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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세대론 <조선> 독우물에 빠지다
변희재에 낚인 우석훈…세대론은 계급문제로 가는 '우회로'

[레디앙] 박권일『88만원 세대』공저자 

2009.1.30

88만원 세대론이 결국 우물에 뛰어들고 말았다. 그것도 <조선일보>가 파놓은 '독우물'에. 오늘 내가 하려는 이야기는 최근 일어난 어떤 사건 때문이다. 글이 좀 긴 편이니 사태의 전말을 일단 한 줄로 요약하자.

   
  ▲ 필자
'<조선일보>가 한껏 띄우고 있는 어떤 세대담론에 대해 『88만원 세대』의 우석훈이 <한겨레> 지면을 통해 격려와 지지를 보낸 사건'이다.

88만원 세대론을 기묘하게 비틀다

사실 극우언론이 진보담론을 멋대로 전유하고 이용하는 게 어제오늘은 아니다. 문제는 그들이 모종의 이데올로기적 목적을 가지고 미리 세팅해놓은 담론구도에 다른 사람도 아닌 우석훈이 자진해서 발을 담갔다는 사실이다.

한 가지 짚어두자. 나는 88만원 세대라는 단어를 만든 사람으로서 어떤 소유권을 행사하려는 건 아니다. 그 책을 읽은 개인들이 어떤 식으로 이 말을 소화하든 그것에 대해 내가 왈가왈부할 수는 없다.

그러나 단순한 개인이 아닌 <조선일보>라는 언론매체에서 기획연재를 맡은 변희재가, 『88만원 세대』의 우석훈을 간접 동원해서 88만원 세대론을 기묘한 방향으로 비틀어놓고 있다는 사실은 그냥 웃고 넘어갈 일만은 아닌 것 같다.

사실 이런 글을 써야하나 고민을 많이 했다. 특히 한동안 함께 작업했고 지금도 좋아하는 지식인인 우석훈에게 이런 식으로 문제 제기하는 것이 영 불편하고 어색하다. 공저자 두 명의 시답지 않은 갈등으로 비칠까 두렵기도 했다. 그러나 이쯤에서 '전선'을 좀 명확히 그어두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다.

무엇보다 나는 88만원 세대라는 개념이 아직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역할을 조금 더 해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 글은 『88만원 세대』라는 책에서 일말의 진보적 의미를 읽어냈을 많은 독자들에 대한 작은 '애프터 서비스'다.

변희재의 '노이즈 마케팅'

'실크로드 CEO포럼 회장'이란 직함을 달고 있는 변희재는 <조선일보>에 '실크세대를 찾아라'라는 기획연재를 진행중이다. 변희재가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도 많을테니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TV 탤런트 분석서 <스타비평>이 데뷔작이며 2000년대 초반 '안티조선' 논객으로 활동하다 2000년대 중반부터 '안티포털 운동가'로, 요즘엔 <조선일보> 논객으로 활약중인 인사다. 최근작으로는 <코리아 실크세대 혁명서>가 있다.

그가 <조선일보>와 함께 최근 열심히 밀고 있는 담론이 소위 '실크세대론'인 것 같다. 자신이 소개한 글에 따르면 '실크세대'란 "70년대 이하 생들로 386세대들과 달리 인터넷과 대중문화를 기반으로 전 세계를 연결하는 새로운 실크로드를 열어나가는 대한민국의 젊은세대를 말한다"고 한다.(아래 링크 참고)

낡은 386은 가라 20-30대 실크세대가 간다
실크세대론과 88만원 세대론의 소통을 위하여

아무래도 실크로드 CEO포럼이란 단체에서 따온 말인 것 같다. '실크로드 CEO포럼'은 그럼 뭘까. "71년생 이하의 기업가들의 조직으로서 청년 창업의 붐을 조성하기 위해 2007년 6월 3일 출범하였다. 기업가들 이외에도 71년생 이하 대중문화 평론가, 시의원, 언론운동가 등등이 전문위원으로 참여하여 명실상부한 세대조직으로 성장하고 있다."

사실 이걸 읽어봐도 뭐하는 단체인지 감이 오질 않는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저기에 '건설업체 사장'만 끼어있으면 어디 지역토호 모임으로 손색이 없다는 점이겠다.

변희재는 2008년에 나에게 몇번 연락을 시도했다. 『88만원 세대』가 출간된 게 2007년 8월이니, 책이 나왔을 때는 아무 말이 없다가 88만원 세대 담론이 시쳇말로 확 뜨고나자 연락을 취해왔다는 이야기다. 아마 우석훈에게도 그랬을 것이다. 물론 나는 일체 대응하지 않았다.

나는 그즈음 변희재가 어떤 단체를 꾸려 모종의 '사업'을 시작하려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별 반응이 없자 그는 이번엔 "88만원 세대론을 폐기처분해야한다"며 실크로드 CEO포럼 명의의 공개토론서를 어딘가에다 발표했다.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그 글을 나도 읽어보긴 했다.

개인적인 소감을 말하자면, 대꾸하기조차 민망한 글이었다. 요컨대 "88만원 세대는 386을 예찬하고 20대를 폄하하는 나쁜 용어이니 폐기하라. 그리고 비겁하게 숨지말고 우리와 같이 세대 명칭에 대해 토론해야 한다." 정도다.

내 잠정적 대답은 "고생하시는데, 일단 책부터 끝까지 읽으셔야죠"였지만, 사실 그런 대답조차 불필요하다. 왜냐하면 변희재의 수법은 똑똑한 중학생도 알고 있는 그것, '노이즈 마케팅'이기 때문이다. 만약 변희재가 혜성처럼 등장한 신인이었다면 내 대답은 달랐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안타까운 사실은 그가 지난 수년간 곳곳에서 그 수법을 너무 많이 써먹는 바람에 소위 이 바닥의 알만한 사람들은 전혀 '낚이질' 않게 됐다는 거다.

‘근성남’ 변희재, 우석훈을 낚다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변희재가 하고싶은 말은 결국 "88만원 세대 대신 내가 만든 실크세대를 써야한다"는 소리가 전부다. 설령 토론을 한다해도 386에 대한 비난, 세대명칭에 대한 공방 밖에 나올 게 없다.

실크세대라는 명칭을 홍보하기 위해, <조선일보>가 그토록 싫어하는 386세대를 비난하기 위해, 88만원 세대가 일방적으로 동원될 뿐이다. 그러면 책의 핵심이라 할 20대들이 처한 구조적 모순들에 대한 논의는 연기처럼 날아갈 게 분명하다. 그런 사태야말로 상상가능한 최악의 경우다.

그런데 1월 14일자 <한겨레>에 실린 우석훈의 칼럼이 '최악의 경우'를 현실로 만든 것 같다. '20대 당사자 운동과 변희재의 실크세대'라는 글이 그것이다.

그동안 변희재는 박권일보다 훨씬 학식과 명망이 높은 우석훈을 집중공략 했을테고, 우석훈이 변희재의 근성과 열정에 감동을 했거나, 아니면 귀찮아서라도 한 마디 해줘야겠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사실 이 글이 실크세대론에 적극적으로 호응하는 것이라 보긴 어렵다. 텍스트 자체의 밀도를 봐도 변희재의 활동에 대한 그저그런 수준의 '덕담'이라 보는 게 공정하리라. 하지만 이 심심하기 짝이 없는 글 하나가 가져올 효과는 작지 않다.

88만원 세대론은 이제 조선일보의 실크세대 기획의 '부록'으로 움직이게 될 가능성이 예전보다 훨씬 높아졌다. 또한 이것이 우석훈의 처음이자 마지막 대응이라 할지라도 변희재는 더 이상 필요가 없어질 때까지 마르고 닳도록 이 글을 써먹을 것이다.

'20대 진보 활동가'의 근황

우석훈은 글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변희재와 그의 동료들이 ‘실크 세대’라는 이름으로 창업을 운동처럼 하는 것도 일종의 당사자 운동이다. 잘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운동에는 좌파 버전이 있을 수 있고, 우파 버전이 있을 수 있고, 또 전혀 상관없는 중도 ‘소통 그룹’이 있을 수 있다. 창업 운동이 먼저 움직인 형국이고, 다른 운동은 이제 막 움을 틔우는 상황이라는 게 내가 이해하는 현 상황이다."

   
  ▲ 우석훈 성공회대 외래교수
그런데 내가 알고 있는, 그리고 확인해 본 상황은 우석훈의 판단처럼 한가롭지가 않다. 특히 우석훈이 관여한 20대 당사자 운동들은 변희재의 '그 단체'보다 먼저, 더 왕성하게, 더 20대답고, 더 진보적인 활동을 시작했지만 지금은 악전고투, 아니 지리멸렬하고 있다.

20대 당사자 운동단체인 '희망청'의 경우를 보자. 『88만원 세대』라는 책에서 힘을 얻어 뭔가 해보려했던 20대 활동가들이 "우리가 무슨 이벤트 대행업체냐"며 자괴감에 빠져있다가 최근 한 명만 빼고 전원 그만뒀다고 한다.

'20대 저자' 데뷔 프로젝트 역시 참담하긴 마찬가지다. 내가 알기로 애초에 우석훈이 관여한 팀이 세 개였다. 그런데 정작 구성원들은 자기들 외에 다른 팀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처음엔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서야 알게 되어 '설마 우리를 경쟁시키고 있었던 건가?'라는 의심까지 했다고 한다. 내가 당사자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다.

두 팀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실상 공중분해됐고, 나머지 한 팀이 출판사 담당 편집자의 개인적 열정과 지원에 힘입어 겨우 살아남은 상태다. 물론 책이 언제 나올지, 나올 수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참고로, 나 역시 이 팀에 '코가 꿰어' 끝까지 함께 가야 하는 상태다.

나는 이들 당사자 운동이 지리멸렬하는 것이 우석훈의 책임이라 말하는 게 아니다. 단지 지금 우석훈이 <조선일보>-변희재와 함께 'CEO 운운'할 때는 아니지 않은가, 묻고 있는 거다.

88만원 세대론의 '약한 고리'

위에 적은 것들이 이번 사건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긴 하지만, 핵심이라 할 수는 없다. 심지어 88만원 세대가 실크 세대가 되든, 앙고라 세대가 되든 그것조차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근본적인 문제는 『88만원 세대』가 글자그대로의 '세대론'에 갇혀버리는 상황이다.

처음 우리가 『88만원 세대』를 기획할 때 나는 20대, 구체적으로 20대 비정규직 문제에 집중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내가 기자생활을 할 때 가장 열심히 썼던 기사들이 비정규직, 저학력, 여성노동자 문제였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경험도 작용했다. "열악하고 위험한 지역일수록 봉사 점수가 높아 취업에 유리하다"며 전쟁 중인 아프가니스탄으로 갔다는 어느 후배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의 그 아득한 느낌, 내 안의 무언가가 송두리째 무너지던 기억이 그것이다.

우석훈은 "20대보다는 10대에 희망을 걸어야한다"는 게 평소 지론이었고, 실제로 『88만원 세대』는 10대의 동거권 문제에서부터 출발한다. 우석훈의 통찰이 20대 문제를 분석할 때도 날카롭게 발휘되었음은 물론이다.

우리는 공히 세대론이 필연적으로 지닐 수밖에 없는 한계에 대해 인식하고 있었다. 또한 계급문제를 전면에 내세울 경우 책이 얼마나 팔리지 않을지도 잘 알고 있었다. 그 결과 떠올린 방책이 불안정노동의 전면화라는 다분히 계급적인 문제에 세대론의 '당의(糖衣)'를 입힌다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우석훈은 우파들조차 동의하지 않을 수 없게 하려면 '세대'를 전면에 내세워야 한다고 말했고, 나는 그의 영민한 지적에 흔쾌히 동의했다.

그러나 그 작업이 말처럼 순조로울 리 없었다. 세대론에 집중하다보니 세대 내부의 양극화, 20대와 50대에서 쌍봉형으로 나타나는 불안정노동과 같은 주요 문제들이, 언급되긴 하지만 상대적으로 소홀히 취급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굉장히 아쉽다. 그래도 새로운 형태의 계급모순들을 세대모순의 형태로 형상화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만은 사실이다.

그 과정에서 가장 힘이 센 세대, 이른바 386세대 비판은 필수적이었다. 그렇다고 지금 변희재가 주장하는 '이게 다 386, 특히 진중권 때문이다' 식의 억지가 용인되는 것은 아니다. 88만원 세대가 뚫어내야 하는 벽은 386세대 개개인이 아니라, 386세대가 싸우며 만들어냈지만 이제는 20대에게 굴레와 질곡이 되어버린 사회시스템이기 때문이다.

그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88만원 세대론'은 단순히 세대끼리 싸움 붙이는 담론 외에 아무 것도 아니게 된다.

88만원 세대론이 진짜 ‘소통’해야하는 사람들

   
  
<조선일보>는 괜히 1등 신문이 아니라서 『88만원 세대』가 출간되자마자 이 부분을 치고들어왔다. 2007년 8월 24일자에 실린 박해현 문화부 차장의 칼럼 '포스트 386의 봉기'가 바로 그것이었다. 잠깐 그때로 돌아가보자.

"현실 공간에서 386과 포스트 386은 경쟁사회의 원리에 따라 한판 승부를 벌일 때가 됐다. 정치·사회적으로 기득권 세력이 된 386세대가 포스트 386세대를 위해서 한 일이 없다는 비판은 진보와 보수 양쪽에서 나온다. 386과 포스트 386의 투쟁은 정치적 이념적 차원에서 이른바 ‘진보 정권 10년’에 대한 판정을 대행한다." (강조는 필자)

나는 이 칼럼 하나에 <조선일보>가 세대론에 집착하는 이유가 모두 들어가 있다고 단언한다. 이 칼럼의 대단한 점은 이후 무수히 쏟아지는 <중앙일보>와 <동아일보>의 세대론이 노리는 부분까지 정확히 짚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변희재의 '실크세대론' 같은 글을 '무려' 기획연재물로 실어주는 건 <조선일보>가 젊은 필자 하나를 북돋아주고 싶어해서가 아니다. 20대 이하의 세대들이 자신이 처한 사회구조적 모순에 눈감아 버린 채 오직 386세대만을 증오하게 만들기 위해서다. 그러나 그런 식의 사고방식은 우리가 처한 문제를 결코 해결해 줄 수 없다.

게다가 "능력과 전문성도 없는 386세대"와 "무한한 잠재력과 전문성을 가진 젊은 세대"로 구별짓기하는 변희재식 세대론은 세대론이 아니라 차라리 변형된 인종주의에 가까운 것이다. 저 발언을 보면서 나는, ‘능력도 없으면서 탐욕스러운 유태인’과 ‘무한한 잠재력을 가졌지만 유태인들 때문에 고난을 겪는 아리아인‘을 명확히 구별한 콧수염 달린 어떤 사내를 연상할 수밖에 없었다.

현대 프랑스철학의 거인 자크 랑시에르는 인간 능력의 차이를 과장하고 강조하는 담론들이 얼마나 무용하며 해로운 것인지를 끊임없이 강조한다. 인류에게 절실한 것은 '만인의 역량'을 각기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지 분류하고, 차별하는 데 있지 않다는 것이다.

모든 세대의 능력은 동일하다. 다만 그 세대가 처한 환경이 조금씩 다를 뿐이다. 386세대의 성찰을 요구하고 그들이 88만원 세대의 손을 잡아줄 수 있으며 잡아주어야 한다고 했던 『88만원 세대』의 주장과, 386세대는 사회적 해악이며 투쟁의 대상일 뿐이라는 주장의 차이를 이해하는 건 그래서 중요하다.

나는 우리가 정말 소통해야 하는 사람들은 <조선일보>나 변희재같은 사람들이 결코 아니라고 생각한다. 소통해야할 사람들은 이를테면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다.

"(전략)이날 모임에선 세대간 불평등의 심각성을 부각시킨 '88만원 세대론'이 도마에 올랐다. "과도하게 부풀려진 담론"이란 의견이 많았다. 노동시장의 '인사이더'에 대한 보호장치가 두터워 청년 세대의 신규 진입이 쉽지 않은 유럽과 달리, "외환위기를 계기로 일자리 보호장치가 파괴된 한국의 경우엔 불평등이 모든 세대에 걸쳐 증가하고 있다"(김영미)는 이유에서다.

"젊은층이 88만원 세대라면, 고령층은 50만원 세대"(박경숙)라는 지적과 "세대간 갈등을 부추기는 우파 담론에 88만원 세대론이 이용당하고 있다"(한준)는 비판도 이어졌다. (후략)" ('한국사회 불평등 핵심고리를 천착하라'-비판사회학회 불평등연구회 <한겨레> 2009.1.12) (강조는 필자)

학자들 뿐만 아니다. 충남 서산에는 100% 비정규직 고용에, 법정최저임금‘만’ 주기로 악명이 자자한 동희오토라는 공장이 있다. 거기서 콘베이어벨트를 타고있는 노동자들 대다수가 20대, 즉 88만원 세대에 속하지만 『88만원 세대』라는 책을 들어본 적조차 없는 청년들이다.

『88만원 세대』의 저자 중 한명으로서 내가 늘 부끄럽고 고민스러운 건, 이 책을 가장 열심히 읽는 20대가 이른바 명문대생이란 점이었다. 정작 88만원 세대에 한없이 가까운 20대들일수록 『88만원 세대』라는 책을 읽지 않는다.

지난 일년 반 동안 나를 괴롭혀온 숙제 중 하나이며 앞으로도 좀체 사라지지 않을 화두다. 자, 이 글의 결론을 내릴 때가 됐다. 한줄 요약이다. “<조선일보>와 변희재는, ‘소통’하기 전에 줄부터 서시라.”

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12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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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 [한윤형] 우석훈, 말의 덫에 빠졌다(2009.2.10) ==>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0210143820


ㅁ 변희재, "진중권 등 낡은 386 퇴출되어야"
조선닷컴에 386 비판글 기고, 치열한 댓글 논쟁(2009.1.26) ==>
 http://www.bignews.co.kr/news/article.html?no=230291


ㅁ 변희재, 진중권을 다루는 젊은 기자와 작가들에게
"당신의 전문분야가 무엇입니까" 이 질문이 세상을 바꾼다(2009.1.27) ==>
 http://www.bignews.co.kr/news/article.html?no=230296


ㅁ 변희재, "언론노출 장사꾼, 진중권은 늙은 강의석"
실력없이 불러불러주는 대로 방송출연하는 비즈니스맨(2009.1.27) ==>
 http://www.bignews.co.kr/news/article.html?no=230294


ㅁ 진중권, “<조선> 변듣보 데려다 칼럼 채우는 신세라니..”  
“피해망상자를 방송·인터넷 까는 일에 내세워” 변희재 힐난(2009.1.27) ==>
 http://www.dailyseop.com/section/article_view.aspx?at_id=96596

ㅁ [목수정의 진중권 옹호 변희재 비판 글] "희재야, 극우형님들 귀염받으며 잘 살아보렴"  
'진중권 스토커' 변씨를 보고 있자니…"오죽 할 짓이 없었으면"(2009.1.31) ==>
 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12472

:
Posted by 엥란트

진중권씨, '사민주의 전도사'로 변신
진보누리 활동접고, 불온이스크라로 활동무대 옮겨
 
취재부

민주노동당을 비판적으로 지지하는 진보누리(www.jinbonuri.com)에서 좌파담론의 확산과 친노무현 지지논리의 허점과 당파성을 날카롭게 풍자하면서 활발한 활동을 해온 진중권씨가 돌연 진보누리에서의 절필선언과 함께 '사회주의 혁명전위를 자처'하면서 사회당에 경사된 '불온이스크라(www.buloniskra.com 이하 '불온'으로 약칭함)에서 활동하기로 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진중권씨는 지난 16일 불온의 '사실상의 운영자'인 수군작씨와 다음과 합의문을 작성했다. 합의문의 중요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진중권과 수군작은 진보누리를 절필한다. 쟁토방을 비롯 진보누리의 어떤 곳에서도 수군작과 진중권은 글쓰지 않는다.
2. 진중권의 [불온타임즈] 사민주의 전도사 칼럼이 개설되건 안되건 상관없이, 진중권이 불온이스크라의 정회원이 되건 말건 상관없이, 그로 인해 <좌익소아과> 개설이 되건 말건 상관없이, 진중권이 준회원으로써 불온이스크라에서 <좌익소아병 치료 활동>을 지속하는 그 기간 동안 만큼, "1주 1개 이상, 한달 평균 4개 이상" <좌익소아과 치료행위용 글 1개, 좌우 꽉꽉 채워서 평상시 진중권의 일반적 칼럼>처럼 작성하는 만큼, 수군작은 불온이스크라에서 신화를 비롯하여 기타 정치/비정치적 글들을 포함한 일체의 글쓰기를 하지 않는다.
3-1. 진중권은 [불온타임즈]에 <사민주의 전도사>(또는 이와 동일내용의 다른 유사제목 가능)라는 정치칼럼섹션을 맡도록 한다.
3-2. 진중권의 <사민주의 전도사> 칼럼란이 개설되면, 수군작은 앞으로 영원히 평생동안 불온이스크라 및 [불온타임즈]를 비롯한 모든 인터넷 정치사이트에서의 정치적 글쓰기를 하지 않는다.
3-3. [불온타임즈] 초동주체들의 의사결정과정으로 진중권의 <사민주의 전도사> 칼럼란이 개설되지 못하고, 진중권의 [불온타임즈] 참여가 실현되지 못하더라도, 수군작은 진보누리에서 영원히 철수한다.
4. 이상의 쌍방합의내용은 진중권과 수군작, 두사람의 아래 쪽글 서명을 기점으로 즉각 발효한다. 앞으로 수군작과 진중권은 위에 합의된 내용과 앞으로의 행동절차를 모든 지켜보는 이들 앞에서 성실하게 평생같이 지킬 것을 약속한다.


[진중권-수군작 최종합의문 전문보기] 불온이스크라(2003. 9. 16)

▲진중권-수군작 합의에 의해 불온이스크라로 둥지를 튼 모습을 풍자한 모습:불온이스크라의 네티즌 작품     ©불온이스크라
합의문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면 진중권씨는 그동안 거점이었던 진보누리에서 절필할 것과, 새로 불온, 또는 불온에서 발행할 좌파매체인 불온타임즈에서 <사민주의 전도사> 컬럼을 개설하고 일정한 활동을 한다면 그 대신 수군작씨는 불온과 진보누리, 나아가 일체의 정치사이트에서 절필할 것을 약속한다는 것이다.

당대를 대표하는 인터넷 논객이라 할 수 있는 진중권씨의 진보누리 절필은 충격적이라고 할만큼 급작스럽게 이루어졌다. 왜냐하면 진중권씨는 9월 11일 진보누리를 중심으로 인터넷에서 반전여론을 확산시킨 다음 인터넷 사이트 간의 '이라크파병반대 연대'을 제안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예고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같은 '파병반대 연대' 제안에도 불구하고 진중권씨가 급작스러운 결정을 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수군작씨 등 이른바 불온 일부 참여자들의 지속적인 진보누리에 대한 비판과 게시물을 연달아 올리는 행위(도배) 등으로 진보누리의 활동마저 위축 혹은 왜곡될 수 있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여진다.

진중권씨 못지않게 인터넷에서 왕성한 활동과 필력을 자랑하는 수군작씨는 노동자 계급혁명을 주장하는 등 급진좌파적 경향을 띄어왔다. 나아가 좌파논객들과 연대, 불온이스크라를 중심으로 사회주의를 전파하는데 힘쓴 한편 우파 개량주의와 심지어 민주노동당(과 비판적 지지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진보누리)을 부단히 비판해왔다.

따라서 진중권씨와 수군작씨는 이념적으로 같은 좌파이고 진보정당 계열이지만, 흔히 말하듯 현실의 변혁노선을 둘러싼 차이에서 반대파보다 더 격렬한 내부투쟁을 벌여왔다. 진중권씨는 안티조선부터 시작해 노무현 지지자들의 당파성 및 좌파 내부의 경직성을 주로 비판해온데 비해 수군작씨와 그에 동조하는 좌파논객들은 진중권씨의 작업을 노무현 지지자들에 대한 공격에만 치중한 '우파 개량주의'로 폄하하면서 끊임없이 문제제기를 했던 것이다. 진중권씨의 표현을 빌리면 거의 '스토커' 수준이었다는 것이다.

이같은 진중권-수군작 논쟁은 사실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근본적으로는 80년대 이후 한국사회의 변혁을 둘러싼 뿌리깊은 이론투쟁의 면이 없지 않아 있지만, 직접적으로는 지난 대선을 전후로 진보진영의 단일후보라 할 수 있는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에 대한 노무현 지지자들의 압박과, 대선 전후 각종 인터넷 등 온/오프를 망라한 각종 미디어에서 소외된 대한 좌파의 분노와 이를 해소하기 위한 좌파매체 건립방식, 그리고 인터넷에서 좌파담론의 주도권과 확산을 둘러싼 방법론의 차이에서 비롯됐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대선 이후 좌파들은 대선 기간 보여준 오마이뉴스, 한겨레신문, MBC 등 우호적이라 할 수 있는 매체들이 권영길 후보를 외면하다시피 한 것에 대해 분노했다. 특히 '글빨과 말빨' 밖에 없다는 좌파들이 인터넷에서 주도권을 못잡고 각종 인터넷 매체에서 소외되자 깊은 충격을 받았다. 따라서 대선 직후 좌파 간에는 매체, 특히 인터넷 매체의 건립을 당면과제로 삼았고, 인터넷 매체의 중요성을 절감한 민주노동당 마저 지원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좌파매체 건립은 지지부진 하였고, 인터넷 담론에서 민주당 지지자들의 공세는 더욱 가열되면서 진보정당 및 좌파진영의 입지는 줄어들었다. 또한 인터넷언론의 절대강자 오마이뉴스와 친노무현 지지의 본산이랄 수 있는 정치웹진 서프라이즈닷컴의 득세는 좌파들에게 위기감을 불러 일으켰고, 자연히 좌파들은 대선 전 이문옥 전 감사관 후원사이트인 '깨끗한손(www.moonok.com)에서 분파한 '민주노동당을 비판적으로 지지하는 공동체' 진보누리(www.jinbonuri.com)에 결집했다.

진보누리를 통해 좌파들이 속속 결집하고, 특히 진중권씨 등이 가세해 친노 진영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풍자 등을 통해 진보누리는 짧은 기간 유력한 좌파매체로 진용을 갖추게 됐다.

그러나 좌파웹진 진보누리의 기본적 정신인 좌파=사회주의적 가치관의 전파와 진보정당 외연의 확대는 노무현 정부의 실정에 따른 비판과 대안모색 속에서도 이를 '역비판'하는 민주당 지지자들과의 정치투쟁에 상당 부분 소진된 면도 없지 않다. 특히 서프라이즈에 대한 강력한 비판은 진보누리의 위상과 역할을 제고하였지만, 반면에 정치적 이슈에만 편중한다는 따가운 비판도 제기되었다. 특히 일부 진보누리 구성원들은 진중권씨 등의 작업이 화물연대 파업이나 환경, 기층민중의 삶에 대한 관심보다 민주당 비판에만 초점을 맞춘다는 '고공정치'론으로 비판했다. 이와는 별도로 수군작씨 등 불온의 구성원들 역시 진중권씨 등을 자유주의자로 몰아치면서 사회변혁의 방법론을 둘러싼 문제제기 및 현 단계에서의 좌파의 역할에 관해 끊임없는 시비를 걸었다.

특히 불온의 구성원들은 노동이나 환경의 문제가 발생하면 '기동전'이라는 이름하에 같은 주제의 내용을 게시판에 연속 올리는 작업을 해 진보누리의 '의제설정' 기능을 무력화 시키거나 사이트를 혼란시켰다는 평을 받고 있다. 진중권씨는 이런 현상에 대해 '불온'의 방법론이 시대에 뒤떨어진 '관념론'이며, 인터넷에도 맞지 않음을 지적하며 불온의 방식을 강하게 비판했다. 따라서 진보누리와 불온간, 진중권씨 등과 불온의 멤버들은 서로 연대는커녕 끊임없는 신경전과 대립이 지속됐다.
그러나 도저히 화해할 수 없었던 진중권-수군작 양인이 갑작스러운 '빅딜'은 어떤 면에서는 좌파진영과 인터넷 담론에서의 변화를 모색하는 계기가 아닌가 하는 추측을 낳고 있다. 우파, 친노세력이 장악한 인터넷에서 좌파의 목소리는 크지 않은 반면에 분열되어 있어 전력의 집중을 꾀할 수 없었다. 진보누리는 정치웹진으로 진보정당을 대변하는 위상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프라이즈와의 대립각 이외에는 자체 '의제설정' 기능이나 진보적 가치관의 확산이 부족한 편이다. 또한 성장세도 둔화추세이다(진보누리의 인터넷 (좌파)매체로의 변신은 후속으로 다룰 예정이다).

따라서 인터넷의 생리와 속성을 잘 아는 진중권씨는 수군작씨와 불온의 '도발', 그리고 그들의 방법론에 대한 정지작업의 필요성을 절감했고, 이에 수군작씨의 제안에 동의했을거란 추측을 할 수 있다. 이는 진중권씨가 불온의 '좌익(사회주의)'에 대해 다음과 같이 규정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좌익 소아병은 진보에 아무 도움도 안 됩니다. 좌익소아병은 실제의 계급투쟁에서는 아무 역할도 못 합니다. 좌익 소아병은 기껏 해야 좌파와 진보진영을 희화화하는 부르주아 개그의 소재만 될 뿐입니다. 우리의 이데올로기 싸움은 앞으로 더 구체적이고, 더 전문적이고, 더 합리적이어야 합니다. 워낙 부르주아 이데올로기가 거저 먹고 들어온 부분이 많아서, 우리가 조금만 노력하면 좌파적 비판이 위력을 과시할 수도 있을 겁니다. (진보누리, 9. 7)

이를 보면 진중권씨는 (불온 또는 사회주의)좌파들의 방법론의 문제점을 여실히 지적하면서 부르조아(우파) 공격의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청년좌파들의 이론적 미숙성을 이번 기회에 바로잡을려는 욕심도 없지 않아 있었을 것이다. 이점은 '빅딜' 이후 가진 중대신문사(진중권씨는 이번 학기부터 중대 독문과 겸임교수가 되었음)와의 인터뷰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소위 좌파라는 젊은 층은 기본 수준도 안된다. 그들은 아직도 80년대 문헌적인 내용만 외우고 있다"

[관련기사] 최은주, 좌파는 현실적 과제를 향해 모여야 한다. 유토피아는 그곳에서 만들어진다, 중대신문(2003. 9. 27. 제1535호)  

수군작씨 역시 불온에서 함께 하는 구성원을 중심으로 한 좌파, 현실변혁 이론의 전파가 지지부진하고 내부의 대오도 흐트러지고 있음을 간파하고, 이에 충격요법으로 진중권씨를 끌어들여 불온(과 좌파)의 내용을 새롭게 재편할 필요성을 절감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불온을 매개로 한, 노동자 농민 등 기층민중의 이익을 대변하는 좌파매체 '불온타임즈' 창간을 꿈꿔온 그로서는 불온타임즈가 인터넷에서 일정한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진중권씨의 참여가 절실했던 것이다.

따라서 양인은 대선 전후부터 깨손, 아웃사이더 게시판, 진보누리 등 인터넷을 전전하면서까지 치열한 대립을 펼쳐왔지만, 서로의 입장은 달리한채 나름대로 빅딜을 성사시켰던 것이다. 

이번의 빅딜로 진중권씨는 나름대로 탄탄하게 구축해 논 좌파정치웹진인 진보누리를 떠나게 되었고, 새로 불온이스크라에서 <좌익소아과> 코너를 개설하면서 좌파들과 현실변혁을 놓고 이론싸움을 벌이게 되었다. 나아가 불온의 멤버들이 동의하고 본인 또한 동의하면 11월 중순 경 창간되는 좌파매체 <불온타임즈>에서 '사민주의 전도사'로 이땅의 사민주의 역할과 개념에 관한 칼럼을 담당하게 된다. 반면 진중권씨가 약속을 지킬 경우 수군작씨는 불온은 물론 진보누리 등 일체의 인터넷 사이트에서 글쓰기를 영구 중단한다는 선언을 한바 있다(깨손에서 개인적인 '신화방'을 운영하는 것은 가능).

이번 진중권-수군작 양인의 '빅딜'은 지난 5.18 노무현 정부에 대한 지지 여부와 운영권에 따라 분화된 서프라이즈와 달리 인터넷에서 좌파의 역할과 진보정당의 외연확장이라는 측면에서 발생한 것이다. 따라서 진중권씨가 '사민주의 전도사'로 나서서 좌파진영의 현실변혁에 대한 이론적 정지작업이 어느정도 공감대를 받는 경우 그 폭발력은 엄청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러나 좌파 고유의 이론과 다종다기한 현실정치의 상관관계를 효과적으로 연결시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어쨋거나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극우 파시스트 연구> 로 이땅의 '극우꼴통'을 신랄하게 조롱하고 풍자하면서 한국 사회에 화려하게 등장한 진중권씨가 이제 같은 좌파진영 내부에서 이론투쟁을 벌이게 된 것은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인터넷에서 좌파담론이 대중적으로 확장됐다는 측면과 이제는 21세기에 맞는 사회주의적 현실변혁 방법론이 새롭게 정립되는 계기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빅토르 위고가 ‘오늘의 문제는 싸우는 것이고 내일의 문제는 이기는 것’이라고 말했듯이 진중권-수군작 두 사람의 빅딜이 좌파진영이 억압된 현실과 싸워 승리를 쟁취하는 계기가 될 것을 기대한다. 그리고 쟁취하는 계기는 아무래도 내년 총선에서 드러날 것이다.

[관련사이트]
ㆍ진보누리 http://jinbonuri.com
ㆍ불온이스크라 http://buloniskra.com
ㆍ깨끗한 손 http://moonok.com
2003/09/25 [18:07]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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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엥란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