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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의 동지 '숙청'과 친미·개방파의 '싹쓸이'
[한미FTA 역사쓰기11] "동지는 간데 없고 '미친(米親) 깃발'만 나부껴"
 
김영국



동지는 간 데 없고 '미친(米親) 깃발'만 나부껴

임기 중반을 넘어선 2005년 이후 노 대통령의 인사에는 두드러진 특징이 나타났다. '정통 관료 출신' 집중 배치, 한미FTA를 겨냥한 '적극적 대외개방론자' 득세.

2005년 7월 20일 성장과 분배의 균형을 강조했던 이정우 청와대 정책기획위원장이 마지막으로 물러난 이후 노무현 정권은 핵심 요직에 '관료 출신'들로 채워가면서 급격하게 보수.실용주의 노선을 걷기 시작했다.

특히 한미FTA 공식 개시를 전후해서 한미FTA 적극 찬성파인 개방론적 경제관료들이 요직에 대거 등용되면서 득세했다. 노 정권의 한미FTA 체결에 대한 의지는 이런 인사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임기 초반의 개혁적 사고를 가졌던 자주파.균형론적 학자 출신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정우 정책기획위원장의 사임에 앞서 'FTA 정책 실무책임자'로서 자주파.균형주의자로 꼽혔던 정태인 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은 2005년 5월 27일 행담도 개발관련 외압 의혹으로 청와대를 떠났다. 그러나 이 의혹은 2006월 2월 법원에 의해 무죄로 판명됐다.

이들이 정권과 보수언론에 의해 사실상 '숙청'당한 이후 청와대와 행정부는 '시장·성장중심.친미.개방주의적 정통 관료'들로 포위되기 시작했다. 특히 이정우 위원장의 퇴진은 노무현 정권 경제개혁의 '마지막 보루'가 무너진 상징적 사건으로 비쳐졌다.

정태인 전 국민경제비서관이 물러난 뒤 곧바로 2005년 6월 1일 '한덕수 못지 않는' 개방주의.시장중심주의자인 박병원씨가 재경부 제1차관에 올랐고, 뒤이어 7월 27일에는 한미FTA 행동대장 '오사마 빈 FTA' 권태신 청와대 경제정책비서관이 재경부 제2차관으로 핵심 요직을 꿰찼다.

이정우 정책기획위원장 후임에는 실무형의 송하중 경희대 행정학과 교수가 임명됐고 핵심 업무도 청와대 정책실장에게 이관돼 정책기획위원회는 껍데기만 남게 됐다.

정태인 전 국민경제비서관의 후임은 노대래씨로 주미대사관 참사관으로 근무한 경력에서 보듯 한미FTA를 겨낭한 개방론자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노대래 국민경제비서관과 같은 날(2006.2.6) 함께 임명된 윤장배 농어촌비서관이 과거 '쌀 협상'을 주도했던 사람이라는 점에서 이들의 임명은 한미FTA 협상 공식 개시 이후 이를 지원하기 위한 인사였음이 분명해 보인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6년 4월 17일 '한미FTA 체결 적임자'라며 권오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표부 대사를 불러와 청와대 경제정책수석으로 임명했다.

이어 5월 3일에는 외국 투기자본은 신주단지 모시듯 하면서도 한미FTA 반대론자들에게는 폭언을 일삼았던 권태신 재경부 제2차관을 '탁월한 언어능력'을 보여줬다며 OECD 대사로 영전시켰다.

권태신 후임에는 "한미FTA는 늦춰봐야 손해"라며 "최대한 서둘러 추진해야 된다"고 일갈한 진동수 전 조달청장이 5월 16일 재경부 제2차관으로 기용됐다.

곧바로 5월 30일에는 김병준 청와대 정책실장 후임으로 권오규(54) 청와대 경제수석, 권오규 경제수석 후임에는 윤대희(57) 청와대 경제정책비서관을 임명했다. 경제수석으로 승진한 윤대희 경제정책비서관 후임에는 6월 19일 김대기 기획예산처 예산총괄심의관을 임명, 역시 관료 출신으로 채웠다.

청와대는 윤 수석의 발탁 배경으로 “한미FTA 체결에 대응한 정책 수립 경험이 적임자로 평가됐다”고 밝혔다. 권오규 정책실장과 마찬가지로 한미FTA를 위한 인사였다는 설명이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5.31 지방선거 참패 이후 한덕수 경제부총리와 김진표 교육부총리가 사임하자, 노 대통령은 7월 3일 또다시 야당의 전면적 반대와 여당 일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권오규 정책실장을 경제부총리로, 김병준 전 정책실장을 교육부총리로 임명 핵심포스트에 전진 배치했다.

이와 함께 한 달여 사이에 3명이 바뀐 청와대 정책실장에는 변양균 기획예산처 장관을, 기획예산처 장관에는 장병완 차관을 승진 기용했다. 이주성 청장이 돌연 사퇴한 국세청장에는 전군표 국세청 차장이 승진 기용되었다.

이날 인사 형식은 부총리급 2명과 정책실장이 청와대와 정부를 오가는 이른바 '회전문(돌려막기) 인사'이고, 다른 2명은 내부 승진 기용이었다. 이런 개각을 두고 일각에선 "실패자들의 얼굴 바꾸기"라며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한미FTA 전사들, 회전문 돌아가듯 '초고속 승진'

권오규 신임 경제부총리는 2006년 4월 17일 OECD 대표부 대사에서 청와대 경제정책수석(차관급)으로 자리를 옮긴지 불과 두 달여 사이에 경제부총리까지 숨 돌릴 틈도 없이 승진했다.

노 대통령의 권오규 부총리 승진은 말 그대로 '회전문 돌리듯' 초고속으로 해치웠다. 그를 경제부총리에 앉히기 위해 굳이 한 달 반짜리 경제수석, 한 달짜리 정책실장으로 견습까지 시켜가며 만들어 준 것이다.

특히 권오규 경제부총리는 개방에 대한 소신이 한덕수 전 부총리 못지않다는 평가다. 그는 옛 경제기획원에서 대외경제조정실 과장을 맡던 1990년대초 금융개방 문제가 OECD 가입의 걸림돌이 되자 부총리를 직접 설득하기도 했다. 국가경쟁력을 키우려면 개방과 경쟁은 불가피하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한미 FTA 추진의 강도가 약화되기는 커녕 보다 적극적인 개방정책을 펼치기 위한 인사였던 것이다. 경제부총리에서 물러난 한덕수도 곧바로(7월 24일) 한미FTA 체결 지원위원회 위원장에 임명, 한미FTA 체결 성사를 위해 총력 지원토록 했다.

이들보다 전에 임명돼 노무현 정권에서 살아 남아 승승장구하고 있는 인사들 또한 정문수 청와대 경제보좌관(한미FTA 매파), 이경태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원장(한미FTA 장미빛 제조기) 등처럼 한덕수, 권오규와 똑같은 사고와 성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만큼 노무현에게는 한미FTA를 겨낭한 적극적 개방론자만이 필요했던 것이다.

예상대로 권오규 부총리는 2006년 8월 10일 “절차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해서 한미FTA을 추진하지 않아야 될 이유가 안된다”고 말하는 등 참여정부의 정체성을 뒤엎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한미디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한미FTA는 해야 된다고 역설한 것이다. 노 대통령의 입버릇처럼 '하늘이 두 쪽 나도 한미FTA는 해야 된다'는 게 그의 지론인 셈이다.

청와대 정책실장에 새로 임명된 변양균씨는 그 전에 권 부총리보다 한 술 더 떴다. 그는 "FTA를 통하지 않고 선진국으로 도약한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고 단언하고 "한미FTA 반대는 피해망상주의·사대주의에 불과하다"고 일축한 바 있다.

노 대통령의 인사는 어쩌면 이런 걸 감안한 인사였다고 볼 수 있다. 한미FTA 반대론자들을 특유의 '입담'으로 받아칠 수 있는 '전사'들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로써 노 정권은 한때 대통령의 측근이자 동지였던 개혁.자주파.균형주의 성향의 참모들을 모두 사실상 숙청하고, 그들의 빈자리에 보수.친미.개방주의 성향이 강한 관료 출신으로 대거 교체했다. 사실상 한미FTA 적극 찬성론자들로 모두 채워 넣은 것이다.

노 대통령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청와대 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의 민간위원들까지 온통 신자유주의에 물든 한미FTA 적극 찬성론자들로 채웠다. 심지어 한미FTA를 위해 4대 선결조건 조속 처리를 집요하게 요구했고, "한미FTA로 경영진 마음대로 노동자를 해고토록 해야한다"고까지 주장했던 웨인 첨리 주한미국상공회의소 회장까지 민간위원으로 발탁했다.

노 대통령은 2006년 7월 14일 어윤대 고려대 총장 등 각 분야 전문가 28명을 제4기 국민경제자문회의 민간위원으로 위촉했고, 어 총장을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으로 지명했다.

부의장으로 위촉된 어윤대 총장은 14일 위촉장 수여식에 앞서 "한미간 FTA 체결도 멕시코처럼 좋은 효과를 낼 것으로 판단한다"며 한미FTA를 적극 옹호하고 나섰다.

노 대통령도 이날 회의에서 “한·미 FTA는 대통령으로서 다음 세대를 고민하고 내린 결단”이라면서 “반대하는 분들도 소신과 양심을 갖고 있겠지만 대통령도 소신과 양심을 갖고 결단을 내린 것”라며 맞장구쳤다.

2002년 동지들, '한미FTA 반대 전선으로'

반면 참여정부 초기 경제정책을 형성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던 ‘개혁파’들 중 노무현 정부에 남아있는 사람은 사실상 전무한 실정이다.

이정우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경북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으며, 이동걸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재경부가 추진하고 있는 자본시장통합법을 공개적으로 비판해 파문을 일으켰다. 정태인 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도 청와대를 나온 뒤 한미FTA 반대의 최일선에 뛰어들었다.

특히 한미FTA 2차 본협상을 앞둔 2006년 7월 6일에는 청와대, 대통령직 인수위 등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노 대통령의 전·현직 측근 인사들이 한미FTA 졸속 추진에 반대하며 '협상 중단'를 요구한 '한미FTA 협상에 대한 경제학자들의 성명서'에 줄줄이 이름을 올리면서 한미FTA 반대 운동에 동참해 이목을 끌었다.

이날 성명에는 이정우 전 정책실장과 박태주 전 비서관 외에도 홍장표 대통령 인수위원회 위원, 김유선·박진도·이병천 청와대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 등 전·현직 참여정부 인사가 대거 참여했다.

대통령직 인수위나 자문교수단 출신의 친노 교수들 중 현재까지 내각과 청와대 요직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은 사실 그리 많지 않다. 김용익 청와대 사회정책수석(서울대)을 제외하면 남아 있는 교수들이 거의 없다.

'이피아(관료 마피아) 정권' 된 노무현 정부와 민주주의 대표체계의 붕괴

이런 과정을 거쳐 2006년 7월 3일 개각과 7월 24일 한미FTA 체결 지원위원회 위원장에 한덕수 전 경제부총리를 임명한 것을 끝으로 옛 경제기획원(EPB) 출신 경제관료들이 '청와대-행정부(특히 경제부처)-여당'의 정책 핵심 라인을 대부분 장악하면서 모피아에 이어 '이피아'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특정부서 출신 관료의 ‘싹쓸이’ 현상까지 나타났다.

옛 재무부를 뜻하는 영문 명칭인 MOF와 마피아를 합성한 말인 '모피아'는 그동안 재경부와 청와대, 금융감독위원회, 금융감독원 등 정부의 요직뿐 아니라 국책은행과 정부 산하기관 등 금융권을 좌지우지해 왔다. 강력한 업무 추진력과 조직력을 앞세워 "관(官)은 치(治)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말을 서슴없이 할 정도로 관치 금융을 주도했었다.

이들은 선후배끼리 요직을 주고받으며 강력한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해온 폐쇄적 조직 특성 때문에 외환위기 책임론, 각종 외압 및 비리 의혹 등으로 줄곧 비난의 대상이 되곤했다.

그러다 노무현 정권 임기 중반을 넘어선 2005~2006년 사이에 옛 경제기획원(EPB) 출신 경제관료들이 요직을 독차지하면서  ‘이피아’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옛 경제기획원(EPB)과 마피아(Mafia)의 합성어로 최근 기획원 출신 인사의 득세를 빗댄 말이다.

이는 옛 재무부 출신 관료들을 일컫는 ‘모피아’(재무부의 영문명인 MOF와 마피아의 합성어)처럼 특정 부서 출신에 권한이 집중되는 것을 우려한 경계의 의미도 담겨 있다.

한덕수 한미FTA 체결 지원위원회 위원장, 권오규 경제부총리, 박병원 재경부 제1차관, 장병완 기획예산처 장관, 전윤철 감사원장, 김영주 국무조정실장(이상 경제부처와 정부),  변양균 청와대 정책실장, 정문수 경제보좌관, 노대래 국민경제비서관, 윤대희 경제정책수석, 김대기 경제정책비서관(이상 청와대),  강봉균 열린우리당 정책위의장 등이 바로 '이피아'의 핵심 맴버들이다.

청와대는 아예 이피아가 핵심 요직을 싹쓸이 해버렸다.


이들은 과거 경제정책을 총괄했던 재정경제부에서 기획원 출신들과 한솥밥을 먹으며 양대 세력을 형성했던 옛 재무부 출신 주요 인사들이 최근 외환은행 헐값매각 의혹 사건과 관련해 검찰 조사를 받으며 어려운 입장에 처한 것과 대조적이다.

반면 옛 재무부 출신 관료들은 최근 몰락을 거듭하고 있다. 모피아의 대부로 꼽혔던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가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것을 비롯, 현대.기아차 비자금 사건의 불똥으로 변양호(전 금융정보분석원장) 보고펀드 대표, 연원영 전 자산관리공사 사장, 김유성 전 대한생명 감사 등이 줄줄이 구속됐다. 외환은행 매각 등을 놓고 재경부 책임론이 나올 정도로 비난 여론도 무성한 상황이다.

그러나 특정 지역.학교 출신들이 권력의 핵심 포스트를 장악하는 것도 문제지만, 이처럼 특정 부처.부서 출신들이 주요 자리를 독차지할 경우 반드시 그 부작용이 나타날 수 밖에 없다는 건 굳이 앞선 모피아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과거 사례에서 무수히 증명된 바 있다.

정부 부처 중에는 이처럼 특정 연고를 중심으로 강력한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해 선후배끼리 요직을 주고 받으며 국가 정책을 좌지우지하는  ‘관료 마피아’가 설치는 부처로 악명 높은 곳이 두 곳이 있다. 바로 재정경제부와 교육부다.

한 나라의 경제와 교육이 이런 관료 마피아의 수중에서 놀아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때문에 누가 정권을 잡든 자신들이 국민과 약속한 공약을 흔들림없이 실천하기 위해선 "재경부와 교육부부터 없애버리고 새로 창설해야만 가능하다"는 속설이 이따금씩 설득력있게 제시되기도 한다. 그렇지 않고선 정권이 이들에게 쉽게 포위돼 그들의 손아귀에서 놀아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피아'들이 대선 전부터 노 대통령과 '코드'를 맞췄던 인사들도 아니다. 대부분은 관료나 교수 출신으로 현 정부 출범후 노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다.

정권 말기로 갈수록 소위 '안정적 관리'라는 명목으로 관료들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는 현상은 김대중 정부 당시에도 마찬가지였다. 노무현 정권도 똑같은 전철을 밟고 있는 것이다.

결국 관료 출신들이 경제정책 라인을 완전 접수함으로써 한미FTA 등은 더욱 탄력을 받는 반면, 개혁정책의 강도는  ‘찻잔 속 태풍’처럼 소멸돼갔다. 그에 비례해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을 선택했던 지지자들도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그 결과 노 정권의 지지기반이 완전 붕괴되면서 '권한의 위임과 대표의 책임'을 핵심 연결고리로 꽃피워야 할 '대의민주주의'가 특정 정치인에게 기대고 의존할 때 얼마나 허망하게 무너질 수 있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말았다.

그러나 한편으론 유권자 역시 어떤 정책이 자신의 삶에 중요한 것인지, 그 정책을 어떤 정치세력이 제대로 구현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한 면밀한 검토와 검증에는 무관심하면서 언론에 의해 형성된 특정 정치인의 이미지만을 좇아 자신의 정치적 대표를 선택하는 현상이 반복되는 한, '열광과 분노', '접근과 이탈'로 점철되는 정치적 대표체계의 붕괴는 누가 집권하든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2006년 노 정권 지지기반의 참혹한 붕괴는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가 매우 중요한 과제임을 모든 정치세력에게 각인시켜 주었다.


▶노무현 정부 한미FTA 추진 주도세력들의 면면◀

☞ 한미FTA 추진 주도세력들의 면면과 폭언, 거짓말, 친미 행각 총정리(대자보, 2006.8.29)  

▶개혁.자주파.균형주의 참모 숙청과 시장·성장중심.친미.개방주의 관료로 대거 교체 과정◀

☞ 靑, 문정인.정태인 전격 사표수리와 배경(연합.다음, 2005.5.27)  

☞ ‘행담도 의혹’ 문정인·정태인씨 무죄 판결(한겨레, 2006.2.6)  

☞ 정태인 전 청와대 경제비서관, “이정우 전 정책실장과 내가 청와대를 나온 이후 청와대가 관료들에게 포위되기 시작했다”(문화일보, 2006.4.7)  

☞ 재경부 차관에 박병원 임명(이데일리, 2005.6.1)

☞ 박병원 차관, '한덕수 부총리 못지않은 개방론자.시장중심주의' 닮은 꼴(한국경제.네이트, 2005.6.1)

☞ 청와대, 복수차관제 도입에 따른 제2차관 발표-재경부 2차관에 '한미FTA 행동대장' 권태신 청와대 경제정책비서관 임명(데일리서프라이즈, 2005.7.27)

☞ 靑, 국민경제비서관(국민경제자문회의 사무차장 겸임)에 김수현, 빈부격차비서관에 황덕순 선임 (데일리서프라이즈, 2005.6.17)  

☞ 靑, 국민경제비서관에 '주미대사관 참사관' 출신 노대래, 사회정책비서관에 김수현, 농어촌비서관에 '쌀협상' 담당한 윤장배 임명(프레시안, 2006.2.6)  

☞ 노대래 국민경제비서관, '경제기획원 출신 정통 관료'(이데일리, 2006.5.30)  

☞ ‘개혁상징’ 이정우 퇴장, 경제개혁 무뎌질라(한겨레, 2005.7.20)  
이정우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장이 20일 사의를 밝히면서 그 배경과 향후 참여정부의 정책에 미칠 영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위원장은 그동안 노무현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바탕으로 참여정부 개혁의 중심축 구실을 해 왔다는 점에서 앞으로 참여정부의 개혁이 무뎌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 위원장은 노무현 대통령과 대선 후보 때부터 핵심참모로 관계를 맺었으며, 노 대통령 당선 이후 인수위 경제1분과 간사-청와대 정책기획실장-정책위원장을 차례로 거치면서 각종 경제, 사회적 개혁과제들의 밑그림을 그려 왔다. 그는 재계의 성장우선론에 맞서 분배와 성장을 함께 추진해야 한다는 ‘동반성장론’을 펴오면서, 참여정부가 추진하는 개혁을 상징하는 인물로 꼽혀 왔다.

이 위원장의 퇴진은 참여정부 내 개혁세력의 퇴장으로 보는 이들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참여정부의 개혁정책이 표류할 것이라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특히 재벌개혁과 관련해서는 이제 진전이 없을 것이라는 분위기가 청와대 안에서도 팽배하다. 재벌개혁과 관련해서는 이동걸 전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 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 등과 함께 이 위원장이 정부 안에서 3인방으로 불렸는데, 이제는 강 위원장만 남게 됐다.

일부 학계에서도 이 위원장이 참여정부 출범 이후 계속돼온 보수 경제관료들의 조직적 사보타주와 견제에 결국 밀린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또 정책기획위원회 관계자는 “대통령이 개혁을 완전 포기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임기 중반기를 넘기면서 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데 서서히 한계를 보이고 있다”며 앞으로 남아 있는 개혁과제의 집행과정에서 대통령이 관료에게 지나치게 의존하고, 그 결과 애초 뜻이 왜곡되는 사례가 많아질 것으로 우려했다.

☞ 정책기획위원장 송하중씨·동북아위원장 이수훈씨·교육혁신위원장 설동근씨 임명(연합.한겨레, 2005.8.2)  

☞ 3대 국정과제위원장 물갈이, ‘개혁형’서 ‘실무형’ 이동(경향신문, 2005.8.2)   
 
☞ 청와대 경제정책수석(차관급)에 권오규 OECD 대사 임명-靑, "한미 FTA 체결, 양극화 등 경제 현안 해결에 적임자"(프레시안, 2006.4.17)  

☞ 권태신 재경부차관 OECD대사로 영전, "탁월한 언어능력, 적극적인 업무추진력이 발탁 사유"(머니투데이, 2006.5.3)

☞ 권태신 신임 OECD  대사, "OECD 가입 위해 금융시장을 서둘러 개방했던 게 외환위기를 촉발했다는 지적에 대해, '오비이락(烏飛梨落)'일 뿐이라며 일축"(한국경제.야후, 2006.5.17)

☞ 재경부 제2차관에 진동수 조달청장 임명, "한미FTA 체결 등 산적한 현안 잘 처리할 것으로 기대" 발탁(프레시안, 2006.5.16)

☞ 김병준 정책실장 사임(매일경제, 2006.5.29)  

☞ 노 대통령,신임 청와대 정책실장에 권오규,경제정책수석비서관에 윤대희 임명/프로필(프레시안, 2006.5.30)  

☞ 새 靑정책실, 협상앞둔 ‘한미FTA’ 포석인가(경향신문, 2006.5.30)  

☞ 개혁 버리고 기존 관료체제로 완성,회귀- 경제정책라인 '삼각축' 모두 관료가 장악(문화일보, 2006.5.31)  
  
☞ 김대기 경제정책비서관 발탁과 배경-"경제기획원, 기획예산처 등 거쳐 다양한 업무 추진 경험과 전문성을 보유한 관료 출신"(프레시안, 2006.6.19)

☞ 참여정부 출범 후 개각일지(세계일보, 2006.6.30)  

☞ [7·3 개각] 권오규 경제부총리, 김병준 교육부총리, 변양균 청와대 정책실장 임명, '노무현의 사람들', 임기말 최전선으로(오마이뉴스, 2006.7.3)
  이번 인사로 집권 후반기 내각의 색채와 운용 방향에 대한 노 대통령의 메시지는 더욱 분명해졌다.
청와대에서 호흡을 맞춰온 인사들을 중용한 것은 임기 후반기 최대 국정과제인 양극화 해소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부동산 안정 및 교육개혁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 한덕수 부총리-권오규 수석, 닮은꼴(매일경제.다음, 2006.4.16)

☞ 권오규 경제부총리는 누구인가-개방 중시 `시장주의자`(이데일리, 2006.7.3)

☞ 권오규 내정자 "영미식 경제가 유럽보다 성과 높다"(매일경제.다음, 2006.7.3)

☞ 미리보는 '권오규 경제팀'(머니투데이, 2006.7.3)

☞ 기획원 출신 뜨고 재무부 출신 지고 …(중앙일보, 2006.7.4)

☞ '이피아', 당-정-청서 경제정책 쥐락펴락(동아일보, 2006.7.18)

☞ 김병준 교육부총리 강행, “경쟁력 없는 대학 통폐합” 파란 예고(조선일보, 2006.7.4)    

☞ [김병준 끝내 낙마] 의혹… 의혹… 우군도 등돌리자 ‘집으로’(국민일보.다음, 2006.8.2)  
  
☞ 金부총리 `최단명 2위' 교육首長, 역대 정권별 평균 재임기간 비교-노무현 정부 5명 교체 평균 8.2개월(연합.다음, 2006.8.2)  

☞ 참여정부 인사들 낙마 이유(서울경제, 2006.8.2)  

☞ 심상정 “노 정권 개각은 실패자들의 얼굴 바꾸기”(노컷뉴스, 2006.7.1)  

☞ 노대통령, 제4기 국민경제자문위원 위촉-"한미FTA 적극 찬성파 일색"(연합.다음, 2006.7.14)  

☞ 어윤대(고대총장)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한·미FTA 체결되면 멕시코처럼 좋은 효과 낼 것”(문화일보, 2006.7.15)  

☞ 암참·한미재계회의 "한미FTA 위해 스크린쿼터 축소해야"- 웨인 첨리, "경영진이 재량으로 근로자 고용.해고.이전하도록 해야"(서울경제, 2006.9.21)

☞ 대통령 소속 '한미FTA 체결 지원위원회' 설치, 위원장에 '한덕수' 임명-'대통령 한미FTA 특보'도  겸임(연합.다음, 2006.7.24)

☞ '한미FTA 체결 지원위' 발족…관변인사 동호회?(프레시안, 2006.8.11)

▶2002년 盧 동지들, '한미FTA 반대 전선으로' ◀

☞ 이정우 前정책실장 "한.미FTA 반대"‥대통령 측근들 줄줄이 가세(한국경제, 2006.7.6)  

☞ '창업 이론가'들도 등 돌려(중앙일보, 2006.7.26)  

☞ ‘대통령의 사람들’도 등을 돌렸다(주간조선.다음, 2006.8.8)

(한미FTA 역사 쓰기는 계속 이어집니다)

* 한미FTA 관련자료를 더 보실 분들은 참정연 홈페이지( http://www.cjycjy.org/ )를 방문하시길 바랍니다.
 
 


2006/09/01 [00:29]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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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엥란트
한미FTA 추진 '주동' 5인방을 해부하다
[한미FTA 역사쓰기10] FTA 탈레반'들의 ‘폭언, 거짓말, 친미행각’시리즈
 
김영국



한미FTA 추진을 주도한 ‘5인방’- 김현종·한덕수·정문수·이경태·권태신

'경제저격수' 김현종(통상교섭본부장), 'FTA 탈레반 최고지도자' 한덕수(전 경제부총리), '매파' 정문수(청와대 경제보좌관), '장미빛 제조기' 이경태(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 '오사마 빈 FTA' 권태신(전 재경부 제2차관)

노무현 대통령을 보좌해 한미FTA을 앞장서 이끄는 주역으로는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을 우선 꼽을 수 있다. 김 본부장은 노 대통령이 한미FTA 추진을 '결심'하게 만든 장본인이자 미국 쪽과 벌일 협상의 총책임자이기도 하다. 한미FTA를 추진하는 과정에서도 노 대통령의 절대적인 신임을 바탕으로 거의 전권을 휘두르다시피 하고 있다.

그에게는 'FTA 전도사'라는 평가와 함께 개도국의 정부 관리 등으로 위장해 해당 국가의 산업을 붕괴시켜 미국에 종속시키는 사람을 일컫는 '경제 저격수'란 의혹어린 시선도 따라다닌다.

이처럼 한미FTA 추진에 불을 붙인 핵심 인물이 김 본부장이라면, 이를 행정부 차원에서 뒷받침하고 총괄하는 역할은 한덕수 전 경제부총리가 했다. 그는 경제부총리에서 물러난 뒤에도 곧바로 한미FTA 체결 지원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한미FTA 체결 성사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정문수 대통령 경제보좌관, 이경태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원장도 한미FTA 추진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임명 당시부터 'FTA 추진 보좌용'으로 발탁된, 정문수 경제보좌관은 2005년 10월 한미 FTA 추진에 대한 만장일치 합의를 본 대통령 보고 자리에 김현종 본부장, 한덕수 부총리와 동석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경태 원장이 들어선 이후 국책연구기관인 KIEP는 한미FTA의 경제 효과에 대한 장미빛 전망들을 쏟아냈다. 한미FTA 경제적 효과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하면서 한 달 사이에 GDP 증가율을 크게 부풀려 다시 발표하는가 하면, 한미FTA 연구 결과 중 불리하게 나온 '무역수지 감소분'에 대한 은폐.조작 의혹에도 휩싸여 있다.

한편 권태신 전 재경부 제2차관은 마치 '개방하지 못해 환장한' 사람처럼 한미FTA 반대파들에 대한 반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테러' 수준의 폭언도 거침없이 쏟아냈다. 경제 정책을 총괄하는 공무원이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국민을 상대로 마음에 상처를 주는 독설을 자주 퍼부어대 논란을 빚기도 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의 화술과 스타일이 비슷한 권태신 차관을 총애하면서 OECD 대사로까지 영전시켰다. 청와대는 권 차관을 OECD 대사로 발탁한 사유 중 하나로 '탁월한 언어능력'을 꼽았다. 국민참여정부라는 盧 정권에서 기막힌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한미FTA 추진을 주도하며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는 이들의 구실이 조금씩 다르고, 경력도 다양하지만 한 가지 두드러진 공통점은 실무적·학문적 배경에 ‘미국의 흔적’이 뚜렷하다는 점이다. 한미FTA를 추진하는 주체들의 면면으로 보아서는 마치 ‘미국 대표와 미국 대표가 협상하는 것 같다’는 비아냥이 나오는 건 이런 배경에서 비롯된다.

한미FTA  탈레반들,  ‘매파 5인방’

한덕수(전 경제부총리), 정문수(청와대 경제보좌관), 권태신(OECD 대사), 박병원(재경부 제1차관), 변양균(청와대 정책실장)

김현종 본부장을 'FTA 전도사'라 한다면, 한덕수 전 경제부총리는 'FTA 교주'에 가깝다.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개방'을 교리처럼 신봉하며 개방 반대 또는 신중론자들에 대한 독설도 거침없이 내뱉는 'FTA 탈레반'의 창설자이자 최고지도자 격이다.

그러나 한덕수 전 경제부총리 보다 한술 더 떠 한미FTA 반대 또는 신중론자들에 독설을 서슴지 않는 FTA 탈레반들이 노무현 정권의 핵심 요직에 대거 포진해 있다.

FTA 탈레반 중에서도 '매파(hawks)'라 할 수 있는 이들은 한덕수(전 경제부총리), 정문수(청와대 경제보좌관), 권태신(OECD 대사), 박병원(재경부 제1차관), 변양균(청와대 정책실장) 등을 꼽을 수 있다.

☞ 미국 대표 해도 손색 없겠네-한미FTA 주연 김현종 본부장과 한덕수 부총리, 조연 정문수 보좌관·이경태 원장까지 ‘미국의 흔적’ 뚜렷(한겨레21.다음, 2006.4.25)

☞ 한미FTA 협상단의 '친미 코드' 논란, 83%가 유학파, 이중 75% '미국 박사'- 통상협상 경험과 전문지식은 '글쎄', 일부 분과장 뒤늦게 협상단 합류(오마이뉴스, 2006.8.10)

☞ 체급 다른 대표 선수, 기울어진 ‘FTA 테이블’(시사저널.다음, 2006.7.20)

☞ 기획원 출신 뜨고 재무부 출신 지고 …(중앙일보, 2006.7.4)

☞ 이피아, 당-정-청서 경제정책 쥐락펴락(동아일보, 2006.7.18)

☞ 누가 청와대를 움직이는가(시사저널.파란, 2006.5.11)


김현종 미스터리, 'Mr.FTA'인가 '경제 저격수(매국노)'인가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2004.7.28 임명)

현재 한미FTA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노무현 대통령이 한미FTA 추진을 '결심'하게 만든 장본인이다.

노무현 정부가 임기말 핵심 국정 아젠다로 한미FTA에 올인하면서 김 본부장은 노 대통령의 각별한 신임하에 한미FTA에 관한한 전권을 휘두르다시피 하며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고 있다.

이런 그에게 늘 두 가지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하나는 그와 함께 일하는 동료나 개방론자들 사이에서 불리는  ‘FTA 전도사’ 또는  ‘Mr.FTA’ 이고, 다른 하나는 그에게 의혹을 눈길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 부르는  ‘경제저격수’ 또는 ‘매국노(제2의 이완용)’란 칭호다.

첨예한 찬반 논란 속에 한미FTA를 최일선에서 지휘하고 있기 때문에 그를 바라보는 시선이 이처럼 극명하게 갈리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김현종 본부장은 45세의 젊은 나이로 세계 경제전쟁의 한국군 야전사령관격인 통상교섭본부장에 오르면서 주위를 놀라게 했다.

그는 2004년 3월 28일 비외교관 출신으론 이례적으로 외교통상부의 핵심 요직(G7) 중 하나인 통상교섭조정관(1급)으로 발탁된 뒤, 1년 반도 안돼 2004년 7월 28일 장관급인 통상교섭본부장으로 초고속 승진했다. 따라서 공무원 경력은 겨우 2년을 조금 넘긴 정도다.

김 본부장은 초등학교 3, 4학년만 서울에서 다녔을 뿐 중.고등학교와 대학, 대학원을 모두 미국에서 마치고 직장생활도 미국에서 시작했다. 따라서 그는 '생각도 영어로 하고 꿈도 영어로' 꾼다고 한다. 김 본부장은 14세부터 혼자 미국에서 생활했다.

김 본부장의 아버지인 김병연(76)씨는 우루과이, 노르웨이 대사를 지냈으며 1965년 한-일 협정 체결 당시 주일대사관 서기관이었다. 아버지는 한-일 협정의 실무자였으며, 아들은 한-미 협정의 주역으로 활약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이력은 하나하나가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다. 조기 유학, 미국 컬럼비아대 국제정치학부에 진학 학사·석사 취득, 1982년 컬럼비아대 로스쿨에 진학 국제상거래와 통상법 전공후 미국 뉴욕주 변호사 자격 취득, 1985년부터 기업 인수합병(M&A) 업무를 전문으로 다루는 뉴욕 월스트리트의 '로펌' 근무, 1989년 귀국후 김·신&유 법률사무소에서 국제 상사 중재와 국내 기업의 해외투자 관련 법률상담, 지적 재산권 업무 주로 담당, 1993년부터 홍익대 무역학과 조교수 역임, 1995년 외교통상부 ‘WTO 분쟁해결 대책반’ 고문변호사로 위촉, 1999년 국제기구인 WTO 법률국 수석법률자문관(Senior Legal Advisor)으로 발탁 4년간 활동, 2003.3.28 외교통상부 통상교섭조정관(1급)에 발탁, 2004.7.28 통상교섭본부장(장관급)으로 초고속 승진.

그러나 화려한 경력에도 불구하고 그가 한국 사정(경제와 사회일반 등)에 대한 이해와 지식체계를 쌓은 것은 컬럼비아대에서 '한국 유학생들과 대화'를 하면서 익힌 게 전부라고 한다.

특히 김 본부장의 경력은 겉으로는 다국적 컨설팅업체 직원, 혹은 정부 관리 등으로 위장해 개도국 산업을 붕괴시켜 개도국의 천연자원과 군사시설 등을 미국에 종속시키는 사람을 일컫는 이른바 '경제 저격수'(존 퍼킨스, ‘경제저격수의 고백’ 저자)와도 매우 흡사하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김 본부장의 한미FTA에 대한 지독할 정도의 집착을 보면서 혹시 그가 경제저격수가 아닌가 하는 혐의를 두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는 통상교섭본부 조정관으로 盧 정권에 영입된 이래 줄곧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개방'을 주창해왔다. 칠레와의 FTA 발효 이후 일본, 싱가포르, 아세안 10국, EFTA(EU에 가입하지 않은 유럽국가), 미국 등과 잇달아 FTA 논의가 불붙은 것도 그의 개방론이 촉발시킨 것이다.

김 본부장의 이런 사고와 화술은 노무현 대통령의 ‘코드’와도 일치한 것으로, 청와대는 그가 통상교섭조정관 시절부터 통상교섭본부의 인사권을 행사할 정로도 그에게 ‘힘’을 실어주었다고 한다. 또한 통상교섭본부장으로 승진한 뒤 한미FTA를 주도하는 과정에서도 그는 노 대통령의 절대적인 신임을 바탕으로 거의 전권을 휘두르다시피 하고 있다.

김현종 본부장을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들의 그에 대한 평가는 크게 엇갈리고 있다.

통상교섭본부 비상근 자문관으로 한·일 FTA 협상에 참가했던 인하대 정인교 교수는 “김 본부장은 명확한 논리, 두둑한 배짱, 해박한 법률지식, 치밀한 분석자료를 바탕으로 협상에서 강한 설득력을 발휘한다”고 했다.

그러나 김 본부장과 통상교섭본부에서 함께 근무했던 한 변호사는 “시장개방은 해나가되 국내 업계의 성숙에 따라 개방의 폭과 속도를 조절하고, 그 과정에 산업간, 부처간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게 본부장의 ‘본업’인데, 김 본부장은 국내법과 국내 산업, 통상정책에 대한 이해도가 상대적으로 낮아 적임자로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김 본부장은 소신이 너무 강한 나머지 ‘내 생각에 반대하면 문제가 있다’는 식의 독선적인 면모를 종종 드러낸다”며 “기업인이나 다른 부처 공무원들과 ‘계급장’을 떼놓고 진솔한 대화를 나누면서 합의점을 찾아가는 원만한 리더십이 아쉽다”고도 했다.

또한 쌀 재협상 문제로 김 본부장을 접촉해온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은 “초기에는 소신과 확신에 찼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말도 바뀌고 농민 등 이해당사자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다”고 평가했다.

일부 언론에서 석사장교로 복무했다고 하는데 그의 약력 어디에도 병역기간이 없다. 김 본부장의 미국에서 생활을 잘 아는 한 인사는 “컬럼비아대에 다닐 때 군대를 가지 않으려고 했던 별의별 행동을 보면 과연 그를 애국자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며 혹평했다 한다.

경제 문외한에 독선적이기까지 한 성격, 기업 인수합병(M&A) 전문 변호사, 국제기구 활동 경력 등 김 본부장이 걸어온 길과 스타일이 그를 '경제 저격수' 쪽에 더 혐의를 두고 바라보는 사람들의 대체적인 시선이다.

김현종 본부장이 지금 수행하고 있는 일이 국민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언론과의 접촉을 회피하는 그의 행동에 대해서도 '책임있는 관리의 태도로 볼 수 없다'는 불멘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신상 및 경력 관련 자료◀

☞ 외교통상부 통상교섭조정관에 비외교관 출신 통상전문가인 김현종(金鉉宗) 세계무역기구(WTO) 사무국 자문관을 발탁(경향.다음, 2003.3.28)

☞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에 김현종 임명, 강금실 법무부장관 후임엔 김승규씨(오마이뉴스, 2004.7.28)

☞ [화제 인물 집중 분석] 김현종 신임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 ‘공격적 개방’ 부르짖는 ‘FTA 전도사’ (신동아, 2004년 9월호)

☞ 이백만 청와대 홍보수석, "김현종 본부장은 'Mr.FTA'로 불릴 정도로 FTA 협상의 최고전문가", "졸속 추진 비판은 어불성설"(청와대브리핑, 2006.7.10)

☞ ‘FTA 사령탑’ 김현종 미스터리- "경제저격수 존 퍼킨스와 유사한 면 많아"(뉴스메이커.다음, 2006.7.21)

☞ 경제 저격수가 아니길…(뉴스메이커.다음, 2006.7.21)

☞ 김현종 본부장, 노 대통령 독대 주도권 잡았다(뉴스메이커.다음, 2006.7.21)

☞ 영어로 꿈꾼다는 미국 변호사, 그에게 맡겨진 한국경제의 운명- "김현종의 한국경제 종말론은 근거 없어"(오마이뉴스, 2006.8.6)

☞ 한미 양국의 FTA 협상대표 비교분석- "경제 문외한 김현종의 잘못된 인식"(프레시안, 2006.3.22)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의 주요 발언록◀

☞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 SBS 인터뷰, "스크린쿼터 해결해야만 미국과 (FTA) 협상할 수 있다는 '시그널'을 보내는 것이다"(SBS, 2006.1.21)

☞ "한미FTA는 한미 군사동맹을 대체하는 것", "한미FTA로 양극화 생기는 것 사실 걱정된다"-김현종 본부장 한미FTA 협상 개시선언 전 특파원 간담회(연합.다음, 2006.2.2)
(한미FTA는) 한미간 포괄적 동맹관계 차원에서도 중요하다.
미국의 신속협상권법에 따르면 군사동맹을 대체하는 게 FTA라고 명시돼 있다.
(필자註  : 김 본부장의 이 발언은 노 대통령의 "한미 FTA는 정치안보적 고려 없이 '어디까지나 경제적인 차원에서' 추진했으며, ‘경제동맹’이란 용어는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표현"이란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 노 대통령의 거짓말 가능성 제기)
3만달러 시대를 볼 때, 일본 모델로 될 수 있다는 보장도 없고, 일본 모델이 꼭 우리한테 적절한 모델인지도 의문이다.
한미 FTA에 대한 여론조사를 의뢰해보니 80.3%가 지지했다. 무역협회의 기업상대 조사에선 94.6%가 지지하는 것으로 나왔다.
(필자註  : 이 여론조사와 관련 대구MBC 라디오에서 2006년 8월 8일 집중 해부해 본 결과 2004년 11~12월에 조사한 것으로, 내용도 대부분 '소속 단체의 내부 의견수렴' 정도인 걸로 밝혀짐)
한미간 투자자협정은 FTA의 22개 장중 하나로 들어간다.
FTA가 이익이 있더라도 고른 분배를 FTA가 보장해주는 것은 아닌데, 한쪽으로 몰리면 양극화에 기여하는 것 아닌가. ▲그런 부분이 사실 걱정스럽다. FTA를 하면 항상 어느 국가에나 단층(dislocat ion)이 생긴다.
(필자註  : 이 발언은 같은 한미FTA 주동자인 한덕수 한미FTA 체결지원위원장의 "한미FTA는 양극화 해소 기회", 이경태 KIEP 원장의 "한미FTA로 양극화가 개선될 것"이란 주장과 다름)
FTA 협상이 미국의 신속협상권(TPA) 시한을 넘기게 되면, 미 의회 비준 때 개별적으로 의원들을 설득해야 하므로 그야말로 악몽같은 상황이 된다. 현실적으로 안되는 거다.

☞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말하는 한·미 FTA 협상-'노 대통령 결심 받아내는 등 한미FTA 추진과정'(중앙일보,2006.2.8)  

☞ "스크린 쿼터는 이미 한.미 통상현안으로 드러나 있었던 문제다. 이번에 FTA와 연계해 해결한 것은 아니다."(중앙일보, 2006.2.8)

☞ "스크린쿼터 감소 한미FTA 연관은 '사실'"(서울경제, 2006.2.21)

☞ 4대 선결조건 관련 김현종, 김종훈의 '거짓말, 말바꾸기' 사례(한미FTA 역사쓰기 7)

☞ "한·미 FTA 협상은 우리 주도로 만들어 낸 작품"(국정브리핑, 2006.2.21)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한·미 FTA협상은 개혁과 개방이라는 정책방향 속에서 우리가 주도적으로 미국 행정부와 의회, 업계를 적극적으로 설득해 만들어낸 작품" 이라고 밝혔다.
김 본부장은 21일 언론재단이 주최한 '한·미 FTA 추진 포럼'에 참석해  “미국 나름의 이해득실과 정치·경제적 요인을 고려해 결정한 것이었겠지만 그 결정에는 우리의 주도면밀한 설득 노력이 매우 유효하게 작용한 것”이라며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는 ‘정치적 고려’에 대한 의혹을 일축했다.
'스크린 쿼터 축소' 문제에 대해 김 본부장은 “협상 시작의 전제조건은 아니었지만 한·미 FTA를 주어진 기간 안에 성공적으로 마무리 짓고 협상을 신속하게 진행하기 위한 정지작업 차원에서 우리가 자발적으로 추진한 것”이라고 말했다.
(필자註  : 스크린쿼터 축소가 협상 시작의 전제조건 아니란 주장은 명백한 거짓말. 제5차 대외경제위원회 안건』자료 등을 통해 미국측은 집요하게 요구했고, 한국 정부는 이의 해결 위해 전력을 다한 사실 드러남)

☞ “한·미 FTA는 선택 아닌 필수과목”- ‘공격적 개방과 구조조정’ 강조(데일리서프라이즈, 2006.2.21)

☞ "한미 FTA 국정조사 대비" 지시-관료적 자기보호책…협상내용 공개엔 여전히 소극적(프레시안, 2006.3.13)

☞ "마지노선 못지키면 한미 FTA 중단할 수도" (프레시안, 2006.4.17)

☞ "한·미FTA로 1인당소득 30만원 늘것"(이데일리, 2006.4.19)

☞ 김현종 본부장, 약가 적정화 정책 철회 '물밑 합의' 의혹(MBC.다음, 2006.5.29)

☞ 美誌, "한국의 약제비 적정화 방안 FTA협상 타결 때까지 보류 약속 위반"- "미국측, 사전 약속한 김현종 본부장이 어려운 입장에 처하지 않도록 조용하고 비공식적으로 논의"(연합.코리아닷컴, 2006.5.29)

☞ "세상에 어느 나라가 협정문을 공개하는가?"(업코리아, 2006.7.5)

☞ “문닫고 성공한 나라 없다…최대시장 미국 외면하면 한국 성장 불가능”(문화일보, 2006.7.14)

☞ “현정권 요직 인사들 FTA반대는 이해부족-반대위한 반대”(동아일보, 2006.7.15)

☞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의 터무니없는 '쇄국' 논리(프레시안, 2006.7.19)


'불량 신사' 김종훈 협상 수석대표


김종훈 한미FTA 협상 수석대표(2006.2.2 임명)

▶신상 및 경력 관련 자료◀

☞ 韓美 FTA협상 본격 개시-한미FTA 협상 우리측 수석대표에 김종훈 APEC 대사(차관보급) 내정(헤럴드경제.야후, 2006.2.2)

☞ 한미 양국의 FTA 협상대표 비교분석-"김종훈 한미FTA 협상 수석대표, 통상 분야 일천한 정통 외교관"(프레시안, 2006.3.22)

▶김종훈 수석대표의 주요 발언록◀

☞ "中·日보다 美가 최적 파트너", "한중 FTA는 득보다 실이 크다"(이데일리, 2006.5.25)

☞ "한·미 FTA ‘이익의 균형’ 추구…손해보는 장사 안한다"(국정브리핑, 2006.4.14)

☞ "4대 선결조건이 한미FTA와 관련 있다는 게 '정부 문건'에서 나오면 책임지겠다"(한미FTA 첫 국회 토론회 국회방송 VOD, 2006.4.24)

☞ MBC PD수첩, 한국 정부의 한미FTA 추진 과정/ 4대 선결조건 관련 '김종훈 수석대표 거짓말' 탄로나(MBC PD수첩 7.4일 방송분 녹취록-참정연, 2006.7.28)

☞ "한미FTA 위해 스크린쿼터 축소 '사전에 해결', '분위 조성용'이었다"(동아일보, 2006.7.21)


이혜민 한미FTA 기획단장(2006.4.4 임명)


☞ 한·미 FTA 기획단장에 이혜민 임명(세계일보.다음, 2006.4.4)

☞ 이해민 한미FTA 기획단장, "한미FTA 오래전부터 철저히 준비해왔다"(청와대 브리핑, 2006.4.20)
앞서 외교부의 요청으로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2003년 10월 한·미 FTA의 경제효과에 대한 예비검토를 했으며, 2004년 말에는 한·미 FTA 체결의 경제적 효과 분석에 대한 보고서도 작성되었다.
(필자註  : 2004년 말(11월 6일) 산업연구원의 『산업발전전략 측면에서의 FTA추진 우선순위 분석』보고서는 "한.중FTA가 모든 FTA중 최고 우선 순위이고, 농업 피해를 고려한 경우에도 한.중FTA 추진이 한.미FTA 보다 우선 순위에서 앞선다는 분석이 나왔다. 그럼에도 정부는 2005년 5월 중국의 양보 제안까지 걷어차버리고 4대 선결조건까지 뇌물로 바쳐가며 미국과 FTA를 강행했다. 보고서의 분석과 정반대의 길로 가버린 것이다. 또 『FTA 추진현황 및 전망』이라는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 명의의 2004년 12월 16일자 정부 문건(제3차 대외경제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한미FTA는 분명 우선순위에서 10위로 '맨 나중'이었다.)
또한 2004년 11월과 12월에 걸쳐 전경련과 무역협회, 한국갤럽을 통해 한·미 FTA 추진에 대한 우리 기업과 일반 국민들의 지지 여론을 확인한 바 있다.
(필자註  : 이 여론조사와 관련 대구MBC 라디오에서 2006년 8월 8일 집중 해부해 본 결과 2004년 11~12월에 조사한 것으로, 내용도 대부분 '소속 단체의 내부 의견수렴' 정도인 걸로 밝혀짐)


'장미빛 제조기' 이경태 KIEP 원장


이경태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원장(2005.1.28 임명)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는 정부출연 연구기관으로 FTA 추진에 대한 통계적·이론적 연구와 지원을 맡고 있다.

그런데 적극적 개방론자인 이경태 원장이 들어선 이후 국책연구기관인 KIEP는 한미FTA의 경제 효과에 대한 장미빛 전망들을 쏟아냈다. 한미FTA 경제적 효과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하면서 한 달 사이에 GDP 증가율을 크게 부풀려 다시 발표하는가 하면, 한미FTA 연구 결과 중 불리하게 나온 '무역수지 감소분'에 대한 은폐.조작 의혹에도 휩싸여 있다.

☞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원장에 이경태 OECD 대사 임명(연합.다음, 2005.1.28)

☞ 이경태 KIEP 원장 취임 인터뷰,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피해 안볼려고 시장개방 반대하는 건 설득력이 떨어진다"(한국경제.네이트, 2005.2.13)

☞ KIEP '한미FTA 경제효과 조작' 논란의 내막-이경태 KIEP 원장 '거짓 해명' 의혹(프레시안, 2006.4.28)

☞ KIEP 그 통계수치, 믿기 힘들다-이승원 권영길 의원실 정책보좌관 (한겨레21, 2006.8.1)

☞ 이경태 KIEP원장, “한미FTA로 양극화 개선될 것”-“양극화 해소에 한미FTA 적극 활용해야”(국정브리핑, 2006.8.18)


'FTA 탈레반 창설자(최고지도자)' 한덕수


한덕수 한미FTA 체결 지원위원회 위원장
   [2006.7.24 임명, 전 경제부총리(2005.3.14~2006.7.3, 이헌재 후임)]

한덕수 한미FTA 체결 지원위원회 위원장(전 경제부총리)는 1998년 통상교섭본부장으로 재임하면서부터 한.미투자협정(BIT) 추진을 주도하며 미국의 요구대로 스크린쿼터 철폐를 주장하는 등 한미FTA를 위해 몸 바쳐온 FTA '대부'다.

김현종 본부장을 FTA 전도사라 한다면 한덕수 전 경제부총리는 '교주'에 가깝다.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개방'을 교리처럼 신봉하며 개방 반대 또는 신중론자들에 대한 독설도 거침없이 내뱉는 'FTA 탈레반'의 창설자이자 최고지도자 격이다.

한덕수 전 부총리는 2000년 7월 중국과의 '마늘 협상' 때 통상교섭본부장으로 재직중이었으며, 2002년 7월 한중 마늘협상 당시 '이면합의'를 해놓고 고의로 숨긴 사실이 드러나면서 큰 파문을 일으키자 공직 생활에서 물러나기도 했다. 그러나 한덕수씨는 마늘협상 파문으로 물러난 지 4개월만에 김&장 법무법인 고문으로 스카웃됐다. 그러다 노무현 정부 들어 2005년 3월 개각 때 경제부총리로 발탁됐다.

한미FTA 추진에 불을 붙인 핵심 인물이 김 본부장이라면, 이를 행정부 차원에서 뒷받침하고 총괄하는 역할은 한덕수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했다. 2006년 7월 경제부총리에서 물러난 뒤에도 곧바로 한미FTA 체결 지원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한미FTA 체결 성사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신상 및 경력 관련 자료◀

☞ 새로 '신설'된 외교통상부 산하 '통상교섭본부장'에 '한덕수' 산업자원부차관 임명-김대중 대통령 차관급 인사 단행(동아일보, 1998.3.8)

☞ 마늘협상 은폐 파문 확산일로- 한덕수 수석 문책 사표 수리(프레시안, 2002.7.19)

☞ 한덕수 前경제수석 김&장 고문으로(매일경제.엠파스, 2002.11.27)

☞ 새 '경제부총리'에 '한덕수' 국무조정실장 임명, 왜 `한덕수 카드`를?(이데일리.다음, 2005.3.14)

☞ 대통령 소속 '한미FTA 체결 지원위원회' 설치, 위원장에 '한덕수' 임명-'대통령 한미FTA 특보'도  겸임(연합.다음, 2006.7.24)

▶한덕수 전 경제부총리 주요 발언록◀

☞ 한덕수 통산본부장, 1998년도 부터 "스크린쿼터 철폐" 주장, 영화계 "국내기반 붕괴" 반발(조선일보, 1998.7.23)

☞ "영화계 반발해도 스크린쿼터 강행"(머니투데이, 2006.1.26)

☞ "한미FTA 다른 선결과제 이미 해결됐다"(세계일보, 2006.1.26)

☞ "경제성장률 5% 이상이면 인플레 압력"(머니투데이, 2006.2.23)

☞ "FTA,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랴", "양극화 심화 원인은 중국 때문"(이데일리, 2006.3.3)

☞ “개방하면 어려워진다? 틀린 경우가 더 많았다”(재경부.국정브리핑, 2006.4.20)

☞ "4대현안 안 들어줬다면 한미FTA 불가능했다"(프레시안, 2006.4.27)

☞ "한미FTA, 실보다 득 훨씬많다"-"미국시장 결코 포기할 수 없다" (연합.다음, 2006.6.5)

☞ "한미 FTA는 양극화 해소 기회"(연합.다음, 2006.6.15)

☞ "자본시장 통합법, 보험업법 개편 등 금융법령 한미FTA 환경에 부합하게 정비할 것"(머니투데이, 2006.6.19)

☞ "한미FTA, 만병통치약은 아니다"(머니투데이, 2006.6.23)

☞ "한·미FTA 못하면 `통상고아`로 전락"(이데일리, 2006.6.23)

☞ “토끼는 한평 풀밭에 만족하지만 사자에겐 넓은 초원이 필요하다”(문화일보.다음, 2006.6.23)

☞ "한미FTA 의지, 조금도 변화없다"(머니투데이, 2006.6.26)

☞ "한미FTA, 속도조절은 없다"(한국경제, 2006.6.26)

☞ "자학하지 마세요", "FTA 반대론자 전체 국민 배려 안해" …떠나는 길에도 FTA 반대론에 쓴 소리(노컷뉴스, 2006.7.21)

☞ "FTA로 개혁 못하면 세계 10위도 어려워", "반대자들 집단이기주의"(연합.다음, 2006.7.18)

☞ 한덕수 한미FTA 체결 지원위원장 내정자 … "反美 단체가 한미FTA 국민 오도'(한국경제, 2006.7.31)

☞ 'FTA 반대=反美.주사파?' 색깔 덧칠하는 보수언론(오마이뉴스, 2006.8.2)

☞ “한미FTA는 개혁프로그램…안하면 퇴보”(국정브리핑, 2006.8.16)

☞ "한미FTA는 고도의 통치행위, (대통령도) 내년 3월안에 타결 강력 희망"- "한미FTA, 국민투표 요건에 해당 안돼"(오마이뉴스, 2006.8.20)

'한덕수 닮은 꼴' 권오규


권오규 경제부총리(2006.7.3 임명, 한덕수 후임)

신임 권오규 경제부총리는 2006년 5월 30일 김병준 후임으로 청와대 정책실장에 오른 뒤, 불과 한 달 여만인 7월 3일 한덕수 후임으로 경제부총리까지 초고속 승진했다. 이는 전임 한덕수 전 경제부총리의 관료 경력과도 매우 흡사하다. 둘 다 OECD 대사, 청와대 정책수석, 경제수석을 거쳐 경제부총리까지 오른 것이다.

무엇보다 권오규 부총리는 개방에 대한 소신이 한덕수 전 부총리에 못지 않다는 평가다. 그는 옛 경제기획원에서 대외경제조정실 과장을 맡던 1990년대초 금융개방 문제가 OECD 가입의 걸림돌이 되자 부총리를 직접 설득하기도 했다. 국가경쟁력을 키우려면 개방과 경쟁은 불가피하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한미 FTA 추진의 강도가 약화되기는 커녕 보다 적극적인 개방정책을 펼치기 위한 인사였다. 그만큼 노무현에게는 한미FTA를 겨낭한 적극적 개방론자만이 필요했던 것이다.

예상대로 권오규 부총리는 2006년 8월 10일 “절차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해서 한미FTA을 추진하지 않아야 될 이유가 안된다”고 말하는 등 참여정부의 정체성을 뒤엎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한미디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한미FTA는 해야 된다고 역설한 것이다. 노 대통령의 입버릇처럼 '하늘이 두 쪽 나도 한미FTA는 해야 된다'는 게 그의 지론인 셈이다.


▶신상 및 경력 관련 자료◀

☞ [7·3 개각] 권오규 경제부총리, 김병준 교육부총리, 변양균 청와대 정책실장 임명, '노무현의 사람들', 임기말 최전선으로(오마이뉴스, 2006.7.3)

☞ 한덕수 부총리-권오규 수석, 닮은꼴(매일경제.다음, 2006.4.16)

☞ 권오규 경제부총리는 누구인가-개방 중시 `시장주의자`(이데일리, 2006.7.3)

☞ 권오규 내정자 "영미식 경제가 유럽보다 성과 높다"(매일경제.다음, 2006.7.3)

☞ 미리보는 '권오규 경제팀'(머니투데이, 2006.7.3)

▶권오규 경제부총리의 주요 발언록◀

☞ "양극화, 한미FTA 거부이유 될수 없다"(이데일리, 2006.8.10)

☞ "개방안하면 성장률 30년내 1%대추락"(머니투데이, 2006.8.10)

☞ "FTA체결, 中보다 美가 우선"(한국일보, 2006.8.10)

☞ "절차상 일부 미흡해도 한미FTA 반대 이유 안돼"(서울경제, 2006.8.10)

'한덕수와 막상막하' 박병원 재경부 제1차관


박병원 재정경제부 제1차관(2005.6.1 임명)


☞ 재경부 차관에 박병원 임명(이데일리, 2005.6.1)

☞ 박병원 차관, '한덕수 부총리 못지 않은 개방론자.시장중심주의' 닮은 꼴(한국경제.네이트, 2005.6.1)

☞ 박병원 재경부1차관, "한미FTA는 선택 아닌 필수, 반드시 해야"-" 한·미FTA 협상, 시한(2007년 3월)내 타결 충분하다"(이데일리, 2006.4.13)
-한·미FTA 협상 출범을 언제 알았는가
발표되기 3달전쯤(2005년 11월)에 알았다. 확실하게 한다는 것을 안 것이 아니고 이것을 선택할 수 밖에 없다고 하는 소리를 들은 정도다.
-재경부에서 한미 FTA관련 서비스 산업에 대한 검토 언제부터 해왔는가
업종마다 다르고 지금까지 해온 것이 충분하지 않다. 지금도 계속하고 있고 우리 힘으로 다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주무부처별로 하고 있다. 전문가들에게 용역도 주고 있다. 서비스 분야 뿐만아니라 농업, 제조업도 품목별 점검에 들어갔다.
(필자註  : 한미FTA에 대비해 '사전에 철저히 준비해왔다'는 정부측의 일관된 주장이 사실이 아님을 고백한 셈)


☞ 박병원, "외환시장 자유화 조기시행 검토", "외국자본 차별대우 절대 없을 것"(이데일리, 2006.4.26)

☞ 박병원, “한미 FTA는 이익 보증서가 아니다”(노컷뉴스, 2006.6.1)


진동수 재정경제부 제2차관(2006.5.16 임명, 권태신 전 제2차관 후임)


☞ 재경부 제2차관에 진동수 조달청장 임명, '한미FTA 체결 등 산적한 현안 잘 처리할 것으로 기대' 발탁(프레시안, 2006.5.16)

☞ 진동수 재경부 차관, "정부 선결조건 미측에 제시한 바 없다."(파이낸셜뉴스, 2006.7.5)

☞ 진동수, “개성공단, FTA와 별도 논의 ”…논란(헤럴드경제, 2006.7.26)

☞ 진동수, "한미FTA 늦춰봐야 손해"-"최대한 서둘러 추진해야 한다"(머니투데이, 2006.7.14)

'오사마 빈 FTA'-한미FTA 행동대장 권태신


권태신 OECD 대사[2006.5.17 임명, 전 재정경제부 제2차관(2005.7.27~2006.5.16)]

"대한민국을 개방하지 못해 환장한 사람 같다", "한미FTA 반대하는 사람들에 원한이 사무친 사람 같다". 권태신 전 재정경제부 제2차관을 두고 한 말이다.

"스크린쿼터제 유지는 집단이기주의이다"
"스크린쿼터제는 FTA와 관계없이 없애버려야한다. 상업성이 높은 영화를 정부가 보호하는 것은 선진국에서는 유례가 없는 일이다",
"개방으로 피해보는 소수가 시끄럽다"
"한미FTA는 국민중 소수만이 반대한다"
"교육.의료 분야는 (미국이 요구 안해도) 개방해야"
"외국자본에 불이익.차별 절대 없다. 외국 기관투자가들은 국제 기준에 맞지 않는 법제도나 부당한 차별대우 등 걸림돌이 있다면 언제라도 한국 정부에 알려달라"
"외환자유화 일정을 적극 앞당기겠다"
이 모두가 한 사람, 권태신 전 재경부 차관 입에서 나온 말이다.

이처럼 권태신 전 재경부 제2차관은 한미FTA 반대파들에 대한 반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특히 개방과 관련 '테러' 수준의 폭언도 거침없이 쏟아냈다. 스크린쿼터제가 선진국에서는 유례가 없다는 둥 한미FTA를 국민 중 소수만이 반대한다는 둥 거짓말까지 서슴지 않았다. 무엇보다 경제 정책을 총괄하는 공무원이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배려는 고사하고 국민을 상대로 마음에 깊은 상처를 주는 독설을 자주 퍼부어대 논란을 빚기도 했다.

그를 '한미FTA 행동대장', '오사마 빈 FTA'라고 불러도 전혀 손색이 없는 이유이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의 화술과 스타일이 비슷한 권태신 차관을 총애하면서 OECD 대사로까지 영전시켰다. 청와대는 권 차관을 OECD 대사로 발탁한 사유 중 하나로 '탁월한 언어능력'을 꼽았다. 국민참여정부라는 盧 정권에서 기막힌 일이 아닐 수 없었다.


☞ 청와대, 복수차관제 도입에 따른 제2차관 발표-재경부 2차관에 권태신 청와대 경제정책비서관 임명(데일리서프라이즈, 2005.7.27)

▶권태신 전 재경부 차관의 주요 발언록◀

☞ "스크린쿼터 유지는 집단이기"…권태신 재경차관 비판 파문(연합.다음, 2006.1.20)

☞ 재경부 차관의 집단이기주의 발언에 영화계 "무책임한 발언" 반발(한국일보, 2006.1.20)

☞ "스크린쿼터, FTA와 관계없이 없애버려야", "상업성이 높은 영화를 정부가 보호하는 것은 선진국에서는 유례가 없는 일"(프레시안, 2006.2.16)

☞ "외국자본 합법적 이익은 당연, 권장할 일"(파이낸셜뉴스.다음, 2006.4.14)

☞ "개방으로 피해보는 소수가 시끄럽다"-권태신 재경차관  또 FTA반대세력 비난(연합.다음, 2006.4.18)

☞ "교육.의료분야, (미국이 요구 안해도) 개방해야"(연합.다음, 2006.5.9)

☞ "외국자본에 불이익.차별 절대 없다", "외국 기관투자가들은 국제 기준에 맞지 않는 법제도나 부당한 차별대우 등 걸림돌이 있다면 언제라도 한국 정부에 알려달라"(연합.다음, 2006.5.10)

☞ "한미FTA 국민 소수만 반대"-"외환자유화 일정 앞당기는 방안 적극 검토"(이데일리, 2006.5.10)

☞ 권태신 재경부차관 OECD대사로 영전, "탁월한 언어능력, 적극적인 업무추진력이 발탁 사유"(머니투데이, 2006.5.3)

☞ 권태신 신임 OECD  대사, "OECD 가입 위해 금융시장을 서둘러 개방했던 게 외환위기를 촉발했다는 지적에 대해, '오비이락(烏飛梨落)'일 뿐이라며 일축"(한국경제.야후, 2006.5.17)

한미FTA '시다바리' 주미대사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2005.1.16 임명, 윤영관 장관 후임)


☞ 새 외교통상부 장관에 반기문 청와대 외교보좌관 임명(프레시안, 2004.1.16)

☞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 "한미 FTA 성공적 체결 땐 한미 안보동맹이 경제동맹으로 강화 될 것"(서울경제, 2006.2.8)
(필자註  :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의 이 발언은 노 대통령의 "한미 FTA는 정치안보적 고려 없이 '어디까지나 경제적인 차원에서' 추진했으며, ‘경제동맹’이란 용어는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표현"이란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 노 대통령의 거짓말 가능성 제기)
  

홍석현 전 주미대사(2004.12.17~2005.9.29, 한승주 주미대사 후임으로 주미대사에 임명)


☞ 주미 대사에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 내정-삼성 이건희 회장의 처남이자 언론사(중앙일보) 사주로서 이례적으로 공직에 발탁 논란(국정브리핑, 2004.12.17)

☞ 韓美 재계회의, "한미FTA 협상 출범 촉구"-홍석현 주미한국대사도 참석, "한미 FTA에 대한 한국정부의 의지 보여"(이데일리, 2005.6.22)

☞ 홍석현 주미대사 사퇴, '안기부 도청 문건인 X파일 파문으로'...홍석현 발탁에서 낙마까지-노 대통령에게 홍석현 대사는 무엇을 남겼나(프레시안, 2005.7.26)


이태식 주미대사(2005.9.29 임명)


☞ 홍석현 주미대사 후임에 이태식 외교통상부 제1차관 임명(한국일보, 2005.9.29)

☞ "이태식 주미대사, 한미FTA 비준위해 美의원 100명 만나"(머니투데이, 2006.6.5)

☞ 이태식 駐美대사, 버시바우 美대사와 공동 언론기고, '[해외논단]한미 FTA 출발점에서'(세계일보, 2006.6.19)

 
'FTA 매파'가 장악한 청와대


변양균 청와대 정책실장(2006.7.3 임명)


☞ [7·3 개각] 권오규 경제부총리, 김병준 교육부총리, 변양균 청와대 정책실장 임명, '노무현의 사람들', 임기말 최전선으로(오마이뉴스, 2006.7.3)

☞ 변양균, "한미 FTA 일방 반대는 피해망상·사대주의 불과"(세계일보, 2006.4.11)

☞ 변양균 기획예산처장관 "한미FTA 체결시 농어촌이나 중소기업들에 피해,  FTA 농어촌 지원 119조원으로 부족"(이데일리, 2006.3.8)

'한미FTA 매파' 정문수


정문수 청와대 경제보좌관(2005.1.24 임명, 국민경제자문회의 사무처장 겸임)

노 대통령은 2004년 8월 청와대 경제보좌관에게 FTA 업무를 총괄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경제보좌관은 대통령 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 사무처장을 겸임한다. 국민경제자문회의 산하에는 FTA를 총괄하는 '대외경제위원회'가 2004년 8월에 설치돼 운영되고 있다.

2005년 1월 24일 FTA 추진 보좌용으로 임명된, 정문수 경제보좌관은 2005년 10월 한미 FTA 추진에 대한 만장일치 합의를 본 대통령 보고 자리에 김현종 본부장, 한덕수 부총리와 동석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외환은행 이사회 의장 시절(2003년)은 바로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에 은행을 매각한 때여서 구설에 휘말려 있기도 하다.


☞ 청와대 경제보좌관에 국제통상 전문가 정문수 임명, "FTA 추진 보좌용"/ 시민사회수석엔 이강철(서울경제, 2005.1.24)

☞ 정문수 경제보좌관, 'FTA 발언 정태인은 일종의 과대망상'(노컷뉴스, 2006.4.7)

☞ 정문수, "한미FTA, 세계화시대의 피할 수 없는 선택"(연합.다음, 2006.4.17)

☞ 정문수, [햄버거와 유토피아: 한미 FTA의 진실] 기고- "민노총등 노조의 FTA 반대, 이해못해", "햄버거 굽는 일자리 늘면 좋은 것 아닌가"(청와대브리핑, 2006.7.25)

☞ 정문수 청와대 경제보좌관 청와대 브리핑 기고에 대한 범국본 입장 - 무지의 소치인가 의도된 기만인가?(범국본, 2006.7.26)


노대래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2006.2.6 임명, 국민경제자문회의 사무차장 겸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은 정태인 전 비서관이 수행하던 직책이다. 대통령 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 사무차장을 겸임하며, 따라서 산하 FTA를 총괄하는 '대외경제위원회' 업무까지 관여하는 실무책임자이다.


☞ 靑, 노대래 국민경제비서관 발탁 배경-"독일 프랑크푸르트 총영사관 주재관, 주미대사관 참사관으로 근무하는 등 국제 감각 겸비"(프레시안, 2006.2.6)

☞ 정태인 전 국민경제비서관, "한미FTA 협상, 준비허술에 불투명하고 비민주적"- 통상교섭본부는 '소가 웃을 주장' 하지 말라 (프레시안, 2006.4.2)


윤대희 청와대 경제수석(2006.5.30 임명, 권오규 후임)


☞ 靑, 권태신 경제정책비서관 후임으로 윤대희씨 임명(이데일리.네이트, 2005.7.29)

☞ 노 대통령,신임 청와대 정책실장에 권오규,경제정책수석비서관에 윤대희 임명(권오규 후임)/프로필(프레시안, 2006.5.30)

☞ 윤대희 청와대 경제정책수석-"전략적 선택 가능하고 대가 많은 것이 FTA"(국정브리핑, 206.7.11)


김대기 청와대 경제정책비서관(2006.6.19 임명)


☞ 청와대비서관 6명 인사, 경제정책비서관에 김대기, 민원·제도혁신비서관에 허성관 前 행자 동생도 (조선일보, 2006.6.19)

☞ 김대기 경제정책비서관 발탁 배경-"경제기획원, 기획예산처 등 거쳐 다양한 업무 추진 경험과 전문성을 보유한 관료 출신"(프레시안, 2006.6.19)


한미FTA '후방 지원부대장' 강봉균


강봉균 열린우리당 정책위의장(2006.1.26 임명)

열린우리당의 정책 수장인 강봉균 정책위의장의 경우 대표적인 '한미FTA 적극 찬성론자'이다. 또한 당·청간 실용주의 핵심축이자 본산이라 할 수 있는 친노측근 그룹 이광재 라인 <의정연구센터> 의 고문이기도 하다.

이렇듯 집권 여당이자 국회 다수파인 열린우리당의 주류가 한미FTA 찬성파들 중심으로 움직여 간다는 것은 당 체질상 한미FTA 찬성파가 대부분인 제1야당 한나라당과 더불어 한미FTA 체결후 국회 비준 절차가 '통과의례'로 그칠 공산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국회가 국민의 대변자로서 한미FTA를 적절하게 견제하거나 제동을 걸만한 의지나 역량이 사실상 없다는 것을 의미하며, 따라서 한미FTA에 대한 견제는 그만큼 시민사회단체나 국민들의 각성과 의지에 전적으로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 열린우리 정책위의장에 강봉균 의원 내정(세계일보.다음, 2006.1.26)

☞ 與 실용노선 가속화하나- 당 지도부내에서 대표적인 실용주의자인 강봉균 정책위의장의 경우, '반드시 한미 FTA가 추진돼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조선일보, 2006.6.25)

☞ 강봉균 정책위의장, "한미 FTA는 개방정책으로 소신있게 밀고 나가야"(조선일보, 2006.7.10)

☞ 강봉균, "한미FTA 협상기한을 지키는 게 국익 차원에서 도움이 된다"-'속도조절론' 일축(매일경제, 2006.7.17)

한미FTA '얼굴마담' 한명숙


한명숙 국무총리(2006.4.20 임명)

☞ 한명숙 의원 국무총리 임명, '첫 여성 총리' 탄생-'국정장악력'에 대한 우려는 불식 못시켜(프레시안, 2006.4.20)

☞ 한명숙 총리 "한.미 FTA 흔들림없이 추진해야"(연합.서울경제, 2006.7.6)

☞ 한명숙, "한미FTA 부처에서 역할 다하지 못했다"-대국민 홍보 적극 지시(데일리안, 2006.7.13)

☞ 한명숙, "한미FTA 중심이 청와대인 것은 대통령 의지"(데일리안, 2006.7.27)

☞ "한명숙 총리, 도대체 아는 게 뭔가"(프레시안, 2006.7.9)

☞ [오늘의 눈] 5공화국시절 빼닮은 총리간담회(서울신문, 2006.7.31)


(한미FTA 역사 쓰기는 계속 이어집니다)

* 한미FTA 관련자료를 더 보실 분들은 참정연 홈페이지( http://www.cjycjy.org/ )를 방문하시길 바랍니다.
 
 

2006/08/30 [02:27]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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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엥란트