 남은 듯해 보인다. 물론 아직 정신 못 차리고, “하이에크의 영광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혹은 “오바마는 얼굴만 검지, 사실은 하이에크주의자이다”라는 종류의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한 것 같다. 사실 새로운 경제의 흐름이 나올지, 아니면 다시 과거로 돌아가 마르크스-케인스-하이에크의 90년짜리 사이클을 다시 한 번 반복하는 순환론적 모습이 자본주의의 미래가 될지, 현재로서는 아무도 모른다. 아, 그걸 알아야 할 것 아니냐? 이 세기적 패러다임 전환의 순간에, 누가 미래를 알 수 있단 말인가!

아, 물론 이런 고상한 얘기들은, 경제라면 대운하 혹은 대운하 비슷한 것만 생각하는, 경제와는 아무 상관없는 현 정부의 건설주의자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얘기이다.
 
폴라니와 모스의 텍스트
 
케인스와 하이에크의 기이한 공통점은, 원 텍스트가 필요 없는 학자였다는 점이다. “정부가 나서면 된다” 혹은 승수효과와 같은 몇 가지 단어만 알면 케인스는 무한복제가 가능했다. 솔직히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예전 혹은 지금 케인스를 주장하던 사람들 중에서 케인스의 일반이론이나 그의 화폐론을 읽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는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이름으로, 자기들 맘대로 해석한 애덤 스미스의 세계를 정말 원저자와 아무 상관없이 펼쳐 보일 수 있었던 가엾은 텍스트 『국부론』의 경우와 마찬가지이다. 마찬가지로, 수많은 하이에크주의자들 역시 하이에크의 텍스트들을 진짜로 읽은 경우는 그렇게 많아 보이지는 않는다. ‘시장’, ‘감세’, 이 두 단어만 알면 되었고, 여기에 한국식 하이에크 버전을 만들기 위해서는 “세계화가 대세다” 정도만 필요하다. 아니, 여기에 “‘좌빨’들은 북한으로 가라”는 보조 명제 하나만 더하면 완벽할 것 같다. 뭘 자세히 알 필요도 없고, 최소한 민족주의 극우파로서의 염치도 필요 없는 한국의 하이에크의 제자들은 이렇게 완성된 셈이다. 하여간 이 희한한 나라 대한민국에서는 하이에크는 황당한 반민족주의적 극우파 버전이 되었다. 케인스도 마찬가지의 운명이었다. 폴 사무엘슨이 정리한 ‘신고전학파 종합(Neo-Classical Synthesis)’이라는 체계에서의 ‘거시경제학’이라는 이름으로 전락한 케인스를 공부하는 데에는 케인스의 텍스트들은 아무런 필요가 없었다.

좀 고상하게 한다면 경제원론을 보면 되었고, 더 쉽게 사무엘슨 버전의 고시용 경제학 교과서로도 충분했다. 좀 잔인하기는 하지만, 어쨌든 우린 그런 시대를 살아온 셈이다. 텍스트가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핵심 개념 몇 마디만 알면 충분한 것을. 그리고 원저자의 생각과 이념과는 상관없이, 자기 맘대로 응용하고, 그걸 자신을 정당화시키거나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생각을 관철시키기 위한 설득의 도구 정도로 케인스나 하이에크가 전락한 것은, 엄연한 사실 아닌가?

이런 상황에서, 해방 이후 원텍스트를 읽어야 한다는 첫 번째 저자는, 마르크스였던 것 같다. 물론 『자본론』은 아주 많은 학생들과 심지어는 학자들에게도 아주 처치 곤란할 정도로 읽기에도 또 안 읽기도 곤란한 텍스트가 되었다. 1980년대, 아마 많은 사람들은 읽지 않고도 “읽었다”고 ‘뻥’ 치기도 했겠지만, 어쨌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텍스트를 소장하기는 한 것 같고, 또 읽으려고 노력한 건 사실인 것 같다. 물론 마르크스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한동안 한국 사회에서 『자본론』의 권위는 읽었느냐, 읽지 않았느냐라는 그 차이에서 엄청나게 “멋있다”는 위계로 작동한 것이 사실일 것 같다. 사실 그랬던 것 같다.

그 이후, 1990년대 내내 한국에서 텍스트의 권위는 대단했다. 『자본론』에 뒤이어 푸코의 책들이 휩쓸고 갔고, 그 뒤에 다시 들뢰즈의 책들이 휩쓸면서, 라캉, 네그리 심지어 촘스키까지, 한국에서 비로소 ‘원전 텍스트’들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물론 이 기간 동안, 한국의 사회과학은 한국 사회에 대한 설명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텍스트를 위한 텍스트처럼 작동하는 경향이 좀 있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결국 IMF 경제위기를 맞으면서 모든 텍스트는 일본식 표현으로 ‘사소설’과 자기계발서 혹은 재테크 책들에 모든 권위를 내어주었다. 그리고 지난 10년 동안, 우리는 좋든 싫든, 모두 하이에크의 제자가 되거나 아니면 시대의 이단아가 된 셈이다. 하이에크의 대안이 있느냐? 마르크스, 아니 그거 말고. 케인스, 아니 그거 말고. 그럼 폴라니? 아니 그건 더더욱 아니지. 이렇게 해놓고, ‘대안’ 타령을 10년 동안 한 셈이다. 참 잔혹한 하이에크의 시대였다. ‘시민 없는 시민운동’, 그래 솔직히 말하면, 시민이 없는 데도 시민운동을 만들어내야 했던 사람들의 고통을 아는가? ‘노동자가 지지하지 않는 노동 정당’, 이 시기가 바로 우리의 하이에크 시대였다. 민중들이 전혀 공감하지 않는 민중미학의 시대, 그게 우리가 걸어온 지난 10년이다.

자, 이제 하이에크의 시대를 뒤로하고 다시 폴라니의 시대가 올 것인가? 오기는 할 것 같다. 이윤율과 교환가치를 중심으로 생각했던 마르크스, 소비와 저축 그리고 정부의 역할을 중심으로 생각했던 케인스, 그리고 시장은 그 스스로 일종의 ‘과정’으로서 혁신을 만들어내고야 말 것이라고 믿었던 하이에크, 그들과 전혀 다른 층위의 사유를 제시한 폴라니의 시대가 오기는 올 것 같다. 증여, 호혜성, 혹은 ‘제한적 경제’ 혹은 유사한 인류학적 상상력은, 필시 엄청나게 많은 책, 즉 최소한 100권은 넘는 원전들 그리고 역시 100개는 넘는 후속 학자들의 논문들은 좀 읽어줘야 ‘한 말빨’ 하게 만들 것 같은 느낌을 주기는 한다.
 
여기에 나의 괴로움이 있다. 케인스와 하이에크 시대처럼, 고시용 경제학 교과서 한 권으로 날탕으로 이 거장들을 단순 암기하면서도 잘도 응용하던 개발독재의 옹호자들 앞에서, “자, 여러분은 이제부터 죽었다고 복창하시고, 이제부터 100권의 책을 읽으셔야 합니다”라는 텍스트의 바다에 빠지게 하고 싶지도 않다. 자, 이제부터 열리게 될지도 모르는 폴라니 30년의 시대, 여기에서 도대체 한국은 어떻게 해야 지난 세 번의 경제 거장의 시대에 발생했던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던 참상을 그런 대로 안전하게 건너갈 수 있을까? 텍스트는 읽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절대 텍스트에 매몰되지 말라는, 그런 하나마나한 얘기를 다시 반복해야 하는 것일까?
 
세 가지 영역의 질문들…
 
최근 모스를 키워드로 하는 국제학회는 가히 폭발 직전이고, 해외에서 폴라니의 인기는 하늘을 찌른다. 이건 비단 유럽이나 미국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고, 일본 학계에서도 유사한 흐름은 감지된다. 물론 한국인도 워낙 이런 수입에는 보통 아닌 민족이므로, 조만간 한국에서도 폴라니 열풍이 시작될 것이다. 오바마를 대통령으로 당선시킨 민주당이 3년 전 ‘공정무역(Fair Trade)’이라는 개념을 전면에 내세울 때, 이 언어의 뿌리가 된 폴라니의 세상이 올 것이라고 직감한 사람은 많다. 아마 나만 그렇게 느낀 것은 아닐 것이다. 결국 여러 거장 중에서, 지금까지 뒤로 밀려나 있던 칼 폴라니가 ‘마르셀 모스’의 『증여론』이라는 원텍스트를 중심으로 여러 가지 방식으로 해석되고, 그 속에서 케인스주의자들과 하이에크주의자들이 갈등하면서도 공존하는 형태가, 아마 앞으로 30년간 세계 경제의 주요 담론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미 UNDP(유엔개발계획)나 UNESCO(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와 같이 제3세계를 주요 활동무대로 움직이는 UN 기구들, 아니면 ‘거버넌스’라는 개념을 키워드로 생각하는 여러 기구들이 이미 수년 전부터 폴라니의 세계로 깊숙이 들어가 있다.

한국식 승자독식이라는 말도 안 되는 현 상황, 그리고 끔찍한 중앙형 시스템과 오히려 더욱 강화되는 마초주의 자본주의가, 폴라니를 만나면서 어쨌든 ‘자기 조율적 작용’을 하게 될 것이라는 것은, 사실 남아 있는 거의 유일한 희망이기는 하다. 그렇다고 뉴 레프트의 실제 사회적 운동을, 그저 텍스트에 대한 권위로 대체시켜버렸던 1990년대의 ‘포스트모던’의 끝없는 ‘텍스트 위한 텍스트’의 학술활동을 10년이나 지난 지금, 뼈저린 ‘강화된 신자유주의’의 악몽을 맛본 지금, 다시 반복할 수 있는 것은 아닌가?

사실 맹아는 1990년대 중후반 이미 유럽과 미국에서 등장한 적이 있다. 유럽에서의 경제인류학을 향한 학계의 흐름, 그리고 미국에서의 ‘사회적 경제(social economy)’를 경제학과와 독립된 별도의 학과로 만들려던 시도는, 네오콘의 강화에 따른 지난 10년간의 역풍에 맞서서 좌절하기는 하였지만, 그렇다고 완전 불임이 된 것은 아니다. 제3부문 제4부문 혹은 사회적 경제 등 그 시기에 뿌려진 활동들이 10년간 숨죽여 있다가 지금 다시 튀어나오려고 하는 순간이다. 당연히 논문을 비롯한 저작들은, 책장 몇 개를 채울 정도로 차고도 넘친다. 당장 나에게도 책장 하나를 넘을 만한 논문들이 있지 않은가. 그러나 그걸 다 읽고 나야 폴라니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할 생각이, 나는 전혀 없다.

우리가 풀어야 할 문제들, 그리고 그걸 잘 찾아내서 사회적으로 논의하는 것, 그 자체가 폴라니적인 것이고, 모스적인 것이 아닐까 싶다. 생태, 젠더, 지역성. 일단은 그 세 가지가 폴라니 시대에 한국인으로서 어딘가에 휩쓸려가지 않으면서 우리 식의 문제풀이법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생태적인 사유는 이 상황에 어떤 것일까, 그리고 내가 아닌 다른 성의 입장에서 사물을 보면 어떻게 보일까, 그리고 서울과 수도권의 눈이 아니라 지역의 눈으로 본다면 사물은 어떻게 보일까, 그것이 경제인류학의 ‘호혜성’의 출발점일 것 같다. 하이에크 시대, 우리는 수도권에 사는 40~50대 부유층의 눈을 빌어 세상을 본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 눈과, 사실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눈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던 것 아닐까?

하여간 좋든 싫든, 이제 우리는 다시 새로운 시대로 가는 것 같다. 참, 박세일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잠깐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가 한국에서 ‘우파 버전’의 공동체주의자였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깜빡깜빡 까먹는다. 그가 만든 프레임으로 10년 만에 우파들이 정권을 가지고 갔는데, 제일 먼저 박세일의 흔적을 지웠다는 사실, 그리고 그들이 경제위기를 맞았다는 것들, 좀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 본문은 월간 <인물과 사상> 2009년 1월 호에 실렸습니다.
2008/12/23 [14:23]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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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엥란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