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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을 보는 '길바닥 정치'라야 다음 대선에 이긴다
[신학림이 만난 사람①] 정청래 통합민주당 국회의원(4)

[미디어스] 2008년 04년 23일 /정영은 기자 

4월 첫째주 인터넷 포털의 인기검색어 순위를 꼽으라면 빠지지 않을 ‘정청래 통합민주당 의원’. 이번 18대 총선에서 서울 마포을에 출마했던 정 의원은 ‘교감 자른다’는 폭언 관련 문화일보와의 진실게임이 계속된 가운데 결국 낙선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18대 총선 이후 가장 할 말이 많을 것 같은 사람인 그를 <미디어스> 신학림 기자가 만나보기로 했다.

예상대로 낙선자 정 의원은 속에 쌓아둔 할 말이 너무도 많았다. 최근 몇 주간 기막힌 드라마의 주인공이 된 그의 이야기는 참으로 길었다. <미디어스>는 4시간여에 걸쳐 진행된 인터뷰 내용을, 지면이 허락하는 한 다 싣기로 결정했다. 독자들의 편의성을 고려하여 4차례 나누어 게재키로 했고 이번이 마지막편이다. <편집자주>

최근 통합민주당과 관련된 대선 이야기부터 해보기로 했다.

- 5년 후 한나라당의 대선주자는 박근혜 의원이 유력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는데, 민주당을 비롯한 중도개혁 진영에 박근혜 의원과 맞설만한 리더가 안 보이는 것 같아요. 대선과 총선을 거치면서 현재 민주당은 '무주공산(無主空山)'이라는 평가도 나오는데요.

"저는 정동영 후보를 이미 2002년 대선 때 공개 지지선언 했었습니다. 당시 후보단일화협의회가 설칠 때 희망돼지하면서 경선 완주한 '국민참여경선' 본부장 정동영을 보고 제가 오마이뉴스에 글을 썼습니다. '내가 당신의 정사모가 되어 주겠다'고, 당신은 어쨌든 용기있는 정치인이라고, 너무 고맙다고 말했다. 나중에 내가 빚 갚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2002년 했던 약속을 지키려고 지지한 겁니다. 이번 대선 때 제가 핵심참모였던 게 분명했구요. 남북평화통일 정책에서는 저랑 딱 맞았습니다."

- 지난 17대 총선 당시 정동영 후보가 정청래를 국회의원 만들어줬다는 소문도 있었는데.

"아닙니다. 일면식도 없었습니다. 2004년 총선때 유일하게 정동영이 지원유세 안 온 곳이 여기(서울 마포 을)입니다."

- 정동영 후보가 일부러 그랬다고 생각하나요?

" 그거는 아닐겁니다. 일정이 안 맞았겠지요."

대선 승부수는 길바닥 정치, 2002년 노무현의 감동을 넘어서야 이긴다

- 다음 대선에서 승부를 결정짓는 관건은 무엇이라고 보는지?

"2012년 대선은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그냥 드는 생각은 2002년 노무현 대통령이 될 당시에는 국민적 감동이 있었는데, 그만큼의 감동이 없으면 박근혜 후보를 못 뛰어넘는다는 겁니다. 그 감동은 길바닥에서 나온다고 봅니다. 단순히 정치공학상으로는 안 나올 것입니다. 실제로 (지지하는) 국회의원 숫자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국회의원은 모래알과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이번 대선에서 정동영 후보에게 '함께 대선의 강을 건널 국회의원 5명이면 된다'고 말해왔습니다. 끊임없이 주장하면서 개인적으로 내부에서도 투쟁을 많이 했지요."

- '길바닥 정치'를 구체적으로 설명해보면?

" 2007년 10월 2일 북한이 핵실험을 했을 때 '이건 미국이 문제 있다. 대북 화해교류협력 정책 포기하면 안된다'고 최초로 주장했던 사람이 저였습니다. 당에서 갑자기 그날 저녁 KBS 열린토론에 토론자로 나가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준비하고 있었는데 핵실험 속보가 뜨더라구요. 바로 정동영 의장에게 전화해서 '기회가 왔다 북 핵실험은 대미 협상용이다. 대북 포용정책 바꾸면 안된다고  국민들의 불안을 없애는 발언을 해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결국 정동영 의장은 그 발언을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언론이, 조중동이 두려웠던 겁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도 흔들렸거든요. 긴급기자회견을 해서 대북포용정책 수정이 불가피하다고 발언했습니다. 결국 그날 저녁 KBS 열린토론에 나가서 제가 그 얘기를 했습니다. 3일 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전남대 강연에서 제가 주장한 것과 똑같이 화해교류협력 정책 포기하면 안된다고 발언했지요. 결국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정동영 의장은) 여론과 언론의 눈치를 살핀 겁니다. 좌측과 하측의 표를 보아야 하는데, 상층부의 소수 오피니언 리더를 보고 정치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 정청래 의원 ⓒ정영은  
 
-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공략 표가 차이난다는 말인가요?

" 네. 박근혜 한나라당 후보는 상층과 하층부 모두 지지층이 있습니다. 하지만 민주당은 상층부에 지지층이 없거든요. 따라서 민주당은 하층부의 지지를 받아야 산다는 겁니다. 대선후보가 당선되고 나면 상층과 하층부를 오가면서 정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걸 현실정치에서 계속 주장해왔는데 받아들여질 때가 있었고 안 받아들여진 때가 있었습니다."

- 민주당이 민심이 있는 하층부 표를 의식해 행동한 사례를 들어본다면.

"저의 (하층부 중심) 주장이 받아들여진 케이스가 주민소환법입니다. 이때 제가 김기식 참여연대 사무처장과 정동영 의장을 연결시켜 줬는데요, 그리고 나서 한 달 만에 법이 통과됐습니다. 정동영 의장이 (행동이) 참 빠른 사람입니다. 나중에 전화가 왔는데 김기식 사무처장이 감격스럽다고 칭찬하더군요. 시민단체의 요구를 받아서 한 달 만에 법안이 통과된 것은 처음이라면서. 그리고 제암리 문제나 금산분리도 제 주장을 받아들여준 것입니다. 정동영 후보가 경의선 철도라든가 상당히 개혁적인 행보를 많이 했어요. 근데 가끔가다가 우파  정책으로 가는 바람에 이미 얻은 성과가 빛이 바래지는 경우가 있어요."

- 정동영 의원이 개혁적이라는 주장인데요. 정동영 의원이 기자생활을 할 때 몰랐던 내용을 많이 듣네요.

" 김근태 의원은 이미지는 개혁적인데 실제는 보수적입니다. 정동영 의원은 실제로 개혁적입니다. 그래서 주변인이 중요한 것이지요."

- 다음 대선에서 민주당에서 어떤 사람이 나와야 박근혜 의원과 대적할 수 있다고 보는지?

"2012년은 이 지점(좌측 + 하층부)를 아우르는 사람이 싸워야 할 겁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대한 평가는 차치하고라도, 2002년 대선에서 만큼은 후보로서 훌륭했다고 생각합니다. 타협 안하고 원칙적으로 대응했어요. 대표적인 사례가 효순이 미선이 추모집회에 가자고 했을 때 노무현은 표를 의식해서 가는 것처럼 보일까봐 안 가겠다고 했습니다. 그 당시 이회창 후보는 추모집회에 갔다가 쫓겨났지요. 그때 노무현 후보는 '실패한 대통령보다는 성공한 후보로 남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정몽준 후보의 선거유세도 안한 겁니다. 제가 가장 감동 받은 것은 정몽준 후보에게  (각료 등의 배분에 관한) 각서를 안 써준 겁니다. 2002년도처럼 노무현 후보와 같은  감동이 없으면 2012년 대선을 넘기 어렵다고 봅니다."

- 조지 레이코프 교수가 이야기하는 '프레임 전쟁'을 해야 한다는 말이네요?

" 어차피 남이 만들어 놓은 링에 가서 싸우면 백전백패입니다. 2002년 당시에는 정파를 초월해서 민주노동당 일부 지지자들도 노무현 찍은 거 아닙니까? 그런 통합적 리더쉽을 가진 사람만이 (박근혜 후보와 맞서 ) 싸울 수 있다고 봅니다."

- 정 의원의 이런 현실 인식을 같이 할 가능성 있는 후보를 들라면?

"안 보입니다."

- 열린우리당 대선 후보 정동영 의원이 만약 경상도 출신이었다면 지난해 대선에서 그렇게 참패했을까요. 최소한 근소한 차이로 졌을 것이라는 얘기도 있습니다. 결국 아직도 지역주의가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분석인 거죠. 그래서 5년후에도 불리하다는 전망이 나올수 밖에 없는데?

"그것보다는 이번 대선 행보에서 정동영 후보가 이런 모습을 못 보였습니다.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민주당과의 통합 논의였습니다. 그때 저는 후보직을 과감히 던지라고 했습니다. 후보직을 던지고 통합반대 목소리를 제압하라고 제안했습니다. 결국 이해찬 후보 빼고 다 통합민주당에서 선거 치르지 않았습니까. 승부를 걸었어야 하는데 근데 그걸 안하더군요. 현실정치는 어차피 타이밍의 정치고 승부수고 일종의 게임이잖아요. 설경구가 기차가 다가오는데도 서있지 않습니까. 끝까지 버틴 사람이 이기는 것 아닙니까. 그랬다면 이번 대선도 총선도 그렇게 깨지지는 않았을 겁니다. 정치는 경력이 아니고, 국민들 정서에 누가 가까이 있느냐가 핵심이라고 봅니다."

민주당에도 천정배 김한길 이미경 강금실이 있다

   
  ▲ 거리 유세중인 정청래 후보ⓒ정청래  

민주당 전당대회를 묻자 7월안에 할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동안 부각되지 않았던 최고위원 중에 신인이 주목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지 궁금했다.

"7월 안에 전당대회를 열 것 같아요. 예를 들면, 많은 비판을 받고 본인도 반성을 하고 있지만, 결국은 개혁에 대한 그나마 진정성이 있다는 측면에서 천정배 의원같은 분을 꼽고 싶습니다. 카리스마 등등 여러 평가를 차치하고라도 말입니다. 어쨌든 문화일보에 공격받을 때 달려온 분이 천정배 의원이고 그 다음이 김한길 의원이었습니다. 정말 고마운 분들입니다."

언론에 욕을 많이 먹어온 김한길 의원도 역시 피해자라고 설명했다.

"김한길 의원은 손학규씨가 당 대표 하는게 맞느냐고 저항하다가 그 당시에 자기거 당 대표 욕심을 차린다는 여론의 뭇매를 맞았지만, 진정성을 보여서 불출마를 결심한 사람입니다. 김한길 의원은 당선이 거의 확실한 사람이었는데, 그 지역구에 박영선 의원이 가자마자 당선됐지 않습니까. 저쪽(한나라당)에서 불출마를 선언하는 의원이 있는데 민주당에는 김한길이 있습니다! 그래서 희생한 겁니다. 그나마 김한길 의원의 희생을 딛고 이번 총선에서 80석이라도 얻은 거 아닙니까. 그 역시도 언론의 피해자입니다. 대선 이후에 김한길 의원과 만나서 얘기했는데 결국 본인이 총대 매려다가 안되서 불출마한 거라고 하더군요."

정 의원은 김한길 의원에 대한 오해를 풀게 있다고 말했다. 김한길 의원이 원내대표를 하던 당시에, 그러니까 탈당전에 자신을 보자고 하면서 고백한 얘기가 있다고 소개했다.

김한길 의원은 "내가 자존심 상하는 게 있다. 내가 명색이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인데 일 년 동안 노무현 대통령이 나한테 전화 한 통 안했다. 아무리 당정분리라고 해도 정책 공조는 해야 하는데. 그런데 딱 한 번 청와대 들어오라고 연락이 왔었다. 가 보니 이미 이재오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와 있더라. 그 자리에서 나한테  사학법 양보하라고 하더라. 난 그때 수치심을 느꼈고 그 때 이미 마음이 떠났다. 이건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정 의원에게 털어놓았다는 것이다.

그 때 김한길 원내대표는 '노무현 프레임에 갇혀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면서 고민을 시작한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정 의원은 "당 재건에 천정배 김한길 이미경 강금실, 이런 사람들이 나서야 한다고 본다"면서 "그래도 현실정치와 국민의 정서를 아는 분들이 나서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을 밝혔다.

이번 18대 총선 이야기로 돌아가 낙선자들에 대한 주제로 얘기를 들어 보았다.

- 이번에 상당수 17대 현역 의원들이 낙선했는데 어떻게 보는지?

"저는 비교적 객관적으로 4년간 지켜본 바로는 스킬(정치기술)이 부족했을 수도 있지만, 가슴에 품은 진정성을 매도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국회의원 나쁜놈'이라고 도매급으로 매도당하는 것이지요. 1등부터 299등이 있음에도 언론이나 국민들은 국회의원 모두를 299등으로 취급합니다. 4년동안 열심히 일한 사람과 4년간 아무것도 안한 사람을 똑같이 취급하면 누가 열심히 일하겠습니까. 애한테 열심히 공부하라고 해서 1등해왔더니, 부모가 '시끄러워!'하면서 또 개판이라고 혼내는 격입니다. 해도 혼나고 안해도 혼나고 일등해도 혼나는데 누가 공부 열심히 하겠느냐는 거지요."

열심히 한 사람들은 다 떨어졌다,  17대 총선 최고 스타는 '임종인 의원'

- 열심히 한 사람들이 떨어졌다는 얘기인가요?

"이번에 결과를 보십시오. 일 하지 않으면 욕먹을 이유가 없습니다. 일 많이 하는 사람들을 놓고 언론은 비판했습니다. 민노당 강기갑 의원은 예외로 치고. 노회찬 심상정 의원도 떨어졌고, 그나마 의정활동을 열심히그리고 많이 한 최재천 임종석 이인영 우상호 의원 등이 다 떨어졌습니다. 우리 집사람 얘기가 '그동안 신문방송에 많이 나온 사람들 싹 떨어졌다'고 말해요. 언론에 안 나와서 누군지 모르는 사람들은 다 붙었다고 그래요. 생각해보니 그렇더라구요. 기자나 언론들이 알 만한 사람들은 다 떨어져버린 거 같아요."

- 17대 의원들 중에서 가장 열심히 그리고 훌륭히 의정활동을 수행한 의원은 누구라고 보는지?

"저는 임종인 의원을 꼽고 싶어요. 잘 안 알려졌지만 여러 가지 성과가 많아요. 병역 관련해서 사병월급 올렸구요, 세계야구선수권대회(WBC) 참여 선수들에 대한 병역면제 방침에 반대 했구요, 강안남자 문제 당시에도 법사위에서 계속 발언해 온 사람입니다. 임 의원은 아무도 하지 않거나 생각지 못하는, 그러나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일이라면 누구의 눈치도 보지않고 해내는 분이에요. 같은 의원으로서 존경스럽습니다."

- 17대 임기말인 4월 25일부터 한 달 동안 임시국회가 열립니다. 당선된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것과는 그 느낌이 사뭇 다를 것 같은데, 어디에 중점을 두고 마지막 남은 의정활동을 할 계획인지?

"일단 대정부질문 정치분야 발언을 신청하려구요, 상임위(문광위)도 할 거구요. 결국은 내 문제이기도 하지만, 첫번째로 총선기간 동안의 언론행태를 고발할 겁니다. 두번째는 17대 문광위의 개혁입법을 후퇴시키려는 수구적 언론정책을 비판하고, 셋째로 총체적인 사안들 즉,  교육정책과 대운하, FTA 협상에 대해서 문제제기를 강하게 해야겠지요."

- 이번에 새로 출범한 방송통신위원회를 국회 어느 소관상임위원회로 할 지 정해지지 않은 상태라는데. 17대국회 후반 내내 문광위 민주당 간사를 맡고 있는 입장에서 어떻게 대응할 계획인가요?

"어쨌든 방송통위원회를 문광위에 불러내야죠. 업무보고를 들어야합니다. 부위원장을 야당쪽(민주당)에서 하기로 해놓고, 엉뚱한 방통위원들이 되다보니 관철도 못 시킨 건데요. 위원장도 부위원장도 한나라당쪽 인사가 됐잖아요. 후반기에 한다고 자의적으로 정하지를 않나!"

백수되면 당장 밥벌이 고민...초심잃지 않으려 20년 된 지갑 아직 사용

   
  ▲ 정청래 의원이 신학림 기자에게 20년간 사용해 온 지갑을 꺼내 보이고 있다ⓒ정영은  

5월 임시국회가 끝나면 5월 31일부터 정청래 의원은 무직이 된다. '백수'의 경험이 있는지 물어봤다.

" 백수를 한달 정도 해본 경험이 있습니다. 옛날에 감옥갔다 오고 신문 구인란 살펴보던 시절이 있어요. 그때 제일 고통스러운 게 약속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근데 다행스럽게 이제는 약속도 많고 일도 많이 할 거 같습니다. 초등학교 다니는 제 아들 말이 '아빠 모 먹고 살아요?' 라고 묻더라구요. 당장 밥벌이도 해야겠고.. 참 요즘 고민이 많습니다.(웃음)"

정 의원의 이야기를 한참 듣다보니 욕많이 먹고 고생 많은 국회의원을 왜 하겠다고 결심했는지, 계기가 궁금해졌다.

정 의원은 91년 5월 강경대 사건이 그 시발점이라고 했다. 당시 정 의원은 목포교도소에 복역중이었는데, 전남대 박승희부터 김기서까지 10명 가까이 분신했을 때 충격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때 삶과 죽음에 대하여 많은 생각이 들었는데 1.04평 공간에 왜 하필 내가 이 시간에 존재하고 있는가라는 생각까지 미쳤다는 것.

과거와 미래의 끝을 알 수 없는  무한대에서 나라는 존재는 너무나 미미한 존재라는 깨달음을 얻고 '개똥철학'을 터득했다고 한다. 미미한 개개인의 목표를 다 합친 큰 목표를 위해 변혁으로 살겠다는 생각끝에 어렴풋이 든 생각이 입법권력에 참여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는 것이다.

초심에 대한 얘기를 하다가 대뜸 양복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낸다. 어려웠을 때 생각을 잊으면 안된다고 하면서 20년된 지갑을 보여줬다. 이게 다 삶의 궤적이라는 생각 때문이란다. 그 마음 변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길고 긴 인터뷰를 마쳤다. 늦은 점심으로 짬뽕 한 그릇씩 먹고 헤어졌다. (인터뷰 끝)

대담 = 신학림 기자 / 정리 = 정영은 기자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483
:
Posted by 엥란트

최근 유시민의 행동들을 정확히 예측해서 눈길을 끌고 있는, 유시민 저승사자 '정청래' 의원이 오늘 자신의 홈페이지에 쓴 글을 통해,

유시민이 2002년에 만든 개혁당도 원래는 유시민이 구상한 게 아니라,  명계남, 문성근, 노사모 핵심들 그리고 정청래가 결합해 시작한 ‘인터넷 정당 정정당당’의 개념(컨셉)을 훔쳐다 쓴 것이라네요. 당시 유시민이 참 낯 두껍게시리 인터넷 정당 개념을 절도해 가더니 그 사이트까지 빌려달라는 염치없는 부탁을 했다는 군요.

그리고 유시민이 이번 대선 과정에서 앞으로 정동영이 대통합신당 대선 후보가 되면 99.9% 새로운 정당을 만들려고 하면서 2002년 '후단협' 같은 활동을 하게 될거라고, 그러면서 정치 기술자 유시민은 '최후'를 맞이할 거라고 새로운 예언을 했군요.

정청래 이 친구도 참 재미있는 인간입니다.
아뭏든 노빠들의 더러운 최후를 보는 거 같아서...고소하긴 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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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래 칼럼>

제  목 : 정치기술자 유시민의 몰락.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7-09-16 조회수  233 
  
출마선언은 하되 완주하지 않는다. 이것이 나의 또 하나의 예언이다. 사기후보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99.9% 적중할 것이다. 레이스 도중 분명히 어떤 명분을 댈 것이다.(그 명분을 나는 알고 있다.) 그리고 중도사퇴하고 특정한 ‘누구 지지선언“을 할 것이다. 그것을 위해 그 캠프에 누나를 미리 파견한 것이다. 누나와 동생의 싸움은 없을 것이다.>(8월6일 청래칼럼 中에서)

단일화가 아니라 대통령이 되기 위해 나왔다는 유시민이 본경선 하루 만에 끝내 사퇴했다. ‘출마선언은 하되 완주하지 않는다.’는 40일전 나의 예언은 또 적중했다. 제주 울산 경선에서 정동영후보가 1등을 했다는 문자 메시지가 오후 6시를 전후에 수 십 개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형님 축하해요. 1등 했네. 계속 멋진 선전 기대함돠.”, “앗싸 정후보님 1등!”, “어려운 지역에서 첫 승리 축하드립니다.”, “축하합니다. ○○○기자”

그런데 곧이어 나의 핸드폰 진동이 또다시 연신 울려대기 시작했다. “이제 좀 심심하겠어요. 유시민이 사퇴해 버려서...6시 46분”, “점집 차리셔야겠어요. 7시 7분 ○○○기자”, “각본대로 되어 가네요. 돗자리 까세요. 7시 57분”. 거의 10분 차이로 승리의 소식과 유시민의 사퇴를 알리는 핸드폰 진동음이 울렸다. 유시민 말 바꾸기가 하늘을 찌른다. 나 원참~

그런데 나는 걱정을 하지 않는다. 한면숙후보가 단일화했지만 이해찬후보에게 표가 가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유시민의 표가 이해찬후보에게 가지 않는다. 일단 제주 울산을 제외하고는 유시민이 모아 놓은 표가 없다. 예비경선 후 이해찬(14.37%), 유시민(10.14%), 한명숙(9.42%)을 모두 합치면(33.93%) 손학규(24.75%)도 이기고 정동영(24.46%)도 이긴다고 언론이 호들갑을 떨었지만 이것은 잘못된 산수이다.

1+1+1=3의 공식이 선거에는 통하지 않는다. 오히려 부도덕한 단일화쇼에 대한 거부반응으로 이해찬후보가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더욱 크다. 두고 보시라. 국민들과 유권자의 의사와는 아무런 관계없이 펼쳐진 친노위장세력 후보들의 출마쇼와 단일화쇼는 오히려 국민들에게 정치불신과 염증만을 안겨주었다. 아마 이해찬후보는 오히려 마이너스 효과의 쓴맛만 볼 것이다.

나는 오늘 경선도 중요하지만 인천지역의 승리를 위해 인천에 머물며 주요 인사들과 만나고 있었는데 그분들에게 민망할 정도로 많은 문자와 전화가 왔다. 그랬다. 나의 예측대로 정동영후보가 첫 경선지역에서 승리했고 유시민은 사퇴했다. 그것도 나의 예언을 100% 적중시키며 이미 예측한대로 이해찬후보 지지선언을 했다. 예측했기에 별로 놀라거나 당황스럽지는 않다. 나는 일찍이 아무도 그의 출마를 점치지 못할 때 그의 출마를 99.9% 기정사실화했다. 다음은 그의 증거인 나의 예언록이다.

<나는 유장관이 99.9% 대선에 출마할 것이라 생각한다. 왜냐? 그의 행적을 보았을 때 ‘안 한다면 하고, 한다고 하면 안 했기 때문’이다. 그가 첫 번째 국회의원이 될 때 당시 민주당 도움은 받지 않겠다고 했다가 결국 민주당 후보의 불출마로 당선되었다. 기간당원제가 목표지 당의장은 절대 안 나간다 했다가 기필코 나왔다. 참 손바닥도 가볍다.

지금 대선출마를 절대 안 한다고 하고 있으니 나는 반드시 출마할 것이라 확신한다. 참으로 거꾸로 생각하면 예측 가능한 정치인이다. 따라서 솔직하게 대선에 출마하고 활동하면 된다고 본다. 대통령만 팔지 않는다면....유시민 자체가 대단하거나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항상 '노무현'이 오버랩 되는 것이 문제라서 그렇다.>(5월 14일 청래 칼럼中에서)

내가 이 칼럼을 썼을 때 나의 말을 믿는 사람은 적어도 여의도에는 없었다. 기자들도 “그것이 말이 되냐?”며 나의 예언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노대통령과 보건복지부 장관 임기를 같이 한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는 욕심이 없는 사람 아니냐? 본인도 당에 돌아가서 할 일이 없다고 했으니 오히려 그도 아마 대통령과 같이 탈당을 하지 않겠느냐?” 이것이 여의도 정가의 대체적인 관측이었고 나를 바보로 취급하려 했다. 그러다가 8월 6일 언론들은 유시민의 출마 결심을 보도하기 시작했다. 그날 나는 또 다른 예언을 했다. 아래는 그 증거이다.

<내가 일찍이 5월 14일 날 쓴 칼럼을 통해 유의원은 “99.9% 출마한다.”고 했을 때 모든 언론들은 나의 말을 99.9% 믿지 않았다. “에이~말이 되나?”라고 다를 고개를 저었다. 나는 7월 17일 CBS 인터뷰를 통해서도 예측 가능한 정치인 유형 B형(한다면 안하고 안한다면 꼭 하는)이기에 99.9% 출마한다고 확언한 바 있다. A형은 두 말할 것 없이 “한다면 하고 안 한다면 안하는” 바람직한 유형이다. 그의 대선출마에 대한 질문에 대해 항상 “쓸데없는 소리” 쯤으로 거짓말을 해왔다. 아무튼 한편으론 나의 예언을 적중시켜 준 유의원이 고맙다.

나는 그가 2002년 대통령 선거가 끝나면 그의 말처럼 칼럼리스트로 돌아갈 것으로 생각했다. 그 때는 참 순진했다. 그러나 그 이후의 정치행각은 오로지 ‘대통령 이름을 팔아 개혁의 탈을 쓰고 정치지분을 챙기는’ 것이었다. 예측 가능성은 B형에 맞추고 그의 디테일은 ‘정치지분’에 맞추어 생각하면 항상 A+의 답을 낼 수 있다.

그런데 이제 그의 생각이 바뀌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제 그는 친노(親盧)를 할 이유가 없다. 친노(親盧)를 이용해 빼먹을 단물이 이제 없어졌다. 이 대목에서 한 가지 또 예언한다. 그는 99.9% 반노(反盧)의 길을 갈 것이다. 두고 보시라 그가 얼마나 찬란하게 얼마나 비정하게 반노(反盧)의 길을 걸어가는지.....>(8월6일 청래칼럼中)

나의 이 예언은 또 100% 적중했다. ‘나는 절대로 친노후보가 아니다. 지금까지는 노무현 주식회사 간부였는데 지금부터는 유시민 주식회사 대표이다.’며 노대통령과의 차별화를 시작했다. 그러더니 한나라당 이명박을 고소한 대통령의 정치행위에 대해 양비양시론으로 응수했다. 결국 노대통령이 심혈을 기울인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에 대해서는 양보하라는 말로 했지만 이는 사실상 ‘노대통령이 틀렸다.’며 노대통령을 공격하기까지 한 것이다.

이는 내용상 반노(反盧)의 선언이었다. 놀라운 변신이었다. 언론은 눈치를 채지 못했지만 나로서는 참으로 씁쓸했다.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에 대해 MBC 100분 토론에 까지 출연해 조선일보-한나라당과 맞서 싸운 나로서는 노대통령이 불쌍한 순간이었다. 노대통령이 믿었던 간신에게 뒤통수를 맞은 꼴이었다. 이 부분(반노(反盧))은 유시민이 계속 경선 레이스를 펼쳤다면 나의 예언대로 더욱 찬란하고 비정하게 진행되었을 텐데 아쉽다. 출마를 포기했으니 그의 반노(反盧) 투쟁은 예서 멈출 것이다. 그의 화려한 반노(反盧) 쇼만은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색다른 쇼는 99.9% 계속 될 것이다. 지금부터는 또 다른 나의 예언이다. 그가 출마를 포기한 직후부터 그의 ‘둥글게둥글게’ 전략은 전량 페기처분 될 것이다. 그는 원래 ‘모나게모나게’인데 ‘표 좀 얻어 볼까’하는 얄팍한 눈속임이었다. 그의 모난 언행이 시작될 것이다. 나는 그가 이해찬 캠프의 직책을 맞든 맞지 않던 그는 ‘손학규 공격수가 아닌 정동영 공격수’로 맹활약 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그 특유로 막말과 독설로 경선 판을 시끄럽게 할 것이다. 정동영을 때려야 이해찬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 믿기에 그렇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괜찮다. 그는 중간 중간에 이해찬후보를 붙잡고 벼랑 끝 전술을 쓸 것이다. 이것이 문제이니 ‘경선포기 불사’, 저것이 문제이니 ‘경선포기 중대 결단할 수도’ 등등의 세치 칼날을 총동원 할 것이다. 정동영후보가 사실상 1등이 굳어지면 그의 공격은 더욱 더 격렬해 질 것이다. 왜 그런가? 손학규가 1등 하는 것은 참을 수 있어도 정동영이 1등을 하는 것은 그로서는 도저히 수용하기 어려운 계륵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왜 그런가? 그것은 그가 그동안 부당하고 염치없고 부당하게 정동영에게 쏟아낸 말 때문이다.

끝내 정동영이 1등을 하면 그는 어떨 것인가? 유시민은 그 때를 대비해 정동영을 끊임없이 공격하고 흠집 내서 ‘이런 후보로는 이명박을 이길 수 없다.’며 경선불복을 할 것으로 나는 예상한다. 그는 이미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어떠냐? 한나라당이 집권해도 나라 망하지 않는다. 깨끗하게 야당하면 되지 않냐?”고 수차례 말한 적이 있다. 그러면서 ‘정치는 정당 중심이라는 둥, 정당개혁을 위해 새로운 정당이 필요하다는 둥’ 운운하며 2002년 후단협 같은 활동을 할 것이다. 새로운 정당을 만들려 할 것이다. 민주주의를 부정할 것이다.

그러면서 정치 기술자 유시민은 대중으로부터 최후를 맞이할 것이다. 늦게 배운 도둑질 밤새는 줄 모른다. 사실 한 발짝 움직이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그는 이미 숱한 거짓말로 대중을 현혹해 왔다. 거짓말은 새로운 거짓말을 낳고 끝내 그 거짓말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주저앉게 되어 있다.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하는 그의 말로를 나는 어느 정도 예상을 한 것이다. 그것이 오늘의 유시민의 출마 포기 선언이다.


대중은 디테일을 모르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것이 열혈 유시민 지지자들의 비극이다. ‘내가 좋아 하는 사람인데 절대 그럴 리 없어.’라는 무조건적 믿음이 밑천이 되어 유시민으로 하여금 숱한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충동질을 더욱 부채질 했다. 나의 이러한 분석을 유빠(유시민 열혈지지자)들은 도저히 믿을 수 없을 것이다. 아니 믿지 않는 것이 오히려 정신건강에 좋을 것이다. 첫사랑의 환상은 그냥 추억으로 남는 것이 아름다우니까 말이다.

나는 진정 그를 미워해서 그의 거짓을 고발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거짓의 정치가 얼마나 큰 해악을 끼치는 가에 대한 폐해를 직접 가까이에서 목격한 사람이다. 국민들에게 고스란히 피해로 돌아간다. 나는 정의의 차원에서 괴롭지만 이 작업을 계속할 것이다. 그의 거짓 행보는 2002년부터 시작되었다. 그가 만들었다는 개혁당이 명계남 문성근 노사모 핵심들 그리고 내가 결합해 시작한 ‘인터넷 정당 정정당당’의 개념(컨셉)을 훔쳐다 쓴 것이라면 믿겠는가?

2002년 당시 노무현후보가 당선되고 지지율이 빠지고 노풍이 꺼지자 곳곳에서 노후보를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그 때 유시민이 그 유명한 ‘바리케이드를 치고 화염병을 드는 심정으로’ 노무현 후보 지키기 운동에 앞장섰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앞서 말한 우리는 이미 사무실을 얻어 인터넷 커뮤니티를 바탕으로 지역구 전환이 가능한 ‘인터넷 정당 정정당당’을 상근자 30여명과 함께 착실하게 준비하고 있었다. 노무현 일병 구하기를 위해 사무실을 빌려달라는 그에게 우리 사무실 한쪽을 기꺼이 내주었다.

그것이 화근이었다. 노무현 일병구하기 지지선언이 끝나고 그는 어깨너머로 배운 인터넷 정당의 개념을 도둑질해 갔다. 명계남도 나도 까맣게 모르고 있다가 오마이뉴스를 통해 그가 ‘인터넷 정당을 하겠다.’는 선언을 접했다. 당황스러웠다. 그는 나중에 원래 자신이 긴 시간 준비해 온 것이라 변명했지만 그것은 거짓말이었다. 인터넷 정당 팀의 허* 없이 컨셉을 훔쳐가 사고를 쳤으나 인터넷 사이트는 준비하기 어려웠다 보다. 며칠 후 그는 우리 사무실에 찾아와 인터넷 정정당당 사이트(http://www.cybercorea.org 이 사이트는2003년 국민의 힘으로 사용했다.)를 빌려 달라는 것이 아닌가?

참 낯도 두껍다. 인터넷 정당 개념을 절도해 가더니 이제 그 사이트까지 빌려달라는 염치없는 부탁을 했다. 우리 팀은 회의 끝에 거절하고 대선을 앞두고 시끄럽게 적전분열 할 수 없으니 우리가 꿈꾸었던 인터넷 정당을 접고 유권자 운동을 했다. ‘열심히 욕한 당신, 이제 찍어라.’는 구호를 걸고 ‘대학교내 부재자 투표함 설치운동’으로 전환해 활동했다. 효순이 미선이 추모 뱃지도 제작해 전국에 배포했다.

이렇게 나와 그는 2002년 그의 절도행각으로 인한 악연으로 시작했다. 그래도 나는 그의 2003년 그의 보궐선거를 정말 열심히 도왔다. 지금 그의 비서로 근무하는 친구와 문성근 선배 그리고 내가 3인 1조가 되어 아침 10시부터 밥 10시까지 막판 사흘 밤낮없이 뛰었다. 그리고 가까스로 당선되었다. 당선 후 나에게 전화를 걸어와 ‘고맙다.’는 인사까지 했다.

당시 민주당의 도움을 받지 않겠다는 그가 속으로는 당시 민주당 국회의원이었던 정동영에게 선대위원장을 맡아 달라 삼고초려를 했다. ‘도와주면 2007년 업고 다니면서 대통령을 만들겠다.’는 그의 약속은 오늘 어떻게 되었는가? 배은망덕으로 갚고 있지 않은가? 참 의리 운운하는데 유시민 정말 고약한 사람이다.

2004년 내가 국회의원이 되자 대전까지 사람을 보내 ‘참정연’을 같이 하자고 했다. ‘정치단체가 아니라 순수 의정활동 연구모임’이란 말을 믿고 가입했는데 1개월도 못가 첫 원내대표 선거에서 천정배가 아닌 이해찬을 몰표로 밀어 주자는 그의 언행불일치를 보고 그와는 정치적 결별을 하게 되었다. 정말 질렸다. 그 후 그의 행보는 나의 예측대로 ‘한다면 안 하고 안 한다면 꼭 하는’ 예측 가능한 정치인 유형 B형으로 맹활약 했다.

100m 미인이라는 말이 있다. 나는 유시민을 한 달 미인으로 생각한다. 한 달만 같이 활동해 보면 그의 언행 불일치를 경험할 수 있다. 그리고 한 1년간 곁에서 그의 현란한 언행을 보고 있노라면 나 정도의 신통한 예지력은 누구라도 습득하게 될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나는 아무도 인지하고 있지 못한 상황에서 그의 미래를 예측해 왔다. 그러나 그것이 나의 특별한 재주는 아니라는 점이다.

아무튼 대한민국에서 머리와 가슴의 거리가 가장 먼 정치 기술자로서 향후 대선 정국에서 그의 몰락을 여러분들은 지켜볼 것이다. 아마 그는 끝내 99.9% 2007년의 대선에서 2002년의 후단협 활동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정말 내가 소망하는 것은 이번만큼은 나의 예언이 틀렸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유시민의 생각처럼 ‘한나라당이 집권해도 좋다.’라고 나는 절대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2007년 10월 11월 12월은 지푸라기 부지깽이라도 필요한 모든 힘을 보태야 한다. 유시민이 그런 불순한 생각을 한다 해도 그런 유시민이라도 필요하기 때문에 더더욱 나의 예언이 0.01% 가능성이지만 틀렸으면 좋겠다. 우리 후보에게 유시민도 힘을 보태기 바란다.

2007년 9월 16일 새벽
대통합민주신당 국회의원
정청래 올림.

ㅁ 정청래 의원이 국민참여 1219에 올린 글 보기 ==> http://www.1219.co.kr/freeboard/cview.php?idx=2146&zdx=2&b_id=19&page=1&key=&search=

ㅁ 정청래 홈페이지 원문 보기==> http://mapopower.or.kr/2005/worker_1/view.php?tb=story&idx=346&pollidx=&page=1&searchStr=&searchCol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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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엥란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