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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27일)자 오마이뉴스 '톱기사'입니다.


붉은 우편배달부, '프랑스판 오바마' 되나?

反자본주의 '브장스노' 열풍...프랑스 문제 해결 적임자 1위


김영국
 
[오마이뉴스] 09.03.27 12:05   

  
올리비에 브장스노 반자본주의신당 대표가 지난 2007년 4월 프랑스 대선에 출마해 연설하고 있다.
ⓒ 연합뉴스=EPA
브장스노

 

"최고로 완벽한 좌파" 

올리비에 브장스노(34). 현직 우편배달부. 소속 정당은 반(反)자본주의신당. 

이런 그가 프랑스 국민의 희망이자 정치 영웅으로 떠올랐다. 작년 미국 대선에서 불었던 오바마 열풍에 버금가는 '브장스노 신드롬'이다. 현재 프랑스 국민들은 여야 거물 정치인보다 그를 더 신뢰하고, 경제위기 등 현안 문제도 그가 대통령보다 더 잘 해결해줄 것이라고 믿는다.  

브장스노는 최근 여론조사기관과 주요 언론으로부터 현직 대통령에 대적할 만한 최고의 적수, 야당의 가장 강력한 차기 대선주자로 평가받고 있다. 

유럽 선진국 한복판에서 '자본주의 폐기-사회주의 건설'을 외치는 '신세대 극좌파' 인사가 최상급의 국민 지지를 받고 있다는 것 자체가 신자유주의가 판치는 우리나 미국 처지에선 '경악'에 가까운 대사건이 아닐 수 없다. 그의 거침없는 반자본주의 행보에 전 세계도 주목하고 있다.

브장스노 열풍은 작년부터 거세게 불기 시작했다. 2008년 6월 프랑스의 주요 일간지 <르 피가로>가 보도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프랑스 국민은 우파인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과 맞붙어 가장 경쟁력 있는 좌파 후보로 브장스노를 꼽았다. 그는 17%의 지지를 얻었다. 베르트랑 들라노에 파리시장(13%)과 지난 대선 후보인 세골렌 루아얄(9%)을 가볍게 제쳤다. 

브장스노의 인기는 경기침체가 극심한 올해 들어 더욱 치솟고 있다. 여야의 대선주자급 거물 정치인은 물론 사르코지 대통령마저 훌쩍 뛰어넘고 있다. 

<르 피가로>와 여론조사기관 BVA가 지난 3월 15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프랑스인들은 가장 신뢰하고 영향력(변화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정치인으로 사르코지 대통령(38%)과 브장스노(35~36%)를 나란히 꼽았다. 

"특히 경제위기 등 '프랑스인의 현안 문제들을 가장 잘 해결할 정치인'으로 프랑스 국민은 무려 43%가 브장스노를 지지했다. 이 부문에선 단연 선두였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브장스노에 15%나 뒤진 28%의 지지를 얻어 조사대상자 중 6위에 그쳤다.

제1야당 사회당의 대표인 오브리가 33%의 지지로 2위를 차지했고, 사회당 소속의 들라노에 파리시장이 31%, 2007년 사회당 대선후보였던 루아얄이 30%, 중도우파 프랑스민주동맹 총재이자 2007년 대선에서 18.5%(3위)를 기록한 바이루가 29%, 사르코지 대통령이 28%, 피용 총리가 25%, 스트로스 칸 IMF 총재가 21%로 8위를 기록했다."(☞ BVA 여론조사 자료표 원문

이처럼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거물들을 큰 격차로 따돌리며, 브장스노는 프랑스 국민들로부터 가장 촉망받는 지도자이자 대통령과 집권세력을 뛰어넘는 야당의 대표주자로 우뚝 선 것이다. 이번 여론조사를 담당했던 BVA는 총평에서 브장스노를 "좌파에서 최고의 그리고 가장 완벽한 정치인"이라고 평가했다. 

자본주의 미래 만들어갈 세계적 지도자 

특히 '프랑스 문제 해결 적임자 1위'라는 타이틀은 그가 '자본주의 폐기'를 일관되게 외쳐왔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심장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프랑스 국민의 상당수가 현재의 글로벌 경제위기에 대한 해법으로 단순히 경기부양책이나 규제 강화 등의 땜질식 처방보다, 자본주의 시스템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수술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프랑스 대혁명이라는 자긍심을 갖고 있는 프랑스 국민들이 이번에는 '붉은 우편배달부'를 통해 자본주의 역사에 일대 전환을 이루는 신기원을 열어갈 수 있을까. 

지난 3월 11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선정 발표한, '글로벌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자본주의의 미래를 만들어갈 세계 지도자 50인' 명단에도 브장스노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 원자바오 중국 총리,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당당하게 이름을 올렸다. 

특정 국가의 일개 야당 정치인이 선정됐다는 자체가 놀라울 뿐더러, 이에 해당하는 인사로는 그가 유일했다. 선정된 정치인 대부분이 선진 강대국의 현직 대통령·총리이거나 핵심 경제장관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브장스노는 평범한 극좌파 정치인을 넘어 전 세계가 주목하는 인물이 된 것이다. 

그에 비하면 전례 없는 금융·경제위기도 똑같고, 세계에서 가장 추악한 모습으로 자본주의 시스템의 모순을 드러내고 있는 한국 사회는 오히려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를 더욱 강화하려는 보수·우파 한나라당과 박근혜 전 대표에게 국민들의 지지가 쏠려 있는 등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비록 두 나라의 정치적 토양이 다르다곤 하지만, 한국 좌파 처지에서 프랑스는 마치 꿈 속에서나 존재하는 이상국가처럼 느껴진다. 

'좌파 영웅'으로 떠오른 '붉은 우체부' 

현재 프랑스에서 브장스노 열풍은 작년 미국 대선에서 오바마의 그것과 비견될 만큼 선풍적이다. 

지난 2월 반자본주의신당(NPA) 창당대회에 참석했던, 한국의 한 활동가는 그의 인기가 '상상 밖'이었다고 한다. 그는 "그냥 좌파 정치인치고는 인기가 있다 정도가 아니라, 마치 연예인 취급당하듯 했다"며 "그가 담배를 피우고 있을 때도, 핸드폰으로 전화를 할 때도 카메라 기자들은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담고 있었다"고 전했다. 

물론 오바마 대통령과 브장스노는 정치·경제적 노선과 지향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오바마가 '자본주의를 적당히 고쳐 쓰자'는 쪽이라면, 브장스노는 '자본주의를 폐기처분해야 한다'는 확고한 철학을 갖고 있다. 정치적 배경도 엄청난 차이가 있다. 오바마가 미국 양당제의 한 축인 민주당이라는 강력한 대중정당을 기반으로 한 정치인이라면, 브장스노는 여전히 소수 좌파정당의 대변인에 불과하다. 

그러나 오바마와 브장스노는 기존 질서와 다른 대안을 가지고 국민들로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모으며 '정치 영웅'으로 급부상했다는 점에서 흡사하다. 오바마 신드롬이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라는 신화를 만들었다면, 브장스노 신드롬은 글로벌 경제위기 국면에서 '자본주의 폐기-사회주의 건설'라는 대안을 가지고 또 다른 신화에 도전 중이다. 그의 행보를 특별히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위기감을 느낀 프랑스 우파와 주류 언론들은 브장스노를 '대책 없는 인간'으로 몰아붙이고, NPA를 무책임한 정치세력으로 매도한다. 브장스노가 부유한 아내와 함께 은밀히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는 '가짜 프롤레타리아'라는 주장을 퍼뜨리기도 했다. 2008년 10월에는 브장스노가 전기총 사용을 반대하자, 한 전기총 제조회사 사장이 사설 탐정과 전·현직 경찰관들을 고용해 브장스노 가족의 사생활을 감시하다 발각된 사건이 프랑스 사회를 뒤흔들기도 했다. 

브장스노에 대한 위기감은 집권여당뿐만이 아니다. 브장스노가 우경화를 이유로 단절을 선언한 제1야당 사회당은 작년 6월 당수인 프랑수아 올랑드가 직접 챙기는 '브장스노 특별대책위원회'까지 꾸렸다. 그럼에도 날이 갈수록 국민적 지지를 얻어가고 있는 그를 무시할 수도 없다는 고민만 주류 언론, 정치권에 수북이 쌓여간다. 

반자본주의 시간이 왔다... 다시 '혁명'을 말하다  

무엇이 그를 이토록 만들었을까. 그가 프랑스 대중에게 던진 메시지는 간결하고도 분명했다. '자본주의는 더 이상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 

"자본주의 국가에서 경제적 위기에 따른 고통을 분담하는데, 자본가들은 책임을 지지 않고 민중에게 그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분노할 일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지금이 착취당하는 민중의 수가 가장 많은 시기다. 반자본주의 시간이 온 것이다. 자본주의는 개량되거나 도덕적으로 변모되지 않는다." 

브장스노가 지난 2월 8일 반자본주의신당 창당대회 때 <레디앙>의 박지연 파리 통신원과 한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자본주의 폐기-사회주의 건설'이 그가 내세우는 핵심 주장이다. 이런 관점에서 그는 "사르코지 대통령의 대책은 위기를 더욱 심화시킬 뿐"이라며 정부의 경기부양책 등에 연일 날선 비판을 가하고 있다. 그러면서 노동자 파업 등의 현장을 누비며 서민대중의 정당한 요구들을 함께 외친다. 

그는 구체적 현안과 관련해 해고 금지, 월급 인상, 최저임금 인상, 빈집 점거, 부자들에게 세금 부과 및 부의 재분배, 공공주택 확대 등을 줄기차게 요구해왔다. 

브장스노는 본래부터 공산주의 혁명 사상인 '트로츠키주의'자였다. 트로츠키는 스탈린의 관료주의와 일국 사회주의에 맞서 '아래로부터 사회주의, 영구혁명론, 국제적 사회주의' 등 마르크스의 원칙을 강조한 러시아 혁명의 지도자다. 

브장스노는 "소수 개인을 위해 다수가 존재하는 사회가 아니라, 다수가 그 자신을 위해 결정하고 존재하는 사회"를 자신이 추구하는 '제3의 길'이라고 명명하고, 이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선 "부자들의 것들을 국유화하고, 사회적인 모든 부를 직접적으로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본가들에게 집중되어 있던 것을 다시 재분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도 스스로 혁명주의자라고 말한다. 그러나 트로츠키주의를 고집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로자 룩셈부르크'(독일 공산당을 건설한 여성 사회주의 혁명가)나 '체 게바라'(라틴아메리카의 전투적 사회주의 혁명가)이기를 자처한다. 그러면서 "반자본주의자들은 폭력적인 사회를 위해서가 아니라, 폭력이 더 이상 없게 하기 위해 투쟁한다"고 말한다. 

"너희들의 위기, 우리가 대신 지불할 순 없다" 

브장스노가 소속된 당은 당명부터 정체성이 확 드러나는 '반자본주의신당(NPA)'이다. 당의 핵심 노선으로 '21세기 사회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이 당의 전신도 우리의 보수 우파들이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떨 만한 '혁명적 공산주의자 연맹(LCR)'이다. 프랑스 68혁명의 투사들이 그 이듬해인 1969년에 출범시킨 LCR은 지난 40년 동안 트로츠키 노선를 견지해온 정당이다. 브장스노는 그런 LCR의 2002년과 2007년 대선후보였다. 

브장스노는 2002년 프랑스 대선에서 LCR의 대선후보로 나서 4.25%(1,210,562표)를 득표해 16명 중 8위를 기록했다. 1~3위를 제외한 4위 이하의 득표율이 모두 6% 이하였던 점을 감안하면 눈부신 성과였다. 이로 인해 브장스노는 '좌파 스타'로 떠올랐다. 이때 그의 나이는 불과 28살. 프랑스 역사상 최연소 대선후보였다. 그는 "우리의 삶은 그들의 이윤보다 더 가치가 있다"는 대선 슬로건으로 대중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또 2007년 대선에서는 4.08%(149만8581표)를 얻어 2002년에 비해 28만8019표의 증가를 나타내며 5위에 올랐다. 특히 2007년 대선에서 브장스노는 사회당 왼쪽의 좌파 후보 6명 중 단연 선두였고, 유일하게 선전한 케이스였다. 그 결과 브장스노는 2007년 대선 이후 '반신자유주의 좌파'의 대표 정치인으로 급성장했다. 게다가 대선에서 잇따라 패배한 제1야당 사회당이 구심점을 상실하면서, 브장스노는 2008년도부터 사르코지 대통령에 필적할 호적수로 떠오르며 야당 전체의 대표주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브장스노와 LCR는 대중노선을 더욱 강화하면서 올해 2월 5일 40년 전통의 LCR을 해산하고 기존 LCR(트로츠키주의) 세력에 환경·생태주의, 여성운동, 외국투기자본 세금 부과 운동(ATTAC), 반세계화주의, 급진화된 대학생 등을 합류시켜 지난 2월 7일 재창당했는데, 그게 현재의 반자본주의신당(NPA)이다. 전신인 LCR의 당원이 3천여명에 불과했던 점에 비하면, 현재 NPA의 당원은 1만명을 넘어서며 규모가 3배 이상으로 커졌다. NPA 창당대회는 밀려드는 인파와 취재기자들로 몸살을 앓기도 했다. 

브장스노와 반자본주의신당은 "자본가, 너희들의 위기를 우리가 대신 지불할 수 없다"는 멋진 슬로건으로 극심한 경제위기에 고통당하고 있는 프랑스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이들은 프랑스가 집권 우파 대중운동연합(UMP)의 사르코지 대통령을 중심으로 급격하게 신자유주의 우경화의 길을 가고 있는 와중에도 과감하게 이미 실패한 시장경제를 없애고, 시중은행들을 국유화해 단일한 국영은행을 수립할 것, 노동자들의 민주적 통제 체제 수립 등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일관성 빛나는 '국민 사위' 

브장스노는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스스로 프롤레타리아의 길을 선택했다. 그렇다고 직업 정치인도 아니다. 그는 지금도 파트타임으로 일주일에 사흘씩 자전거를 타고 우편물을 배달한다. 선거 출마 때는 휴가를 내고, 끝나면 다시 집배원으로 돌아왔다. 풀뿌리 정치를 하려면 서민들과 가까운 곳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다. 

브장스노는 1999년 LCR 소속으로 유럽의회 의원에 당선된 알랭 크리빈의 보좌관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그러나 다른 모든 이들처럼 직장에서 봉급을 받고, 파업에 참여하기도 하는 우편배달부로서 그는 대중에게 직업 정치인으로 비치지 않았다. 대신 '동료 노동자', '우리 중의 하나'였다. 이런 그를 주변에서는 '정치인 같지 않은 정치인', '유기농 정치인'라고 부른다. 

그의 월급은 1100유로(약 200만원), 사는 곳은 파리 달동네인 18구의 55㎡짜리 아파트다. 이것도 은행에서 대출받아 샀고 빚은 18년 동안 갚는다. 그가 우체부로 일하는 뇌이쉬르센은 역설적이게도 프랑스에서 가장 부유한 우파들이 모여사는 지역이고, 전 시장은 사르코지 현 대통령이었다. 

브장스노는 극좌파임에도 '좌파 운동가'의 전형적 이미지인 가죽 점퍼를 입고 수염을 기른 모습과도 거리가 멀다. TV에 비치는 모습도 언제나 깔끔하게 손질한 머리와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으로 당원들과 어깨동무를 하거나 격의 없이 대화하는 장면이다. 

젊기 때문에 젊은 층은 더 쉽게 그가 말하는 것에 동의할 수 있었다. 에둘러 말하지 않고 모든 사안에 명쾌하게 자신의 소견을 밝히는 것도 그의 매력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대중과 방송이 모두 좋아할 만한 날렵한 말솜씨도 그의 장점이다. 엘리트 정치관료 출신이 아님에도 이 젊은 우체부는 수많은 TV 토론회에서 그에게 반대 의견을 보이는 직업 정치인과 정부 요인들을 참패시켰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가 정치적으로 매우 '일관된' 행보를 보여왔다는 점이다. 14살에 혁명적공산주의청년회(JCR) 조직에 가입해 정치활동을 시작한 이후 그는 한 번도 자본주의 폐기-사회주의 실현의 흐름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그러면서 프랑스의 주요 사회적 의제와 관련된 좌파적 실천 투쟁을 통해 대중과 꾸준히 호흡해왔다. 그가 활동했던 LCR은 2005년 유럽헌법 반대투쟁, 2006년 최초고용법안(CPE) 반대투쟁 등으로 폭넓은 지지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그래서 브장스노는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성실한 청년으로도 유명하다.  

사람들은 이런 그를 신뢰하고 사랑한다. 슈피겔이 "모든 프랑스 어머니들이 사위 삼고 싶어하는 대선후보"라고 할 정도다. 작가 알랭 뒤아멜은 "브장스노는 시민들이 21세기 혁명가에게 기대하는 최상의 자질을 모두 갖추고 있다"며 "그의 정적인 부르조아 정치인들도 브장스노가 히치하이킹을 하고 있다면 주저하지 않고 그를 차에 태울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국의 브장스노'는 누구? 

한국 대중 정치인 중에 노선과 지향점이 브장스노와 닮은꼴인 정치인을 찾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심지어 비슷한 인물조차 찾기 어렵다. 

조중동과 보수 인사들은 입만 열면 친노무현과 민주당 세력을 향해 좌파라고 딱지 붙여 놓고 '다 좌빨 때문이다'고 공격하지만, 이들은 브장스노와 비교하면 안드로메다만큼이나 멀리 떨어진 신자유주의 우파들이다.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은 '극단적 신자유주의'에 가깝다. 

민주노동당은 물론, 사민주의 성향이 강한 진보신당조차 브장스노와 반자본주의신당에 비하면 '온순한 좌파'에 불과하다. 진보·좌파라고 평가받는 인사들조차 한국에서 '자본주의 폐기'를 이야기하면 무슨 큰일 날 것처럼 꺼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럼 한국에는 브장스노와 같은 주장을 하는 정치세력이 아예 없을까? 없긴 왜 없어!

현재 한국에서 사회주의 정당 건설을 추진하고 있는 '사회주의 노동자 정당 건설 준비모임(이하 준비모임)'이 가장 브장스노와 흡사한 주장과 정치활동을 하고 있는 단체다. 준비모임은 지난 2월 브장스노의 반자본주의신당 창당대회 때 진보신당과 함께 사절단을 파견하여 참가하기도 했다. 

또 작년에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체포됐다가 법원으로부터 위험한 세력이 아니라며 퇴짜 맞은 굴욕(?)을 당한 오세철 연세대 명예교수 등이 소속된 '사회주의노동자연합(사노련)'과 애매모호한 정치 행보 때문에 많은 논란이 있지만 '다함께'도 트로츠키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이들은 비록 소수이고 인지도도 턱없이 낮지만, 국내에서 '자본주의 폐기-사회주의 국가 건설'를 핵심 목표로 내걸고 활동하고 있는 정치단체들이다. 제법 브장스노 및 NPA와 흡사한 주장들을 하고, 실제로도 준비모임과 사노련은 현재 사회주의 정당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친북단체는 아니다. 이들은 북한를 제대로 된 사회주의가 아니라 노동자를 착취하고 억압하는 국가사회주의 또는 국가자본주의로 규정하고, 북한 민중에 의해 타도되어야 할 반동체제로 본다. 이들이 국가보안법상 이적단체가 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제(25일) 사회주의 정당 준비모임의 장혜경 정책기획팀장에게 전화를 걸어 브장스노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그는 "브장스노와 반자본주의신당의 노선과 활동 방향이 우리와 가장 비슷하다"며 "브장스노가 사회주의 정치활동을 하면서 일반 대중과 밀접히 호흡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굉장히 신선하고 우리도 착목해야 될 지점이 많다"고 말했다. 

브장스노 열풍을 한국으로 치면 한마디로 '장혜경이 박근혜 된' 격이다. 엄청난 간극이다. 물론 브장스노 열풍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섣불리 장담할 수 없다. 그것은 현재 자본주의 경제위기가 어떤 형태로 진행될지 그 파장이 어느 정도일지 누구도 장담하기 어려운 것과 동전의 양면이다. 뜻밖의 암초를 만나 좌초될 수도 있다. 

그러나 정권에 대항할 만한 강력한 지지를 받는 야당 정치인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결코 작지 않다. 한국의 브장스노는 언제쯤 나올까.  

:
Posted by 엥란트

 

붉은 우편배달부, '프랑스판 오바마' 되나?

[국제동향] 反자본주의 '브장스노' 열풍, 프랑스 문제 해결 적임자 1위

 

김영국
"최고로 완벽한 좌파"

올리비에 브장스노(34세). 현직 우편배달부. 소속 정당은 반(反)자본주의신당.

이런 그가 프랑스 국민의 희망이자 정치 영웅으로 떠올랐다. 작년 미국 대선에서 불었던 오바마 열풍에 버금가는 '브장스노 신드롬'이다. 현재 프랑스 국민들은 여야 거물 정치인보다 그를 더 신뢰하고, 경제위기 등 현안 문제도 그가 대통령보다 더 잘 해결해줄 것이라고 믿는다.

브장스노는 최근 여론조사기관과 주요 언론으로부터 현직 대통령에 대적할 만한 최고의 적수, 야당의 가장 강력한 차기 대선주자로 평가받고 있다.

유럽 선진국 한복판에서 '자본주의 폐기-사회주의 건설'을 외치는 '신세대 극좌파' 인사가 최상급의 국민 지지를 받고 있다는 것 자체가 신자유주의가 판치는 우리나 미국 입장에선 '경악'에 가까운 대사건이 아닐 수 없다. 그의 거침없는 反자본주의 행보에 전 세계도 주목하고 있다.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좌)과 강력한 호적수로 떠오른 올리비에 브장스노(우) ⓒ르 피가로

브장스노 열풍은 작년부터 거세게 불기 시작했다. 2008년 6월 프랑스의 주요 일간지 <르 피가로>가 보도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프랑스 국민은 우파인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과 맞붙어 가장 경쟁력 있는 좌파 후보로 브장스노를 꼽았다. 그는 17%의 지지를 얻었다. 베르트랑 들라노에 파리시장(13%)과 지난 대선 후보인 세골렌 루아얄(9%)을 가볍게 제쳤다.

브장스노의 인기는 경기침체가 극심한 올해 들어 더욱 치솟고 있다. 여야의 대선주자급 거물 정치인은 물론, 사르코지 대통령마저 훌쩍 뛰어넘고 있다.  

<르 피가로>와 여론조사기관 BVA가 지난 3월 15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프랑스인들이 가장 신뢰하고 영향력(변화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정치인으로 사르코지 대통령(38%)과 브장스노(35~36%)를 나란히 꼽았다.

특히 경제위기 등 '프랑스인의 현안 문제들을 가장 잘 해결할 정치인'으로 프랑스 국민은 무려 43%가 브장스노를 지지했다. 이 부문에선 단연 선두였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브장스노에 15%나 뒤진 28%의 지지를 얻어 조사대상자 중 6위에 그쳤다.

제1야당 사회당의 대표인 오브리가 33%의 지지로 2위를 차지했고, 사회당 소속의 들라노에 파리시장이 31%, 2007년 사회당 대선후보였던 루아얄이 30%, 중도우파 프랑스민주동맹 총재이자 2007년 대선에서 18.5%(3위)를 기록한 바이루가 29%, 사르코지 대통령이 28%, 피용 총리가 25%, 스트로스 칸 IMF 총재가 21%로 8위를 기록했다.
(☞ BVA 여론조사 자료표 원문)

이처럼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거물들을 큰 격차로 따돌리며, 브장스노는 프랑스 국민들로부터 가장 촉망받는 지도자이자 대통령과 집권세력을 뛰어넘는 야당의 대표주자로 우뚝 선 것이다. 이번 여론조사를 담당했던 BVA는 총평에서 브장스노를 "좌파에서 최고의 그리고 가장 완벽한 정치인"이라고 평가했다.

자본주의 미래 만들어갈 세계적 지도자

특히 '프랑스 문제 해결 적임자 1위'라는 타이틀은 그가 '자본주의 폐기'를 일관되게 외쳐왔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심장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프랑스 국민의 상당수가 현재의 글로벌 경제위기에 대한 해법으로 단순히 경기부양책이나 규제 강화 등의 땜질식 처방보다, 자본주의 시스템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수술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과연 프랑스 대혁명이라는 자긍심을 갖고 있는 프랑스 국민들이 이번에는 '붉은 우편배달부'를 통해 자본주의 역사에 일대 전환을 이루는 신기원을 열어갈 수 있을까.

지난 3월 11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선정 발표한, '글로벌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자본주의의 미래를 만들어갈 세계 지도자 50인' 명단에도 브장스노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 원자바오 중국 총리,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당당하게 이름을 올렸다.

특정 국가의 일개 야당 정치인이 선정됐다는 자체가 놀라울뿐더러 그가 유일했다. 선정된 정치인 대부분이 선진 강대국의 현직 대통령·총리이거나 핵심 경제장관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브장스노는 평범한 극좌파 정치인을 넘어 전 세계가 주목하는 인물이 된 것이다.

그에 비하면 전례 없는 금융·경제위기도 똑같고, 세계에서 가장 추악한 모습으로 자본주의 시스템의 모순을 드러내고 있는 한국 사회는 오히려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를 더욱 강화려는 보수·우파 한나라당과 박근혜 전 대표에게 국민들의 지지가 쏠려 있는 등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비록 두 나라의 정치적 토양이 다르다곤 하지만, 우리나라 좌파 입장에선 프랑스는 마치 꿈 속에서나 존재하는 이상국가처럼 느껴진다.

'좌파 영웅'으로 떠오른 '붉은 우체부'

현재 프랑스에서 브장스노 열풍은 작년 미국 대선에서 오바마의 그것과 비견될 만큼 선풍적이다.

지난 2월 반자본주의신당(NPA) 창당대회에 참석했던, 우리나라의 한 활동가는 그의 인기가 '상상 밖'이었다고 한다. 그는 "그냥 좌파 정치인치고는 인기가 있다 정도가 아니라, 마치 연예인 취급당하듯 했다."며 "그가 담배를 피고 있을 때도, 핸드폰으로 전화를 할 때도 카메라 기자들은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담고 있었다."고 전했다.

물론 오바마 대통령과 브장스노는 정치·경제적 노선과 지향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오바마가 '자본주의를 적당히 고쳐 쓰자.'는 입장이라면, 브장스노는 '자본주의를 폐기처분해야 한다.'는 확고한 철학을 갖고 있다. 정치적 배경도 엄청난 차이가 있다. 오바마가 미국 양당제의 한 축인 민주당이라는 강력한 대중정당을 기반으로 한 정치인이라면, 브장스노는 여전히 소수 좌파정당의 대변인에 불과하다.

그러나 오바마와 브장스노는 기존 질서와 다른 대안을 가지고 국민들로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모으며 '정치 영웅'으로 급부상했다는 점에서 흡사하다. 오바마 신드롬이 미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라는 신화를 만들었다면, 브장스노 신드롬은 글로벌 경제위기 국면에서 '자본주의 폐기-사회주의 건설'라는 대안을 가지고 또 다른 신화에 도전 중이다. 그의 행보를 특별히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위기감을 느낀 프랑스 우파와 주류 언론들은 브장스노를 '대책 없는 인간'으로 몰아붙이고, NPA를 무책임한 정치세력으로 매도한다. 브장스노가 부유한 아내와 함께 은밀히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는 '가짜 프롤레타리아'라는 주장을 퍼뜨리기도 했다. 2008년 10월에는 브장스노가 전기총 사용을 반대하자, 한 전기총 제조회사 사장이 사설 탐정과 전·현직 경찰관들을 고용해 브장스노 가족의 사생활을 감시하다 발각된 사건이 프랑스 사회를 뒤흔들기도 했다.

브장스노에 대한 위기감은 집권여당뿐만이 아니다. 브장스노가 우경화를 이유로 단절을 선언한 제1야당 사회당은 작년 6월 당수인 프랑수아 올랑드가 직접 챙기는 '브장스노 특별대책위원회'까지 꾸렸다. 그럼에도 날이 갈수록 국민적 지지를 얻어가고 있는 그를 무시할 수도 없다는 고민만 주류 언론, 정치권에 수북이 쌓여간다.

反자본주의 시간이 왔다-다시 '혁명'을 말하다

무엇이 그를 이토록 만들었을까. 그가 프랑스 대중들에게 던진 메시지는 간결하고도 분명했다. '자본주의는 더 이상 이대로는 안된다.'는 것.

"자본주의 국가에서 경제적 위기에 따른 고통을 분담하는데, 자본가들은 책임을 지지 않고 민중들에게 그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분노할 일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지금이 가장 착취당하는 민중의 수가 많은 시기다. 反자본주의 시간이 온 것이다. 자본주의는 개량되거나 도덕적으로 변모되지 않는다."

브장스노가 지난 2월 8일 반자본주의신당 창당대회 때 <레디앙>의 박지연 파리 통신원과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자본주의 폐기-사회주의 건설'이 그가 내세우는 핵심 주장이다. 이런 관점에서 그는 "사르코지 대통령의 대책은 위기를 더욱 심화시킬 뿐"이라며 정부의 경기부양책 등에 연일 날선 비판을 가하고 있다. 그러면서 노동자 파업 등의 현장을 누비며 서민대중의 정당한 요구들을 함께 외친다.

그는 구체적 현안과 관련해 해고 금지, 월급 인상, 최저임금 인상, 빈집 점거, 부자들에게 세금 부과 및 부의 재분배, 공공주택 확대 등을 줄기차게 요구해왔다.

브장스노는 본래부터 공산주의 혁명 사상인 '트로츠키주의'자였다. 트로츠키는 스탈린의 관료주의와 일국 사회주의에 맞서 '아래로부터 사회주의, 영구혁명론, 국제적 사회주의' 등 마르크스의 원칙을 강조한 러시아 혁명의 지도자다.

브장스노는 "소수 개인을 위해 다수가 존재하는 사회가 아니라, 다수가 그 스스로를 위해 결정하고 존재하는 사회"를 자신이 추구하는 '제3의 길'이라고 명명하고, 이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선 "부자들의 것들을 국유화하고, 사회적인 모든 부를 직접적으로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본가들에게 집중되어 있던 것을 다시 재분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도 스스로를 혁명주의자라고 말한다. 그러나 트로츠키주의를 고집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로자 룩셈부르크'(독일 공산당을 건설한 여성 사회주의 혁명가)나 '체 게바라'(남미의 전투적 사회주의 혁명가)이기를 자처한다. 그러면서 "反자본주의자들은 폭력적인 사회를 위해서가 아니라, 폭력이 더 이상 없게 하기 위해 투쟁한다."고 말한다.

"너희들의 위기, 우리가 대신 지불할 순 없다"

브장스노가 소속된 당은 당명에서부터 정체성이 확 드러나는 '反자본주의신당(NPA)'이다. 당의 핵심 노선으로 '21세기 사회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이 당의 전신도 우리의 보수 우파들이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떨 만한 '혁명적 공산주의자 연맹(LCR)'이다. 프랑스 68혁명의 투사들이 이듬해인 1969년에 출범시킨 LCR는 지난 40년 동안 트로츠키 노선를 견지해온 정당이다. 브장스노는 그런 LCR의 2002년과 2007년 대선후보였다.

브장스노는 2002년 프랑스 대선에서 LCR의 대선후보로 나서 4.25%(121만562표)를 득표해 16명 중 8위를 기록했다. 1~3위를 제외한 4위 이하의 득표율이 모두 6% 이하였던 점을 감안하면 눈부신 성과였다. 이로 인해 브장스노는 '좌파 스타'로 떠올랐다. 이 때 그의 나이는 불과 28살. 프랑스 역사상 최연소 대선후보였다. 그는 "우리의 삶은 그들의 이윤보다 더 가치가 있다."는 대선 슬로건으로 대중들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또 2007년 대선에서는 4.08%(149만8581표)를 얻어 2002년에 비해 28만8019표의 증가를 나타내며 5위에 올랐다. 특히 2007년 대선에서 브장스노는 사회당 왼쪽의 좌파 후보 6명 중 단연 선두였고, 유일하게 선전한 케이스였다. 그 결과 브장스노는 2007년 대선 이후 '반신자유주의 좌파'의 대표 정치인으로 급성장했다. 게다가 대선에서 잇따라 패배한 제1야당 사회당이 구심점을 상실하면서, 브장스노는 2008년도부터 사르코지 대통령에 필적할 호적수로 떠오르며 야당 전체의 대표주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브장스노와 LCR는 대중노선을 더욱 강화하면서 올해 2월 5일 40년 전통의 LCR를 해산하고 기존 LCR(트로츠키주의) 세력에 환경·생태주의, 여성운동, 외국투기자본 세금 부과 운동(ATTAC), 반세계화주의, 급진화된 대학생 등을 합류시켜 지난 2월 7일 재창당했는데, 그게 현재의 반자본주의신당(NPA)이다. 전신인 LCR의 당원이 3천여명에 불과했던 점에 비하면, 현재 NPA의 당원은 1만명을 넘어서며 규모가 3배 이상으로 커졌다. NPA 창당대회는 밀려드는 인파와 취재기자들로 몸살을 앓기도 했다.

브장스노와 반자본주의신당은 "자본가, 너희들의 위기를 우리가 대신 지불할 수 없다."는 멋진 슬로건으로 극심한 경제위기에 고통당하고 있는 프랑스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이들은 프랑스가 집권 우파 대중운동연합(UMP)의 사르코지 대통령을 중심으로 급격하게 신자유주의 우경화의 길을 가고 있는 와중에도 과감하게 이미 실패한 시장경제를 없애고, 시중은행들을 국유화해 단일한 국영은행을 수립할 것, 노동자들의 민주적 통제 체제 수립 등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일관성 빛나는 '국민 사위'

브장스노는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스스로 프롤레타리아의 길을 선택했다. 그렇다고 직업 정치인도 아니다. 그는 지금도 파트타임으로 일주일에 사흘씩 자전거를 타고 우편물을 배달한다. 선거 출마 때는 휴가를 내고, 끝나면 다시 집배원으로 돌아왔다. 풀뿌리 정치를 하려면 서민들과 가까운 곳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다.

브장스노는 1999년 LCR 소속으로 유럽의회 의원에 당선된 알랭 크리빈의 보좌관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그러나 다른 모든 이들처럼 직장에서 봉급을 받고, 파업에 참여하기도 하는 우편배달부로서 그는 대중들에게 직업 정치인으로 비춰지지 않았다. 대신 '동료 노동자', '우리들 중의 하나'였다. 이런 그를 주변에서는 '정치인 같지 않은 정치인', '유기농 정치인'라고 부른다.

그의 월급은 1100유로(약 200만원), 사는 곳은 파리 달동네인 18구의 55㎡짜리 아파트다. 이것도 은행에서 대출받아 샀고 빚은 18년 동안 갚는다. 그가 우체부로 일하는 뇌이쉬르센은 역설적이게도 프랑스에서 가장 부유한 우파들이 모여사는 지역이고, 전 시장은 사르코지 현 대통령이었다.

브장스노는 극좌파임에도 '좌파 운동가'의 전형적 이미지인 가죽 점퍼를 입고 수염을 기른 모습과도 거리가 멀다. TV에 비치는 모습도 언제나 깔끔하게 손질한 머리와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으로 당원들과 어깨동무를 하거나 격의 없이 대화하는 장면이다.  

젊기 때문에 젊은 층은 더 쉽게 그가 말하는 것에 동의할 수 있었다. 에둘러 말하지 않고 모든 사안에 명쾌하게 자신의 소견을 밝히는 것도 그의 매력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대중과 방송이 모두 좋아할 만한 날렵한 말솜씨도 그의 장점이다. 엘리트 정치관료 출신이 아님에도 이 젊은 우체부는 수많은 TV 토론회에서 그에게 반대 의견을 보이는 직업 정치인과 정부 요인들을 참패시켰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가 정치적으로 매우 '일관된' 행보를 보여왔다는 점이다. 14살에 혁명적공산주의청년회(JCR) 조직에 가입해 정치활동을 시작한 이후 그는 한번도 자본주의 폐기-사회주의 실현의 흐름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그러면서 프랑스의 주요 사회적 의제와 관련된 좌파적 실천 투쟁을 통해 대중들과 꾸준히 호흡해왔다. 그가 활동했던 LCR은 2005년 유럽헌법 반대투쟁, 2006년 최초고용법안(CPE) 반대투쟁 등으로 폭넓은 지지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그래서 브장스노는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성실한 청년으로도 유명하다.

사람들은 이런 그를 신뢰하고 사랑한다. 슈피겔이 "모든 프랑스 어머니들이 사위 삼고 싶어하는 대선후보"라고 할 정도다. 작가 알랭 뒤아멜은 "브장스노는 시민들이 21세기 혁명가에게 기대하는 최상의 자질을 모두 갖추고 있다."며 "그의 정적인 부르조아 정치인들도 브장스노가 히치하이킹을 하고 있다면 주저하지 않고 그를 차에 태울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국의 브장스노'는 누구?

우리나라 대중 정치인 중에 노선과 지향점이 브장스노와 닮은꼴인 정치인을 찾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심지어 비슷한 인물조차 찾기 어렵다.

조중동과 보수 인사들은 입만 열면 친노무현과 민주당 세력을 향해 좌파라고 딱지붙여 놓고 '다 좌빨 때문이다.'고 공격하지만, 이들은 브장스노와 비교하면 안드로메다만큼이나 멀리 떨어진 신자유주의 우파들이다.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은 '극단적 신자유주의'에 가깝다.

민주노동당은 물론, 사민주의 성향이 강한 진보신당조차 브장스노와 반자본주의신당에 비하면 '온순한 좌파'에 불과하다. 진보·좌파라고 평가받는 인사들조차 우리나라에서 '자본주의 폐기'를 이야기하면 무슨 큰일 날 것처럼 꺼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정작 큰일 난 건 자본주의인데도.

그럼 우리나라에는 브장스노와 같은 주장을 하는 정치세력이 아예 없을까? 없긴 왜 없어!

현재 우리나라에서 사회주의 정당 건설을 추진하고 있는 '사회주의 노동자 정당 건설 준비모임(이하 준비모임)'이 가장 브장스노와 흡사한 주장과 정치활동을 하고 있는 단체다. 준비모임은 지난 2월 브장스노의 반자본주의신당 창당대회 때 진보신당과 함께 사절단을 파견하여 참가하기도 했다.

또 작년에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체포됐다 법원으로부터 위험한 세력이 아니라며 퇴짜 맞은 굴욕(?)을 당한 오세철 연세대 명예교수 등이 소속된 '사회주의노동자연합(사노련)'과 애매모호한 정치 행보 때문에 많은 논란이 있지만 '다함께'도 트로츠키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이들은 비록 소수이고 인지도도 턱없이 낮지만, 국내에서 '자본주의 폐기-사회주의 국가 건설'를 핵심 목표로 내걸고 활동하고 있는 정치단체들이다. 제법 브장스노 및 NPA와 흡사한 주장들을 하고, 실제로도 준비모임과 사노련은 현재 사회주의 정당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친북단체는 아니다. 이들은 북한를 제대로 된 사회주의가 아니라 노동자를 착취하고 억압하는 국가사회주의 또는 국가자본주의로 규정하고, 북한 민중에 의해 타도되어야 할 반동체제로 본다. 이들이 국가보안법상 이적단체가 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제(25일) 사회주의 정당 준비모임의 장혜경 정책기획팀장에게 전화를 걸어 브장스노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그는 "브장스노와 반자본주의신당의 노선과 활동방향이 우리와 가장 비슷하다."며 "브장스노가 사회주의 정치활동을 하면서 일반 대중과 밀접히 호흡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굉장히 신선하고 우리도 착목해야 될 지점이 많다."고 말했다.

브장스노 열풍을 우리나라로 치면 한마디로 '장혜경이 박근혜'된 격이다. 엄청난 간극이다. 물론 브장스노 열풍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섣불리 장담할 수 없다. 그것은 현재 자본주의 경제위기가 어떤 형태로 진행될지 그 파장이 어느 정도일지 누구도 장담하기 어려운 것과 동전의 양면이다. 뜻밖의 암초를 만나 좌초될 수도 있다.

그러나 정권에 대항할 만한 강력한 지지를 받는 야당 정치인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결코 작지 않다. 한국의 브장스노는 언제쯤 나올까. / 편집위원

* 글쓴이는 '참여민주주의와 생활정치연대' 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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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엥란트



벼락대신 홍준표 의원의 좌파 ‘시뮬라시옹’
[논단] 슬기 주머니 가득한 개혁.진보 대갈마치들의 귀잠은 누가 깨우나
 
김영국
홍준표의 보수-진보 ‘경계 허물기’

홍준표 의원이 거침없이 쏟아내는 말과 거탈들이 연일 화제를 집중시키며 정치권과 네티즌들을 흥분시키고 있다.

그러면서 홍준표는 ‘보수=좌파적 서민당’이란 가상현실을 만들어내고, 이는 언론과 미디어에 의해 확대 재생산되면서 더욱 실감나게 다가온다.

이런 홍준표 효과의 종착점은 한국정치에서 보수, 진보의 ‘경계 허물기’다.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은 기득권 정당의 자리를 맞바꾸게 되고,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은 좌파의 진품 여부를 가려야할 처지에 놓이게 된다.

이 과정에서 한나라당은 천형처럼 따라다니던 특권층 대변당, 수구꼴통 세력이란 이미지를 떼어내거나 최소한 희석시킬 수 있게 되길 기대할 것이다. 지금까지는 한나라당에게 쏠쏠한 재미를 안겨다 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것이 한나라당 전체가 좌향좌하고 있다는 얘기는 아니다. 박근혜 대표를 비롯 영남 주류들은 여전히 친재벌적 시장지상주의와 성장중심주의의 맹신자들이다.

이들은 재벌을 위한 출자총액제한제도의 폐지, 과감한 감세정책, 각종 규제 완화를 경제 살리기의 ‘전가의 보도’인 양 되뇌고 있다.

박근혜가 홍준표 효과를 낮잡아 보고 지금처럼 원조 보수, 영남주의 노선에 안주한다면 그도 ‘어정잡이’ 이회창을 넘어서지 못할 것이다.

돋보이는 벼락대신

어쨌든 홍준표는 좀 달랐다. 그래서일까. 어느덧 그는 정치권 최대의 스타가 돼버렸다. 이러다 2005년 정치인 코드는 홍준표란 말까지 나올 판이다.

급기야 개혁적 시민단체의 대표격인 참여연대까지 홍준표를 ‘과거의 폭로, 정쟁형 의정활동을 넘어 법안, 정책으로 승부하려는 돋보이는 의원’이라고 평가했다. 홍 의원의 부정적이기만 했던 전력에 비하면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반면 자칭 개혁정당 열린우리당의 대표는 거듭되는 부패정치인 사면 제안으로 잊지 말아야할 의원 명단에 올라 큰 대조를 보였다.

또한 ‘연정’ 논의가 활활 타오르기를 열망하면서 편지까지 써가며 집착했던 대통령의 제안은 야당과 국민들로부터 야멸치게 외면당하고 있는 반면, 홍준표의 불쑥불쑥 내던지는 좌파적 언표는 똑같이 뜬금없는(?) 제안임에도 가히 폭발적이다.

홍준표에 이어 김양수, 정형근으로 이어지는 한나라당내 일부 의원들의 귀가 번쩍 뜨이는 ‘화려한 변신’에 열린우리당은 현기증을 느끼며 말문이 막혀버렸다. 이제는 민주노동당마저 홍준표를 상대로 가열한 ‘원조 논쟁’을 전개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홍준표의 좌우를 넘나드는 활극에 보수, 진보진영은 물론 국민들까지 경계가 허물어지는 혼란에 빠져들 조짐이다.

수구세력의 금기(禁忌)에 도전한 후광(?)

과연 홍준표의 도발은 수구적 이미지 탈피를 위한 ‘페인트 모션’일 뿐인가. 아니면 ‘좌파식 포퓰리즘’을 역이용한 것인가. 그도 저도 아니면 ‘딥 임팩트의 혜성 출동 실험’처럼 수구정당이 만든 좌파 인공물체를 정치권에 던져 한번 충격을 줘본 것인가.

그 의도가 어떠하든 홍준표 효과는 우리 사회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홍준표 효과의 원인은 무엇인가. 그것은 아마도 보수세력이 좌파적 의제의 도발적 제기라는 코페르니쿠스식 발상의 전환과 성역화된 금기에 도전했다는 충격파일 것이다.

수구에 가까운 보수정당의 의원이 “투기 잡는데 좌파면 어떠냐.”, “박정희도 경제정책은 좌파였다.”, “한나라당 이미지와 안 맞으면 좀 어떠냐.”고 당돌하게 말하는 것. 분명 생소한 광경이며, 금기임에 틀림없다.

인터넷을 통한 정보의 홍수와 발전된 네트워크망으로 한층 빨라진 대중 커뮤니케이션. 그로 인해 우리 사회는 주기가 훨씬 짧아진 진부한 것, 식상한 것에 대한 천시와 금기를 깨는 새로운 것에 대한 갈증 현상이 보편화되고 또 일상화됐다.

여기에 언론이 그러한 사회 현상에 상업적으로 영합, 증폭시키면서 홍준표의 발언은 강력한 대중 흡인력을 발휘하고 있다.

홍준표가 수구정당에서 쏘아올리는 좌파적 의제 제기는 어떤 면에선 어중간한 열린우리당을 증발시켜 버리고, 민주노동당의 영역까지 넘보는 한층 첨단화된 정치공세일 수도 있다.

열린우리당은 원내 1당의 거대정당임에도 당의 정체성이 흐리멍덩한 맹물화되면서 홍준표 한 명에 철저히 유린당하고 있다. 열린우리당의 그간 친재벌, 반서민.반노동자적 신자유주의 노선이 홍준표의 좌파적 공세를 효과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무기들을 스스로 폐기시켜 버린 것이다.

이는 지금까지 개혁세력이 보수세력을 상대하면서 사용해온 ‘전가의 보도’-반한나라, 안티조선 같은 정서적 칼과 대북정책, 자주통일 같은 민족주의적 혹은 NL적 가치-들이 더 이상 효과를 발휘하기 힘들게 됐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다.

그만큼 서민대중이 빠져있는, 지금의 웅덩이가 깊고 크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제아무리 정치가 잘 돼야 경제가 산다고 외쳐본들 서민대중은 정치와 경제를 철저히 분리하기 시작했다. 정치적 개혁이 서민대중의 먹고 사는 문제를 결코 해결해주지도, 할 수도 없다는 것을 체득해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개혁 정권이라면 당연시 여겨왔던 ‘서민의 정권’이 아닌, ‘삼성의 정권’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노 정권이 몸소 실천해 보이면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는 현상이기도 하다.

열린우리당이 ‘좌파적 포퓰리즘’ 혹은 ‘시장논리 위반’이란 기조로 홍준표를 공격하면 할수록 그들은 조중동과 동질화되면서 극도의 정체성 위기라는 블랙홀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스스로 보수.우경화됨으로써 지지층의 외연을 넓혀가리란 전략이었지만, 홍준표는 그것을 노 정권의 무덤으로 활용한 셈이다.

노 정권의 신자유주의적 보수화 이미지가 정착돼가는 시점에 이르러 홍준표는 그들이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좌파의 저수지로 돌진하면서 그들의 존재 이유를 증발시키고, ‘날 샌 올빼미 신세’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홍준표의 좌파적 의제 제기가 기승을 부리면 부릴수록 조중동 사설과 열린우리당 논평은 더욱 닮아가고, 민주노동당은 좌파 진품이라는 입증책임과 이행을 강력하게 요구 받게 된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노 정권의 아킬레스건 ‘삼성과 신자유주의’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게 있다. 지금까지 노 정권과 열린우리당의 보수.우경화에 당내 실용파들 혹은 재벌, 관료 출신 등 보수적 인물들에게만 그 책임을 추궁하는 경향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이는 바늘구멍으로 하늘을 보는 것이다.

노 대통령과 정치적 행보를 함께 해온 소위 ‘386 친노(親盧)직계 그룹’의 친삼성, 신자유주의 행보는 일반인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고 있다.

노 정권과 열린우리당의 실용 노선이 전방위적으로 확산되었던 작년 하반기.

이광재, 서갑원, 백원우, 윤호중(이상 청와대 출신), 이화영, 조정식, 한병도, 김재윤, 김종률, 김태년, 이기우, 이상민 의원(매일경제 보도 04-08-19일자) 등이 주축이 된 ‘의정연구센터’ 맴버들은 실용주의를 표방하면서 삼성경제연구소와 경제 살리기 심포지엄, 전경련 회장단과 간담회 등을 갖고, 당내 보수파와 적극 연대하는 등 개혁파와 확연히 대조되는 ‘우향우’ 동선을 그려왔다.

이들은 재벌의 출자총액제한제도의 완화를 위해 총대를 메고 나서는가 하면 연기금의 주식투자 허용, 비리 경제인 사면 주장 등 재벌개혁 후퇴를 적극 지원해왔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들은 “삼성이라는 기업의 브랜드를 어떻게 살려 나갈 것인가, 세계 경제 속에서 경쟁력 없는 중소기업이 굳이 많아야 할 이유가 있나.”, “기업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이 때문에 불필요한 규제는 제거해야 한다.”, “보다 적극적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삼성에서 배우고 익힌 대로 노골적인 신자유주의적 시장주의와 성장중심주의를 견인해왔다.

실제 삼성이 제공한 아이디어를 가져다 노 정권의 핵심 정책으로 만드는데 이들의 기여가 컷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대통령 지근거리에 있는 386 측근들의 이같은 사고들이 노 정권의 신자유주의 노선 강화에 큰 역할을 해왔음은 불문가지다. 결과는 삼성공화국의 탄생과 극심한 경제적 양극화였다.

여기에 이해찬 총리는 한술더 떠 총리실 간부들을 삼성인력개발원에서 위탁 교육을 받게 할 정도였다.

이를 두고 민주노동당의 한 의원은 “참여정부에 정치적 개혁파는 있을지 몰라도 경제.민생 분야의 개혁파는 없다.”며 원내에서의 외로움을 호소하기도 했다.

노 정권과 열린우리당에서 쏟아내는 경제.민생 정책들이 번번히 격화소양(隔靴搔痒-신발을 신은 채 가려운 발바닥을 긁는 것)에 그치고 만 것은 이런 사정과 결코 무관치 않다.

군사정권보다 수구적인(?) 민주.개혁정권

‘토지공개념’ 같은 조금이라도 진보적 대안들이 제시되면 나오기가 무섭게 난색을 표하고 덮는데만 전전긍긍하는 청와대와 여권 핵심부의 ‘코푸렁이’ 같은 모습은 이젠 너무도 익숙한 광경이 돼버렸다.

택지소유상한법, 개발이익환수법, 토지초과이득세법. 이름만 들어도 섬뜩한(?) 이 법안들은 북한 공산당의 법이 아니다. 바로 노태우 군사정권이 만들어 시행한 법이다.

그런데 자칭 민주.개혁정권이라는 노 정권의 재경부 차관은 ‘토지공개념’이란 말조차 너무 강하게 느껴진다며 엄살을 떤다.

하긴 개발이익환수법은 위헌 논란 없이 아직도 존재하고 있지만 노 정권은 기업의 부담을 덜어주겠다며 작년부터 개발부담금 부과조차 중단해버렸다. 1년도 안된 지금 다시 부활 운운하면서 무슨 엄청난 거라도 기획하고 있는 양 엉너리를 치고 있다.

자칭 민주.개혁정권이 군사정권도 시행한 토지공개념을 시장논리에 반하고, 좌파적이서 위험하다? 조중동에 맡겨도 될 사설까지 대신 읊어대는 이런 류의 해명.

이건 개그가 아니다. 노 정권의 치부이자 현실이다.

노 정권이 정치적 연정에 쏟아붓고 있는 정열의 1/10만큼이라도 경제적 진보에 할애한다면 이처럼 공론화도 되기전에 불부터 끄려하진 않을 것이다.

김영삼의 무능과 노태우의 맹물을 추가한 ‘곱빼기 무능 정권’이 될 가능성과 퇴임후 책임 추궁이 두려워 내각제 개헌에 미련을 갖고, 한나라당과 연정에 집착한다는 일각의 비판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홍준표의 도발과 딥 임팩트의 혜성 충돌

작금에 홍준표식 문제 제기가 대중들로부터 뿌리칠 수 없는 유혹으로 다가오는 것은 우리 사회가 이미 좌파적 문제의식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는 오래전부터 그걸 요구하고 있었다. 다만 정치권만 몰랐거나 알면서도 자기 전공이 아니라 외면했을 뿐이다. 한편으론 권력 놀음에 정신이 팔려 거들떠 볼 여지가 없기도 했다.

그러나 국민들은 이미 93%가 한국 사회 빈부 격차의 심각성에 절규하고 있었으며, 온갖 사회적 차별에 신음하고 있는 800만 비정규직과 380만 신용불량자, 300만 신빈곤층, 87만 실업자들은 정치권의 무책임과 무능력에 분노를 차곡차곡 쌓아왔던 것이다.

또한 삼성공화국, 병역기피용 국적 포기, 가정 해체, 자살 급증 등으로 대변되는 극단적 모순과 경제적 양극화가 고착화되는 ‘21세기 자본주의 봉건시대’의 도래를 목도하면서 ‘좌파적 대안 사회’에 대한 갈증을 키워 온 것이다.

한국 사회 절대 다수인 서민대중의 ‘경제적 시민권(또는 평등)’에 대한 열망과 이와 정반대 되는 정치권의 신자유주의적 보수화 노선의 강화는 정치적 환멸과 냉소를 부추기며 서민대중을 ‘절망의 저수지’로 흘러가게 만들었다. 그에 따라 거대한 ‘미지의 웅덩이’가 생겨난 것이다.

새롭게 형성된 저수지를 관리하고 이들을 깊은 웅덩이로부터 구해낼 정치세력에 대한 갈망도 그만큼 강렬해지고 있다.

홍준표는 지금 이 웅덩이에 ‘좌파 충돌체’(돌멩이)를 던져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정치적 실험이다.

처음부터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그 형성 원인과 과정 그리고 홍준표 효과를 살펴볼 때 이 웅덩이를 관리할 주인은 ‘좌파적 서민정당’이 적격이라는 단서를 홍준표의 충돌 실험은 역설적으로 암시해주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원조 좌파’라는 민주노동당의 ‘거대한 소수’ 전략은 당내 정파적 갈등과 변화에 적응하기 힘든 운동권식 사고와 문화로 인해 서민대중의 삶에 천착하는 ‘PD적 문제의식’이 당내에 정교하게 성장하지 못하면서 되레 굼뜨고, 무능한 좌파란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그로 인해 사상 최대의 호기를 맞고 있음에도 보수정당의 좌파 시뮬라시옹에 편입되어 소진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마저 스멀거리고 있다.

홍준표 시뮬라시옹의 소모품이 될 것인지, 좌파적 문제의식을 공론화하고 업그레이드하는 발판으로 삼을 것인지는 전적으로 진보.좌파의 몫이다.

개혁.진보진영의 시뮬라시옹(?)

민주정부의 연속 집권에도 불구하고 삼성공화국으로 명명되는 경제적 양극화의 심화로 인해 오늘날 개혁.진보의 얼굴에는 ‘서민의 편’란 글씨는 바래가고, ‘무능, 자기모순, 혼란’이라는 주홍글씨들이 새겨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 정당, 기존 방식에 대한 전면 폐기까지 고려하지 않으면 안될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다는 진단들은 이제 전혀 어색해 보이지 않는다.

이대로 보수세력의 좌파 시물라시옹에 수동적으로 편입되는 재료에 그칠 것인지, 아니면 지난 반세기동안 누적된 자본주의의 적폐로 생성된 거대한 양극화의 웅덩이를 메우는 세력으로 거듭날 것인지. 기로에 서있는 진보 진영의 발상 또한 정교하면서도 충격적일 것을 요구하고 있다.

노 정권과 열린우리당류 ‘신자유주의 보수세력’ 그리고 운동권식 사고와 방식에 여전히 안주해있는 노동.진보진영 내 일부 ‘수구 좌파들’과 과감한 절연이 필요하고, 이를 대체할 새로운 정치 주체의 등장을 더 이상 금기시해서는 안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느 지인의 말처럼 비록 선산 다 팔아먹고 당장은 꼴뚜기 좌판밖에 벌일 게 없다 할지라도.

~사모, ~빠 같은 데림추 집단이나 오만한 흔들비쭉이들은 가고, 슬기 주머니 가득한 대갈마치들이 모여드는 그 날이 오기를… / 편집위원
 
* 필자는 '참정연' 회원입니다.
 
2005/07/21 [11:09]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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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엥란트

노동진보, 폐품좌파, 금간 불판을 넘어
[신년 제안] 행복을 두려워말자, ‘언저리국민’과 공짜점심의 수수께끼(3)
 
김영국
2005년 최대의 화두가 되고 있는 우리사회 ‘양극화’와 ‘분배와 성장’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자 ‘언저리 국민과 공짜 점심의 수수께끼’란 타이틀로 (1)참혹한 ‘양극화 분단’의 현실과 공짜 점심의 수수께끼, (2)참여정부의 경제관과 ‘만원의 행복’, (3)노동.진보진영의 대응, ‘위기인가 기회인가’를 3회에 걸쳐 기고합니다. 독자제현의 지도편달을 바랍니다-필자 주


- ‘완행열차에서 고속전철로 갈아탄’ 위기의 노동.진보진영, 진지한 자기반성과 새로운 상(象) 세워야 –


“시간 없는데 싸우기도 전에 그로기 상태라니…”

“헐벗고 소외된 서민대중에게 웃음을 되찾아 주고, 그들이 행복해지는 것을 더 이상 두려워 하지 않게 해주자”

대한민국 노동운동계, 진보적 시민사회, 그리고 진보정당이 이룩해야 할 최대 목표이자 희망이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이는 세계적인 생태주의자 헬레나 노르베리-호지의 말을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진보의 가치란 궁극적으로 서민대중의 삶의 질이 개선되고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란 뜻을 담은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실은 의지를 따라가지 못한다. 서민대중이 겪고 있는 삶의 황폐화에 직접적 이해당사자나 다름없는 노동, 진보진영의 대응은 권력과 자본의 쌍포앞에 무력한 모습을 보이며 안팎으로 시련과 난관에 봉착해 있다.

노동.진보진영을 대표하는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에서 최근 들려오는 소식들은 자못 심각해 보이는 조짐들이 묵은 메주에 곰팡이 피듯 번져 나왔다. 노동.진보진영의 위기는 더 이상 외부탓(?)으로 항변하기 불가능한 지점까지 도달했다.

설상가상으로 기아차 사태의 경우 민주노총이 수년 전부터 그토록 목청을 높여 왔던 비정규직 근로자 차별 철폐와는 정반대로 비정규직 근로자들을 ‘등친’ 매우 부도덕한 사건이라는 점에서,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의 경우 지도부가 바랐던 노사정위 복귀를 포함한 ‘사회적 교섭’ 재개 안건이 두 번에 걸쳐 정족수 미달로 표결이 무산된 데다 급기야 시너와 소화기까지 동원한 난장판으로 얼룩지면서 민주노총에 회복하기 힘든 깊은 ‘내상(內傷)’을 입히고 말았다.

더욱이 사회적 교섭 참여를 정부와 사측에 대한 투항이며, 정부측 비정규직법안 반대를 위한 2 월 총파업투쟁을 회피하는 것으로 보고 있는 반대파의 반발도 기실 민주노총에 대한 비정규직 노조 등의 불신이 강하게 깔려있다는 점에서 작금의 민주노총의 심각한 내부분열은 전체 조직력 약화는 물론 대기업 정규직노조 중심의 민주노총식 노동운동에 더 이상 전체 노동자의 대표성을 인정하기 어려운 지점까지 왔으며, 향후 노동운동의 재편을 예고하는 중대한 분기점을 맞고 있다.

이처럼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사태는 정규직 대기업 노동자들이 주축이 돼 무력 시위를 벌인게 아니라 하청노동자 등 비정규직이 중심이 된 쪽에서 정부와 여당이 2월에 강행 통과시키려는 비정규직 법안이 자신들에게는 치명적인 것으로 규정하고, 이의 저지를 위해서는 대책없이 정부의 로드맵에 말려들게 아니라 강력한 투쟁전선 구축이 우선되어야 한다며 절차적 민주주의 훼손이라는 비판을 감수하고 벌인 시위란 점이 핵심이다.

민주노총 지도부도 당장 총파업에 대한 동력을 확신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사회적 교섭틀을 통해 노동계의 요구와 의제를 이슈화하면서 사회적 명분 획득과 준비기간을 갖고, 대화 거부시 예상되는 정부나 재계의 이데올로기 공세와 일방적 강행기조를 일단 차단할 필요성에서 사회적 교섭 참여에 대한 결론을 내려 했던 것이며, 이런 양측간의 정세판단의 차이는 상호 절박한 사정만큼 협상의 여지도 협소했던 것이다.

무엇보다 이번 사태는 하청노동자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절박함과 그간 참여정부의 반노동적 정책에 대한 이들의 뿌리 깊은 불신에서 촉발된 시위였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노동계의 참여여부와 상관없이 뭐든 예정대로 밀어부치겠다는, 마치 군사정권시절 관료의 안경을 쓰고 있는 듯한 노동부 장관의 엄포는 불난 집에 기름을 부어댔다.

그럼에도 이런 본질적 사안들은 깡그리 무시된 채 수구언론은 물론 진보적이라는 신문까지 종이언론과 방송의 보도행태는 천편일률적으로 '폭력을 일삼는 소수 강경파의 난동'라는 타켓을 미리 설정해 놓고 일시에 노조 전체를 폭격해대는 놀라운 동맹이 형성된 것을 보면서 종이언론과 방송의 표피적 한계를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쨌든 이번 사태는 기아차 인사비리를 계기로 노동운동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이 싸늘하고, 이를 빌미로 정부와 자본의 공세가 그 어느 때보다 강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국민앞에 파국적 내분 양상을 노정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최악의 자충수가 아닐 수 없다.

민주노동당 또한 지난 국보법폐지를 위한 당의 대응전략을 놓고 ‘열린우리당 2중대 문건’까지 등장하면서 벌어지기 시작한 당내 논쟁이 최근 당 기관지 편집장 교체, 여성당직자 폭행사건 징계완화, 부유세에 대한 당의 의지부족을 비판한 윤종훈 정책연구원의 사퇴 등 일련의 불미스러운 사태가 중첩되면서 전통적 최대 정파인 ‘민족자주파(혹은 주사파)’와 ‘민주생존파(혹은 평등파)’로 나뉘어 당원간 갈등 차원을 넘어 사실상 ‘내전중’인 것으로 보인다.

당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민주노총 등 노동계의 잇따른 불미스런 사태는 민주노동당에게 엎친데 덮친 격이다.

노동운동, 멸망으로 가는 완행열차에서 ‘급행열차’로 갈아탔나

최근 국.내외를 가리지 않는 노 대통령의 비판적 발언, 이에 ‘올커니’하며 고무된 수구언론과 정부 그리고 재계는 한 목소리로 노동운동진영을 거세게 몰아부쳤다. 그 근거는 노동쟁의의 확산이었고, 요지는 고임금의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이기주의가 나라를 망치고 있다는 것이었다. 비정규직의 확산도 노동시장의 양극화도 모두 그들의 책임으로 몰았다.

이들은 기아차 채용비리 사건을 노조의 힘을 빼는 절호의 기회로 활용하기 위해 마치 물만난 고기마냥 날뛰고 있다. 노동자들에 대한 적대감의 ‘생산.유통.확산’을 부추기며 자신들이 맞을 화살을 노동자들 끼리의 책임으로 떠넘기려는 의도도 굳이 숨기지 않는다.

수구언론들은 한술 더 떠 우리사회의 재계에 대한 반기업 정서를 질타하며 애국자인 재계에 존경심을 가져야 한다고 국민들을 훈계해왔다. 물론 대통령도 거들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기회만되면 노조를 매도하면서 반노조 정서를 부추겨왔다.

정작 서민대중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시위대 옆에 지나가는 행인들이 하는 말에서, 뉴스 사이트와 정치웹진에 실린 노동자의 파업 소식에 달리는 답글에서 ‘또 데모냐?’, ‘노동귀족’, ‘폭력노총’이란 비아냥은 익숙하게 접하는 용어들이다. 이처럼 서민대중이 노동자, 농민들의 생존권 투쟁에 적대감을 보이고 있다.

비판은 노동운동 주변에서도 제기되었다. 광범위한 불안정 노동층을 우선적으로 고려하지 않은 채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전투적 조합주의를 고집하는 대기업 정규직중심의 노동운동을 향해 ‘왕자병’에 걸렸다며 힐난했고, ‘멸망으로 가는 완행열차를 탄 채 졸고있다’고 쥐어박았다.

어쩌면 작금의 노동운동은 “멸망으로 가는 완행열차도 모자라 ‘고속전철’로 갈아타버린 상황”이 아닌가 하는 우려마저 팽배해 있다.

이런 모든 비판과 우려가 매우 정당함에도 중소기업, 비정규직 노조가 사실상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한국 노동시장 구조에서 대기업 노조의 위축은 곧바로 노동자의 권익을 위해 목소리를 내줄 한쪽 당사자의 궤멸로 이어진다는 안타까운 현실이 우리를 고민에 빠뜨린다.


또한 정부나 수구세력이 비난하는 대기업 정규직 노조의 이기주의는 기실 문제의 원인이라기보다 결과의 측면이 강하다. 참여정부라면 노조와 파트너십으로 해결하는 게 맞는데, 거꾸로 배제적으로 몰아붙이니 갈등이 되레 증폭되는 측면도 있었다.

노동계가 정규직 중심의 집단이기주의적 투쟁만 일관한 것도 온전한 사실은 아니다.

일부이긴 하지만 산업별 통일투쟁에 의한 산별교섭의 기본틀을 마련하고 산별협약을 성사키키거나, 금호타이어 노조는 비정규직 노동자와 연대하여 불법파견 노동자 270여명을 정규직으로 전환시킴으로써 정규직 중심의 노동조합이 비정규직 노동자와 연대하는 전형을 창출해내기도 했다. 또한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비정규연대회의를 출범시킴으로써 투쟁의 전선을 넓히기도 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지난해 하반기엔 비정규직관련법 개악 반대, 공무원노조의 노동기본권 완전보장, 국가보안법 철폐, FTA반대, 경제자유구역내 외국병원 진출 반대 등 제도개선투쟁으로 이어졌다.

노동조합이 연대의 원칙을 요구에서 제시하고, 고용안정, 사회공헌기금 등 사회공공성 확대라는 이름으로 제시된 사회개혁 요구는 투쟁의 정당성을 확인해주는 중요한 요소이기도 했다.

한국적 노동운동의 예견된 참사(?)

사실 한국의 노동운동은 1987년 민주화 이후 몇 가지 커다란 환경변화에 직면하였다.

첫째는 아이엠에프 경제위기와 개방화, 세계화의 흐름속에 중소기업 노조들은 버티지 못하고 사라진 반면, 그나마 규모가 크고 조직과 동원능력이 있는 대기업 노조들만이 생존해 한국의 노동조합운동이 더욱 대기업 노조 중심으로 고착화 되면서 노동운동 자체도 양극화 됐다는 점이다.

특히 1997년 경제위기 이후 급격히 증가한 비정규직을 비롯 노동조합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대거 등장으로 노동시장이 대기업 정규직, 비정규직, 중소.영세기업 노동자, 실업자, 여기에 외국인 노동자까지 가세 분화, 다극화되면서 내적인 이질성이 점증되었고 노동운동은 더욱 어려운 상황을 맞게 되었다.

둘째는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로 이어진 민주정부의 연속 집권으로 ‘적어도 과거 권위주의 정권과는 다른’ 노동 정책에 대한 기대가 컸던 반면, 곧바로 공권력을 동원한 노동운동 강압정책으로의 변신으로 인해 민주정부에 대한 기대가 무참히 무너지면서 정부와 노동계의 대립과 갈등이 재연되는 등 노동조합이 일관된 대정부 정책적 대응을 보여주지 못했다.

2004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의 원내진입으로 노동계의 정치적 선택이 한결 용이해지면서 정당과 노조와의 관계가 선거 때마다 등장했던 정치적 선택을 둘러싼 갈등이 해소되어 가는 것과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던 것이다.

셋째는 90년대 이후 시민운동의 급성장으로 시민운동은 공공성을 추구하는 운동, 노동운동은 집단 이익을 추구하는 운동이란 인식이 확산되면서 시민운동이 노조를 대체하기 시작했고, 사회적 영향력이 더 커지면서 개혁담론을 주도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노동운동이 하나의 사회변혁 내지 사회개혁 세력으로서 이미지 구축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이는 필연적으로 사회적인 문제에 눈을 돌리는 새로운 운동노선과 시민운동과의 새로운 관계 설정을 요구받게 되었다.

넷째는 남북분단으로 인한 통일문제를 둘러싼 해묵은 노선 대립과 갈등이 여전히 노동운동 내부에서도 존재한다는 점이다.

‘통일문제’를 우선시하며 전면으로 내세우는 노동운동 노선과 ‘계급문제’를 전면으로 내세우는 노동운동의 노선 대립은 대선이나 총선 공간에서까지 ‘수구세력의 집권 저지’와 여야 모두 보수정당이라는 관점에서 ‘독자적인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진출’중 어느 것을 우선적 과제로 삼느냐로 이어지면서 공유와 연대 형성이 시급한 노동계 내부에 깊은 갈등의 골을 낳는 요인으로 작용해왔다.

이처럼 분단국가인 한국사회에서 통일을 둘러싼 갈등은 보수.수구세력과 진보세력 사이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진보세력 내부에서도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더구나 분단의 극복이 단기간에 이루어질 가능성이 희박한 상황에서 이러한 내부 갈등은 쉽사리 해소되지 않은 채 곳곳에서 민족자주파(혹은 주사파)와 민주생존파(혹은 평등파)의 갈등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올해에도 노동운동의 환경이 더 나아지리라는 전망은 거의 없다.

내수는 물론 수출경기마저 어려워지리라는 전망이 지배적인 가운데 임금인상은 고사하고 기업들이 경영합리화라는 미명아래 구조조정과 노동유연화를 거세게 밀어부칠 위험성도 높다. 고용불안과 함께 노동시장의 양극화가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점도 우려스러울 뿐이다.

여기다 비정규직관련법, 노사관계 로드맵, 복수노조문제나 전임자임금지급문제, 한일자유무역협정을 비롯 각종 FTA 협상 등 제도와 정책과 관련된 미결의 과제들이 큰 충격과 파장이 예고된 채 시한폭탄처럼 가로놓여 있다. 모처럼 의회에 진출한 민주노동당이 다수당의 담합과 횡포를 뛰어넘어 노동자 요구를 관철시킬 여지도 가까운 시일 안에 커질 것 같지는 않다.

두말할 것도 없이 이러한 전망은 노동운동에 대한 압박으로 다가올 것은 자명하다. 그에 대한 대응 또한 노동의 몫일 수밖에 없다. 정부의 태도 역시 노동운동의 자체 역량과 노사간의 힘의 관계로 저울질될 수밖에 없다면 온전히 노동의 할 나름이다.

기업의 울타리를 벗어나, 새 출발을 위하여

지금 가장 현안으로 대두되고 있는 비정규직 문제는 현재의 파견법만으로도 많은 비정규직을 양산했고, 비정규노동의 열악한 임금조건과 대기업과의 극심한 격차가 대기업 노동자들의 잇따른 파업에 대한 사회적 저항의 중요한 빌미가 되어 교섭력의 급격한 저하를 불러오면서 노동자들을 분열시키는데 성공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우리 자녀 둘 중 하나는, 어쩌면 둘 모두 비정규직이 되어야 한다는 심각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 그럼에도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800만이라는 숫자가 무색할 정도로 현재 2% 수준밖에 안되며, 한 사업장에서의 단기고용으로 인해 노동조합을 결성하여 활동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형편이다. 이러한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노사교섭을 통해 단체협약으로 동일가치노동에 대한 동일임금원칙을 확보하기는 지금으로선 너무나 요원한 일이다.

따라서 이런 인식을 노동계 전체가 공유하고, 정책에 초점을 두면서 비정규노동 정책이 현장의 내부 조합원들의 이해와 결합될 수 있는 노동자계급 연대를 시급히 구축해야 한다. 아울러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이 명운을 걸고 투쟁을 전개해야 할 일이다.

이는 유인물 몇 장, 공문을 통한 항의와 시정요구, 그리고 성명서로 해결될 일이 아니며, 사회적 노동 보호기준을 만들기 위한 법률 도입과 단체협약을 위해 민주노동당, 진보적 시민단체의 의제화 노력과 노동조합의 교섭구조를 초기업적(사회적) 단위로 개편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출발점을 이룬다. 그것만이 비정규직 노동자가 노동조합의 직접적인 조직원이 되는 길이고, 노동조합 자신의 진정한 문제로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대기업 정규직은 자본에 의해 압박받는 측면과, 비정규직보다 우대받는 양면성이 있다. 그런데 정부와 재계는 후자만, 노동계는 전자만 강조한다. 두 당사자의 양보 필요성은 자명하다. 예컨대 노조가 임금을 동결하는 대신 대주주와 경영진은 배당금 일정액 기부와 연봉 삭감 등을 통해 그 돈으로 하청업체 비정규직을 위한 훈련기금이나 복지기금을 만들 수 있다. 동시에 정부는 공공 의료와 교육, 공공임대주택 등을 늘려 교육비, 주거비 등 비정규직의 간접임금을 증대시키면 격차는 크게 해소될 것이다.

로빈슨(Robinson, J.)의 지적처럼 아이엠에프 위기 이후 한국사회에서 하나의 주요 담론으로 자리잡은 '고용창출' 혹은 '일자리창출'도 단순히 사회보장적 성격 및 경기안정화 역할로서 취약 계층의 공적 부문으로 흡수뿐만 아니라 혁신형 중소기업, 고급지식부문 등 안정적인 일자리 창출을 위한 ‘일자리 조정’까지 포함하는 큰 틀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노동운동이 지금의 위기와 침체를 벗어나 안팎으로부터 지지와 신뢰 그리고 역사적 정당성을 회복하고, 수세적 입장에서 적극적 공세의 위치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노조원의 이기적 관점을 탈피하고 노동자계급 전체의 공통요구를 사회적 의제로 담아내는 대중적 관점을 확고히 정립해야 할 것이다.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을 비롯한 노동시장의 양극화 해소방안 등이 그 예이거니와, 자신의 적극적인 대안과 양보를 포함한 연대임금정책과 사회개혁 요구는 임단투의 중요한 전략으로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더불어 다양한 경로로 노동 의제들을 쟁점화하고 해결을 촉진할 수 있는 장과 기회를 마련하지 않으면 안된다. 특히 ‘사회적 교섭’은 노동운동의 주요영역인 정책참가의 한 방편이며 노동의 피폐화를 막기 위한 제도.정책 개선투쟁이란 전술적 수단으로 활용할 여지가 있다면 무작정 포섭을 우려한 기피의 대상으로만 치부해서도 곤란하지 않을까.

더욱이 사회공동화 문제, 빈곤문제, 신자유주의 문제 같은 노사나 노정만으로 해소하기 힘든 이런 부분과 관련해서는 노사정 대화를 포함 중층적으로 여러 분야와 대화를 활성화해서 사회적으로 공론화시키고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것도 유효한 방편으로 인정해야 할 것이다.

문제는 어떤 원칙과 전략을 가지고 사회적 교섭 반대파들의 우려와 불신을 극복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이런 노력과 대책없이 사회적 요구에만 매몰되다가는 98년 외환위기 때 정리해고법, 파견법 도입과 같이 노동계가 경제 살리기 동참이란 명분하에 결단한 희생적 양보가 낳은 극심한 양극화 폐혜를 또다시 되풀이할 것이라는 반대파의 주장을 넘어설 수 없을 것이다.

지금처럼 정부와 재계의 노동정책 기조가 한통속이 되어 유연화, 그것도 수량적 유연화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을 갈수록 노골화하고 있는 시점에서는 설사 사회적 협약기구가 만들어지더라도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한다.

따라서 노동.진보진영은 기능적 유연성을 높이고 불평등을 해소하겠다는 아젠다가 분명히 설정되도록 사회적 연대의 틀을 통해 정부와 자본을 압박하면서 참여해야 제기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함께 현 노동의 위기 극복를 위해서는 중심세력인 ‘노동조합 자체의 혁신’을 적극적으로 추진해가야 한다. 그동안 제기만 되고 당면 투쟁에 매몰돼 지체되고 있는 전면적인 조직진단과 조직운영의 개혁, 산별노조의 건설, 이념 및 기조의 정립 등 많은 혁신과제들을 충실히 전개해야만 각급 조직에 나타나고 있는 동맥경화증, 피로증후군에 의한 현장조직력의 현저한 저하와 패퇴를 극복하고 다시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다.

과연 한국의 노동운동이 과거 어느 시기에도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현실과 환경 속에서 기업의 울타리에 매몰되는 경제주의적 관점에서 벗어나 울타리 밖의 사회문제 해결과 사회개혁의 주체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지, 21세기 새로운 노동운동의 전범을 보여주고 세계 노동운동의 방향 설정에도 공헌할 수 있을 지는 온전히 노동운동진영의 몫으로 남겨진 과제이다.

민주노동당의 국회입성과 한계 그리고 자리매김

2004년 총선에서 10석의 원내진입을 통해 제 3당으로 각광받던 민주노동당은 7개월이 지난 지금 영광의 빛은 희매해지고, 한계와 과제가 뚜렷하게 노정되고 있다.

10석의 민주노동당이 원내에서 자신들의 의제를 가지고 80명의 반대표를 조직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민주노동당의 상한선이자 과반수가 안되기 때문에 관철이 안된다는 점에서 절대적 한계이기도 했다.

소수정당으로서 민주노동당이 원내정치를 얼마만큼 효과적으로 수행하느냐는 결국 국정감사 과정 등을 통해 정책을 가지고 다른 당보다 국민들에게 상당한 호평을 받아내는 것과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독점하고 있는 협상 테이블과 원내에서의 각종 불이익 및 배제적 소외를 딛고 어떻게 운신의 폭을 넓히고 국회내 연단을 확보해서 자기 목소리를 낼 것인가가 핵심일 것이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에게 방법이 있다면 현실적으로 국회 밖에서 노동자, 서민들이나 시민사회단체들이 큰 목소리로 쟁점화한 사항을 원내에서 그들의 입장을 적극 대변하면서 민주노동당의 입지를 넓히는 ‘거대한 소수’가 되는 길 밖에 없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동시에 민주노동당이 보다 더 깊이 민중속으로 들어가 서민대중의 삶의 질 개선과 더 넓게 여성, 환경, 인권과 같은 시민사회적 가치를 진보적 가치로 통합해 내고, 시민사회단체와 네트워크 강화 및 원내외 조직 결합력을 높이면서 보다 실효성 있고 구체적인 서민 정책들을 생산해내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명제를 분명히 해준 것이기도 하다.

더불어 노 정권의 ‘한나라당 중시, 민주노동당 무력화’라는 기회주의적 노선을 정확히 파악하고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에 대한 압박과 공조수위를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며, 어설픈 정세파악으로 민주노동당의 얼굴을 열-한 공조속에 파묻어 버리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는 경종이기도 하다.

오히려 민주노동당이 제 정당과 관계에서 그나마 할 수 있는 과제란 열린우리당의 기만적인 태도와 반민생정책의 실체를 대대적으로 폭로해 내면서 경제사회적인 면에서 기득권 중심의 보수정당임을 만천하에 드러내고, 민주노동당이 제시한 민생법안과 대책들을 제대로 알려내는 것으로 제약되고 있는 실정이다.

무엇보다 지난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국민들에게 약속했던 부유세 도입을 통한 무상 의료, 무상 교육의 확대, 복지 확대 문제를 더욱 구체화 하는데 주력해야 할것이다.

또한 기업의 주체인 노동자들이 소유와 경영에 참여하도록 하는 것, 그리고 병원, 학교 등 공공성이 강한 영역에서의 사회적 소유를 확대하기 위해서 민주적 통제를 확립하고, 경제사회적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대안적 사회 체제의 비전을 국민들에게 제시해야 한다.

아울러 민주노동당 정책의 도덕적 타당성을 넘어서 부유세와 같은 분배 강화 정책을 도입하더라도 우리 경제에 마이너스 효과가 아닌 플러스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을 국민들에게 설득할 수 있는 심층적 연구와 정책의 과학성을 높이는 노력을 병행해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민주노동당이 어떤 입장을 내면 열린우리당과 가깝냐, 한나라당과 가깝냐를 먼저 따지고, 둘다 안 가까우면 양비론으로 몰아가는 보수 양당 중심의 현 정치구도를 실제 국민중 누구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냐는 정책과 노선의 관점으로 돌려 놓고, 민주노동당이 서민의 자리에서 일관된 목소리를 내면서 열린우리당+한나라당 대 민주노동당의 대립으로 규정되도록 힘을 쏟아야 할것이다.

이것이 성공적일 때 ‘여론에 민감한 기회주의 정당’ 열린우리당의 우경화에 제동을 걸고, 보다 개혁적 노선으로 견인하는 개혁.진보의 선순환 효과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최근 당내에 고조되고 있는 NL, PD로 대표되는 뿌리깊은 논쟁과 인맥적 대립과 갈등을 여하이 발전적으로 재정립하느냐도 민주노동당의 미래를 좌우하는 문제이다.

비록 이 논쟁이 다른 당처럼 잡탕에 가까운 스펙트럼에서 동시다발로 발산하는 권력쟁투적인 성격보다 어떤 노선과 방향이 민주노동당의 정체성과 서민대중의 요구에 부합하고, 본질적인 것이냐 하는 차원에서 진일보한 정책적 외양을 갖추고는 있으나 상호간에 노선과 연결된 특정인맥 배제적인 갈등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점에서 마냥 긍정적이라고 볼 수도 없다.

결국 차이가 적당히 봉합되기 보다는 문제의식의 차이를 정확하게 드러내고 당원들의 치열하되 질서있는 토론과정을 통해 명실상부하게 민주노동당의 실천적 노선으로 형성된 정파들로 재편되도록 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상호의 차이를 존중하고, 시대적 요구에 맞게 주도권이 민주적 절차를 통해 신사적으로 교환되는 문화가 정착되도록 하는 길 밖에 없어 보인다.

그렇지 않고 근본적인 인식의 차이가 통합보다는 끊임없는 대립과 갈등의 연장으로 소모적인 논쟁이 지속된다면 차라리 신사적인 분화를 통해 각자 행복해지는 진로를 가면서 최종적으로 서민대중의 판단에 맡기는 게 더 생산적일 수 있다.

서민대중과 당원들조차 꺼려하는 ‘민주노(No)동당’

‘부자에게 세금을 서민에게 복지를’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민주노동당은 당연히 부자는 꺼려하되 서민에게는 환영받는 정당이어야 한다. 그러나 각종 여론조사 결과에서 나타난 실상은 이와 다르다.

여론조사때마다 민주노동당에게는 뼈아픈 지지계층의 공통점이 발견된다. 민주노동당 지지층은 한결같이 20~30대와 고학력, 고소득층에게는 그런대로 지지가 높은데 반해, 나이가 많을수록, 학력이 낮을수록, 소득 수준이 낮을수록 낮다는 점이다.

거기에다 지지이유도 당의 정치노선이나 이념보다는 ‘다른 기성정당들이 싫어서’가 많고, 상황이 바뀌면 철회할 수도 있다는 사람들이 다수여서 지지층의 강도도 약하다. 이는 민주노동당에 샴페인과 축배는 곧바로 위기로 연결될 수 있다는 시그널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민주노동당 주변에서는 ‘당장 힘 있는 세력이 아니이서’, ‘저소득층의 사회 안정 희구 성향 때문’ , ‘지역정서에 좌우되는 정치풍토’, ‘고학력 화이트칼라층과 조직노동자와 달리 상대적으로 진보정당의 정책과 지향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부족한데서 오는 낯설음’ 등이 원인이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의 문제는 앞서 언급했듯이 보다 본질적인 데서부터 출발한다. 바로 정파연합당이라는 정체성에서 보듯이 당내 최대 계파를 형성하며 경쟁해온 민족자주계열과 민주생존계열(평등파)과의 노선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당의 대응전략과 방향의 차이가 늘상 갈등의 뿌리를 이루어 왔다는 사실이며, 진보정당의 원내진출로 높아진 위상만큼 갈등 수위도 고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로 인해 민주노동당은 정파연합당의 장점보단 비효율, 비생산적인 곳에 동력의 낭비를 초래하고 있는 경향이 노출빈도가 높아지면서 당원들의 자심감 상실로 이어지고 또다른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어 낼 가능성이 많다는 점이다.

또한 대기업 조직 노동자와 운동권 지식인이 선도적으로 만들어온 이력에서 비롯된 민주노동당의 경직된 사업 방식과 조직상태, 우월적 선민의식 등이 사회적 약자들과 만날 수 있는 채널을 스스로 막고 있는 것도 한 원인이라는 진단이다.

비정규직으로, 실직자로, 신용불량자로 내몰린 사람들의 생활은 너무나 불안정하기 때문에 스스로 나서서 행동할 수 있는 여력이 없다. 따라서 불만은 높지만 참여수준은 낮다. 그들의 생계와 직업교육, 취업 알선 등에 책임 있는 한 축으로서의 역할을 강화하고, 그들의 불안을 안정으로 바꿀 수 있는 다양한 사업과 채널의 확보가 시급하다는 것이다.

비정규직, 실직자, 신용불량자가 정부정책의 희생자들이 아닌 ‘열패자’, ‘게으른 자’ ‘배짱부리는 파렴치범’으로 몰리도록 방치하는 이상 민주노동당의 주장은 늘상 ‘말은 고맙지만’, ‘되면 좋겠지만’을 넘어설 수 없다는 지적도 많다.

반대, 데모만 하는 정당을 넘어서 서민대중의 희망, 대안정당으로

무언가에 반대하고 저항하기란 쉬운 일이다. 그러나 반대라는 깃발 하에서는 다양한 사람들을 모아낼 수 있다 하더라도 통일된 힘에 기초하여 무언가를 새로이 건설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무언가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대안 없이는 저항 자체도 갈수록 약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양한 목소리를 한데 모아서 통일된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연구와 논쟁 무엇보다 서민대중의 삶에 대한 천착이 필요할 것이다. 때론 추상적이지만 진보적이고, 대안적인 정책과 사회 발전상을 먼저 제시하고 그에 따른 다양한 수단들은 창조적으로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 많은 논자들이 분배와 성장의 선순환, 즉 ‘평등주의적 성장’의 가능성에 매달리고 있는데 한국의 경우에도 대안 모색의 어려움은 예외가 아니다. 현재가 문제라면 단순한 반대를 넘어서 과연 어떤 다른 길이 가능할 것인가, 그리고 그것은 실행가능한가, 우리의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생산적인 토론이 진정으로 요구되는 시점이다.

“진보정당이 어떻게 서민대중과 함께 호흡해 갈 것인가?”
이 질문에 딱 부러지는 정답은 없으며 결국 ‘가난한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해결해 주는 것’ 밖에는 없을 것이다.

이를 위해 서민 생활의 발등에 떨어진 불을 해결하는 것에 민주노동당 지역조직의 활동 방식을 맞춰가야 할 것이다. 슬로건 중심의 운동보단 신용구제 상담, 임대차 문제 해결,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인 빈곤층 살피기 등 서민들의 피부에 와닿은 노력을 통해 신뢰를 쌓을 때 보다 많은 서민대중이 민주노동당을 지지하게 될 것이다.

서민대중의 ‘화풀이’를 민주노동당이 제도정치권 내에서 풀어낼 공간을 마련해 주고 가난한 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줄 수 있는 대변자를 자처할 때 그들의 속시원한 분출이 결국은 민주노동당의 지지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민주노동당이 맨날 데모만 하는 정당을 넘어 ‘가난한 자들을 대변하며 싸우는 정당’이 되기 위해선 부단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아울러 진보적 담론을 서민대중에게 전달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예컨데 양극화 해소의 구체적인 방법과 전망과 관련하여 ‘수치로’ 뒷받침되는 대책이 있어야 한다. 관료들의 보고에는 그것이 설령 성장 위주로 가는 패러다임이라 할지라도 그안에는 숫자가 있다. 그러나 진보진영의 주장은 흥분된 목소리만 있지 숫자가 없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현실감과 설득력이 떨어지는 건 불문가지다.

또한 살벌한 용어와 골방에 숨겨진 이념서적에나 등장하는 생경한 단어들로 점철된, ‘칼로 긁어도 글자 하나 안 벗겨질 것 같은’ 그들만의 딱딱한 언어도 내용적 원칙과 주조는 그대로 가져가되 최대한 서민들의 귀에 쏙쏙 박히는 언어로 담금질해야 한다.

분배와 복지 통한 시민사회 연대의 제도화

오늘날 시민사회를 묶어내는 데 있어서 소득 불평등과 복지의 부재로 인한 서민대중의 삶의 질 악화가 역설적이게도 성장을 위한 개발 논리를 강화시켜 정권과 자본의 환경파괴적 개발에 동조하도록 만든다는 사실을 함께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정부가 경기활성화를 위한 건설경기 부양을 이야기 할 때마다 주요한 이론적 배경이 되어 왔다는 점에서 극명하게 드러난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양극화 해소를 위해 분배와 복지의 강화를 요구하는 ‘민중운동’과 무분별한 개발 중단과 생태환경 보호를 요구하는 ‘환경운동’이 연대해야 할 중요한 단초가 마련된 것이다.

양극화와 더불어 ‘희망없는 빈곤’이 만연되고, 극단적 선택을 강요당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시민들의 연대의식도 점차 성장하고 있다. 따라서 일자리 이동을 돕는 재교육과 사회적 안전망 구축, 평등한 교육, 의료기회 보장 등과 같은 적극적인 재분배와 복지정책을 중심으로 시민사회의 연대가 제도화되어야 모두가 지속적인 발전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관건은 깨어있는 노동.진보진영의 의제설정력 강화

노동.진보진영의 최대 과제이자 난제는 다름이 아닌 의제설정력의 빈약과 차별이다.

대통령과 여당인 열린우리당, 한나라당, 그리고 거대 언론으로 이어지는 막강한 의제설정력에 비해 초라하기까지 한 노동.진보진영의 의제설정력을 여하히 확보하고 현안에 대한 진보적 대안을 이슈화 해내느냐는 진보진영의 성패와 직결되는 핵심과제가 아닐 수 없다.

여기엔 ‘거대한 소수’를 조직하는 방법외엔 달리 묘수가 없다. 진보적인 정당, 시민사회단체, 지식인 그룹, 언론매체 그리고 진보적 네티즌과 인터넷 정치사이트가 상호 유기적이고 신속하게 진보적 아젠다를 이슈화하는 대응능력을 꾸준히 향상시키고, 공유와 연대의 폭을 최대한 넓혀가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 밖에 없다. 지금처럼 파편화돼서 ‘각자 최선의 길을 찾아서 가는’ 방식만 고집해선 희망이 없다.

특히 인터넷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진보적 네티즌과 정치사이트의 연대와 신속한 대응능력 제고는 진보적 이슈선점에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다원적인 사회와 제대로 된 개혁을 위한 언론의 소임•구실 재정립도 시급한 과제다. 언론이 최근 들어 권력 감시견보다 기득권 수호견 노릇을 하는 것도 사회개혁 차원에서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

이처럼 1994년 11월 세계화 선언 이후 겪어왔던 지난한 서민대중의 삶의 조건에 대한 앞으로의 전망은 노동, 진보진영의 힘이 하나의 강력한 정치권력으로서 얼마나 빠르게 제도화되느냐에 온전히 달려있다고 봐야 할것이다.

시장일방향적인 흐름이 사회전체에 야기한 균열적 결과는 공동체적 운명에 대한 관심의 증대에서 그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고, 그 현실정치적 바탕은 결국 노동, 진보진영의 경제사회적 의제에 대한 총체적 대응능력에서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점에서 최근 민주노동당 지지자와 네티즌 일각에서 비정규직 문제등 서민대중의 삶의 질 개선을 위한 진보적 대중노선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부쩍 커지면서 조직적으로 전개되는 경향성을 보이고 있는 것은 한국의 진보적 사회발전에 소중한 자원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이 당 지도부나 다른 의견그룹에 대한 비판을 넘어서 비정규직, 신용불량자, 실직자, 신빈곤층 등 우리 사회 어려운, 그러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소외계층에 대한 문제에 천착, 한 묶음으로 특화해서 이슈화와 대안제시를 위한 노력을 집중하고, 이를 통해 시민사회와 지식인 그룹을 엮어내는 ‘진보적 민생연대’를 구축한다면 어떨까.

이렇게 해서 제3의 독립적인 정치그룹으로 발전해 간다면 한국의 개혁.진보진영은 본격적으로 ‘서민대중과 함께 하방(下邦)에서 호흡해가는’ 진보세력이 전면에 나서는 중요한 정치적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당장은 부족하고 여려운 점도 있겠지만 참을 수 있는 ‘희망있는 배고픔’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이들에 대한 진보적 언론매체의 큰 관심과 지원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것이 진보가 서민대중에게 무능하다는 낙인을 피하고 보조를 맞춰갈 수 있는 길이며, 20대 청년세대와도 연결이 되어 이들의 ‘진보우파’라는 기형적 흐름을 정상적으로 되돌리고, 작금의 노동.진보진영의 위기를 성공적으로 헤쳐나갈 수 있는 활로가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물은 누가 대신 파주지 않는다. 목마르고 급한 사람들이 우선적으로 팔을 걷어 부칠 때이다. / 편집위원
 
* 필자는 '참정연' 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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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04 [19:11]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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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엥란트

명품 진보. 좌파가 너무도 절실한 사회
짝퉁 판촉경쟁에 외면받는 진품, 서민대중 사랑받는 명품으로 거듭나야
 
김영국
오늘날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이 추구하는 개혁의 실체를 일컬어 ‘양두구육(羊頭狗肉)’이라는 사자성어만큼 적절한 표현도 드물것이다.
정치는 기회주의적 개혁, 경제와 외교는 성장위주의 보수.수구적이며 대미의존적인 노무현 정권의 좌충우돌식 ‘실용주의’의 폐혜는 어제 오늘 지적된 사항이 아니다.

노무현 정부와 여당인 열린우리당의 기만적이고 기회주의적인 개혁의 표상들은 참여정부 출범이후 각종 개혁정책의 후퇴와 반서민적 변질 그리고 어제 주미대사로 내정된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의 인사까지 실로 헤아릴 수 없을 지경이며 그 결과는 고스란히 서민대중의 외면과 레임덕에 가까운 지지율 추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언젠가 민주노동당의 노회한(?) 한 의원은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노무현 정권의 각종 정책을 둘러싸고 벌인 볼썽사나운 좌파, 진보 입씨름을 보면서 “한나라당이 ‘좌파 짝퉁’인 열린우리당을 ‘좌파 명품’이라고 하면 허위사실유포죄에 해당하고, 여당도 짝퉁인데 명품인 척하면 사기죄에 해당한다. 정작 우리 명품(민주노동당)은 조용히 있다.”고 일침을 가한 적이 있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정체성 부분에 관한한 가히 촌철살당(?)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민주노동당이 진보, 좌파의 ‘진품’이라는 데는 그런대로 동의할 수 있겠으나 과연 ‘명품인가, 명품으로 대접받고 있는 가’에 대해서는 선뜻 납득이 가지 않는다.

그렇다고 현재 민주노동당 보다 지지를 많이 받고 있는 정당들이 명품이란 이야기는 아니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진품이 아닌 짝퉁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지지는 명품이 드물고 비쌀 때 어쩔수 없이 짝퉁을 주로 찾게되는 소비구조에 기인한 것이다.

어쩌면 민주노동당을 비롯 진보진영 모두에게 부족하고, 시급히 달성해야할 과제중의 과제가 바로 ‘진보가 명품 되기’ 아닐까.

이미 대한민국의 진정한 개혁과 진보적 사회발전이라는 시대적 과업에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이 기회주의적 노선으로 보수화 되면서 일탈해 가고 있다면 그 짐을 고스란히 민주노동당과 노동계, 그리고 진보적 시민사회단체가 짊어지고 갈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진보가 하루속히 명품이 되어야 할 이유는 그만큼 절실한 과제가 되어 가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간단치 않다.

민주노동당은 대기업, 공공부문 노동자 중심주의에 따른 중소기업, 영세기업, 비정규직, 실직자 등 광범위한 소외계층의 주변화와 이로 인한 계급적 협애함과 노동자 계층간 양극화, 진보적 시민사회단체와의 연대전선 부족, 투쟁과 파업 등으로 점철된 단편적 전투방식의 식상함과 이로 인한 서민대중과의 괴리와 고립 등으로 두 거대정당에 대한 국민들의 원성을 진보진영으로 물꼬를 트는데 많은 한계를 노정하고 있다.

여기에 정부와 여,야당의 민주노동당 ‘무시’는 도를 넘어 진보정당이라는 사자새끼를 키워줄 수 없다는 듯 의도적으로 전개되면서 전체 국민의 15%에 달하는 진보적 서민대중들의 목소리까지 제껴지고 있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민주노동당은 자신의 위치를 제대로 정립하지 못하고 열린우리당의 우왕좌왕식 개혁 이벤트에 동원되는 ‘5분 대기조’ 역할에 머무르고 있다.

노동자 농민 빈민등 절대다수의 소외계층을 대변하겠다는 민주노동당이 이들의 본부중대나 최소한 정찰조가 되려는 노력보단 열린우리당의 보조정당에 그치고 있는 모습에 지지자들이 답답해 하는 것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열린우리당의 대체정당이 되려 하지 않고 보완정당에 그치는 한 민주노동당에 대한 국민적 지지는 열린우리당과 함께 개혁.진보라는 패키지로 연동하여 움직이는 수준을 벗어나기 힘들어 보인다.

그렇다면 지금의 지지부진한 상황을 타계하고 어떻게 하면 서민대중으로부터 진보가 명품으로 대접받을 수 있을까.

물론 민주노동당이 처한 현실에 비추어 국민들의 기대수준은 매우 중압적이다. 맛뵈기로 10석 안겨주고 요구수준은 100석에 가까운 일을 해내라고 하니 가랭이가 찢어질 노릇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기대가 존재하는 만큼 희망적인 것은 없다’는 신념으로 극복해갈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결국 해답 또한 ‘서민대중의 삶’ 그 자체에서 찾아야 한다는 건 불문가지가 아닐 수 없다.

서민대중의 경제사회적 삶의 문제보다 본질적인 것은 없다

'728만원 對 53만원'로 표현되는 상위계층과 하위계층의 월평균 소득격차, 전국 10가구중 3가구꼴로 적자, 가구당 빛 3,000만원꼴 사상최대, 기초생활마저 보장받지 못하고 자살 등 극단적 선택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는 新빈곤층만 300만명, 정규직 임금의 절반수준에 각종 혜택 배제대상인 비정규직 800만명, 80만 실업자에 청년 실질실업률10%대 육박, 하루하루 생존의 위협에 시달리는 신용불량자 380만…

발표될때마다 ‘사상 최고치’라는 꼬리표가 붙어 나오는 부정적인 경제지표들, 열심히 일해도 잘살 수 없다는 근로자들, 갈수록 위기를 넘어 절망을 체감하고 있는 국민들...

2004년 마감을 앞둔 한국사회의 서민경제가 그려낸 비극적인 자화상이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이처럼 절대다수의 서민대중이 겪고 있는 경제사회적인 삶의 황폐화보다 더 본질적이고 현실적인 실제문제(real issue)는 없다.

아마 따로 있다고 믿는 사람이 존재한다면 그건 노무현 정부와 60년대식 간첩사건 레크드판을 틀어놓고 활극을 벌이고 있는 대한민국 국회, 그리고 특정 당파성에 휘둘리며 ‘넷심’을 조종하려드는 일부 인터넷 정치사이트가 있을 것이다.

따라서 진보진영이 명품대접 받기 위한 정책역량의 핵심은 서민대중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비정규직과 중소, 영세기업, 자영업 노동자, 실직자와 신용불량자 등 정부는 물론 여.야 정당에서 조차 제대로 보호해주지도, 대변해주지도 않는 이들을 ‘생존의 문제’로 한데 묶어내는 거대한 ‘생명벨트’를 시급히 구축하는데 기울여야 할것이다.

경제문제에 관한한 한나라당과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성장우선주의와 친재벌적이라는 정체성에서 95% 신뢰수준에 오차범위 플러스마이너스 2%쯤에 불과하다.

노 대통령은 해외에 나가서는 사회 양극화 해소 의지와 분배적 관점의 유럽식 모델에 근거한 소외계층 지원 의지를 소리 높여 외치고 다니면서 마치 한국사회가 사민주의 나라가 건설될 것처럼 홍보하고 다녔다.

그러나 국내에선 어떤가. 실제 정책으로 추진되는 입법과정에서 비정규직 양산과 차별을 심화시킬 ‘비정규직관련법’, 전무후무한 재벌특혜법이라는 ‘기업도시특별법’, 소외계층을 수혜대상에서 간단히 제외시켜버린 ‘퇴직연금법’, 여.야 거대 정당에게 400억이 넘는 면세혜택을 가져다주는 ‘조세특례제한법’ 등을 옹골차게 추진하면서 이제는 대통령이란 자리마저 해외용과 국내용으로 분리하는 희안한 분권(?)의 시대를 개척하고 있다.

그 잘난 시스템주의는 개혁 대통령과 보수.수구적 관료들사이에서 환상의 엇박자 놀이판이 된 지 오래다.

시스템은 대통령과 정권의 철학이 보다 민주적이고 세련되게 투영되고, 피드백하기 위한 보조수단이지 그게 개혁의 전부가 아님에도 정권의 철학과 노선에 정반대의 조작을 해대는 장관들을 뒤죽박죽 배치해 놓고서 성과가 없자 이제는 뜬금없이 개혁후퇴와 혼선을 변명하기 위한 기제로 활용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수구세력으로부터 좌파란 영예(?)까지 부여 받으며 입만 열면 개혁을 말하는 열린우리당은 또 어떤가.

각종 개혁입법을 누더기로 만드는 데는 신공을 발휘하지만 정작 힘쓰는 데 가서는 그런 걸레하나 빠는 데도 공룡같은 자신들의 몸집조차 가누지 못하고 쩔쩔매고 있다.

여당의 논객이라는 모 의원의 뒤늦은 실토대로 권력만을 위해 뭉친 잡탕정당에다 기회주의적 속성까지 겹쳐, 탄핵사태를 이겨냈던 총선전 47석만도 못한 152석이 되어버렸다.

한나라당이 다수당이어서 개혁을 제대로 추진할 수 없으니 과반수 만들어 달라고 아우성치던 열린우리당의 호소에 이끌렸던 국민들은 대체 뭘 믿고 저런 정당의 감언이설에 속았는지 후회가 밀려오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의 반서민적인 경제정책에 대한 집중적인 공세와 부각으로 서민대중들이 그들의 삶의 문제에 관한 실체적 진실에 제대로 눈을 뜨게 하는 것 오롯이 진보진영의 몫으로 넘어오고 있다.

국민 대다수, 경제영역에선 프롤레타리아 혁명군 수준

경제문제에 관한한 국민 대다수는 진보, 좌파적이다. 최근 어떤 여론조사에서도 경제 부문에 관한 설문에는 60%가 넘는 국민들이 진보적 방향에 찬성을 보내고 있다.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집 또는 땅을 많이 가진 사람이 높은 세금을 내도록 하는 종합부동산세, 부동산 가격 하향화 정책, 재벌개혁, 공정거래법 개정 등 소위 수구언론이 경제 망치는 좌파정책이라며 연일 십자포화를 퍼부어 대는 정책에 대한 국민적 찬성율은 압도적으로 높아 이 같은 수구언론의 굿판에 서민대중은 아직 눈길을 돌리지 않고 있다.

또한 모 정치학회의 연구에는 경제문제에 관한한 일반국민이 정치인보다 더 진보적이라는 보고를 하기도 했다.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총선 승리 이래 “경제와 민생을 챙기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거듭 말해왔다. 그러나 경제관료 중심으로 기존 정책 패러다임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면서 경기를 관리하는 수준에 머물렀으며, 이렇다 할 새로운 처방이 제시된 바 없었다. 따라서 정부•여당이 아무리 억울함을 호소하더라도 국민들이 볼 때 “경제를 챙긴다는 것은 말뿐이며, 실제로는 정치 공방만 벌인 것으로” 인식될 여지가 있었던 셈이다.

누가 봐도 지금은 “경제에 대한 비관적 전망이 높아지면서 정부•여당 지지도가 하락하고, 이에 따라 정부의 정책 추진에 대한 저항감이 커지며 이는 다시 국정 수행을 어렵게 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상황”이라는 한 연구소의 보고는 그래서 더욱 의미심장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또한 민주노동당 등 진보진영에게도 고스란히 적용되는 분석이다.

최근 대한상공회의소가 근로자들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는 한국식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어떻게 불신을 받고 있는 지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자본주의가 가장 우월한 경제체제인가 대해 60%의 근로자들이 ‘노(No)’라고 말하며, 70%에 가까운 근로자들은 정부가 ‘국민소득이 높아지는 것, 선진국이 되는 것’ 등 외형적 경제성장보다 ‘빈부격차 해소, 완전한 복지제도 구축, 완전고용실현’ 등 분배를 중시하는 정책을 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다소 생뚱맞긴 하지만 수구세력의 좌.우를 가르는 기준에 따르면 위와 같은 서민대중들의 사회경제적 정서는 가히 ‘프롤레타리아 혁명군’ 수준이 되어 있다.

그만큼 서민대중의 삶이 피폐할 대로 황폐화 되었기에 이들의 삶의 질 개선에 역행하는 소리는 그 어떤 이념도, 막강한 수구언론의 여론조작도 쉽게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이는 다른말로 표현하면 지금이야말로 서민대중의 경제적 삶과 관련 진보, 좌파적 대안정책을 가지고 진보진영이 대중들에게 지평을 넓힐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국내 진보 , 좌파는 이 부분에 관한한 왠지 자신감이 부족한 것 같다. 또한 역량의 부족까지 드러내고 있어 이 환경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정치적 영역에서의 익숙한 투쟁은 매우 민활하나 경제적 부문에서는 이슈선점과 아젠다 설정에 둔감하다.

그런 점에서 최근 진보진영의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관심과 이슈화 시도는 하나의 시작일 뿐이다.

향후 진보진영의 집중적인 이슈제기 영역은 마땅히 사회경제적 개혁이어야 하며 피폐해진 서민대중의 삶의 질 개선을 위한 진보, 좌파적 대안을 담아 보수.수구진영과 치열한 싸움도 벌여나가야 할 것이다.

이 영역이야 말로 진보, 좌파의 가치를 드높여줄 최대의 진지이다. 미래 한국사회를 책임지는 주체가 되고자 하는 정치세력이라면 사회경제적인 영역의 광활한 땅을 더 이상 만주벌판 다루듯 해서는 안된다.


그러기엔 생존의 위협속에서 ‘전환의 계곡’을 건너고 있는 서민대중의 황폐함은 너무나 절실한 과제가 되었다. 대한민국 국민의 절대다수는 어쩌면 ‘명품다운’ 진보, 좌파적 정책과 실천적 노력을 학수고대하고 있는 셈이다.

수구 세력의 ‘성장만이 살길’이라는 감언이설에 시장이 고착화 되기 전에 시급히 좌판을 펼쳐야할 이유이기도 하다.

투쟁방식의 다변화, 서민의 언어로 빚어내는 장인정신 필요

진보진영은 성장우선주의에 대한 대안적 경제정책을 시급히 개발해내는 것과 동시에 국민들의 사고의 유연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대중적 홍보로 다면적이고, 다층적인 운동을 별여가야 한다.

보수진영의 뉴라이트 운동을 단지 “댁들은 80년대 뭐했느냐, 그게 무슨 자랑이냐”는 식으로 역성을 내고 폄하하는 데 그쳐서는 진보진영의 위기의식의 발로로 비춰질 뿐이다.

그들이 주장하는 핵심적인 내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비록 이들이 본질은 변하지 않은 채 보수,수구진영의 정권탈환을 위한 수구 탈색 리모델링에 불과한 운동이라는 지적이 옳다 하여도, 그 이슈의 중심에 참여정부와 개혁.진보진영이 좌파의 구습에 얽메여 경제를 망치고, 서민대중의 삶을 방치하고 있다는 레토릭은 생존의 위기에 하루하루 숨을 헐떡이고 있는 서민대중의 뇌리에 강력한 잔영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800만에 육박하는 비정규직, 380만 신용불량자, 80만 실업자, 500만 자영업자들이 전국적 노조형태의 강력한 조직을 구축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강력한 조직으로 결성된 힘이 아니면 거들떠도 안보는 한국정치와 언론환경에서 이들이 자력으로 대정부, 대언론 싸움이 가능한 단계로 끌어 올려놓는 것이 시급하다.

일부 소수의 귀족화 되어가는 계층을 제외한 대다수 서민대중이 신 하류층화 되어 가는 지금이야말로 사회적 열패자란 부담감을 떨쳐내고 이들의 조직력을 업그레드할 수 있는 최적기가 아닐 수 없다.

필요하다면 정규직의 비정규직을 위한 희생도 감내할 수 있는 접근 방식은 대중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될 수도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무엇보다 진보가 서민대중의 삶의 문제에 결코 소홀하지도 무능하지도 않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을 때에 비로소 명품대접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서민대중의 삶과 관련된 진보진영의 이슈화 방식이 진보진영의 전매특허인 ‘투쟁 일변도’이어서는 곤란하다.

정책의 원칙과 방향 그리고 내용은 변함이 없되 이를 서민대중에 전달하는 언어는 철저히 ‘서민적’이어야 한다.


오늘날 비정규직 차별철폐를 비롯 빈부격차해소 등 서민대중의 절실한 문제를 끄집어내 소리 높여 외치고 있는 세력은 민주노동당 등 진보진영밖에 없음에도 60%가 넘는 지지를 받아야할 세력이 고작 10%대에 머무르고 있는 데에는 진보진영이 서민대중에게 ‘말은 고마운데 우리편이 아닌 것 같다’란 인식이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기저에는 진보진영의 트레이드마크가 되다시피한 투쟁일변도의 단순한 대중노선이 ‘가까이 하기엔 너무먼 당신들’로 여겨지기 때문은 아닐까.

이러한 단순한 대중노선 때문에 서민대중이 한국사회에서 제대로된 진보정권 하나 세울려면 만사 제껴놓고 울긋불긋한 깃발들고 만날 투쟁판에서 살아야 할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투쟁의 가치, 불가피성을 폄하하거나 왜곡하고자 하는 말이 아니다. 그러나 서민대중속에 진보의 가치와 의미를 제대로 전파하고 스며들게 하기 위해서는 보다 더 서민대중의 피부에 와닿는 언어와 방식으로 변환해서 그들과 함께 호흡하려는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이다.

나 자신을 위한 생존투쟁이어야 함에도 저들만의 싸움으로 왜소화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은 진보진영에 필수적으로 요청되는 투쟁방식의 변화다.

서민대중이 사회경제적 문제의 본질과 심각성 그리고 진보적 대안의 적절성을 인식하고 진보진영과 함께 발맞춰 갈수 있는 창조적이고 긍적인인 방향의 운동방식은 어쩌면 강고한 보수, 수구세력을 격파하는 최대의 전략일 수도 있다.

또한 그러한 정치적 기술력은 진보를 더욱 빛내주고 명품의 반열에 올려놓는 첩경이 아닐 수 없다.

오늘날 진보진영의 집회, 시위로 점철되는 길거리 투쟁방식은 서민대중에게 진보진영의 주장이나 가치를 전달하는 유효적절한 방편이기 보다는 단지 ‘투쟁’이라는 행위만 기억되는 의식에 불과한 경우가 더 많다.

비록 짝퉁으로 판명나고, 되레 자신이 빚어낸 작품의 소비자들로부터 공격까지 받는 일이 벌어지긴 했지만,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았던 한 변호사 출신 정치인을 안티조선이라는 핵심을 꿰뚫은 시대정신과 결부시켜 대선후보라는 상품으로 까지 빚어낸 강준만의 집념과 스킬은 그래서 과소평가할 일만은 아니다.

어쩌면 진보진영에 턱없이 부족한 명품 ‘진보 이데올로그’ 한 명이 수천명의 길거리 전사보다 더 큰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서민대중의 경제사회적 삶의 문제를 진보진영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서민대중의 귀에 쏙쏙 박히는 서민의 언어로 전파하는 집념의 장인 논객이나 이데올로그가 양산되면 될수록 지금의 침체를 벗어나 또다른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진보정당의 정책에 붙여지는 명칭의 전투성부터 제거하고 누구나 부담없이 공감할 수 있는 서민의 언어로 바꾸는 발상의 전환도 요구된다 하겠다.

따라서 인터넷과 미디어의 발달로 언어의 전파력과 감성이 날로 증대되고 있는 시대에 걸맞게 투쟁의 방식도 변해야 하고, 한층 다양화 해야 한다.

그리고 이는 지난 권영길 의원의 ‘헌정사상 첫 국회 의사당 앞 노상철야 단식농성’이라는 상징투쟁과 정권이 바뀔때마다 변신을 거듭하여 권력의 2인자 자리를 거머쥐었던 노정객을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게 한 노회한(?) 언변의 신출내기 의원의 사례 등에서 충분히 입증해주었다.

이번 밀양 여중생 성폭행 사건의 경우에서 보듯이 일과성 보도로 그칠뻔 한 일이 뒤늦게 언론의 주목을 받고, 급기야 전 세계로 타전되게 만들고, 실제 행동으로 여론을 주도해가는 네티즌의 힘을 우리는 여러번 경험한 바 있다.

현재 한국언론에 만연된, 유명정치인 홈페이지까지 뒤져 펌질해가며 정쟁거리 만들어대는 ‘파파라치식 정쟁상업주의’로 인해 노출빈도와 인용도에서 턱없이 열악한 환경에 놓여있는 진보진영이야말로 한나라당 지지세력, 친노세력보다 더 네티즌 여론광장에 자신들의 정책 홍보력을 투여해야 함에도 가장 뒤처지고 있다는 건 투쟁방식 다변화와 관련 지적되어야 할 사안이 아닐 수 없다.

지금 한국사회에 진보진영이 귀가 따갑게 듣고 있는 소리중 하나가 “대안부터 내놓고 이야기 하라”는 윽박이다. 그러나 진보적 대안은 내놓지 않는 게 문제가 아니라 의제로 올려져 국민적 이슈화가 거의 되지 못하고 있는 한국 정치와 언론환경의 척박함이 더 큰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노동당 등 진보진영은 언론이 다가서기 전에 스스로 좌파정책의 진면목을 알리기 위해 이곳저곳 가릴 것 없이 홍보에 도움이 될만한 곳을 찾아 발로 뛰어다녀야 할 처지일 수 밖에 없다. 아쉽게도 진보세력은 아직까지 그들만의 공간에서 좌파연하는 ‘골방좌파’ 수준을 면치 못하고 있다.

지금 한국사회 현실에서 제 아무리 명분이 강한 정치이슈를 올려놔도 서민대중의 삶의 문제와 직결되는 사회경제적 이슈와 대안이 담지되지 않는 정치이슈는 정쟁이라는 단어 한마디로 서민대중의 눈을 간단히 돌려버릴 수 있다는 현실에 진보진영의 고민이 투영되어야 한다.

그런점에서 최근 민주노동당의 진로 및 정책방향 설정과 관련하여 일부 지지자들이 민노당의 지나친 정치이슈 올인과 그로인한 경제사회적 대안 제시 노력 미흡을 지적하는 움직임은 매우 유의미하고 시의적절해 보인다.

어차피 진보가 진보다울 수 있는 영역도 사회경제적인 영역 아니던가.

서민대중의 삶의 문제를 소홀히 하는 진보, 어떤 진보적 경제적 대안도 내놓치 못하는 진보, 아예 이슈화할 의지 조차 없는 진보는 국보법이 아니라 어떤 명분있는 정치적 이슈를 주장해도 어디까지나 평품일 뿐 ‘집권가능한 명품’은 될 수 없는 까닭이다.

명품이 되지 않는, 되려고 노력하지 않는 진보의 집권이란 영원히 이상의 영역에만 머물 수 밖에 없다.  / 편집위원
 
* 필자는 '참정연' 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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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17 [20:13]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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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엥란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