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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절망시대 이명박, '이게 나라인가'
[이명박 정권 종합진단서] 진짜 괴담은 '이명박이 서민경제 살린다'였다
 
김영국
'뭐 이런 놈의 정권이 다 있나'

정권 초기 100일은 허니문 기간이다. 이명박을 지지했든, 반대했든 임기 초반인 만큼 실수가 있다해도 어지간 하면 비판을 자제하고 지켜봐주는 게 예의다.

그러나 허니문 예의를 지키기엔 李 정권은 국민에게 '정말 참을 수 없는 인내'를 요구하고 있다. "뭐 이런 놈의 정권이 다 있나, 이게 나라인가."라는 '뼛성'부터 솟구친다.

단순히 이 정권을 지지하고 안 하고가 문제가 아니다. 지금 돌아가는 '나라꼴'이 그렇다. "지대 짱나 오나전 캐안습 썁쑐레이션, 이명박 님아 매너좀요."란 고딩語가 절로 튀어나온다.

"한마디로 대한민국은 '국민 절망의 시대'로 들어서고 있습니다.
이대로 4년을 더 갈 수는 없습니다.
현재의 상황을 방치하면 대한민국은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져 버릴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우리는 이제 대한민국이 어떤 길을 갈 것인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2004년 2월 4일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가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盧 정권의 집권 초기 실정을 죽 나열하며 한 말이다.

'6.10 100만 촛불집회'가 열리던 2008년 서울광장과 광화문에서, 나는 최 전 대표의 선견지명(?)이 담긴 이 절규를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에게 고스란히 되돌려 주고 싶었다. 무엇보다 '국민성공시대'를 슬로건으로 내건 정권이기에 작금의 참담한 국정 난맥상을 최 전 대표의 '국민절망시대'란 명언보다 더 잘 표현할 재주가 없어서다.

광장에 모인 100만 촛불의 함성이 단지 미국산 쇠고기 반대 때문만은 아니며, 李 정권의 잇단 실정(失政)과 국정 전반에 대한 '불신과 두려움'의 산물이란 걸 모르는 국민은 이제 없다.

사실 李 정권은 출범한 지 불과 100일 동안 사흘이 멀다하고 국민을 뿔나게 하는 실책들을 저질러왔다. 남들 임기 5년 동안에도 못 칠 사고를 달랑 3개월 만에 다 해먹었다. 일일이 열거하기도 벅차고, 다 하자면 책을 써야 할 판이다.

곳곳에서 '100일이 100년 같은 끔찍한 정권'이라는 탄식이 터져나온다. 어느덧 '정권 퇴진, 이명박 탄핵'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다. 정말 이러기도 쉽지 않다.

졸속·굴욕적인 '미국산 쇠고기 협상', 기름값 등 '물가 폭등', 부동산 투기와 논문 표절로 얼룩진 '강부자·고소영·S라인 내각 인사', 오락가락과 꼼수로 점철된 '한반도 대운하 정책', 영어몰입교육·학원 24시간 교습 허용 파문·0교시 수업 자율화·우열반 편성·자율형 사립고 신설확대 등 아이들을 잠잘 시간조차 없이 '무한경쟁과 사교육 광풍'으로 몰아넣는 교육 정책, 돈 없는 서민만 더욱 피폐하게 만들 '공기업 민영화, 의료보험 민영화' 추진, 5공식 언론 장악·통제, 북한의 통미봉남(通美封南)과 우호적 북미 관계에 구경꾼 전락, 일본의 '독도는 일본 고유영토' 교과서 명기 등 李 정권의 무능과 무책임이 국정 전반에 걸쳐 속속 드러났다.

'가정집 온도 제한' 등 설익은 대책을 불쑥 내놨다가 여론의 된서리를 맞고 곧바로 거둬들인 정책도 한 둘이 아니다.

'재벌은 좋아서 입이 찢어지고, 서민은 힘들어 가랑이가 찢어진다'

'경제대통령'이란 슬로건을 비웃기라도 하듯, 이 정권은 경제 분야에서도 무능과 아마추어리즘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한달 앞도 내다보지 못하고 오버하다 사태가 심각해지면 변덕이 죽 끓듯 정책을 바꾸면서 시장의 신뢰도 주지 못하고 있다.

서민들을 극한의 고통 속으로 몰아넣고 있는 '물가 폭등'과 여기에 기름을 부은 '환율 정책'이 대표적이다.

애초부터 국제유가 전망치를 90달러로 헛다리 짚으면서 사전 대책 마련의 기회를 놓쳐버린데다, 재벌 대기업의 수출과 경상수지 타산을 맞추기 위해 성장지상주의자인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앞장서 '고의로' 환율 인상을 적극 유도하면서 안 그래도 치솟고 있는 수입 원자재 가격에 '덤'까지 씌우고 말았다. 이 정부가 물가상승 불길에 기름을 퍼부운 것이다.

그 바람에 임기 3개월 만에 물가는 IMF 이후 가장 높은 수준으로 폭등했다. 李 정권이 경제 분야에서 보여준 첫 작품도 주가 2000포인트가 아닌, 사상 초유의 '유가 2000원 시대'였다.

그 결과는 참담했다. '달리는 만큼 적자'인 탓에 전국 곳곳의 화물차들이 도로 위에 서버렸고, 출어에 나서야 할 어민들은 닻을 내린 채 고통스런 신음을 하고 있다. 살인적인 기름값을 감당할 수 없어 모두 출근한 평일 낮에도 아파트 내 주차장은 휴일을 연상케 하듯 빈 공간을 찾기 쉽지 않다. 그런가 하면 시골 어르신 집에는 기름보일러를 대신할 나무 땔감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물가 폭등과 국민적 분노에 화들짝 놀란 정부는 급기야 지난 5월 21일부터 외환시장에 개입해 달러를 내다 팔면서 환율을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불과 한달 전까지만 해도 환율 하락을 예상하는 은행들을 향해 '사기 세력'이라고 발끈하며 '전가의 보도'처럼 구사해 온 고(高)환율 정책을 바꾸긴 했으나 이미 물가는 오를 대로 오른 뒤였고, 상승세도 그칠 줄 모르고 있다.

지금처럼 물가가 상승한다면 올해 우리 경제는 물가상승률이 경제성장률보다 높고 경기는 추락하는, 최악의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경기침체 속 물가상승) 위기를 맞게 된다. 이렇게 되면 경제가 아무리 성장해봤자 말짱 도루묵이다. 수출이 늘어나도 수입물가 상승으로 경상적자는 더욱 늘어나는 이중고를 겪게 된다.

무엇보다 물가상승은 곧 가계의 실질소득 감소와 구매력 축소로 이어져 경기 침체와 경제성장 둔화라는 악순환으로 빠져들기 때문에 서민들은 '제2의 IMF'나 그보다 더한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 벌써부터 국민들이 체감하는 경제적 '고통지수'가 2001년 이후 7년 만에 최고 수준이다.

고삐 풀린 물가를 더 이상 방치했다간 '제2의 광우병 사태'로 번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130달러를 넘으며 강세가 지속됨에 따라 시중에는 이미 '광우병보다 더 무서운 광유병(狂油病)'이란 신조어까지 생겼다고 한다.

상황이 이렇듯 위급한데도, 이 정권은 경제정책 방향과 물가 대책(환율·금리) 등을 놓고 자기들끼리 내부에서 으르렁대며 우왕좌왕하고 있다. 도대체 이 정권이 경제를 살리기 위해 무얼 준비했고, 어떤 실력을 갖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좋은 대책이나 묘수가 나올 리 없다.

오로지 성장과 재벌 대기업 수출만을 생각하고 환율을 고의적으로 올려놓는 바람에 서민들은 '물가 폭격'을 맞고 신음하고 있는데, 뒤늦게 푼돈 몇 푼 쥐어주면서 고유가 대책이라고 내놓으니 한심할 따름이다.

그것도 모자라 이 정부는 지난 3월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내세우며 유류보조금까지 342.2원에서 287.7원으로 인하해 서민이 대부분인 화물차 운전자들의 목을 죄는 어처구니없는 짓을 했다. 일종의 최저임금제인 표준요율제 도입도 이 정권이 들어서면서 유야무야됐다.

이런 정부를 믿고 '운행할수록 손해'인 화물차 운전자들이 고통을 분담하겠다며 핸들을 잡을 리 만무하다. 오늘(13일)부터 시작된 화물연대 파업으로 이 정권의 '친재벌-반노동' 정책도 본격적인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반면 재벌 대기업들은 서민들의 고통에 아랑곳 않고 '물 만난 고기'처럼 자신들의 배불리기에 혈안이 돼 있다.

백용호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 5월 28일 "일각에서는 우리나라 재벌들이 공기업 민영화에 뛰어들어 무분별하게 확장해도 눈감아줘야 하지 않느냐는 이야기도 나온다."며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이는 李 정권의 '친재벌' 정책이 어떤 지경까지 와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준 것이다. 지금 재벌들은 이 정권의 지독한 '재벌 사랑'에 편승해 공기업이든 뭐든 포크 들고 찍어먹을 날만 잔뜩 벼르고 있다. 아예 대놓고 공기업 인수를 표명하기도 한다.

정부가 투자하라고 출자총액제한제도를 풀어주자 재벌 대기업들은 신규 투자는커녕 기다렸다는 듯이 이 정권의 민영화 정책에 편승해 공기업 등 알짜 기업을 인수하는 데만 눈독을 들이고 있다.

이 정권의 신조인 '규제 완화'와 '민영화'가 경제 살리기와는 무관한 재벌 대기업과 가진 자들의 배불리기 수단일 뿐임을 증명하는 대목이다. 더욱 문제는 천민자본주의 졸부들이 판치는 대한민국에서 친재벌 정책이 갖는 위험성을 이 정권은 관심은커녕 개념조차 없다는 것이다.

되레 한술 더 떠, 서민들이 물가 폭등과 광우병 공포로 신음하고 있는 와중에도 여당인 한나라당은 강남 부자들을 위해 종합부동산세를 깎아주는 일에만 혈안이 돼 있다.

李 정권의 친재벌 성장지상주의 똥고집과 무능으로 우리 경제는 지금 '고물가-저성장-경상수지 적자'라는 최악의 3중고에 빠져들고 있고, 대기업·중소기업, 소득·소비, 교육의 양극화도 모자라 식생활(문화생활)의 양극화로 번지고 있다.

결국 이 대통령이 취임식에서 내걸었던 '국민성공시대'는 '재벌성공시대'였고 '서민절망시대'였다는 게 지금까지 쏟아낸 각종 경제정책으로 확연히 드러난 것이다. 이 정권이 지금과 같은 경제 노선을 '작전상 후퇴'가 아닌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재벌경제야 활활 타오르겠지만 서민경제가 살아날 가능성은 그들 말대로 '골프에서 홀인원하고 돌아서 벼락 맞을 정도'의 확률에 불과할 것 같다.

돌이켜 보면 대한민국 최고의 괴담(怪談)은 '광우병'이 아니라 '이명박이 서민경제를 살린다.'는 대선 구호였던 것이다.

촛불시위 배후는 '李 정권의 무능·무책임·오만·독선·말바꾸기·뻔뻠함'

경제 상황이 어려워질수록 국민적 힘을 결집시켜 위기를 돌파해야 하지만, 이 정부는 광우병 쇠고기 파동 등에서 보듯 초장부터 너무도 많이 국민적 신뢰를 잃어버려 그마저도 불가능한 형국이다. IMF 위기 때 국민들이 새로 들어선 김대중 정부를 믿고 금반지까지 내놓으며 위기를 극복하던 모습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지경이다.

지금 이 대통령에 대한 국민적 불신으로 볼 때, 대통령이 경제 위기 극복의 선봉장이 되기는커녕 '최대 장애물'이 되고 있다. 사고는 자기가 다 쳐놓고 뒷감당은 국민이 알아서 하라는 식의 무책임한 처신이 국민의 힘을 결집하는 데 최대 걸림돌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국민적 여론수렴 없는 일방통행식 국정 운영과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식의 오만·독선·말바꾸기·뻔뻔함으로 이 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과 불신은 극에 달하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 파동은 이명박 정권이 재벌 대기업의 수출을 위해 한미FTA 조기 비준과 한미동맹에만 집착한 나머지 부시 대통령에게 잘 보이기 위해 미국 방문길에 때맞춰 국민의 건강주권을 내팽개치고 졸속·굴욕적으로 미국 쇠고기를 '묻지마 개방'하면서 국가의 격을 '바베이도스' 수준으로 떨어뜨린 퐝당한 사건이다.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 허용 등 국민 건강을 도외시한 일방적인 '미국 퍼주기', 한미 정상회담과 한미FTA를 뒷받침하기 위한 '선물용'으로 정부가 기존 입장을 180도 뒤집고 검역주권을 포기한 점, 협상 이후 국민적 반발이 일자 이를 해명하면서 불거진 대통령과 협상 관료들의 무책임한 발언과 뻔뻔한 말바꾸기·거짓말들, 영어 오역 논란과 뒤집힌 미국 동물성사료 조치를 비롯한 실무적인 협상의 치부들이 어우러져 국민을 분노케 했다.

'대한민국이 고작 바베이도스 수준도 안 되느냐.', '태어나서 일본이 이토록 부럽기는 처음이다.', '힘없는 서민만 국가로부터 버림받았다.'며 분통을 터뜨린 사람들이 참다 못해 거리로 뛰쳐나와 촛불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한미 쇠고기 협상이 민심을 악화시킨 저변에는 이처럼 갈기갈기 찢겨벼린 국민의 '상처받은 자존심'이 자리잡고 있다.

그럼에도 이 정권은 필리핀·말레이시아만도 못한 '등신 협상'을 해놓고서 국민 세금으로 미국 축산업자가 해야 할 '미국 쇠고기 안전하다'는 광고를 하고, 대통령과 정부 관료는 온 국민이 보는 방송에 나와 "국민 건강 보호가 최우선 정책"이라고 말하는 철면피를 과시했다.

더욱 가관인 것은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 관료들이 부아가 치밀어오른 국민을 향해 고비 때마다 염장을 질러댄 것이다. 상실감에 빠진 국민의 마음을 달래기는커녕 '상처난 데 소금을' 팍팍 뿌려댔다. 쇠고기 재협상을 요구하는 80% 국민을 향해 '무책임하다.'며 선전포고를 하기도 했다.

"싫으면 안 사먹으면 되지 않느냐.", "정부가 개방하면 민간이 알아서 하는 것이다.", "(광우병 얘기하는 사람들은) 한미FTA 반대하는 사람들 아니냐.", "(인적쇄신에 대해) 이번에 세게 훈련했는데, 뭘 또 바꾸냐.", "광우병 괴담이 확산되는 데 대해 솔직히 당혹스러웠다.", "1만명의 촛불은 누구 돈으로 샀고, 누가 주도했는지 보고하라.", "지금 재협상을 요구하면 통상마찰 등으로 엄청난 문제가 생긴다. 재협상하겠다고 무책임하게 얘기할 수 없다.", "(쇠고기 협상을) 노무현 정부 때 처리했으면 이런 말썽이 안 났지."

쇠고기 협상과 촛불시위에 대한 이 대통령의 인식을 요약하면, 불순한 반미·좌파 세력(배후론)의 광우병 괴담(괴담론) 유포와 선동에 세뇌당한 '어중이떠중이' 국민들이 전 정권의 설거지를 한 것(설거지론)뿐인 나를 공격해 지지율이 떨어져 억울하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이명박 대통령의 '입으로 국민 염장지르기'는 전임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가히 '잠자는 사자 코털 뽑기' 수준이다.

특히 80% 국민의 염원을 묵살하고 통상마찰 운운하며 '재협상 불가'를 천명한 이 대통령의 발언(6월 6일)으로 '국민 건강은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다.'던 5월 22일 담화문이 잉크도 마르기 전에 빛이 바랬고, '국민 건강 보호가 최우선 정책이다.', '국민을 섬기겠다.'는 대통령의 말 또한 거짓이었음이 여실히 드러난 것이다. 이 대통령의 재협상 불가론이야말로 허구이며 재협상 없는 협상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같은날(6월 6일) 오전에는 국민과 한마음이 되자면서 오후엔 전혀 딴마음을 품고 있는 이 대통령의 모습에서 국민 수준을 너무도 '얕잡아 본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정부는 더 낮은 자세로 귀를 열고 국민의 소리를 듣겠다."고 해놓고선, 청와대로 향하는 길목에 거대한 컨테이너로 '명박산성'을 쌓아놓고 국민의 소리를 차단하는 이중성은 이 정권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해외토픽감이었다.

이처럼 이 대통령의 민심과 동떨어진 '무개념 언행과 이중성'이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킨 것이다. 그래서다. 촛불시위의 '진짜 배후'는 바로 '이명박 대통령' 자신이었다. 촛불시위는 '왜 그 따위로 협상을 해서 나라꼴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놓고 염장지르냐.'는 국민적 분노의 표출이기 때문이다.

민심 이반이 걷잡을 수 없게 되자, '잘된 협상'이라며 "질 좋은 고기를 값싸게 먹게 됐다.", "어느 나라가 자기 국민에게 해로운 고기를 사다 먹이겠느냐.", "협상문 한 줄도 바꿀 수 없다."며 우기던 대통령과 정부도 지난 5월 7일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면 통상 마찰이 일어나도 즉각 미 쇠고기 수입을 중단하겠다."며 말을 바꾸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민심이 수그러들지 않자 지난 6월 7일 이 대통령은 황급히 전화통을 붙잡고 미국 부시 대통령에게 "30개월 이상 쇠고기가 수입되지 않도록 해달라."며 '애걸복걸'하면서 애초 협상이 잘못됐다는 걸 자인하고 나서 국제적 망신을 샀다. 6.10 촛불집회에는 쇠고기 협상 주무장관인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국민에게 사죄하러 왔다."며 발언 기회를 달라고 애원하다 '매국노'란 손가락질만 받고 쫒겨나기에 이르렀다.

협상안에 담긴 수많은 문제점들을 재협상 없이 실효성도 없는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출 금지'만을 요구하는 미봉책에 성난 민심이 수긍할 리 만무했다.

그럼에도 이 정권은 성난 민심에 항복하기는커녕 여전히 추가협상이니 한미FTA 조기 비준이니 하면서 꼼수만 쓰고 있다.

한미FTA 비준으로 지난 2007년 한미FTA 타결 시 보여주었던 방송과 조중동의 '장미빛 환상 도배질'로 여론을 호도했던 것처럼, 쇠고기 정국을 한미FTA 국면으로 반전시킬 기회를 찾고자 함이다.

그러나 졸속·굴욕적 쇠고기 협상의 여파로 최근 들어 부쩍 네티즌들을 중심으로 '한미FTA 독소조항'들에 대한 자료와 정보가 늘고 있다. 광우병 사태에서 보듯 인터넷 상에서 국민들은 스스로 학습하고 정보 공유 과정을 통해서 한미FTA 실체에 대해서도 한 꺼풀씩 벗겨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2007년과 달리 한미FTA 협정문에 나타난 수많은 '정책주권 포기'에 대한 국민적 비난 여론이 형성될 가능성도 높은 상황이다.

이 정권의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발언과 이중적인 처신, '눈 가리고 아웅'식 꼼수들 때문에 지금 국민들은 '돌아버릴' 지경이다. 이 대통령과 정부 관료 그리고 조중동의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식의 말바꾸기와 국민 수준을 얕잡아 보는 오만이야말로 국민들을 미치고 화병나게 만드는 '염장 프리온'이자, '대한민국 특정위험물질(SRM)'이 아닐 수 없다.

미친 교육, '공부하다 죽었다는 학생 없다'

유치원·초·중·고등학교만큼은 나라가 책임진다는 자세로 무상 교육 등에 대한 방침 없이, 덮어놓고 영어 경쟁력만 강조하고, 0교시 수업 자율화, 우열반 편성, 자율형 사립고 신설확대 등으로 아이들을 잠잘 시간조차 없이 '무한경쟁과 사교육 광풍'으로 몰아넣는 이 정권의 신자유주의 교육 방식은 서민들만 더욱 양극화의 늪으로 빠져들게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자녀를 둔 부모들은 학비 대느라 등허리가 휘는 '교육 노예'가 따로 없다.

그럼에도 주부들의 입으로 전해지는 영어 사교육 실태는 거의 준전시(準戰時) 상황이나 다름없는 '영어몰입 사태'다. 영어 유치원에는 아이들이 몰려 대기자 리스트가 등장한 지 오래고 심지어 유치원 입학을 위한 과외까지 등장했다. 급한 마음에 초등학생을 필리핀 등지로 단기 어학연수를 보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주무부처 장관의 무소신·무능력·무책임은 악화된 교육환경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김도연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0교시 수업, 우열반 편성을 허용하는 '4·15 학교자율화' 방안을 발표하고 반대 여론이 들끓자 "온 국민이 환영하고 좋아할 줄 알았다."고 말해 주무장관의 교육현안에 대한 무지에 국민을 아연실색케 했다.

이 정권이 입만 열면 자율과 경쟁, 규제 철폐만을 강조하다보니 한나라당이 장악한 서울시의회는 한술 더 떠 '학원 24시간 교습 무제한 허용'이라는 조례를 만들었다가 '학생들의 건강을 해치고 사교육만 창궐한다.'는 여론의 뭇매를 맞고 다시 철회하는 황당한 일까지 벌어졌다.

특히 이 조례를 주도한 정연희 서울시의회 교육문화위원장(한나라당)은 여론의 반대에 대해 "건강권은 자기가 지키는 것이지 국가가 통제하는 것이 아니다. 성인들이 일을 하다 과로해서 죽었다는 얘기는 있어도 '학생들이 공부하다 피곤해서 죽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며 "굳이 기관이 나서서 '몇 시까지 공부해라, 자라'고 하는 규제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과연 필요할까라는 생각이 든다."고 막가파식 망언을 쏟아내 성난 민심을 들끓게 했다.

이런 지경이니 李 정권의 '미친 교육'에 대한 중고등학생들의 반감은 상상을 초월한다. 10대 중고등학생들의 촛불집회 참여와 자유발언에서 쏟아내는 분노는 단순히 광우병 쇠고기에 대한 공포뿐만 아니라 이 정권의 '무지막지한' 시장만능주의 교육 정책에서 비롯된 것이다.

개국공신들의 '전리품 챙기기' 암투와 '오빠 아잉' 청탁

이런 총체적 난국에도 청와대·정부·여당은 시스템이 작동되지 않아 국정 운영과 정책 방향 등을 놓고 사사건건 자기들끼리 내부에서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정두언 의원의 '대통령 주변 일부 인사들의 권력 사유화' 발언으로 촉발된 李 정권 실세들의 노골적인 인사 전횡과 권력 암투는 쇠고기 파동으로 분노한 국민들을 더욱 '어이상실'케 하고 있다.

'민비 같은 존재'(류우익 대통령실장), '이간질·음해·모략의 명수'(박영준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 '오빠, 나 이번에 안 시켜주면 울어버릴 거야~잉. 알았지~잉'(전 청와대 수석), '전리품 독식자', '간신들', '지하철 건달들'...

'전리품 챙기기'에만 골몰했던 개국공신들의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치부들이 강부자·고소영·S라인 인사의 원인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공기업과 공공기관, 국책연구기관, 방송계 등 전방위에 'MB맨'들이 속속 내정되고 있다. 작금의 국정 위기가 청와대와 내각의 인사실패에서 시작됐고, 인적쇄신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비등함에도 아랑곳없이 '내 멋대로 인사'를 강행하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李 정권 핵심부터 통제 능력을 상실한 채 '과도기적 현상'이라는 말로는 도저히 설명이 안 되는 '개판 오분 전'이다. 벌써부터 말기적인 '총체적 붕괴' 수순으로 접어드는 게 아니냐는 관측까지 낳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 정권이 내놓은 대책마다 핵심은 제쳐놓고 눈속임, 땜질식(미봉책)인데다, 여론과 정치적 시간표에 따라 춤을 춘다. 매사 되는 일은 없고 겉돌기만 한다. 국민들은 신발을 신은 채 가려운 발바닥 긁듯 답답하고 속만 터진다.

오죽하면 이 정권의 핵심세력과 동맹군인 조중동조차 연일 '소통의 실종'과 '청와대와 정부가 뭘 해야하는지조차 모른다.'며 아마추어리즘을 질타하고 있다.

지난 대선 때 '기업과 정치는 엄연히 다른 영역이다.'는 말에 귀를 닫고 'CEO 출신 경제대통령만이 좌파 10년이 망친 나라를 구한다.'며 서민들에게 '묻지마 이명박 지지'를 앞장서 부추긴 조중동이 벌써부터 'CEO 대통령의 한계'를 말하며 이 대통령의 능력을 폄하하기 시작한다.

심지어 '광우병 괴담과 촛불시위의 배후에 반미·좌파 세력이 있다.'는 정권 핵심과 조중동의 색깔론을 이 정권의 우군인 '박사모'가 촛불시위에 참가하면서 "이명박 대통령이 쇠고기 수입 반대집회를 두고 자꾸 좌파 배후설을 흘리고 있는데, 이것은 일부 좌파 세력의 목소리가 아닌 전 국민의 목소리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나왔다."며 면박을 주기도 했다.

그만큼 국민들 사이에 '거짓말 정부'로 인식되고 '국민절망시대'가 되어가고 있는 데, 李 정권 스스로의 책임이 너무 크다.

전무후무한 '임기 3개월만에 레임덕'..'미친소 뒷걸음치다 쥐 잡다'

결국 정권 출범(취임) 100일 만에 李 대통령의 지지율은 17%대로 급추락했고, 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반대하는 국민은 무려 70~80%에 이르고 있다. 불과 3개월 만에 지지율이 정반대로 역전된 것이다. 심지어 지난 대선 때 이명박을 지지한 사람 중에도 절반 이상이 '국정 운영을 잘못하고 있다.'며 돌아섰다.

李 정권의 '임기 3개월 만에 레임덕 지지율 달성'은 우리 헌정사에 전무후무한 일로 역사에 길이 남을 '진기록'이 아닐 수 없다. 이대로는 레임덕을 넘어 국정 수행 자체가 어려운 수준이다.

아니나 다를까. 심각한 민심 이반과 정권 위기의 징후는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처음 실시된 '6.4 지방자치단체 재보선'에서 집권 여당인 한나라당의 참패로 여지없이 확인됐다.

한나라당은 지난 대선과 4.9 총선에 압승했던 수도권에서 기초단체장 선거에서 전패한 것은 물론, 특히 서울에서는 구청장·시의원·구의원까지 '싹쓸이 패'를 당했다. 설상가상으로 텃밭인 영남지역에서마저 무소속과 민주노동당 등에 밀려 참패했다. 사상 두번째로 낮은 재보선 투표율(23.3%)도 한나라당의 추락을 막지 못했다.

'反노무현의 늪'에 빠져 2004년 총선에서 과반수 달성 이후 각종 재보선에서 '40대 0'이라는 기록적인 연전연패를 거듭한 과거 열린우리당의 전철이 '反이명박'으로 명패만 바꿔달아 한나라당에게 악몽처럼 되풀이되는 형국이다.

지난 4.9 총선 때까지 이어지던 '묻지마 이명박, 묻지마 한나라당'이 '이명박과 한나라당만 아니면 된다.'로 180도 돌변하는 데 불과 두 달도 안 걸린 것이다. 그만큼 우리 국민의 '정치적 사고의 주기'가 매우 짧고 빨라졌다는 의미이다. 여론 형성과 변화의 속도가 그만큼 빨라진 탓이다.

이 정권이 신봉하는 '시장 논리'대로 하자면, 이명박 대통령은 리콜 대상이 아니라 이미 폐기처분 대상이 된 것이다. '이명박 탄핵', '독재 타도', '못살겠다 갈아보자!' 구호가 거리에 쏟아져 나오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물론 20%대의 저조한 투표율로 볼 때 이번에 선전한 통합민주당이 이명박 정권에 대항하는 야당으로서 국민적 대표성을 부여받은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민주당의 노력에 의한 결과라기보다는 '쇠고기 정국'에 의한 반사이익의 측면이 커서 마냥 기뻐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악화된 쇠고기 민심이 이번 선거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확인된 만큼, 쇠고기 수입 파동은 쇠고기 업자들의 자율결의니 하는 꼼수나 청와대 수석과 내각의 장관을 바꾸는 인적쇄신 따위로는 결코 돌파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이런 놈의 나라'(이회창)-'엉망인 나라'(박근혜)-'이게 나라인가'(조선일보)

이쯤 되면 김대중, 노무현 정권 시절 한나라당과 조중동이 전(前) 정권을 향해 비수처럼 쏘아붙인 유명한 말들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이런 놈의 나라', '엉망인 나라', '이게 나라인가'다.

지난 2001년 10월 12일 재보선 정당연설회에서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는 김대중 정권을 향해 "박정희 대통령은 짧은 기간 동안 나라의 기초를 닦았는데, 무능한 지도자가 나라를 '이 꼴'로 만들었다."고 쏘아붙였다.

당시 자리를 함께한 박근혜 부총재는 한술 더 떠 "지금처럼 나라가 엉망인 적이 없다."고 거들었다.

이회창 씨는 또 한나라당 대선후보 시절인 2002년 5월 30일 강원지역 정당연설회에서 김대중 정부를 향해 "'망나니' 같은 인사정책으로 '이런 놈의 나라'를 만들었다."며 맹비난한 바 있다.

조선일보는 2003년 2월 10일자 <이게 제대로 된 나라인가>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김대중 정권의 대북송금 의혹과 남북 교류·협력을 비난하며 "대한민국이 정녕 제대로 된 나라라면 이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근본이 흐려지는 듯한 장면이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보수적 시민단체인 자유시민연대는 2006년 5월 10일 노무현 정권을 향해 '이게 나라인가.'라며 실종된 대한민국을 원상회복시켜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이제 눈을 돌려 이명박 정부의 100일 동안 나라꼴을 보자. 이들의 분노는 고스란히 이 정권에게 향해야 마땅하지 않을까.

쇠고기 검역주권을 통째로 미국에 갖다 바쳐 나라의 격을 바베이도스 수준으로 떨어뜨리고, 일개 미국대사로부터 온 국민이 "미국산 쇠고기와 과학에 대해 더 배워라."며 훈계를 들어야 하는 이명박 정권이 운영하는 나라는 조선일보에게 어떤 나라인가. 좌파 척결을 외치며 10년 만에 되찾은 '우파의 나라'는 지금 제대로 된 나라인가.

이회창, 박근혜 씨에게 묻고 싶다. 지금 이명박 정권보다 더 '엉망인 나라꼴'을 본 적이 있는가. 그들의 분기탱천한 명언들을 이 정권에게, 그것도 단 3개월 만에 되돌려줄 줄은 미쳐 생각도 못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대선 경선후보 시절인 작년(2007년) 6월 14일 "좌파 정권이 5년 더 연장된다면, 국민들은 대한민국에 희망이 없어 모두 떠날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고 말했다.

이 말도 머지않아 고스란히 돌려줘야 할 것 같다. 지금 국민들은 이 정권의 남은 4년 9개월을 참고 견디느니 차라리 떠날 생각을 하기 일보 직전이기 때문이다. / 편집위원

* 글쓴이는 '참정연' 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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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보> 편집위원. 항상 이 나라 개혁과 진보적 사회발전에 기여하는 쪽에 서 있고자 하는 평범한 생활인입니다.
 
2008/06/13 [20:08]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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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엥란트

개혁진보진영, 이대로 주저앉을 것인가
국보법보다 무서운 ‘성장보안법’, 양극화 심화로 ‘신 봉건사회’ 도래 위기
 
김영국
탈선위기 '개혁-진보행 기관차', 여기서 더 망가질 순 없다

지금 먹고 살기 힘들다는 아우성이 넘쳐나고 있다. 한편에선 이 아우성을 즐기면서 이용하고 있는 부류도 있다. 정작 이를 해결해야 할 정치 영역에선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장으로 변모해 가고 있다.

그 속에 개혁-진보행, 보수-수구행 두 기관차는 서로를 향해 마주 달리는 폭주기관차가 되어 가고 있다. 그러나 달리는 기관차라 해서 두 힘이 같을 순 없다. 그러는 사이 어느 한쪽은 죽음의 길을 달리고 있는 것이다.

지난 대선때만 해도 든든해 보이던 개혁-진보행 기관차는 2년 사이 제법 알짜배기 승객이 실린 몇 개의 차량이 민노호라는 진보행 기관차로 이탈해 갔으며, 탄핵역풍의 힘으로 개혁을 향해 달리던 열린호는 차량과 객실 승객의 잦은 이탈로 덜컹거림이 심하여 목적지까지 완주를 장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거기에다 운전실력이 변변치 않은 대표기관사는 보수-수구행 기관차에 알게모르게 ‘달래표’ 경유를 주유해주며 승객들의 신뢰마저 잃어가고 있다.

이대로 달려 가면 삼중추돌이 뻔한 상황에서 개혁과 진보의 두 기관차는 기세등등한 보수-수구행 기관차에 언제 부서질지 모르는 위험한 질주를 하고 있는 셈이다

지금 한국사회의 중요한 변화의 동인이 되고 있는 게 무엇인가.
연일 언론에 대서특필되고 있는 국가보안법 폐지, 과거사진상규명, 언론개혁관련법, 사립학교법 개정, 신행정수도 이전 등을 둘러싼 정치권과 지지자들의 편가르기 싸움인가.

그런데 이들은 한결같이 한국사회에 누적된 적폐들을 개선하기 위한 명분을 가지고 시도하고 있는데도 왜 보수.수구세력의 반대는 물론 서민대중들까지도 외면하고 개혁.진보진영의 동력은 갈수록 찢기고 왜소해지고 있는가.

지금 개혁의 상징처럼 이슈화되어 있는 4대 개혁입법이 통과되면 개혁.진보진영은 승리의 축배를 들 수 있는 것일까. 이들 법안을 통과시키면 보수.수구세력은 그대로 멸망의 길로 빠져들까. 이들 법안이 통과되면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곧바로 구축될 수 있을 것인가.

대답은 ‘노(No)’일 수 밖에 없다.

이미 4대 개혁입법은 개혁.진보진영에서부터 ‘울며 겨자먹기식’ 밀어부치기가 되어 가고 있다.

‘국가보안법’은 현재 보안법의 악폐를 재현시켜줄 지 모를 형법보완 등이 기다리고 있으며, ‘과거사진상규명법’은 집권당 당 대표와 소속의원들이 친일부역세력의 후손이라는 꼬리가 속속 들통나자 후퇴를 거듭하다 국민들로 하여금 정략적 의도를 의심케 만들었다.

‘사립학교법 개정안’은 종교단체까지 가세한 장외기도회 위세에 눌려 재단측과 타협하면서 그들의 파이를 넓혀 주었고, ‘언론개혁관련법’은 핵심인 소유집중 제한은 쏙 빼버린 채 주요조항을 형해화해 버렸다며 언론개혁 단체들로부터 여당이 겉으론 수구언론과 싸우는 척하면서 속으론 궁합을 맞추고 있다는 분노를 사고 있다.

이렇듯 4대 개혁입법은 사실상 개혁의 핵심적 요소들이 수구언론의 여론호도와 기득권의 반발에 집권여당이 잡탕정당의 속성을 드러내며 타협적 노선으로 후퇴를 거듭하면서 제대로된 개혁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국민들로 하여금 큰 기대를 불러 일으키지 못하고 있다.

그마저도 열린우리당내 일부 지도부와 보수세력은 마치 야당과 수구세력의 결재라도 받으려는 듯 어영부영하면서 연내 통과마저 안개속으로 밀어넣고 있다.

4대 개혁입법이 통과된다 해도 우리사회는 개혁다운 개혁에 대한 갈증은 여전할 것이며, 오히려 수구언론은 4대 개혁입법 통과에 따른 부작용들을 침소봉대하면서 국민들의 불안을 조장하려 들기 시작할 것이다. 뚝심을 가지고 대비하지 않으면 조중동의 장사거리만 잔뜩 늘려주고, 개혁.진보진영은 4대 개혁입법을 누더기로 만든 결과 별 효과 없다며 책임공방 라운드로 옮겨가 또다시 내홍을 겪을지도 모를 일이다.

결국 갈수록 보수, 수구화 되어 가면서 지지세력들이 대거 이탈해간 열린우리당이 다음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서 생색내기 위한 반찬거리로 4대 개혁입법이라는 상징물을 만들어 이슈화 함으로서 ‘개혁이라는 외피’만큼은 진보진영에 빼앗기지 않기 위한 이벤트 수준에 그쳤다는 평가를 받을 공산도 커져가고 있다.

물론 이런 비관적 예측이 4대 개혁입법의 취지나 당위성마저 그만큼 가볍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제대로된 과정과 핵심에 충실했다면, 서민대중의 삶이 지금처럼 피폐하지 않았다면 몰상식한 일부 수구세력의 반발을 압도할 만큼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정치권의 기대와는 달리 서민대중이 4대 개혁입법에 고개를 돌리고 있는 데에는 이런 저런 명분을 거들떠 볼 만큼의 여유도 없는 그들의 ‘먹고살기 힘듬’이 강하게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개혁을 추진하는 세력들마저 원칙과 소신없이 번번히 기회주의적 작태로 명분마저 퇴색시켜 가면서 기존 지지자들이 추풍 낙엽처럼 떨어져 나가며 앙상한 몰골을 하고 있다. 당연히 개혁 추진 세력의 말빨이 설 수 없음이다.

참여정부와 친노세력의 ‘일그러진’ 원칙과 상식

오늘날 보수.수구진영의 부활은 개혁.진보진영의 자중지란과 열패감이 결합하여 낳은 자손이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으로 상징되는 참여정부의 철학과 신념의 정체를 알 수 없는 좌충우돌은 ‘이보다 더 망가질 순 없다’는 영화 한편을 찍는 수준이다. 거기에 진보진영을 대표하는 민주노동당 또한 미흡한 시계추 역할로 개혁.진보진영 전체가 갈수록 무기력과 함께 깊은 수렁에 빠져들고 있는 형국이다.

대체 어디서 잘못되었을까. 무엇이 정부에 이어 의회마저 과반수를 훨씬 넘는 권력을 장악 '트윈타워'를 구축해 놓고도 불과 반년도 안돼 개혁.진보진영을 이렇게 심각한 무기력증에 빠져들게 만들었을까.

많은 사람들은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의 기회주의적 타협에 따른 개혁성 후퇴 또는 왜곡을 들어 이를 질타하기 바쁘다. 그러나 이런 질타는 더이상 별 실효성이 없다는 것만을 증명해줄 따름이다.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대북송금특검 수용과 이라크 전투병 파병에서 출발하여 총선직후 이어진 각종 조치의 개혁성 후퇴 또는 변질에서 그들이 말하는 개혁이란 것이 자신들의 정치적 존재를 알리기 위한 ‘보수, 수구네 집 건너편에 내건 간판’에 불과하다는 걸 여러번 보여주었다. 그러면서 실제는 보수, 수구네 집 메뉴판에 있던 물건도 버젓이 팔고 있다.

그리고 지난 대선때까지만 해도 최소한 중도좌파, 점진적 진보는 되어줄 걸로 기대했지만 지금은 행여나 자신들을 그렇게 부를 까바 손사레를 치며 참여정부 핵심들은 너도나도 중도우파 또는 중도보수임을 선전하기 바쁘다. 심지어 집권당 출신 총리까지 나서 좌파도 진보도 아님을 다짐받기 위해 야당을 상대로 ‘혹평 활극’을 벌이다 국회를 공중회전시켜 버릴 정도이다.

그런가하면 중요한 정책 추진과정에 국민들의 의견수렴과 사회적 대화와 타협을 중시하겠다는 취지로 세운 국민참여정부 입간판은 일방통행 방식으로 회귀하면서 ‘국민차며정부’로 바꿔야 할 판이다.

이미 노무현표 ‘원칙과 상식’은 집권 2년이 지나면서 사오정(死五情)표 ‘변칙과 가식’이라는 유사품이었다는 것이 속속 드러나고 있으며, 친노 핵심세력들은 노 대통령의 발언에 따라 어제와 오늘의 점괘를 수시로 바꿔가며 자신들만 믿으라고 우겨대는 ‘부채도사들’이 되어갔고, 추종자들은 그들의 노란 부채질에 반쯤 넋이 나간 신도들이 되어갔다.

오늘날 ‘노빠’로 명명되는 친노세력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정체성은 어느덧 ‘정치적 기회주의’가 돼버렸다.

이들은 노무현 정권에 대한 유불리를 따져 유리한 존재이면 과거 불문하고 참개혁이며, 시대정신이 되고, 역사를 반발 앞서가는 선구자가 된다. 그러나 어제까지 그들의 우상이었다손 치더라도 오늘 말하는 뉘앙스가 노무현에 비판적이면 정색을 하며 수구꼴통, 딴나라당 부역세력, 시대에 뒤떨어진 난닝구, 혹은 양비론으로 짖어대는 찌질이 등 온갖 혹평세례를 퍼붓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문제는 이들의 칭찬과 비난이 진정한 개혁과 진보적 사회발전에 대한 철학과 신념에 바탕을 둔 일관된 기준에 따른 것이라면 이들의 표변에도 불구하고 지금처럼 많은 사람들이 떨어져 나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노무현이 하면 부시의 악마의 전쟁에 대한 동참도 개혁대통령의 용단이 되며, 친재벌적 경제정책도 민생을 위한 결단으로 둔갑해 버리고, 대통령이 바뀔때마다 군부독재자, 나라망친 대통령 구분없이 우리의 성군을 외치며 칭송해 마지 않던 돌(?)박사도 오늘 노 대통령에 바치는 충성편지와 저주스러운 헌재를 쫒는 부적 한 장에 위대한 사상가로 추앙해 마지 않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이중성과 정치적 기회주의’가 그들의 개혁성보다 권력지향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지점에 이르도록 만들고 있다.

그런가하면 지역주의에 찌든 구태세력이라며 본가를 박차고 나왔던 열린우리당의 원내대표는 최근 정치환경이 자신들에게 불리해지자 잔민당 난닝구의 소굴이라던 민주당을 향해 합당 추파를 던지며 ‘민주개혁정통세력’이라는 새옷을 갈아입히려 너스레를 떨고 있다.

또한 각종 차별로 신 하류층이 되어 가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800만에 육박하면서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되어 가는데도 오히려 비정규직 양산을 부추길 우려가 높은 노무현 정부의 비정규직 관련 입법 시도에 대해선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버린 노빠군단. 되레 이를 지적하고 개선을 요구하는 진보세력에게 곱지않는 시선을 보내고 있다.

‘비정규직 남용 규제와 차별 해소’, ‘사회적 대화와 타협 중심의 노동정책’을 핵심공약으로 내세우고 출범한 참여정부가 보수적 관료와 재계의 반발에 눈치보다 ‘구국의 결단’ 운운하며 비정규직 양산과 노동자에 대한 강압적 조치 일변도로 흡사 김영삼 정부 시절로 회귀하고 있음에도 이를 질타하는 목소리를 그들에게서 들을 수가 없다.

노무현을 통해 그들이 꿈꾸는 세상이 서민대중들의 삶을 더욱 황폐하게 만들고, 재벌에게는 특혜를 주는 그런 세상이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과연 그들이 경멸해 마지 않는 이회창 대통령 아래에서 지금과 같은 일들이 벌어졌을 때 그때도 지금처럼 열렬히 합리화 해줄 수 있을지를 되물어본다면 금새 그들의 정치적 기회주의가 어떤 것인지 판명될 것이다.

하물며 노무현 바이러스를 발견하여 보급하는데 정열을 쏟았던 인물과 사상 연구소 소장마저 자신이 미쳐 생각지도 못했던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는 ‘노빠’라는 변종 바이러스들의 생존본능적 역공에 붓을 들 수 없는 지경으로 내몰리면서 마치 ‘레지던트 이블’이라는 영화같은 상황이 연출되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그런데 요즘 노빠 바이러스의 자양분도 떨어져 가나 보다.

일부 열혈 노무현 지지자들이 지금까지 자신들의 지지 정당성을 놓치지 않기 위해 현실을 외면하며 자위해오다 이제와서 ‘배신인가 본질인가’ 타령을 하며 단골집을 타박하기 시작했다. 게중에는 딴나라네와 별 차이도 없다며 아우성이다. 그런가하면 열세를 만회하고자 회심의 카드로 들이민 4대 개혁입법마저 정부와 여당이 막판에 누더기를 만들어 놨다며 ‘개혁이 파탄났다’고 분통을 터트린다.

화풀이 대상을 찾고 있던 이들은 촌수가 조금 먼 ‘안개모’라는 단체를 표적삼아 안개낀 이들을 개박살 내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개혁의 트로이목마들이라며 이들의 기회주의적 속성에 대한 비난을 온 몸으로 막아서며 환영해 마지 않던 때가 불과 1년 전이다.

일부 친열린당 인사가 언론에 대고 마치 그들의 기회주의적 근성을 일찍이 간파하지 못하고 이제와서 “이럴 줄 몰랐다”는 듯이 위선적 흥분을 쏟아내는 걸 보노라면 속이 불편하기 까지 하다.

오늘날 노무현 정부에 대한 실망은 비단 개혁.진보진영에만 그치지 않는다. 보수.수구진영의 노무현 정부에 대한 인식은 더욱 가혹하다. 이들에게 노무현은 더이상 현직 대통령이 아니라 하루속히 물러나야 할 탕아 수준으로 격하된 상태다.

이렇듯 노무현 정권의 개혁과 보수에 골고루 환심사기 위한 양다리 정책은 어느덧 “진보도 아닌데 만날 (양쪽에서) 욕만 먹고 있다”는 대통령의 푸념으로 이어졌다.

개혁과 진보적 발전에 대한 사명을 부여받고 탄생한 정권이 정도를 가지 않고 어설픈 보수, 수구화에 따른 양다리 전술로 얻는 건 샌드위치요, 늘어나는 건 푸념일 수 밖에 없다. 이는 수구에 가까운 보수세력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 한국 정치 상황에서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한국의 보수.수구세력은 못먹는 감 찔러나 보자는 ‘놀부 심보’가 그들의 영혼을 지배하고 있으며, 아무리 퍼주어도 늘상 토라지는 ‘에이~씨(AC)형’의 소유자들이다. 이런류의 사람들의 입맛에 맞는 정책으로 그들의 환심을 사 상생하고자 하는 시도는 처음부터 국민통합 레버리지 효과 ‘0’에 가까운 사업에 대한 도전이었다.

여기에 개혁.진보진영의 기대에 턱없이 못미친 ‘좌충우돌형’, ‘잡탕식’ 개혁에 대한 실망으로 떨어져 나간 지지세력과 열린우리당, 민주노동당, 민주당 지지세력간의 개혁의 방향과 내용을 둘러싼 불협화음과 대결적 관계 형성 등을 감안하면 실제 국민통합 레버리지 효과는 마이너스인 셈이다.

민주노동당과 노동, 진보진영의 아쉬움

그런가 하면 진보를 표방한 민주노동당은 높아진 위상만큼의 역할을 수행하기에도 버거운 모습이다.

진보정당의 고질병인 NL이니 PD니 하는 관념의 깃발을 놓고 벌어지는 신경통도 여전하다.그들이 주로 대변하고 있는 계층은 강력한 노조가 이미 결성되었거나, 결성이 용이한 대기업, 공공부문 노동자들이라는 계급적 협애함으로 말미암아 실제 서민대중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중소기업, 영세기업, 실직자, 신용불량자는 노동자정당의 주변인에 불과하다.

과장된 측면이 있지만 투쟁중독자에다 노동귀족이라는 오명까지 얻고 있는 대기업 노조 중심의 노동운동은 노동자 계층간의 양극화, 노동운동 현장의 결집력 약화, 시민사회단체와의 연대전선 부재 등으로 사회적으로 고립, 왜소화되어 가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그런 가운데 조직으로 강력하게 결성된 힘이 아니면 거들떠도 안보는 한국사회 풍토에서 대기업 노동자를 주로 대변하는 민주노동당과는 별개로 중소, 영세기업 노동자와 실직자, 신용불량자 등을 대변하는 또다른 제2의 계급.계층 정당이 만들어져야 할 정도로 이들의 피폐함은 누구도 제대로 대변해주지도, 보호해주지도 않은 채 ‘전환의 계곡’을 지나고 있다.

다만 노동계와 민주노동당 등 진보세력이 최근 들어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적극적으로 연대적 대응을 시도하고 나선 것은 그나마 희망적인 일이라 하겠다.

이처럼 향후 개혁.진보세력에게 주어진 중대한 과제가 이미 거대한 괴물처럼 눈앞에 버티고 서 있지만 이를 해결해 가야할 개혁.진보진영은 총체적 역량 감소와 협애한 계급적 대표성으로 적지않은 한계를 노정하고 있다.

국보법보다 무서운 ‘성장보안법’

지금 개혁.진보진영의 열패감은 개혁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 서민대중의 광범위한 지지를 획득하지 못하고 이들의 외면이 갈수록 심화되면서 개혁 추진 동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는 데 그 포인트를 맞춰야 한다는 건 이미 상수가 되었다.

헌재의 행정수도이전 기각 판결은 헌법제정권력위에서 판결을 내리는 제왕의 논리적 비약과 꿰맞추기식 우격다짐이란 비판에도 불구하고 서민대중의 지지를 받지 못한 개혁의 무기력한 패퇴를 증명하는 상징적 사건이기도 하다.

서민대중의 외면은 결국 보수세력과 수구언론의 자신감을 충만하게 하고 이는 곧바로 개혁.진보진영에 대한 유효한 반격이 되어 개혁 추진 동력을 더욱 떨어뜨리는 ‘개혁 피곤증의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왜 서민대중들은 노무현 정부가 뒤늦게나마 국가보안법 폐지 등 나름대로 명분있는 개혁작업을 올인하듯 추진하려고 하는 데 이를 외면하는가. 그것은 “먹고 살기 힘들어 죽겠는데 돈 안되는 일만 가지고 자꾸 도박을 벌이며 판돈이나 대달라고 졸라대니 피곤하다”는 것 아닐까.

오늘날 개혁.진보진영의 위축은 이런 서민경제의 어려움과 비례하는 일차함수 관계에 놓여있다. 개혁과 진보는 ‘나혼자 잘먹고 잘 살자’가 궁극적인 목적은 아니지만 최소한 ‘다같이 먹고살기 힘든’것이어서는 곤란하다. 하물며 재벌과 기득권층의 살만 찌우고 서민대중의 경제적 하류층화를 방치한다면 더 이상 개혁.진보 정권이라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그건 개혁.진보진영의 무능을 의미할 뿐이며, 서민대중과의 괴리를 심화시켜 결국 자멸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지금 국민들속에 팽배한 빈곤감을 수구언론이 교묘하게 활용하여 “참여정부가 돈안되는 정치개혁에만 매달리고 민생은 외면하고 있다”고 나팔 불며 효과만점의 물타기를 하고 있다. 거기에다 “경제도 좌파 논리에 빠져 분배에만 치중, 성장을 외면하면서 망치고 있다”는 거짓 선전선동으로 혹세무민의 꾕과리까지 쳐대며 가세하고 있다.

경제논리와 근본적 원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날로 생존의 위협에 신음하고 있는 서민대중의 눈에 ‘민생을 외면한다’는 딱지는 치명적인 주홍글씨가 아닐 수 없으며, 이는 각종 여론조사때마다 수치로 증명되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분배하고는 갈수록 멀어져 가는 노무현 정부의 경제적 보수화에도 불구하고 야당과 수구언론은 자신들의 보수적 위치와 공격 좌표를 놓치지 않기 위해 막무가네로 노 정권을 성장을 무시하는 분배주의자라고 딱지 붙여 대고, 재벌들은 이를 핑계삼아 현금을 쌓아놓고도 투자를 못하겠다고 버티면서 경제적 침체를 자신들의 영향력 극대화 기회로 활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개혁.진보진영의 이에 대한 대응은 그야말로 무기력 또는 방치에 가깝다.

지금처럼 재벌과 수구언론에 의해 규범화되어 가는 ‘성장만이 살 길이며, 분배는 좌파논리에 근거한 망하는 지름길’이라는 식의 일방적인 성장우선주의 도그마가 얼마나 음험하게 반개혁적인 뗄감을 생산해낼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그 심각성을 깊이 인식하고 재대로 대응하고 있는 개혁.진보진영의 목소리를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 더욱 절망스럽다.

오늘날 민주노동당의 무상교육제나 부유세 신설 주장이 찬찬히 뜯어보면 갈수록 심각해져 가는 빈부격차를 완화할 수 있는 제도로서 귀기울일 만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실현불가능한 동화책속 이야기로 치부되고 있는 기저에는 이런 성장론의 신앙에 빠져 친북세력에 불과한 민노당의 정책은 마치 거지사회나 다름없는 북한 공산주의식 평등주의 정책일 뿐이라는 인식이 독버섯처럼 깔려 있다. 그리고 이는 한국사회의 사상적 반신불수나 다름없는 척박한 풍토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자본주의 실패의 상징적 결과물인 빈부격차의 심화와 신분의 양극화가 건전한 사회기반을 붕괴시킬 위험에 처할 정도로 최첨단을 달리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이를 보완할 논의 기제로서 자본의 실패를 더욱 가속화는 데 혁혁한 공로가 있는 성장우선주의와 신자유주의적 대안 이외에 어떤 경제적 대안도 의제는 커녕 경제논리의 한 부류라는 자격으로 조차 테이블에 초대받지 못하는 불청객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경제에 관한 이런 성장논리의 일방적 여론침투와 확대재상산 구조가 오늘날 개혁.진보진영의 열패를 가중시키고 있을 뿐 더러, 이에 대한 시급한 대응이 없는 한 개혁.진보진영은 어떤 정치이슈에서도 백전백패할 수 밖에 없을지도 모른다는 예측은 공포감으로 다가온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성장우선주의는 정부는 물론 언론, 여야를 막론하고 광범위하게 하나의 규범처럼 굳어져 가고 있다.

노무현 정부의 경제팀은 수구언론의 분배우선 좌파정권이라는 견제구에 성장만이 살길이라며 성장론으로 방어하기에 급급했다. 이제는 한술 더떠 대통령까지 “특혜를 줘서라도 기업도시를 만들게 해주겠다”며 재벌에 환심사기 바쁘다. 또한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정쟁에 대한 비판여론을 의식한 ‘민생법안 우선처리’ 언표속에는 ‘재벌특혜법안’이 옹골차게 들어 있다.

정부가 발표한 뉴딜정책으로 정작 이득을 보는 것은 재벌이고, 이들 정책의 부유물도 떠먹기 힘든 구조속에 놓인 380만 신용불량자, 500만 기초생활보호대상자와 차상위 ‘빈곤층’ 같은 정작 정책적 구조의 손길이 절실한 서민대중에게는 더욱 소외감만을 안겨줄 수 있다는 걸 간과한 채 경제적 지표로 메겨지는 ‘날림 경제성적표 관리’ 정책이 참여정부에서도 과거 군사정권때부터 이어져 온 고질병처럼 재발하고 있는 것이다.

1933년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 취임 이후 7년에 걸쳐 추진된 뉴딜 정책은 단순한 경기부양책이 아니라 전통적인 자유방임주의 경제관를 포기했던 '사건'으로 정부가 방관자에서 벗어나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미국 자본주의에 수정을 가한 강력한 개혁정책이었다.

따라서 정책의 초점도 대자본가 등 보수층과 헌재의 잇단 뉴딜법 위헌판결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실패를 보완하기 위한 강력한 시장개혁과 서민대중의 침체된 구매력 확대를 겨냥한 적극적인 실업자 구제, 도시 빈민과 농민 구제 등 사회복지제도 확대에 맞춰졌다는 걸 노 정권이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 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1936년 대통령으로 재선된 루즈벨트가 "부자들을 더욱 부유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 바로 진보의 기준"이라는 말로 포효하던 모습을 2008년 한국 차기 정권의 대통령에서도 보게 되기를 기대하는 건 무망한 일인가.

한나라당은 물론이고 열린우리당의 경제를 바라보는 관점 또한 성장일색이다.

경제정책에 관한한 한나라당이나 우리당이나 거의 차이가 없다. 열린우리당내 경제분야를 담당하는 파트는 대부분 관료, 재벌출신 기업인 등 성장위주의 경제론에 익숙한 인사들로만 채워져 있고, 경제의 중요성이 대두될 때마다 이들은 분배적 관점은 커녕 “우린 성장주의자야”를 해명하는 얼굴마담에 그치고 있을 뿐이다.

정치적 표관리 차원에서 벌이는 원수지간도 경제에 관한한 이들은 일가친척이다.

문제는 성장만이 지금의 서민대중의 곤궁함을 결코 해결해줄 수 없다는 건 경제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으며, 분배적 관점 또한 자본주의 실패를 보완하는 방편이라는 것쯤은 상식임에도 ‘왜곡과 뒤집어 씌우기’를 단 한장의 필승카드로 신봉해온 조중동을 비롯한 수구세력과 재벌, 친재벌적 경제관료와 경제학자들은 분배적 관점을 마치 경제에 실패한 사회주의, 공산주의 나라들이나 취하는 방식으로 둔갑시켜 심하게 국민들을 호도하고 있다.

이들에게는 800만 비정규직, 380만 신용불량자, 80만 실업자 등 우리사회에 ‘신 하류층’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엄청난 수의 국민들을 위한 정책은 모두 나라를 거지로 만들 좌파, 빨갱이들이나 하는 짓인양 연일 입으로, 지면으로 국민들을 향해 경제적 사상교육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경제의 성장은 극심한 내수침체가 발목을 잡고 있으며 그 주원인이 바로 이런 서민대중의 피폐함과 동반한 구매력 부재에 있음에도 이들은 재벌 등 대기업의 투자 기피 부문만 과대포장하여 이를 좌파 근처에도 가본 적 없는 참여정부 탓으로 돌려세우며 진짜 좌파들을 어처구니 없게 만들고 있다.

또한 이를 타개하기 위한 해결책으로서 서민대중의 고용증대를 위해선 이들의 취업가능성이 거의 없는 재벌보다는 중소기업, 영세기업, 벤처기업 등의 활성화와 서비스업 부문 강화, 도시 빈민 등 소외계층에 대한 사회복지제도 확충, 신용불량자에 대한 실효성있는 대책 등이 우선 수립, 집행되어야 함에도 이런류의 정책방향을 좌파, 빨갱이식이라는 마타도어를 서슴지 않고 있다.

한국사회의 보수.수구세력에게 분배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모두 한총련과 동급인 친북세력일 뿐이다.

가히 성장우선주의는 한국사회의 강력한 경제적 도그마가 되어 기득권 수호의 첨단병기로서 서민대중의 삶의 질 개선을 위한 다른 관점의 경제적 접근을 압살하는 ‘신 성장보안법’이 되어 가고 있다.

또한 이들 기득권 세력들은 최장집 교수의 지적처럼 ‘변화를 바라는 세력이 대안을 구축할 수 없도록 하는 능력’인 헤게모니를 여전히 장악하고 있다. 여기에는 대안을 만들더라도 시범운영같은 ‘시뮬레이션’조차도 방해하는 수구언론이 주역을 담당하고 있으며, 특별히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관습에 길들여진 사람들의 사고방식, 님비로 불려지는 소지역주의 등이 가세하고 있다.

개혁.진보진영 또한 대안을 마련함에 있어서 실현가능한 적절성과 긍정적 창조성, 정치적 역량과 정책적 진정성의 부족은 사회경제적 개혁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렇듯 사회경제적 개혁이라는 것은 말처럼 그렇게 쉽지 않다. 따라서 기득권을 상대로 개혁작업에 들어가는 직접적 역량외에도, 국민을 상대로 전반적인 사고의 유연함을 키울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가면서 유리한 지형을 만들어내는 간접적인 역량이 더 크고 필요하다. 그렇다면 다면적-다층적으로 전투를 벌어야 할 개혁.진보진영은 더욱 분발해야 할 때이다.

차고 넘쳐도 흘러내릴 줄 모르는 ‘성장의 장독’

재벌과 은행은 아이엠에프 구조조정과정에서 국민들에게 엄청난 빚을 지고서 가장 큰 수혜자가 되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지금 서민대중을 옥죄는 가장 큰 주범이 되고 있다.

재벌 등 대기업은 갈수록 돈이 쌓여감에도 경영권 보호에 눈이 멀어 투자를 외면하며 투자활성화가 시급한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생존의 위협에 직면해가고 있는 중소기업의 가장 큰 애로점이 대기업의 남품단가 인하요구, 일방적인 계약조건 변경, 불규칙한 발주 순이라는 어느 조사에서 보듯이 재벌과 중소기업간의 다이나믹한 공존협력관계를 기대하기 어렵게 만드는 주역 또한 대기업이다.

금융의 핵심을 담당하고 있는 은행은 서민대중에 관한한 더이상의 존재가치를 의심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얌체 전당포’가 되어 가고 있다.

툭하면 중소기업 지원책이라며 수조원의 자금 지원을 약속하는 정부의 발표들은 대다수 중소기업에게는 립서비스에 불과하다는 게 상식이 된 지 오래다.

거기에는 경기침체 등으로 일시적인 자금난을 겪어 금융권 지원을 목마르게 기다리는 기업들이 대부분 은행으로부터 ‘요주의’라는 주홍글씨가 새겨진 채 외면당하고 있으며, 은행들은 추가지원이 불요한 정상 기업들을 상대로 하는 대출 마케팅을 마치 중소기업 지원인 것처럼 생색내는 관행이 도사리고 있다.

아침신문에 중소기업 지원에 나섰다는 기사를 보고 오후에 은행을 들르면 돌아오는 건 ‘만기연장 거부’일 뿐이라는 중소기업체 사장들의 푸념은 정부와 은행의 중소기업 지원책의 정체가 어떤 것인지에 대한 신랄한 고발이다.

누차례 ‘숫자심사’ 위주의 금융권 신용 평가시스템을 포괄적 심사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에도 금융권의 대출관행은 변한 것이 없다.
그것도 모자라 은행들은 정작 서민들이 어려워져 지원을 호소하면 담보를 내줘도 과거보다 훨씬 엄격해진 담보대출비율을 들이밀며 돈 한푼 지원해주지 않으면서 한편으론 각종 금융거래 수수료 인상과 확대로 서민들의 곤궁한 주머니만 털어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서민대중의 세금인 막대한 공적자금에다 그것도 모자라 금반지까지 꺼내서 IMF물에 빠진 금융권을 살려 놓았더니 지금에 와선 떼거지로 보따리까지 내놓으라며 달려들고 있는 격이다.

경기가 나빠지면 일수까지 찍어가며 대출자금과 이자 회수에 열을 올리며 누구보다 앞장서 서민대중을 옥죄는 은행, 경기가 좋아지면 필요없는 데도 굳이 돈 갖다 쓰고 이자 바쳐달라는 은행, 그것도 모자라 각종 금융거래 수수료 인상으로 서민들의 얄팍해진 호주머니만 호시탐탐 노리는 은행, 이런 은행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서민대중에게 갖는 존재 의의가 무언인지 재고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여기에 한술더떠 수구언론들은 대기업에 부담을 줄만한 소득재분배정책 한번 써 본적 없는 참여정부에 “좌파적 분배우선주의 정책 때문에 경제를 망치고 있다”는 터무니 없는 거짓말로 어깃장을 놓으며 행여나 분배정책으로 재벌과 기득권층을 괴롭힐까 바 안달이다.

한국사회에서 경제의 ‘성장’이란 차고 넘쳐도 흘러내리지 않는 다는 것을 이들이 몸소 증명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트리클다운(trickle-down)’ 효과란 근원적으로 성장 수혜자들(기득권층)의 ‘시혜’라는 속성상 한국사회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사회경제적 조건을 안고 있다.

한국경제에서 성장의 효과란 재벌과 수구언론 등 일부 기득권층이 배가 터질 정도로 살이 찐 다음에 이들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넘쳐흐르는 물에 서민대중이 겨우 목을 축이는 정도를 의미하게 될 것이다.
이런류의 성장이란 재벌과 기득권층은 극심한 불황에도 넘쳐흐를 것이되, 서민대중은 경기가 좋아도 항상적 빈곤에 시달리는 노예적 주종관계에서 헤어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사회의 수구언론과 재벌이 외쳐대는 성장이란 지속적으로 그들의 살만 찌우고 사회적 영향력을 강화 해달라는 아우성이다. 한국사회의 상위 기득권층과 공생관계에 있는 보수.수구세력에게 자양분을 무한대로 공급해달라는 데먼스트레이션인 것이다.

그럼에도 참여정부와 집권당은 경제부문에서 만큼은 철저하게 이들에게 굴복하고 있으며, 어떤 다른 대안을 생각해볼 의지도 없다. 어쩌면 의지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다른 대안을 말할 정도의 실력이 형편 없기 때문에 애써 외면하고 정쟁이 될만한 정치적 이슈에만 올인하고 있다는 평가가 더 정확할 지도 모르겠다.

노 대통령의 사회 양극화 해소 의지와 좌파정책도 써보겠다는 방미중 발언이 립서비스 이상의 기대를 갖기 어려운 것은 정부와 여당내 경제 담당 주체들이 철저하게 상장론 위주의 전위부대들로 둘러쌓인 채 거대한 성곽처럼 구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의 발언이 진정성을 갖기 위해서는 최소한 분배경제학 또는 대안적 경제관을 가진 인물들의 적절한 발탁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대안없는 성장론 신봉자에 불과한 IMF 위기관리용 금융전문가를 경제총수로 그대로 두고서 어떤 대안적 경제정책이 유효하게 집행될 수 있을 지를 기대한다는 것은 연목구어에 불과하다.

이렇듯 경제적 성장우선주의는 서민대중들에 대한 배려를 가로막고 오로지 재벌등 소수 기득권층의 성장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경제구조를 강고하게 고착화 시켜 가고 있음에도 당장 뾰족한 수가 없다고 방치하는 건 개혁.진보진영 전체의 무능력이며, 정권을 담당한 세력이 국민을 향해 할 수 있는 최대의 변명에 불과할 뿐이다.

이미 경제적 보수와 수구의 꿀이 있는 언덕을 찾아 루비콘강을 건너고 있는 노무현 정부가 외면한다고 해서 이렇듯 심각해져 가고 있는 사회경제적인 문제를 개혁.진보진영 전체가 마치 최악의 상황만 오지 않기를 바라는 듯한 무기력한 모습으로 계속 방치한다면 개혁.진보진영의 침체, 왜소화는 더욱 가속도가 붙을 것이다.

들불처럼 번지는 사회.경제적 양극화, 자본주의 봉건시대 도래

한국사회는 재벌과 수구언론, 정치인, 거대 금융기관과 대기업 종사자, 자산소득자 등으로 대별되는 귀족층과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서민대중의 경제적 추락으로 인한 하류층화, 천민화로 '신 카스트제(귀족& 하류.천민층)'사회의 도래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이미 이런 조짐은 경제, 정치분야를 넘어서 교육계와 종교계까지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음은 최근 사회 각계의 대립에서 보듯 확연해지고 있다.


이와 관련 최근 최장집 교수가 ‘한국 민주주의의 취약한 사회경제적 기반’이라는 논문에서 지적한 한국사회 양극화 양태 분석은 적나라하며, 개혁.진보진영에게 새로운 경구로서 부족함이 없다 할 것이다.

아래는 최 교수의 분석에 구체적인 수치와 비정규직 부문, 서민대중의 가계파산 문제 등을 추가한 것이다.

기존의 안정적 대기업군, 자산소득자, 경영 및 지식산업 분야의 전문가들이 새로운 사회구조의 상층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동안, 중소기업과 영세산업, 서비스산업 등 주변적 산업부문에 광범하게 존재하는 노동자집단은 분명 보다 절실한 노동문제를 안게 되었다. 이들 주변적 노동자들 가운데서도 여성이나 파견직 노동자, 중소 영세산업의 저학력 고령노동자, “계급 이하의 계급”으로 범주화되는 외국인노동자들의 임금, 고용 및 노동조건은 실로 열악하기 그지없다.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는 전체 임금노동자의 절반이 넘는(56%) 816만여명에 이르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는 한국 경제 전반의 산업구조와 맞물려 있을 뿐만아니라 사회경제적 양극화를 양산하는 주축이다. 또한 비정규직의 열악한 처우는 신용불량, 내수침체, 경기침체의 주요인이기도 하며, 이들의 대다수가 서민대중이다.

여기에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노동시장 밖으로 밀려나는 사람들”, 즉 실업자(80만)와 취약계층, 그리고 신빈곤층으로 분류된 신용불량자들(380만)의 경우는 주변적 노동자집단보다 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노동시장으로부터의 퇴출과 진입이 유연하고, 열려있는 미국이나 서구에서의 노동시장과는 달리, 시장으로부터 밀려난 사람들에 대해 극히 폐쇄적인 한국의 노동시장구조에서, 그리고 열패자들에게 가혹한 한국사회의 풍토에서 이들은 실로 소외와 궁핍, 사회적 차별과 천시를 감내하지 않으면 안 된다.

더군다나 이맇게 엄청난 수의 서민대중이 빚에 쪼들리고, 갚지 못해 이혼과 자살 등이 늘어나면서 한국사회는 가족과 사회 해체의 위기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금융기관과 기업의 부실에 대해선 무려 164조원의 혈세를 동원해서 뒷처리 해준 국가가 수백~1천만명에 달하는 서민대중의 생존의 위기에는 어떤 유효한 대책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IMF가 금융부실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제2의 한국사회 위기는 수백만명에 달하는 서민대중의 가계파산에서 오게될 것이라는 건 더이상 예측이 아닌 실제상황이 되고 있음에도 국가경제담당 주체는 물론 힘있는 여야 정치권, 언론 어디에서도 이를 국가적 의제로 끌어올려 놓고 사회적 담론화를 시도하는 곳이 없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다뤄져야 할 실제 문제(real issue)는 절대다수의 노동인구가 직면한 사회경제적 삶의 조건이 매우 크게 위협받고 있는 현실이며, 이 문제에 대한 적절한 정책대안을 발전시키지 못한다면 한국 민주주의는 적어도 그 내용에 있어 공허한 것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일반 시민들의 사회경제적 삶을 개선하는 데 기여할 수 없다면, 사회적 불만이 확대되는 것만큼 민주주의에 대한 지지의 기반도 약해질 것이다.

불행하게도 민주정부들은 정치사회적으로 우리사회의 위기를 불러오는 사회경제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이렇다 할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 문제를 다룰 수 있는 비전, 의지, 정책대안의 부재를 반영하듯, 오늘의 민주정부는 이렇다할 경제정책을 갖고 있지 못하다. 그 결과는 사회양극화의 급속한 심화이다.

우리는 그 동안 정치인들, 언론들이 ‘사회통합’을 가장 중요한 가치이자 목표인 듯이 강조하는 소리를 듣는 데 익숙해있다. 통합을 강조하는 정치적 담론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렇듯 분리되어가는, 시장에서뿐만 아니라 민주적 권리를 통하여서도 대표되고 보호되지 못하는 한국사회의 다른 영역에 대한 이해와 정책을 말하는 소리를 듣기 어렵다.

사회경제적인 문제가 정당들과 민주정부에 의해 정치적인 문제로 다투어지지 않는 한 오늘의 한국 민주주의는 한 발짝도 진전하기 어려울 것이다.

참여정부의 무능과 무기력, 폭동으로 달려가는 사회

이미 한국사회에는 자본주의에 의한 봉건시대의 도래를 막아야 하는 원초적이고 엄중한 과제가 거대한 괴물처럼 우리 앞에 도사리고 있다.

개혁, 진보 진영에서 누가 이 어려운 과제를 수행해나갈 것인가.

이미 경제적 보수화의 길로 접어든 노무현 정부와 잡탕정당의 진면목을 여실히 보여주며 공룡정당화 되어가는 열린우리당에 기대어 마냥 목빼고 기다릴 수는 없다. 이들은 천박한 기회주의 근성으로 외부의 강력한 압박이 없고서는 그들의 보수화 흐름을 막을 방법이 없다는 건 이미 정치권 상식이 되어 버렸다.

이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이런 흐름을 막는 것은 결국 더이상 인내의 한계를 넘어선 서민대중의 폭발에 의한 폭동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서민대중의 사회경제적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개혁.진보진영이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보수.수구진영에 의한 계층간 차별구조가 심화되는 사회로 이전되어 갈 때 한국사회는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 ‘폭동으로 달려가는 사회’가 되지 말라는 보장이 없는 것 아닌가.

누구에게도 이롭지 않는 이런 경험을 미연에 방지할 의무도 개혁.진보진영에게 있음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이유이다.

분배, 대안경제학에 대한 언론의 역할과 ‘나비효과’ 절실

개혁.진보진영은 무엇을 준비하고 대비해 나가야 할 것인가.

무엇보다 성장제일주의만이 지금의 경제를 회생시킬 수 없으며 경제적 소외자들이 우리 사회에 새로운 하류층, 천민층으로 전락하는 흐름을 막을 수 없다는 현실을 국민들에게 정확히 인식시켜 주는 일이 시급한 과제가 되어 가고 있다.

그래야만 국민들이 재벌과 수구언론에 의한 성장을 통한 기득권 살찌우기 전략에 휘둘리지 않을 것이며, 성장우선주의를 무기삼아 서민대중을 위한 대안정책을 말하는 사람들을 좌파, 빨갱이로 몰아 압살하려는 기도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한국사회는 이를 효과적으로 수행할 대안적 혹은 진보적 경제학자들과 논객들의 활약이 절실히 요청되는 시점에 와 있다.

개혁과 진보를 이야기 하는 많은 이들이 서민대중의 삶의 문제를 주요 의제로 삼아 대안경제적 흐름을 주도할 세력을 신주류로 성장시켜 가야 할 시대적 소명이 있음을 고민할 때가 왔다.

또한 일관되고 뚝심있게 개혁과 진보적 원칙을 견지할 의지가 있는 사람들이 다시 구심점을 형성, 거대한 정치세력화를 시도해야 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정치적 지지의 편향성이 심한 그룹을 제외한 범 개혁.진보진영이 서로의 존재를 존중하며 보수.수구진영의 성장우선의 경제적 폭격에 대응할 큰 틀의 연대가 필요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실현가능하고 합리적이며 정책적 진정성을 갖춘 ‘대안적 경제정책’을 이슈화하여 국민들에게 지속적으로 설파하면서 개혁.진보진영이 먹고사는 문제에 결코 소홀하지도, 무능하지도 않다는 것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방송사와 개혁.진보적 언론매체의 대오각성과 발빠른 대응이 뒤따라야 한다.

지금처럼 언론이 정치권에서 생산해내는 정치적 이슈에만 매몰, 연일 정쟁을 확대재생산하면서 독자들을 호객하는 것으로 장사하려는 ‘정쟁상업주의’ 근성을 하루바삐 벗어나야 할 것이다. 여기에는 뼈속깊이 상업주의로 물든 조중동을 비롯 진보적이라 평가받는 일부 종이언론은 물론 메이저 인터넷신문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정부가 입법예고한 ‘파견법 등 비정규직 관련법’, ‘기업도시 건설 특별법’, ‘각종 FTA협상’ 등이 향후 한국 경제환경에 지각변동을 가져올 중대한 국가적 의제임에도 주요 언론들의 무관심에 가까운 안일한 보도 태도는 사회 공기로서 역할을 포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군다나 날로 심각해져가는 비정규직 노동자 관련법들과 재벌의존 경제체제를 더욱 심화시킬 기업도시특별법 등이 노동계의 심각한 우려와 반발이 제기 되고 있음에도 주요 방송사와 종이언론들은 심층보도는 고사하고 거의 무신경에 가깝다. 설사 보도가 있다해도 정부의 입장 전달에만 비중을 두고 있을 뿐이다.

정녕 IMF 못지 않은 위기가 다시 초래되어 국민적 관심이 집중될 대형 뉴스거리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주요 언론사의 무관심은 또다른 죄악에 가깝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심지어 정치적 사안은 국민들을 상대로 조사해놓고, 경제적 이슈는 성장론 위주의 경제학자들만을 대상으로 조사해서 성장 우선의 여론이 많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하는가 하면, 자사에 불리한 항목은 기존 관행까지 깨가며 삭제해버리는 등 일부 수구언론의 자사 이기주의와 도덕적 타락상이 극에 달하고 있다.

수구언론과 재벌언론은 그렇다 치더라도 방송사와 진보적 종이신문 및 인터넷 매체들은 성장의 사각지대, 고용없는 성장의 실체를 가감없이 보여줘야 하며, 자본주의 실패에 대한 냉험한 비판이 있어야 할 때이다.

예컨데 서민대중들의 삶의 영역인 부식가게, 레코드가게, 장난감, 화장품, 쌀집, 옷가게, 이불가게, 재래시장, 과일가게, 자동차 용품점 등이 문을 닫고 한숨쉬는 장면만을 보여주고 써주는 것으로 서민대중의 어려운 삶을 조명하고, 언론의 역할을 다한 것인가. 이들의 어려운 삶의 이면에 재벌의 거대한 유통망 독식이 초래한 영향은 어느 정도이며, 이들이 경쟁적 대안을 갖출 수 있는 정책적 지원과 이들의 한계는 또 어디까지 인지를 제대로 조명해주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또한 영세노동자들의 경우 정규직이라 해도 4대 보험 등 각종 복지혜택을 못받는가 하면, 사업주까지도 장시간 중노동으로 생존권을 위협받기 일쑤이며 30년전 전태일씨와 지금의 영세기업 노동자는 별 차이가 없다.

영세노동자들의 건강과 재교육, 문화와 복지 수준 등 최소한의 노동여건을 담보하기 위하여 지역단위에서 이를 보장하는 이른바 '사회적 임금' 개념의 도입으로 사업주와 노동자는 물론 자치단체와 시민단체가 결합한 구체적인 프로그램과 그 효과 등을 발굴하여 소개하는 언론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한 시점이다.

사회경제적인 이슈를 정치사회적 아젠다로 만들어 가기 위한 언론의 지대한 관심과 적극적인 노력은 어느때보다 절실히 요청되고 있다.

성장주의로 무장된 수구언론에 맞서 성장과 분배의 균형 혹은 분배에 중점을 둔 대안경제에 대한 소개와 주장을 과감하게 펼쳐감으로써 서민대중들의 삶의 문제가 본격적인 정치적 의제가 되어 개혁& 진보든, 개혁-진보& 보수-수구든, 좌파& 우파든 간에 4대 개혁입법 보다 더 강렬하게 서로의 논리와 대안을 가지고 싸우게 해야 한다. 그 과정속에서 서민대중의 눈을 사로잡고, 누가 진정으로 서민대중의 편인지를 확실하게 보여주며 이들을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생존과 결코 무관하지 않는 정치의 광장으로 나오게 해야 한다.

그속에서 공화국이라는 공동체에 걸맞는 사회경제적 규범과 제도가 논의되고, 성장위주의 자본주의를 보완하는 대안적 경제논리로 무장된 신주류가 창출되어 무엇이 한국사회를 함께 잘살게 하는 길인지를 모색해가는 한층 진전된 사회를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더이상 정치가 정치꾼들만의 권력 헤게모니 쟁투의 장이 아닌 서민대중의 삶의 방향이 결정되는 중요한 ‘제2의 사회경제적 아고라’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장우선주의를 복음처럼 퍼뜨리고 있는 수구언론들에 맞서 진보적인 사회경제적 대안을 제시하는 데 집중하는 언론의 탄생과 역할이 매우 아쉬운 시점이다.

지금 당장 분배적 관점의 경제적 대안을 내놓으라고 윽박지를 게 아니라 숨어있는 대안들이 정치사회적으로 비중있게 논의될 수 있는 사회적 공론의 장을 형성하는 게 더 급선무이다. 대안은 그런 장이 마련될 때 보다 가치있고, 훌륭한 작품들이 쏟아져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싸워오고 피땀흘려 성장시켜 온 개혁이며 진보인가. 그런데 국가보안법이 사라지려는 지금 새롭게 성장보안법이 거대한 해일이 되어 개혁.진보세력을 덮치려 하고 있다.

서민대중의 피폐한 삶을 보듬고 날아갈 진보적 대안경제의 나비들이 곳곳에서 날개짓을 시작하고 성장보안법의 해일에 맞설 거대한 폭풍을 만들어 내야 한다.

이를 외면하고 적절히 대비하지 못할 때 이는 개혁.진보진영의 패퇴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 한국사회는 60년대 군사정권의 암울한 사회를 훨씬 뛰어넘어 귀족과 절대다수의 하층.천민 계층만이 존재하는 중세의 암흑기를 21세기에 와서 경험하게 될 지도 모른다.

21세기 신자유주의가 판을 치며 맞게된 자본주의는 인류사회의 종착점이 아니라 중세사회 구조로 윤회하는 순환구조속의 한 경제사조에 불과할 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의 한국사회를 보고서 아니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는가. / 편집위원
 
* 필자는 '참정연' 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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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19 [19:16]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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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엥란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