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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운전사'에 해당되는 글 1

  1. 2009.02.25 대리운전 기사의 눈물과 채워지지 않는 2%(2005.11.4) 6


대리운전 기사의 눈물과 채워지지 않는 2%
[시론] 어느 대리운전 기사의 눈물을 바라보는 시선들 그리고 아쉬움
 
김영국
“한강에 뛰어 들고파...”

“지금은 야간 대리운전에 하루 2∼3시간씩 자고 낮에는 개인자영업을 하며 생활하지만 그래도 수입은 150만원선. 내 나이 39세에 초등학교 아들 1명 학비대기도 빠듯한 생활...
하나둘씩 떨어져나가는 친구들, 실망한 친척들. 가장 가슴아픈 건 장성한 아들 녀석의 눈동자가 나를 쳐다보는 눈빛이 자신이 없어져간다는 것이다.
때론 밤 12시에 손님을 데려다주고 택시비가 아까워 한강다리를 건널쯤엔 뛰어내리고픈 충동에 가끔 빠지곤 한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어엿한 대기업에서 연봉 4,000만원을 받으며 일하는 중견사원이었지만 빚보증과 사기 사건에 휘말리는 바람에 회사를 떠나야 했다는 어느 대리운전 기사의 눈물겨운 사연이 네티즌들을 울리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거듭되는 경기 침체와 심각한 양극화로 인해 중산층이 붕괴되고, 하루하루가 빠듯한 서민들이 급증하면서 이 대리운전사의 처절한 사연이 더 이상 남의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는다. 가슴 한켠에 막연하게나마 두려움으로 다가오는 것이 오히려 정상인 사회가 되었다.

그래서일까. 이 대리운전사의 우울한 사연을 접한 네티즌들은 로그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2일 이 사연을 소개한 기사가 뜨자 각 포털사이트에는 하루동안에만 800~900여개씩 댓글들이 이어졌다.

☞ 대리운전 기사(홍윤화) 글 원문 보기

☞ 한국일보 기사 -"한강에 뛰어 들고파…" 어느 대리운전사의 눈물- 보기

물론 개인의 불행은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못하고 오로지 자신의 의지만이 가장 큰 구원자일 수 밖에 없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오늘의 사회에서 이런 불행이 더이상 개인의 잘못으로만 치부될 수 없다는 것도 사회적 공론이 된지 오래다.

여론조사때마다 국민의 90%가 이미 우리 사회 빈부격차의 심각성에 대해 절규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그럼에도 개선의 여지는 아직 없다. 아무리 주가가 오르고 국가경쟁력이 높아져도 서민대중의 삶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현실이고 그것이 희망을 갖기 힘든 요인이 되면서 사회는 끝 모를 침체의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가경쟁력은 올라도 절대다수인 서민대중의 경쟁력은 오히려 떨어지는 ‘외화내빈형’ 이중 구조가 고착돼가고 있는 것이다.

좀 심하게 말하면, 국민중 나홀로 잘나가는 재벌소속 구성원, 자산가 등 소수의 20%만이 연간소득 6천만원대이고, 나머지 80%의 국민 모두가 연소득 1천만원대로 한달에 80여만원으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도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는 달성되는 것이다. 우리는 정말 그런 '2만달러 시대'를 꿈꾸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선진한국'에 우리는 얼마나 자랑스러워할 수 있을까.

제아무리 정부가 나아지는 경제지표를 가지고 국민을 설득하려 해도 현실속에 신음하고 있는 사람들에겐 오만한 정권의 염장 지르는 '꽹과리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훈훈한 감동과 채워지지 않는 2%

그래서다. 가슴 아픈 사연들을 접하고 이를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각에 한가지 아쉬운 생각이 드는 것도.

우리는 이웃의 어려움을 위로, 격려하는 선에서 다음 차례는 내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애써 무마하면서 정작 주권자로서 해야할 일은 외면하고 있는 건 아닐까.

지난 반세기 아니 최근 외환위기 이후 더욱 철석같이 믿고 있는 ‘성장만이 만병통치약’, 미국 등 선진국이 강요하다시피하고 한국 정부가 신주단지처럼 끼고 도는 신자유주의적 정책(엄밀히 말하면 '워싱턴 컨센서스')들이 빈부격차의 확산을 오히려 조장하고 있는 현실을 보면서도 ‘미국식으로’, ‘시장이 하는 대로’라는 담론에 갇혀 아무런 의문조차 제기하지 않는다.

그런 주권자의 ‘정치적 회피와 도피’가 우리의 삶을 얼마나 옥죄고 있는지 모르면서 한번 올라타면 빠져나올 의식조차 없어진 채 끝없이 그 자리만 뱅뱅 도는 ‘쳇바퀴속 다람쥐’ 신세가 돼버린 건 아닌지하는 아쉬움이 그것이다.

그것은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에만 혈안이 돼있는 정치권과 그에 속박돼 있는 정부가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주권자인 국민 스스로가 깨어나 끊임없이 문제제기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 지경에 이른 현실로 인해 더욱 씁쓸하다.

정말 우리는 잘사는 10%를 위해 나머지 90%는 뼈빠지게 노력해도 허덕일수 밖에 없는 사회구조를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이름으로 신주단지처럼 혹은 숙명처럼 받들어야만 하는 걸까. 그렇다면 지금이 ‘봉건적 노예시대’와 어떻게, 얼마나 다른 것인지…

과연 우리는 이대로 우리 사회가 굴러가도록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도 좋은 것일까.

네티즌들의 정성스런 댓글들 한데 모아보니, "인생 백화점이 따로 없네"

아래 바로가기(훈훈한 '네티즌 댓글 모음' 보기)는 대리운전 기사(홍윤화)의 사연이 처음 올라온 미디어다음 토론방과 이를 다룬 한국일보 기사가 실린 각 포털사이트에서 네티즌들이 보인 반응들 중 나름대로 의미있고, 정성이 담긴 댓글들을 골라 유형별로 모아본 것이다.

“힘내세요”라는 동감.위로형에서부터 “저도 님보다 나을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저도 비슷한 사연이 있지만 그래도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렵니다.” 류의 동병상련형, “주변엔 님보다 어려운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니 용기를 가지세요.”라는 비교.격려형, “당신은 그래도 낫습니다. 배부른 소리는 그만…”처럼 따끔한 비교.질타형 등 다양했다.

여기에 현실사회 비판형, 정부.정치권 비판형 등도 빠지지 않았다.

특히 동병상련형 댓글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가슴 아픈 사연과 과거를 꺼내 놓으며 “함께 힘을 내자”는 절절한 호소들이 쏟아져 나와 아직은 우리 사회가 따뜻함에 감동을, 너무도 많은 서민들의 애환에 서글픔을 동시에 느껴야 했다.

그동안 생활고를 이기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이나 생각을 드러낸 아픈 사연들이 언론에 기사화 될 때마다 나타난 반응들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네티즌들이 댓글로 쓴 내용들은 달랐지만, 공통점도 있어 보였다. 이 대리운전 기사에 대한 격려든 비판이든 모두가 자신의 현재 혹은 미래를 생각하며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라는 생각 말이다. / 편집위원


☞ 훈훈한 '네티즌 댓글 모음' 보기
 
* 필자는 '참정연' 회원입니다.
   
2005/11/04 [18:25]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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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정연 게시판 해당 글 보기(2005.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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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엥란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