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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지는 산업, 무너지는 노동자

[통계로 보는 부동산투기(6)] '부동산 망국'의 길

- 글쓴이 : 손낙구 심상정 의원 보좌관

[프레시안] 2005-06-18 오전 9:06:16


3. 부동산 투기와 산업공동화
  
  ① 해외로 나가는 제조업
  
  제조업을 비롯한 산업공동화 문제는 한국경제 발전의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이다. 산업자원부에 따르면 산업공동화는 일반적으로 기업이 해외직접투자로 생산시설을 해외로 이점함으로써 제조업의 비중이 하락하고 경제의 성장잠재력이 낮아지는 것을 뜻한다고 한다.(산자부, 우리나라 외국인 직접투자ㆍ해외직접투자의 비교분석,2001.12.28)
  
  최근 국내투자의 둔화속에서 중국 등으로 해외투자가 꾸준히 확대되고 있고, 2003년부터 중소기업의 해외투자가 대기업을 초과(금액기준)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산업별로는 전자, 자동차, 기계 등 한국경제의 주력산업에서 해외생산이 확대되고 있으며, 2001년부터는 제조업 투자수지(외국인투자-해외투자)도 적자를 기록했다.
  


  제조업을 비롯한 산업공동화를 해결하기 위한 올바른 대책을 세우기 위해서도 그 원인을 정확히 살피는 게 필요하다. 산업공동화의 중요한 원인이 한국경제가 높은 비용을 치르면서도 효율성이 낮은 구조 때문이라는 진단만큼이나, 고비용 저효율 구조를 떠받치는 게 바로 부동산 문제라는 점 또한 주목해야 한다.
  
  ② 비싼 땅값 → 높은 공장용지값 → 제조업 공동화ㆍ외자유치 걸림돌
  
  부동산 투기로 땅값이 세계 최고수준으로 폭등한 탓에 한국에서 공장을 운영하려면 엄청난 공장용지 가격을 지불해야 하는 악조건을 떠안게 됐다. 흔희 왜 한국에서 공장 문을 닫고 중국으로 가는지에 대해 ‘비싼 임금을 피해 값싼 노동력을 찾아 떠난다’는 논리가 있지만, 재계를 대표하는 전경련이 조사해 발표한 통계는 핵심 원인이 다른 곳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전경련에 따르면 한국의 안산 반월ㆍ시회국가산업단지와 중국청도기술개발구를 사례로 주요 인프라 환경을 비교해보니, 한국이 중국에 비해 임금 약10배, 토지가격 약40배, 법인세 약2배, 공업용전기비 약1.9배, 공업용수비 약1.5배 정도 높은 실정이라고 한다.
  

  임금은 10배 차이지만 땅값은 무려 40배가 차이난다는 것이다. 임금이 중국에 비해 높은 이유도 따지고 보면 중국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세계 최고 수준의 땅값과 높은 주택가격, 그에 따른 높은 물가 때문이라고 할 때, ‘왜 중국으로 가느냐’에 대한 대답은 ‘한국에 비해 40분의 1밖에 안 되는 값싼 땅을 찾아서’라고 해야 정확할 것이다.
  
  전경련, 삼성경제연구소, 산업연구소 등에서 조사 분석한 통계를 보면 중국만이 아니라 동아시아, 유럽, 미국 등 우리와 경쟁관계에 있는 어느 나라와 비교해서도 한국 공장용지 분양가는 압도적으로 높다. 어느 지역을 비교하느냐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우리나라 기업의 공장용지 구입 부담은 경쟁국가에 비해 적게는 2배, 많게는 100배나 된다.
  
  땅을 이용하지 않고 기업을 운영하기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높은 땅값은 한국경제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고비용 저효율 구조의 중요한 원인이 될 수밖에 없다.
  

  공장용지뿐 아니라 도시에서 사무실을 낼 경우에도 한국 기업은 대부분의 경쟁국 기업에 비해 비싼 임대료를 지불하고 있다. 서울의 임대료 지수는 97로 런던(135), 동경(100)을 제외하고는 멕시코시티(25)의 약 4배, 오클랜드(39), 프랑크푸르트(43), 벤쿠버(44), 브뤠셀(52)의 약 2배 가량 비싸고 파리(64), 시드니(73), 뉴욕(84)에 비해서도 훨씬 높다.
  

  ③ 땅값 비싸니 물류비도 많이 든다
  
  물류비가 많이 드는 것도 ‘고비용 때문에 한국에서 기업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지만, 그 이유도 지나치게 높은 땅값에 상당한 원인이 있다. 물론 무조건 도로를 증설하는 등 개발이 능사는 아니지만 설사 필요하다 해도 높은 땅값 때문에 실행하기가 어렵다.
  
  우리나라 물류비용은 GDP 대비 12%가 넘고, 제조업 총매출액의 17%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주요 선진국의 경우 물류비용은 GDP 대비 7~10% 수준이고, 제조업 총매출액에 대비해서도 일본이 8.84%, 미국이 7.72% 정도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물류비는 매우 높은 수준이다.
  

  

  ④ 도로ㆍ댐 건설비도 폭등
  
  물류비가 높은 것은 사회간접자본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인데, 땅값이 너무 비싸니 도로나 철도, 항만, 소방서, 관공서 등 사회간접자본이나 공공재의 건설비도 너무 올라가서 정부예산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2000년 현재 사회간접자본시설 투자를 위한 전체 예산의 80% 이상이 도시지역의 토지 취득비용으로 씌이고, 도시 아파트 건설을 위한 예산 대비 토지비용의 비율은 1963년 9%에서 1997년 60%로 상승했다.(OECD, 한국지역정책보고서 2001)
  
  2002년 현재 우리나라의 총 도로연장은 9만6,037㎞로 1971년 4만635㎞에 비해 2배이상 증가하였으며 도로포장률도 1971년 14.2%에서 2002년 76.7%로 크게 향상됐지만, 아직도 선진국에 비해서는 도로가 부족한 형편이다.
  
  그러나 국도나 지방도로를 낼 때 드는 토지보상비가 1979년 6.2%였던 것이 20년도 지나지 않은 1987년에는 35%로 껑충 뛰었다. 1970년에 완공한 경부고속도로는 총공사비 중 토지보상비가 10%였지만 20여년간 수도권 땅값이 폭등해 1995년 수도권 도시화고속도로를 낼 때는 토지보상비가 총공사비의 95%를 차지했다. 1970년 경부고속도로를 낼 때 1㎞당 건설비를 100으로 했을 때, 7년 뒤인 1977년 구마고속도로를 낼 때는 3배인 2,900으로, 다시 7년 뒤인 1984년 88올림픽도로(담양-대구)를 낼 때는 그 열두 배인 1147.8로 뛰어 올랐다. 20년 뒤인 1991년에는 수도권 땅값 폭등으로 판교-퇴계원간 서울외곽순환도로를 낼 때 128배인 12879, 30년 뒤인 하남-호법간 제2 중부고속도로를 낼 때는 166배인 16657로 폭등했다.
  

  

  댐 건설에 뒤따르는 토지보상비도 급증해왔다. 1973년 소양감댐을 건설할 때는 보상비가 전체 공사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8.45% 불과하였지만, 1992년 임하댐을 건설할 때는 이 비율이 61.4%로 뛰었다.(최지용, 1996, 21세기를 대비한 물관리정책의 개선방안, 한국환경기술개발원, 10쪽)
  
  1997년에 완공된 횡성댐의 경우 보상비비율이 72.6%였고, 남강댐의 경우에는 77.6%로 거의 80%대를 육박했다.(김선희, 1997, 수자원관리와 환경정책,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의 ’21세기국가발전과 환경정책ꡑ워크샾)
  
  4. 부동산 투기와 산업구조
  
  부동산 투기에 따라 땅값 집값이 지나치게 비싼 부동산 문제는 한국경제의 산업구조를 기형적으로 만들어놓아 정상적인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① 건설업 비대한 ‘토건국가’
  
  한국경제가 정상적으로 발전해 진정한 선진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성장잠재력을 키워야 한다는 논의가 성하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부동산 투기의 영향으로 건설산업이 이상비대 현상을 보이는 이른바 ‘건설족이 지배하는 토건국가’라 불리는 후진국형 산업구조는 시급히 개선돼야 한다.
  
  우리나라는 국민경제에서 건설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선진국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각국의 건설업 비중을 살펴보면 우리나라는 1990년대 11~12%대를 기록했고, 2000년대 들어 한 자리수로 낮아졌으나 여전히 9%대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선진국들은 4~6%대에 머물고 있고 일본의 경우 부동산 거품 붕괴 후 건설업 비중이 낮아져 6%대로 떨어졌으며, 미국의 경우 4%대 전후를 꾸준히 유지하면서 안정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GDP 대비 투자비중을 봐도 건설업의 비중은 지나치게 높다. 우리나라의 경우 2000년 국내총생산에서 건설투자의 비중이 23.4%이지만, 선진 8개국의 평균 비중은 13% 수준에 머물며, 특히 주택투자와 토목투자는 우리나라에 비해 각각 3분의 2와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따라서 일정 수준 이상의 주택 재고와 인프라 시설이 갖춰지면, 건설산업의 성장률이 경제성장률을 밑도는 것이 선전국의 경험이라 할 수 있다. (왕세종, 2004) 실제로 각국의 건설업 성장률을 비교해보면 대다수 선진국의 건설업 성장률은 30여 전부터 1~2% 대에 머물렀고 성장률이 높다 해도 3%대를 넘지 않고 있다. 반면 한국은 70년대에는 두 자리수 성장률을 기록했고 80~90년 내내 5.6~7.9%의 가파른 성장세를 계속했으며, 2001년 5.5%, 20002년 2.8%, 2003년 8.1% 등 최근에도 높은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우리나라는 또 건설투자 비중이 설비투자 비중보다도 높게 나타나고, 건설투자가 설비투자보다 성장률에 미치는 영향이 큰 상태여서 선진국형 산업구조와는 거리가 먼 상태이다. <표 2-44>에 나타나있듯이 실제로 1996년~2000년까지 건설투자 비중이 큰 상위 20개 국가를 보면 모두 후진국들이며, 그 중에서 한국은 14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나라 건설업이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과거에 비해서는 약간 낮아졌지만 선진국과 비교해보면 여전히 지나치게 높고, 성장률과 투자율에서도 여전히 그 비중이 높은 후진국형 산업구조에 가깝다.
  
  한화증권경제연구팀(2003.6.30) 분석에 따르면,경기순환별로 살펴볼 때도 건설업증가율은 경기확장국면에서는 성장률 보다 높은 증가율을 기록하며 경기상승을 주도하고 있다. 또 건설경기의 변동성은 GDP에 비해 매우 크며 건설투자와 주택가격의 변동이 경제성장에 미치는 영향이 단기에 집중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정부가 극단적으로는 ‘골프장이라도 지어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논리로 의도적으로 건설경기를 부양해왔기 때문이다.
  

  시민경제사회연구소에 따르면 <표 2-46>과 같이 외환위기 전 한 해 48~54만호 안팎이던 아파트 건설량은 1998년부터는 한 해 평균 34만호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2003년 건설회사수는 1998년 대비 3배로 늘었고 그런데도 건설회사의 부도율은 급격히 줄어 2001~02년에는 1% 미만을 기록했다. 물론 건설회사수가 3배로 는 데는 공공택지를 분양받으려 이른바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정부의 분양가 자율화 조치로 5년 사이에 분양가가 두 배로 올라서 건설회사의 수익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분양가가 두 배로 올라 건설물량도 줄고 회사수도 늘었지만 부도율은 크게 떨어진 것이다. 그러나 그 여파로 주택가격은 크게 올랐고 서민경제는 어려워졌으며 가계대출이 크게 늘어 내수가 침체되고 경제는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정부가 후진국형 산업구조에 집착하며 건설업을 경기부양 수단으로 삼은 결과 이처럼 여러 가지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을 뿐 아니라, 새로운 성장잠재력을 키워야 한다는 한국경제의 당면과제는 갈수록 그 해결이 늦춰지고 있는 것이다.
  
  ② 생산활동보다 부동산투기에 눈 돌리는 기업들
  
  물론 ‘토건국가’에서 살찌는 ‘건설족’ 대부분이 대형 건설업을 겸업하고 있는 한국의 재벌들이다. 재벌 대기업을 비롯한 기업들은 자본투자이득 보다 더 큰 규모의 부동산투자이득을 노리고 부동산 투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부동산 가격이 세계 최고수준이어서 부동산이 없는 기업은 원가 부담이 큰 부담이 되어 기업할 의욕을 잃는 반면, 부동산을 많이 가진 기업은 더 큰 이득을 보게 되니 기업들도 생산적 기업활동 보다 부동산 투기에 뛰어들어 왔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재벌들은 제3차 부동산 투기 파동이 한창이던 1989년 당시 장부가격으로 자기자본 18조의 절반이 넘는 10조원어치의 부동산을 보유하며 생산활동보다 땅 투기에 열을 올려 국민적인 공분을 산 적이 있다. 토지공개념위원회의 연구에 따르면 1974년에 똑같은 금액을 토지와 자본에 투자하여 1987년에 이르렀을 때 토지투자이득이 자본투자이득보다 6배 이상 컸다고 한다.
  
  당시 노태우 정권은 80년대말 2백만호 부동산 파동으로 체제가 흔들리게 되자 1990년 5.8조치를 발표하고 부동산 투기의 주범으로 지적됐던 기업의 부동산 과다 보유에 제재를 가하고, 비업무용 부동산 매각과 신규 매입 금지 조치를 취했다. 그 뒤 토지공개념 3법 도입과 외환위기 발발로 재벌기업의 부동산 투기는 수그러드는 듯 했다.
  
  그러나 외환위기가 끝나고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면서 기업들은 다시 부동산 투자에 나서고 있다. 제4차 부동산 투기 파동으로 부동산가격이 한창 폭등하던 2002년의 경우 땅값은 9%, 집값은 16%가 올랐으나, 제조업체 총자산 수익률은 5.08%로 부동산 투자 이득이 훨씬 높아진 까닭이다.(삼성경제연구소, 2003.5)
  
  표에서 보듯 2004년 1/4 분기 현재 30여개 대기업이 보유한 부동산 규모는 장부가격으로만 52조9천76억, 실제 시가로는 무려 213조8천919억어치에 달하고 있다.
  

  외국과 비교해서도 우리나라 기업들은 지나치게 많은 부동산을 갖고 있으며, 그 결과 설비투자의 효율성이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한국은행이 2001년 말 현재 한국과 미국, 일본 기업들의 부동산 보유 실태를 조사한 데 따르면, 우리나라 제조업체들이 보유하고 있는 토지 보유비중은 총자산 대비 12.5%로 미국 (2.1%), 일본(9.9) 등에 비해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고, 1980년(4.9%)에 비해 2.6배나 커져 꾸준히 늘어났다. 건물의 비중도 12.8%로 1980년(8.7%)에 비해 크게 증가했으나, 설비투자와 직결되는 기계장치의 비중은 1980년(17.9%) 보다 낮은 15% 내외를 유지하고 있어 생산과 거리가 먼 부동산 자산을 늘리는 데 힘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동산 자산을 늘리는 데 힘쓰다 보니 총자산 중 유형자산의 비중이 2001년 말 현재 45.2%로 198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을 뿐 아니라 미국(24.9%), 일본(30.7%) 등 주요 선진국 보다 매우 높은 수준이다. 그 결과 우리나라 기업의 총자산 회전율은 미국, 일본과 비슷한 반면 설비투자의 효율성을 평가할 수 있는 유형자산회전율(매출액/유형자산)은 2001년 중 2.18회로 미국(3.67회), 일본(3.25회) 등의 약 3분의 2 수준에 불과하였다. 이는 우리나라 제조업체가 동일 규모의 매출을 올리기 위해 미국ㆍ일본 기업에 비해 각각 1.7배와 1.5배의 유형자산을 사용한다는 이야기이다.
  

  재벌과 기업들이 투기용으로 사둔 땅과 건물을 처분하고 투자의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자산을 운영하지 않는다면 격렬한 노동쟁의라는 ‘부메랑’ 뿐 아니라, 설비투자의 효율성 등 기업운영의 정상적인 발전 또한 기약할 수 없는 것이다. 어쨌든 부동산 투기는 기업들이 자본주의의 특징인 생산적 투자 증대에 소홀하게 되는 비정상적인 자본주의 경제양식을 뿌리내리게 하고 있다.
  
  ③ 궤도 벗어난 금융산업
  
  국민경제에서 건설업 비중이 지나치게 비대한 상황에서 기업들도 부동산 투기에 적극 나서는 가운데 금융기관이 지나치게 부동산 담보에 의존해 대출을 하게 됨으로써 또 다른 차원의 문제로 번져간다.
  
  은행은 금융중개자이자 자금배분 조정자로 경제발전에 매우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은행이 경제발전을 돕고 동시에 은행도 발전하기 위해서는 기업금융지원에 적극적이어야 한다. 특히 은행은 내부유보가 크고 자본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대기업 보다는 내부유보도 적고 자본시장 이용도 어려운 중소ㆍ신생기업을 적극 지원해야만 은행과 경제가 함께 발전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은행들은 오래 전부터 부동산 담보에 의존해 대출을 해왔다는 점에서 금융중개자나 자금배분 조정자로서의 기능은 물론 경제발전을 돕는 적극적인 역할을 제대로 해오지 못해왔다.
  
  1980년대 중반에서 1990년대 중반까지 일반은행(시중은행 + 지방은행) 원화 대출금 중 부동산 담보 대출비중은 40% 안팎에 이르렀다. 그런데 1995년부터 30%대로 낮아져 2000년에는 36%대까지 떨어졌으나,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던 2001년부터 다시 높아지기 시작해 2003년에는 47%에 육박하게 되었다. 2001년부터 본격화된 제4차 부동산투기 파동 기간동안 부동산 담보에 의존하는 대출 추세는 더욱 강화된 것이다.
  

  더구나 외환위기 후 국내 은행 대부분을 장악한 외국자본이 수익성 전략의 일환으로 기업대출비중을 줄이는 대신 가계대출을 크게 늘렸고, 특히 부동산 투기를 지원하는 부동산 대출을 급격하게 늘리면서 은행의 자산운용 행태를 변화시켰다.
  
  국내 일반은행의 외국인 지분율은 2004년 9월말 현재 59.2%로 사실상 외국자본이 지배하게 됐고, 그 가운데 제일ㆍ외환ㆍ시티ㆍ외은지점은 경영권까지 장악하고 있다. 외국자본이 경영권까지 장악한 ‘외국계’은행들은 주택담보 대출 등 안정자산에 치중하는 경영으로 부동산을 담보로 한 가계대출을 크게 늘리고, 자금사정이 어려워 지원이 필요하지만 상대적으로 신용도가 낮은 중소기업 대출을 급격히 줄였다.
  
  이들 ‘외국계’ 은행들은 1998년말~2003년 9월 사이에 기업대출 비중을 33.3%나 줄이는 대신, 가계대출 비중은 무려 35.2%나 늘렸다. 또 총대출액 중 중소기업 대출비중은 2000년 40.2%에서 2004년 34.6%로 5.6% 낮아진 대신, 가계대출 비중은 32.8%에서 56.6%로 무려 23.8%나 높아졌다.(한국은행 은행국, 2003.12. 한국은행 금융연제연구원, 2005.5)
  
  외국자본이 장악한 은행들의 이같은 자산운용 방식은 은행권 전체로 파급됐다. 1997년 일반은행 원화대출금의 65% 가량이 기업에 대출되었고, 가계대출은 33%를 밑돌았다. 그러나 외환위기 후 국내은행 대부분을 사실상 외국자본이 장악한 뒤 제4차 부동산투기 파동이 시작된 2001년 한 해동안 기업-가계대출 비중은 48.9% 대 49.1%로 처음으로 역전됐고, 지난 해 말 기준으로 가계대출은 55.1%를 기록한 반면 기업대출은 43.5%로 줄어들었다.
  

  특히 중소기업 대출이 크게 줄어들어 중소기업이 극심한 자금난을 겪게 되었다. 1966년 전체 원화대출 중 대기업 : 중소기업 대출 비중은 20.7% : 54.3% 였으나 2003년에는 5.3% : 39.7%로 떨어졌다. (삼성경제연구소, 2005.1.3)
  

  한국은행이 조사 분석한 데 따르면 은행이 가계에 대출해 준 돈은 대부분 주택구입용이었는데 집이 없는 사람들에게 빌려준게 아니라 90%는 집이 있는 사람들이었고, 그 중에서도 특히 강남권을 중심으로 한 서울ㆍ수도권에 집중돼 제4차 부동산 투기 자금으로 사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제4차 부동산 투기 파동이 한창이던 2001년 1월부터 은행이 가계에 대출한 돈 중 주택구입용 대출금은 40%를 훌쩍 넘기며 갈수록 늘어 2002년 들어서는 60% 가까이가 모두 주택구입비로 대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대출된 주택구입비의 90% 이상은 모두 이미 집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대출되어 집이 없는 사람에게 빌려준 비중은 채 10%도 되지 않았고 대출규모도 거액이 많았다. 다시 말하면 내집마련 비용이 아닌 재산증식수단 즉 부동산 투기 목적으로 대출해준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주택구입자금 비중이 어느 지역에서 주로 늘었는지를 보면 더 그 성격은 더 뚜렷해진다.
  
  투기가 심했던 서초ㆍ강남ㆍ송파구 등 강남권은 1년3개월만에 주택구입비중이 19.1%에서 48.2%로 1.5배 이상 뛰었고, 서울지역도 26%에서 53.1%로 100% 이상 그 비중이 늘었다. 수도권과 비수도권도 각각 65%와 49%가 각각 늘었다. 이 같은 추세는 2000년 대비 2003년 집값이 강남-서울-수도권-지방순으로 많이 오른 결과와 비례하고 있다.
  
  부동산 가격이 상대적으로 많이 오른 강남권 등 서울과 수도권의 집가진 사람들에게 대출된 주택구입자금은 다름아닌 부동산 투기 자금으로 사용된 것이다. 또한 대출규모 중 3천천만 초과~1억원 이하 및 1억원 초과 대출은 주택구입용이 각각 65.4% 및 55.0%의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은행조차 부동산 투기에 몰두함으로써 금융시장의 자금중개기능은 크게 약화되어 은행이 경제발전에서 마땅히 해야 하는 기능은 마비돼가고 있다. 경제성장을 돕고 동시에 은행도 성장하는 은행 본연의 궤도를 이탈한 채, 투기를 부추기고 투기이득을 빨아들여 자신도 살찌는 왜곡된 금융산업의 현실은 부동산 투기가 불러온 또 하나의 심각한 결과이다.
  
  5. 부동산 투기와 노동쟁의
  
  ① 투기로 주거비 폭등하니 임금인상 요구할 수밖에
  
  부동산 투기로 땅값 집값 전세 월세가격이 폭등하면 노동자들의 주거비 부담은 가중된다. 전세나 월세가격 또는 내집마련 구입 비용 등 주거비가 폭등하면 임금 외에 다른 소득이 없는 노동자들은 어쩔 수 없이 임금 인상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비싼 주거비는 비싼 교육비와 더불어 우리나라 노동자들이 아무리 임금이 올라도 갈수록 살기 힘들고 임금인상을 요구할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세계최고 수준의 부동산 가격 때문에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주거비 부담은 자기 집 가진 사람들의 기회비용까지를 고려하면 월 평균 소득의 20%가 넘고, 주거비와 교육비가 월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0%가 훌쩍 넘어가고 있다. 즉 우리나라 노동자들은 한 달 뼈 빠지게 일해서 받는 임금의 3분의 1을 세계에서 가장 비싼 주거비와 교육비로 쓰고 있는 셈이다. 세계에서 주거비가 비싸다는 일본과 비교해서도 한국 노동자들의 주거비와 교육비 부담은 2~3배에 달하고 있다.
  

  ②주거비ㆍ교육비에 짓눌리는 40대 노동자 가장
  
  한 달 일해 받은 임금 한도 안에서 여러 가지 지출 항목을 쪼개 빠듯하게 써야 하는 노동자 가구는 다른 항목의 지출을 줄이거나 적자운영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주거비와 교육비가 오르면 소비구조가 왜곡되고 후생분야 소비가 우선 줄어들 수밖에 없다.
  
  특히 40대 노동자 가장을 둔 가계는 다른 연령층에 비해 주거비와 교육비 부담액이 다른 연령층 가계 보다 2배 가까이 높아 고통이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40대 가계는 한 달 소득의 34.2%에 해당하는 103만원을 주거비와 교육비로 쓰고 있다. 문제는 이들 40대 노동자 가장은 우리사회에서 기업 내 명예퇴직 정리해고 1순위로 찍혀 있기 때문에 더 큰 사회문제가 되고 있고 그만큼 노동현장은 불안에 휩싸이고 있는 것이다.
  

  줄이고 또 줄여 쓰겠지만, 부동산 투기로 집값 전세가격이 폭등해 도저히 감당할 수 없게 되면 노동자들이 임금인상을 위한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은 매우 상식에 속하는 일이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말 폭발한 대규모 노동쟁의는 당시 부동산 가격을 폭등시킨 제2차, 제3차 부동산 투기 파동에 따른 노동자들의 주거비 상승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부동산 투기에 따라 주거비가 급등하자 조합주택 설립, 임직원 주거지원 등 주거복지를 제공하기 어려워졌고, 주거복지 혜택이 축소될 경우 임금협상이 난항을 겪고 노사갈등이 격화된다는 것이다.(삼성경제연구소, 주택시장 안정을 위한 긴급대책, CEO Information 402호 2003.5.28)
  
  ③ 제2차 부동산 폭동기 → YH농성 등 쟁의규모 두 배로 늘어
  
  실제로 제2차 부동산 투기 파동이 몰아친 1977년부터 1979년까지 땅값이 최고 연 48.98%까지 치솟아 주거비 상승률(30.8%~54.9%)이 소비자 물가 상승률(10.1%~15.3%)을 크게 앞질러 주거비 부담이 급격하게 높아졌다. 그 결과 유신독재시절임에도 생계압박을 느낀 노동자들의 노동쟁의가 크게 늘었다. 이 기간 동안 노동쟁의 발생건수는 그 이전과 비슷했지만, 쟁의 참가인원과 손실일수는 각각 14,258명과 14,366일로 1977년의 7,975명과 8,294일의 두 배 가까이로 폭증하였다.
  
  1970년대말 제2차 부동산 투기 파동 시기 노동쟁의는 1979년 8월 YH사건 이후 야당의 강경투쟁으로 이어졌고, 국민저항이 확산돼 계엄령 선포까지 가는 등 노동쟁의와 사회갈등은 경제위기를 넘어 정치위기로 연결되었다.(삼성경제연구소, 2003.5)
  

  ④ 제3차 부동산 폭등 → 87년 노동자 대투쟁 폭발
  
  제3차 부동산 투기 파동이 몰아친 1980년대 말에는 군사정권 종식과 맞물려 미증유의 노동쟁의가 폭발했다. 1987~90년간 땅값, 집값, 전세가격은 당시 소비자상승률(3.1%~8.6%)의 2~3배에 달하는 폭등세를 기록했다. 그 결과 도시가구 주거비 상승률도 최고 26%까지 치솟아 노동자들의 주거비 부담을 가중시켰고, 그 결과 대규모 노동쟁의가 폭발했다. 1987년 급증했던 노동쟁의 발생건수는 1988년 전해에 비해 다소 수그러졌지만, 1989년 노동쟁의 참가인원은 전해의 두 배를 기록하는 등 다시 급증했고, 1991년 주택가격이 안정된 뒤에야 정상화되었다.
  

  외환위기로 떨어지기까지 했던 부동산 가격은 2000년을 넘어서면서 땅값과 집값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다시 뛰어오르기 시작해 제4차 부동산 투기 파동이 일었다. 소득증대 외에 저금리와 이에 따른 월세 이율 하락(2001년 8월 1.31→2004년 6월 1.05%)으로 이전에 비해 주거비 부담의 상승 정도는 약했지만, 부동산 가격의 폭등은 이전 시기에 비해 노동쟁의 발생건수나 참가인원, 손실일수를 증가시키고 있다.
  

  결국 부동산 투기에 따른 주택가격과 주거비 상승은 결국 임금인상 압력의 형태로 나타나게 되고, 이것은 산업자본가의 부담을 가중시킨다. 한국의 자본가, 기업가들은 부동산 소유자의 불로소득 때문에 일어난 노동자들의 격렬한 투쟁에 토지소유자 대신 직면해야 하는 부담을 지고 있다. 물론 한국의 재벌과 기업주들은 대부분 동시에 부동산 소유자이므로 이것은 자업자득인 셈이다.(장상환, 2004)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부동산 투기는 한국경제 전반에 심각한 왜곡과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경제의 고질병이라 진단돼온 고비용 저효율 구조 또한 그 근원에는 부동산 투기와 그에 따른 부동산 가격의 폭등이 자리잡고 있다. 더 나아가서 1960년대 이후 지금까지 심각한 불황에는 항상 그에 앞서 토지투기가 있었으며 ‘토지가치의 투기적 상승→건설경기의 후퇴→일반경기의 후퇴’라는 순서로 경제위기로 치달아왔다는 분석(전강수ㆍ한동근, 2001)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1960년 이후 일어난 34개국의 금융위기 가운데 80% 정도가 부동산 등 자산가격 상승을 배경으로 한 과도한 은행대출 확대가 1년 정도 이어진 후에 발생했다는 국제결재은행의 분석도 무시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 구조로 가야 하는 한국경제의 앞날을 위해서는 성장과 분배 양 쪽에서 한국경제의 목을 조이고 있는 부동산 문제를 하루빨리 해결해야 한다.<끝>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30050609135247&S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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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엥란트

“과잉 금융화 방치하면 미국 전철 밟을 것”  


조원희 교수, “금융 규제 완화가 위기 본질… 자통법 전면 재검토해야”


[미디어오늘] 2008년 12월 17일 (수) 10:55:58
이정환 기자 ( black@mediatoday.co.kr)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면 첫째는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로 주택담보대출이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는 것을 억제한 것이고 둘째는 자본시장통합법이 아직 시행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만약 담보 비율이 더 낮고 부동산 거품이 지금보다 더 낀 상태에서 이번 위기를 맞았다면 우리나라는 미국 못지않은 경제위기로 직행했을 것이다. 자통법 역시 마찬가지다. 최소한의 규제마저 없었다면 금융 거품이 훨씬 더 심각한 경제위기를 불러왔을 것이다.”


최근 국회 경제법연구회에서 조원희 국민대 경제학부 교수의 발표 내용 가운데 일부다. 조 교수는 이 자리에서 “지금이라도 자통법 시행을 전면 보류하고 대폭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통법이 시행되고 금융 규제가 대폭 완화되면 수년 내로 미국이 거쳐 간 금융자본주의와 과잉 금융화의 길을 걷게 된다는 이야기다. 조 교수는 특히 과도한 레버리지에 의한 이익 추구를 규제하고 사모펀드와 헤지펀드 설립 요건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미국 뉴욕증권거래소 앞에서 금융 구제금융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
  
  
조 교수는 자통법이 시행되기 전인데도 벌써부터 우리나라 은행들이 투자은행 같은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본연의 업무인 예금 유치와 대출을 넘어 채권과 양도성 예금증서를 남발해 대규모 자금을 조달하고 이를 주택담보대출과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 등에 쏟아 부어 왔다는 이야기다. 아직까지는 자기자본비율 등이 철저히 통제되고 있지만 자통법이 시행되면 은행들이 자본시장에 종속되면서 부실 대출 확대를 규제할 방법이 없게 된다.


조 교수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핵심을 규제 완화와 정부 역할 축소, 자유화 또는 개방화, 노동시장 유연화, 민영화, 감세 및 복지 축소로 정리하고 과잉 금융화를 신자유주의의 마지막 단계로 규정했다. 과잉 금융화란 금융자본이 생산의 영역에서 이탈해 스스로 조직화하고 거품을 확대 재생산하는 상황을 말한다. 최근 미국 금융위기에서 보듯 개별 금융회사 차원에서는 위험을 외부로 전가할 수 있지만 그 결과 시스템 전체의 위험은 극도로 확대된다.


조 교수의 주장은 국내 언론들이 천편일률적으로 최근 위기의 원인을 미국 금융 불안 등 외부 변수에서 찾고 있는 것과 대조된다. 위기의 진단이 잘못돼 있으니 그 해법 또한 단편적이고 주먹구구식일 수밖에 없다. 조 교수는 근본적인 노선 수정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한다. “지금이라도 금융 중심이 아니라 생산 중심, 제조업과 서비스업 중심으로 돌아가 성장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는 이야기다.


조 교수는 이를 위해 금융 규제를 강화하고 주주 자본주의를 억제하고 대기업의 불공정 거래를 뿌리 뽑는 한편, 중소기업 일자리를 늘리고 감세보다는 재정지출 확대를 통해 복지를 확충할 것을 우선 과제로 제안했다. 조 교수는 “4대 강 치수사업에 쓸 돈이 있으면 공공 보육 시설을 늘려 일하는 여성들에게 무료로 영유아 보육을 실시하는 것이 내수를 살리고 고용을 늘리는 해법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75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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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해가는 미국, 국채 가격 치솟는 이유는  


[뉴스분석] 세계 최대 안전 자산에 쏠리는 비이성적 과열… 달러화 약세·인플레이션 우려도


[미디어오늘] 2008년 12월 16일 (화) 10:10:12 이정환 기자 ( black@mediatoday.co.kr)  


미국이 망해 간다는데 미국 국채에 돈이 몰려드는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9일, 3개월 만기 미국 국채 수익률이 -0.03%을 기록했는데 이는 1929년 미국이 국채 발행을 시작한 이래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심지어 미국 국채의 발행 금리가 0%까지 떨어지기도 했는데 그런데도 불티나게 팔려나가는 상황이다.


채권 수익률이 낮다는 말은 만기까지 보유해봐야 얻을 수 있는 이익이 크지 않거나 심지어 수익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질 경우 손해를 볼 수도 있다는 의미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국채를 사겠다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가격이 뛰어오르는 건 도대체 무슨 이유에서일까. 국채 버블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 미국 국채 가격 추이.  

  
미국 정부 입장에서는 국채가 불티나게 팔리고 발행 금리가 낮아지면 자금 조달이 쉬워져 공적 자금 투입에 숨통이 트이게 된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발권력을 동원해 달러화를 찍어내기라도 해야 할 상황인데 지금처럼 국채 수요가 넘쳐나면 국채를 발행해 해결하면 된다. 최근에는 단기 국채는 물론이고 10년 이상 장기 국채 금리도 하락하는 추세다.


알쏭달쏭한 상황이지만 미국 국채가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잘 나가던 금융회사들이 잇따라 무너지고 빅 쓰리 자동차 회사들이 파산의 문턱 앞에 서있지만 이럴 때일수록 미국 국채의 투자 매력이 돋보일 수밖에 없다. 왜냐, 다 망해도 미국 정부가 망하지는 않을 테고 미국 국채가 부도나는 일은 없을 테니까.


최근 미국 국채 가격의 급등, 다시 말해 국채 수익률 급락은 그동안 세계 곳곳으로 빠져나갔던 자금이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안전자산인 국채로 몰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금융회사들이 연말 결산을 앞두고 포트폴리오 관리 차원에서 미국 국채 비중을 늘리면서 국채 거품을 부추긴 때문이기도 하다. 결국 미국 국채만큼 안전한 자산이 없다는 믿음 때문이다.


주목할 부분은 과연 이 같은 미국 국채 쏠림 현상이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느냐다. 대부분 전문가들은 주요 기업들 부도 위험과 디플레이션 압력이 완전히 해소되기까지 한동안 극단적인 국채 선호가 계속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국채 말고는 투자 대상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미국 정부가 의도적으로 제로 금리의 단기 국채를 남발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연말 이후 금융기관들이 포트폴리오를 다시 정비할 가능성이 크고 내년에 2조 달러 이상의 추가 국채 발행이 예정돼 있어 국채 가격이 하락 반전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연준의 유동성 공급이 지나치다는 지적도 많다. 재정수지 적자가 불러올 달러화 약세도 고민거리다. 자칫 달러화 이탈 현상을 불러올 수도 있다는 우려도 확산되고 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재정수지 적자 확대는 달러화 가치에 대한 신뢰도를 급격히 약화시킬 수 있다"면서 "특히 유럽이 금리 인하를 중단할 경우 '달러화=미국 국채'라는 공식이 한 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고 이 경우 좁게는 미국 국채 이탈, 넓게는 달러화 자산 이탈을 가중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 연구원은 "미국 국채의 거품이 꺼질 경우 자금 흐름이 역전되면서 글로벌 자금의 탈 미국 현상과 모기지 금리 상승으로 이어져 또 다른 심각한 불안 요인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채 시장을 어떻게 연착륙 시킬 것인지가 배럭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가 경기 부양과 함께 풀어야 할 또 다른 난제라는 이야기다.


김준기 SK증권 연구원은 "연준의 속셈이 디플레이션 방어와 재정지출 재원 확보를 위해 의도적으로 국채 거품을 조장하는데 있다면 경기 부양책이 의회를 통과하고 국채 발행을 통해 재원을 확보할 때까지 이런 정책 기조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김 연구원은 "연준이 장기 국채 매입을 통한 유동성 공급을 시사하고 있는 것도 주목된다"고 덧붙였다.


연준의 고민은 깊고도 깊다. 연준이 온갖 수단을 동원해 유동성을 공급하고 있지만 시중 자금은 국채로 몰려들고 있다. 연준은 단기 국채를 팔아 번 돈으로 장기 국채를 사들여 장기 금리를 끌어내리고 유동성을 늘린다는 계획이지만 채권 시장이 더욱 과열되면서 자칫 달러화 약세와 인플레이션 등의 부작용을 가져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세계 최대의 채권 펀드 핌코를 운영하고 있는 빌 그로스는 최근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국채 발행금리 0%는 터무니없는 고평가"라며 "위험대비 수익이 전혀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로스는"세계적인 경기침체 장기화에 따른 투자자들의 불안이 꺼지지 않고 있기 때문인데 오래 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경고했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미국의 펀드매니저 마크 파버는 "과도한 빚 때문에 유발된 위기인데 이것을 또다시 완화된 통화정책으로 풀려고 한다"며 "현재의 유동성 경색 국면이 끝나면 다시 인플레이션이 오고 달러화 가치가 절하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파버는 "아직 터지지 않은 거품이 있다면 미국 국채"라고 거듭 강조했다.


오는 18일 연준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리를 추가 인하할 가능성이 크다. 금융시장에서는 금리 인하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면서 장기 국채 매입 등 이른바 양적완화(Quantitative Easing) 정책에 기대를 걸고 있다. 연준의 승부수가 먹혀들 것인지 절망적인 유동성 함정에 빠져들 것인지 관심이 집중되는 긴장된 순간이다.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75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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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엥란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