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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경향신문 이대근은 탁월하다. 글도 깔끔하게 잘 쓰지만 그 용기가 대단하다. 그러나 그의 용기는 결코 만용이 아니다.

주류 언론매체에 종사하는 언론인 중, 한국 정치의 맥을 "항상" "정확하게" 부여잡고 있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다.

"지금 민주당이 깨져야 한국 정치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는 용기 있는 주장과 탁견은 이대근 그만이 할 수 있는 소리이자 또 해야 하는 소리일 것이다.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민주당 주변을 기웃거리는 사람들이 깊이 새겨들어 마땅한 충고가 아닐 수 없다.
민주당에 가까워질수록 새로운 세상과 아득히 멀어진다는 걸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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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근 칼럼] 해머도 타협도 민주당을 살릴 수 없다

이대근 정치·국제에디터

[경향신문] 2009.3.4

정세균의 말대로 민주당은 최선을 다했다. 한나라당 의원은 국회 본회의장 주변을 장악했다. 믿던 국회의장은 문제 법안들을 모두 직권 상정하겠다고 배신했다. 박근혜는 마지막 순간에 한나라당 지도부의 손을 들어주었다. 문제 법안이 그대로 통과될 절체절명의 순간, 민주당은 한나라당의 요구를 받아들여 겨우 법안 처리를 지연시켰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그도 놓칠 뻔했다. 정세균은 최악을 막는 게 우선이었다고 했다. 달리 방법이 없는 민주당이었다. 당내 비판그룹들이 지도부에 불만을 표시했지만, 그들이라고 다른 방법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삭발단식, 의원직 총사퇴 이야기도 나왔지만, 그런 선택을 진지하게 고민했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지금의 정치 현실에서 민주당이 견제를 제대로 한 경우가 있다면, 그건 예외적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여당의 법안은 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해야 하고, 여당의원은 느슨해진 데 반해 야당의원은 높은 수준의 결의로 똘똘 뭉쳐 있어야 하고, 박근혜는 야당 편을 들어야 하고, 국회의장은 여당에 맞서 직권 상정을 거부해야 하고, 야당은 본회의장을 점거하는 데 성공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1월 입법전쟁 때는 운이 좋았다. 이 모든 조건이 충족되었다.

문제법안에 검증 들러리 선 격

만일 이 가운데 하나라도 없었다면, 민주당은 맥을 못췄을 것이다. 이번 입법전쟁 때 그 점이 증명되었다. 민주당이 동원할 수 있는 것은 문제 법안에 대한 여론의 지지가 낮다는 사실뿐이었다. 민주당은 이렇게 한나라당에는 고려 대상도 아닌 것을 믿고 버티다 무너졌다. 이제 운을 믿고 야당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의장은 왜 막판에 오락가락하며 흔들렸는지, 박근혜는 얄밉게도 왜 돌아섰는지, 민주당이 왜 본회의장을 먼저 장악하지 못했는지 화내고 후회해 봤자 부질없는 일이다. 해머도, 타협도 민주당을 살릴 수 없다. 민주당의 딜레마이다.

민주당은 하나의 저항집단으로 나설 수 있다. 지난 1차전이 그랬다. 그러나 매번 해머 들고 나올 수는 없다. 그렇다고, 이 정치 구도에 순응해 일상적인 여야간 협상과 타협을 통해 야당의 기능을 수행하는 일도 쉽지 않다. 이번 2차전이 그 점을 보여주었다. 금융 규제의 세계 흐름을 거스르며 재벌에 은행과 방송을 넘겨주는 것이 경제살리기 위해서라는, 코흘리개도 믿기 어려운 서툰 논리를 내세웠는데도 민주당은 당해내지 못했다. 금산분리 완화, 미디어법, 시민 통제와 감시라는 한나라당의 카드는 주고받고 할 그런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민주당은 미디어법을 미루고, 금산분리 완화는 눈감아 주는 듯한 거래를 했다. 그런 민주당이 합의하고 웃으며 돌아서서는 불편해 하고 있다. 손해 봤다는 느낌 때문일 것이다.

민주당은 마치 한국 정치가 온전하게 작동할 때처럼 주고 받았지만, 전혀 등가의 교환이 아니었다. 정치는 주고받기이므로 어쩔 수 없었다고 꾹 참았지만, 민주당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였다. 민주당이 현 정치질서에 안주하는 한 절충하고 돌아서서 후회하는 일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이번에 그런 것처럼 법안통과 과정의 소란과 소동도 야당답다는 표시라기보다 여당의 문제 법안이 제대로 검증을 거쳤다는 증표로 악용될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은 지금 한국 정치가 정상적이라고 은폐하는 도구, 나아가 이 정권의 장식품이 된 줄 알아야 한다. 해머도 보기 좋은 것은 아니지만, 집권당의 장식 노릇도 좋아 보이지 않는다. 민주당이 그걸 좋아해서 그런 것은 아니지만, 치열한 고민과 성찰이 없으면,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전락한다. 민주당은 1차전에서 이겼지만, 지속가능한 승리가 아니었고, 2차전에서는 패배했다.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 먼저 이명박 정권이 깔아 놓은 멍석에서 노는 것을 그만두어야 한다. 그 멍석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최선을 다해야 고작 최악을 피할 수 있는 정도이다. 너무 피곤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정치이다.

민주당 깨져야 현 정치질서 깨져

이 정치질서를 깨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민주당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민주당을 깨야 한다. 민주당이 깨져야 이 정치질서도 깨진다. 저렇게 무능한 이명박 정부와 지리멸렬 한나라당이 민주당과 일전을 거듭할수록 승승장구하는 이유가 무엇일 것 같은가. 다 민주당 때문이다.

<이대근 정치·국제에디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3041824325&code=990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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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근 칼럼] 불안한 세상, 평온한 민주당
MB와 싸울 자격 없는 민주당
새 노선·조직으로 탈바꿈 해야(2008.9.3)==>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09031807285&code=990339


ㅁ 이 글 출처 ==>
http://www.cjycjy.org/bbs/view.php?id=anybody&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6142

:
Posted by 엥란트

[이대근칼럼] 54%가 말하는 것 


[경향신문] 입력: 2008년 04월 16일 18:09:09  


민주주의 선거는 선택 가능한 대안들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그러나 18대 총선은 그러지 않았다. 한국의 정치계급들은 대안을 내놓는 대신 선택의 기회를 차단함으로써 자기의 기득권을 재생산하고자 했다. 그들은 선거일정을 늦춰 후보가 누군지 알 수 없게 했다. 낙하산·밀실·나눠먹기 공천을 통해 시민들이 아니라, 자기들이 선택한 것을 시민들이 선택하게 했다. 쟁점은 피하고, 시민사회의 토론은 막았다. 정당들의 이념·노선·정책은 불분명했을 뿐 아니라, 서로 구별되지도 않았다.


- 선택의 기회 차단당한 유권자 -


이렇게 시민참여 배제의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선거에서 어느 하나를 고르는 것만큼 흥미 없는 일도, 괴로운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시민의 46%가 투표장을 찾았다. 그러나 그 나머지, 아니 54%의 절대다수는 다른 선택을 했다. 선택하지 않기로 선택한 것이다. 그들로서는 합리적 선택이다. 루소는 “시민들은 의원을 뽑는 동안에만 자유롭고 선거가 끝나면 다시 노예로 돌아간다”고 했다. 선거 때 투표행위 한 번으로 주권을 넘겨받은 의회가 시민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대의제의 한계를 지적하기 위해 한 말이다. 그러나 대의제의 본질적 한계에 대한 루소의 이 18세기적 걱정조차 21세기 한국인에게는 사치다. 왜냐하면, 우리는 선거 동안에도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이다. 54%에게 자유가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투표장에 갔던 46%에게도 자유는 없었다. 17개의 정당과 수많은 후보들은 우리에게 다양한 대안이 있다고 기만하는 숫자에 불과하다. 어떤 기준으로 누구를 고르든 결과는 십중팔구 같았다. 보수당, 보수성향의 당선자는 어림잡아도 200석이 넘고, 통합민주당의 우경화를 고려하면, 18대 국회 그 자체가 하나의 보수당이다.


사정이 이렇다면, 46%의 시민은 자기의 대표자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대표자가 시민을 선택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시민들이 주권을 행사했다는 것은 착각이다. 장 보들리아르식으로 말하면, 이번 선거는 민주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것처럼 속이기 위한 장치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총선 결과가 보수적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다. 결과는 보수적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문제는 보수의 과잉 대표체제에 있다. 견제와 균형을 잃은 이런 체제에서는 보수세력간 권력투쟁이 정치를 대체한다.


- 다시 거리서 권력과 마주하나 -


물론 보수정파간 찬반이 엇갈리는 한반도 대운하처럼 보수에 의한 보수의 견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많지 않을 것이며, 있다 해도 보수정파간 권력 투쟁을 위한 도구로 이용될 것이다. 간혹 그들간 차이가 커 보이는 때가 있을 텐데, 그것은 권력 배분을 둘러싼 갈등의 치열함 때문이지 차이의 크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이명박·박근혜 갈등이 반복되고 간혹 이회창과 민주당이 끼어들어 실랑이하는 소리도 자주 들릴 것이고, 이런 정치판의 소란이 마치 견제와 균형이 작용해서 정치가 잘 가동되고 있는 듯한 착각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러나 복당이니 당권이니 하는 것들은 서민들의 삶의 개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들이다.


이런 것 말고도 보수 과잉 대표체제가 안고 있는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그것은 이 체제가 시민사회의 다양한 욕구와 가치·이해를 반영하지 못하는 ‘닫힌 구조’라는 점이다. 10년 만에 민주화 정권은 몰락했지만, 시민사회는 민주화 20년간 성장해왔다. 이는 정치사회가 이 시민사회의 성숙함과 다양성을 억압하고, 시민사회와 분리되어 서로 어긋나고 충돌하는 정치구도를 유지하는 일이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54%가 고개를 치켜드는 순간 지반이 허약한 이 정치판은 순식간에 붕괴될 것이다. 한마디로 보수 과잉 대표체제는 불안을 제도화한 체제이다. 이 불안을 누가 잠재울 수 있을까. 민주당? 그러나 민주당의 81석은 보수세력을 견제하기에 너무 적은 의석이며, 위기감을 느끼고 노선과 조직을 전면 쇄신할 정도로 자극받기에는 너무 많은 의석이다. 더구나 민주당은 새로운 보수당으로 탈색되고 있다. 81은 의미없는 숫자이다.


정치 현실이 이렇다면, 자기의 욕구와 이익을 대변할 정당을 잃은 이들은 권력과 직접 마주하는 수밖에 없다. 물론 그들은 의사당에서 만나지 않을 것이다. 아스팔트. 다시 거리의 정치인가.


〈 정치·국제에디터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04161809095&code=990339


ㅁ [시론]새 진보를 향한 대전환==>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04161816475&code=990303

:
Posted by 엥란트

"범여권, '올바른 패배'의 기회도 놓쳤다"

[정치와 사람들② 이대근] 2007 대선, 신보수주의의 '입구'

[프레시안] 2007-11-14 오후 1:57:25

이대근 <경향신문> 정치·국제에디터가 노무현 대통령이나 범여권을 비판한 글을 보고 있자면 그 거침없음에 적이 당황하게 된다. 그는 에두르는 법 없이 비판의 과녁을 향해 직진한다.

가령 "대통합이 기여할 게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다행히 버려야 할 모든 것들이 이 한 바구니에 담기게 되었기 때문이다. 대통합민주신당은 무덤이다"(2007년 9월 12일자 칼럼 <신당, 그 무덤에 아무도 초대말라>)는 구절, 또는 "정동영은 바람보다 먼저 눕고 바람보다 빨리 일어난다. 그게 정동영이다…노무현을 기준으로 하면 정동영의 앞날에 어떤 무궁무진한 변화가 펼쳐질지 충분히 상상해 볼 수 있지만, 우리는 이미 우회전·좌회전, 신정치·구정치, 친노무현·반노무현, 시장주의·반시장주의를 넘나드는 그의 현란한 곡예를 목격하고 있다"(2007년 10월 24일자 칼럼 <정동영, 노무현보다 나은가>)는 대목 같은 게 그렇다.

물론 그의 비판은 지난 5년간 조·중·동을 위시한 보수언론이 쏟아낸 험한 말들과는 입각점이 전혀 다르다. 이는 지난해 <경향신문> 창간 60주년 특별기획으로 마련돼 진보개혁 진영 안팎에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진보개혁의 위기>를 그가 총괄했던 데서도 짐작된다. 혹은 지난 5월 작고한 아동문학가 권정생 선생을 추모하며 쓴 칼럼의 다음 한 토막은 어떤가.

▲ 이대근 <경향신문> 정치·국제에디터. ⓒ프레시안

"가난하고 늙고 병든 아동문학가는 이 사회에서 전혀 위험하지 않다고 생각했다면 잘못이다. 버림받고, 병들고 가난한 자가 세상과 잘 어울린다는 것 자체가 기만이다. 그는 매우 위험하고 불온한 사상가였고, 반역자였으며 혁명이 사라진 시대의 혁명가였다. '위대한 부정의 정신'의 소유자였다."(2007년 5월 23일 칼럼 <권정생, 그의 반역은 끝났는가>)

이 에디터의 글은 '진보개혁' 진영이 현 정권에 대해 갖는 배반감의 실체와 절망의 깊이를 겉치레 없이 드러낸다. 그는 "한 때 한국사회의 희망이었던 민주화운동세력이 왜 이렇게 처참하게 몰락하게 됐나"를 묻는다. 무능, 원칙의 실종, 정체성의 상실 따위가 열쇠말로 떠오른다. 이 가운데 '무능'은 어쩔 수 없는 능력의 한계로 보아 넘길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원칙'과 '정체성'은 다르다. 지킬 수 있고 지켜야하는 것이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지지층의 이반과 함께 시작된 '범여권 잔혹사'도 여기서 비롯된다. 이 에디터가 '원칙'과 '정체성'을 유독 강조하는 건 이런 맥락에서일 것이다.

지난해 5.31 지방선거에서 사망선고를 받은 이후 범여권은 '산수'에 몰두했다. 1년 넘게 덧셈과 뺄셈을 지루하게 반복했다. 그렇게 해서 최근 거둔 성적이 61.9%대 23%다. 이 에디터의 표현을 빌면 '바보 산수'다. 범여권은 '바보 산수'의 가속 페달을 밟을 태세다. 통합신당과 민주당은 24일 합당하기로 했다. 범여권의 정치기술자들은 거기서 기적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열심히 주판알을 튕기고 있다.

그들의 기대는 실현될까. 가능성은 흐릿하다. 범여권 사람들도 성공에 대한 확신이 없어 보인다. 확신도 없는 일은 하는 건 그렇게 하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의 공학적 정치관에 입각해보면 그렇게 판단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난 17개월 동안 범여권의 영악한 공학적 사고는 정치적 실리를 줄기차게 배반했다. 그들의 '산수'는, 적어도 지금까지의 성적만 놓고 보면 엉터리임이 드러났다. 차라리 "범여권은 이미 패배했다. 선거 결과와 상관없이 패배했다. 그걸 인정하고 이번 선거를 바라봐야 한다"고 말하는 우직한 원칙주의자의 처방이 보다 실리적인 충고로 들린다. 그것이 이대근 에디터를 만난 이유이기도 하다.

"누가 집권해도 신보수주의의 개막"
▲ ⓒ프레시안

프레시안 : 지난 7월 칼럼에서 "이명박이 되든 통합신당의 빅3가 되든 우리는 민주화 20년 만에 한 시대의 종언을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썼다. 이번 대선의 정치사적 의미는 무엇인가.

이대근 : 민주세력 집권 기간을 통해 민주화운동을 한 사람에 대한 보상이 끝났다. 민주화운동을 했다는 정통성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시한은 지났다. 이제 새로운 시대적 과제를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느냐, 새로운 개혁의 동력을 갖고 있느냐, 개혁을 실천할 정교한 프로그램을 갖고 있느냐 하는 것이 판단기준이 되는 시대로 넘어갔다.

구여권 세력은 민주화 20년의 시대 열망을 체현해서 개혁을 실천하는 세력이 더 이상 아니다. 기득권 구조 안에 들어가 있는 기득권의 일부다. 만약 재집권에 성공한다고 해도 보수정당간 경쟁에 의해 권력을 잡는 것일 뿐 다른 운동적 의미는 없다.

그 결과 신보수주의 시대가 개막되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을 제외한 다른 정당들의 차이가 없어졌다. 이명박 캠프의 다수가 운동권 출신이다. 민주화에 일정한 공을 가진 세력이 뉴라이트를 결성했고 그들이 한나라당과 결합했다. 한나라당은 6월항쟁의 토대 위에 선 새로운 보수 세력으로 변해왔다. 신당과 한나라당의 차이가 없어진 것이다. 정당 간 차이라는 게 매우 작아졌고, 그 차이를 작게 한 전반적 흐름은 신보수주의다.

프레시안 : 민주화세력 집권 10년을 사회가 운동세력에게 가졌던 부채의식을 털어버린 시간으로 평가한 게 흥미롭다. 부연해 달라.

이대근 : 과거 정치개혁의 주요 관심사는 '새 피 수혈론'이었다. '새 피'는 대부분 운동권이었다. 운동하면서 사회를 변화시킨 데 대한 기대와 보상의 의미였다. 그렇게 해서 결국 집권까지 하게 됐다. 총리, 장관, 위원회 등 운동권에서 웬만큼 역할 했던 사람들은 한 자리씩 차지했다. 그 사람들이 갖고 있는 열정과 변화의 열망이 국가 운영에 투영될 것이란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 국가라는 거대한 관료체계 속에 들어가서 똑같이 포로가 됐고, 거기서 돈과 명예와 권력을 누렸다. 과거에 헌신했다는 것만으로는 국가를 잘 운영할 거라는 기대를 갖기 힘들어졌다.

프레시안 : 민주화세력 집권 10년 동안 그들이 추구해온 민주적 가치가 국정에 반영되는 정도는 매우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뭐가 문제였을까.

이대근 : 국가를 장악한다는 것, 국가를 책임지고 맡아서 한다는 것에 대한 준비가 전혀 안 되어 있었다. 국가 속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 우리가 국가를 장악하는 게 곧 민주화고 개혁이라고 착각했던 것이다. 들어가서 무엇을 할 것인지, 오랫동안 축적된 관료체제를 바꾸기 위해 어떤 프로그램을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은 전혀 없었다. 단지 국가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개혁의 종착점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게 준비 없이 들어가다 보니 국가에 의해 포섭됐고, 기존에 있던 거대한 관료주의 메커니즘 속에서 톱니바퀴의 일부가 됐다. 스스로 도구가 된 것이다.

프레시안 : 국가를 운영한다는 게 주관적인 신념의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로 들린다. 요컨대, 나중에 진보정당이 집권에 성공한다고 해도 국정운영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동일한 시행착오를 겪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대근 : 그럴 가능성이 많다. 가령 예산처에 내년 예산안이 만들어져 있다. 진보세력이나 개혁세력이 지금 당장 들어가서 예산 10%라도 바꿔놓을 능력이 있는가. 정부 나름의 우선순위가 100가지 있다고 하면 그 중 50가지라도 우선순위를 바꿀 수 있는가. 그거 쉽게 바꿀 수 없을 거다. 정부가 수 십 년 해왔던 연속적 사업이 있고 배분의 순서가 있다. 30번 순위인 걸 1순위로 올리고, 1순위에 있는 걸 30번 순서로 맞춰서 예산안을 짤 수 있는가. 우선 그것이 준비되어 있는가를 본다면 얼마나 개혁할 능력이 있는지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반부패, 잘 먹히지 않을 것"

프레시안 : 경제, 부패, 평화, 이념 가운데 이번 대선의 주된 이슈는 무엇이 될 것이라고 보나. 또 선거 구도는 어떻게 펼쳐질 것이라고 예상하나.

이대근 : 이슈는 경제, 부패, 평화, 이념의 순서가 될 것이다. 삶의 문제를 누가 개선할거냐, 이게 경제 이슈다. 성장주의에 바탕을 둔 신자유주의 경제와 분배와 복지를 강조하는 경제의 구도다.

그 다음이 부패와 반부패다. 범여권에선 부패세력과 반부패세력의 대결로 이슈를 만들어 보려고 하지만, 이 이슈는 경제 이슈만큼 크지 않다. 이명박 후보의 약점이 부패라고 할 때, 보수 세력이 그 대안으로 이회창을 생각한다는 건 이회창을 부패와 동일시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이명박 후보와 이회창 후보를 부패로 묶는 게 잘 먹혀들지 않을 것이다.

한나라당을 전쟁 세력, 범여권을 평화세력으로 대립시키는 것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한나라당의 정강정책도 정도 차이는 있지만 포용정책을 기본 전제로 하고 있다. 그리고 포용정책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되어 있다. 임기 말 정상회담이라는 문제에도 불구하고 정상회담과 그 결과에 대한 지지가 낮으면 60%, 많게는 80%까지 나왔다. 이를 반대하는 엄청난 세력이 있다고 고발하는 게 사람들한테 진실로 와 닿지 않는다.

프레시안 : 이회창 전 총재의 출마가 대선에 어떤 영향을 줄까.

이대근 : 이회창 후보의 등장으로 범여권에 유리하게 됐는가는 불분명하다. 이명박과 정동영의 대결이 아니라, 이명박과 이회창의 대결, 어떤 보수냐의 대결로 갈 수 있다. 두 후보의 지지율이 60%를 넘었다. 노무현과 노무현을 계승하는 세력은 사람들 관심 밖이라는 얘기다. 범여권은 부패 대 반부패, 미래세력 대 과거 세력과 같은 몇 가지 대선 구도를 만들려고 하지만 정권교체 대 정권계승, 과거세력 대 미래세력, 노무현 세력 대 반대세력, 말 잘하는 세력 대 일 잘하는 세력, 국정파탄세력 대 국정안정세력, 무능한 세력 대 유능한 세력, 이렇게 이명박 후보가 내세우는 이슈와 대립구도가 훨씬 더 잘 먹힌다.

"범여권 단일화, 시너지 효과 어렵다"

프레시안 : 범여권 후보들의 단일화 논의가 급류를 타고 있다. 단일화는 어떤 조건에서 가능하다고 보는지, 단일화가 이뤄지는 경우 그 파괴력은 어느 정도로 예상하는지 궁금하다.

이대근 : 범여권 문제를 단일화 중심으로 보는 것 자체가 문제다. 지금 범여권 지지율이 낮은 게 단일화가 안 되어 있어서라면 단일화의 필요성이 높아지겠지만 그게 아니다. 지금 단일화는 지난 2002년 후보 단일화와 다르다. 군소후보 연합이다. 외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 '저건 뭐 조무래기들 모아놓은 거네' 하는 느낌을 줄 수 있다.

정상적으로 단일화를 하려면 노선과 정책을 따져야 한다. 그러나 그럴 때는 지났다. 이제 시간도 없고 관심 가질 사람도 없다.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단일화를 할 수는 있지만, 그게 전환의 계기가 될지는 불확실하다. 자리와 지분을 나누는 밀실야합을 한다든지, 사기도박 하듯이 여론조사 식으로 하면 지푸라기를 잡는 게 아니라 지푸라기에 걸려 넘어지는 상황이 올 수 있다.

프레시안 : 세 후보의 지지율을 단순 합산하는 것 외에 단일화에 따른 기대효과가 불분명해 보인다.

이대근 : 장점을 갖고 있는 걸 모아서 시너지를 내자는 게 후보단일화의 의도인데 지금은 단점이 큰 후보 셋을 모으는 거다. 정동영 후보는 정체성이 불분명하다. 상황에 따라 입장이 수시로 바뀐다. 도대체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이인제 후보는 경선불복으로 한국정치를 후퇴시킨 장본인이다. 문국현 후보는 정당배경이 없고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검증되지 않은 개인이다. 이 불확실하고 단점 있는 셋을 결합시켜 시너지 효과를 낸다는 건 기대하기 어렵다.

프레시안 : 이번에도 비판적 지지론이 나왔다. 일부 지식인들은 '민주노동당 표는 사표'라는 주장을 하며 결국 범여권 후보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말한다.

이대근 : 민주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황당한 주장이다. 자신이 선택한 가치에 대한 평가는 남이 하는 게 아니다. 유권자 개개인의 권리다. 만약 투표권의 행사라는 게 반드시 당선돼야 한다는 걸 전제로 하는 것이라면 (비판적 지지론은) 맞는 얘기다. 그러나 표도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당선만을 위한 게 아니다. 당선자를 견제하라는 의미도 있는 거다. 견제도 왼쪽에서 하느냐, 오른쪽에서 하느냐가 다르다. 이런 것들이 국가를 운영하는 구성 요인이 되는 거다. 당선되는 것 하나만 가치가 있고 나머지는 가치가 없다는 것은 민주사회에서 통용될 수 없는 주장이다. 그건 선거행위 자체를 부정하는 거다.

"盧, 관료체계의 포로 됐다"
▲ ⓒ프레시안

프레시안 : 이 에디터는 칼럼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통합신당'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먼저 현 정권의 공과가 뭔지 짚어 달라.

이대근 : 공이 많지는 않다. 비주류가 집권했다는 것이 제일 크다. 또 권력집중을 완화시켰다. 그리고 돈 없는 선거 등 정치개혁을 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정부 업무처리 혁신은 공이었다고 생각한다.

잘못은 크게 네 가지다. 먼저 개혁진영의 지지기반을 붕괴시키고 해체시켰다. 노 대통령의 구체적인 정책은 진보나 개혁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그런데도 진보나 개혁이라는 수사를 계속 사용함으로써 현 정권의 실정이 마치 진보개혁이라는 가치를 추구한 데 따른 것으로 오인됐다. 진보나 개혁이 낡은 가치인 것으로 비춰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신자유주의를 전면 도입했다. 한국사회에 완고하게 있는 게 시장주의인데 이걸 확산시켰다. 또 분열과 대립, 갈등을 조장했다. 개혁세력이라도 결집시켜서 새로운 변화의 동력으로 만들어야 했는데, 그 내부조차 분열시켰다.

끝으로 전혀 준비 없이 대통령이 됨으로써 거대한 관료체계의 포로가 됐다. 정책 관료주권의 시대로 역전시켰다. 관료가 결정하면, 정부가 정부정책으로 만들고, 대통령이 자기노선으로 확정해서 국회로 넘기고, 국회에서 뚝딱 처리해서 시민에게 던져주는 식이었다. 관료들은 기술자이지 정책결정자가 아닌데, 현 정권에서는 관료가 정책결정자가 돼버렸다. 시민이나 국회는 정책의 집행 대상으로 전락했다.

프레시안 : 현 정권의 대표적인 실정을 들라면.

이대근 : 한미 FTA다. 사회적 합의가 되어 있지 않았다. 대통령이 처음부터 준비해온 것도 아니었다. 그것이 가져올 사회적 분열과 파장, 우리사회에 미칠 영향, 이런 수많은 문제들에 대한 검토와 준비 없이 단기간에 대통령의 권력 하나로 밀어붙였다.

프레시안 : 노무현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편의적으로 '원칙'과 '소신'을 뒤집는 정치인으로 묘사한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이대근 : 노 대통령이 원칙과 소신의 사나이라고 했던 건 대통령 되기 이전이다. 국가의 운영을 맡기 전까지는 원칙과 소신을 일관되게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국가의 운영을 맡는 위치로 들어오면 달라진다. 원칙을 어떻게 실행해야 될지에 대한 면밀한 준비와 꾸준한 노력이 없으면 실행할 수 없다.

노 대통령 역시 그것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게 드러난 것이다. 원칙은 말로만 있었을 뿐, 그것을 국가운영에 어떻게 적용할지에 대한 준비는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관료들에게 휩쓸리고 그 때 그 때 보이는 문제에 대처하는 데 급급하다 보니까 이리 가고 저리 가고 한 것이다. 원칙과 원칙에 따른 노선, 그리고 프로그램이 있었다면 모든 행보 하나하나가 착착 준비되고 그것들 간에 보조가 맞춰져 있었을 텐데, 그게 없다 보니까 어젠다가 불쑥불쑥 튀어 나오는 거다. 하나의 어젠다에 매달렸다가 그게 사라지면 새로운 걸 찾아서 매달리고 하는 게 반복돼 왔다.

대통령은 "그게 뭐가 중요하냐, 좌파건 신자유주의건 모두에게 좋으면 좋은 것 아니냐"는 건데, 그 어젠더들 간에 서로 충돌하는 요인이 있다는 건 보지 못한다. 여기에 노 대통령 특유의 독선이나 오만, 여전한 비주류의식이 더해졌다. 대통령에게 설득과 대화의 수단이 얼마나 많나. 그런데도 불구하고 비주류라는 생각만 갖고 있었다. 설득할 수 있는 수단과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프레시안 : 노 대통령이 관료들에게 휘둘렸다고 했는데, 노 대통령이 국민들과 커뮤니케이션하는 방식은 굉장히 공격적이었다.

이대근 : 노 대통령을 토론의 달인이라고 한다. 그러나 토론이라는 건 설득의 기술이다. 노 대통령에겐 그게 전혀 없었다. 말을 위한 말이었다. 자아가 굉장히 강한 사람이라서 자기의 고집과 아집을 표현하는 데는 능하지만 자기의 정책을 설득해서 필요성을 인정하게 하고 집행하는 능력은 없었던 거다.

"정동영, 盧 대통령과 뭐가 같고 뭐가 다른가"
▲ ⓒ프레시안

프레시안 : 열린우리당 해체부터 통합신당을 만들기까지의 과정에 대해 일관되게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다. 정체성에 대한 고민 없이 숫자놀음만 하고 있다는 게 비판의 요지 같은데, 이른바 범여권의 정체성이 뭐가 돼야 한다고 보나.

이대근 : 그건 내가 답할 바가 아니다. 범여권 스스로 얘기해야 하는 것이다. 그들이 얘기를 안 하니까 '너는 누구냐'고 묻게 되는 것이다. 자기 스스로 정의를 해야 하는데 안 했다. 얼마 전부터 선거가 본격화되니까 이런 저런 주장을 하고 있는데, 선거를 앞두고 주장하는 건 사람들이 안 믿는다. 정체성은 진짜 가지고 있어야 사람들이 믿는 거다. 일시적인 선거전술은 진정성도 없고 사람들에게 인식시키기도 어렵다.

무엇보다 노 대통령과의 관계가 불분명하다. 공과를 계승하겠다고 한다. 그럼 뭐가 공이고 과인지, 노 대통령하고 뭐가 같고 다른지 분명하게 제시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 어제(11월 7일) 관훈토론에서 정동영 후보가 노 대통령과의 관계를 설명한 게 있다. '철학과 뿌리는 같다, 그러나 실행방법과 정치방식은 다르게 하겠다'는 것이다. 철학과 뿌리가 같으면 같은 것 아닌가, 사람들은 그렇게 본다. 노 대통령이 하던 것처럼 하겠구나, 이렇게 생각한다. 정 후보는 실행과 정치방식은 달리 하겠다고 했지만 뭐가 달라질 것인지 막연하다.

프레시안 : 이 에디터가 범여권을 보는 시각은 대단히 신랄하고, 때론 글에서 '분노' 같은 게 느껴진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또 직설적인 화법이 부담스럽지는 않은지, 비판을 받는 당사자들의 반응은 어떤지 궁금하다.

이대근 : 자신들에 대해 분노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범여권으로선 행복한 거다. 지금 범여권은 사람들에게 분노할 대상도 못된다. 잊혀져가고 있고 관심도 없다. 내가 범여권을 강도 높게 비판한다고 하지만, 일반 시민들 마음속에 있는 것을 바로 끄집어낸다면, 내 비판은 그것의 천만분의 일도 반영하지 못하는 거라고 본다. 그렇게 비판을 받아야 마땅하다. 그렇게 비판을 받아도 정신이 들까 말까한 지경에 있지 않나 생각한다. 반응? 간접적으로 듣는다. '한숨 쉬더라'는 얘기도 들리고.

프레시안 : 우리 정치에서는 왜 '정체성', '일관성', '원칙' 같은 가치들이 지켜지지 않을까. 어떤 구조적인 요인이 있는 건 아닌가.

이대근 : 정당의 구조가 문제다. 민주당에 있건, 신당에 있건, 문국현 당에 있건, 다 비슷비슷하다. 예를 들어 김한길 같은 사람은 당을 만들고 없애고 해서 여러 군데 다녔는데, 그 당들이 아무런 차이가 없다. 사회의 균열이 정당에 반영되지 않는 것이다. 정당들이 사회의 다양한 이익을 대표하는 게 아니라 보수정당이 전부를 다 대표하다 보니까 그 안에서 이리 옮기고 저리 옮긴들 별 차이가 없다. 이 쪽 저 쪽의 경계선 자체가 없으니까 정체성을 굳이 따질 필요도 없고, 일관성을 따질 것도 없게 되는 것이다.

레토릭이 된 '진보'
▲ ⓒ프레시안

프레시안 : <경향신문>이 지난해 '진보개혁의 위기'를 기획해서 커다란 반향을 얻었다. 이 에디터께서 그 기획을 총괄했는데, 기획의 배경이 뭐였나.

이대근 : 직접적 배경은 지난해 5.31 지방선거다. '반(反) 노무현 광풍'이랄까, "노무현이 아니면 누구라도 찍어준다"는 '묻지마 투표'가 나타났다. 당시 한나라당 사정이 어땠나. 공천비리 등 한국 정치의 온갖 나쁜 행태가 다 드러났다. 한나라당에 지방자치를 맡기면 나라가 절단날 것 같은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한나라당에 표를 다 몰아줬다. "노무현 정부를 심판하는 게 우선이다, 심판의 결과로 부작용과 문제점이 노출되더라도 우선 노 정부를 심판해야 된다"는 '눈 먼 심판론'이었다. 노무현 정부가 어쩌다 이렇게 몰락했나, 단순히 노무현 정부의 몰락뿐만 아니라 진보세력 전체가 동반 몰락하는 일이 왜 일어났나, 한 때 한국사회의 희망이었던 민주화운동세력이 왜 이렇게 처참하게 몰락했나를 알아보자는 게 취지였다.

프레시안 : '진보'는 인기 없는 정치상품이 됐다. 사람들은 더 이상 '진보'를 신뢰하지 않는다. 외려 낡은 것으로 보기도 한다. 뭐가 잘못된 건가.

이대근 : 노 대통령이 솔직하게 "나는 보수주의자다", "신자유주의 개혁을 하고 있다", "내가 추구했던 진보적 가치는 국가 운영에서 실현될 수 없다"는 등 이런 것을 분명히 하고 시작했으면 됐는데, 거듭되는 실정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진보와 개혁의 슬로건을 끌어들였다. 왜? 그 때만 해도 진보는 아직 참신하고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기의 실정을 "좋은 것을 하려고 한다"는 의도로 덮으려고 '진보' 수사를 동원했다. 그게 사람들 사이에서 혼란을 불러일으켰다. 현 정부가 진보와 개혁을 추진한 것으로 오인됐고, 그 결과 '진보=실정'이라는 등식이 성립됐다.

"범여권, 기둥뿌리가 썩었다"

프레시안 : 범여권에 '미래가 있는 패배', '올바른 패배'를 주문했다. 어떤 의미인가.

이대근 : 이번 대선에서 이기려고 단기의 수를 쓰는 건 맞지 않다고 본다. 외려 부정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이회창 후보의 등장 이후 범한나라당의 지지율이 60% 넘게 나타나고 있다. 이건 한 마디로 "노무현은 절대 안 된다"는 의미다. 5.31 지방선거의 재판이다. 노무현 정부와 함께 했거나, 노무현 정부와 관계가 있거나, 암튼 '노'자 들어가는 건 절대 안 찍겠다는 국민적 합의가 되어 있다.

이런 엄중한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범여권은) 이미 패배했다. 선거 결과와 상관없이 이미 패배했다. 그걸 인정하고 이번 선거를 바라봐야 한다. 단기간에 기교를 부리고, 슬로건을 바꾸고, 이미지 개선해서 이겨보려고 한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설혹 이긴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범여권이 이길 수 있는 환경은 이미 끝났다고 생각한다. 올바로 져야 한다. 그러나 올바로 지기 위한 시간도 없고 기회도 놓쳤다. 신당 만드는 과정에 많은 문제가 있었다. 경선 과정도 정상적이지 않았다. 정동영 후보 선출되고 나서도 문제를 다 정리하지 못했다. 제대로 하려면 먼저 노무현 정부를 냉정하게 평가하고, 실패의 원인이 뭔지 반성하고, 무엇을 고쳐야 되고 무엇을 새로 준비해야 되는지를 제시하고, 그를 실행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논의하고 정당을 만들고, 그 노선과 원칙에 맞는 후보를 선출하고, 그 후보가 노선을 일관되게 주장하고 했어야 한다. 그랬다면 올바른 패배의 길로 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전혀 그 방향으로 가지 못했다. '무조건 뭉치자'고 몸집불리기를 했다. 그 결과 실질적으로 바뀐 게 없는, 기득권 세력의 이름만 바뀐 정당이 됐다.

이런 상태에서 선거에서 패배한다면 기둥부터 무너지게 된다. 패배해도 붙잡고 일어날 기둥이 있어야 하는데, 기둥뿌리가 썩어있기 때문에 붙잡고 일어날 여력도 없게 되는 것이다. 대선 끝나고 나면 인책론이 나올 텐데, 총선 앞두고 "위기다, 똘똘 뭉치자"고 하면서 대충 선거 치르려고 하면 또 다른 패배로 이어질 수 있다. (범여권은) '다음을 준비하는 패배'도 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프레시안 : '진보개혁' 세력에겐 암울한 정세가 예고되고 있다. 총선 이후 정치구도를 어떻게 전망하나.

이대근 : 대선이 끝나고 바로 총선이 이어진다. 총선은 대선 결과의 영향이 남아있을 때 치러진다. 새로 된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분위기가 남아 있을 가능성이 많고, 신당은 대패할 가능성이 많다. 대통령과 의회를 한 당이 장악하게 되면 국정운영의 장악력을 확고하게 가질 수 있는 장점도 있는 반면 견제할 세력이 없는 데 따른 다른 문제가 나올 수 있다. 신당이 패배하는 방식은, 그것이 한국 정치에 미칠 파장을 생각하면, 신당만의 문제가 아니다.

프레시안 : 좋은 면에서건 나쁜 면에서건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의 덕목'에 대해 전례 없이 풍부한 성찰의 경험을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다음 정권의 대통령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무엇이라고 보나.

이대근 : 이미 합의가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국정을 운영하는 기본적인 태도의 문제다. 분열과 대립, 갈등형에서 설득과 대화형으로 전환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우리 사회는 세대와 이념, 지역으로 분열되어 있다. 대립과 갈등을 치유해야 하는데, 노 대통령은 외려 대립 상황을 이용했다. 대립과 분열을 조장했다. 그럼으로써 자신의 실정은 능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자신이 비주류이고 힘이 없는 탓이라고, 사회적인 구조 탓이라고 변명했다. 미국 대통령을 제왕적 대통령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더 하다. 대통령이 올바로만 한다면 동원할 수 있는 자원과 수단은 많다. 대통령에겐 특히 '말'이라는 중요한 수단이 있다. 대통령의 '말'은 시민적 동의와 합의를 이끌어내는 굉장히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오히려 분열과 갈등을 촉발시키고 분쟁을 확산시킨 진원지로 잘못 활용됐다.

민노당은 왜 엘리트들만의 정당이 됐나
▲ ⓒ프레시안

프레시안 : 이 에디터께서는 영화 '괴물'을 다룬 한 칼럼에서 "삶을 왜곡하고 파괴하는 사회적 모순에 맞선 일상적인 투쟁만이 자기의 삶을 개선시킬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사회적 모순이 깊어질수록 사람들은 '패자'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이고, 그 결과는 '일상적인 투쟁'보다는 계층상승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기 위한 절망적인 노력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이런 '처지'와 '의식'의 분리가 왜곡된 정치적 선택을 불러온다는 지적도 있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필요한 건 뭔가.

이대근 : 일상적인 투쟁이라는 용어를 썼는데, 쉽게 말하면 작은 실천이다. 우리는 항상 거창한 것을 말한다. 거대담론에 쉽게 빠진다. 그게 편하다. "정치판 다 갈아엎어야 돼", "대통령 갈아야 돼", "전부 다 고쳐야 돼" 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잘못하고 있는 것, 자신의 눈앞에 있는 잘못은 안 본다. 작은 실천을 할 필요가 있다. 풀뿌리 운동, 지방자치 공동체 운동 같은 것을 통해 작은 변화를 만들고, 그 변화에 대한 성공과 만족이 또 다른 변화의 동력이 되는 선순환이 필요하다. '처지'와 '의식'의 분리를 말한다. 강남 사람은 계급적으로 생각하는데, 강북 사람은 자기 계급을 배반한다고 한다. 거창한 얘기에 빠지면 결국 다 똑같은 얘기를 하게 된다. 강남 사람이나 강북 사람이나 똑같이 하는 얘기가 된다. 그런데 강남 사람이 해야 할 일과 강북 사람이 할 일은 다르지 않나. 이런 차이는 자기 주변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깨닫게 되지 않을까.

프레시안 : 가장 서민적이라고 자부하는 민주노동당이 고전하고 있다.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이대근 : 민주노동당은 새로운 세대에 맞는 진보적 가치를 전혀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 진보가 뭔지 알고는 있나, 이런 생각도 든다. 특히 민족자주파니 하는 세력이 다수파를 차지하면서 시대착오적인 이념과 노선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자기가 대표해야 할 노동자, 서민이 무엇을 갖고 고민하며 고통 받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하면서 선언적으로 과거 세대의 낡은 가치를 강요하고 주입하려고 한다.

민주노동당이 왜 엘리트의 지지정당이 됐나. 왜 노동자의 지지정당이 안 됐는가. 단순하다. 노동자의 관심사와 이익을 전혀 대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권영길 후보가 경선에서 지명되고 맨 처음 내세운 구호가 "코리아 연방공화국을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지금 노동자 입장에서 보면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로 들리지 않겠나. 당장 내가 잘릴지 모르고, 저임금에 우유 값, 사교육비로 고통 받고 있는데, '코리아 연방공화국'을 만들어주겠다니 이게 무슨 서민들을 위한 건가. 기층과 괴리된 운동권 일부의 '쑥덕공론'의 결과가 아닌가. 이번 선거에서 민노당이 고전하는 건, 물론 진보정당이 처한 열악한 조건 탓도 있겠지만, 서민들이 가장 아파하고 관심 갖는 것을 내세우지 못하기 때문이다.

프레시안 : 오랜 시간 말씀 감사하다. //정제혁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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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엥란트


■ 경향신문 이대근 칼럼 보기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list.html?code=990339

ㅁ 그 칼럼에는 선술집 술맛이 감돈다 
정치칼럼도 '전국노래자랑'이 될 수 있다
[이대근 칼럼의 발견]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2008.10.3)==>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987998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987999

ㅁ '냉정'과 '열정' 사이
[최재천 서평]이대근 칼럼집 '와이키키브라더스를 위하여'(2009.2.2) ==>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20090202134056
http://news.khan.co.kr/section/khan_art_view.html?mode=view&artid=200901231642415&code=900308

ㅁ 경향·동아 21년 만에 뒤바뀐 운명 
경향 시민 격려·지지 봇물 ... 동아, 6월항쟁 ‘그 정신 어디갔나’(2008.6.9)==>
 http://www.journalist.or.kr/news/articleView.html?idxno=17701


[세명대 저널리즘 특강] 이대근 <경향신문> 정치·국제에디터
정부실패와 언론실패, 그 끈질긴 악순환의 고리
정당 행세하는 한국 언론
노무현 정부의 실패와 언론의 실패
이명박 정부, 성공할 것인가
결국 문제는 '신뢰 회복'
정치부 기자는 '의심'할 수 있어야(2008.10.16)==>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081016170747&Section=

ㅁ "범여권, '올바른 패배'의 기회도 놓쳤다"
[정치와 사람들② 이대근] 2007 대선, 신보수주의의 '입구'(2007.11.14)==>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20071114103048&Section=

[이대근 주요 칼럼]

[이대근 칼럼] 와이키키 브라더스(2006.8.30)==>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608301823191&code=990339

[이대근 칼럼] ‘호모루덴스’ 한나라당-한나라당이 집권하면 나라가 망한다
지금 야당으로의 정권교체보다 실패한 정권의 재집권이 더 나을 이유는 별로 없다(2006.9.27)==>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609271813021&code=990339

[이대근 칼럼] 김지하, 황석영, 손학규 (2007.3.28)==>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703281824141&code=990339

[이대근 칼럼]권정생, 그의 반역은 끝났는가(2007.5.23)==>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705231823251&code=990339

[이대근칼럼] 신당, 그 무덤에 아무도 초대말라-대통합과 손을 잡는 순간 죽음의 키스가 될 것(2007.9.12)==>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709121813341&code=990339

[이대근칼럼] 민노당은 진보적인가(2007.11.21)==>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711211919281&code=990339

[이대근칼럼] 지금 버리고 조직하고 발언하라(2008.1.2)==>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01021809141&code=990339

[이대근칼럼] 제3의 길, 자주파, 그리고 가짜들 (2008.1.16)==>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01161853531&code=990339

[이대근칼럼] 총선 투표 안한 54%가 말하는 것(2008.4.26)==>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04161809095&code=990339

[이대근칼럼] 이명박의 ‘국가 정체성’을 묻는다(2008.8.25)==>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06251807575&code=990339

[이대근 칼럼] 질주하는 18%(2008.8.6)==>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08062227145&code=990339

[이대근 칼럼] 전국 노래자랑(2008.8.20)==>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08201825075&code=990339

[이대근 칼럼] 불안한 세상, 평온한 민주당(2008.9.3)==>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09031807285&code=990339

[이대근칼럼] 한나라, 열린우리당의 길을 가고 있다(2009.1.7)==>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1071754505&code=990339
 
[이대근 칼럼] 용산 테러리스트-국가와 시민간 사회계약은 깨져(2009.2.4)==>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2041829005&code=990339

[이대근칼럼] 해머도 타협도 민주당을 살릴 수 없다-민주당 깨져야 현 정치질서 깨져(2009.3.4)==>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3041824325&code=990339



■ 한겨레신문 여현호 칼럼 보기 ==>
http://www.hani.co.kr/arti/SERIES/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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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 무덤 ... 대통합신당은 대실패연합"
[진단과 대응] <한겨레>와 <경향> 지면으로 통합신당 성토, 해체 촉구
 
취재부
이젠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해야

"내년 4월 총선에선 양당 체제가 완전히 허물어지고, 거대 한나라당에 몇 십 석의 고만고만한 당 한두 개, 그리고 나머지 군소 정당들의 구도가 될 수 있다. 이제는 그런 상황에도 대비해야 할 것 같다."(한겨레 여현호 '최악의 시나리오')

"대통합민주신당은 무덤이다. 문국현이든 누구든 더 이상 이 죽음의 집으로 초대해서는 안된다. 명백한 것은 대통합신당과 손을 잡는 순간 '죽음의 키스'가 될 것이란 점뿐이다."(경향 이대근 '신당, 그 무덤에 아무도 초대말라')


종이신문 중 비교적 개혁·진보 매체로 평가받는 한겨레신문과 경향신문의 최근 기명 칼럼 내용이다.

인터넷 매체와 달리 종이신문은 특정 정치세력에 대해 비판의 수위나 강도를 조절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두 칼럼은 상당히 파격적이다.

그만큼 현재 범여권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심각하고, 전망 또한 암울하다는 것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11일자 한겨레신문의 여현호 논설위원은 <최악의 시나리오>란 제목의 칼럼에서 "대통합신당이 경선이라는 형식, 통합이라는 모양새, 쟁점을 바꿀 수도 있는 변수 등 정치공학적 요소들은 다 갖췄지만, 정작 국민이 보고 싶은 '내용'이 없다."면서 "왜 집권해야 하는지, 집권하면 뭘 할 수 있는지, 그래서 왜 다시 표를 찍으러 투표소에 가야 하는지, 그 이유를 잠재적 지지층이 듣지 못한 탓에 지지층이 모이지 않는다."고 범여권의 현 상황을 진단했다.

그러면서 여 위원은 "정작 걱정되는 것은 그 다음, 다음이다."며 "대통합신당이 국민을 납득시키지 못해 결국 대선에서 진다면, 당을 유지할 수 있을까.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따라서 "내년 4월 총선에선 양당 체제가 완전히 허물어지고, 거대 한나라당에 몇 십 석의 고만고만한 당 한두 개, 그리고 나머지 군소 정당들의 구도가 될 수 있다."며 "이제는 그런 상황에도 대비해야 할 것 같다."고 토로했다.

범여권으로선 상상하고 싶지 않은 최악의 시나리오지만, 여 위원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정치권에선 이미 오래 전부터 이같은 우려가 팽배해 있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대통합신당의 죽음 위에 새 정치세력 탄생을 기다릴 수 밖에"

오늘(13)자 경향신문 이대근 정치·국제에디터의 비판은 더욱 신랄하다.

이 에디터는 대통합민주신당이 최근 보여준 당명 약칭 사용 불허 판결, 경선 과정에서 유령 선거인단 모집 등 각종 난맥상에 대해 "아무리 못난 놈이라 해도 어느 한 군데 예쁜 구석은 있게 마련인데, 이것은 곱게 봐줄 구석이 하나도 없다. 들여다 볼수록 밉상이요, 시간이 갈수록 가관이다. 정말 이러기도 쉽지 않다."며 힐난했다.

이 에디터는 또 "이 당이 당면한 진짜 문제는 정체성 상실이다."며 "이 당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 누구도 설명할 수 없다. 무엇을 위해 뭉쳤는지도 모른다."고 꼬집었다. "이 '99% 열린우리당'은 노무현 정부와 어정쩡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노무현 정부의 공과를 계승한다고 하는데 무엇이 공이고 과인지조차 구별할 줄 모른다."고 조롱했다.

아울러 현재 대통합민주신당의 대선 예비후보들에 대해서도 "손학규와 정동영, 그리고 노무현의 아들 딸들인 이해찬·유시민·한명숙은 여당과 야당에서 실패한 이들이다. 이 실패 세력이 똘똘 뭉쳐 질서있게 구축한 것이 대통합민주신당, 아니 '대실패 연합'이다."고 혹평했다.

그러면서 "이 실패 세력이 뭉치는 순간 대선의 불확실성이 제거되었는데, 그것은 '이명박이 과연 집권할 것인가'라는 반신반의가 사라진 것을 의미하며, 정권교체가 된다면 그것은 대통합민주신당의 공이 될 것이다."고 힐난했다.

이 에디터는 대통합민주신당과 단절된, 새로운 정치세력 탄생의 필요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 에디터는 "열린우리당이 흔적 없이 사라져 그들의 과거와 뒤엉킬 계기가 없었다면 다시 시작할 수 있었을 테지만 이제 그런 기회는 없을 것 같다."며 "대통합신당의 죽음 위에 새로운 개혁 정치 탄생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이런 전망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낡고 실패한 가짜 개혁·기득권 운동세력을 완전 해체시켜야 한다."며 "대통합신당의 기회주의자들이 나중에 또 반성합네 하고 새 숙주로 옮겨가지 못하도록 깨끗이 청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에디터는 "그런 점에서 대통합신당이 기여할 게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며 "다행히 버려야 할 모든 것들이 이 한 바구니에 담기게 되었다."고 말해, 대통합민주신당을 실패한 정치인들을 한꺼번에 버리기 좋게 모아놓은 '쓰레기통(?)'에 비유했다.

이 에디터는 "대통합민주신당은 무덤이다."고 규정한 뒤, "문국현이든 누구든 더 이상 이 죽음의 집으로 초대해서는 안된다."며 "명백한 것은 대통합신당과 손을 잡는 순간 '죽음의 키스'가 될 것이다."고 경고했다.

이 에디터는 마지막으로 이 죽음의 잔치에서 살아 날 수 있는 길은 "자기 원칙과 노선, 정책을 견지하며 외롭더라도 꼿꼿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며 "그런 비장함이 죽은 열정을 살려 태풍을 몰고 올 수도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최소한 '미래가 있는 패배'는 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한마디로 질 때 지더라도 '올바른 패배'를 해야 다음 기회라도 살릴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죽음의 키스' 신청한 문국현과 '절교' 선언한 임종인·김성호

이 두 칼럼에서 공통된 인식은 "현재의 대통합민주신당 등 범여권으로는 더이상 가망이 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럼 누가, 어떻게 이 위기를 구해낼 수 있을 것인가.'이다. 두 칼럼에서 그런 해법 제시는 구체적으로 없었다.

다만 이대근 에디터는 "대통합민주신당의 기회주의자들을 비롯해 낡고 실패한 가짜 개혁·기득권 운동세력을 완전 해체시키고, 그 바탕위에서 새로운 개혁 정치 탄생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리고 "(새 정치세력이) 자기 원칙과 노선, 정책을 견지하며 '외롭더라도 꼿꼿하게'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며 "누구든 대통합민주신당과 손을 잡는 순간 죽음의 키스가 될 것이다."고 경고 한 점이 눈에 띈다.

이 에디터의 주장대로라면, 지난 5일 "자신과 범여권 후보가 단일화 가능성이 99%이며, 연정도 할 수 있다."고 분명하게 밝힌 문국현 후보는 이미 대통합민주신당과 '뜨거운 키스'를 신청해 놓은 상태가 된다. 대통합민주신당의 대선 후보가 언제든지 달려와서 입만 맞추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에디터의 경고대로 '죽음의 키스'가 될 것인가.

반면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서민과 중산층을 제대로 대변할, 책임 있는 새 민주개혁 정당을 창당하겠다."고 선언한, 임종인 의원(무소속)과 김성호 전 의원은 "범여권은 물론, 그런 문국현 후보와도 연대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못 박고 있다.

임·김 두 의원이 새로운 정당을 창당하기 위해 결성한 <새정치 개혁연합>은 "정체도 불분명하고, 오늘의 대실패에 책임져야 할 세력들만 모인 대통합민주신당은 하루빨리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 면에서 임·김 두 의원은 이대근 에디터의 주장들과 상당 부분 일치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문국현 후보 측이나 임종인·김성호의 <새정치 개혁연합>이나 궁극적으로는 붕괴된 개혁·진보 세력의 복원을 꿈꾸고 있다.

문제는 방법이다. 그런 점에서 문국현 측과 임종인·김성호 측은 극명하게 다른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이 둘의 차이점이 앞으로 대중들에게 어떻게 평가되느냐, 누가 더 믿음이 가느냐, 누가 더 일관되게 자신의 주장을 실천해가느냐에 따라 새로운 정치세력의 중심으로 부각될 수도, 찻잔 속 태풍으로 그칠 수도 있을 것이다.

망가질 대로 망가진 범여권에 관심 끊은 사람이라면, 민주노동당과 함께 이들의 새로운 시도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볼만하지 않을까. 마땅히 따로 놀 데도 없다면...

☞ 최악의 시나리오/여현호(한겨레신문) 전문 보기

☞ 신당, 그 무덤에 아무도 초대말라/이대근(경향신문) 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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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13 [15:55]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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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엥란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