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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2.23 ‘언저리국민’과 공짜점심의 수수께끼(1)(2005.1.25)

‘언저리국민’과 공짜점심의 수수께끼(1)
[신년 제안] 참혹한 ‘양극화 분단’의 현실과 ‘공짜 점심의 수수께끼’
 
김영국

대자보 창간 6주년을 맞았습니다. 대자보의 오늘을 있게 한 독자제현께 존경과 감사를 드립니다.
2005년 최대의 화두가 되고 있는 우리사회 ‘양극화’와 ‘분배와 성장’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자 ‘언저리 국민과 공짜 점심의 수수께끼’란 타이틀로 (1)참혹한 ‘양극화 분단’의 현실과 공짜 점심의 수수께끼, (2)참여정부의 경제관과 ‘만원의 행복’, (3)노동.진보진영의 대응, ‘위기인가 기회인가’를 3회에 걸쳐 기고합니다. 독자제현의 지도편달을 바랍니다.-필자 주.


두 개의 대한민국, 양극화 분단의 시대

대한민국 분단의 역사는 참 모질고도 길다.

동족상잔의 남북 분단, 남한내 지역갈등의 동서 분단, 그리고 2004년부터 선명하게 모습을드러낸 상류층과 서민대중사이의 극심한 빈부격차가 낳은 ‘양극화 분단(economic polarization)’

‘삼팔선’이 아직도 남북을 가르고 있는 채 우리 국민들 가슴속에는 어느덧 ‘오오선’, ‘이팔선’이 칼자국처럼 아로새겨지고 있다.

나라를 부도위기로 내몰고도 164조원이라는 엄청난 국민혈세를 머금고 부활한 재벌을 비롯한 대기업과 은행 그리고 이들 주식을 헐값에 사모은 외국인투자가들은 오늘날 주체할 수 없는 수익과 현금, 상여금 등으로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그리고 그들 언저리에 국민의 절대다수를 이루고 있는 중소기업, 영세자영업자, 비정규직, 신용불량자, 실직자, 신빈곤층이 날아드는 영수증과 고지서를 앞에 놓고 텅빈 지값을 매만지며 눈물과 함숨을 짓고 있다.

분단은 그 상처의 깊이만큼이나 우리 사회에서 중대한 정치적 변혁을 수반해왔다. 2004년부터 뚜렷하게 부각되고 있는 ‘경제적 양극화 분단’은 또 어떤 변화를 초래하게 될 것인가. 불행하게도 앞선 두 번의 분단은 한국 정치를 기득권층과 수구언론의 잘 짜여진 프로파겐다로 ‘반공’과 ‘지역정서’라는 우산속에 온갖 부패와 정치적 퇴행을 양산했다.

쌍방향 소통구조가 한층 강화된 지금, 경제적 양극화 분단이 서민대중에게 굴절없이 전달되고, 각성을 가져온다면 그 처방과 극복과정에서 한국 정치는 분명 또다른 질적 변화를 초래게 될 것이다.

참혹한 대한민국 양극화 분단의 현실

우리사회는 상위 20%의 국민이 부(富)의 80%를 누리고 있다. 이른바 ‘2대 8 법칙’이 지배하는 사회다. 세계에서도 유례가 없는 압축성장의 과정에서 이 같은 소득불평등의 갈등구조가 깊게 뿌리를 내렸다. ‘부자들의, 부자들에 의한, 부자들을 위한’ 나라가 되어 가고 있는 셈이다.

중산층이 소멸해가고 있는 지금 한국사회의 상위층과 하위층, 강남과 강북, 대기업과 중소기업, 수출과 내수(기업과 가계), 사용자와 노동자 간의 반목과 대립도 기본적으론 2대 8 법칙이 낳은 병폐다.

‘아랫목과 윗목’, ‘보일러 교체와 담요 몇 장’ 그리고 ‘이태백, 삼팔선, 사오정, 오륙도, 육이오’ 등으로 언명되는 2005년 대한민국 양극화 분단의 현실은 실로 참혹하다.

단지 소유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부와 소득의 원천이 되는 ‘땅’은 상위 5%의 사람들이 절반 가량을 갖고 있고, 상위 20%까지 확대하면 이들이 우리나라 땅의 70%를 소유하고 있다. 땅에 비하면 주택은 그래도 나은 편이지만, 주택소유 총세대수는 832만 세대로 이중 2채 이상의 집을 가진 세대가 276만 세대에 이른다.

땅값은 최근 4년 동안 연평균 95조원씩 불어났고, 땅값이 10%만 올라도 토지 소유 상위 5%의 사람들은 앉은 자리에서 105조원을 벌게 되면서 땅값, 집값이 들썩거릴 때마다 한국은 소수 지주들과 부자들에게 축복의 나라가 된다. 

▲지금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빈부격차로 인한 양극화, 그리고 희망없는 미래이다.     © 대자보


이처럼 땅과 집의 극심한 소유 편중은 가격 상승과 함께 빈부격차를 더욱 크게 벌려놓는 핵심 요인이며, 건축 인•허가, 불법적인 토지의 형질변경 관련 떡고물로 공무원 부패의 온상일 뿐 아니라 난개발의 요인이기도 했다.

‘불황땐 누구나 어렵다’는 상식도 한국에선 이제 사실이 아니다. 외환위기 때보다 힘들다던 지난해, 상장 대기업과 은행들은 유래없는 호시절을 누렸다.

12월 결산 상장기업(금융업 제외)의 당기 순이익은 지난해 사상 최고치에 이르렀다. 무엇보다 이런 수익의 대부분은 상위 5개 기업이 전체의 43%를 차지했고, 상위 10개 기업으로 보면 전체의 57%나 될 정도로 소수 대기업이 폭식함으로서 ‘기업하기 어려운 나라’라는 재계의 주장은 뭔가를 더 얻어내기 위한 엄살에 불과했다.

저금리 기조 속에 공격적으로 대출 규모를 늘린 은행들도 예대마진과 일반 수수료 수익을 통해 사상 최대의 순익을 냈다.

이들 상장 대기업과 은행의 공통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오늘날 극심한 양극화 분단을 초래한 아이엠에프 사태의 주범이면서 동시에 엄청난 국민혈세를 수혈받아 부활한 최대의 수혜자라는 점이다. 또 하나는 이들의 외국인 지분율이 높다는 점이다. 은행 주식의 65%, 상장사 전체 주식의 43%를 외국인들에게 내주었다.

나라 경제는 침체에 허덕이고 있지만, 몇몇 대기업과 은행의 주주들 그리고 외국인 투자가는 나홀로 호황을 누리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서민대중의 어려움에 매우 인색하거나 오히려 짐이 되고 있다.

주식시장의 전광판이 900포인트를 넘나들며 연일 ‘빨간 불쇼’를 펼쳐도 개미들의 환호는 온데간데 없고, 외국인투자가와 일부 발빠른 기관투자가들의 미소속에 먼나라의 축제가 돼버린 지 오래다. 주식시장을 통해 조달한 자금이 설비투자 재원으로서 차지하는 비중은 꾸준히 줄어들면서 더 이상 ‘자본주의의 꽃’이 아닌 소수 재력가와 외국 투기자본의 ‘놀이터’로 전락해 가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외국인에 대한 배당과 지급이자로 유출된 돈은 총 64조원 가량으로 '삼성전자' 하나를 날렸다. 이 돈은 또 ‘국민기업’ 포스코 네 개, 국민은행 다섯 개를 살 수 있는 액수다. 외환위기 이후 외국인들이 올린 시세차익도 13조원에 이른다. KT 같은 우량 기업 하나가 외국인의 손에 넘어간 셈이다.

외국계 투자기관이 매입해 소유한 서울의 주요 업무용 빌딩만 총 4조2,294억 원에 이른다.

물론 이런 국부유출은 외환위기 극복과정에서 불파기한 ‘외환위기 비용’이란 성격도 있지만 구조조정이라는 명분에 휘둘려 워낙 싼값에 매각함으로써 그 몇 배를 지불했음에도 외국인이 납세나 인건비 지출, 선진기술 도입을 통해 국민경제에 기여한 몫은 작다는 점이다.

정부가 5조원의 국민 세금을 날리면서 매각한 제일은행의 인수자 뉴브리지캐피탈과 한미은행의 칼라일펀드, 강남 스타타워의 론스타는 각각 1조 2천억, 6천억, 2천 6백억의 수익을 걷어갔지만 이들은 조세회피지역에 페이퍼 컴퍼니 설립 등의 방법으로 돈은 우리나라에서 벌고도 세금은 한 푼도 내지 않았다.

일본의 신세이 조항이나 영국과 미국의 횡재세 부과 등 외국에도 있는 투기자본의 조세회피방지 조치를 마련하지 않은 채 외국자본만능론의 함정에 빠져 허우적대던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이런 대기업과 은행 그리고 외국인의 즐거운 비명 뒤엔 대다수 중소기업과 서민대중의 힘겨운 신음과 화병(火病)이 이어지며 깊어진 소득격차만큼 갈등은 커지고 희망은 엇갈리고 있다.

대기업들이 각종 원가부담을 약자인 중소 협력업체들에 떠넘기는 불공정거래가 횡횡하면서 중소기업들은 이로 인한 수익성 악화를 노동자의 임금 삭감으로 전가하기 때문에 기업 규모에 따른 노동자의 상대적 임금 수준은 해가 갈수록 크게 벌어지고 있다.

국내 중소기업의 65%가 대기업과 하도급 관계를 맺고 있는 상황에서, 마피아보다 무섭다는 원청기업의 보복이 두려워 중소기업은 울며 겨자먹기로 매년 ‘시아르(납품단가 인하)’를 감내하고 납품할 수 밖에 없으며 결국 재하청 업체를 쥐어짜고, 노동자들을 쥐어짜고, 이는 또다시 중소기업의 투자 여력을 갉아먹고, 기술력을 쌓을 틈이 없어져 ‘협력 파트너’로서의 지위는 갈수록 열악해지는 악순환이 계속돼 온 것이다.

그런가하면 중소기업과 서민대중은 얌체 전당포가 돼버린 은행들로부터 각각 ‘요주의’, ‘담보대출비율’이란 거대한 장벽에 가로막혀 사채와 카드깡으로 내몰리면서 살인적인 ‘이자의 덫’에 걸려 헉헉대며, 그것도 모자라 각종 금융거래 수수료 인상과 확대로 곤궁한 주머니만 털리고 있다.

우리나라는 2003년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가운데 한 나라의 경제 규모를 나타내는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10위나 된다. 소득증가율, 경제성장율, 수출증가율도 각각 7위. 6위, 3위를 기록하며 상위에 속했다. 2004년 우리나라 수출은 2500억달러 규모로 연간 30%선의 증가율을 기록하며 쾌속 질주를 이어갔다.

세계가 주목할 만한 성장을 해 왔음이 다시한번 확인된다. 1인당 국민소득(명목 GNI) 1만2646달러로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하위권이라고는 해도 일단 양적인 면에서 선진국에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수치에 만족해도 좋은 것인가. 경제규모의 급성장에 걸맞게 국민 대대수의 삶의 질이 높아진 것인가이다. 현실은 결코 그렇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우리를 비참하게 만드는 것은 노동시장의 먹이사슬 맨 밑바닥에 약탈적 저임금에 시달리며 ‘제3 신분’으로 굳어진 ‘비정규직’이 전체 임금노동자의 절반이 넘는(56%) 800만명이나 깔려 있으며, 넘쳐나는 실업자(80만)와 신용불량자들(380만), 국민기초생활보장 비수급 대상인 차상위 빈곤층(300만)이 노동시장 밖으로 밀려나면서 하루하루 생존의 위협속에 신음하고 있다는 현실이다.

'728만원 對 53만원'로 표현되는 상위계층과 하위계층의 월평균 소득격차, 민망할 정도로 추락해버린 노동소득 분배율(59%), 전국 10가구중 3가구꼴로 적자, 가구당 빛 3,000만원꼴 사상최대, 발표될때마다 ‘사상 최고치’라는 꼬리표가 붙어 나오는 부정적인 경제지표들, “열심히 일해도 잘살 수 없는 세상이다”며 푸념하는 근로자들, 위기를 넘어 절망을 체감하고 있다는 국민이 압도적이라는 여론조사 수치들은 오늘날 대한민국 서민대중의 적나라한 ‘고통지수’이다.

시장으로부터 밀려난 사람들에 대해 극히 폐쇄적인 한국의 노동시장구조에서, 그리고 열패자들에게 가혹한 한국사회의 풍토에서 이들은 실로 소외와 궁핍, 사회적 차별과 천시를 감내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더군다나 이렇게 엄청난 수의 서민대중이 빚에 쪼들리고, 갚지 못해 이혼과 자살 등이 늘어나면서 한국사회는 가족과 사회 해체의 위기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또한 우리 사회의 연대가 깨지고 사회 구성원들 상당수가 ‘이방인’으로 느끼게 되는 경향이 확산되고 있다.

이미 한국 사회는 10가구 중 1가구가 절대빈곤 상태에 있으며, 절대빈곤층 중 노인.장애인.여성비율이 높아지고, 불안정노동에 종사하는 비율도 갈수록 증대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들은 생존을 위해서 소득보다 높은 지출을 할 수밖에 없으며, 부채는 늘어나고 신용불량자로 내몰리기 쉬운 취약계층이 된다.

이들의 초과지출을 발생시키는 대표적인 요인들이 주로 민간시장에 맡겨 운영되고 있는 주거, 교육, 의료다. 이미 평균소득층도 교육비와 주거비에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고, 식구 중 암 환자 한 명 생기면 가족전체가 길거리에 나앉는 것은 우리 사회의 상식이 되어 버렸다. 기초적인 생활 유지와 자녀 교육에 너무 많은 돈이 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소득층과의 현격한 격차가 고착화 되면서 빈곤은 세습될 수밖에 없다.

누군가 게을러서 혹은 눈이 높아서 빈곤해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다만 운이 좋아서 가난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이제 빈민에게 찍었던 ‘주홍글씨’는 빈곤을 만들어내는 우리 사회에 찍어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은 그래서 더욱 설득력이 있다.

‘21세기’라는 첨단 자본주의로 문명화된 사회속에서, 기이하게도 ‘빈곤’의 문제는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심각한 세계사적 문제가 되고 있다.

양극화라는 가치중립적인 표현을 쓰고 있지만, 현실의 실상은 피라미드의 꼭지점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빈곤의 한계선으로 하양이동을 하고 있는 ‘초극화’가 사태의 진실에 가까울 지도 모르겠다. 그런점에서 앞서 말한 2대 8의 사회를 이야기하는 것도 이제는 고전이 되어가고 있고, 오늘의 현실은 차라리 ‘1대 9’의 사회로 이행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렇듯 우리사회를 깊이를 알 수 없는 함정으로 빠져들게 만들고 있는 ‘양극화 분단’은 이제 사회 갈등 차원을 넘어,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한 성장, 나아가 민주주의 기반을 위협하는 절박함으로 다가오고 있다.

지금 경제가 어려운 건 내수다. 그중에 특히 소비의 침체는 2003년 OECD국가중 가장 낮은 민간소비 증가율이 보여주듯이 정도뿐 아니라 기간도 오랫동안 지속되면서 심각한 상태라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이처럼 소비가 안되는 이유도 2001년과 2003년 신용카드 남발과 부동산 군불 같은 ‘모르핀 주사’에 취해 일시적으로 반짝 호황을 누렸던 신용카드 거품과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엄청나게 불어난 가계부채가 소비여력을 잠식하면서 본격화 되었다.

여기에 노동시장이 불안정해지면서 비정규직이 늘어났고, 정규직조차 미래가 불확실해져 장래를 걱정하게 되면서 더욱 소비를 하지 않게 됐다.

그리고 저소득층에 대한 사회 안전망의 미비는 서민대중 스스로 식당과 택시기사 등으로 ‘개인 안정망’ 삼아 전업하면서 자영업자의 폭증을 방치했다. 선진국에 비해 세 배나 높은 자영업자 비중은 오늘날 공급과잉으로 가장 심한 타격을 받게 되었으며 구조적인 문제화 되어 사태해결을 더욱 어럽게 만들고 있다.

얼빠진 일부 언론에서는 소비 진작을 위해 지값을 열라고 다그치지만 서민들은 지값을 열어도 그 안에 돈이 없다. 정작 지값을 열어야 할 재계와 상류층은 사상 최대의 현금을 쌓아두고도 뒷짐지고 투자가 급한 정부를 압박하며 자신들의 영향력 확대의 기회로 활용하려 들거나, 일부는 국내 소비보다 해외 소비를 늘리면서 상황을 더욱 꼬이게 만들고 있다.

고용불안에 민감할 수 밖에 없는 비정규직과 소외계층은 경제가 좋지 않으면 지갑을 빨리 닫고, 경기 회복기에도 지갑을 늦게 여는 경향성 때문에 이들 계층이 늘어날수록 우리 사회는 경기가 회복되더라도 소비 회복이 늦어지는 현상이 지속될 수 밖에 없다.

대안은 차고 넘쳐, 정치주체들과 국민의 관심과 의지가 문제

이쯤되면 체질적으로 혹은 조건반사적으로 “그럼 대안은 뭔데”라고 되묻거나, “그래밨자 당신도 찌질이(?)과 아니냐”며 힐끔거리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우리 조금 솔직해 지자. 대안이 뭔데라고 묻기 전에 관심 좀 가져보자고…경제적 양극화의 부작용과 해법에 대한 수많은 이론과 진보적 정책 대안은 없었던 게 아니라 이미 흘러 넘칠 만큼 나와 있었다. 다만 언론이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을 뿐이고, 국민들은 알려고 하지 않았으며, 정치꾼과 관료들은 생각하기 싫었을 뿐이다. 그래서 진보적 대안은 늘상 시뮬레이션은 커녕 테이블에 조차 초대받지 못했고, 딱 그만큼 오늘의 서민대중들도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어버린거 아닌가.”

실제 1990년대 이후 다양한 실증 분석 결과, 불평등이 심한 나라의 성장률이 낮으며 재분배 정책을 통해 경제 성장을 촉진할 수 있다는 쪽으로 잠정적 결론이 내려져 있다.

상식적으로도 혁신을 이루는 위쪽(대기업 등)을 아래쪽(중소기업 등)에서 받쳐주지 않으면 위쪽도 차츰 힘을 잃게 마련이다. 또한 사회 안전망을 갖춰야 구조조정에 대한 저항이 약해지고, 리스크(위험)를 안는 경제 행위를 하게 되기 때문에 분배 정책을 비롯한 사회 안전망을 강화하는 것은 기업 혁신 및 구조조정과도 보완 관계를 이룬다.

부유층의 저축이 투자로 이어지지 않고 단지 과잉자본으로 부동 자금화하는 경우라면 ‘부유층의 높은 저축과 고투자가 고성장으로 이어진다’는 경제학 고전파의 설명은 정책적 유효성을 잃고 만다. 더욱이 부유층의 소비가 수입품으로 향한다면 부유층의 소득이 ‘트리클다운(trickle-down)’ 효과도 거둘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실태가 이를 증명해주 고 있다.

케인스주의에서는 ‘소비 성향이 저소득층의 소득이 늘어야 소비 증가 → 생산 증가 → 투자 증가 → 고성장으로 이어진다’는 정반대 경로를 제시한 바 있다.

사실 우리 사회의 양극화 문제를 푸는 데서 부딪치는 가장 큰 어려움은 해법의 부재보다는 덮어놓고 ‘분배=성장 잠재력 훼손’으로 여기는 ‘성장-분배 논란’의 저급성이다. 양극화를 풀려면 다양한 분배, 재분배 정책을 동원해야 하는데 이는 곧바로 성장 잠재력을 해친다는 논란으로 이어진다. 심지어 좌파 정책이라는 ‘색깔 시비’에 휘말리기까지 한다. 이런 인식은 특정 정치 세력에 머물지 않고 양극화의 피해자인 중간선 아래층의 뇌리에도 광범위하게 각인돼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경제에 있어서 사람의 창조적 아이디어보다 설비투자나 노동 시간을 많이 투입하는 양적 성장일변도의 모습을 보이는 사회에서 분배 정책은 사람에 대한 ‘투자’가 아니라 ‘소비’로 여겨져 ‘분배=성장 잠재력 훼손’이란 단순 논리만 득세하게 된다.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면 여유 시간 동안 학습을 하게 되고 경제적인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얻게 된다는 따뜻하면서도 당연한 추론은 발을 붙이기 어렵다.

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원에 따르면 1990년대 이후 다양한 실증 분석 결과 소득 및 부의 불평등도와 경제 성장 사이에 반비례 관계가 있는 것으로 밝혀지면서 성장과 분배가 상충한다는 고정관념은 깨지기 시작했다.

또한 현대 경제학자들 사이에도 불평등이 심한 경제일수록 성장률도 낮다는 게 정설로 굳어지고 있으며, 재분배 정책을 통해 경제 성장을 촉진할 수 있다는 데 폭넓은 합의가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이는 복지 정책을 중시하는 유럽 국가들은 물론, 신자유주의가 판치는 미국의 학계에서도 마찬가지다.


1993년부터 미국에서는 많은 경제학자들에 의해 재분배 정책 지표들과 경제성장률 사이에 비례 관계가 있으며, 미국의 전체 계층에 대해 학자금 이용 가능성을 완전 평등하게 할 경우 장기 균형 국내총생산(GDP) 수준이 3.2% 증가한다고 분석됐다. 또한 GDP 6%를 재분배에 사용할 경우(상위 30% 소득 계층이 하위 70% 계층을 지원하는 방식) 하위 계층의 인적 자본 투자 증가로 미국의 장기 경제성장률이 0.5%포인트 오르는 것으로 추정됐다.

거대 언론에 뻔질나게 이름을 들이미는 성장위주의 경제학자나 관료, 정치인들의 주장중에 진보적인 대안적 경제정책에 대해 흔히 하는 ‘비아냥’이 있다.

그것은 분배중심 혹은 분배와 성장의 조화에 초점을 둔 진보적 정책으로 ‘한국경제를 실험하려 들지 말라’는 것이다. 기가 찰 노릇이다. 대한민국 50년간 우리는 성장 일변도의 경제정책을 추구해 왔으며 이렇다할 분배정잭 한번 써본 적이 없다.

심지어 수구세력에 의해 좌파적이라는 터무니 없는 공격을 받았던 참여정부조차 대통령과 경제수장까지 나서 “참여정부는 분배정책은 커녕, 존 케리 미국 민주당 후보진영보다도 보수적이다”고 실토할 정도다.

그 결과는 어떠 했는가. 한국은 사상초유의 국가부도사태 직전으로 내몰렸으며, 오늘날 절대다수의 서민대중이 80%의 부를 움켜쥔 소수 기득권층의 담벼락 언저리에서 신음하고 있다. 도대체 이런 야만적인 성장위주의 경제정책 실험이 지난 50년도 부족해서 얼마나 더 대한민국을 실험해야 한다는 것인가.

지금 우리사회는 ‘성장’이 문제가 아니라 ‘생존’이 문제가 되는 사람들이 주변에 부지기수로 널려 있다. ‘앞이 안보이는 빈곤’이 우리사회를 향후 어떻게 질적으로 변화시켜 나갈 것인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한 사회가 절망상태의 빈곤의 확산으로 히스테릭한 변화심리가 대중들의 허한 가슴을 채워갈 때 만나는 사회상은 기억하고 싶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는 교훈을 역사는 우리에게 수없이 가르쳐 주었다.

최근 결식아동의 부실 도시락 파문이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결식아동들이 전국에 몇 십만명 있다. 우리 사회가 이 아이들을 방치하지 않고 따뜻한 밥 한 끼 먹을 수 있게 해준다면 이들은 제대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며, 후일 훌륭한 대한민국의 인재로 자라서 경제성장에 기여할 것이다.

무엇보다 이들은 자라면서 국가와 사회로부터 받은 도움을 잊지 않을 것이며, 자신들이 성공했을 때 또 다른 소외계층에 대한 따뜻한 배려와 도움을 이어갈 것이다. 그렇게 대한민국은 구성원들이 나눔의 미학을 실천한만큼 더불어 성장할 것이다.

가난한 학생들이 재능이 있어도 학교를 다닐 수 없는 형편일 경우 국가나 사회가 적극적으로 도움을 줄 때 공공의식을 갖춘 인적자본의 확충이라는 측면에서 그 효과는 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미국 피터 린더트 교수를 비롯한 현대 경제사학자들이 소득 재분배가 성장에 도움이 된다며 제시한 ‘공짜 점심의 수수께끼’(free lunch puzzle)를 우리도 한번쯤 제대로 풀어볼 때가 되지 않았는가.

우리만의 제3의 길을 모색하는 과정은 다양할 수 있지만, 어느 경우에도 복지확충과 분배개선은 더 강조돼야 한다.

양극화 해법, ‘힘있고, 가진 자’들의 역지사지(易地思之)가 우선

양극화의 교과서적 해법은 빤하다. 양극화의 원인을 고스란히 뒤집어 산업 연관을 강화하고, 중소기업 혁신을 유도하며, 인적 자본을 육성함과 아울러 사회 안전망을 확충하는 것이다.

결국은 중산층의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것이다. 제조업은 물론이고 복지, 문화관광 등 서비스업, 특히 교육과 같이 인적자본이 필요한 분야 등 유망산업을 많이 발굴해 내야만 한다.

소득의 ‘재분배’ 정책과 함께 부동산, 금융자산, 교육인적 자본 투자방식의 개선을 통해 자산의 원천적 ‘분배’ 개선을 유도해야 할 것이다.

영미형으로만 갔을 때 우리 사회의 미래가 있겠는가. 외환위기 이후 영미형이 최고인 것처럼 여겨지는데, 효율성과 일자리 창출에서 강하다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불평등을 심화시킨다는 큰 단점이 있다. 따라서 영미형이나 유럽형이 아니라 제3의 한국형일 수 있는 그런 것을 찾아야 한다.

지금 우리사회는 모든 문제를 시장으로만 해결하려는 시장 만능주의가 팽배해있다. 영.미에서도 발견하기 어려운 의료와 교육, 교통, 심지어 물까지도 사적으로 해결하려 한다. 이런 지나친 불균형을 바로잡는 게 국가와 시민사회다. 아직까지 민주주의와 참여가 부족한 데 따른 일방통행이 잦고, 그 폐단을 뒤늦게 시정하는 데 막대한 비용을 치르고 있다. 첫 단계부터 당사자들이 참여하는 ‘당사자 자본주의’의 장점을 살릴 필요가 있다. 또 우리가 치열한 세계 경쟁에서 생존할 수 있는 자원은 우수한 인력이다. 때문에 기든스가 말하는 ‘사회투자형 국가’를 지향할 필요도 있다.

양극화 분단을 딛고 따뜻하고, 고루 잘사는 사회로 가는 길에는 무엇보다도 정치권력과 부를 누리고 있는 ‘힘있고, 가진 자’들의 서민대중에 대한 역지사지(易地思之)가 우선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수혜가 아닌 공동체 안에서 궁극적으로 자신들을 위하는 길이란 ‘진짜 실용주의’다운 자세를 갖는 것이다.

‘힘없고, 덜가진 자’들의 역지사지는 늘상 공허할 뿐이기 때문이다.

양극화 해결의 열쇠 ‘비정규직’, 일한만큼 받는 보상시스템 세워야

비정규직의 증가와 이에 대한 처방은 우리 사회 양극화를 해결하는 첫걸음이자 열쇠이다.

엄청나게 불어난 비정규직의 숫자도 문제거니와 여기엔 고령자, 노동시장에 신규진입하는 청년 세대, 70%가 비정규직인 여성의 열악한 노동조건 등 우리 사회 소외계층의 제반 문제가 비정규직에 응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1천4백만 노동자중 비정규직이 이미 절반을 넘어섰다. 이대로 가다가는 우리 자녀 둘 중 하나는, 어쩌면 둘 모두 비정규직이 되어야 한다는 심각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의 핵심은 하는 일에는 별 차이가 없는데도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존재하는 극심한 차별이다. 비정규직은 최소한 10%포인트 가량 불합리한 임금차별을 받고 있다는 얘기다. 제조업체의 경우에는 비정규직이나 정규직이나 하는 일의 성격이 거의 같고 생산성에도 큰 차이가 없어서 차별의 정도는 훨씬 크다. 시장기능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비정규직은 똑같은 일을 하는 정규직보다 고용불안에 대한 보상을 얹어 오히려 더 많은 임금을 받는 것이 합리적이란 주장도 있다.

지금의 노동시장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간 차별만 따로 해소하는 묘수는 없다. 정규직 고용을 원칙으로 하고, 합리적인 이유가 없는 비정규직 고용을 금지하는 것에서부터 문제를 풀어야 한다.

정부, 기술•숙련도 향샹체계 구축을

중소기업을 소홀히 해선 안되는 가장 큰 이유는 고용 창출 능력 때문이다. 실제로 외환위기 이후 5년 동안 300명 이상 대기업 제조업체의 고용 인원은 20만7천명이나 줄었다. 반면 중소기업에서는 20만3천명이 늘어났다.

또한 우리나라 노동자중 300명 이상 대기업에 근무하는 노동자 126만여명(10%)를 빼면 나머지 90%는 중소기업에 근무한다. 그럼에도 노동조합 조직률이 극히 미미하기 때문에 중소기업 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보호의 필요성은 그만큼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중소기업은 이렇게 고용 인력이 증가한 반면 기술력 향상은 뒤처진 탓에 노동생산성 증가율이 갈수록 둔화하고 있다.

정부가 중소기업의 기술투자와, 중소기업 노동자의 숙련도 향상을 위한 지원을 강화하고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정부가 나서서 직접 대규모 연구소를 만들어 기술을 개발하고, 그 기술을 바탕으로 새 기업을 만들어내며 지분 참여를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자생력 있는 혁신형 중소기업 시장을 공공서비스 영역 등에서 정부가 주도적으로 창출해야 한다. 핵심분야인 연구개발쪽은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 지원하고, 대학과의 결합, 지역과의 결합(클러스트) 등 다양한 정책적 시도를 해야 한다.

또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새로운 ‘수평적 협력 모델’을 창출하기 위해서도 수입의존도가 높은 핵심 부품과 소재의 국산화를 위해 정부가 중소기업을 대폭 지원해서 대기업 납품은 물론 중국 등에 수출이 가능한 단계까지 끌어올리는 게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

케인지언 복지국가(Keynesian Welfare State)와 더불어 슘페터리안 근로국가(Schumpeterian Workfare State)로서의 역할도 함께 고민할 때다.

문제는 혁신형 중소기업이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이다. 따라서 정부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계속 개발해서 제공해야 하고, 무엇보다 이들의 육성과 함께 나머지 200만~300만 중소기업들도 먹고살 방안을 마련해가면서 서서히 구조조정하는 이원적 대책이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

대기업들도 미래의 가능성을 보고 기회를 준다면, 중소기업들도 경영의 예측 가능성을 바탕으로 기술 투자 등을 통해 홀로서기에 성공할 수 있다.
물론 중소기업 쪽도 앉아서 기다릴 것이 아니라 먼저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

토지 보유세 강화, ‘양조(良租)가 악조(惡租)를 구축(驅逐)하게 해야’

실제 부동산값의 지속적인 상승은 부동산이 별 세금부담 없이 안정적인 소득을 안겨준다는 인식하에 국민의 상당수가 ‘투자’ 대열에 가담하기 때문에 ‘부동산 불패신화’를 만든 것이다.
과세부담이 없는 만큼의 미래 기대수익이 현재가치로 할인돼 가격에 반영되는 것이다.

실제 미국의 10분의 1에도 못미치는 ‘부동산 보유세’를 현실화 하는 것은 부동산값 안정뿐아니라 소득의 재분배를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정부의 부동산 대책은 가격 급등기에 양도차익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는 임시방편으로 투기심리를 위축시키는 데 그쳐왔고, 보유세는 오히려 줄어왔다.

또한 집값 문제는 정부가 경기부양 수단으로 건설 경기를 끌어올리려 늘 ‘오바’하면서 나타난다. 단순히 주택건설을 활성화하는 차원을 넘어 투기를 유도하는 쪽으로 나아가버린다.

외환위기 이후 시작된 집값 상승도 마찬가지였다. 이후 2001년부터 2004년 5월까지 전국 평균 집값은 같은 기간 물가상승률(12%)의 5배나 되는 60%가 올랐다. 정부가 부동산 관련 각종 규제를 풀어, 집을 사서 팔아 돈을 남길 수 있는 길을 활짝 열어놓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집의 공급이 늘어나는데도 반대로 집값은 폭등한다는 데 있다. ‘거품’은 점점 커지고, 서민들은 올라가는 임대료에 등이 휜다. 작은 집을 가진 사람도 큰 집으로 옮겨갈 때 부담을 키운다. 가계가 대출을 통해 뛰는 집값을 감당하는 사이 그만큼 소비 여력은 줄었고 경기흐름에도 큰 후유증을 남겼다.

정부는 목표를 분명하게 세우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방법과 시간표를 제시하면서 진정으로 보유세 실효세율을 의미있게 올리도록 해야 한다.
종합부동산세도 부동산 과다 보유자에게 무거운 세금을 물려 투기나 과다 보유를 억제하고자 한 입법취지를 충분히 살려야 할 것이다.

한편 토지 보유세를 강화하되 대신 건물분 재산세, 부동산 거래세(취득세, 등록세 등)와 같이 건축 활동, 부동산 거래 등을 위축시키는 ‘나쁜 조세’를 감면하는 ‘조세 대체’를 통해 투기억제와 경제 활성화는 물론 조세 저항 문제도 함께 해소하는 정책도 시도해볼만 하다.

그러나 참여정부는 기득권세력의 눈치 보기에 급급하다 보유세 강화 의지와 종합부동산세 도입 취지가 크게 퇴색하면서 초기의 약속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

신자유주의인가 신자살(殺)주의인가, ‘외양간 무너지는 데 소값 흥정에만 정신 팔려’

주로 FTA(자유무역협정) 협상 추진으로 상징되는 개방화, 세계화는 우리 사회에 세 가지 상반된 불안요소를 안겨주고 있다.

하나는 FTA가 WTO와 달리 ‘당사자주의 및 지역주의적인 특혜무역체제’라는 특성상 블록화를 통해 역외국 차별이 심해지고 있는 만큼 적극적 대응이 시급하다는 불안감이고, 다른 하나는 신자유주의에 기반한 무분별한 대외개방과 세계화로 외국 자본 및 상품과의 가격경쟁과 이윤경쟁을 심화시켜 자본과 기술에서 경쟁력을 지닌 기업들에게는 더 많은 이득을 가져다주는 반면에, 중소기업들에게는 가격경쟁력 약화에 따른 생산 포기를, 노동자들에게는 저임금, 노동강도 강화, 불안정 노동의 확산을, 농민들에게는 값싼 농산물의 수입에 따른 소득 감소를 가져다주면서 우리 사회의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키는 기제’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국민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개방을 밀어붙일 경우, 반발과 사회분열만 증폭시킬 것이란 것도 문제다.

한국정부도 각종 FTA 협상 추진으로 개방화 세계화를 내걸고 있으나 국민의 권익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는 평가도 많다. 그럼에도 참여정부는 ‘개방형 통상국가 전략’에 따라 2007년 안에 20여개 국가와 FTA 체결을 목표로 유럽자유무역연합(EFTA)과 캐나다를 비롯 일본, 중국 등과도 FTA를 체결하고 이어 아세안까지 아우르는 경제공동체를 구상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통상교섭본부는 최근 FTA국을 새로 출범시키는 등 사실상 ‘올인’체제로 들어갔다.

물론 개방화, 세계화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세계 모든 나라가 주요한 발전전략으로 삼아 확산되고 있는 시대에서 FTA는 거스르기 어려운 대세일 수 있다.

올해부터 전 세계 교역량의 50% 이상이 FTA 체결국 간에 이뤄질 전망인 가운데 한국도 무역 규모 세계 11위로 수출 비중이 높고, 대외의존도가 70%에 이르는 나라인 만큼 교역의 지속적인 확대를 위해서, 또한 FTA 확산이라는 흐름 속에서 배제될 때 가격경쟁력 저하와 시장상실 및 생산기지 이전의 가속화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고, 안정적인 해외시장 유지를 위해서는 FTA를 보완적인 통상정책으로 추진하는 것이 불가피할 수도 있다.

더욱이 한국 경제상황이 생산 소비 투자 등 모든 지표가 저조하고 수출마저 주춤거리고 있는 상황에서 FTA를 통한 수출 증대의 유혹은 뿌리치기 어려울 것이다.

한편 한-싱가폴 FTA의 경우처럼 개성공단에서 생산되는 제품을 한국산(내부거래)으로 인정키로 합의하면 북한 진출기업의 걱정을 덜고, 남북 경협의 활성화에도 기여하게 될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무한경쟁의 영미식 시장만능주의, 개방 완충장치 빨리 마련을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시장개방을 전제로 한다. 시장이 개방되면 얻는 것이 있지만 잃는 것도 없을 수 없다.

특히 일본과 FTA가 맺어지면 자동차, 전자 등 한국의 주력산업이 대부분 일본과 경쟁관계인데다 부품소재•기계산업 등 기술경쟁력에서 뒤지는 국내 핵심산업도 구조조정에 휩쓸릴 가능성이 크고, 일본과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열악한 한국 주력산업의 경쟁력 악화로 잘못하면 나라경제가 뿌리째 흔들릴 수 있다.

세계무역기구의 도하개발아젠더(DDA) 협상의 경우처럼 미국 주도의 초국적 자본의 무한 이윤창출을 최대한 보장하는 반면 대다수 서민대중에게는 빈곤의 세계화를 초래할 수도 있다.

따라서 개방화로 타격을 받게 될 산업에 대한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마련되어야 하고, 국내 산업의 고도화와 경쟁력의 확보를 통해 실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전략수립으로 ‘개방화 수용기반’을 미리 다지는 정책적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이런 준비된 전략 없이 동시다발적으로 FTA를 체결했을 경우 자칫 외국에 우리 시장만 내주고 기술력이 뒤지고 경쟁력이 취약한 기업의 줄도산을 자초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그에 따른 국민적 반발을 사게 될 우려도 매우 크다. 올해 개방이 본격화되면 경쟁력이 낮은 중소기업 등이 반발, 사회적 마찰이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개방으로 피해를 입을 이해집단의 반발을 무마하고 이들의 생존대책을 세워야 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한 문제다. 그런점에서 지금 정부는 그간의 협상결과도 불만이지만, 이에 대한 대책이 미흡하고 상당한 문제가 있다는 점에서 불안하다는 것이다.

다자간 무역자유화와 달리 FTA는 정부 스스로 선택한 정책인 만큼 시장에 모든 걸 맡길 게 아니라 국가가 개입해서 폐해를 줄이고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 전략적으로 경제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일부 품목의 양허제외 및 이행기간 설정, 상호보완적인 산업구조를 가지고 있고 우리 산업에 피해가 적은 곳부터 시작하는 등 개방대상과 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

어떤 모델이건 지금보다는 사회적 연대와 형평성을 높이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이미 개방경제로 가면서 농업•재래중소기업•재래유통시장은 경쟁력을 잃었다. 이들을 연착륙시킬 수 있는 대책을 세워야 하고 경쟁에서 탈락한 사람들을 위한 사회안전망 건설을 서둘러야 한다.

무엇보다 협상을 추진하는 정부관료들의 적극적인 FTA 추진만이 살 길이라는 ‘미신에 가까운 조급성’때문에 개방화의 부작용을 소홀히 하거나 , 협상의 투명성과 국민적 의견수렴 절차에 무성의한 그들만의 ‘밀실주의’는 가장 먼저 시정해야할 부분이 아닐 수 없다.

통상협상은 국민의 생존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만큼 협상 과정과 내용에 대해서 투명하게 공개하고 국민의 의견을 적극 반영해야 한다. 따라서 통상정책 체결절차에 관한 법 및 정보공개법, 잘못된 협상에 대한 국가보상법 제정도 서둘러야 할 것이다.

정부는 지금까지 추진된 개방화 정책이 한국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재점검하고 향후 정책 방향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만들어내야 한다. 시장에서 사회적 연대원리를 확보하고, 개방에 따른 완충장치를 마련하는 것은 국가의 몫이다. 우리사회가 이를 어떻게 수용할 지를 공론의 장에서 해결하는 시스템을 마련하고, 국가의 조정 능력을 확보하는 게 시급하다.

우리나라는 외환위기 이후 개발독재의 잔재 속에서 영미식 시장주의가 매우 조악한 형태로 들어왔다. 요즘 말하는 시장은 사실은 자본의 이해관계를 시장의 이름으로 밀어붙이는 측면도 있다.

지난날의 과오와 외국사례 등을 돌이켜보고 우리의 경제성장 단계에 맞는 통상정책을 펴는 것이 중요하다. / 편집위원
 
(계속 이어집니다)

* 필자는 '참정연' 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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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25 [20:31]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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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엥란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