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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최악의 위기, '보이지 않는 손'은 왜 작동하지 않았을까  

[경제뉴스 톺아읽기] 노동자들 희생을 담보로 하는 구조조정… 우리는 왜 분노하는 법을 잃어버렸나

[미디어오늘] 2009년 01월 05일 (월) 08:54:55 이정환 기자 ( black@mediatoday.co.kr)        
  
요즘 신문에 경제 기사가 재미없는 이유가 있다. 조선일보나 매일경제나 한겨레나 신문마다 모두 똑같은 소리를 하기 때문이다. 다들 심각한 위기라고 비명을 질러대면서 정부에 대책을 주문한다. 대책이라고 내놓는 것도 다 똑같다. 신속한 구조조정과 과감한 경기부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을 경질하라는 요구도 모든 언론의 공통된 요구다.

최근 출간된 '김수행, 자본론으로 한국 경제를 말하다'라는 책은 김수행 성공회대 석좌교수의 인터뷰를 엮은 책이다. 이 책에서 김 교수는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과 관련해 흥미로운 주장을 내놓고 있다.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말이 흔히 시장의 가격 결정 원리를 말하는 것처럼 잘못 이해되고 있지만 사실은 다르다는 이야기다.

'보이지 않는 손'은 '국부론'에 딱 한 번 나온다. 누구나 자기 자신의 안전과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결국 사회 전체의 이익이 늘어난다는 게 애덤 스미스의 주장이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한가. 애덤 스미스는 이를 보이지 않는 손으로 얼버무린다. "'보이지 않는 손'의 인도를 받아서 원래 의도하지 않았던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게 된다"가 원래 문장이다.

김 교수는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을 시장만능 또는 자유방임의 이론으로 해석하는 것은 그를 모독하는 행위라고 지적한다. 독점과 시장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모든 걸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등의 주장을 애덤 스미스가 한 적이 없다는 이야기다. 김 교수는 "주류 경제학자들이 입맛에 맞게 애덤 스미스를 왜곡했다"고 주장한다.

이를테면 '국부론'에서 애덤 스미스는 왜 14~15세기에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엄청난 금은보화를 식민지에서 약탈해 왔으면서도 가난한 나라가 됐는지 설명하고 있다. 금이 곧 화폐였던 시절, 금이 넘쳐나다 보니 물건 값이 치솟았고 다른 나라에서 수입이 크게 늘어났고 그러다 보니 국내 산업이 다 죽어버렸던 것이다.

애덤 스미스는 금은보화가 국부가 아니라 국민들이 사용할 수 있는 노동 생산물이 국부라고 지적했다. 국부의 원천이 곧 노동이라는 이야기다. 애덤 스미스는 개인이 자신의 상태를 개선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사회 전체의 이익을 증진시킬 수 있지만 사회 전체의 안정을 위협하는 몇몇 개인의 자연적 자유의 행사는 제한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애덤 스미스는 또 중상주의 정책들, 이를테면 수출증진정책이나 수입억제정책, 식민지정책, 독점무역회사의 설립 등이 일부 상인과 제조업자의 이익을 증진시킬 뿐이고 사회 전체에는 오히려 해롭다고 주장했다. 사회적 이익을 증진시키는 한도 안에서 개인에게 사적 이익을 추구하게 하는 것이 옳다는 이야기다.

김 교수의 분석은 지난해부터 시작된 세계적인 경제 위기와 관련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주류 경제학은 과잉 생산의 필연적인 결과인 경제위기나 경제공황을 설명하지 못한다.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한다면 왜 이처럼 경제위기가 반복되는 것일까. 생산이 늘어나면 가격이 낮아질 것이고 가격이 낮아지면 수요가 늘어날 텐데. 김 교수는 말한다.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과잉 생산이 되면 물건을 전부 못 쓰게 만들고 창고에서 썩게 만들고 공장 문을 닫게 만들고 노동자를 해고하는 식으로 몰아간단 말입니다. 인적 물적 자원이 엄청나게 낭비된단 말입니다.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정도 물건을 만들 생산시설과 생산력이 있는데도 자본가들이 이윤만 추구하기 때문에 모두가 즐겁게 못살게 된다는 말입니다."

'국부'에 대한 관점도 다르다. 김 교수는 "자본가가 이윤을 보기 위해 기계를 자꾸 돌리고 생산력을 증진시키면 국부는 증대되지만 한쪽에서는 실업자가 생기고 그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자본에 종속되고 도구화돼 간다"고 지적한다. 국부를 증대시키기 위해 국민 대다수를 빈곤하게 만든다는 이야기다. 
      
최근 위기 관련 언론보도를 살펴보자. 모든 언론이 위기를 말하는데 그 위기는 자본에게는 이윤 창출의 기회가 줄어들거나 손실을 보게 됐다는 것을 의미하고 노동자들에게는 임금이 줄어들거나 일자리를 잃을 위험, 더 나아가 생존의 위협을 받게 됐다는 걸 의미한다. 위기의 체감 정도는 노동자들에게 훨씬 절박할 수밖에 없다.

언론은 손쉽게 구조조정을 말하지만 구조조정의 목표는 대부분 중소기업에 한정돼 있고 또 그 최종 희생은 언제나 노동자들의 몫이다. 위기의 근본 원인은 과잉 생산에 있는데 노동자들을 잘라내는 것으로 그 위기를 넘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것처럼 여겨진다. 너무나도 쉽게 나중에 과잉 생산이 해소되고 수요가 늘어나면 다시 뽑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경기부양을 이야기하지만 금리를 낮추고 돈을 풀고 금융회사들을 지원하고 세금을 깎아주면서 그 과정에서 실질 소득이 낮아지게 된 저소득 계층은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다. 경제가 먼저 살고 기업이 살고 금융시장이 살아야 일자리도 다시 늘어나고 다들 잘 살게 된다는 논리다. 어떻게든 살려볼 테니까 그때까지 믿고 참고 견디라는 이야기다.

졸지에 사상 최악의 청년 실업을 맞게 된 고졸자와 대졸자들, 날벼락 같은 공장 가동 중단으로 구조조정 위협에 내몰린 노동자들, 그리고 대기업 하청 업체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 최저 임금마저 깎이게 생긴 고연령 노동자들, 정부가 돈을 뿌려대고 물가가 치솟으면서 상대적으로 더욱 가난하게 된 저소득 계층, 이들은 분노하는 법조차 잊고 있다.

국민들은 정부에 항의하고 대책을 요구해야 한다. 이 모든 걸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권력이 정부이기 때문이다. 과잉 생산과 독점 이윤을 방치한 것도 정부고 그 결과 대다수 국민들을 도탄에 빠뜨린 것도 정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10년 전처럼 대다수 국민들의 희생으로 독점적 이윤 구조를 더욱 강화하는 방식으로 이 위기를 넘어서려 할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말하는 국부와 우리 사회 모두의 행복과의 간극은 어느 정도일까. 언론이 말하는 위기 극복은 왜 노동자와 저소득 계층의 희생을 담보로 하는가. 경기 부양을 한다는데 왜 이들의 고통은 더욱 가중되는가. 설령 이 위기를 넘어선들 지난 10년처럼 빈부 격차와 양극화, 우리 사회의 불평등 구조가 더욱 심화되지 않는다는 확신이 과연 있는가.

http://www.leejeonghwan.com/media/archives/00132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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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가들에게 세계대공황의 책임을 묻자!

노동자들에게 고통 떠넘기는 자본가들의 적반하장 공세 - “단호하게 맞서자!”

노동자 생존권을 사수하자 !  자본가들에게 세계대공황의 책임을 묻자 !


[2008년 12월 5일]

9월에 터진 미국발 금융위기에 이어 10월부터 전 세계 실물경제가 빠른 속도로 내려앉고 있다. 세계경제 하강의 폭과 깊이는 상상을 초월한다. 게다가 아직 그 끝을 가늠할 수도 없다. 바야흐로 세계경제는 ‘21세기 세계대공황’으로 접어들고 있다.

21세기 세계대공황이 시작되었다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경제는 세계경제 하강의 영향을 더 크게 받을 수밖에 없다. 10월말에는 중국에 원자재를 공급하는 석유화학 공장들이 멈춰서더니, 12월부터는 자동차 공장들이 감산에 들어갔다. 감산·휴업은 빠르게 산업 전반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자본가들의 공격이 시작되고 있다

경제위기가 본격화되자 자본가들은 다시 그 고통을 노동자들에게 떠넘기려 하고 있다. 울산에 있는 자동차 부품사 덕양산업은 정규직의 10%인 50명에게 정리해고 수순을 밟겠다며 희망퇴직 공고를 붙였다. 이미 비정규직 수백 명을 정리해고 중인 현대자동차에는 2009년 6천명 정리해고 설이 나돌고 있다. 이명박은 15% 인력감축 계획을 세운 농촌공사를 “좋은 모델”이라고 추켜세우며 공공부문 구조조정을 강하게 주문했다. 한국전력에서는 과장급 이상의 임금인상 반납으로 임금삭감의 자락을 깔고 있다.

정리해고·실직·임금삭감 등 IMF 시절 노동자들이 겪었던 고통이 다시 눈앞의 현실로 돌아왔다. 그런데 지금 시작된 세계대공황은 IMF위기보다 훨씬 더 심각한 사태다. 만일 노동자들이 자본가들의 공격에 숨죽인 채 “나는 괜찮겠지” 하는 생각으로 그저 상황이 나아지기만을 바란다면, 노동자들의 앞길에는 끝없는 고통과 절망만이 기다리게 될 것이다.

단순한 불황이 아니라 세계경제 작동구조 자체가 붕괴했다

자본주의 경제는 호황과 불황을 주기적으로 반복한다. 그런데 지금 시작된 ‘21세기 세계대공황’은 그런 주기적 불황 수준의 사건이 아니다. 그동안 세계경제가 작동해 왔던 축적구조 자체가 무너지면서 발생한 위기이기 때문이다.

‘세계화’를 통해 세계경제는 미국(선진국)의 소비(수입)와 중국(개발도상국)의 생산(수출)이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작동해 왔다. 자본가들은 노동조합을 가진 선진국의 노동자들을 정리해고하고 공장을 개발도상국으로 옮겨 값싸고 고분고분한 노동자들을 고용해 상품을 생산한 다음, 이것을 다시 선진국 시장에 내다 팔면서 큰 이윤을 벌었다. 그렇게 해서 선진국 경제가 그럭저럭 돌아갔고 개발도상국들은 상당한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노동자들은 고용불안과 비정규직 확산, 실질임금 삭감, 노동기본권 악화에 시달려야 했지만, 자본가들은 큰 이윤을 만지작거릴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세계화’ 축적구조에는 명백한 모순이 있었다. 미국(선진국)의 왕성한 소비가 있어야만 ‘세계화’ 축적구조가 작동하는데, 정리해고와 임금삭감에 내몰린 미국(선진국) 노동자들의 구매력은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점이었다. 자본가들은 미국(선진국) 노동자들의 구매력을 유지시키려고 엄청난 규모로 주식거품·부동산거품을 조장하고 막대한 신용대출을 제공했다. 그러나 미친 듯이 부풀어 오른 거품은 끝내 터질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서브프라임 붕괴로부터 시작된 미국발 금융위기의 실체다.

금융위기 폭발은 미국(선진국) 노동자들의 인위적인 구매력 유지가 더 이상 불가능해졌음을 뜻한다. 미국(선진국)의 왕성한 소비(수입)가 끝난 만큼 중국(개발도상국)의 생산(수출)도 크게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 이것이 금융위기에 뒤이은 세계적인 실물경제 위기다.

세계대공황은 갈수록 악화될 것이다

‘세계화’ 축적구조 속에서 중국(개발도상국)의 실물경제 성장과 미국(선진국)의 금융거품 부풀리기는 서로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그러나 이제 공황에서 벗어나려는 미국(선진국)과 중국(개발도상국)의 관계는 ‘상대를 쓰러뜨려야만 내가 살 수 있는’, 그래서 결국 ‘누구도 살아날 수 없는’ 것으로 그 성격이 바뀌고 있다.

1929년에 찾아온 20세기 세계대공황은 5천만 명을 죽음으로 내몬 2차 세계대전을 제물로 바친 끝에 1940년대 후반에 가서야 겨우 수습되었다. 21세기 세계대공황의 깊이와 파장은 지난 세기보다 결코 뒤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실업·굶주림·광란·전쟁 등 온갖 야만이 인류를 괴롭힐 시대의 문턱을 막 지나치고 있는 것이다.

초비상사태 - 단호하게 맞서야 한다

세계대공황이 터진 것은 근본적으로 자본가들의 탐욕과 자본주의의 무정부성 때문이다. 그러나 자본가들은 세계대공황에 따른 고통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려고 적반하장 공세를 시작하고 있다. 자본가들의 공세는 빠른 속도로 엄청나게 강화될 것이다. 노동자들을 죽이지 않으면 (즉 고통을 전가하지 않으면) 자신들이 죽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노동자들은 두 눈 부릅뜨고 단호하게 맞서지 않으면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질 운명 앞에 서 있다. 해고, 임금삭감, 고용조건 악화, 사회보장 해체 등 끝없는 공세가 정규직·비정규직·실업자를 가리지 않고 거세게 휘몰아칠 것이다. 자본의 대공세에 맞서 전체 노동자계급이 단결하여 비타협적인 기세로 처절하게 싸우지 않는다면, 결코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지켜낼 수 없는 초비상사태다.

자본가들과 자본주의에 책임을 묻자

세계대공황의 긴 터널을 막 들어서고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숨이 막히는 현실이다. 그러나 두려워만 하지 말자. 위기는 기회다. 역사는 인류의 고통이 극점에 달할 때 가장 결정적인 도약을 이루어 왔다.

세계대공황이 몰고 올 빈곤과 야만은 세계 곳곳에서 폭발적인 노동자투쟁으로 이어질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삶의 가치·방식·체제를 갈구할 수밖에 없는 거대한 에너지가 만들어질 것이다.

세계대공황에 따른 고통을 노동자들에게 떠넘기려는 자본가들의 책동을 단호하게 분쇄하자. 자신들이 벌인 일은 자신들이 책임지게 하자. 나아가 세계대공황까지 터지게 만들면서, 노동자들 그리고 민중들의 인간다운 삶을 도저히 불가능하게 하는 자본가들과 자본주의에 책임을 묻자.

생존권 사수투쟁으로부터 자본주의 자체에 대한 도전으로 나아가자

세계대공황 앞에서 개별 기업의 생존권 투쟁으로는 잠깐의 바람막이를 만들 수 있을 뿐, 근본적인 해결책은 결코 얻을 수 없다. 결국 자본주의 세계체제 자체를 극복하고 새로운 사회체제를 건설해 낼 때에만, 다시 말하여 이윤의 탐욕과 무정부성에 입각한 자본주의를 극복하고 인간다운 삶의 요구에 입각한 사회주의를 건설해 낼 때에만, 노동자들은 그리고 인류는 세계대공황과 그것이 초래할 야만에 맞선 진정한 해결책을 얻을 수 있다.

자본의 공세에 맞서 단호하게 생존권 사수투쟁을 펼쳐 내되, 그러한 투쟁의 힘들을 자본주의 자체에 정면 도전하는 ‘전국적인 노동자 공동투쟁전선’ 건설로 모아 나가자! 정규직·비정규직·실업자의 구분을 뛰어넘어, 산업과 지역의 경계를 뛰어넘어, 모든 노동자가 하나로 단결하여 노동자 생존권을 사수하고 나아가 자본주의 자체를 심판해 내자!

굳센 의지와 희망을 가슴 깊이 담고서, 현실의 고통과 암담함에 정면으로 당당하게 맞서 나가자! 움츠린 동료 노동자들의 어깨를 일으켜 세우며, 뚜벅뚜벅 대결전을 준비해 나가자!

양준석
http://swl.jinbo.net/bbs/view.php?id=st&no=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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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 폭락’ 재벌에겐 호재? 작년 증여·상속 63% 증가

[경향신문] 2009.1.1/ 전병역 기자 

증여액 기준 1위인 이정훈 서울반도체 대표는 지난해 12월1일 두 아들에게 자사 주식 897만6000주(주당 8250원·총 740억원어치)를 증여했다. 주가 2만4000원대이던 1년 전이었다면 증여액이 2000억원을 넘었을 것이다. 주가 하락으로 증여세를 크게 줄인 셈이다.

지난해 증시 폭락으로 주식을 상속하거나 증여한 재벌들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주가가 떨어져 증여세·상속세 부담도 줄어든 때문으로 풀이된다.

1일 재계 전문 사이트 재벌닷컴에 따르면 지난해 상장사 대주주 및 친·인척 4651명의 지분 변동 내역을 조사한 결과 지난해 초에 비해 주식을 증여 혹은 상속받은 사람은 전년의 63명보다 63.5% 늘어난 103명에 달했다.

증여 혹은 상속받은 주식의 가치가 1억원이 넘은 사람도 전년 34명의 배에 가까운 56명이었다.

10억원 이상은 11명, 100억원 이상은 3명이었다. 다만 증여, 상속받은 주식 가치는 총 1165억원으로 2007년의 4800억원에 비해 4분의 1 수준이었다. 지난해 주가가 크게 떨어진 결과다.

곽노권 한미반도체 회장의 아들 동신씨는 128억원어치 주식을, 곽 회장의 세 딸도 각각 8억5000만원어치의 주식을 물려받았다. 장홍선 극동유화 회장의 두 아들은 그린화재 주식 22억4000만원어치를 각각 증여받았으며, 최성원 광동제약 사장도 부친인 최수부 회장한테 주식 20억원어치를 물려받았다.

이밖에 두산그룹 박용곤 명예회장의 손자를 비롯해 KCC그룹 정상영 명예회장의 손자, 효성그룹 조석래 회장의 손자·손녀들이 억원대의 주식을 증여받았다.

삼양사그룹 김윤 회장의 친·인척 중 일부도 억원대 주식을 상속받았다.

<전병역기자>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1011851365&code=920201

:
Posted by 엥란트



대한민국은 '엉클 샘처럼 살라'는 분께
[시론] '공멸의 길'을 안내하면서 '현실에 적응한다'고 우겨선 곤란
 
김영국
대한민국에게 '엉클 샘처럼 살라'는 브라운스톤씨를 보며

이 글은 "돈버는 방식과 게임의 법칙이 바뀌었다"는 제목으로 경제지 머니투데이(4.18일자)에 실린, '브라운스톤'이라는 외부필자의 글(아래 전문보기)을 보고 느낀 소회를 쓴 것이다.

특히 한미FTA와 관련하여 신자유주의 세계관에 빠진 사람들의 사고를 잘 엿볼수 있는 글 같아서다.

☞ "돈버는 방식과 게임의 법칙이 바뀌었다"(브라운스톤-머니투데이) 전문보기

윗글 필자 '브라운스톤'씨가 말하는 핵심은 "잘나가는 엉클 샘 집안처럼 한 명(세째)에게 몰아주고 각 집안의 1등끼리만 경쟁하게 하자. 대한민국도 엉클 샘 집안 세째의 탁월한 투자법을 배워야 산다."로 요약된다.

글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직설적으로 풀면, "미국이 살아가는 법을 대한민국도 빨리 익혀라."는 충고의 글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보수언론을 비롯 많은 사람들이 순응하고 있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브라운스톤씨가 크게 간과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첫째, 브라운스톤씨가 조언하는 자산배분법(투자법)은 엉클 샘 집안에게나 맞는 소리이지 옆집 대한민국에게 할 소리는 못된다는 것. 엉클 샘에게 효험이 있는 약이 철수에겐 독이 될 수도 있는 것처럼.

둘째, 엉클 샘 집안의 살아가는 방식으로는 엉클 샘네도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란 점.

세째, 현실을 제대로 고려하지도 못했고, 모두가 공멸하는 길인 줄 알면서 현실이 그러니까 그냥 따라가자는 걸 '불가피한 대안'이라고 말하고 있는 점. 그건 '자살골'이라고 해야 맞다.

한 곳으로 몰아주었을 때 발생하는 독점의 폐해는 물론, 모든 사람에게 '구멍가게를 처분하고 이마트를 운영하는 신세계 주식을 사서 배당받고 시세차익이나 얻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실현 가능하지도 않는 세상을 전제하는 극단적인 가정은 차치하고라도(설사 그걸 인정하다 치더라도).

브라운스톤씨가 가장 크게 착각하고 있는 점은 엉클 샘 집안과 옆집인 대한민국이 자금력과 경쟁력 면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또는,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 차이는 다음과 같은 상황을 연출하게 된다.

첫째, 대한민국이 엉클 샘 집안 처럼 세째에 몰아줘도 엉클 샘네 세째를 결코 이길 수 없다는 점이다. 게다가 오늘날 신자유주의자들이 좋아하는 글로벌 시대의 시스템대로라면, 대한민국 집안 식구들도 대한민국 세째가 아니라 10% 더 많은 수익률을 올리는 엉클 샘네 세째에게 돈을 몰아주는 게 훨씬 이익이며 안전한 길이다.

둘째, 설사 대한민국 세째가 그만한 경쟁력이 있다 해도 문제다. 엉클 샘네 세째는 대한민국 세째가 위협이 된다 싶으면 언제라도 막대한 자금력을 동원, 대한민국 세째를 먹어치울(M&A) 수 있다는 점이다. 결국 대한민국이 엉클 샘 집안처럼 한 명에게 돈을 몰아주고 나면 한 입에 털어넣기 딱 좋은 상태를 스스로 만들어 주는 꼴이 될 수도 있다.

한미FTA처럼 신자유주의 세계화 협정은 바로 이런 두 가지를 더 잘 되도록 해보자는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어떤 경우든 엉클 샘 집안 하는 대로 따라하단 옆집 대한민국은 자신들의 운명을 엉클 샘 집안에 더욱 의존하게 되고 결국 '종살이 집안'으로 전락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브라운스톤씨의 사고방식대로라면 옆집 대한민국에게 '엉클 샘 집안에 배워라'고 충고하기 보단 '차라리 종살이 하는게 낫다'고 말하는게 더 솔직하고 현명한 것이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모두가 엉클 샘 집안처럼 따라하단 결국엔 엉클 샘 집안도 망하고 이웃집도 모두 망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경제학적으로 말하면 급격하게 '구성의 오류'에 빠져든다. 또한 엉클 샘 집안이 겉보기에만 번지르르하지 심한 속병을 앓고 있다는 점도 브라운스톤씨가 간과하고 있는 점이다.

엉클 샘 집안은 지금껏 자기들이 '달러'라는 종이를 '찍어내기만 하면 돈이 되는 힘'(세뇨리지 효과)을 바탕으로 막대한 자금력을 동원, 브라운스톤씨가 강조하는 그 잘난 잔머리(투자법)를 굴려 이웃집 사람들의 돈을 삥땅 뜯으며 살아왔다. 이웃집 사람들이 못먹고 힘들게 벌어들인, 그래서 자기 식구들에게 배분해야 마땅할 돈을 엉클 샘네의 세째가 막대한 자금력과 그 잘난 잔머리를 굴려 가로채 가는 방식으로 살아 온 것이다.

이웃집 사람들은 엉클 샘 집안이 망하기라도 하면 당장 물건 팔아먹을 큰 집이 사라질까 두려워 알면서도 돈을 잃어주고, 심지어 빌려주기까지 한다. 그야말로 서로가 '죽음의 족쇄'를 채우며 살아가고 있다.

엉클 샘 집안은 이런식으로 세째가 잔머리 굴려 벌어들인 돈과 그것도 모자라 이웃집에 돈을 빌려서까지 이웃집 물건을 싼 가격으로 마구잡이로 사들이며 사치스럽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요즘엔 그 도가 지나쳐 낭비벽으로 인한, 사상 최대의 '쌍둥이 적자'라는 희귀병까지 앓고 있다.

'부자 삼대 못간다'는 속설은 그만두고라도, 이처럼 사치를 일삼는 엉클 샘 집안이 얼마나 오래 갈 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지금이라도 엉클 샘 집안에 돈 꿔준 이웃집 중 한 집만 빚 갚으라고 달려들면 엉클 샘 집안은 그 날로 휘청거리게 될 건 불문가지다. 실제로 최근에 그럴뻔한 일들이 종종 벌어지고 있다. 엉클 샘네 속사정이 다 까발려진 상황에서 도미노식으로 빚쟁이들이 달려들면, 그 집안 풍비박산 나는 건 시간문제일 뿐이다.

이런 경우는 한때 최고의 영화를 누리던 나라가 수없이 명멸해간 세계사를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우리가 세상 살아가면서 너무도 익숙하게 깨달은 이치다.

어쩌면 지금의 엉클 샘 가족은 제2의 대공황으로 가는 길목에서 '최후의 만찬'을 즐기고 있는 상황이 아닐까. 최후의 만찬이 있으면 언젠간 '심판의 날'도 오겠지만...

'대전환기'라는 역사적 흐름속에서 과거에 수많은 나라가 명멸해갔다. 그러나 전환의 계곡을 지나면서 살아남거나 새롭게 신흥 강국으로 떠오른 나라들의 공통점은 역사의 흐름에 그저 순응한 나라보다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한 나라였다.

지금은 엉클 샘네가 살아가는 방식이 대세이던 시대도 기울고 있다. 그런 방식이 더이상 집안을 영화롭게 하기엔 한계상황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브라운스톤씨가 말한 것처럼 세상은 예상보다 빨리 변하기 때문에 엉클 샘네가 살아가는 방식 또한 곧 과거가 될 것이다.

브라운스톤씨의 글은 현실을 보이는 대로만 보고 그 속에 감춰진 '진실된 흐름'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거나, 마치 엉클 샘네 가족들처럼 애써 감추고 있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건 현실이 그렇고, 뾰족한 길이 당장 안보인다고 해서 자기도 죽고 결국엔 모두가 공멸하게 될 길을 버젓이 '대안'이라고 우겨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아무리 뾰족한 방법이 얼른 떠오르지 않는다고, 보호시설도 없는 바닷가를 향해 차를 몰고 질주하는 사람을 보면서 "그건 죽음의 길이야. 가지마!"라고 소리치지도 않는 자신의 모습을 '현실에 적응한다'고 합리화해선 곤란하지 않을까.

그럴땐 "안돼, 앞에 바다야!"라고 크게 소리쳐주는 것만으로도 '최선의 대안'일 수 있다. 아니 그것 자체로 이미 대안의 시작일 수 있다.

'훌륭한 대안'이란 것이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편집위원

*이 글은 '참여민주주의와 생활정치연대'(http://www.cjycjy.org/ ) 홈페이지에 쓴 글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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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는 '참정연' 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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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과 조선일보, 정태인의 '사랑과 전쟁'

2006/04/28 [11:00]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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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엥란트


대한민국은 '엉클 샘처럼 살라'는 분께
[시론] '공멸의 길'을 안내하면서 '현실에 적응한다'고 우겨선 곤란
 
김영국
대한민국에게 '엉클 샘처럼 살라'는 브라운스톤씨를 보며

이 글은 "돈버는 방식과 게임의 법칙이 바뀌었다"는 제목으로 경제지 머니투데이(4.18일자)에 실린, '브라운스톤'이라는 외부필자의 글(아래 전문보기)을 보고 느낀 소회를 쓴 것이다.

특히 한미FTA와 관련하여 신자유주의 세계관에 빠진 사람들의 사고를 잘 엿볼수 있는 글 같아서다.

☞ "돈버는 방식과 게임의 법칙이 바뀌었다"(브라운스톤-머니투데이) 전문보기

윗글 필자 '브라운스톤'씨가 말하는 핵심은 "잘나가는 엉클 샘 집안처럼 한 명(세째)에게 몰아주고 각 집안의 1등끼리만 경쟁하게 하자. 대한민국도 엉클 샘 집안 세째의 탁월한 투자법을 배워야 산다."로 요약된다.

글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직설적으로 풀면, "미국이 살아가는 법을 대한민국도 빨리 익혀라."는 충고의 글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보수언론을 비롯 많은 사람들이 순응하고 있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브라운스톤씨가 크게 간과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첫째, 브라운스톤씨가 조언하는 자산배분법(투자법)은 엉클 샘 집안에게나 맞는 소리이지 옆집 대한민국에게 할 소리는 못된다는 것. 엉클 샘에게 효험이 있는 약이 철수에겐 독이 될 수도 있는 것처럼.

둘째, 엉클 샘 집안의 살아가는 방식으로는 엉클 샘네도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란 점.

세째, 현실을 제대로 고려하지도 못했고, 모두가 공멸하는 길인 줄 알면서 현실이 그러니까 그냥 따라가자는 걸 '불가피한 대안'이라고 말하고 있는 점. 그건 '자살골'이라고 해야 맞다.

한 곳으로 몰아주었을 때 발생하는 독점의 폐해는 물론, 모든 사람에게 '구멍가게를 처분하고 이마트를 운영하는 신세계 주식을 사서 배당받고 시세차익이나 얻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실현 가능하지도 않는 세상을 전제하는 극단적인 가정은 차치하고라도(설사 그걸 인정하다 치더라도).

브라운스톤씨가 가장 크게 착각하고 있는 점은 엉클 샘 집안과 옆집인 대한민국이 자금력과 경쟁력 면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또는,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 차이는 다음과 같은 상황을 연출하게 된다.

첫째, 대한민국이 엉클 샘 집안 처럼 세째에 몰아줘도 엉클 샘네 세째를 결코 이길 수 없다는 점이다. 게다가 오늘날 신자유주의자들이 좋아하는 글로벌 시대의 시스템대로라면, 대한민국 집안 식구들도 대한민국 세째가 아니라 10% 더 많은 수익률을 올리는 엉클 샘네 세째에게 돈을 몰아주는 게 훨씬 이익이며 안전한 길이다.

둘째, 설사 대한민국 세째가 그만한 경쟁력이 있다 해도 문제다. 엉클 샘네 세째는 대한민국 세째가 위협이 된다 싶으면 언제라도 막대한 자금력을 동원, 대한민국 세째를 먹어치울(M&A) 수 있다는 점이다. 결국 대한민국이 엉클 샘 집안처럼 한 명에게 돈을 몰아주고 나면 한 입에 털어넣기 딱 좋은 상태를 스스로 만들어 주는 꼴이 될 수도 있다.

한미FTA처럼 신자유주의 세계화 협정은 바로 이런 두 가지를 더 잘 되도록 해보자는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어떤 경우든 엉클 샘 집안 하는 대로 따라하단 옆집 대한민국은 자신들의 운명을 엉클 샘 집안에 더욱 의존하게 되고 결국 '종살이 집안'으로 전락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브라운스톤씨의 사고방식대로라면 옆집 대한민국에게 '엉클 샘 집안에 배워라'고 충고하기 보단 '차라리 종살이 하는게 낫다'고 말하는게 더 솔직하고 현명한 것이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모두가 엉클 샘 집안처럼 따라하단 결국엔 엉클 샘 집안도 망하고 이웃집도 모두 망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경제학적으로 말하면 급격하게 '구성의 오류'에 빠져든다. 또한 엉클 샘 집안이 겉보기에만 번지르르하지 심한 속병을 앓고 있다는 점도 브라운스톤씨가 간과하고 있는 점이다.

엉클 샘 집안은 지금껏 자기들이 '달러'라는 종이를 '찍어내기만 하면 돈이 되는 힘'(세뇨리지 효과)을 바탕으로 막대한 자금력을 동원, 브라운스톤씨가 강조하는 그 잘난 잔머리(투자법)를 굴려 이웃집 사람들의 돈을 삥땅 뜯으며 살아왔다. 이웃집 사람들이 못먹고 힘들게 벌어들인, 그래서 자기 식구들에게 배분해야 마땅할 돈을 엉클 샘네의 세째가 막대한 자금력과 그 잘난 잔머리를 굴려 가로채 가는 방식으로 살아 온 것이다.

이웃집 사람들은 엉클 샘 집안이 망하기라도 하면 당장 물건 팔아먹을 큰 집이 사라질까 두려워 알면서도 돈을 잃어주고, 심지어 빌려주기까지 한다. 그야말로 서로가 '죽음의 족쇄'를 채우며 살아가고 있다.

엉클 샘 집안은 이런식으로 세째가 잔머리 굴려 벌어들인 돈과 그것도 모자라 이웃집에 돈을 빌려서까지 이웃집 물건을 싼 가격으로 마구잡이로 사들이며 사치스럽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요즘엔 그 도가 지나쳐 낭비벽으로 인한, 사상 최대의 '쌍둥이 적자'라는 희귀병까지 앓고 있다.

'부자 삼대 못간다'는 속설은 그만두고라도, 이처럼 사치를 일삼는 엉클 샘 집안이 얼마나 오래 갈 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지금이라도 엉클 샘 집안에 돈 꿔준 이웃집 중 한 집만 빚 갚으라고 달려들면 엉클 샘 집안은 그 날로 휘청거리게 될 건 불문가지다. 실제로 최근에 그럴뻔한 일들이 종종 벌어지고 있다. 엉클 샘네 속사정이 다 까발려진 상황에서 도미노식으로 빚쟁이들이 달려들면, 그 집안 풍비박산 나는 건 시간문제일 뿐이다.

이런 경우는 한때 최고의 영화를 누리던 나라가 수없이 명멸해간 세계사를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우리가 세상 살아가면서 너무도 익숙하게 깨달은 이치다.

어쩌면 지금의 엉클 샘 가족은 제2의 대공황으로 가는 길목에서 '최후의 만찬'을 즐기고 있는 상황이 아닐까. 최후의 만찬이 있으면 언젠간 '심판의 날'도 오겠지만...

'대전환기'라는 역사적 흐름속에서 과거에 수많은 나라가 명멸해갔다. 그러나 전환의 계곡을 지나면서 살아남거나 새롭게 신흥 강국으로 떠오른 나라들의 공통점은 역사의 흐름에 그저 순응한 나라보다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한 나라였다.

지금은 엉클 샘네가 살아가는 방식이 대세이던 시대도 기울고 있다. 그런 방식이 더이상 집안을 영화롭게 하기엔 한계상황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브라운스톤씨가 말한 것처럼 세상은 예상보다 빨리 변하기 때문에 엉클 샘네가 살아가는 방식 또한 곧 과거가 될 것이다.

브라운스톤씨의 글은 현실을 보이는 대로만 보고 그 속에 감춰진 '진실된 흐름'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거나, 마치 엉클 샘네 가족들처럼 애써 감추고 있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건 현실이 그렇고, 뾰족한 길이 당장 안보인다고 해서 자기도 죽고 결국엔 모두가 공멸하게 될 길을 버젓이 '대안'이라고 우겨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아무리 뾰족한 방법이 얼른 떠오르지 않는다고, 보호시설도 없는 바닷가를 향해 차를 몰고 질주하는 사람을 보면서 "그건 죽음의 길이야. 가지마!"라고 소리치지도 않는 자신의 모습을 '현실에 적응한다'고 합리화해선 곤란하지 않을까.

그럴땐 "안돼, 앞에 바다야!"라고 크게 소리쳐주는 것만으로도 '최선의 대안'일 수 있다. 아니 그것 자체로 이미 대안의 시작일 수 있다.

'훌륭한 대안'이란 것이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편집위원

*이 글은 '참여민주주의와 생활정치연대'(http://www.cjycjy.org/ ) 홈페이지에 쓴 글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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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는 '참정연' 회원입니다.
    
관련기사
노무현과 조선일보, 정태인의 '사랑과 전쟁'

2006/04/28 [11:00]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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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엥란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